시간이 부족하다는 말

그때조차도 그는 어쩐지 더 작아 보였다.

허리는 전보다 더 굽었고, 걸음걸이는 심하게 절뚝거렸다.
세월이 그의 몸에 차곡차곡 쌓아 올린 무게가 눈앞에 선명했다.
그를 바라보는 순간,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눈물을 삼키기 어려웠다.
내 기억 속 그는 여전히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남자였으니까. 넓은 어깨에 나를 올려 바다로 뛰어들게 했던 남자, 어머니를 단단히 품에 안았던 남자였으니까.

얼마 전 영상 통화에서 나는 거의 그 질문을 던질 뻔했다.

“아빠,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아시죠. 어떤 기분이세요?”
하지만 결국 삼켰다.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두려웠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어쩌면 그는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한 번도 던져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니, 분명히 던져봤을 테지만, 그 무게를 감당할 만큼의 준비가 아직 되어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몇 주 전, 친구 생일 파티에서 마주한 한 장면이 지금도 생생하다.
친구의 여든세 살 된 아버지가 거실 책꽂이 앞에 서 계셨다.
손가락으로 책등을 하나씩 쓸어 넘기시더니, 한 권을 뽑아 가볍게 훑어보신 후 다시 제자리에 꽂으셨다.
딸이 말했다.
“원하시면 가져가서 읽어보세요.”

그는 고개를 돌려 조용히 미소 지으셨다.

“모든 걸 다 읽기엔 시간이 너무 부족하네요.”
그 한 마디가 칼날처럼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는 다시 미소 지으며 선반으로 돌아가셨지만, 그 말은 공기 중에 오랫동안 맴돌았다.

나는 방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웃는 사람들을, 유리잔에 남은 와인을, 은은하게 퍼지는 저녁 분위기를. 시간이 잠시 멈춘 듯했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우리는 삶을 얼마나 많은 ‘가치 없는 것’들에 낭비하며 살아왔는지.

감동을 주지 못하는 영화, 여운을 남기지 못하는 책, 함께 있어도 진정한 생명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 우리를 지치게만 하는 일, 발을 아프게 하는 신발까지. 끝없이 쏟아지는 것들 속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은 절대 우리를 위해 늘어나지 않는다.
흐르되 거스를 수 없고, 쌓이되 멈추지 않는다.

어쩌면 나이가 든다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삶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것에 인생을 낭비하는 것을 마침내 멈추는 법’**을 배우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잃어가는 것을 애도하기보다, 남긴 것에 집중하는 것. 짧아진 시간 속에서 더 깊게 숨 쉬는 법을 아는 것.

우리는 모두 그 여정에 서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진정으로 살아 있음을 확인해야 할 때다.


inG

우리의 존재 자체가 이미행복

댓글 쓰기

Welcome

다음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