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을 사는 첫 사람

첫날을 사는 첫 사람
나태주 시인

날마다 부지런히 풀을 뽑고 시를 쓰고 AI와 대화를 나누는 여든의 어른이 있다.

그를 “자세히” “오래” 바라보다가 깨닫는다. 나이 듦이란 완성에 가까워지는 일이라고.

1945년생, 여든의 나태주 시인은 53번째 시집 출간을 앞두고 있다.
1971년 ‘대숲 아래서’로 등단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니 50여 년간 해마다 한 권꼴로 시집을 세상에 내보인 셈이다.
그중 43년 3개월 동안은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교직에 몸담으며 글을 썼다.
놀라기엔 이르다.
온라인 서점 검색창에 ‘나태주’ 이름 석 자를 입력하면 딸려 나오는 책이 무려 200여 권. 올해 출간한 책만 해도 10권이 훌쩍 넘는다.
기존 글을 엮은 책, 해설을 덧붙인 책, 필사본 등이 섞여 있기는 해도 놀라운 생산력, 대단한 창작욕이다.
 “아직 삶에 대한 생각이 식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내 삶 그리고 다른 사람의 삶이 여전히 궁금하거든요. 시인에게는 시를 쓰게 하는 동인이 있어요. 첫째는 호기심, 둘째는 사랑, 셋째는 그리움이에요. 여든이 넘은 나이지만 제겐 이 세 가지가 남아 있지요.”

저도 아침에 일어나 저녁에 잠드는 그런 평범한 삶을 삽니다.

다만 이렇게 생각해요.
‘하루를 사는 것은, 하루를 버린 것이 아니라 하루를 번 것이다.’

시인은 호기심으로 산다

작고 여린 들꽃이 드문드문 피어난 충남 공주의 풀꽃문학관 앞마당, 잡초 고르기에 한창인 시인을 만났다.
풀꽃문학관은 1910년대에 지은 일본식 가옥에 그의 문학 세계를 전시해 놓은 조촐한 공간이다.
온화한 기운이 감도는 문학관엔 시인의 책, 몸소 쓰고 그린 시화, 공주 지역 작가들의 글과 그림이 다정하게 모여 있어 많은 이가 흐뭇하게 둘러보고 돌아간다.
여름엔 기린초와 용머리, 가을에는 해국과 상사화, 봄에는 복수초가 자라나는 풀꽃의 집이기도 한 이곳은 안팎으로 시인의 모습과 성정을 닮았다.
“호기심, 특히 호기심이 저를 움직여요. 낯선 것, 새로운 것, 모르는 것에 가까이 가고 싶고 친해지고 싶은 마음.”
여전히 세상에 신기한 것이 많아 즐거운 여든 시인은 얼마 전 AI에게도 말을 붙여 보았다.
 지난 7월 출간한 나태주 시 AI에게 묻습니다는 영어 교사이기도 한 김예원 작가가 나태주 시인의 시 40여 편을 AI에 입력해 대화를 시도한 결과물이다.
 ‘그리움’을 읽고 난 AI의 답변은 이랬다.
 “그리움은 하지 않으려 해도 고개를 돌려 결국 닿는 마음입니다.”
‘풀꽃’에 대한 감상은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사랑은 풀꽃처럼 작고 보잘것없어 보여도 누군가의 시선 하나로 빛나게 됩니다.
” 이 대목에서 문득 눈물을 훔치며 생각한다.
기술 발전이 우리를 어떻게 바꿔 놓을까. 과학기술이 인간을 대체해 가는 시대,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마주해야 할까.
시인은 천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인쇄술과 제본 기술 발전이 책을 만들었잖아요. 기술 발전이 사람에게 도움이 되느냐 물으면, 재론의 여지가 없어요. 이 휴대전화만 해도 제 몸의 일부 같은걸요. 젊은이들만이 아니라 나도 ‘포노사피엔스(스마트폰이 생활에 필수인 사람)’예요.” 그렇다면 혹시 AI가 시도 쓸 수 있을까. 그는 재독 철학자 한병철 선생의 글을 인용하며 “인공지능에게는 타자를 향한 욕망이 없기 때문”에 아직 시를 쓰기는 어려우리라 답했다.
“20년 전만 해도 휴대전화 하나에 계산기, 메모장, 사진기, 녹음기, 컴퓨터가 다 들어갈 줄은 몰랐어요. AI가 아직 시는 못 쓴다 해도, 인간의 창작을 독려하는 데에는 큰 역할을 할 수 있어요.” 기술은 스스로 욕망하지 않지만, 인간을 여전히 욕망하게 한다는 것이다.

노인은 걷는 기쁨으로 산다

걸음은 7월 29일 개관한 풀꽃문학관 신관으로 이어졌다.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버젓한 건물은 기획·상설 전시실과 라운지, 상영관 등을 갖췄다.
지난해 개관 10주년을 맞은 기존 풀꽃문학관은 이제 ‘시인의 집’이라는 이름의 문학 살롱으로 운영한다.
조금은 낯선 신관 건물에 온기를 불어넣는 건 시인의 손때가 묻은 풍금 한 대다.
개관 기념 ‘공주 원로 작가 3인전’이 열리고 있는 전시실 한편, 풍금 앞에 시인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이는, 받아들여야 해요. 받아들인다는 건 인정하는 거예요. 늙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니까요. 이제 다리가 아파서 달리기를 못 해요. 그러면 지팡이 짚고, 목발 짚으면 돼요. 과학이, 도구가 필요한 이유예요. 모든 방법을 동원해 부족한 면을 보완하면 되는 거예요. 걸을 수만 있다면, 오직 그 사실에 만족하는 거예요. 계룡산 꼭대기엔 못 가도, 중턱까지 가는 것으로 만족해요. 아, 좋았다, 하면서요.”
인간의 수명이 아무리 길어졌다 한들 흘러가는 시간은 언제나 야속하게 느껴진다.
 세월과 변화 앞에서 이토록 연약한 존재인 우리에게, 시인은 마흔에게라는 산문집을 통해 같은 길을 앞서 걸어간 선배의 지혜를 전수했다.
 “돌아보면 마흔이란, 불편하고 피곤하고 가난하고 분주한 나이예요.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 사이에 낀 세대잖아요. 포기할 수도 없고 나아갈 수도 없는, 엉거주춤한 세대.” 그는 이 책에 이렇게 썼다.
 “지나간 모든 사랑에게 감사하고 다시 찾아올 모든 사랑에게 또한 경의를 표한다.
 사랑이여, 영원하라. 사랑했던 마음이여, 그대 비록 힘겹고 비틀거릴지라도 아름다워라. 누군가의 인생이여, 사랑과 더불어 한없이 작아지고 누추해지겠지만 턱없이 그윽해지고 깊어지고 향기로워질 일이다. ” 새삼스레 되새긴다.
 인생이란 비틀거리며 아름다움으로 나아가는 여정임을.

사람은 누구나 최고의 하루를 산다

“많이 보고 싶겠지만 / 조금만 참자.” 시인은 이미 ‘묘비명’이라는 짧은 시를 통해 자신의 죽음을, 나아가 우리 모두의 죽음을 예언하기도 했다.
“이제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자식들은 다 자라서 제 자식을 둔 사람이 됐어요. 결말이 났달까요. 그래서 편안하기도 하지만 약간은 두렵고 쓸쓸하고 허전합니다.
‘아, 내 차례야?’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거든요.” 아직 가 보지 못한 길, 저 앞에 선 시인이 또 한 번 우리를 불러 세운다.
“그거 아세요? 부모가 사라지면 담장이 무너져요. 낡은 담장이라도 바람을 막아 주거든요. 그러니 부모가 오래 살도록 기도하고 살피는 일은 결국 나를 위한 마음에서 비롯하는 노력이에요.”
시인의 눈으로, 시인의 마음으로, 시인의 하루를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모든 날이 첫날이라 말하는 사람의, 순전하고 아름다운 하루를. “저도 아침에 일어나 저녁에 잠드는 그런 평범한 삶을 삽니다.
다만 이렇게 생각해요. ‘하루를 사는 것은, 하루를 버린 것이 아니라 하루를 번 것이다.
내가 본 풍경만 내 풍경이고, 내가 사랑한 사람만 내 사람이고, 내가 쓴 돈만 내 돈이다.
’ 최고의 날이 언제인 줄 아세요? 오늘, 지금 이 순간이에요. 내가 ‘살았다면’ 그 인생은 오롯이 내 인생. 내가 얻은 삶, 최고의 인생인 거죠.”
 


행복한 100세를 위해 퇴직 전후에 해야 할 것은?

우리 집 재산 상태표를 만들어보자. 현실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퇴직 전후 막막할 때, 무엇보다 상황 인식이 먼저다.

100세 시대를 맞아 수명은 길어졌는데 직장인 퇴직 연령은 변함이 없다.
취업 컨설팅업체 ‘잡코리아’가 2023년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40세 이상 직장인이 체감하는 평균 퇴직 연령은 51.8세다.
비교적 정년이 잘 지켜지는 교직원이나 공무원도 60대 초반에는 직장을 떠나야 한다.
그렇다면 퇴직 후 여생을 몇 년 정도로 예상하고 노후 준비를 할 것인가? 보통 평균수명에서 자신의 나이를 뺀 만큼이라 생각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5명 중 1명이 살아남는 연령, 즉 20% 생존확률 연령을 기초로 생존 기간을 상정하는 게 노후 준비의 기본이다.
1980년생으로 올해 만 45세인 사람의 20% 생존확률 연령을 통계청 자료를 이용해 전문가 도움을 받아 계산하니 남성은 100세, 여성은 102세였다.
또 하나, 가장 많은 사람이 사망하는 연령을 뜻하는 최빈사망연령까지 생존한다 가정하고 노후를 준비하는 사례도 있다.
현재 한국의 최빈사망연령은 92세다.
어느 경우든 직장인은 퇴직 후 30~50년을 어떻게 살지 생각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평균수명 아닌 생존확률·최빈사망연령 봐야

퇴직 이후 30~50년의 삶을 행복하게 누리기 위해 어떤 준비가 필요한가? 노후의 3대 불안으로 돈, 건강, 외로움을 든다.
이에 대비하는 일이 바로 노후 준비다.
그중 가장 중요한 건 돈, 즉 노후 자금이다.
따라서 퇴직이 가까워지는 50대에 이르면 1년에 한 번은 부부가 같이 현재 재산 상태표를 만들 필요가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A4 용지에 T자로 선을 긋는다.
T자 왼편에는 보유 자산을 나열하고 시가를 적는다.
자산은 실물 자산과 금융 자산으로 나눈다.
예를 들어 실물 자산에 아파트 한 채 5억 원, 중고 자동차 한 대 100만 원, 이런 식으로 적는다.
금융 자산은 현금·예금·주식·채권·펀드 등을 나열하고 시가를 쓴다.
이들의 합계가 10억 원이라면 우리 집 현재 자산 합계는 10억 원이다.

T자 오른쪽에는 은행 등에서 빌린 돈, 즉 부채를 적는다.
부채 합계가 7억 원인 경우 자산 합계 10억 원에서 부채 7억 원을 뺀 3억 원이 우리 집 순자산, 곧 자기자본이다.
이런 식으로 재산 상태표를 만들면 노후 대비 자산 관리 측면에서 자산 구조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할지가 보인다.

한국 가정의 재산 상태표는 어떨까?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인생에서 재산이 가장 많을 때는 퇴직 직전인 50대다.
2024년 3월 기준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 한국 50대 가구의 가구당 평균 총보유 자산은 6억 1400만 원이다.
여기에서 가구당 평균 부채 1억 300만 원을 빼면 순자산은 5억 1100만 원. 언뜻 50대 후반에 순자산 5억 1100만 원을 보유했으니 그럭저럭 살겠구나 생각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중 84%에 해당하는 4억 2700만 원이 부동산, 그것도 대부분이 현재 거주하는 집값이라는 점이다.
가용 순 금융 자산은 8400만 원밖에 안 된다.
이 돈으로 어떻게 30~50년을 살아가겠는가? 초조한 나머지 주식이나 선물, 코인 같은 데 눈을 돌려 단기 재테크를 하려다 그마저 날리는 사례도 적지 않다.
남는 건 결국 집 한 채인데, 올해는 화장실을 팔고 내년에는 건넛방을 팔아 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인구가 줄고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집값 하락 현상이 나타나면 또 어떻게 할지도 걱정이다.
가계 부채를 갚지 못한 경우 주택 빈곤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

선진국에서는 보유 자산이 없더라도 노후 최소 생활비 정도의 연금을 준다.
한국에서는 공무원·교직원·군인 출신과 현역 시절 따로 준비한 사람 정도가 여기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교직원으로 퇴직해 60세부터 최빈사망연령 92세까지 매월 교직원 연금 300만 원을 받는다면 총수령액의 현재 가치는 얼마나 될까? 정기예금 금리를 2%로 가정해 8억 6000만 원 정도다.
여기에 연 2%의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무려 약 11억 8000만 원이다.
다른 재산이 평균인 가정이라도 순자산 합계는 9억 4000만~12억 6400만 원에 이른다.
연금의 위력이다.

그러나 대부분 고령 세대가 받는 연금은 국민연금 정도인데, 2024년 12월 기준 65세 이상 고령자 1024만 명 중 국민연금 노령연금을 몇십만 원이라도 받는 사람은 68%다.
더 큰 문제는 수령액이다.
월 60만 원 미만이 70%를 차지한다.
100만 원 이상 수령자는 11%에 지나지 않는다.

가계 자산 구조 조정부터 시작

이렇게 보유 자산은 거의 부동산이고 연금도 빈약하면서 빚까지 안은 직장인이라면 퇴직 전후에 가장 서두를 과제는 가계 자산 구조 조정이다.
우선은 빚을 줄이는 노력부터 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집을 줄이거나 부동산 연금 등을 활용해 부동산과 금융 자산의 비중을 반반 정도로 조정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야 부동산 가격이 오르든 떨어지든 주택 빈곤, 즉 하우스 푸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일의 준비다.
생활비를 조달하기 위해서도 그렇지만 건강, 보람 있는 삶, 부부 화목 등을 위해서라도 수입을 얻는 일이든, 사회 공헌 활동이든, 취미 활동이든 퇴직 후 할 일을 준비해야 한다.
직장인이 가진 자산은 실물 자산과 금융 자산뿐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 인적 자본도 중요하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불교 건축과 예술의 정수 불국사와 석굴암

30년 전 경북 경주의 찬란한 유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천년을 버틴 아름다움을 들여다본다.

경북 경주의 석굴암과 불국사는 1995년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경남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 서울 종묘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세계유산에 이름을 올리려면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야 하는데, 인정하는 기준은 문화유산이 여섯 가지, 자연유산이 네 가지로 총 열 가지다.
유네스코가 석굴암과 불국사 연속유산을 선정한 기준은 1번과 4번으로, 1번은 인간이 만들어낸 창조적 걸작품을 가리키고 4번은 역사의 중요한 단계를 예증하는 건축적·기술적 총체를 보여 주는 사례를 말한다.

세계유산위원회는 석굴암과 불국사를 가리켜 “신라인의 창조적 예술 감각과 뛰어난 기술로 조영한 불교 건축과 조각”이라며 “경주 토함산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어우러져 한국 고대 불교예술의 정수를 보여 주는 걸작”이라 평가했다.
석굴암과 불국사를 향한 세계인의 찬미가 놀라울 따름이다.
2025년은 석굴암과 불국사가 세계유산에 등재된 지 30주년이 되는 해다.
9월에는 경북 경주에서 ‘세계유산축전’ 행사를 열고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해 두 유산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그 의미를 새롭게 조명할 예정이다.

신라 예술과 과학의 정점, 석굴암

토함산 중턱에 자리 잡은 인공 석굴 사찰 석굴암은 불국사의 부속 암자로, 통일신라시대 불교미 의 절정이라 할 만하다.
석굴암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07~1908년 우편배달부가 발견했다는 전언 이후 일본인 관학자 세키노 다다시가 경주 일대를 조사하면서다.
당시 석굴암은 오랜 세월 방치되고 입구는 흙더미에 묻힌 상태였다.
1913년 조선총독부는 석굴암을 문화재로 지정하고 보수 공사에 착수했다.
1923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진행한 공사는 석굴을 전면 해체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는데, 석굴암 내부에 콘크리트 돔을 설치하고 천장 석재와 불상 조각들을 뜯어 보존 처리했으며 배수 시스템을 정비했다.
이때 정확한 구조나 환기·습기 조절에 대한 이해 없이 작업하는 바람에 벽면이 눅눅해지고 균열과 곰팡이가 생기는 등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1000년 넘는 세월을 버텨온 석굴암의 신비로움이 과학이라는 오만 앞에 인고의 세월을 맞이하게 된 순간이다.
1960~1970년대에야 비로소 고정 습도 조절, 유리벽과 현대적 보존 장치 설치 등을 함으로써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 나갔고, 현재는 안타깝게도 유리벽을 통해서만 석굴 내부를 우러러야 하는 서글픈 처지가 되었다.

그럼에도 석굴암은 여전히 장엄한 아름다움을 전한다.
정교하게 짜인 건축·조각·기하학이 예술과 한데 어우러진 작품이라는 찬사가 결코 아깝지 않다.
좁고 길쭉한 복도 형태를 띤 전실은 외부와 내부를 연결하며, 속세에서 성불로 들어가는 길을 안내한다.
그 유명한 석굴암 본존불이 위치한 주실은 직경 4.6m, 높이 6.6m의 돔형 공간이고, 천장은 360도로 정교하게 맞춰진 화강암으로 이루어졌다.
연화대좌 위에 앉은 높이 약 3.5m의 거대한 석가모니 본존불은 고요하고 완전한 평정의 표정으로 석조 불상의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에 모신 반가사유상 두 점과 석굴암 본존불 가운데 어느 분이 더 깊은 사색의 미를 뿜어내는지 비교해 보고 내 취향을 찾는 재미도 쏠쏠할 듯하다.

본존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보살, 나한, 사천왕, 제석천, 범천, 팔부신중 등 총 39존상을 배치했는데, 모두 불교의 우주관과 구세중생의 서원(誓願)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아름다운 조각품이다.

자연 암반을 활용해 조성한 석굴암에서 조각과 건축의 조화로운 결합을 음미해도 좋겠다.
동양 불교 조각의 정점이라는 조각의 조형미를 넘어 우주의 질서와 윤회를 상징하는 불교적 세계관이 응축된 명상과 사색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석굴암은 정교하게 짜인 건축·조각·기하학이 예술과 어우러진 작품이다.

본존불은 석조 불상의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건축에 옮겨 온 철학, 불국사

토함산 자락에 들어선 불국사는 통일신라시대 불교 건축과 예술을 대표하는 사찰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불국사는 신라 경덕왕 10년(751년)에 재상 김대성이 창건을 시작했고, 혜공왕 10년(774년)에 완공했다.
 ‘불교의 이상 세계(극락)’를 뜻하는 ‘불국(佛國)’이라는 이름에서 드러나듯 불국사는 현실 세계에 구현한 불국토의 이상향으로 지었다.

불국사도 석굴암과 마찬가지로 일제가 발견했으나, 목조건물이 대부분 소실되고 탑·계단·석등 같은 석조  물만이 남은 상태였다.
 광복 이후 1969년부터 1973년까지 대규모 정비사업을 시행했는데 삼국유사와 고고학 자료, 일제강점기 조사 기록 등을 참고해 종합 전통 기법으로 복원했다.
 대규모 목조건축을 복원한 대표 사례로 다른 사찰과 고건축 복원에 큰 영향을 주었음은 물론이다.

불국사는 중심 법당으로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전, 각각 아미타불과 비로자나불을 봉안한 극락전과 비로전 세 영역으로 구성되었다.
대웅전을 향하는 석조 계단 청운교와 백운교 밑에는 연못이 있었다 전하는데, 속세에서 연못을 건너 극락에 오르는 과정을 형상화했다고 본다.
여기서 놓칠 수 없는 백미는 바로 자하문을 떠받친 웅장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석조 기단이다.
불규칙한 듯하지만 빈틈없이 짜맞춘 그랭이공법의 아래층 기단석, 그 위에 마치 나무를 깎아 만든 듯한 가공석으로 열을 지어끼워 넣은 윗단이 감탄스럽다.
신라인의 숨결이 느껴지는 기분이다.
숨은그림찾기처럼 자연석 기단과 담장 곳곳을 유심히 들여다보게 하는 불국사만의 매력 포인트다.

불국사라는 이름에 곧바로 떠오르는 석탑 한 쌍 이야기를 짚고 가야겠다.
대웅전 앞에 선, 달라도 너무 다른 다보탑과 석가탑이다.
문무왕 수중릉인 대왕암 가는 길목에 자리한 감은사지의 쌍둥이 3층 석탑을 생각하면 오산이다.
비대칭의 미학이라고 할까. 다보탑은 정교하고 화려한 장식이 특징인 반면 석가탑은 단순하고 안정된 아름다움을 지닌 전형적인 3층 석탑이다.
아사달과 아사녀의 애달픈 사랑 이야기에서 비롯한 ‘무영탑’이라는 별명을 가진 석가탑에서는 세계 최고의 목판 인쇄물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견되기도 했다.

불국사는 단순한 종교 건축물이 아니라 불교의 우주관과 윤회 사상, 이상 세계 구현 등의 철학을 건축과 조각을 통해 형상화한 공간이다.
철학을 건축으로 보여 준다는 말의 무게를 새삼 실감하게 한다.
세계가 인정한 소중한 문화유산에 아름다운 가을이 찾아온다.
천년 고도 경주의 토함산에 올라 석굴암과 불국사에서 불교 건축과 조형예술의 극치를 맛보기 좋은 계절이다.

불규칙한 듯하지만 빈틈없이 짜맞춘 그랭이공법의 아래층 기단석,

그 위에 마치 나무를 깎아 만든 듯한 가공석으로 열을 맞춰 끼워 넣은 윗단이 감탄스럽다.


inG

우리의 존재 자체가 이미행복

댓글 쓰기

Welcome

다음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