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별명이 ‘보살’이던 선배가 운전대를 잡자 욕이 총알처럼 튀어나왔다.
순간 운전 중에 남편과 대화만 하면 대판 싸우게 된다는 친구 얘기가 떠올랐다.
평상시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술만 마시면 하고 싶은 말이 방언처럼 터지는 친구도 떠올랐다.
운전 본심, 취중진담, 이것이 과연 원래 성격인 걸까.
뇌는 한 번에 한 가지 기능에만 몰두한다는 특징이 있다.
멀티태스킹이 안 되는 셈이다.
문제는 전두엽이다.
전두엽은 뇌의 브레이크로 공격성,
성욕, 식욕 같은 본능을 억제한다.
그러나 운전처럼 다양한 감각이 요구되는 상황에서는 뇌 기능이 위험 회피로 쏠리며 이 브레이크가 풀린다.
뇌가 한 번에 여러 기능을 처리하다 보니 전두엽의 기능이 약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끼어드는 차에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오는 건 성격이 아니라 뇌 구조 때문이다.
술의 전두엽 해제 기능은 훨씬 더 극적이다.
뇌과학자 김대수는 ‘취중진담’을 ‘취중 본능’이라 고쳐 말했다.
술김에 한 말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는 조언이다.
술은 마음의 자물쇠를 여는 열쇠일 뿐, 진심을 드러내는 거울은 아니기 때문이다.
술자리에서 나온 말은 잊고, 열기가 식도록 서랍 속에 넣어두는 편이 낫다.
하지만 지금 같은 디지털 시대는 ‘술김’에 한 행동에 특별히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술자리의 실수가 함께한 사람들만의 기억으로
끝난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에는 취해서 보낸 카카오톡, 인스타그램, 유튜브 라이브 방송이 시공간을 초월하여 박제되어 남기 때문이다.
세네카는 “사람은 평온할 때보다 위기에서 진짜 성품이 드러난다”고 말했다.
하지만 진화한 뇌과학은 “평온할 때 성품이 드러나고, 위기에서는 뇌의
구조가 드러난다”고 수정한다.
“문명은 우리가 서로를 찢어 죽이지 않게 붙여놓은 얇은 페인트층”이라고 한 윌리엄 골딩의 말은 또 어떤가. 과학은 그 페인트층이 전두엽임을 밝혔다.
운전대와 술잔은 그 얇은 층을 쏜살같이 벗겨내는 두 개의 손잡이다.
‘나막신의 눈’

2005년에 입사해 사회부 경제부 정치부 등을 거쳤습니다.
신발 바닥에 들러붙은 눈처럼, 밟히는 수모를 감수하며 권력에 달라붙는다는 뜻이다.
자민당과 손잡고 26년 동안 여당 자리를 지켜온 공명당을 두고 일본 언론이 자주 쓰는 표현이기도 하다.
그런데 공명당이 10일 정치자금 제도 개선 대책이 명확하지 않다는 등의 이유로 “더 이상 자민당과 함께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정치권에선 “26년 만에 나막신의 눈이 녹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불교 종파인 창가학회를 기반으로 한 공명당은 중도 보수 성향으로, 1999년부터 더 보수적인 자민당과 연정을 유지해 왔다.
지역구 후보를 거의 안 내고 비례 의석에 주력하는 대신 전국에 흩어져 있는 지지자들에게 “자민당 후보에게 투표해 달라”고 독려하면서 자민당과 공생했다.
선거구당 평균 2만 명의 조직표를 가진 공명당의 지지는 자민당 의석 확보에 큰 도움이 됐고, 자민당은 ‘알짜’인 국토교통성 장관을 항상 공명당에 내줬다.
또 중의원 지역구 10∼15곳에 후보를 안 내며 공명당 후보 당선을 이끌었다.
공명당이 중시하는 복지 교육 공약 일부도 정책에 반영해 줬다.
▷‘악어와 악어새’ 같던 연정에 금이 가기 시작한 건 2년 전 자민당에서 정치자금 스캔들이 터지면서부터다.
모금 행사에서 걷힌 정치자금 일부를 뒷돈으로 챙겨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이 터지면서 자민당 지지율은 급락했다.
창당할 때 ‘돈에 깨끗한 정당’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던 공명당 본부에도 항의 전화가 쏟아졌다.
그 이후로 자민-공명 연합은 주요 선거에서 3연패했다.
특히 지난해 중의원 선거에서 공명당 의석수는 32석에서 24석으로 8석이나 줄어 당 지도부가 충격에 빠졌다.
윈윈이었던 두 당의 관계가 어느새 자민당이 공명당의 발목을 잡는 관계로 바뀐 것이다.
▷철옹성 같던 자민-공명 연합이 무너지면서 일본 정치권에선 정권 교체 가능성을 거론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이 공명당과 손잡고 다른 야당을 끌어들여 ‘비자민 연립정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야당 간 이념 스펙트럼이 넓긴 하지만 1993년 8개 당파가 손잡고 호소카와 모리히로 전 총리를, 이듬해 5개 당파가 연합해 하타 쓰토무 전 총리를 선출한 전례를 보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자민당은 조속히 새 연정 파트너를 찾아 정권을 유지하겠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연패를 거듭하면서도 정치자금 스캔들에서 못 헤어나오는 자민당 손을 잡을 야당이 있을지 의문이다.
‘첫 여성 총리’를 꿈꿨던 다카이치 사나에 자민당 총재는 취임 6일 만에 기자회견에서 “총재직을 유지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는 처지가 됐다.
26년 만에 나막신에서 녹아내린 눈이 일본 정치 지형을 흔드는 대형 눈사태를 유발할지, 주목되는 순간이다.
교토 우동집에서 실감한 글로벌 플랫폼의 힘
'구글맵
여행' 보편화된 일본
외국인이 구석진 식당까지 누벼
한국은 여전히 '지도 반출' 논란
디지털 시대 또 다른 쇄국 아닌지
/채민기 기자
추석 연휴에 다녀온 일본의 옛
수도는 듣던 대로 오버투어리즘(과잉 관광)의 현장이었다.
국제 뉴스에서 교토(京都)는 파리·로마 등과 함께 버거울 만큼 여행객이 몰리는 도시로 자주 언급된다.
과연 이름난 관광지마다 인산인해였다.
긴 연휴를 맞은 한국·중국 관광객이 대부분일 줄 알았는데, 어딜 가나 그 못지않게 서양 사람이 많았다.
저녁을 먹으러 간 우동집에선 우리 가족을 제외한 손님 여남은 명이 모두 서양인이었다.
그들에게 일본은 방문객 수 1위인 한국(2024년·882만명)에서 느끼는 것보다 훨씬 먼 나라일 텐데, 주택가 골목의
작은 식당까지 어떻게 알고 찾아왔을지 궁금했다.
앞서 가본 식당들을 떠올리며 내린
결론은 구글맵이었다.
서구권 관광객을 비롯해 외국인이 많은 가게들은 구글맵 친화적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평점이 높고 리뷰와 사진이 많았다.
메뉴, 가격, 영업시간을 미리 확인하고 자세한 길 안내까지 받을 수 있으니 위치도 언어도 문제 될 게 없다.
갈수록 중요해지는 위치 정보의 가치를 그곳에서 실감했다.
식당만이 아니었다.
서울역보다 몇 배는 복잡한 교토역에서 길을 잃었을 때도, 버스를 잘못 탔다는 걸 깨닫고 이름 모를 동네에서 황급히 내렸을 때도 가장 먼저 구글맵을 켰다.
버스·열차의 발착(發着)
시각과 탑승 위치 정보 등이 그 안에 다 있었다.
한국은 어떤가. 지난해 한국과
일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각각 1637만명, 3687만명이었다.
같은 기간 한국이 약 100억달러(14조2000억원)의 여행 수지 적자를 기록하는 동안 일본은 6조6000억엔(약 61조3700억원) 흑자를 봤다.
한국은 일본에 비해 외국인의 여행 난도가 높은 나라로 평가받는다.
구글맵이 사실상 무용지물이라는 점이 가장 대표적인 장벽으로 꼽힌다.
구글은 한국에서도 외국처럼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고정밀 지도가 필요하다며 거듭 데이터 반출을 요청했다.
정부는 주요 군사 시설 노출 우려 등을 이유로 불허해 오다 현재는 결정을 유보한 상태다.
국내 IT 업계에서는 구글이 서버를 한국에 두면 고정밀 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는데도 세금과 규제 때문에 투자를 꺼리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안보는 무엇보다 중요하고, 외국
기업의 요구를 무작정 들어줄 이유도 없다.
그러나 구글맵이 제대로 작동하는 나라들도 비슷한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구글이 우리에게만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이라면, 그 이유는 무엇이며 정부와 업계의 우려를 불식하고 서비스를 가능하게 할 방법은 없는지 검토했으면 한다.
구글이 예뻐서가 아니라 한국이 세계의 흐름에서 동떨어진 갈라파고스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불평등 조약’을 요구하는 외국 기업의 행태에 분개하는 데서 끝난다면 외국인들은 계속 먹통이 된 구글맵을 들여다보며 한국의 거리를 헤매야 할 것이다.
니조 성 어전에는 이 그림을 참고해 당시 상황을 인형으로 재현한 전시물이 설치돼 있다.
/위키피디아
이번 여행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은
가장 유명한 금각사·청수사가 아니라 니조 성이었다.
그곳의 어전(御殿)에는 1867년 10월 마지막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영주들을 모아놓고 대정봉환(大政奉還·국가 통치권을 천황에게 반납)의 뜻을 밝힌 사건이 등신대의 인형으로 재현돼 있었다.
요시노부는 메이지 천황에게 올린 상소문에서 정권을 반납하는 이유의 하나로 “요즘은 외국과의 교류가 활발해져 권력을 조정에 하나로 모으지 않으면 나라의 근본이 서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들었다.
일본이 이듬해 메이지 유신을 거쳐
세계와 교류를 넓히는 동안 조선은 전국에 척화비를 세웠다.
15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여전히 ‘디지털 쇄국’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니조 성의 정교한 인형 앞에서 한동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재명式 낚시법'의 구멍
미국·중국
관계
'同時' 아니라
'先後' 정해 도모해야
'民主'만 강조하고
'代議' '自由' 외면하면
북한과 무슨 차이 있겠는가
강천석 기자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은 영리한 정치인이다.
미련했던 전임자(前任者) 덕분에 더 영리하게 비치는지 모른다.
영리한 정치인은 낚싯바늘 하나로 두 마리 고기를 낚으려고 한다.
이런 낚시법은 동맹 간 외교 문제에서부터 검찰 없애기, 법원 흔들기, 주가(株價) 띄우기, 기업 옥죄기 등등의 내정(內政) 문제까지 일관(一貫)됐다.
외교에선 ‘실용 외교’라고 부르고, 국내 정치에선 ‘실용 정치’라고 한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가 헌법·법률에
아랑곳하지 않고 불도저로 검찰을 허물고, 경찰 산하 각종 수사 기관을 신축(新築)·증축(增築)하자 대통령이 점잖게 나섰다.
‘국민 편익(便益)을 중요시하면서 신중하게 접근하라.’ ‘그래도 대통령은 (정청래보다) 낫다’고들 했다.
그러나 여당 대표의 막무가내는 더 심해졌고 결국 여당 뜻대로 됐다.
여당 대표가 대통령을 깔아뭉갤
수 있는 이유는 두 가지 중 하나다.
첫째는 대통령이 말만 그렇게 하지 속뜻은 나와 같다고 확신하는 경우다.
다른 하나는 대표가 자기 정치 기반인 개딸 지지를 믿고 정말 대통령을 우습게 봤을 때다.
불과 1년 전 국회의원 공천에서 ‘비명(非明)파’를 전원 횡사(橫死)시킨 대통령이 이걸 용납할 리 없다.
결국 ‘그래도 대통령은 낫다’던 사람들은 미련을 버렸고 대통령 지지율은 하락(下落)했다.
‘추미애 법사위(法司委)’는 온갖
신(新)기록, 진(珍)기록을 수립하며 ‘여의도 동물원’ 신세가 됐다.
추 위원장은 야당이 자기 당 간사를 뽑겠다는 것까지 표결로 가로막았다.
과거 법사위는 ‘원내 상원(上院)’으로 불렸다.
법과 관례와 전례(前例)를 중시한 위원회였다.
정청래 대표는 추 위원장과 함께
대법원장을 청문회·국정감사에 불러내려고 별의별 수단과 온갖 언어 폭력을 동원했다.
헌법에 없는 재판 ‘4심제(審制)’까지 들먹이며 위협했다.
이재명 대통령 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有罪) 취지로 판결한 대법원장에게 앙심을 품을 수는 있다.
그렇다고 앙심 때문에 헌법의 3권분립 원칙을 유린한다면 의원 배지를 단 폭도(暴徒)와 뭐가 다른가. 대통령과 여당이 내란 척결 목청을 높일수록 밖에선 한국이 내란 상태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고 본다.
대통령은 이 장면에서 헌법 강의를
했다.
‘민주주의 체제에선 국민이 최고 권력을 갖고, 그다음이 선출된 권력, 그 아래 임명된 권력 순(順)이다.
’ 위험한 생각이다.
북한 국명(國名)은 “조선‘사회주의’인민공화국”이 아니다.
그들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한다.
한국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의 ‘민주’에는 ‘대의(代議)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란 두 가지 뜻이 담겨 있다.
‘대의’와 ‘자유’가 증발하면 3권분립이 무너지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경계선도 허물어진다.
트럼프 등장 이후 한국은 안보와
경제가 동시에 위협받는 나라로 변했다.
김정은이 시진핑·푸틴과 전체주의 국가 단합 대회를 여는데 한미 동맹에선 톱니 망가지는 소리가 났다.
트럼프 취임과 이재명 대통령 취임이 거의 맞물려 있으니 현재 양국 관계에는 ‘트럼프 요인(要因)’과 ‘이재명 요인’이 동시에 작용한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트럼프 요인은 다 알고 있다.
그럼 이재명 요인은 무엇일까.
왜 트럼프는 APEC 참석 순방(巡訪)에서 한국은 아침에 왔다가 그날 밤 떠나는 ‘건성 방문’에 그치고, 일본엔 2박 3일 일정을 잡았을까. 트럼프의 일본 일정은 전(前) 총리는 떠나고 새 총리는 뽑히지 않은 일본 정치 공백(空白) 상태에서 결정됐다.
관세 협상도 경제 규모와 외환 보유고를 감안하면 EU·일본에 비해 유독 한국에게 가혹하게 대하고 있다.
외환위기 재발(再發)을 막기 위한 한미 통화 스와프 협정 제의조차 그렇게 박절(迫切)하게 뿌리치는 것일까.
수수께끼는 낚싯바늘 하나로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대국(大國)을 낚겠다는 ‘이재명식’ 강대국 외교 전략과 일정한 인과(因果) 관계가 있다.
미국은 한국 안보·경제의 사활(死活)이 걸린 동맹국이고, 중국은 미래와 관련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나라다.
이런 두 나라를 상대하는 강대국 외교도 ‘동시(同時)’가 아니라 ‘선후(先後)’가 있어야 한다.
미국과 관계를 먼저 다지고 어렵더라도 그 바탕에서 중국과 관계를 도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용 외교’는 ‘고립(孤立) 외교’가 된다.
이재명 정부 내부와 민주당에는
‘나라가 독립한 후 독립운동한 사람’과 ‘나라가 민주화된 뒤 민주화운동을 한 사람’이 득실댄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나라와 국민을 지키겠다면 이들과 거리를 두는 결단·지혜·용기가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