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고, 잘 웃고, 좋은 죽음과 만나자"

길태영 중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태어나면 죽는 것이 숙명죽음에 대한 대비는 소홀미래 위한 준비교육 권유

길태영 중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내일이 지나고 모레가 되면 맛있는 명절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다.
그리고 엄마가 새로 장만해 준 꼬까옷을 입고, 멀리서 명절을 쇠러 오는 얼굴 뽀얀 도시 친척들과도 만날 수 있다.
시골 소녀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간질간질해져, 잠자리에 누워서도 몇 번이나 설렘과 기다림을 반복했다.
그런데 명절을 이틀 앞둔 날, 5학년 2반 길 아무개! 소사 아저씨가 내 이름을 불렀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전해 듣고, 황급히 집에 와보니 어른들이 초상 치를 준비에 몹시 분주했다.
머릿속은 하얘지고, 크고 뾰족한 돌덩이가 자꾸만 어린 마음을 내려치는 고통스런 경험이었다.
할아버지의 죽음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서 윗목 병풍 뒤에 모셔둔 시신을 여러 번 들여다보았다.
할아버지 생전에 필자는 딸 여섯에 둘째 딸이었다.
아버지는 장남이었고, 할머니의 시집살이는 거친 파도보다 몇 배는 사나웠다.
심지어 엄마가 넷째 여동생을 낳자마자 부엌으로 들어가 밥을 지어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대문 앞에 딸을 상징하는 금줄이 걸리면 할머니의 노여움은 극에 달했고,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는 엄마가 몸조리할 수 있도록 이것저것 챙겨주시는가 하면, 저녁때마다 할머니와 아버지의 언성이 잦아지는 집안에서 나를 해방시켜준 장본인이었다.
"아가야. 할아버지 지게 타고 삼장 밭에 놀러 가자" 그때 할아버지의 무등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피난처였다.
그런 할아버지가 영영 볼 수 없는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그것도 명절을 앞두고 말이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시신을 염습(殮襲)을 하는 절차를 손수 진행했다.
우리에게도 염습을 하는 과정마다 할아버지 얼굴을 마지막으로 뵙는 것이니, 온 마음을 다해 인사를 나누도록 당부했다.
삼일장을 치르는 절차에 따라 할아버지의 상여가 동네를 나섰다.
병치레하던 뒷집 할아버지까지 나와서 이승과 저승 간 고마운 인사를 나누었다.
선산에 할아버지를 모시고 모든 장례절차를 끝낸 다음 날, 아버지는 리어카에 설탕을 싣고 장례를 도와준 마을 사람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다녔다.
이처럼 나의 어린 시절은 아버지를 통해 인간, 탄생, 사람, 만남, 존재, 삶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솔직하게 표현되고 겸손히 포용하며, 더할 나위 없는 경험들이 쌓여가는 배움의 장이었다.
특히 죽음이라는 넓고 깊은 신비 앞에서 겸허해지는 법을 배웠고, 삶에 대한 깊은 영감을 깨달았다.
할아버지를 통해서 그리고 아버지를 통해서 '죽음과 죽어감'을 이해할 수 있었고, 인생 최고의 죽음 공부를 자연스럽게 이어받은 것이다.
이러한 영향으로 필자는 사회복지학박사이자, 죽음학자가 되었다.
독일 출신의 신부이자, 일본 죠치대학 교수를 역임한 알퐁스 데겐 박사는 필자의 스승이자 멘토이다.
그는 죽음의 철학과 같은 진지한 영역을 연구하면서 정반대인 유머의 철학을 연구하였고, 우리가 보다 인간답게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유머'가 필수임을 강조했다.
즉 삶과 죽음의 묘약인 '유머'는 삶을 위협하는 죽음의 공포, 분노와 고뇌에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고, 밝고 따듯한 웃음을 탄생시킨다는 것이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존재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와 선배들을 통해 첫 생일을 축복하는 방법을 배운다.
그리고 70세 고희연(古稀宴), 80세 산수연(傘壽宴)을 축하할 때도 다양한 행위와 격식을 갖추기 위해 지적 접근을 시도한다.
그런데 인생 최대의 시련인 '죽음'에 대해서는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로 금기시하는 태도로는 남은 삶에 대해 희망을 기대하기란 어렵지 않을까? 인간의 행복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는 없지만, 한 인간으로서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아름다운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이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인간다운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오늘부터라도 지역사회복지관, 평생교육기관, 대학 등에서 제공하는 '죽음 준비교육'을 평생의 중요한 과제로 삼기를 권유한다.
길태영 중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이야기가 수출이 되는 시대

케이팝 데몬 헌터스 세계적 화제한국 국가 이미지 관심으로 확산문화 콘텐츠, 전략산업 육성해야

이서영 목원대 글로벌비즈니스학과 교수

이서영 목원대 글로벌비즈니스학과 교수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미국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 이른바 '케데헌'은 공개 직후 전 세계적 관심을 끌었다.
최근에는 제83회 골든 글로브 어워즈에서 애니메이션 작품상과 주제가상을 수상하고, 미국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즈에서도 주요 부문을 석권하며 국제 무대에서 작품성과 흥행성을 동시에 인정받았다.
한 편의 콘텐츠가 국경을 넘어 성과로 이어지는 장면은 지금 한국이 세계 시장에서 무엇을 파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실제로 케데헌 공개 이후 '한국(Korea)'과 '한국 음식(Korean Food)'에 대한 글로벌 검색량이 크게 늘어났다.
콘텐츠는 단순한 시청을 넘어 한국의 국가 이미지에 대한 관심으로 확산됐다.
문화적 호기심은 소비와 방문 의향으로 이어지고, 국가 브랜드는 콘텐츠를 매개로 다시 조명된다.
콘텐츠의 영향력은 산업 현장에서 구체적인 움직임으로 나타나고 있다.
작품 속 K-푸드는 해외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식품 기업들은 이를 활용한 협업과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화장품과 관광, 패션, 전자제품 업계 역시 '케데헌 효과'를 계기로 시장 확대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이처럼 콘텐츠의 성공은 소비 심리와 투자 기대를 높이며 시장 확대와 브랜드 가치 상승으로 이어진다.
이 흐름은 낯설지 않다.
우리는 이미 K-POP과 K-드라마를 통해 비슷한 경험을 해왔다.
음악과 영상 콘텐츠는 공연과 플랫폼, 저작권, 팬덤을 아우르는 산업 생태계로 성장했고, 세계 시장에서 반복적으로 거래되는 수출 분야가 됐다.
케데헌은 그 연장선 위에 선 또 하나의 사례다.
문화 콘텐츠가 세계와 연결되는 방식이 이전과 다른 차원에 들어섰음을 보여준다.
무역의 모습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 한국의 수출은 자동차와 전자제품 같은 유형 상품이 중심이었다.
이제는 이야기와 이미지, 라이프스타일이 먼저 세계인의 관심을 끌고, 그 관심이 음식과 화장품, 관광, 공연, 플랫폼 구독으로 이어진다.
무형의 콘텐츠가 유형의 상품과 서비스를 견인하는 구조다.
수출의 출발점이 공장이 아니라 이야기와 세계관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산업 다변화를 넘어 한국 경제의 성장 방식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내수 시장의 규모가 제한적인 한국 경제에서 무형자산 기반 산업은 규모의 제약을 넘어설 수 있는 전략적 영역이다.
성공한 지식재산은 공연과 굿즈, 2차 콘텐츠, 라이선스, 관광 상품 등으로 확장되며 지속적인 수익을 창출한다.
콘텐츠는 국경을 넘어 빠르게 확산되고 연관 산업을 동반 성장시키는 특성을 지닌다.
제조업이 가격 경쟁력과 생산 능력으로 시장을 넓혀왔다면, K-콘텐츠는 문화적 공감과 감성적 연결을 통해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낸다.
물론 이러한 성과가 자동으로 경제적 이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K-POP의 성장 과정에서도 글로벌 플랫폼과 유통망 중심 구조가 확대되면서 수익 배분과 지식재산 관리에 대한 과제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세계적 흥행에도 불구하고 그 성과가 국내 산업 전반으로 충분히 연결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케데헌의 성공 역시 같은 전환점에 서 있다.
이를 일시적 흥행에 그칠 것인지, 지식재산 축적과 연관 산업 확장으로 이어갈 것인지에 따라 경제적 의미는 달라질 수 있다.
문화적 성취를 산업적 성과로 연결하려면 지식재산 소유와 수익 구조를 정교하게 설계하고, 연관 산업 확장을 뒷받침할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결국 질문은 분명하다.
케데헌의 성과를 일시적 문화 뉴스로 소비하고 끝낼 것인가, 아니면 한국 무역 구조 변화의 신호로 읽어낼 것인가. 이제 무역은 물건만을 사고파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이라는 이미지와 경험, 라이프스타일까지 거래되는 시대다.
케데헌은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문화 콘텐츠를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고 지식재산 기반 수출 구조를 정교화할 때, 한국 경제의 성장 전략도 더 분명해질 것이다.
이서영 목원대 글로벌비즈니스학과 교수


오가노이드(Organoid) 기술을 만나 정밀의학으로 진화하다

김경호 한의기술응용센터 책임연구원

김경호 한의기술응용센터 책임연구원의학의 역사는 늘 "정말 효과가 있을까?"라는 질문에 답해온 여정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한의학은 사람의 몸을 관찰하고 경험을 쌓으며 치료법을 발전시켜 왔고, 현대 의학은 과학기술을 통해 그 작용 원리를 밝혀왔다.
그리고 지금, 이 두 흐름이 만나 의학의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 중심에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오가노이드 기술이다.
오가노이드는 사람의 세포를 이용해 실제 장기와 비슷한 구조와 기능을 재현한 미니 장기이다.
작은 칩 위에서 장, 간, 피부 같은 조직이 실제와 유사하게 반응하며, 약물이나 치료 물질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미리 살펴볼 수 있다.
그동안 새로운 치료법의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동물실험에 의존해 왔지만, 동물과 사람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이러한 한계를 넘어 오가노이드는 앞으로 사람의 몸에 훨씬 더 가까운 실험 모델로 발전해 나갈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특히 아토피 피부염 치료 분야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아토피는 많은 사람들이 겪는 질환이지만, 단순히 피부에 바르는 연고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도 '장이 건강해야 피부가 맑아진다', '속이 편해야 피부 트러블이 줄어든다'는 말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이는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생활 속 상식이자, 한의학의 핵심 개념과도 맞닿아 있다.
한의학에서는 인체를 하나의 유기적인 흐름으로 바라보며, 그 중심에 장부론이라는 체계적인 이론을 두고 있다.
장부론에서는 장과 피부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고 보며, 소화 기능과 면역 균형이 무너지면 그 영향이 피부로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아토피를 단순한 피부 질환이 아니라, 몸 안의 균형이 깨진 결과로 이해하는 시각이다.
그래서 한의학에서는 피부 치료와 함께 장 기능을 회복시키는 처방을 병행해 왔다.
과거에는 이러한 접근이 경험과 통찰에 기반한 설명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이제 오가노이드 기술을 통해 이러한 장·피부 연결 개념을 보다 구체적이고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다.
장 오가노이드와 피부 오가노이드를 함께 활용하면, 장 환경의 변화가 피부 상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이는 한의학의 장부론이 현대 과학의 언어로 새롭게 해석되는 과정이자, 미래 치료 전략의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오가노이드는 한의학이 지향해 온 환자 맞춤 치료 개념을 한층 더 정교하게 발전시킬 가능성을 보여준다.
한의학의 강점은 모든 환자에게 똑같은 약을 쓰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체질과 상태, 증상의 원인을 고려해 가장 알맞은 한약을 찾아 적시에 사용하는데 있다.
다시 말해, 최고의 약을 찾기보다는 이 환자에게 지금 가장 적합한 처방을 찾는 것이 한의학의 본질이라 할 수 있다.
오가노이드는 이러한 전통적 치료 철학을 현대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
환자의 세포로 만든 미니 장기에 다양한 한약 조합을 미리 적용해 본다면, 어떤 처방이 가장 좋은 반응을 보이는지, 부작용 가능성은 없는지를 사전에 예측할 수 있다.
이는 경험과 직관에 의존하던 맞춤 치료를, 과학적 근거 위에서 더 정밀하게 구현하는 미래로 이어질 것이다.
일각에서는 전통의학이 첨단 기술과 결합하면 본래의 색깔을 잃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도 한다.
그러나 전통은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맞게 살아 움직일 때 비로소 진정한 가치를 발휘한다.
스마트폰이 우리의 일상을 바꾼 것처럼, 오가노이드는 한의학이 환자와 소통하는 방식, 치료를 설계하는 방식을 새롭게 바꾸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이제 한의학은 오래된 의학이라는 이미지를 넘어, 가장 오래된 지혜를 가장 현대적인 방법으로 전달하는 의학으로 진화하고 있다.
오가노이드라는 과학의 렌즈를 통해 더 투명하게 이해되고, 첨단 기술을 통해 더 안전하고 정밀해지는 한의학, 우리가 마주할 미래의 한의학은, 생각보다 훨씬 가깝고, 따뜻하며, 일상에 가까운 모습일 것이다.
김경호 한의기술응용센터 책임연구원


빠른 AI, 느린 경제정책[마은성의 경제 돋보기]

AI 산업 뒷받침하기 위해선 고용·생산성 정량화 필요해재정 전망에 AI시나리오 포함하고, 변화할 고용·조세 데이터 마련해야

마은성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마은성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요즘 한국의 AI 풍경은 ‘속도’ 그 자체다.
민간에서는 반도체·클라우드·모델 경쟁이 숨 가쁘게 전개되고, 로봇은 더 이상 전시장 소품이 아니라 공장과 서비스 현장으로 빠르게 들어오고 있다.
이에 발맞춘 정부의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대대적 투자도 환영할 만하다.
정부는 2026년 예산 계획에서 AI 분야에 10조1000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고, 고성능 GPU 1만5000장 확보 같은 인프라 확충도 포함했다.
2026년 정부 전체 R&D 예산 역시 35조5000억원(전년 대비 19.9% 증가)으로 확정됐다.
문제는 AI 투자는 빠른데 이를 뒷받침할 경제정책은 아직 느리다는 데 있다.
기술의 가속에 비해 AI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정량적으로 측정하고 정책으로 번역하는 체계가 뒤따르지 못한다.
우리는 아직 AI가 성장잠재력을 얼마나 끌어올릴지, 고용과 임금 구조를 어떻게 바꿀지, 분배를 어디에서 악화(혹은 개선)시킬지, 그리고 세수·사회보험·국가채무 경로에 어떤 영향을 줄지에 대해 ‘정책에 바로 쓸 수 있는’ 근거를 충분히 축적하지 못했다.
결국 기술은 ‘가능성’으로 전진하는데 경제정책은 ‘근거’와 ‘합의’가 부족해 뒤처지는 구조가 된다.
더구나 초저출산·초고령화로 노동력 부족과 재정 부담이 동시에 커지는 한국에서는 작은 정책 지체도 더 큰 비용으로 이어질 수 있어 더욱 정교하고 신속한 정책 설계가 절실하다.
해외는 이 간극을 오래전부터 메우려 해왔다.
대런 아세모글루 등을 비롯한 경제학자들은 미국과 유럽을 대상으로 로봇과 루틴 편향적 기술 진보가 고용구조, 임금 및 생산성에 미치는 영향을 정량적으로 측정해 왔고, 더 중요한 점은 이런 연구가 학술적으로만 머물지 않고 정책으로 ‘번역’되는 경로가 제도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AI 도입이 고용과 임금에 미치는 영향을 통계·행정자료로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노동전환 지원을 체계화하려는 방향을 공식화했다.
영국은 AI 확산으로 벌어질 수 있는 역량 격차를 근거 검토로 정리한 뒤 전 국민 업스킬 프로그램과 역량 기준 마련으로 이어가고 있다.
독일은 기술 대체 위험이 큰 직무의 재직자가 더 쉽게 직업훈련 지원을 받도록 제도를 설계해 충격 전망을 예산 배분의 규칙으로 연결했다.
물론 한국도 움직이고 있다.
정부는 AI 대응 일자리정책 로드맵 추진과 AI 인재양성 확대 등 여러 대응을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정책 설계를 떠받칠 정량적 측정 체계가 약하다.
정책은 ‘좋은 의도’만으로는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AI로 인해 무엇이 얼마나 늘고 무엇이 얼마나 줄며, 그 결과 누가 이익을 보고 누가 비용을 치르는지를 숫자로 확인할 때에야 정책의 우선순위와 예산 배분이 정교해지고 실행 가능한 대안이 나온다.
즉 정량화가 선행돼야 정책이 효율적이 되고 그래야 정책이 실제로 나온다.
이를 위해 첫째, 중기 거시 전망과 재정 전망에 AI 시나리오를 명시적으로 포함해야 한다.
둘째, AI로 대체·보완될 영역을 산업 단위가 아니라 업무 단위까지 식별하고 충격을 흡수할 고용안전망과 이동을 촉진할 재교육 인프라를 패키지로 설계해야 한다.
셋째, AI가 세수 기반과 사회보험 기여 기반을 어떻게 바꾸는지부터 계산해 조세 및 재정의 중장기 추계를 업데이트해야 한다.
결국 측정이 앞서야 정책도 속도를 낼 수 있다.
속도 경쟁의 승부는 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을 사회가 감당할 수 있게 만드는 정책 역량에서 갈린다.
마은성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아틀라스는 로봇이 아니라 질문이다[김덕호의 갈등사회]

최은영 기자

최은영 기자

김덕호 성균관대 교수 기고사무실에서 공장까지 AI 전환은 피할 수 없는 파도노동의 전환만이 유일한 해법갈등이냐, 전환이냐 택할 때[김덕호 성균관대 교수]로봇이 공장을 걸어 다닌다.
사람처럼 걷고 손가락으로 집고 생산라인을 오간다.
인간보다 빠르게 학습한다.
공상과학 영화가 아니다.
이미 예정된 현실이다.
현대차가 선보인 인간형 로봇 ‘아틀라스’ 이야기다.

아틀라스는 단순 작업에 먼저 투입된 뒤 머지않아 정밀 공정까지 맡게 된다.
신입사원이 수습을 거쳐 핵심 업무를 맡는 경로와 닮아 있다.
기술은 이미 배치 단계로 들어섰다.
문제는 속도다.
인공지능(AI) 전환은 인간의 적응 속도를 앞지르기 시작했다.
생성형 AI가 등장한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피지컬 AI가 현실로 들어왔다.
이 변화 앞에서 질문은 단순하지 않다.
일자리를 대체하느냐가 아니다.
전환의 비용을 누가 감당할 것인가. 생산성이 커질수록 전환의 고통도 커진다.
더 근본적인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경제의 보상 구조가 노동에서 자본으로 이동하고 있다.
기업의 이익은 빠르게 늘어나지만 그것이 임금으로 이어지는 속도는 점점 늦어지고 있다.
 AI는 단순히 일자리를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다.
노동이 가져가던 보상을 자본으로 이동시킨다.
충격은 기술이 아니라 고용 구조에서 시작되고 있다.
이제 도구가 아니라 에이전트의 시대다.
계약을 검토하고 회계를 정리하는 AI 직원이 등장하며 일자리는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
기업이 성장하면 고용이 늘어난다는 오랜 공식이 흔들리고 있다.
기업은 사람 대신 AI 구독료를 지불하기 시작했다.
기업이 사람 대신 AI를 고용하기 시작하는 순간 노동시장의 규칙은 근본적으로 바뀐다.
 AI는 노동시장의 가장 약한 고리를 향하고 있다.
청년층이다.
생산성이 급등하며 경력직 한 명이 과거 여러 명의 일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신입 채용이 빠르게 줄어든다.
기업의 선택은 합리적이다.
그러나 그 합리성이 모일수록 사회는 비합리로 기운다.
첫 일자리가 사라지는 사회는 계층 이동이 멈춘 사회다.
노동시장에 들어가지 못한 청년에게 공정은 현실이 될 수 없다.
AI는 사무실을 넘어 공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아틀라스 한 대는 사실상 세 명의 교대 근무를 대체한다.
노동조합의 위기의식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다.
 AI는 글을 쓰는 수준을 넘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중요한 것은 로봇 도입을 둘러싼 찬반 논쟁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직무 전환 시나리오다.
누가 이동하고 어떤 교육과 보상을 받을 것인지에 대한 설계다.
설계 없는 전환은 사회적 비용을 키운다.
기술 도입을 둘러싼 갈등이 길어질수록 기업의 선택지는 단순해진다.
투자를 줄이거나 생산 거점을 옮기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탈한국을 의미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지키려 했던 기존 일자리뿐 아니라 미래의 일자리 기회까지 사라진다.
세계는 이미 인력 재편 국면에 들어섰다.
미국 기업들은 반복 업무 인력을 줄이는 동시에 AI와 로봇 분야 인재를 공격적으로 확보하고 있다.
해고 소식 속에서도 주가가 상승하는 이유는 시장이 이를 위기가 아니라 효율화 과정으로 보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 기업들은 해고 대신 채용을 멈춘다.
겉으로는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더 가혹하다.
노동시장 밖에 서 있는 청년들에게는 들어갈 문 자체가 닫힌다.
조용하지만 잔인한 구조조정이다.
한국 사회는 기술 속도에 비해 제도 준비가 느리다.
여전히 일자리를 보호할 것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에 머물러 있다.
 AI 시대의 경쟁력은 보호가 아니라 이동 능력에서 나온다.
감소할 일자리 숫자가 아니라 사람들이 새 직무로 이동할 경로를 설계해야 한다.
AI 전환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해야 할 일은 하나다.
파도를 막는 것이 아니라 누가 구명조끼를 입고 누가 배를 저을 것인지 정하는 일이다.
노동시장을 보다 유연하게 설계해 이동을 촉진하고 안전망을 통해 전환을 지원해야 한다.
결국 국가 경쟁력은 전환 능력에서 갈린다.
아틀라스는 로봇이 아니라 질문이다.
그 질문 앞에서 갈등할 것인가, 전환할 것인가. 사다리를 잃어버린 사회에 미래는 없다.
전환을 설계한 사회만이 미래를 갖는다.

JeoN -

우리의 존재 자체가 이미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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