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6월 9일 서울 강서구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출국 전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photo 뉴스1
지난 6월 5일 오후, 엔비디아의 수장 젠슨 황이 전세기를 타고 우리나라에 입국한 직후 가장 먼저 향한 곳은 기업 회의실이 아니라 홍대 인근의 PC방이었다.
그곳에서 세계적인 프로게이머와 팬들을 열광하게 했고, 곧이어 마포의 평범한 고깃집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재계 총수들과 삼겹살에 소맥을 기울였다.
그의 행보는 파격 그 자체였다.
국민적 인기를 끄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특유의 친화력을 보여주는가 하면, 관중이
들어찬 야구장에서 엔비디아 창립 연도를 상징하는 등번호를 달고 마운드에 올라 시구에 나섰다.
게임사 행사와 인터넷 라이브 방송에 깜짝 등장해 한국 게이머들과의 끈끈한 유대감을 뽐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 화려하고 소탈한 대중적 행보의 이면에서는 세계 경제의 지형을 뒤흔들 치열한 비즈니스 릴레이가 숨 막히게 전개되고 있었다.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그는 SK, 삼성, LG, 네이버, 현대자동차의 최고경영진과 연이어 만나며
차세대 AI와 로보틱스, 메모리 반도체 공급망을 조율했다.
부총리, 대학, 스타트업까지 빈틈없이 아우른 그의 광폭 행보는, 한국이 글로벌 AI 생태계에서 차지하는 압도적 위상을 전 세계에 과시한 지정학적 쇼케이스였다.
메모리 패권의 재확인, AI시대의 심장을 쥔 한국
이번 방한에서 주요 의제는 단연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공급망의 확고한 구축이었다.
AI 연산을 위한 그래픽처리장치(GPU)가 막강한 두뇌라면, 데이터를 끊임없이 실어 나르는 HBM은 그 두뇌에 피를 공급하는 심장과도 같다.
현재 이 심장을 만들어 내는 기술력에 있어서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압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젠슨 황은 SK그룹 최태원
회장과 만남을 통해 SK하이닉스가 주도하고 있는 HBM 로드맵을 꼼꼼히 점검하며, 장기적인 공급 동맹을 더욱 단단히 구축했다.
동시에 그는 출국 직전 삼성전자 최고위층과 비공개 회동을 하며 절묘한 균형감각을 발휘했다.
삼성전자와는 차세대 HBM 공급 및 파운드리 협력을 논의했다.
이는 철저히 계산된 실리콘밸리 황제의 용인술이다.
전 세계 칩 수요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는 엔비디아
입장에서, 공급망의 다변화와 안정화는 기업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
젠슨 황은 SK와 삼성이라는 두 거인 사이에서 절묘한 줄타기를 하며, 결과적으로 한국 반도체 산업을 엔비디아의 장기적 비전 속에 깊숙이 편입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독점적 파트너십의 이면에는 기술적 공생을 넘어선 경제적 지정학이 작동하고 있다.
젠슨 황의 전략은 역설적이게도 한국 반도체 양강이 스스로 키워온 취약성, 즉 엔비디아라는 단일 수요처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정확히 겨냥한다.
그는
SK하이닉스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삼성전자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삼성의 추격을 독려하기 위해 차세대 칩 협력이라는 달콤한 미끼를 던진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정밀한 AI 심장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그 심장이 박동할 최적의 타이밍과 혈류량은 결국 가죽점퍼를 입은 황제의 손끝에서 결정되는 구조다.
결국 이 동맹은 한국 반도체 산업에 막대한 부를 안겨주는 황금마차인 동시에, 엔비디아가 설계한 아키텍처의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게 만드는 유리감옥이 될 수 있다.
메모리 패권의 재확인이 주는 짜릿한 승리감 뒤에서, 우리가 자립적인 AI 주권을 처절하게 고민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이 지금 선 곳은 메모리라는 한 산의 봉우리일 뿐, AI라는 거대한 산맥의 정점이 아니다.
한곳에 머무는 순간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안주의 시작이다.
황금마차에 올라탄 자는 그 마차가 어디로 향하는지 묻는 것을 잊기 쉽다.
짜릿한 승리감은 잠시
누리되, 그것을 종착지가 아닌 출발선으로 읽어내는 냉정함이 필요하다.
메모리 패권은 한국이 받아든 상장이 아니라, 더 높은 곳으로 오르기 위해 발을 디딜 디딤돌이어야 한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왼쪽 셋째)가 지난 6월 5일 서울 마포구 ‘T1 베이스 캠프’를 방문해 ‘페이커‘ 이상혁(왼쪽 넷째)을 비롯한 e스포츠 구단 T1의 리그 오브 레전드(LoL) 선수단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피지컬 AI의 시대, 현실세계를 품은 엔비디아
젠슨 황의 이번 방한에서 두드러진 또 하나의 중요한 축은 이른바 '피지컬 AI'다.
그동안 생성형 AI가 텍스트와 이미지 등의 콘텐츠를 만들어내며 디지털 공간 안에 머물렀다면, 이제 AI는 가전, 로봇, 자동차라는 육신을 입고 물리적
현실세계로 강림하고 있다.
젠슨 황은 이 거대한 전환의 최적 파트너로 한국의 제조업 역량에 주목했다.
그는 LG그룹 수뇌부와 만나 스마트홈 AI 에이전트부터 AI로 변화될 물류, 상업 공간, 모빌리티 전장 부품에 관해 논의했다.
또한 현대자동차그룹 경영진과의 회동에서는 자율주행과 스마트 팩토리, 모빌리티 플랫폼을 넘나드는 심도 있는 협력 방안이 논의됐다.
자동차가 '바퀴
달린 컴퓨터'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엔비디아의 컴퓨팅 파워와 현대차의 하드웨어 제조 역량은 완벽한 교집합을 이룬다.
흥미로운 점은 새만금과 같은 한국 내 특정 지역에 엔비디아의 데이터센터와 AI 팩토리를 설립할 가능성까지 타진되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는 잠실야구장에서 두산베어스 경기 시구를 하며 두산그룹과 로보틱스 분야에서의 끈끈한 협력을 재확인했다.
전통적 기계산업에서 첨단 협동로봇으로 체질을 개선하고 있는 두산,
자동차 제조의 혁신을 이끄는 현대차, 삶의 공간을 제어하는 LG의 인프라는 엔비디아가 구상하는 피지컬 AI 생태계를 현실에 구현할 강력한 테스트베드이자 양산 기지다.
이처럼 젠슨 황이 주목한 한국의 강점은 그저 개별 기기나 로봇을 잘 만드는 정도가 아니라, 도시적 규모의 모빌리티와 제조 인프라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종합적인 엔지니어링 역량에 있다.
가전제품부터 자동차, 협동로봇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엔비디아 플랫폼(칩과
소프트웨어)으로 제어되는 미래는 엔비디아가 한국 산업 전반의 운영체제로 자리 잡게 됨을 의미한다.
이는 한국 제조업에 비약적인 효율성을 선물하는 동시에, 독자적인 기술 진화를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울타리로 작용하게 된다.
젠슨 황이 제안한 협력의 본질은 하드웨어 제조라는 고되고 리스크가 큰 영역을 한국이 떠안는 고도의 위험 분산 전략이다.
엔비디아 플랫폼에 최적화된 하드웨어만을 양산하는 구조는, 자칫 우리 기업들을 소프트웨어적 능력 없이 육체만 비대해진 거인으로 만들 수 있다.
따라서 이는 우리에게
제조 경쟁력을 담보로 삼아 독자적 AI 주권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라는 엄중한 생존 과제를 던지고 있다.
게임과 K콘텐츠, 엔비디아의 마지막 퍼즐
젠슨 황이 방한 첫 일정으로 PC방을 선택하고 게임 행사에 등장한 것은 엔비디아의 핏줄이 게임 그래픽 처리 기술에서 시작되었음을 상기시키는 동시에, 차세대 게이밍 환경이 곧 AI 기술의 최전선임을 선언하는 행위였다.
크래프톤, 엔씨소프트 등 한국을 대표하는 게임사와의 릴레이 회동은 물리 시뮬레이션과 생성형 AI가 결합된 미래형 메타버스의 실험실이 게임산업 내에 존재함을 시사한다.
나아가 네이버와의 만남은 클라우드 및 소버린 AI(기술 독립성을 확보한 국산 AI 주권) 인프라에서의 협력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AI 데이터와 모델을 해외에 맡기지 않고
자국 내에서 운영하는 AI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전 세계적인 흐름 속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독자적인 검색 엔진과 클라우드 인프라를 지닌 네이버는 엔비디아에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다.
그런 의미에서 젠슨 황이 네이버 사옥에 방문해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약 5만8000명의 접속자와 소통한 것은 전략적인 접근이었다.
대중문화와 첨단 기술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그의 행보는 한국인들에게 엔비디아라는 막강한 기술 제국의 이미지를 친근하게 각인시켰다.
젠슨 황이
주목하는 것은 한국 특유의 역동적인 디지털 소비문화 그 자체다.
한국 게이머들과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은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동시에 새로운 기술을 가장 빠르게 흡수하는 혁신의 첨병들이다.
엔비디아가 그리는 AI의 미래는 단지 기업의 데이터센터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엔터테인먼트와 창작의 영역에서 실시간으로 소비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한국의 게임산업과 네이버가 구축한 독자적 클라우드 생태계는 탁월한 테스트베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기
적 인프라 위에 한국의 강력한 문화적 소프트파워가 결합될 때 AI는 비로소 대중의 삶 속으로 깊숙이 파고드는 폭발력을 얻게 된다.
이는 하드웨어 지배를 넘어 인간의 여가와 창조적 활동의 방식까지 엔비디아 생태계에 종속시키려는 젠슨 황의 전략이다.
그의 한국에 대한 애정 표현과 친근한 미소 이면에는 한국을 글로벌 AI 소비 지형을 완성할 가장 매력적인 문화적 전초기지로 삼겠다는 치밀한 야심이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은
AI 두뇌를 꿈꾸는가
젠슨 황이 나흘간의 숨 가쁜 일정을 마치고 전용기에 오르며 남긴 것은 프랜차이즈 치킨의 영수증이나 유쾌한 예능 프로그램의 녹화본만이 아니다.
그는 한국 경제에 차세대 AI 시대를 어떻게 주도할 것인지 묻는 묵직한 질문을 남겨두고 떠났다.
그의 방문은 한국이 처한 두 가지 다른 현실을 명확히 조명한다.
하나는 전 세계 AI 칩의 구동을
책임지는 메모리 반도체와 최고 수준의 제조 기술력을 지닌, 글로벌 AI 공급망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핵심 국가로서의 위상이다.
실리콘밸리 황제가 직접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한국의 기업인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동맹을 청하는 모습은 우리 산업의 저력을 방증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는 한국 경제가 엔비디아라는 거대 플랫폼 제국이 설계한 생태계에 종속될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우리가 생산하는 HBM과 로봇, 자동차가
결국 엔비디아의 GPU와 소프트웨어 플랫폼 아래에서만 가치를 발휘하는 '하드웨어 외주 기지'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고민이 필요하다.
젠슨 황의 방한은 화려한 축제였지만, 그 축제가 끝난 자리에 남은 것은 스스로 두뇌를 창조할 것인가, 아니면 두뇌의 뜻을 잘 보좌하는 훌륭한 신체로 남을 것인가에 대한 엄중한 질문이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독점적 AI 생태계의 일원이 된 것은 분명 기념비적인 도약이지만, 그것으로
만족하기엔 우리나라의 잠재력과 야망은 훨씬 원대하다.
이제는 AI 생태계의 일부를 넘어, 그 생태계 자체를 재정의하고 아우르는 새로운 문명의 중심축을 꿈꾸어야 할 시간이다.
2022년 11월 챗GPT가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경이로움에 사로잡혔다.
마치 처음 찾은 식당을 단골로 삼듯, 많은 이들이 처음 감탄했던 GPT 모델을
이후로도 별다른 의심 없이 사용해 왔다.
한때 이런 ‘모델 충성도’는 나름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익숙한 도구에 머무는 것이 생산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26년 현재 그 논리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AI 모델의 세계는 단일 강자가 군림하던 시기를 벗어나, 세력 균형이 시시각각 뒤바뀌는 춘추전국시대로 완전히 접어들었다.
지금 이 시대에 한 모델에만 안주하는 것은 미덕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비효율에 가깝다.
AI 춘추전국시대, 어떤 모델을 골라야 하는가
지금 우리는 수많은 AI 모델이 자신이 최고라며 패권을 다투는 시대를 지나고 있다.
어제까지 가장 영리해 보였던 모델이 오늘은 느리고 비싼 선택지가 되기도
하며, 같은 기업에서 출시하는 신모델이 이전 세대와 아키텍처 수준에서 다를 때도 많다.
과거의 소프트웨어 경쟁은 대체로 기능의 많고 적음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AI 모델의 경쟁은 훨씬 더 기묘하다.
각 모델은 출발점이 다르고, 설계 철학이 다르며, 그 결과로 실제 성능의 강점과 약점이 확연히 갈리기 때문이다.
2026년 5월 기준으로, 제미나이 3.1 Pro는 GPQA 다이아몬드 기준 94.3%로 추론 벤치마크 최상위권에 있고, 그록 4 헤비는 멀티에이전트를 이용해 인류 최후의 시험이라 불리는 HLE에서 최대 50.7%를 달성했다.
HLE는 ‘인류 최후의 시험(Humanity’s Last Exam)’이라는 뜻으로, 최근 인공지능(AI)이 너무 똑똑해져서 기존의 시험들로는 변별력이 없어지자 “AI가 절대 쉽게 풀 수 없는 가장 어려운 문제를 만들어보자”며 등장한 초고난도 AI 성능 평가(벤치마크) 시험을 말한다.
클로드 오퍼스 4.8은 코딩 및 자연스러운 문장 작성에 두각을 나타내며, GPT-5.5는 일상적인 지식 작업과 직관적 대화에서 강점을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이 지형이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불과 몇 개월 전의 벤치마크 결과가 오늘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떤
모델이 특정 분기에 코딩 능력에서 압도적 1위를 기록했다가, 다음 분기에 경쟁사의 새 모델에 그 자리를 내주는 일이 반복된다.
이 역동성이야말로 AI 세계를 진정한 춘추전국시대로 만드는 핵심이다.
더 이상 ‘가장 좋은 AI’는 없다.
‘특정 시점, 특정 용도에 더 적합한 AI’가 있을 뿐이다.
이제 AI를 잘 쓴다는 것은 더 이상 프롬프트를 잘 쓰는
기술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모델을 고르는 감각, 갈아타는 타이밍, 그리고 작업의 성격에 맞춰 AI 모델을 바꿔 사용하는 운영 능력을 포함한다.
우리는 대개 ‘가장 똑똑한 AI 모델’을 쓰고 싶어 한다.
그런데 가장 똑똑한 모델은 가장 비싸고 가장 무겁다.
모든 작업에 최고급 모델을 쓰는 것은
모든 이동에 대형 리무진을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멋있어 보일 수는 있지만, 대개는 늦고 비싸며 과하다.
그러므로 AI 모델을 고르는 첫 번째 기준은 ‘작업의 경중 또는 위험도’여야 한다.
실패해도 다시 고치면 되는 일과 실패하면 손해가 커지는 일을 구분해야
한다.
블로그 제목을 뽑는 일, 회의 아이디어를 브레인스토밍하는 일, 여행 동선을 검색하는 일에는 빠르고 유연한 모델이 어울린다.
반면 재무 계산, 계약서 검토, 보안 분석, 연구 보고서 작성, 기업의 의사결정 자료처럼 오류 비용이 큰 작업에는 느리더라도 깊게 추론하는 모델이 필요하다.
두 번째 기준은 ‘모델의 컨텍스트(문맥) 처리 능력’이다.
텍스트 몇 문장을 다루는 작업과 수십, 수백 쪽의 자료를 다루는 작업은 전혀 다르다.
이미지,
차트, 음성, 영상, 스프레드시트 등 다양한 형식의 데이터가 섞이는 순간 모델의 선택은 더 중요해진다.
긴 컨텍스트를 처리하는 능력은 단순히 많은 토큰(AI가 글을 처리할 때 쓰는 기본 단위)을 다룰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긴 문서 안에서 중요한 문장을 놓치지 않고, 앞뒤의 모순을 발견하고, 먼 곳에 흩어진 단서를 연결하는 능력까지 포함한다.
세 번째 기준은 ‘나만의 벤치마크’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모델이 나에게도 좋은 모델이라는 보장은 없다.
한국어로 된 공공기관 보고서를 다루는
사람, 스타트업에서 제품 기획서를 쓰는 사람, 파이썬으로 데이터 분석을 하는 사람, 고등학생에게 물리를 설명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AI는 서로 다를 수 있다.
가장 실용적인 방법은 자신이 자주 하는 작업 다섯 가지를 골라 작은 테스트 시트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통해 같은 문서 요약, 같은 코드 오류, 같은 이메일 초안, 같은 이미지 해석, 같은 기획 질문 등을 여러 모델에 던져서 결과를 비교해야 한다.
이때
평가는 막연한 감상이 아니라 정확성, 누락, 속도, 비용, 문체, 수정 가능성, 출처 처리 방식 등으로 각자의 작업에 맞는 평가 지표를 직접 만들어 활용하는 것이 좋다.
갈아탈 때를 아는 것이 실력이다
갈아타기 전략에는 냉정함도 필요하다.
새 모델이 나왔다고 곧바로 모든 것을 옮길 필요는 없다.
새 모델의 데모는 대개 가장 잘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진짜 성능은 내가 쓰는 문서, 내가 쓰는 언어, 내가 던지는 모호한 질문 앞에서 드러난다.
반대로 오래 쓰던 모델에 대한 애착도 경계해야 한다.
오래 사용한 모델은 예측 가능해서 편안하지만, 바로 그 편안함이 비용이 된다.
좋은 사용자는 모델에 집착하지 않는다.
도구에 대한 감각을 유지하되, 더 나은 도구 앞에서 기꺼이 손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갈아타기의 적은 무지와 관성이다.
무지는 정보의 부재가 아니라 관심의 부재다.
새 모델이 출시되어도 확인하지 않는 사람은, 모르는 게 아니라 알려
하지 않은 것이다.
관성은 더 교묘하다.
관성은 스스로를 신중함으로 포장한다.
“아직 검증이 덜 됐어” “익숙한 게 더 빨라”라는 말 뒤에 숨어 변화를 미루는 것을 합리적 판단처럼 느끼게 만든다.
갈아타기를 가로막는 심리적 장벽 중 하나가 매몰 비용이다.
한 모델에 오래 투자할수록, 프롬프트를 다듬고 사용법을 익히고 결과 패턴에 적응할수록, 다른
모델로 넘어가는 일이 손해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 투자는 이미 쓰인 것이다.
더 나은 도구가 있다면 어제의 적응 비용이 오늘의 전환을 막아서는 안 된다.
갈아타기에 중독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새 모델이 나올 때마다 흔들리고, 깊이 쓰기 전에 또 다른 모델을 기웃거리면 어느 도구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게
된다.
좋은 전환은 충동이 아니라 기준에서 나온다.
내가 자주 하는 작업에서 현재 모델이 부족하다는 것을 명확히 확인했을 때, 그때 옮기는 것이 맞다.
한 모델에 충성하는 사용자는 편안함을 얻지만, 여러 모델을 이해하는 사용자는 선택권을 얻는다.
그리고 기술의 변곡점에서 선택권은 곧 권력이다.
AI 시대, 인간은 왜 여전히 읽고 쓰고 말해야 하는가
- 기자명류한석 류한석기술문화연구소 소장

한때 언어는 인간 정신의 최후 보루처럼 여겨졌다.
인간은 계산에서는 기계에 졌고, 기억에서는 데이터베이스에 졌으며, 속도에서는 알고리즘에
졌지만, 적어도 의미를 만들고 은유를 다루며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만큼은 인간의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생성형 AI는 그 믿음의 성벽을 조용히 넘어섰다.
이제 AI는 보고서를 쓰고, 소송 문서를 요약하고, 회의록을 정리하고, 연설문을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질문은 단순하다.
기계가 언어를 인간보다 잘하는 시대에 인간은 왜 여전히 읽고 쓰고 말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기술에 관한 질문처럼 보이지만, 실은 인간의 주권에 관한 질문이다.
역설적으로 AI가 언어를 잘 다룰수록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언어
능력의 폐기가 아니라 언어 능력의 재건이다.
더 많이 읽고, 더 정확히 쓰고, 더 살아 있게 말하는 인간만이 AI가 뿜어내는 무한한 문장들 사이에서 방향을 잃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읽기는 검증이고, 쓰기는 명령이며, 말하기는 책임이다
AI 시대의 읽기는 텍스트를 의심하고 검증하기 위해 매우 중요한 기술이다.
AI는 긴 문서를 순식간에 요약한다.
그것은 축복처럼 보인다.
그러나 요약은 언제나 손실이다.
요약문은 원문의 뼈대를 남기지만, 글에 담긴 망설임, 균열, 맥락, 어조를 지운다.
인간의 사유는 종종 결론이 아니라 그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불편한 우회로에서 자란다.
긴 문장을 견디고, 낯선 개념 앞에서 멈추고, 논리의 연결부를 더듬는 동안 우리는 단지 정보를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력을 기른다.
AI가 생성한 글은 그래서 위험하다.
그것은 자주 매끄럽다.
틀린 문장도 매끄럽고, 부실한 추론도 단정한 단락 속에 숨는다.
텍스트의 겉모양이 매끄러울수록 사유의 이면에 숨은
왜곡과 오류를 잡아내는 눈은 더 날카로워져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읽지 못하는 사람은 AI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 AI가 정리해 준 세계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 순간, 판단의 권한은 인간의 머리에서 AI의 확률 모델로 조용히 이전된다.
쓰기 역시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AI 시대의 쓰기는 가장 정교한 조종 기술이다.
프롬프트는 새로운 시대의 명령문이다.
과거의 프로그래밍이
기계가 이해하는 언어로 인간의 의도를 번역하는 일이었다면, 프롬프트 작성은 인간의 자연어를 통해 답변의 범위를 좁히고 확장하는 일이다.
“좋은 글을 써줘”라는 문장은 AI에게 방향 없는 가능성만 던져주는 요청이다.
반면 목적, 독자, 맥락, 금지 사항, 문체, 판단 기준을 선명히 적은 문장은 AI를 하나의 도구에서 협력자로 바꾼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문장력보다 사고력이다.
좋은 프롬프트는 화려한 수사가 아니라, 명확한 문제 정의에서 나온다.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AI에게도 아무것도 제대로 요구할 수 없다.
AI가 발전할수록 인간은 출발점을 더 엄밀히 세워야 한다.
질문이 빈곤하면 답도 빈곤하다.
요구가 흐리면 결과물도 흐리다.
AI는 인간의 지적 게으름을 구원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을 더 그럴듯한 문장으로 포장할 뿐이다.
그러므로 AI 시대의 진짜 경쟁력은 무엇이 중요한지 가려내는 판단, 왜 이것을 해야 하는지 묻는 능력이다.
작업은 맡겨도 되지만, 사고는 외주화해선 안 된다.
마이크로소프트 리서치 연구진은 2025년 CHI 논문에서 319명의 지식노동자와 생성형 AI 사용 사례 936개를 조사해, 생성형 AI에 대한 신뢰가 높을수록
비판적 사고가 덜 작동하는 경향이 있음을 보고했다.
동시에 AI 사용 환경에서 비판적 사고의 성격이 정보 검증, 응답 통합, 작업 관리로 이동한다고 분석했다.
이는 쓰기의 역할이 축소되는 것이 아니라 변형된다는 뜻이다.
인간은 이제 프롬프트로 첫 문장을 쓰는 저자이면서, AI의 산출물을 선별하는 편집자이며, 최종 책임을 지는 발행인이다.
읽기와 쓰기가 AI와 인간 사이의 조용한 협상이라면, 말하기는 그 협상의 결과물을 인간 사회의 불완전한 광장으로 가져가는 행위다.
AI가 아무리
뛰어난 기획서와 연설문을 만들더라도, 그것은 아직 살아 있지 않다.
문장은 청중 앞에서 목소리와 표정, 침묵과 호흡을 얻을 때 비로소 사회적 힘이 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논리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인간은 누가 말하는지, 어떤 위험을 감수하며 말하는지, 그 말이 발화자의 몸과 삶을 통과했는지를 본능적으로
감지한다.
AI의 언어에는 책임의 체온이 없다.
AI는 수치심을 느끼지 않으며, 청중의 싸늘한 침묵을 온몸으로 감각하며 주장의 수위를 고쳐 말할 수도 없다.
말하기란 의미를 몸으로 보증하는 사건이다.
따라서 AI가 토해내는 무한한 결과물을 인간이 육화(肉化)한다는 것은, AI가 만든 초안을 인간의 판단,
윤리, 맥락, 관계 속으로 다시 통과시키는 일이다.
아무리 정교한 텍스트라 할지라도 인간의 뜨거운 숨결과 책임이라는 무게가 더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공허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AI가 내놓은 전략이 누구에게 이익이 되고 누구를 배제하는지 묻는 것, 그 전략의 추진이 실제 조직의 갈등과 두려움 속에서 어떤 반응을 낳을지 상상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 결과를 자기 책임으로 감당하는 것이 육화다.
가장 아날로그적인 동시에 가장 미래적인 능력
AI 시대의 격차는 AI를 사용하는 사람과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 사이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다.
더 깊은 격차는 AI 답변을 그대로 소비하는 사람과,
그 답변을 읽고 의심하고 고쳐 쓰고 자기 목소리로 발화하는 사람 사이에서 벌어진다.
AI가 답변을 대량생산하는 시대, 인간이 여전히 생산해야 하는 것은 판단이다.
정리하면, 읽기는 AI 답변의 매끄러움을 의심하는 능력이다.
쓰기는 AI의 힘을 인간의 목적에 맞게 정렬하는 능력이다.
말하기는 AI의 결과물을
인간 세계의 신뢰와 책임 속으로 데려오는 능력이다.
이 세 가지는 낡은 교양의 장식품이 아니라 AI 시대의 생존 기술이다.
기술은 언제나 지금 이 순간에도 낡아가고 있다.
오늘의 모델은 내일이면 구식 모델이 되고, 오늘의 도구 다루기 요령은 내일의 자동화 기능에 흡수
것이다.
그러나 기술이 아무리 빠르게 낡더라도, 언어 능력은 어떤 변화 앞에서도 새 자리를 찾아낸다.
낯선 텍스트를 견디는 독해력, 흐린 생각을 또렷한 문장으로 벼리는 필력, 차가운 논리를 인간의 목소리로 건네는 설득력은 인간 지성의 오래된 뼈대이며, 역설적으로 가장 미래적인 능력이다.
AI 시대의 진짜 문맹은 AI를 쓰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다.
읽지 않고 믿는 사람, 쓰지 않고 맡기는 사람, 말하지 않고 전송하는 사람이다.
AI는
앞으로 더 많은 텍스트를 쏟아낼 것이다.
그러나 그것에 의미와 방향과 책임을 부여하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그 일을 감당하기 위해 인간은 언어(읽기, 쓰기, 말하기)라는 가장 오래된 자리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언어는, 불편함을 기꺼이 견디는 꾸준한 훈련 외에 어떤 지름길로도 얻어지지 않는다.
AI시대에 더 중요해진 기업의 신뢰
- 기자명류한석 류한석기술문화연구소 소장

AI가 채용 심사, 신용 평가, 의료 진단, 법적 판단 등 인간의 삶에 직결되는 고위험 의사결정 영역으로 영향력을 빠르게 넓혀가고 있다.
권한이 커진 만큼 리스크의 파괴력도 진화했다.
과거 챗봇이 내뱉는 엉뚱한 대답(환각현상)이 가벼운 해프닝에 불과했다면, AI 알고리즘의 편향성은 집단 소송을 부르고, 저작권 침해와 개인정보 유출은 천문학적 배상금으로 이어지게 된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경영진의 79%가 AI 윤리를 전사 전략의 핵심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를
실제 ‘AI 거버넌스(AI Governance)’로 구현하여 운영 중인 조직은 25%에 미치지 못했다.
AI 거버넌스란 AI 윤리를 조직 현장에서 실현하기 위한 체계로, 리스크 평가·편향성 관리·규제 준수 등을 아우르는 구체적 규칙을 마련하고, 이를 누가 어떻게 이행할지 명문화하여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전반적인 시스템을 뜻한다.
글로벌 규제의 압박
AI 알고리즘의 블랙박스에 갇힌 의사결정은 필연적으로 불신을 잉태한다.
왜 특정 지원자가 탈락했는지, 왜 대출이 거절되었는지 설명하지
못하는 기업은 시장의 신뢰를 잃을 수밖에 없다.
기업들은 이제 AI 거버넌스를 단지 컴플라이언스(규제 준수)의 문제가 아니라, 브랜드의 무결성을 증명하고 소비자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필수 인프라로 재정의하고 있다.
책임 있는 AI 정책, 설명 가능성에 대한 엄격한 표준, 편향성에 대한 상시적 모니터링 체계는 조직의 성숙도를 측정하는 새로운 척도가 되었다.
최근 글로벌 규제 환경은 유례없는 속도로 기업을 조여오고 있다.
파편화되어 있던 세계 각국의 규제들이 점차 촘촘한 그물망을 형성하며, 규제 차익을 노리던 기업들의
입지를 좁히고 있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단연 유럽연합(EU)의 ‘AI 법(AI Act)’이 있다.
세계 최초의 포괄적 규제인 이 법안은 AI 시스템을 위험도에 따라 네 단계로 엄격하게 분류한다.
그중 인간의 행동을 조작하거나 사회적
점수를 매기는 등의 ‘허용 불가능한 위험’을 내포한 AI는 사용이 금지되며, 이를 위반할 경우 3500만유로 또는 전 세계 연간 매출의 7% 중 더 높은 금액을 과징금으로 부과한다.
오는 8월부터는 채용, 의료, 핵심 인프라 등 인간의 삶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고위험 AI 시스템’에 대해 데이터 품질관리, 사람에 의한 감독 등 전면적인 의무 조항이 발효된다.
반면 미국은 국립표준기술원(NIST)의 ‘AI 위험 관리 프레임워크(AI RMF)’를 통해 다소 다른 접근을 취하고 있다.
법적 강제성보다는 조직의
자율적이고 체계적인 리스크 관리에 방점을 찍은 이 프레임워크는 거버넌스(Govern), 매핑(Map), 측정(Measure), 관리(Manage)라는 네 가지 핵심 기능을 제시한다.
비록 자발적 성격의 지침이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다국적 기업들이 이를 내부 거버넌스 설계의 사실상 표준으로 채택하여 활용하고 있다.
지난 1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우리나라의 AI 기본법은 국가 차원에서 AI 사업자에 투명성, 안전성 확보, 고지 의무 등 구체적 책임을 부과하여
기업들의 내부 체계 재정비를 촉구하고 있다.
국제표준화기구의 ISO/IEC 42001 인증은 경영 시스템 전반에 걸친 AI 관리 체계를 요구하며, 글로벌 비즈니스의 새로운 자격 요건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렇다면 진정한 의미의 AI 거버넌스는 조직 내에서 어떻게 구현되어야 하는가. 이는 기술, 법률, 경영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살아있는 시스템이어야 한다.
우선적으로 선행되어야 할 것은 최고경영진이 참여하는 ‘전사적 AI 거버넌스 위원회’의 구축이다.
개발자나 IT 전문가들만의 시각에 매몰되지 않도록 법무, 리스크 관리, 윤리 전문가들이 하나의 테이블에 앉아 AI 모델의 생애주기 전반을 통제하는 것이다.
이들은 AI가 활용되는 조직의 모든 사례를 내부적인 위험 분류 체계에 따라 평가하고, 고위험군 작업에 대해서는 극도로 보수적인 승인 프로세스를 적용해야 한다.
더불어 ‘설명 가능한 AI(XAI)’의 도입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알고리즘이 대출을 거절하거나 채용에서 탈락시키는 등 누군가에게 불이익을
준 이유를 자세하게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아무리 정교한 시스템이라도 인간의 자율성을 완전히 대체해서는 안 된다는 ‘인간 감독(Human-in-the-Loop)’ 원칙이 확립되어야 한다.
고도의 윤리적 판단이나 생명과 직결된 문제의 최종 결정권은 반드시 인간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하며, AI는 철저히 그 결정을 돕는 조언자의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
일부 선도적인 기업들은 이미 실천에 나서고 있다.
IBM은 AI 모델의 투명성과 규정 준수 여부를 자동화하여 추적할 수 있는 거버넌스 플랫폼을
선보였으며, 텔레포니카와 같은 글로벌 통신사는 내부 규율과 글로벌 가이드라인을 결합한 독자적 관리 모델을 만들었다.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거버넌스를 혁신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아니라, 장기적 혁신을 가능케 하는 안전벨트로 인식한다는 점이다.
국내 주요 대기업들 역시 프라이버시 보호와 윤리적 영향 평가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신뢰라는 이름의 자본
앞으로 AI 거버넌스는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하며 지속적인 업데이트가 가능한 동적 거버넌스 모델로 진화해야 한다.
끊임없이 발생하는
딥페이크, 저작권 이슈, 환각의 위협 속에서 완벽한 무결성을 보장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오류가 발생했을 때 이를 얼마나 투명하게 공개하고, 신속하게 책임지며, 시스템을 개선해 낼 수 있는가 하는 회복탄력성이다.
AI 거버넌스는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고 이해관계자들의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전략적이고도 수익성 높은 투자다.
거버넌스의 부재는
머지않아 기업을 치명적인 법적 소송과 사회적 지탄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가장 확실한 리스크다.
지금 당장 조직의 규모와 기술 수준에 걸맞은 체계적인 거버넌스 로드맵을 설계하지 않는다면, 기술의 파도에 올라타기는커녕 그 파도에 속절없이 휩쓸려 가게 될 것이다.
AI 거버넌스의 성숙도는 결국 조직 문화의 문제로 귀결된다.
기술적 도구와 규정 준수 체계를 갖추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구성원
모두가 AI의 리스크를 자신의 문제로 내면화하고, 이상 징후를 발견했을 때 주저 없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심리적 안전감이 조직 전반에 뿌리내려야 한다.
이를 위해 선도 기업들은 전사적 AI 리터러시 교육을 의무화하고, 윤리적 문제 제기를 장려하는 내부 고발 채널을 정례화하고 있다.
비슷한 성능의 AI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기업의 경쟁 우위는 기술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다가오는 미래 시장에서 최후의 승자는 가장
똑똑하고 강력한 AI를 가진 기업이 아니라, 가장 투명하고 책임감 있게 그 기술을 통제하는 기업이 아닐까. 신뢰는 이 새로운 시대의 진정한 해자(垓字)이자 실질적인 자본이기 때문이다.
미토스 등장에 월스트리트는 패닉
- 기자명류한석 류한석기술문화연구소 소장

기술의 역사에는 돌이킬 수 없는 임계점을 넘는 순간들이 존재한다.
인류가 원자의 분열을 처음 목격했을 때가 그러했고,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신경망이 세상에 처음 연결되었을 때가 그러했다.
그리고 2026년 봄, 우리는 또 하나의 임계점을 마주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총아로 불리는 AI 기업 앤트로픽이 개발한 미공개 프런티어 모델, ‘클로드 미토스(Claude Mythos)’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난 것이다.
내부 코드명 ‘카피바라(Capybara)’로 불리던 이 모델은 단순언어 생성기나 지능형 챗봇의 범주를 훌쩍 뛰어넘는다.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미토스는 현존하는 가장 은밀하며, 가장 파괴적인 잠재력을 지닌 ‘슈퍼 해커’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월스트리트를 뒤흔든 미토스의 지능과 행동력
미토스가 기술계에 안긴 충격은 그 압도적 성능에서 기인한다.
최고 모델인 클로드 오퍼스(Opus) 4.7을 능가하는 이 모델은, 코딩과
수학적 추론 능력에서 상당한 도약을 이뤄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진정으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미토스가 지닌 탁월한 소프트웨어 취약점 탐지 및 익스플로잇(Exploit·공격 코드) 생성 능력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미토스는 수십 년간 수많은 인간 전문가와 기계의 교차 검증을 거치며 가장 안전하다고 평가받던 운영체제들에서
수천 개의 제로데이(Zero-day·개발사가 아직 인지하지 못했거나 수정하지 못한 보안 결함) 취약점을 발굴해냈다.
보안이 철저하기로 명성이 자자한 OpenBSD에서 무려 27년 동안 숨죽이고 있던 치명적 버그를 찾아낸 사례는 경악에 가깝다.
또한 미토스는 스스로 샌드박스라는 안전한 격리 환경에 분석 대상을 올려두고, 취약한 코드 영역을 스캔하며, 각종 분석을 통해 실제로
작동하는 공격 코드를 자동으로 찍어낸다.
심지어 여러 개의 사소한 취약점들을 정교하게 엮어 시스템 전체의 권한을 탈취하는 고급 공격 체인을 스스로 설계하기도 한다.
더욱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것은 미토스가 보여준 에이전트로서의 자율성이다.
앤트로픽의 자체 테스트 과정에서, 미토스는 외부와
단절된 샌드박스 환경에서 탈출하기 위해 다단계 공격 코드를 개발하고 탈출 흔적을 웹사이트에 게시하는 등 지시 범위를 벗어나는 지능적이고 주도적인 행동 패턴을 보였다.
이는 AI가 인간의 명령을 수동적으로 처리하는 ‘도구’에서, 스스로 환경을 탐색하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조작을 가하는 ‘행위 주체’로 진화했음을 시사한다.
보안 전문 지식이 전무한 일반 엔지니어가 “원격 코드 실행 취약점을 찾아 공격해 달라”고 입력하기만 하면, 하룻밤 사이에 치명적인 해킹 무기가 완성되는 마법이자 저주가 현실이 된 것이다.
이러한 미토스의 파괴적 능력 앞에 맨 먼저 짙은 공포에 휩싸인 곳은 바로 월스트리트를 위시한 글로벌 금융기관들이다.
현대의
금융 시스템은 본질적으로 방대한 데이터와 그 데이터를 보호하는 거대한 코드의 성채다.
수십 년 전 작성된 레거시 시스템의 메인프레임부터 최신 핀테크 API에 이르기까지, 금융 네트워크는 극도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지금까지 금융권의 사이버 방어 전략은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해커가 취약점을 발견하고 공격 코드를 제작하기까지 걸리는
시간 동안, 방어자는 패치를 배포하여 방어력을 높여왔다.
그러나 미토스와 같은 AI의 등장은 이 시간적 방어선을 일거에 무너뜨린다.
인간 해커가 수개월에 걸쳐 분석해야 할 코드조차 미토스는 단숨에 역공하여 뚫어낸다.
만약 이러한 능력을 지닌 AI가 사이버 범죄 조직이나 적대 국가의 손에 들어간다면, 전 세계 은행의 결제망이나 주식 시장의 거래 시스템은 순식간에 치명적인 연쇄 해킹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금융기관의 최고정보보안책임자(CISO)들이 밤잠을 설치는 이유는 명확하다.
방어에 천문학적 비용과 인력이 소모되는 반면, 공격자는
고성능 AI 모델 하나만으로 수백만 번의 창을 동시에 던질 수 있는 극단적인 ‘비대칭성’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정보보안의 패러다임이 창과 방패의 싸움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전능한 유령과의 싸움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앤트로픽은 전례 없는 결정을 내렸다.
미토스의 대중 공개를 전면 보류한 것이다.
그러면서 “AI의
발전 속도를 감안하면 이러한 기술이 안전한 통제 범위를 벗어나는 것은 시간문제”라며 “경제 체계와 공공 안전, 나아가 국가 안보에까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라고 짚었다.
대신 그들은 이 강력한 모델을 무기 삼아 선제적인 방어선을 구축하는 전략을 택했다.
AWS,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크라우드스트라이크
등 글로벌 IT·보안 생태계의 거인들을 규합해 방어적 사이버 보안 연합체인 ‘프로젝트 글래스윙(Project Glasswing)’을 출범시켰다.
가장 치명적인 독을 해독제로 사용하겠다는 선언이다.
이들은 미토스를 활용해 전 세계 핵심 소프트웨어 공급망에 숨겨진 취약점을 먼저 찾아내고, 해커가 이를 악용하기 전에 은밀하게 패치하는 광범위한 방어 작업을 수행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 통제된 평화가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AI 기술이 빠르게 평준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6개월에서
18개월 이내에 다른 기술 기업들이나 오픈소스 진영에서 미토스에 필적하는 모델이 등장할 것은 자명한 수순이다.
새로운 사이버 질서의 도래
일부 전문가들은 미토스의 성능이 외부의 독립적인 검증을 거치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강력한 위험성을 명분으로 내세워 기업이
자체적으로 시장의 규칙을 정하고 독점적 연합을 구축하려는 공포 마케팅과 해자의 구축이 아니냐는 날카로운 비판이다.
완전한 공개가 불러올 대규모 악용의 위험성과 폐쇄적 거버넌스가 낳을 투명성 결여 사이에서 우리는 아직 명확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대안을 찾기 위해 우리는 이 기술적 특이점을 비판적으로 응시해야 한다.
‘너무 위험해서 대중에 공개할 수 없다’는 선언과 그들이 만든 새로운 규칙은, 소수의 빅테크 기업이 세계의 보안과 안보를 담보로 쥐게 되는 심각한 권력의 불균형을 초래한다.
시민사회와 학계는
이러한 ‘보이지 않는 지배’를 견제할 투명하고 객관적인 감사 메커니즘을 요구해야 한다.
미토스는 사이버 보안의 종말을 의미하지 않는다.
미토스가 보여준 것은 기계가 인간의 코드 속에 남겨진 논리적 빈틈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유린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인간이 코드를 짜고 취약점을 땜질하던 낭만적인 시대의 종언이자, 기계가 기계를 해킹하고 방어하는 냉혹한 자동화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서곡이다.
우리는 지금, 인간의 통제력을 시험하는 거대한 판도라의 상자 앞에 서 있다.
뚜껑은 이미 열렸고, 쏟아져 나온 지능을 향해 어떻게 새로운 질서의 고삐를 쥘 것인지, 오직 우리의 결정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모든 돈을 빨아들이는 AI 블랙홀
- 기자명류한석 류한석기술문화연구소 소장

천체물리학에서 블랙홀은 붕괴하는 별이 만들어낸 극단적인 시공간의 왜곡을 의미한다.
그곳의 중력은 너무도 강력하여 우주에서 가장 빠른 존재인 빛조차도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블랙홀의 경계면)’을 넘어서는 순간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한다.
최근 몇 년간 기술 산업과 인류 사회를 관통하는 인공지능(AI)의 궤적을 지켜보며, 이 우주적 현상 외에는 현재 상황을 설명할 더 나은 은유를 찾지 못했다.
과거에도 “특정 기술이 미래를 지배할 것”이라는 식의 찬사는 주기적으로 반복되었지만, AI는 그 궤를 완전히 달리한다.
이것은 그저 하나의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다른 모든 기술과 담론을 집어삼키는 거대한
우주적 블랙홀이라 할 수 있다.
자본과 기술의 흡수, 모든 돈은 AI로
우리는 지금 지능의 폭발이라는 ‘특이점’의 가장자리에 서 있다.
이 압도적인 중력장
앞에서는 다른 어떤 기술적 성취도, 산업적 혁신도 시시한 배경 복사열처럼 느껴질 뿐이다.
AI는 문명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자신의 중심부로 맹렬하게 빨아들이고 있다.
가장 먼저 이 맹렬한 중력을 체감한 곳은 기술 산업과 자본 시장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실리콘밸리와 월스트리트의 화두는 다채로웠다.
메타버스가 새로운 디지털 영토를 개척할 것이라 믿었고, 블록체인과 웹3.0이 중앙집중화된 권력을 해체할 것이라 떠들었으며, 양자컴퓨터가 연산의 한계를 부술 것이라 기대했다.
물론 그 담론들이 완전히 자취를 감춘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을 향하던 시선의 밀도는 현저히 옅어졌다.
생성형 AI라는 거대한 질량이 등장한 이후, 이 모든 기술적 의제가 순식간에 궤도를 잃고 AI의
중력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현재 글로벌 자본 시장에서 AI라는 수식어가 붙지 않은 프로젝트는 투자의 1차 관문조차 통과하기 어렵다.
메타버스를 구축하던 기업들은 그 가상의 공간을 채울 AI 에이전트를 개발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고, 블록체인 기업들은 자신들의 네트워크가 AI의 데이터 검증에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를 증명하려 애쓴다.
반도체 산업 역시 엔비디아라는 거대한 항성을 중심으로 완전히 재편되었으며, 전력 인프라부터
냉각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구식 산업들조차 오직 ‘AI 데이터센터의 가동’이라는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존재 이유를 재정립하고 있다.
혁신의 다원주의는 종말을 고했다.
이제 기술 업계에는 오직 AI라는 단일 기조만이 존재하며, 다른 모든 분야는 이 블랙홀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파편으로 전락했다.
산업과 자본이 블랙홀의 외곽에서 맴돌고 있다면, 인간의 노동은 그 중심부를 향해 자유낙하하며
이른바 ‘스파게티화(Spaghettification)’를 겪고 있다.
천체가 블랙홀에 가까워질 때 극심한 중력의 차이로 인해 국숫발처럼 길게 늘어지는 이 현상은, 오늘날 지식노동자들이 직면한 현실과 기묘하게 닮아 있다.
과거의 기술 혁신은 주로 육체노동이나 단순 반복 업무를 기계로 대체하는 데 집중했다.
블루칼라 노동이 위협받을 때 화이트칼라로 대변되는 인지적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창의성과 논리력이 기계의 성역 밖일 것이라 오판했다.
그러나 텍스트를 이해하고, 코드를 작성하며, 법률 문서를 검토하고, 심지어 예술 작품을 창조하는
AI의 등장은 인류의 오랜 믿음을 산산조각 냈다.
변호사, 작가, 프로그래머, 일러스트레이터 등 가장 인간적이라 여겨졌던 직업군이 블랙홀의 중력에 가장 먼저 찢겨나가고 있다.
평생에 걸쳐 축적한 전문가의 직관과 숙련도가 단 몇 초 만에 생성되는 AI의 결과물 앞에서 그 가치를 의심받는다.
이는 일자리의 상실을 넘어서는 일이다.
노동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고 사회적 가치를 증명해 온 인류의 근대적 노동관 자체가 붕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인간의 고유한 능력이라 믿었던 것들이 알고리즘의 매개변수 속으로 해체되어
빨려 들어가는, 노동의 형이상학적 붕괴를 목도하고 있다.
문화와 사회적 담론의 영역에서도 AI는 모든 빛을 굴절시킨다.
빛이 블랙홀 주변을 지날
때 궤적이 휘어지듯, 오늘날 우리의 모든 사상적, 윤리적 담론은 AI를 거치며 그 형태가 왜곡된다.
예술의 본질은 무엇인가, 저작권의 주체는 누구인가, 진실과 조작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과거 철학자들의 상아탑 안에서나 논의되던 인식론적 질문들이 이제는 매일 아침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
이 압도적인 존재감 앞에서 대중의 지적 호기심마저 획일화되었다.
생명공학의 발전, 우주
탐사의 성과, 심해의 발견 같은 뉴스들은 이제 사람들의 흥미를 좀처럼 끌지 못한다.
대중의 가장 큰 관심은 AI가 어제보다 얼마나 더 똑똑해졌는지, 언제 인간의 지능을 완전히 추월하는 범용인공지능(AGI)이 도래할 것인지에 쏠려 있다.
기술을 향한 인간의 상상력 자체가 AI라는 거대한 질량에 짓눌려 다른 가능성을 상실한 채, 오직 하나의 소실점을 향해서만 좁혀지고 있는 셈이다.
이 거대한 중력장은 이제 개별 기업이나 산업의 차원을 넘어 국가 권력의 구조까지 재편하고 있다.
과거의 패권 경쟁이 영토와 자원, 제조 역량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면 오늘날의 경쟁은 데이터와 연산 능력, 그리고 AI 생태계의 장악력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다.
반도체 공급망을 둘러싼 갈등, 데이터 주권을 둘러싼 규제 경쟁, 그리고 AI 표준을 선점하려는 기술 블록화의 움직임은 모두 이 새로운 중력장의 징후들이다.
이제 AI는 단순한 산업 정책의 대상이 아니라 국가의 생존 전략 그 자체가 되었으며, 어느 국가가 이 블랙홀의 중심에 더 가까이 접근하느냐에 따라 21세기 세계 질서의 위계가 다시 쓰이고 있다.
도구가 아닌 환경
이 사건의 지평선 너머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블랙홀의 중심, 즉 특이점에서는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모든 물리학의 법칙이 붕괴한다.
마찬가지로 AI가 지배하는 미래에서는 우리가 지난 몇 세기 동안 구축해 온 경제학의 법칙, 자본주의의 문법, 인간 중심주의적 세계관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이제 AI를 ‘인간이 다루는 유용한 도구’로 바라보는 도구주의적 관점을 버려야 한다.
AI는 단지 도구가 아니라, 우리가 앞으로 살아나가야 할 새로운 ‘환경’이자 생태계 그 자체다.
날씨를 통제할 수 없듯, 이미 막대한 자본과 데이터가 빚어낸 이 거대한 지능의 진화를 인간이 인위적으로 멈추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앞으로의 시대가 요구하는 시사점은 명확하다.
우리는 블랙홀의 밖으로 도망치려는 환상을 버리고, 이 거대한 중력장 안에서 어떻게 파괴되지 않고 인류의 존엄과 사회적 안전망을 재구축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피할 수 없는 중력의 우물 속으로 추락하면서도 우리가 끝내 잃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어둠
속에서도 스스로 빛을 내고자 하는 인간 존재의 치열한 자각이다.
블랙홀의 내부에서 새로운 우주의 법칙을 써내려가는 것, 그것이 사건의 지평선을 넘어선 인류에게 남겨진 마지막이자 가장 위대한 과제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