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희곡 ‘파랑새’의 주인공은 집에 파랑새를 두고 찾아 헤매잖아요. 파랑새가 어떤 새인지 알았어도 그랬을까요?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행복이 뭔지부터 알아야 해요.
“아이를 행복하게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김희삼 GIST(광주과학기술원) 기초교육학부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아이가 행복하길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다. 피곤을 무릅쓰고 자기 전에 책을 읽어주고, 무리해서라도 학원에 보내는 것도 사실은 행복과 관련이 있다. 더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그걸 기반으로 더 행복하게 살길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명문대에 입학하고, 더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면 정말 행복할까? 김 교수가 “행복을 공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그는 행복을 연구하는 경제학자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GIST로 자리를 옮긴 2016년부터 ‘행복의 조건’이라는 수업을 매 학기 해왔다. 강의는 수강 신청 개시 몇 분 만에 마감될 정도로 인기다.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총 3번에 걸쳐 자신의 행복도를 평가(0~10점)하게 하는데, 초반에 3~4점이었던 학생도 강의가 끝날 때쯤에는 7~8점으로 높아진다. “행복이 뭔지 알고 실천하면 행복에 좀 더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수업 내용 등을 엮어 『행복공부: 나의 파랑새를 찾아서』란 책도 냈다.
한국 사람들의 행복도는 별로 높지 않다. 유엔의 ‘세계행복보고서 2023’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주관적 행복도 점수는 10점 만점에 5.951점으로 137개국 중 57위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38개국) 중에는 뒤에서 네 번째다. 경제 규모로는 세계 13위를 차지하는데, 행복도가 이렇게 낮은 이유는 뭘까? 양육자와 아이 모두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 11일 서울에서 김희삼 교수를 만나 직접 물었다.
Intro. 행복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
Part 1. 성공하고 돈 많으면 행복하다?
Part 2. 비교는 불행해지는 지름길이다
Part 3. ‘원영적 사고’가 행복도 높인다
모든 사람은 행복하기를 원한다. ‘불행해지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행복이 뭐야?”라고 물으면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행복이 뭔지도 모른 채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건, 지도 없이 목적지에 가려는 것과 비슷하다. 김 교수는 “행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어떤 행복을 원하는지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 어렸을 때 ‘리더스 다이제스트’란 잡지에서 읽은 얘기를 하나 들려드릴게요. 영국·프랑스·소련 사람이 각각 생각하는 행복에 대한 얘기죠. 영국 사람은 퇴근 후 맥주를 마시며 TV로 축구를 보는 게 행복이래요. 프랑스 사람이 생각하는 행복은 해변의 휴양지에서 처음 만난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거고요. 소련 사람은 비밀경찰이 들이닥쳤는데, 자신이 아닌 옆집 사람을 체포하러 온 거라는 걸 알았던 순간 행복했대요.
- 모두 행복한 상황인 건 맞는데, 미묘하게 다르군요.
- 영국 사람이 얘기한 건 일상적인 행복이에요. 한국에서 한때 유행했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과 비슷하죠. 프랑스 사람은 일상에서 벗어나 예외적인 체험을 할 때 느끼는 희열 상태를 행복이라고 생각한 거고요. 소련 사람은 무탈한 일상으로 회복할 때 느끼는 안도감을 말한 겁니다. 사고가 나서 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하거나, 여행을 떠났다가 집에 돌아왔을 때 ‘행복하다’고 생각한 적 있으실 거예요. 핵심은 바로 이겁니다. ‘경제적인 부와 사회적 지위가 곧 행복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 돈이 많거나 사회적으로 성공하면 행복하지 않을까요?
- 심리학자들이 행복을 결정하는 3대 요인을 분석했는데, 그중 환경의 영향은 10% 내외로 가장 적었어요.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유전자(50%)였고, 그다음이 자발적 행동(40%)이었죠. 사회적으로 성공하면 물론 행복하겠죠. 문제는 그 감정이 오래가지는 않는다는 거예요. 상황에 적응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자신의 성취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특히 돈이 주는 행복은 한계가 명확합니다. 행복을 느끼는 데 필요한 돈의 액수까지 정해져 있어요.
- 연 소득 기준 9만5000달러(약 1억2600만원)요. 행복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2013년 164개국 170만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자료를 분석한 거죠. 여기까지는 소득이 늘면 행복감도 커집니다. 하지만 이 이상 되면 오히려 삶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져요. 그래서 이 점을 ‘소득의 포만점’이라고 부르죠. 최근에는 여기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긴 합니다. 중요한 건 돈이 많다고 마냥 더 행복하진 않다는 거예요.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는 희생해야 하는 것도 많아지잖아요. 삶의 균형이 깨질 수밖에 없고요.
- 유전적인 요인이 행복을 결정하는 데 가장 큰 요인이라는 것도 놀랍네요.
- 대뇌 피질의 어느 부위가 활성화돼 있는지가 중요해요. 대뇌 피질의 좌우 활성도는 선천적으로 다르거든요. 왼쪽이 활발한 ‘피질 좌파’가 오른쪽이 활발한 ‘피질 우파’보다 행복할 가능성이 높아요. 왼쪽이 활발하면 매사에 접근 지향적이고 낙천적인데, 오른쪽이 활발하면 후퇴 지향적이고 걱정이 많죠. 뇌파검사 없이 자신이 어떤 쪽인지 알아보려면 아래 질문에 답해 보면 됩니다. 자발적인 행동으로 행복감을 높이는 대표적인 방법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거예요. MBTI의 E(외향형)가 I(내향형)보다 유리한 이유죠. 외향적인 사람은 관계 형성에 적극적이고, 높은 자극을 추구하다 보니 기분 좋은 일을 자주 경험하거든요. 하지만 절대적인 건 아닙니다. 누구나 노력하면 행복해질 수 있어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발달하면서 사람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도 커졌다. 미국 피츠버그대에서 19~32세 1800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SNS 접속 빈도 상위 25% 그룹은 하위 25% 그룹보다 우울증 발병 위험이 최대 2.7배 높았다. SNS에서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스트레스와 우울감을 느끼는 것이다. 김 교수는 “비교는 불행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 비교는 노력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죠. 2013년에 전국 성인 남녀 3000명을 조사한 적이 있는데, 실제로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성향이 강할수록 일과 지위, 물질을 중시하고 경제적 성과도 높았어요. 5점 척도 기준으로 비교 성향이 1점 올라갈수록 취업자의 월평균 소득이 28.9%나 높아졌거든요. 반면에 삶의 만족도는 낮았어요. 비교 성향이 1점 높을수록 만족도는 0.237점 떨어졌죠. 연간 가구소득이 100만원 증가할 때 행복감이 0.012점 상승한 것과 비교하면, 0.237점은 연간소득이 2000만원 정도 줄어든 불행과 비슷한 거예요. SNS는 비교의 온상이고요.
- SNS를 할 때마다 우울해지는 건 사실이에요.
- 행복하려면 SNS를 멀리해야 해요. 그럴 수 없다면 적어도 제대로 비교해야 합니다.
- ‘SNS는 콰레스마 스페셜’이라는 말이 있어요. 포르투갈 축구선수였던 콰레스마는 뛰어난 선수는 아니지만, 드리블이 환상적이었죠. 드리블하는 모습만 모아놓은 스페셜 영상을 보면 전설적인 축구선수 펠레·마라도나·메시·호날두에 버금가요. 하지만 콰레스마가 세계적인 선수는 아니잖아요. SNS가 그렇습니다. 누구나 SNS엔 자랑하고 싶은 가장 행복한 모습만 올려놓습니다. 문제는 다른 사람의 행복한 단면을 자신의 삶 전체와 비교하는 거예요. 기준 자체가 잘못된 거죠. 행복하려면 자신의 부족했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는 게 좋습니다.
- SNS가 아니더라도 한국은 유독 비교하는 문화가 강한 것 같아요.
- 경쟁이 치열한 사회라서 그런 것 같아요. 아이들이 진로를 정할 때, 자신이 좋아하는 일보다는 사회적으로 인정받거나 안정적인 일을 선택하는 것도 그래서죠. 비교 성향이 진로를 정하는 데 영향을 끼친 겁니다. 2017년 한국·중국·일본·미국 대학생 4000명에게 희망 직업과 예상 직업을 조사했어요. 좋아하면서도 잘하는 일, 좋아하지 않지만 잘하는 일, 좋아하지만 잘하지 못하는 일, 좋아하지도 않고 잘하지도 못하는 일 중에 고르게 했죠. 희망 직업으로는 4개국 학생 모두 ‘좋아하면서도 잘하는 일’을 많이 꼽았어요. 4개국 중 한국 학생 응답자가 가장 많았는데, 전체 87%에 달했죠. 하지만 ‘좋아하면서도 잘하는 일’이 직업이 될 거라고 예상한 한국 학생은 28%밖에 안 됐어요. 미국 학생의 52%가 이렇게 답한 것과 대조적이죠. 한국 학생의 절반 이상은 ‘좋아하지 않지만, 잘하는 일’을 하게 될 거라고 답했어요. 비교 성향 때문에 만족감보다는 보수와 안정성을 선택할 거라고 생각한 셈이죠.
김희삼 교수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건 불행해지는 지름길"이라며 "SNS를 되도록 멀리하고, 비교를 하더라도 제대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정현 기자
지난해 9월 걸그룹 아이브 멤버 장원영이 스페인 촬영 중 빵집에 갔다. 그런데 하필 그의 앞에서 빵이 동나버렸다. 하지만 장원영은 속상해하지 않고 이렇게 말한다. “갓 나온 빵을 받게 됐잖아. 완전 럭키비키야!” 이 영상이 퍼지면서 부정적인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걸 뜻하는 ‘원영적 사고’란 말이 유행했다. 김 교수는 “‘원영적 사고’ 같은 긍정적인 마음이 행복도를 높인다”고 했다.
-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역경에 처했을 때 불평하기보다 이를 기회 삼아 발전하려고 노력합니다. 회복탄력성과도 관련 있죠. 세상을 살면서 위기나 실패를 겪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중요한 건 극복 여부죠. 같은 위기를 겪어도 누군가는 포기하지만, 또 다른 누구는 털고 일어서 더 멀리 나아갑니다. 이걸 가르는 건 바로 긍정적인 생각이에요. 긍정적인 생각은 뇌에서 엔돌핀 분비를 도와 스트레스를 줄여주기도 하죠. 억지로라도 좋게 생각하려고 노력해야 해요. 인간은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것에 더 강하게 반응하게끔 진화했거든요.
- 우리가 부정적인 것에 더 강하게 반응하게 진화했다고요?
- ‘다른 사람을 도왔다’는 미담 기사와 ‘다른 사람을 해쳤다’는 사건 기사 중 뭐가 더 회자되나요? 최근 본 기사를 떠올려 보세요. 좋은 기사는 거의 생각이 잘 안 날 겁니다. 당연해요. 나쁜 일이나 위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생존에 유리하니까요. 원시시대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바람으로 생각한 사람은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겁니다. 맹수가 온 건 아닌가 경계했던 사람만 살아남았겠죠.
-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감사 일기를 추천합니다. 매일 감사했던 일을 5개 정도만 써보세요. 특별하거나 대단한 일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미국 유명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도 매일 감사 일기를 썼는데, 별것 아니었어요. 아침에 거뜬하게 일어나서, 하늘이 눈부시고 파래서, 맛있는 스파게티를 먹어서, 얄미운 동료에게 화내지 않고 참아서, 좋은 책을 읽을 수 있어서 같은 것들이었죠.
- 당연히 주어지는 것부터 감사해야 하는 거군요.
- 아파보면 압니다. 건강하게 일어나 시작할 수 있는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요. 장마가 몇 날 며칠 이어지면 파랗고 맑은 하늘이 그리워지죠. 정전이나 단수가 돼야 그간 얼마나 편하게 전기와 물을 쓰고 있었는지 깨달을 수 있고요. 감사 일기는 아이와 함께 쓰면 더 좋습니다. 글을 못 쓰면 감사한 일에 대한 얘기를 나눠보세요. 사소한 일에 감사할 줄 아는 아이는 부모님이 차려주는 밥도 감사히 먹습니다. 세상을 좀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행복도도 높아지고요.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자신과 상대방 모두를 행복할 수 있게 하는 일이죠.
- 하지만 늘 감사한 일만 있지는 않아요. 살면서 무례한 사람도 많이 만나고요.
- 용타 스님이 행복마을 수련에서 사용하는 ‘나·지·사 명상법’을 권합니다. ‘OO하는구나, 사정이 있겠지, 감사하다’에서 한 글자씩 따온 말이죠. 자신을 화나게 했거나 갈등을 빚은 사람에 대한 분노를 다스리고 마음을 평화롭게 관리하는 방법이에요. 예컨대 회사 선배가 인사를 외면하고 지나가면, ‘내 인사를 무시하는구나. 거리가 있어서 나를 못 봤겠지. 저 사람이 내 직속 상사가 아니라 감사하다’고 생각하는 식이죠.
김 교수는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반신마비가 왔다. 어머니 혼자 아버지를 돌보며 4남매를 키웠다. 하지만 그는 행복했다. 삶을 선택할 자유가 크게 주어진 덕분이다. 공부를 곧잘 했던 그에게 가족 중 어느 누구도 “성공해서 집안을 일으키라”고 말하지 않았다. 고등학생 때 미술 교사가 미대를 권할 때도, 법대에서 경제학으로 진로를 바꿨을 때도, 그의 어머니는 딱 한 가지만 물었다. “네 생각은 어떠니?”
유엔의 세계행복보고서에서 각국의 행복 정도를 조사할 때 1인당 국내총생산, 사회적 지지, 건강 등 6가지 요인을 묻는다. 한국의 경우 6개 요인 중 특히 낮은 게 하나 있다. 바로 ‘의사결정의 자유’다. 이 항목에서 전체 157개국 중 109위를 차지했다. 김 교수는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눈에 보여지는 삶을 사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라고 했다.
아이들이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의 삶을 개척하게 도우세요. 양육자가 모든 것을 결정해 줘서도 안 됩니다. 그래야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어요.
김희삼 교수는 "모든 일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행복해지는 법"이라며 "사소한 일부터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감사 일기를 쓰라"고 조언했다. 강정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