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를 망치는 '정치적 파벌주의'

악수하는 미 민주·공화 부통령 후보. 연합뉴스 제공

악수하는 미 민주·공화 부통령 후보. 연합뉴스 제공

한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들에서 특히 그 중에서도 미국에서 사람들의 정치적 입장 차이가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실제 정치 제도나 이득을 떠나 마치 ‘당파싸움’처럼 정치적 소속이 일종의 ‘정체성’이 되고 있다고 해서 정치적 파벌주의(Political Sectarianism)라고 불리는 현상이다.
학자들에 의하면 지금의 파벌주의는 거의 종교적 맹신의 양상을 보인다.

엘리 핀켈 미국 노스웨스턴대 심리학자 등에 의하면 정치적 파벌주의는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① 타자화(othering): 다른 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자신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종류의 사람으로 보는 것

② 거부/기피(aversion): 상대를 감정적으로 싫어하고 불신하는 경향

③ 도덕화(moralization): 상대를 사회적으로 자신과 멀리 존재하고 이념적으로 과격하며 과도하게 정치세력화되어 있고 혐오스러운, 함께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협의할 수 ‘없는’ 존재로 보는 것이 여기에 해당된다.

실제로 1970년부터 최근까지 미국에서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자들이 자신과 같은 당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또 다른 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에 대해 느끼는 온도를 살펴보면 최근에는 같은 당을 지지하는 사람들(공화당-공화당, 민주당-민주당)에 대해 느끼는 온기보다 다른 당을 지지하는 사람들(공화당-민주당, 민주당-공화당)에 대해 느끼는 차가움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편에 대한 긍정적 인식보다 상대편에 대해 느끼는 거부감이 더 커졌고 이것이 사람들의 투표 같은 정치적 행동에 점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경향이 확인되고 있다.

또한 서로를 점점 이해할 수 없는 외계인 또는 괴물 같은 존재로 인식하면서 실제 차이보다 상상한 차이가 훨씬 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한 조사에서 공화당 사람들에게 민주당 사람들 중 몇 %가 성소수자일 것 같은지 물었을 때 약 32%일 것이라고 응답했지만 실제로는 6% 정도라는 결과가 있었다.

반대로 민주당 사람들에게 공화당 사람들 중 몇 %가 연 소득 3억 이상일지 물었을 때 평균적으로 약 38%가 부자일 것 같다는 응답이 나왔지만 실제로는 2%에 불과하다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

핸드폰만 열면 타인과 연결되는 시대에 점점 더 서로를 잘 알지 못하게 되었다는 아이러니한 결과다.

핀켈 등은 여기에 대해 ‘공정성’이나 팩트 체크보다 입맛에 맞는 미디어만 소비하는 현상과 여기에 편승해서 자극적이고 편향된 내용을 만들어내는 미디어, 자극적인 내용들이 더 많이 노출되도록 하는 소셜 미디어, 파벌주의를 적극 이용하는 정치인과 외부세력(예, 러시아의 선거개입), 여느 때보다 사회적 지위와 자산의 양극화가 심한 사회경제적 토양 등이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

그 결과 지금의 정치인들은 정책을 선전하기보다 상대편이 반칙을 사용하고 있는데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바보 되는 것이라는 식의 혐오와 파벌주의를 적극 활용하는 방식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 학자들의 분석이다.

일례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팬데믹이 닥쳤을 때 미국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팬데믹을 잘 헤쳐 나갈 자원들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었지만(예를 들어 빠른 백신 개발) 질병이 ‘정치화’되는 바람에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 사용, 백신 접종 등의 행동이 파벌에 따라 크게 달라지고 말았다.
그 결과 100만명 사망이라는 믿기 어려운 수치를 경험하고 말았다.

파벌주의가 심화될수록 정치와 크게 상관 없었던 상식적인 행동들마저 파벌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민주 사회를 지키기 위한 상식도 얼마든지 해당될 수 있다.

상대편이 싫어질수록 상대편과는 대화를 시도할 가치조차 없다고 단정지을수록 테러와도 같은 극단적이고 반민주적인 행동으로 얼마든지 국정을 마비시킬 수 있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국회의 기능을 마비시키기 위한 시도들이 행해진 걸 보면 아주 낯선 이야기는 아니다.

한창 팬데믹으로 인해서 거리두기 등의 정책들이 시행되고 있을 때 당연하다고만 생각했던 정책들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을 보고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이상한 이유로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후 가정 폭력이나 아동 학대가 크게 증가하고 워킹맘들의 경우 직장생활을 그만둘 수 밖에 없었던 사례들이 많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의 짧은 생각과 달리 집보다 밖으로 나가는 것이, ‘학교’에 가는 것이 안전한 사람들이 많이 존재했고 생계활동에 보다 많은 제약이 있는 사람들이 다수 존재했다.
삶은 복잡하고 모두에게 좋은 정책이란 존재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또한 인간의 나약함을 이해하고 나면 인간의 악함 또한 이해하기 어렵지는 않은 것 같다.
물론 이해하는 것과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여서 이해는 되더라도 싸우기로 마음 먹을 수 있다.

그래도 최소한 ‘같은 인간’이라고 보는 자세는 지켜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래야 상대를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을 때 저지를 수 있는 많은 실수를 피해갈 수 있지 않을까?

Finkel, E. J., Bail, C. A., Cikara, M., Ditto, P. H., Iyengar, S., Klar, S., ... & Druckman, J. N. (2020). Political sectarianism in America. Science, 370(6516), 533-536.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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