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서야 깨닫는 자기 수용에 대한 교훈

여성의 날 2023 SelfLove

사진: Divaris Shirichena , Unsplash

자신을 좋아하는 것으로 평화를 얻을 수는 없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으로 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피하는 것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해 봅시다.
자기 수용은 따뜻한 목욕을 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자신에 대해 기분 좋게 
느끼는 것도 아닙니다.
일기를 쓰고, 촛불을 켜고,  
충분하다  는 확신이 들 때까지 긍정적인 말을 적는 것도 아닙니다 .

아니요.

진정한 자기 수용은 잔혹하고, 느리고, 때로는 외로운 과정입니다.
그리고 거의 항상 생각보다 늦게 이루어집니다.

자기 수용은 자신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 사람들은 젊음에 대한 환상이 사라질 때까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신감과 평정심이 있는 그대로 완벽하다는 말을 듣는 데서 온다고 배우곤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깊은 결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큰 짐을 품위 있게 짊어질 수 있습니다.

그게 바로 역설이에요.
나이가 들면서야 비로소 그걸 이해하기 시작하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더 잘 알 때까지 배우지 못하는 자기 수용에 대한 10가지 교훈을 소개합니다.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선물입니다.

어렸을 때 세상은 꿈을 좇으라, 원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합니다.
듣기 좋은 말이지만, 직접 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30세가 되면 무서운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인간의 잠재력은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이죠.

손이 떨린다면 훌륭한 외과의가 될 수 없습니다.
모두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처럼 플레이한다고 말해도 프로 축구 선수가 될 수 없습니다.
한 시간도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한다면 베스트셀러 소설을 쓸 수 없습니다.
충동을 다스리거나 만족을 미루지 못한다면 성공적인 기업가가 될 수 없습니다.

당신은 자신의 기질이라는 단단한 벽에 부딪힙니다.
주의력, 신체 능력, 두려움의 한계를 발견하게 됩니다.
자신의 성격의 한계를 깨닫게 되고, 그 한계는 협상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마침내 그것을 인정하면 자신이 무엇이 될 수 있는지 알게 됩니다.

무엇이든 되고 싶다는 환상을 내려놓을 때, 당신은 무언가가 되는 과정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진짜 무언가, 자신에게 맞는 무언가.

자기 수용은 자신의 잠재력을 과장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 잠재력을 마주하는 데서 옵니다.
그리고 자신의 본성에 대해 스스로에게 거짓말하는 것을 멈출 때, 진정으로 성공하는 삶을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과거의 당신은 바보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미완성일 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젊은 시절의 자신을 경멸하며 돌아본다.
난 정말 어리석었어. 너무 자신감 없었지. 너무 눈이 멀었지.

하지만 이 문제를 보는 더 나은 방법이 있습니다.
당신이 틀린 것이 아니라, 단지 아직 형성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돌이켜보면 일종의 오만함이 있습니다.
우리는 더 잘 알았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지혜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냥 무시했죠.

하지만 현실적으로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은 아직 도구를 갖추지 못했습니다.
충분히 보지도 못했고, 충분히 실패하지도 못했습니다.
충분히 이해하지 못할 만큼 고통받지도 못했습니다.

목소리를 내기 두려워하는 십 대가 한심한 게 아닙니다.
그저 성장이 끝나지 않았을 뿐입니다.
24살에 해로운 관계에 머물러 있는 여자가 약한 게 아닙니다.
다시는 참을 수 없는 것을 배우고 있는 겁니다.
30살에 야망에 푹 빠져 자신을 잃는 남자가 얕은 게 아닙니다.
그는 성공이 줄 수 없는 것을 여전히 배우고 있는 겁니다.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며 수치심만 느낀다면, 당신은 진정으로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입니다.
당신은 여전히 ​​현명하게 태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린 자신을 바보가 아닌 견습생처럼 대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바로 그때 연민이 가능해집니다.
그리고 연민은 자기 수용을 현실로 만들어줍니다.

당신은 당신의 감정이 아닙니다 (하지만 당신은 감정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감정은 강력합니다.
하지만 기만적이기도 하죠. 특히 어릴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실패자처럼 느껴져서 스스로 실패자라고 믿게 됩니다.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껴져서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지루함을 느껴서 직장, 연애, 그리고 삶 전체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가장 나쁜 점은, 당신은 그런 감정이 어떻게든 당신의 행동을 정당화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폭발하고, 닫히고, 포기하고, 물러나고, 그런 다음 당신은 마치 그것이 통행증인 것처럼 자신의 감정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주의 깊게 살펴보면 감정은 일시적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감정은 왔다가 가고, 조수처럼 밀려왔다가 가라앉습니다.
감정은 날씨이고, 당신은 기후입니다.

좋은 기분을 마치 신성한 목적지처럼 쫓는 걸 그만둬요.
매 순간 정렬되거나 흐름에 몰입할 필요도 없어지죠.

그 대신, 당신은 자신의 감정이 진짜라는 걸 깨닫기 시작하지만, 그게 전부 진실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아니요, 그렇다고 억누른다는 뜻은 아닙니다.
무시하거나, 부정하거나, 거부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다만 무거운 짐을 지는 사람처럼 조심스럽게 짊어지는 법을 배우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천천히, 당신은 당신이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꾸준한 사람, 든든한 사람.

그것이 자기 수용이에요.

특히 당신이 정직하다면, 당신은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없습니다

자기 수용은 미움받는 것을 기꺼이 감수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움받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사랑받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때 우리는 종종 어울리려고 애쓰며 스스로를 얽매곤 합니다.
자신의 의견을 숨기고, 관심사를 속이고, 관심 없는 농담에도 웃고,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네라고 말합니다.

왜냐고요? 거절당하는 게 너무 두려우니까요.
누군가 떠나면 뭔가 잘못된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친구들과는 편하게 지내고 싶어 하거든요.

그래서 당신은 역할을 합니다.
가면을 쓰고요.
그리고 한동안은 효과가 있죠. 평화를 유지하고, 호감을 얻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지치고, 단절된 상태이기도 합니다.

결국, 운이 좋다면, 삶은 그 두려움을 걷어차 버릴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당신이 한 번 목소리를 냈을 때 누군가 떠나갈 수도 있고, 어쩌면 당신이 경계를 그었을 때 누군가 당신을 비웃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당신은 마침내 공연을 멈추고 어떤 사람들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세상은 끝나지 않습니다.

사실, 이상한 일이 일어납니다.
당신은 더 가벼워진 기분을 느낍니다.
솔직함은 가짜 관계를 잃게 하지만, 진짜 관계를 얻게 해준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성과가 아닌 진실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자기 수용의 대가는 가면만 좋아하던 사람들을 잃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건 치러야 할 가치가 있는 대가입니다.

왜냐하면 남는 사람들은 당신을 보고 있고, 그때 다른 사람들과 진정한 관계를 맺게 되거든요.

자신을 고치려고 노력하는 것은 자기 거부의 한 형태입니다

자기계발의 세계는 미묘한 거짓말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바로 당신이 망가졌다는 것, 당신은 하나의 프로젝트라는 것, 당신은 고쳐야 할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으면, 개선을 위한 모든 노력이 거부의 행위가 됩니다.

당신은 평화를 원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참을 수 없어서 명상합니다.
당신은 걱정 때문에가 아니라, 자신의 몸을 싫어해서 운동합니다.
당신은 호기심 때문에가 아니라, 부끄러움 때문에 책을 읽고 습관을 쫓습니다.

미묘하지만 부식성이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의 밑바탕에는 '나는 있는 그대로 괜찮지 않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은 당신이 만들어가는 모든 것을 망칠 겁니다.
성장을 좇지만 결코 온전함을 느끼지 못할 겁니다.
목표를 달성하지만 여전히 사기꾼처럼 느껴질 겁니다.
발전하지만 결코 평화를 느끼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당신은 망가졌기 때문에 성장하는 게 아닙니다.
당신이 가치 있기 때문에 성장하는 거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놓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당신은 결함 있는 부품이 달린 기계가 아닙니다.
당신은 이야기를 가진 사람입니다.

자기 수용은 변화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변화를 이끄는 증오를 놓아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에 뿌리를 둔 변화도 변화입니다.
하지만 당신의 존재를 희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을 상처입힌 사람들도 당신처럼 길을 잃었습니다

아버지가 악하지 않았다는 걸 깨닫는 이상한 순간이 있어요.
어머니가 차갑지 않았다는 걸 깨닫는 순간도 있죠.

당신은 마침내 그들이 사람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흠이 있고, 두렵고, 혼란스럽고, 불완전한 사람들이지만, 익사하지 않고 인생을 헤쳐나가려고 노력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상처를 지닌 사람들이었고, 그 상처 중 대부분은 결코 이해되지 않았고, 더군다나 치유되지도 못했습니다.

어쩌면 그들이 당신을 실망시켰을지도 몰라. 어쩌면 거짓말을 했을지도 몰라. 어쩌면 당신을 때렸을지도 몰라. 어쩌면 사라졌을지도 몰라. 어쩌면 술을 너무 많이 마셨을지도 몰라. 어쩌면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도 안 했을지도 몰라.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야기의 경계가 모호해집니다.
더 이상 그들이 악당이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더 이상 당신의 고통을 그들의 실패의 증거로 여기지 않습니다.
더 이상 그들의 실패를 당신의 실패에 대한 온전한 설명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용서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일어난 일이 괜찮았다는 뜻도 아닙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 손아귀에서 손을 뗐습니다.

당신은 그들이 쓴 이야기 속의 등장인물이 아니라, 당신 자신의 이야기의 작가가 되기 시작합니다.

그건 배신이 아니야. 그건 해방이야.

그리고 그러한 해방 속에서 미묘하지만 강력한 일이 일어납니다.
당신은 자신을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당신의 이야기의 희생자로서가 아니라,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형성하는 사람으로서 말입니다.

당신은 아직도 자신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젠가 마침내 목적지 에 도달 할 것이라는 조용한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상징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게 될 것입니다.
혼란은 사라지고, 자기 의심은 사라지고, 따뜻한 빛처럼 명료함이 자리 잡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이렇습니다.
당신은 결코 당신 자신을 완벽하게 알아낼 수 없습니다.

25살이 되면, 당신은 자신이 변했다고 맹세합니다.
35살이 되면, 25살 때의 당신이 움츠러듭니다.
50살이 되면, 당신은 당신이 이미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교훈들을 여전히 헤매고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당신은 스스로에게 모순됩니다.
성장하다가도 퇴보합니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고, 자신의 가치관에 반하는 행동을 합니다.
스스로를 놀라게 합니다.
때로는 감탄스럽고, 때로는 후회스러운 방식으로요.

불편하죠. 하지만 실패가 아니에요.
인간다움이죠.

자기 수용은 완벽한 정체성을 돌에 새기는 것이 아닙니다.
주저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마주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이렇습니다.
내가 모든 답을 다 알지 못할 수도 있고, 결코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나를 위해 나설 만한 가치가 있다는 거죠.

그건 약함이 아니야. 성숙함이고, 강인함이지. 그리고 네, 그거면 충분해.

자신을 찾는 것으로 평화를 얻는 것이 아니라, 누구가 될지 선택함으로써 평화를 얻습니다.

이것은 특히 젊은이들에게 팔리는 가장 위험한 거짓말 중 하나입니다.
즉, 자아는 어딘가에 묻힌 보물처럼 숨어 있다는 것입니다.

올바른 여행을 떠나고, 올바른 책을 읽고, 올바른 사람을 만나고, 올바른 환각제를 복용하면, 당신은 진정한 자신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커튼 뒤에는 고정되어 있고 진정한 자아가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다.

당신의 모습은 당신이 무엇을 하는지, 무엇을 견뎌내는지, 그리고 무엇으로부터 도망치지 않으려 하는지에 따라 결정됩니다.
당신은 계시를 찾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지는 것을 통해 진정한 당신이 됩니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빅토르 프랭클이 의미는 반응 능력에서 나온다고 말했을 때 의미한 바가 바로 이것입니다.
즉, 반응이 아닌 선택으로 삶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당신은 제 시간에 나타나는 사람, 진실을 말하는 사람, 중요한 순간에 움츠러들지 않는 사람이 되기로 선택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러한 선택들이 정체성을 형성합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영구적이지는 않지만, 충분히 그럴 만합니다.

그리고 결국, 당신은 평화가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평화는 자신에게조차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는 훈련에서 옵니다.

진정한 자기 수용은 당신이 특별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을 멈출 때 일어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의 많은 부분을 눈에 띄고 싶어 합니다.
남들과 다르고, 특별하고 싶어 합니다.
사람들이 당신에게는 뭔가 특별한 게 있어요라고 말해주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일찍부터 시작됐습니다.
똑똑하다거나, 재능이 있다거나, 매력적이라는 칭찬을 받았죠. 그런 칭찬에 흥미를 느꼈고, 얼마나 특별해 보이는지로 자신의 가치를 가늠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죽음이라도 되는 것처럼 평범함을 두려워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특별해지고 싶은 욕망은 결코 채워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인상적인 사람이 되더라도, 절대 충분하지 않아. 항상 나보다 나은 사람이 있어. 항상 더 빛나는 사람이 있어. 항상 더 똑똑하고, 더 예쁘고, 더 건강한 사람이 있어.

그리고 어느 날, 아마도 많은 상처와 실망을 겪고 난 후에, 당신은 중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 특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냥 여기 있을 수 있어. 인간적인 존재야. 흠이 많지만. 백 가지 면에서 특별할 것 없는 존재라도, 사랑과 존중, 그리고 존엄을 온전히 누릴 자격이 있어.

그 깨달음은 당신을 겸손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동시에 당신을 자유롭게 합니다.

더 이상 연기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미지를 다듬는 것도 그만두고, 충분히 잘한다는 느낌을 받기 위해 다르다는 인상을 받을 필요도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멈추는 순간, 비로소 현실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자기 수용이 마침내 의미를 갖게 되는 순간이죠.

가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목적이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목적은 사람들이 쫓는 반짝이는 것들 중 하나예요.
마치 자기에게 딱 맞는 것을 찾으면 완전해지는 것처럼요.

예전에는 그렇게 믿었다.
뭔가 큰 일을 해야 한다고. 흔적을 남길 만한 뭔가. 책, 이론, 운동 같은 거. 사람들이 내가 중요해!라고 말하게 만드는 그런 뭔가.

하지만 어렸을 때 저는 할아버지가 생애의 마지막 10년을 오리에게 먹이를 주고, 정원을 가꾸고, 슈퍼마켓에서 낯선 사람들과 천천히 인내심 있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는 회사를 키우지도 않았고, 선언문도 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을 주목했습니다.
그는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그는 세상에 박수를 보내지 않고도 조용히 애정을 쏟았습니다.

그 일을 통해 저는 지금 생각해 보면 큰 교훈을 얻었습니다.
가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특별하거나 뛰어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사명 선언문 같은 건 필요 없어요.
영향력을 극대화할 필요도 없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처럼 살 필요도 없어요.

가끔 당신의 가치는 당신이 숨을 쉬고, 하늘을 바라보고, 꼭 필요하지 않을 때에도 친절하게 행동하는 데 있습니다.

목적은 발견하는 게 아닙니다.
삶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갈 때 생겨나는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존재를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그 안에 살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마지막 생각

자기 자신과 평화를 이룬 사람들에게는 조용한 존엄성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완벽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완벽하다고 가장하는 것을 그만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걸음걸이가 더 느리고, 더 조심스럽게 말하며, 덜 당황하고, 더 쉽게 웃으며, 모든 논쟁에서 이길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자애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지붕 위에서 소리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눈빛에서 그걸 볼 수 있죠.

그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누가 아닌지 알고 있습니다.

자기 수용이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슬로건이나 만트라, 거울 속에 있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진실은 그렇습니다.
진실은, 그것을 얻어낼 때, 그 무엇보다 가장 해방적인 것입니다.

외로움과 그리움

두 가지 모두를 위한 집 찾기

Unsplash 의 Isaac Quesada 가 찍은 사진

딸아이가 지금 대학에서 집에 왔어요.
여기 온 지 일주일 됐고 오늘 떠나요.
지금은 그냥 놀러 오는 정도예요.
이제 집에 있는 시간보다 멀리 떨어져 사는 시간이 더 많은데, 이번에는 집에 있는 동안 왠지 모르게 불안한 기분이 들어요.
 
이 기분은 뭘까? 오늘 아침 침대에 누워서 스스로에게 물었어요.
딸아이가 어린 시절 침대에서 아래층에서 자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지만, 왠지 불안했어요.

커피를 내리고 명상을 하려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문득 이 가슴 뭉클함이 뭔지 깨달았다.
그녀가 여기 있는데도 나는 그녀 때문에 외로워요.
왜 딸아이 때문에 외로울까? 조용한 부엌에 앉아 이 모든 감각들을 되짚어 보았다.
빠른 심박수, 긴장된 목, 눈 뒤의 압박감. 심호흡을 하고 딸아이가 여기, 지금 집에 안전하게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그때 내가 느끼는 감정은 외로움이 아니라 그리움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미리 알고 있다는 느낌이 그리워요.
딸아이가 깨기 전 아침마다 계란을 삶거나 과일을 썰어서, 딸아이가 먹을 건강한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다음 날을 대비해 영양을 공급해 주던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딸아이와 제가 서로를 이해하고, 제가 딸을 잘 돌보고,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그런 확신과 확신이 그리워요.

더 이상 가질 수 없는 것, 어쩌면 진정으로 가져본 적이 없었던 것을 그리워합니다.
제게 엄마가 되는 건 쉬운 일이었습니다.
저는 그 일을 사랑했고, 제 역할에 대해 결코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다행히도 저는 일을 멈추지 않았고, 제 삶을 꾸려나갈 수 있었습니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제가 선택하고 우선순위에 두었던 역할이었고, 제가 소중히 여겼고 지금도 여전히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역할이었습니다.

혼란스러웠던 어린 시절을 보낸 저는 딸에게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좋았습니다.
딸을 위해 규칙적이고 영양가 있는 식사와 잘 정돈된 도서관을 만들어 주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딸이 즐거워할 수 있는 밤과 휴일 의식을 만들어 주는 것은 제게 큰 기쁨이었습니다.
딸이 자라면서, 처음에는 10대 초반이었고, 그다음에는 십 대가 되면서, 저는 다시 한번 제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사춘기 소녀 양육에 관한 책을 읽고, 친구들과 아이들이 올바른 길로 나아가도록 돕는 혁신적인 전략에 대해 이야기하고, 딸에게 안정감과 힘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의식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딸아이가 학교에 없을 때면 우리는 자주 이야기를 나누고, 딸아이는 자기 생활에 대한 문자를 정기적으로 보내요.
여러모로 우리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좋은데, 그리움이 저를 답답하게 해요.
이 시간을 마음껏 즐기고 싶어요.
오늘 아침 딸아이가 깨어났을 때, 저는 산책을 가기로 했어요.
제가 딸아이와 함께 하는 가장 좋아하는 활동 중 하나였거든요.
휴대폰이나 다른 방해 요소는 절대 없이요.

신발을 신는 순간, 딸이 그날 오후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는 사실로 인해 불안한 기분이 여전히 남았지만, 딸과 함께 질 좋은 몇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에 감사했습니다.

커피숍에서 언덕을 내려와 공원 쪽으로 걸어가는데, 저 멀리 레이니어 산이 보였다.
그때 딸아이가 짜증 나는 말을 했다.
딸아이는 왜 그런 말을 하느냐고 물었다.
보통은 이런 식의 대화는 그냥 넘기고, 화제를 바꿔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오늘 아침 왠지 모르게 나는 그 말을 막았다.
아침부터 긴장감이 고조된 탓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딸아이에게 이의를 제기했다.

이번에는 그녀가  그냥 넘어가자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제가 밀어붙이고 이야기를 나눠보니 결국 그녀의 말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녀도 제 말을 이해하게 됐어요.
어른 두 사람이 갈등 끝에 공통점을 찾아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제 안의 무언가가 부풀어 올랐어요.
외로움과 그리움, 혼란스러움이 저를 가득 채우더니 마침내 터져 나왔죠. 저와 딸아이가 놀라서 울기 시작했어요.

마치 며칠 동안 쏟아진 폭우 끝에 마침내 터져버린 댐처럼, 제 통제를 벗어난 일이었습니다.
딸아이가 제 눈물에 걱정하는 모습을 보며, 저는 슬퍼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그저 이 새로운 삶의 단계에 적응하고, 이 새로운 국면을 이해하고 그 안에 온전히 머물려고 노력했을 뿐이었습니다.

우리는 계속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몇 번이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딸아이가 집에 온 지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마음이 열리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리움을 내려놓고, 그리움이 드러날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해 주니, 새로운 엄마의 삶을 위한 공간이 생겼다.

우리는 한 시간 더 걸으며 삶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녀와 제 삶에 대해서요.
우리 관계에 대해서도, 그리고 지금 우리가 어떻게 달라졌지만 어떻게든 더 나아졌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온갖 이야기를 나누었고,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그동안 느꼈던 압박감은 사라졌습니다.
딸아이가 갓난아기였을 때 느꼈던 괜찮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딸아이가 하루 종일 지쳐 잠들고, 침대 옆에는 좋아하는 책들이 헝클어져 있고, 머리카락은 말끔히 씻고, 간지러운 목줄은 잘라낸 좋아하는 잠옷을 입고, 품에 안긴 강아지 인형은, 숨소리는 거칠게 들썩이는 딸아이의 모습. 저는 문을 닫고 살짝 열어 두었습니다.
또 하루가 지나고 딸아이는 무사히 잘 지내고 있습니다.
모든 게 잘 되고 있습니다.

그날 밤 딸아이의 비행기가 늦게 출발해서, 다음 날 아침 출근할 때 딸아이가 충분히 쉴 수 있을 만큼 집에 올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습니다.
하지만 그런 걱정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지는 않았습니다.
잠이 부족하더라도 딸아이가 잘 해낼 거라는 걸 알았으니까요.
지금은 이렇게 되었습니다.
딸아이가 비행기에서 잘 수 있도록 무릎에 베개를 만들어 주던 시절은 이제 끝났습니다.
오래전부터 그래왔죠. 이제 딸아이가 자기 무릎에 베개를 만들어 줄 날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심박수가 달라지고, 턱이 부드러워지고, 이마가 드디어 편안해지는 게 느껴진다.
옛날이 그리운 건 사실이지만, 지금

누군가가 감정적으로 굶주리고 있다는 6가지 징후(그리고 이에 대한 대처 방법)

당신이나 당신이 아는 누군가가 이러한 징후를 보인다면, 그것이 정상이라고 여기는 것을 그만둬야 할 때입니다.

Anthony Tran이 Unsplash에 올린 사진

어떤 사람들은 배고프지만 먹을 게 없어서가 아닙니다.
그들은 미소 짓고, 웃고, 일하러 갑니다.
인스타그램에 행복한 사진을 올립니다.
하지만 그들의 내면은 굶주려 있습니다.

그들에게 부족한 건 칼로리가 아닙니다.
바로 정서적 자양분이죠. 그리고 그들은 그 사실조차 모릅니다.

사랑이 거래처럼 느껴지는 삶을 당연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솔직함은 드물고,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것이 감당할 수 없는 사치라고 생각하는 삶을 말입니다.

괜찮아요.
라고 말하지만, 눈빛은 제발 날 알아봐 줘. 돌봐 줘.라고 말합니다.
이건 감정적 기아이고 치명적입니다.

사람이 감정적으로 굶주려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6가지 징후를 소개합니다.

그들은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약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감정적으로 굶주렸다는 분명한 신호 중 하나는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하는 것이 자신을 약하게 만든다고 믿는 것입니다.
가끔만이 아니라 
항상 그렇습니다 .

그들은 혼자 있는 게 더 낫다고 스스로를 설득합니다.
사람들에게 의존하는 건 위험하다고, 감정은 다른 누구에게도 들릴 필요가 없는 개인적인 문제라고요.

누군가 직접 말해준 게 아니라, 경험을 통해, 특히 성장하면서 배운 것들이죠. 그들이 손을 내밀 때마다 아무도 답장을 보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울면 강해지라는 말을 들었고, 겁에 질려도 아무도 위로해주지 않았습니다.
도움을 요청해도 침묵과 좌절, 그리고 거절만 반복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메시지는 명확해졌습니다.
넌 혼자야. 약함을 드러내지 마. 누구도 필요 없어. 위로를 기대하지 마.

울면 강해지라는 말을 들었고, 두려움을 느끼면 홀로 남겨졌습니다.
도움을 요청해도 침묵, 눈알 굴리기, 또는 거절만 반복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분명하게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넌 혼자야. 약함을 드러내지 마. 누구도 필요 없어. 위로를 기대하지 마.

극복하기 위해, 그들은 그 고통을 자부심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들은 극도로 독립적이 되었고, 그것을 힘이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힘이 아니었습니다.
생존이었습니다.

이제 어른이 된 아이들은 모든 걸 스스로 해냅니다.
도움을 요청하기보다는 차라리 지쳐버리는 편을 택하죠.
누군가 도움을 주면, 그들은 어깨를 으쓱하며 아니, 괜찮아.라고 말합니다.
심지어 물에 빠져 죽을 지경일 때조차도 미소를 지으며 내가 다 해결해 냈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외로운 늑대라고 농담을 하거나 사람들은 항상 당신을 실망시킨다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독립성 아래에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들은 마음을 열면 사람들이 실망시키거나, 떠나거나, 예전처럼 관심을 끊을까 봐 두려워합니다.

사실,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한다고 해서 당신이 약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죠.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안겨지고, 이해받고, 보살핌을 받고 싶어 합니다.

만약 당신이 항상 누구 없이도 살아남을 수 있다고 느낀다면, 당신의 말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건 용기가 아닙니다.
그건 감정적 굶주림입니다.
그리고 그걸 깨닫기 전까지는, 당신은 계속해서 고립을 힘으로 착각할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르기 때문입니다.

감정적으로 굶주린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하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비밀로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모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뭐 하고 싶어?라고 물어보면 원하는 대로 하세요.
라고 대답할 겁니다.
지금 당장 뭐가 필요해?라고 물어보면 괜찮아요.
라고 대답할 겁니다.

하지만 그들은 괜찮지 않습니다.
그들은 오래전에, 자신들의 욕망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입니다.

그들은 삶의 많은 시간을 다른 사람들의 욕구에 집중하느라 자신의 목소리가 묻혀 버렸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혼란스러운 가정의 평화 유지군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욕구를 표현하면 갈등, 거부, 또는 죄책감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일찍부터 배웠을지도 모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은 더 이상 자기 자신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대신, 부모, 선생님, 친구, 배우자 등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추측하고, 그에 맞춰 자신을 형성하는 데 능숙해졌습니다.
그들은 평화 유지를 하나의 개성으로 만들었습니다.

이제 어른이 된 그들은 내면의 목소리를 잃어버렸습니다.
결정을 내려야 하거나 경계를 정해야 할 때면 멍해집니다.
우유부단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욕망과 단절되어 있습니다.
무엇을 먹을지, 어디로 갈지, 누가 될지와 같은 기본적인 것들조차 불가능한 질문처럼 느껴집니다.

그들은 타인에게 자신을 맞추도록 훈련받았습니다.
직감에 귀 기울이는 대신 주변 상황을 파악하도록 훈련받았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데 능숙해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감정적 건망증입니다.

감정적 결핍은 사람들을 자기 자신에게 낯선 사람으로 만든다.
그들에게 욕망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것을 탐구할 안전함이 부족했을 뿐이다.

좋은 소식이 있죠? 이 단절은 영구적이지 않습니다.
욕망은 근육과 같습니다.
그리고 작은 질문들을 통해 다시 키울 수 있습니다.
무엇이 기분 좋은가?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오늘 하루를 조금 더 보내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누군가가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하면 그들은 깊은 불편함을 느낀다

이것은 아마도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적 기아의 가장 잔인한 신호일 것입니다.

감정적으로 굶주린 사람들에게는 친절이 친절로 보이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친절하게 대해주면, 진심으로 친절하게 대해주면, 그들은 정말 의심스러워해요.
불안해하죠.

미소 짓고 고맙다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불안해합니다.
칭찬은 그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선물은 그들을 죄책감에 빠뜨립니다.
부드러운 말투는 그들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그들의 마음은 온갖 질문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들은 무엇을 원하는 걸까요? 왜 그들은 친절하게 대하는 걸까요? 내가 조종당하고 있는 걸까요?

왜냐고요? 조건 없는 친절에는 익숙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누군가 아무런 의도 없이 친절할 수 있다는 걸 믿지 못하는 거죠.

심지어 상대방을 밀어낼 수도 있습니다.
농담을 하거나, 가볍게 여기거나, 화제를 바꿔보세요.
친절을 원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신경계가 친절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배은망덕하지 않습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단지 오랫동안 부드러움에 굶주려 왔기 때문에, 그것이 진짜라고 믿지 않게 되었을 뿐입니다.

감정에 굶주린 사람들은 부드러움을 갈구합니다.
하지만 마침내 부드러움이 찾아오면 그들은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당신은 죄책감이나 두려움 없이 친절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 즉 안전한 관계를 계속해서 방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너무 오랫동안 독성 관계를 유지합니다

감정적으로 굶주린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원치 않는 유해한 관계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습니다.
위험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해서가 아니라, 이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학대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습니다.
실제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는 축소해서 말합니다.
항상 이렇게 심한 건 아니야. 또는 그냥 힘든 걸 겪고 있을 뿐이야. 같은 말을 합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들은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혼란스러움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고통스러울지라도 누군가에게 원한다는 사실이 눈에 띄지 않는 것보다 낫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측할 수 없는 사랑 속에서 자랐을지도 모른다.
한순간의 따뜻함, 다음 순간의 침묵이나 분노. 그래서 이제는 그 모순이 익숙하게 느껴진다.

사랑은 좀 아프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런 감정적 고통은 그냥 거래의 일부일 뿐이지. 조심조심 걷는 게 떠나는 것보다 낫다고.

친구들이 넌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어.라고 말하면 고개를 끄덕이지만, 그 말은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 중 일부는 여전히 더 나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랑은 권리가 아니라 보상이라고 말이다.

물론, 어려운 관계를 유지하는 모든 사람이 정서적으로 굶주리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재정적 압박, 아이들, 두려움, 트라우마 본드, 또는 종교적 신념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감정적 기아는 종종 사람들이 약간의 고통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조용한 역할을 합니다.

치료사 네드라 글로버 타와브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랑을 받아들입니다.

감정적으로 굶주린 사람이 평화를 누릴 자격이 있다고 믿을 때까지, 그들은 연결이라는 가면을 쓴 고통에 계속 안주할 것입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사랑을 얻으려고 노력합니다

감정적으로 굶주린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만으로는 사랑받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사랑을 얻으려고 노력하죠.

그들은 돕는 사람, 경청하는 사람,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는 사람, 결코 '아니오'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 됩니다.

누군가 화가 나면, 그들은 달려가 해결해 줍니다.
친구가 힘들어하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함께합니다.
파트너가 멀어져 보이면, 요리하고, 청소하고, 칭찬하고, 가진 것 이상을 베푸는 등 과하게 베풉니다.

하지만 이런 일은 평화에서 비롯된 게 아닙니다.
두려움에서 비롯된 겁니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충분히 도움이 된다면, 어쩌면 그들이 머물지도 몰라. 내가 충분히 준다면, 어쩌면 마침내 사랑받는다고 느낄지도 몰라.

이런 사고방식은 대개 사랑에 조건이 붙었던 초기 관계에서 비롯됩니다.
어쩌면 그들은 잘했을 때만 칭찬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조용하고, 순종적이고, 성공했을 때만 포옹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랑은 얻어야 하는 것이지, 거저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그들은 같은 악순환을 반복합니다.
누군가 조건 없이 자신을 사랑해 줘도, 그들은 그 사랑을 믿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자신을 증명하려고 애씁니다.

진정한 사랑은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하지만 감정적으로 굶주린 사람에게는 그 진실이 거의 불가능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때조차도, 자신이 충분하다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는요.

그들은 모든 것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입니다(심지어 그것이 자신에 관한 것이 아닐 때에도)

감정적 기아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충분하지 않다는 조용하고 끊임없는 두려움을 안고 있으며, 이는 그들이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에 드러납니다.

그들은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라도 모든 것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입니다.

누군가가 그들에게 짧은 문자를 보내면, 그들은 내가 뭔가 잘못한 건가?라고 생각합니다.

친구가 계획을 취소하면, 친구들은 나를 만나고 싶어하지 않는 모양이야라고 생각합니다.

파트너가 조용한 것 같으면, 그 사람이 나한테 화가 났나 보다.
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주의를 끌려는 게 아니야. 옛날부터 써오던 생존 전략일 뿐이야.

감정이 예측 불가능하거나 안전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란 탓입니다.
어쩌면 부모가 어느 날은 차갑고, 다음 날은 따뜻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사랑은 추측 놀이처럼 느껴졌기에, 그들은 모든 어조의 변화, 모든 멈춤, 모든 눈빛 하나하나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는 법을 배웠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어른이 된 그들은 감정적으로 극도로 예민한 상태로 살아갑니다.
중립적인 행동을 거부로 해석합니다.
침묵은 처벌처럼 느껴지고, 거리를 두는 것은 버림받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들은 신경계가 과거에 갇혀 있어서 사랑이 언제든 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관계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트라우마 전문가 니콜 르페라 박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알을 밟고 살다 보면 모든 것을 자기 중심으로 만드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자아가 아니라 생존입니다.

감정적으로 굶주린 사람이 다른 사람들의 기분이 항상 자신의 가치를 반영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치유가 시작됩니다.
그런 중립적인 태도는 거부가 아닙니다.
때로는 사람들이 그저 지쳐 있을 뿐이며, 그것은 당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마지막 생각

만약 당신이 이런 징후들을 보인다면, 당황하지 마세요.
스스로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리고 제발, 사과하지 마세요.

당신은 망가진 게 아니에요.
박탈당했을 뿐이죠. 분명 차이가 있어요.

이건 누군가를 탓하라는 게 아니에요.
더 이상 스스로에게 거짓말하지 말라는 거예요.

감정적 굶주림은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하지만 당신의 치유는 당신의 책임입니다.
세상에 더 강한 당신을 빚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당신은 사랑받고, 안전하고, 온전함을 느낄 자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름 붙이지 않는 건 고칠 수 없고,
정상이라고 계속 부르는 건 치유할 수 없어.

여기서 시작하세요:

  • 자신이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럴 때 두려움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껴보세요.
  • 불편함을 느끼더라도 친절을 베풀어보세요.
  • 당신의 존재에 대해 너무 많이 설명하지 마세요.
  • 목소리가 떨리더라도 원하는 것을 말하는 연습을 하세요.
  • 특히 자신에게, 당신이 느끼는 바를 진실로 말하세요.
  • 사랑받으려면 완벽할 필요는 없습니다.
  • 붙잡히려면 유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 당신은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이 바로 관계 그 자체입니다.

굶는 걸 멈출 때까지, 당신은 외로움을 독립이라고 부르고, 무감각함을 평화라고 부르고, 생존을 힘으로 착각할 겁니다.

생일 축하해

오늘 저는 68세가 되었습니다. 연옥의 나이입니다.

Unsplash 의 Nick Fewings 가 찍은 사진

여기로 오는 방법

50대부터 노인 할인을 받기 위해 애썼던 기억이 납니다.
어떤 식당이나 호텔 등은 노인에게 가격 할인을 해주긴 했지만, 각자가 그 호칭이 어떤 사람에게 적용되는지 제멋대로 정의하는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저는 노인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기억하는 것조차 어려웠 
습니다 .

마침내 65세가 되자 모든 의심이 사라졌습니다.
저는 공식적으로 그 선을 넘어 노인들을 위한 저렴한 보험료의 세계로 들어섰습니다.
메디케어가 제 건강 보험이 되었고, 전통적인 은퇴 목표 연령인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은퇴하지 않았고 70세까지 계속 일할 계획이었습니다.

계획이 바뀌어 67.5세에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제가 목회하던 교회에서는 제가 더 오래 목회하길 원했지만, 젊은 목사님이 함께하면 더 잘 섬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제 자신이 조금씩 약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전성기 시절의 페이스를 유지하려고 애쓰다 보니, 
제가 겪고 있던 기력이 
점점 쇠퇴하는 것 같았습니다.

야간 운전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저녁 예배와 회의를 진행하는 것이 제 직업상 필수였기 때문에, 특히 비가 올 때 어둠 속에서 운전하는 것이 점점 더 불편해졌습니다.

정상에 오르는 것이 ​​너무 오래 버티는 것보다 더 매력적이었습니다.
경력이 쇠퇴해 가면서 여러 파트타임 일자리를 고려해 봤습니다.
지역 자동차 대리점의 셔틀 운전기사가 매력적으로 보였습니다.
차를 수리하는 동안 차고까지 태워다 주고 데려다 주던 반 은퇴한 운전기사들이 항상 나를 즐겁게 했습니다.

저를 태워주신 신사분 중 한 분은 은퇴한 로켓 과학자셨습니다.
흥미로운 대화였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오늘은 로켓을 우주로 보내는 데 일조했고, 내일은 뇌외과 의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그런 생각을 하니 그 일이 더 재밌어 보였습니다.
매일매일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여기에 있음

뭔가 잘한 게 분명해요.
재정 상황이 생각보다 훨씬 나아지고 있거든요.
하지만 제 시간은 그 대가로 누가 줄 수 있는 돈보다 더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어제 스트레스가 사람을 늙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라는 기사를 읽었어요.
은퇴는 목회보다 스트레스가 덜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저는 오랫동안 헌혈을 해왔는데, 가끔씩 혈소판이나 뭐 그런 걸 약간의 돈을 받고 기증해 주겠다는 제안을 받습니다.
제 생각은 헌혈은 하겠지만, 돈으로 살 수는 없다는 겁니다.
제가 헌혈을 팔면 제가 정한 가격만큼은 감당할 수 없을 테니까요.
제 시간에 대해서도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제 남은 시간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요? 좋은 일에 기부하겠지만, 팔면 왠지 모르게 시간이 싸질 것 같은 느낌이 들죠.

기대하고 있어요

68세인 저는 마치 연옥에 있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아직 충분한 여력이 남아 있는데도 정규직으로 복귀할 생각조차 들지 않거든요.
건강 상태도 양호하니 정부에서 수표를 받는 대신 어딘가에서 일을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아직 젊다는 건 알지만, 노인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싶지도 않습니다.

평생 할인 혜택을 쌓아온 제 나이 때문에 여러 종류의 보험이 더 비싸지는 시점이 바로 이겁니다.
운전면허 시험을 다시 치르게 하는 경우가 있나요?

마지막 분기에 접어들었지만, 요양원에 갈 필요는 전혀 없어요.
나이는 참 묘한 기준이죠. 제 주변에는 몸 상태가 좋은 친구들도 있고, 아직 여기까지 오지 못한 친구들도 있어요.
항상 그래왔던 거 아닌가요? 다섯 살짜리 아이들 중에 유치원 갈 준비가 된 아이도 있고, 그렇지 않은 아이도 있고, 18살짜리 아이들 중에 집을 나설 준비가 된 아이도 있고, 그렇지 않은 아이도 있어요.
70대까지 일할 수 있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고요.

오늘 아침, 72세의 은퇴 대령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내일 바로 파병될 만큼 건강해 보이셨습니다.
일주일에 6일씩 헬스장에 다니시는 그분은 젊은 세대를 많이 부끄럽게 만드시더군요.
그분은 제가 건강해 보이고 앞으로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을 거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의 말이 맞기를 바랍니다.
저는 나이 드는 걸 늦추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우리 중 누구에게도 내일이 약속된 건 없습니다.
바로 지난달, 제 사촌이 65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잘생기고 건강도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4월에는 높이 날았지만 5월에는 격추되었다”, 프랭크 시나트라의 That's Life, 1966

언제나처럼 오늘 하루가 전부인데, 마침 오늘이 제 생일이기도 하고요.
부모님은 안 계셔서 조랑말 타고 놀러 가실 수 없어요.
언니들이 전화하면, 우리는 추억에 잠기고 나이 드는 것에 대한 진부한 얘기를 늘어놓을 거예요.
아이들은 언젠가는 자기도 세상에 태어나게 될 거라는 걸 알기에 어떤 기분인지 물어볼 거예요.
나이 든 친구들은 제가 얼마나 행운아인지 말해 주고, 어린 친구들은 저를 놀리며 농담을 건네기도 할 거예요.
친구란 원래 그런 존재니까요.

어느새 내일이 되고, 다음 주가 되고, 6개월 후가 될 거예요.
내 나이를 잊을 날도 있고, 접착제 공장에 들어갈 준비가 된 날도 있을 거예요.
프랭크의 말을 다시 한번 인용하자면, 인생이란 그런 거야.

평온을 위한 10가지 규칙

삶이 시끄러워질 때마다 내가 계속 돌아가는 곳.

더욱 차분한 마음을 원하시나요? 오늘부터 10가지 간단한 규칙을 실천해 보세요.<BR>

Freepik 의 이미지

우리는 스스로에게 폭력을 행사하도록 교육받았습니다.
너무 과하고, 너무 지저분하고, 너무 뒤떨어져 있다고요.

그 평화는 우리가 얻어야 할 것입니다 . 우리에게 '잘못된' 모든 ​​것을 고친 뒤에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은 모든 위협을 스캔하기 위해 계속 경쟁합니다.

답장 안 한 친구.
배 위에 있던 작은 멍울.
월요일에 당신 동료가 한 말 중에 아직도 가슴 아픈 말이 있어.

객관적으로 삶이 좋은 때조차도, 평온함은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이러한 생각에 자각적으로 대처하는 법을 배우는 것, 즉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즉 단지 생각이라고 명명하고, 그것들이 지나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 대부분이 전혀 배우지 못한 진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감정이 우리 몸을 통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90초입니다.
물론 우리가 감정에 영양을 공급하지 않는다면 말이죠.

우리는 완벽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지 우리 마음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 진짜 현실로 돌아갈 수 있도록 부드럽게 일깨워주는 것이 필요할 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깊은 곳에서 이 소중한 순간, 이 소중한 삶이 우리가 가진 전부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꾸준히 평정심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되는 10가지 규칙을 소개합니다.
여러분에게도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1. 이것은 통과 규칙이 될 것입니다

속이 메스꺼워지는 그 느낌? 가슴이 답답하고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그 느낌?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아요.
하지만 항상 끝나요.

당신은 전에도 힘든 일을 겪어봤잖아요.
이건 그저 또 다른 파도일 뿐이에요.
파도는 지나가죠.

지금은 도저히 오를 수 없는 산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줌아웃하면 알게 될 겁니다.
융기된 덩어리입니다.
어쩌면 작은 산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영원히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인생은 힘들다 - 의심할 여지 없이. 하지만 인생은 당신을 무너뜨리기 위해 있는 게 아니야. 당신을 성장시키기 위해 있는 거야.

너무 벅차게 느껴질 때, 시선을 바꿔보세요.
영원의 렌즈로 이 순간을 바라보세요.
당신은 여전히 ​​안전하다는 것을, 여전히 서 있다는 것을,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내일이 더 나을 것이라고 믿는다면 오늘의 어려움을 견딜 수 있습니다.
- 틱낫한

2. 당신은 이미 승리했습니다.

네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는 이미 알고 있잖아. 천국일 수도 있고, 열반일 수도 있고, 평화로운 무(無)일 수도 있지.

어느 쪽이든 잃을 건 없어요.
 
평화를 되찾을 거예요.
 
괜찮을 거예요 .

그러니 위험을 감수해 보는 건 어떨까요? 말해보세요.
프로젝트를 시작하세요.
좀 더 열심히 사랑하세요.

당신은 날개를 달고 태어났는데, 왜 기어다니며 삶을 사는 것을 선호합니까? — 루미

당신은 태어난 순간 이미 승리했습니다.
지금 여기 있습니다.
숨 쉬고, 이 거칠고 아름다운 삶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3. 모든 것을 가볍게 여기세요-규칙을 지키세요

우리는 돈, 지위, 이정표 같은 결과를 미화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다음 직장, 좋은 배우자, 완벽한 집 같은 것들 말이죠.

그리고 우리는 그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우리가 도착할 때까지는 평화나 기쁨을 누릴 자격이 없다고 믿는 것이죠.

하지만 결승선을 향해 쫓다 보면 여정의 모든 기쁨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마치 돌멩이가 가득 든 배낭을 항상 메고 다니는 것처럼 삶이 무겁게 느껴집니다.

바꿔 말하면, 모든 것을 가볍게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

압박감이 아닌 호기심으로 목표에 접근하세요.
어지러운 중간 지점을 즐기세요.
 
얻는 것뿐만 아니라 베푸는 
것을 축하하세요.

결국 우리가 여기 온 이유는 배우고 경험하기 위해서일 뿐이거든요.

그곳까지 가는 길을 즐길 수 없다면, 어디에 가는 의미가 있겠는가?

도착하는 순간은 덧없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어떻게 
살아 가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서두를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을 위한 것은 때가 되면 반드시 찾아올 것입니다.
 
— 모건 하퍼 니콜스

당신이 투자한 만큼, 아니 그 이상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믿으세요.
그리고 그때까지는 
가볍게 생각하세요 .

4. 판단은 거울 법칙이다

우리는 항상 우리 자신의 렌즈, 즉 우리의 문화, 우리의 상처, 우리의 경험을 통해서만 세상을 바라봅니다.

우리가 노력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세계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단은 슬며시 끼어듭니다.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우리가 더 낫다는, 혹은 더 나쁘다는, 혹은 서로 다르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하지만 진실은 이렇습니다.
판단은 그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반영합니다.

그건 자존심에서 비롯됩니다.
우월감을 느끼려는 것, 혹은 우리 자신의 수치심을 이해하려는 것.

남을 판단하는 자신을 발견하면 잠시 멈추세요.
한 걸음 물러서세요.
이 규칙을 되새기고 몸이 부드러워지는 것을 느껴보세요.

판단하는 자는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이해하는 자는 결코 판단하지 못할 것이다.
— 윌슨 카나디

엄마가 된다는 것은 나에게 힘든 경험을 통해 이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살아보기 전까지는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5. 당신은 무슨 일이 있어도 가치가 있습니다.

온 세상이 당신에게 그렇지 않다고 말하더라도, 당신이 충분히 훌륭하다는 것을 누구에게도 증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척하는 건 그만둬. 연기하는 것도 그만둬. 증명하는 것도 그만둬.

이 보편적인 진실을 들어보세요.
 
당신은 여기 있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습니다.

어떤 아기가 충분한지, 어떤 아기가 부족한지 판단하는 우주적 심판관은 없습니다.
상상이나 할 수 있나요? 말도 안 돼요.

그런데도 우리는 스스로 충분하지 않다고 믿으며 자랍니다.
물론, 스스로 충분하지 않다면 말이죠.

하지만 '충분하다'는 느낌은 더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오는 게 아닙니다.
지금 당장 그것을 믿기로 선택하는 데서 옵니다.

당신은 당신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그것을 소유하거나,
아니면 당신의 이야기 밖에 서서 당신의 가치를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 브레네 브라운

당신의 이야기 속으로 걸어 들어가세요.
당신은 이미 충분합니다.
항상 그래왔으니까요.

6. 앉아서 규칙을 따르세요(달리고 싶을 때에도)

속이 메스꺼워지거나 목이 쉬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 몸이 잠시 멈추고 생각을 정리하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고통스러운 순간에는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신호를 인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다른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잠시 멈춰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내면을 돌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불편한 느낌은 며칠 또는 몇 주 동안 지속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잠시 멈추고 , 심호흡을 하고 , 현재에 집중한다면 단 90초 만에 더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감정이 스며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 바로 이 정도인데,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그것과 함께 앉아. 그것과 함께 앉아. 그것과 함께 앉아. 그것과 함께 앉아.

달리고 싶어도.

그것이 무겁고 어렵더라도요.

길을 잘 모르더라도요.

치유는 감정을 통해 일어납니다.

— 레베카 레이

7. 친절은 가장 현명한 선택 규칙입니다.

저는 똑똑해지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가능할 때마다 친절하게 대하는 법을 배웠어요.

저는 완벽하지 않아요.
항상 옳은 건 아니지만, 제가 옳은 일을 할 때는 모두가 많은 고통을 덜 받게 되죠.

화가 났을 때 친절과 이해심을 선택하면 나쁜 감정이 바로 해소됩니다.

친절하게 반응하는 것은 상대방이 자신의 어려움을 치유하고 극복하는 데 한 걸음 더 다가가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그들의 경험을 인정하고 연민을 베푸는 것을 통해 그들을 볼 수는 있습니다.

그런 존재감?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고난 게 아니죠. 하지만 우리 모두는 그런 존재감을 키워갈 수 있습니다.
우리 함께 조금씩 더 똑똑해지자고요.

친절함은 가장 높은 형태의 지성이다.

— 웨인 티즈데일

8. '발이 있는 곳에 있으라' 규칙

당신의 발은 항상 현재에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마음은요?

그것은 내일로, 또는 어제로 몰래 빠져나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표류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세요.
마법이 있는 곳이 바로 거기예요.
삶이 실제로 일어나는 곳, 실시간으로, 온전한 색으로.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해. 지금 다시 보는 순간도, 기대하는 순간도 아니야.

이것 하나만요.

무슨 일이 일어나든 이 순간이 당신에게 기쁨이 닿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순간은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주의를 기울이면 그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 틱낫한

9. 두 가지가 참이라는 규칙*

우리의 본능은 우리의 진실이 진실 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 하지만 그런 사고방식에 갇혀 있으면 모두가 손해를 보게 됩니다.

왜냐고요? 누군가에게 자신의 감정이 진짜가 아니라고 말하는 건,
상대방이 자신을 방어하거나 마음을 닫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단절시킵니다.

우리는 모두 과거, 이야기, 환경에 따라 형성된 약간씩 다른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정확히 같은 순간을 경험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둘 다 사실일 수 있습니다.
둘 다 현실이고, 둘 다 타당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정말 강력한 의미입니다.

난 당신을 믿어요.
당신을 보고, 이해해요.

'두 가지 사실은 동일하다'는 규칙 에 따라 살면 관계가 깊어지고, 갈등이 완화되며, 평정심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 규칙의 이름은 베키 박사의 책 ' Good Inside'에서 따왔습니다.

10. 항상 당신의 축복을 세어보세요-규칙

사람은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부족한 것에 초점을 맞추는 사람

과, 자신에게 이미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사람입니다.

둘 다 같은 상황에 놓였을 때, 누가 더 생동감을 느끼나요?
더 현재에 충실한가요? 더 평화로움을 느끼는가요?

당신은 이미 답을 알고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문제를 완전히 없애주지는 않지만, 문제를 다루는 방식을 바꿔줄 수 있습니다.

간단하죠. 하지만 삶이 어지러워지면 우리는 잊어버립니다.

그러니 기억해 두세요.
무슨 일이 있어도 감사할 일은 항상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집중하면 신경계 전체가 변화합니다.

약간의 동기 부여가 필요하신가요?

연구에 따르면 감사하는 마음은 기분과 웰빙을 개선하고, 면역력을 강화하며, 치유를 돕고, 정신을 예리하게 만듭니다.

인간은 삶이 가져다주는 모든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부처가 된다.
- 오쇼

이런 작은 변화를 만들어 보세요.
그러면 당신의 인생 전체가 바뀔 수 있습니다.

일기장, 지난주에 어떤 노인에게 구애를 받았어요

나이 드는 것은 어색하고 이상하고 불편합니다.

AI가 Canva에서 만든 이미지입니다.
머리와 몸이 뒤집힌 새끼 고양이가 불쌍하네요.

사랑하는 일기장에게,

이상하고 우울하네요.
제가 이렇게 나이가 많은데도 '나이 든 남자들'이 저에게 접근하다니 믿기지가 않아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30대 남자들이 저를 쳐다보곤 했는데 말이죠.

그 시절은 이미 오래전에 지나갔어요.
저도 이제 늙었잖아요.
어쩌다 이런 일이 생긴 걸까요?

이 문제에 대해 누구에게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신뢰할 수 있는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있어요.

삶의 축하

몇 주 전, 우리 마을에서 70대 여성 한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알고 계셨죠. 정말 고마운 분이셨습니다.

지난주, 그녀가 자주 찾던 작고 아담한 술집에서 그녀를 위한 모임이 열렸습니다.
그녀의 삶을 기리는 자리였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거의 외출을 안 해요.
사람 만나는 것만큼이나 외출하는 것도 싫어하지만, 그래도 그녀를 기억하기 위해 외출은 했어요.
작은 모임이었고, 거기 있는 모든 사람을 알고 있었어요.
여긴 작은 마을이잖아요.
모두가 서로를 알고 있었죠.

존과 헨리(가명)가 내 옆 바에 앉아 있었다.
둘 다 70대였다.
헨리는 꽤 괜찮아 보였다.
그와 이야기를 나눈 건 처음이었다.
흥미로운 사람이다.

존, 꽤 오래 알고 지냈지만, 그와 이야기하거나 알아가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 적은 없었어요.
그날 밤 그는 할 말이 많았고, 그 모든 게 저를 몹시 불편하게 했어요.

소름돋음

일기, 내 나이와 남자들 때문에 이렇게 불쾌하고 불편하고 좌절스럽고 우울했던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안 나. 있잖아, 난 아직도 내가 25살이라고 생각하고, 왜 젊은 남자들이 더 이상 나한테 접근하지 않는지 이해가 안 가.

뭐가 문제야? 난 아직도 섹시하고 매력적이잖아, 안 그래?

음, 분명히 그렇긴 한데, 이제는 나이 들고 소름 돋는 남자들한테만 그러는 것 같아. 나도 이제 그 정도 나이가 됐잖아. 너무 슬퍼.

일기, 언제부터 이런 일이 있었던 거야? 나이 든 남자랑은 사귀고 싶지 않아. 그래도 30대 초반의 핫한 남자랑은 사귀고 싶어. 뭐, 내가 아직 거기 있다고 생각하고, 그들이 날 원한다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아요.
저는 더 이상 거기에 있지 않아요.
저는 지금 62살이에요.

존이 내게 더 가까이 다가와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내 취향에는 좀 너무 가까웠다.
사실, 이 남자는 개인 공간이라는 개념이 없는 것 같다.
으악.

그리고 이 대화는 성적으로 부적절한 내용으로 이어졌습니다.

존, 정말이야? 내가 너한테 이런 대화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인상을 준 적이 있었어? 으악.

이후에는 고압 세척이 필요할 것 같아요.

일기, 너무 불편하고 더러워지는 기분이었어. 난 그에게 이건 TMI고 그의 개인적인 일은 알 필요 없다고 말했어. 그러자 그는 입을 다물었어. 조금은.

그러고 나서 친구 헨리한테 술이나 한잔 사달라고, 아니면 나랑 더 친해지라고 부추겼어. 야, 존, 이제 꺼져. 난 이제 질렸어.

모든 게 너무나 불쾌하고 역겨웠어요.

그냥 역겹고 늙어버린 기분이었어요.
이 모든 경험 때문에 다시 늙어버린 기분이 들었어요.
평소에는 늙었다고 느끼지 않는데 말이죠. 나이 드는 걸 어느 정도 건강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은데, 이건?

역겨워.

일기, 이제 외출조차 하고 싶지 않아. 이래서 사람들이 싫어. 외출도 싫어. 내 나이를 떠올리게 하고, 더 이상 25살이 아니라는 사실도 생각나고, 젊은 남자들은 날 원하지 않고, 나이 든 남자들은 나한테 덤벼들고,

난 정말 엿같아.

벌써 이렇게 많은 세월이 흘렀다는 게 믿기지 않아. 정말 큰 깨달음이었지. 내게는 필요 없었던 일이라고 확신하는 그런 깨달음 말이야.

내 조용한 짜증

좋아, 그럼 시작해 볼까. 짜증 좀 내야겠다.
그런 종류 말이야. 자기 맘대로 안 될 때 버릇없이 자란 애들이 하는 그런 종류 말이야. 응, 그런 종류 말이야.

제발 지금 당장 몇 분 동안이라도 소리 지르고 울고 발을 구르게 해 주세요.
다 끝나면 괜찮아질 거예요.
약속해요.

이 나이 먹는 헛소리 그만둬야 해! 이제 짜증 나기 시작해서 씨발 할머니 된 기분인데, 사실 할머니는 아니지만, 내 자식이 애를 못 낳아서 그런 거야. 어쨌든.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다시 스물다섯 살이 되고 싶어. 젊음도 되찾고 싶고, 활기도 되찾고 싶고, 늙은이들이 나한테 괜히 꼬시는 것도 그만둬야 해! 으악!!

좋아, 다 됐어. 이제 기분이 좀 나아졌어. 술집에서 꼬셔진 게 그렇게 기쁜 거냐고? 전혀 아니거든. 집에 돌아오니까 샤워라도 해야 할 것 같았거든.

하지만, 만약 예의 바르고 착하고 친절한 노인네에게 꼬시게 된다면, 괜찮을 것 같아요.
좀 잘생겨도 괜찮을 것 같고요.
그리고 술집에서는 절대 안 돼요.
세상에, 저는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는데 말이죠.

있잖아, 난 뭐든 좋아해. 다만 존처럼 으스스한 늙은이는 싫어. 으악.

어쨌든, 일기야, 그냥 너한테 이 얘기를 하고 싶었어.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어서 글을 써야 했어. 내 의견 나눠줘서 고마워.

나이 드는 것은 이상하고 어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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