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안의 상징 ‘돋보기 안경’, 안약으로 대체될까?

눈의 노화로 가까운 물체가 안 보이는 '노안' 현상을 해결하는 안약이 개발돼 임상 시험 진행 중이다.<BR>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장자원 기자

아르헨티나 연구팀,특수안약으로 노안 환자 시력 개선 성공

눈의 노화로 가까운 물체가 안 보이는 '노안' 현상을 해결하는 안약이 개발돼 임상 시험 진행 중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흔히 노안 환자들이 가까운 물체를 위해 착용하는 돋보기 안경이 안약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생겼다.
외국의 한 연구팀이 특수안약으로 시력을 높이는 실마리를 찾아낸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노안 첨단 연구소'는 14일(현지 시각) 유럽 백내장·굴절학회(ESCRS)에서 "자체 개발한 안약을 투여해 노안 환자들의 시력을 유의미하게 개선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노안은 나이가 들면서 가까이에 있는 물체에 초점을 맞추는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하나의 질병이라기보다는 초점을 조절하는 수정체의 노화로 발생하는 현상에 가깝다.
노안 환자들은 책이나 핸드폰 등 눈에 가깝게 들고 사용하는 물체를 식별하는 것이 어려우며,
이를 교정하기 위해 돋보기 안경을 착용하곤 한다.
이와 관련해 연구팀은 눈의 동공을 축소시키는 작용을 하는 약제 '필로카르핀'을 활용한 안약을 개발했다.
이 안약에는 필로카르핀의 부작용으로 자주 발생하는 염증을 억제하기 위해 소염진통제 '디클로페낙' 성분도 포함됐다.
연구팀은 안약의 효과를 검증하기 위해 평균 연령 55세의 노안 환자 766명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무작위로 세 그룹으로 나눴다.
각각의 그룹에는 필로카르핀 농도를 1%,
2%,3%로 조절한 안약을 처방했다.
각 그룹의 환자들은 하루에 두 번(잠에서 깬 직후와 6시간 후) 안약을 투여했고,
연구팀은 시력이 불안정하거나 눈에 불편함을 느끼는 환자에겐 1회 자율적인 추가 투여를 허용했다.
그 결과 환자들은 유의미한 수준의 시력 개선을 경험했다.
1% 농도 안약을 투여한 그룹 환자들의 99%는 첫 번째 투약 후 한 시간 만에 표준 시력 검사 결과가 두 단계 상승했다.
2% 그룹 환자의 69%는 검사 결과가 세 단계 상승했고,
3% 그룹의 84%가 검사 결과 세 단계 상승했다.
임상에 참여한 전체 환자들의 약 83%는 노안 현상이 문제 없는 수준의 근시 교정 효과를 경험했다.
이같은 시력 개선 효과는 꾸준히 약을 투여한 환자들에 한해 평균 434일,
최대 2년 동안 이어졌다.
일부 환자는 투약 직후 일시적으로 시력이 희미해지거나 두통이 생기는 등 경미한 부작용을 경험했으나 치료를 중단한 환자는 없었다.
학회 발표 연자로 나선 조반나 베노치 연구소장은 "돋보기 안경은 너무 불편하고 수술은 걱정된다는 노안 환자들이 많았다"며 "거의 모든 임상 참가자가 안약의 효과에 만족했지만,
노안의 중증도에 따라 적정 안약 농도가 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로서는 돋보기 안경을 완전히 대체하는 것이 어렵겠지만,
최소한 안경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수준의 도움은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자원 기자 jang@kormedi.com

지난 3월 서울 여의도에서 시민들이 이동하고 있다.<BR> 연합뉴스

 

김정석 |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한국인구학회장

새 정부가 출범한 지 100일이 넘었다.
대통령이 후보 시절 내걸었던 인구 관련 공약들이 국정 과제 속에서 자리를 찾지 못한 듯하다.
그래서인지 인구정책 소식은 잠잠하다.
혹시 정부가 대책도 효과도 없다고 포기한 것일까. 염려되고 불안하다.
그러나 조용히 긴 호흡으로 준비하고 있어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이라면 오히려 다행이다.
요란한 발표가 없다고 해서 진지한 준비까지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정적은 무책임한 포기일 수도,
다가올 도약을 위한 숨 고르기일 수도 있다.
인구는 강물이다.
어떤 해에는 불어나고,
어떤 해에는 줄어든다.
지역에 따라 급히 흐르기도 하고,
잔잔히 머물기도 한다.
넘쳐 걱정인 곳도 있고,
메말라 고생하는 곳도 있다.
그러나 큰 강은 한순간에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
오랜 세월 이어지며,
과거의 지류와 현재의 물줄기,
미래로 향하는 흐름이 함께 섞여 있다.
저출산,
고령화,
가족 변화 모두 이 강 속에 뒤섞여 흐른다.
그래서 인구 문제를 단편적 지표만 보고 말하거나,
단기 변화를 과장하는 것은 본질을 놓치는 일이다.
정책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단순히 둑을 쌓아 범람을 막거나 억지로 물을 가두는 장치가 아니다.
과거의 산아 제한이나 최근의 출산 장려책이 그런 모습이었다.
정책은 능동적인 물길 설계여야 한다.
강물을 모으고,
갈래를 내고,
속도와 방향을 조정하는 일이다.
청년 세대가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주거와 일자리를 안정시키는 것은 물을 모으는 작업이다.
다양한 가족 형태를 제도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새로운 물길을 내는 일이다.
일·가정 양립이 가능한 노동 제도를 만드는 것은 물살의 속도를 조율하는 일이다.
정책은 강물의 본성을 이해하고,
그 흐름을 설계하는 안목 위에 서야 한다.
정책 설계자들이 반드시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정치적 유혹이다.
선거를 앞두고 단기 효과만 노린 공약이 반복되어왔다.
출산 장려금 액수를 높이거나 이름만 바꾼 일회성 혜택을 내놓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인구의 흐름은 선거 주기에 맞춰 움직이지 않는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방향이 흔들린다면 긴 호흡의 설계는 불가능하다.
인구정책은 정권을 넘어서는 합리적 기반 위에서 세워져야 한다.
국민들 또한 단기 구호에 현혹되지 않고,
지속 가능한 대책을 요구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점은 타이밍이다.
아무리 설계가 정교해도 시기를 놓치면 소용없다.
지금은 출산과 고령화 모두에서 골든타임이다.
출산 측면에서는 가임기 인구가 아직 충분히 있어 출생아 수를 늘릴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다.
이 시기를 놓치면 인구 구조 자체가 바뀌어 기반을 되살리기 어렵다.
동시에 베이비부머 세대가 본격적으로 노년기에 들어서며 고령 인구가 급격히 늘고 있다.
이들은 교육 수준과 건강,
활동성이 높다.
적절한 제도와 환경이 뒷받침된다면 돌봄,
노동,
시민 참여에서 중요한 역할을 이어갈 수 있다.
준비는 길게 하되,
결정적 시점을 놓치지 않는 것. 이것이 인구정책의 생명선이다.
한두달 전,
국가정책회의에 참여 중인 한 학계 인사가 필자를 초대했다.
인구연구 인프라 강화를 국정과제에 포함하자는 논의를 위한 자리였다.
외국 출장으로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내가 작성한 제안서를 회의 자료로 쓰겠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제안서에는 국립인구연구원 설립안이 담겨 있었다.
중앙에 본원을 두고 지방에 분원을 설치해 연구 인력을 양성하고,
지역 맞춤형 정책 역량을 확보하자는 구상이다.
작은 일화이지만,
물밑에서 이미 준비가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희망의 신호로 읽고 싶다.
정책은 잠잠해 보여도 인구의 강물은 쉼 없이 흐른다.
지금의 고요가 단순한 공백이 아니라,
미래 세대가 건널 다리의 기초를 단단히 놓는 시간이기를 바란다.
인구라는 강물은 세대를 건너 이어진다.
그리고 현재의 강물 속에는 청년의 좌절과 기대,
중년의 책임과 고민,
노년의 불안과 바람이 함께 흐른다.
그 강물은 눈앞에서 급히 바뀌지 않지만,
각자의 삶이 모여 흐름을 만들고,
그 흐름이 결국 지형을 바꾸고 풍경을 새로 만든다.
지금의 선택과 설계가 먼 훗날 한국 사회의 모습을 결정할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의 고요 속에서 더욱 신중하면서도,
동시에 사람들의 삶을 중심에 둔 인구정책이 필요하다.

선수교체의 시간

이영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초빙석학교수·前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이영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초빙석학교수·前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대한민국의 디지털 전환 속도는 세계 최고다.
5G 세계 최초 상용화,
가구 인터넷 접속률 99.9%로 OECD 1위,
성인 스마트폰 사용률 98%,
비현금 결제 비율 95%. 전 국민이 디지털 네이티브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 놀라운 디지털 환경을 뒷받침할 국가 거버넌스는 준비돼 있을까?
현실은 기대 이하다.
국회의원 300명 중 이공계 출신은 22대 22명,
21대 29명,
20대 24명으로 역대 어느 때도 10%를 넘지 못했다.
정부 고위직 역시 이승만 정부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평균 8%대,
최근 20년으로 압축해도 평균 10% 안팎에 머물렀다.
경제는 디지털로 달리는데,
거버넌스는 여전히 아날로그에 묶여 있다.
이 간극은 이미 현장에서 심각한 결과를 낳고 있다.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 당시 'API 연동'을 중개행위로 오인해 핀테크 서비스가 멈췄다.
가상자산 과세는 추적 시스템 등 기본 인프라조차 없이 추진돼 번복을 거듭하며 정책 신뢰성마저 잃었고,
 NFT·메타버스는 기준 부재 속에 산업 전체가 불확실성에 시달렸다.
공공 클라우드는 보안만 강조하다 효율성을 놓쳤고,
국정감사에서는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조차 혼동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이는 단순한 착오가 아니다.
정책 설계자들이 기술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다.
주변국들은 어떨까? 싱가포르는 2014년 '스마트네이션 프로젝트'와 함께 정부기술청을 설립해 직원의 80% 이상을 민간 기술 전문가로 채웠다.
그 결과 UN 전자정부 평가 1위,
세계경제포럼 디지털 경쟁력 2위를 달성했다.
중국은 중앙지도부의 3분의 1 이상이 이공계 출신으로,
'중국제조 2025'와 '디지털 실크로드'를 추진하며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의 중심에 섰다.
일본은 2021년 디지털청을 신설하며 총 직원 600명 중 200명(33%)을 민간 전문가로 채용하고 총리 직속으로 강력한 권한을 부여했다.
디지털 선도국인 에스토니아는 정부 내 기술 전문가 비율이 45%에 달해 'e레지던시' 제도로 10만명 이상의 디지털 시민을 확보했다.
공통점은 분명하다.
디지털 시대,
기술을 아는 이들이 정책을 주도하고 있다.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속담은 디지털 시대에 “알아야 국정을 한다”로 바뀌어야 한다.
단순히 이공계 출신 숫자를 늘리자는 게 아니다.
디지털 경제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는 인력이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는 구조적 요구다.
기술을 모른 채 정책을 짜면 오류가 반복되고 규제 불확실성은 혁신을 가로막는다.
더 나아가 미래를 읽지 못하는 리더십은 국가 자원을 낭비하고 국익을 희생시킨다.
변화는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
국회 내 이공계 비율을 높이고,
부처별 기술 전문가를 배치하며,
상임위마다 '기술 전문 보좌관제'를 도입해야 한다.
공무원 디지털 역량 교육을 의무화하고,
디지털 거버넌스를 전담할 부처를 신설해야 한다.
산업계·학계·정부가 함께하는 신산업 상시 협의체도 필수다.
이는 선택이 아니라 글로벌 경쟁에서 낙오하지 않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산업화의 기적을 이룬 선수들은 이제 시대의 끝자락에 서 있다.
기술 변화는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는데,
우리의 거버넌스는 여전히 선형적으로 움직인다.
이 간극이 커질수록 정책과 현실의 괴리는 깊어지고,
국가는 미래 경쟁에서 멀어진다.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5년 후엔 되돌릴 수 없다.
디지털 거버넌스 없이는 진정한 디지털 강국이 될 수 없다.
역사는 있었지만 미래는 없는 나라가 되지 않으려면,
지금이 바로 선수교체의 시간이다.
넥스트 거버넌스 없이는 넥스트 코리아도 없다.
이영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초빙석학교수·前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파도를 보지 말고,파도를 일으키는 바람을 보라

이춘우 호서대 특임교수

이춘우 호서대 특임교수영화 관상의 마지막 장면. “ 파도를 보지 말고,
파도를 일으키는 바람을 보라”. 이는 인간의 외형적 징후가 아니라 그 내면의 본질을 관찰함을 강조한 것으로 생각한다.
관상의 궁극적 지향점은 단순 보이는 얼굴 형태가 아니다.
인간의 심연,
즉 심층적 동기와 의지에 이른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진정한 통찰은 현상에 머무르지 않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근원적 조건과 보이지 않는 구조를 사유할 때 비로소 열린다.
마찬가지로 중국이라는 복잡한 사회,
경제 구조의 장 속에서 중국의 사업 성패를 가늠하려면 표면적 지표와 외형적 현상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내부를 관통하는 심층 구조와 보이지 않는 작동 원리를 읽어낼 때 비로소 올바른 전략과 통찰력이 형성된다.

루마니아 차우셰스쿠가 뒤흔든 중국 개혁 개방

중국 공산당의 이념 논쟁으로 지체되던 개방 국면에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1989년 12월 공산국가이자 혈맹 관계인 루마니아에서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의 실각과 총살형이 발생한 것이다.
당시 루마니아는 공산당 독재로 인한 경제 정책의 실패로 극심한 경제난에 봉착했다.
이에 불만을 품은 시민들의 시위가 곳곳에서 발생했다.
차우셰스쿠는 군인을 앞세워 무력 진압을 시도했으나 결국 시민들에 의해 처형됐다.
당시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이 사태의 중국 내 전파로 인한 인민들의 동요를 우려했다.
이에 루마니아 사태가 중국에서 전파되는 것을 차단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중국 지도자들도 경제 정책의 실정이 이런 충격적인 파국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상황을 두려워했을 것이다.
그 해 6월에 발생한 텐안먼 사태를 상기시킨다는 두려움도 엄습했을 것이다.
더욱이 소련 공산당의 해체는 중국 공산당 지도부에게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덩샤오핑의 남순강화 중 남방지역 시찰 모습. / 바이두

덩샤오핑의 남순강화 중 남방지역 시찰 모습. / 바이두이런 급박한 대내외 환경으로 인해 88세 노구인 덩샤오핑이 1992년 건곤일척의 심정으로 ‘남순강화(南巡講話·덩샤오핑이 중국 남부 지역을 순회하며 개혁·개방의 지속과 시장경제 도입을 강력히 천명한 일)’를 강행한다.
그는 “사회주의에도 시장이 있고 자본주의에도 계획이 있다”고 강조하며,
개혁·개방에 부정적인 보수파를 향해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 추진을 선포했다.
이는 곧 흑묘백묘론에 기초한 중국식 시장경제의 확산과 현대화의 가속화를 예고한 사건이었다.

동북아 정치구조의 급격한 변화
1992년 세계 질서와 동북아 정치구조에 급격한 변화가 발생한다.
동서 냉전체제의 해체와 한국 북방외교의 결실인 한국과 중국간 정식 외교관계 수립이 이뤄진다.
독일 기업들의 독무대였던 중국 시장을 한국 기업들도 적극 개척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아울러 1990년대 초 동서 냉전의 해체,
세계무역기구(WTO) 설립 등 글로벌 경제질서가 재편된다.
여기에 대한민국의 급속한 경제발전 그리고 민주화 운동은 새로운 국가 발전 전략을 요구했다.
대한민국의 ‘세계화 정책’이 탄생한 배경이다.
이에 기업들도 적극적으로 세계 경영의 닻을 올린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의 세계 경영이 본격적으로 시동을 건다.

그런데도 우리 기업들은 중국 진출을 매우 부정적으로 여기고 실제 현지 투자는 거의 없는 실정이었다.
필자가 근무하던 기업도 경영진의 중국 투자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으로 중국 투자의 진전이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
다른 대기업도 투자보다는 중국과 수출입하는 정도의 규모가 적은 안정적인 사업을 진행하는 수준이었다.

1전 1승의 기회를 잡다

이런 부정적인 중국 투자 상황에서 새로운 돌파구가 열린다.
‘세계 경영’ 전략으로 동구 공산권 국가에 과감하게 투자하던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의 중국 투자가 실행된다.
한중 수교 첫해인 1992년 중국 소비자를 겨냥한 합작회사를 중국 내륙지역에 대담하게 설립한다.
당시 수출 기지 구축을 염두해두고 중국 공장을 세우는 삼성그룹의 투자와는 현저한 차이가 있는 전략이었다.
중국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중국 현지 투자 붐을 조성하는 계기가 된다.
중국 내수 시장을 목표로 한 한국기업의 중국 투자 결실은 실로 엄청난 결실을 잉태했다.
대한민국이 중진국 함정을 벗어나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주요 계기가 된 것이다.
또한 삼성과 현대그룹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가장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2000년 초부터 삼성의 전자제품은 중국 시장을 휩쓸고 있었다.
특히 삼성 핸드폰은 중국인들이 제일 선호하는 제품이 될 정도로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중국인들의 접대용 선물 리스트에 항상 최고의 인기 있는 제품으로 인정받았다.
여담이지만 필자가 삼성전자에 근무한 이유만으로 중국인에게 대접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삼성 브랜드 인기의 후광에 덕을 본 것이다.
삼성은 중국에서 시장 점유율이 무려 20%가 넘는 최고의 사랑받는 브랜드가 되었다.
이는 삼성전자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데 가장 큰 동력이 되었다.

2000년대 삼성전자가 출시한 휴대폰 일명 '애니콜 가로본능2(SCH-V600)'. /삼성전자 뉴스룸

2000년대 삼성전자가 출시한 휴대폰 일명 '애니콜 가로본능2(SCH-V600)'. /삼성전자 뉴스룸현대자동차도 중국에서 시장 점유율이 10%에 달하는 엄청난 성공을 발판으로 글로벌 탑(TOP) 브랜드로 성장한다.
이 외에도 LG,
 아모레퍼시픽 화장품,
오리온 초코파이,
농심 신라면 등 다수의 한국기업이 중국 시장에서 상당한 경제적 성공을 이루었다.
1990년대 필자는 한국기업 베이징사무소 대표로서 여러 대기업 경영자들과 교류하는 기회가 있었다.
한국 대기업의 회장으로부터 1990년 초 한국 기업가들이 중국 진출을 부정적으로 생각한 이유를 접할 기회가 있었다.
일본 기업가들로부터의 정보가 이유였다.
우리 기업가들이 중국 진출을 부정적으로 생각한 이유를 설득력 있게 상상해 볼 수 있었다.
그 당시 중국은 적대 국가로서 우리나라 기업가들이 중국에 대한 정보를 직접 접할 수 없었다.
그래서 대부분 그룹의 회장들이 일본의 대기업 총수들에게 중국 정보를 의존하는 상황이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일본은 중국 공산당에 대한 불신이 최고조에 이른 상황이었다.
이런 부정적 상황이 우리나라 그룹의 경영자에게 여러 통로로 전파된 것이다.
“절대로 중국 공산당을 믿고 투자하지 말라.” 이는 우리 경영자들로 하여금 한동안 중국 진출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했다.
독일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서 특수를 누리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도 당시 중국을 끝까지 오판하여 일본처럼 중국 내수 시장 투자에 실기를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앞에서 언급한 대로 일본은 2000년 이후 비로소 중국 내수 시장 공략을 시작하여 90년대 중국 특수를 실기함).우리는 과연 중진국 함정을 벗어날 수 있었을까? 삼성과 현대는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었을까? 역사의 가정은 허상이나 그래도 이런 상상은 아직도 등골을 오싹하게 만든다.
이제 1전 1승의 승기는 또 다른 큰 판으로 이어질 것인가?[전문가 칼럼] ①중국에 대한 오판이 잉태한 일본의 실기
[전문가 칼럼] ②서독의 어부지리⋯거침없는 중국 시장 진격[편집자주] 이춘우 호서대 특임교수는 한중 수교가 이뤄진 1992년 삼성 중국 지역 전문가로 대륙을 돌면서 중국과 인연을 맺은 후,
 CJ(제일제당) 중국사무소 대표를 지냈으며,
삼성전자 글로벌 마케팅실에서 근무했고,
현지에서 화장품 유통업체 카라카라를 창업하기도 했다.
2012~2017년에는 중국 50대 민영기업 신화련그룹의 투자수석고문을 역임한 바 있다.
이춘우 특임교수의 칼럼은 3주에 한번씩 연재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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