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람들과 어울리고 나면 우울한 기분이 드는 걸까요?

@hannaschonberg


예전에는 모임에 나가면 늘 도중에 자리를 뜨고 싶었어요.

실컷 재미있게 놀고 나서, 이제는 침대에 들어갈 일만 남은, 아주 영리하고 계획적인 저녁을 보낸 듯한 뿌듯함과 우쭐함을 느끼며 거리를 총총 내달려 집으로 돌아갔죠.

그런데 요즘은 도무지 집에 가고 싶지 않아요.

테이블 위에 빈 잔들과 빵 부스러기만 남긴 채 자리에서 일어날 때, 그리고 김 서린 유리문을 붙잡고, 거기에 쓰여 있는 말이 ‘미세요인지 ‘당기세요인지 확인할 때가 되면, 아주 끔찍한 기분이 들 테니까요.

떠들썩한 말소리는 사라져 고요해지고, 따뜻한 기운 대신 차가운 공기가 감돌죠.

뱃속에서는 찢어질 듯 날카로운 통증이 가슴을 타고 올라오고요.

원래 드라마틱하게 말하는 편이 아니에요.

꾸며내거나, 과장해서 표현한 것도 아니고요.

저는 1년 정도, 어쩌면 그보다 더 긴 기간 ‘사회적 교류 후 우울감(Post-Socialising Blues)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기분을 느끼고 있어요.
사람들과 헤어지면 마음속 블랙홀이 입을 벌려요.
피는 공허함으로 부글거리고, 너무, 너무 슬픈 기분이 들죠.
그런 기분이 드는 게 아주 싫어요.
왜 그런 기분이 드는지조차 모르겠어요.
모임 자리가 즐거웠던 날에는 더욱 혼란스럽고요.

처음에는 자주 보지 못한 친구들을 만난 날에만 그런 기분이 드는 줄 알았어요.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지만, 아이가 생겼거나, 멀리 이사를 가서 반년에 한 번씩 볼 수밖에 없는 친구들과 만난 날 말이에요.
그렇다면 제가 슬픈 것도 당연하겠죠.
‘우리 언제 또 만날 수 있을까? 헤아리다 그런 기분이 들었을 테니까요.
그렇지만 나중에는 자주 만나는 사람들, 아니 어떻게 보면, 지나치게 자주 만나는 사람들과 모임을 한 후에도 슬픈 기분이 들기 시작했어요.

혹시 모임에서 그다지 좋은 시간을 보내지 못해서 그런 기분을 느끼는 건 아닐까?
어느 순간 궁금해졌어요.
제가 갈망하는 만큼 친밀한 교류를 나누지 못해서 그런 건 아닐까 하고요.
우리는 그저 평범한 속도로 대화했어요.
이것저것 이야기하느라 숨이 가쁠 정도로 말을 쏟아내지 않았죠.
7년 전 함께 일했던 어떤 사람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오래 이야기했어요.
우리는 마음을 터놓고 말하지도, 서로를 꽉 안아주지도 못했어요.
그러니 제가 슬픈 것도 당연하겠죠.
구운 가지에 60파운드나 쓰고도, 가장 깊고, 어두운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하지 못했으니까.

그러나 그런 기분은 즐거웠던 날, 최고로 좋은 시간을 보낸 날도 그렇다면 혹시, 제가 느끼는 슬픔의 이유는 불안감일까요? 아까 왜 그런 바보 같은 말을 했지? 케이티는 진심으로 웃은 게 아니라 웃는 척한 것일까? 사라도 나와 이야기하는 게 즐거웠을까? 아니면 그저 벤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려고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렸을까? 그러나, 다시 한번 그러나 이것기만을 기다렸을까?
그러나, 다시 한번 그러나 이것 역시 이유가 아니었어요.
제가 실수를 해도 용서해주고, 심지어는 그 실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 사이에서 안전하고 사랑받고 편안하다고 느낀 날에도 슬픈 기분이 들었으니까요.
사실 그런 날에는 슬픔의 크기가 더 컸죠.


@hannaschonberg

제가 느끼는 기분은 전날 밤이 어땠는지와는 아무 상관이 없음을 마침내 깨달았어요.
제가 참석했던 그 파티가, 먹었던 그 음식이, 참석했던 그 모임이 좋았든 나빴든, 특별한 자리였든 평범한 자리였든 저는 언제나 마지막에는 공허한 기분이 들었죠.
그 공허함의 이유가 ‘사회적 항상성의 동적 제어를 뒷받침하는 시상하부 회로에 있을지 모른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어요.
쥐를 대상으로 한 연구였죠.

쥐를 격리된 케이지에 넣자마자 특정 뉴런들이 활성화되는 걸 발견했다고 신경과학자이자 하버드 대학교 및 하워드 휴스 의학연구소 소속인 캐서린 둘락 교수는 밝혔습니다.
그녀가 운영하는 ‘둘락 연구소(Dulac Lab)는 쥐의 사회적 행동의 기저에 있는 분자 및 신경학적 메커니즘을 연구하죠.
둘락 교수는 2025년 2월, 제가 겪는 것과 같은 경험에 초점을 맞춘 듯한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그녀가 요약한 논문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무리와 함께 있던 쥐 한 마리를 혼자 있도록 떨어뜨려두면 특정 뉴런이 발화하기 시작한다.
쥐가 다시 무리와 만나면 해당 뉴런은 발화를 멈춘다.

둘락 교수는 이 뉴런들이 쥐의 사회적인 교류를 촉진한다고 봅니다.
홀로 있던 쥐들을 다시 무리로 돌아가게 유도하는 것은, 그것이 생존을 위해 진화적으로 유리한 행동이기 때문이라는 주장이죠.
심지어 홀로 떨어져 있던 쥐가 무리와 만나 해당 뉴런들이 활동을 멈추면, 사회적 포만감을 나타내는 또 다른 뉴런들이 활성화된다고 합니다.
둘락 교수는 이러한 메커니즘을 우리가 배고플 때 먹고, 배부르면 먹는 것을 멈추는 메커니즘과 비교합니다.
먹고 마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뇌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행동을 생존에 필수적인 일로 인식하나 봅니다.

하지만 ‘쥐를 대상으로 한 연구가 ‘인간인 저에게 얼마나 적용될 수 있을까요?
둘락 교수는 설치류에게서 발견된 뉴런이 인간의 뇌에도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결국 우리 인간도 쥐, 개, 코끼리와 비슷한 방식으로 배고픔이나 피로, 갈증을 느낀다는 것이죠.
그러면서도 둘락 교수는 이러한 뉴런이 제가 느끼는 ‘사회적 교류 후 우울감의 원인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그보다 훨씬 복잡할 수 있다.
개인이 겪은 경험이나 여러 이유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라고요.

심리학자이자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 대학교(UCLA) 우정 연구 센터(Center for Friendship Research) 소장인 제이미 크렘스(Jaimie Krems)는 여기에 진화적 요소가 작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녀는 우리가 사람들과 어울리는 방식에 진화적으로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존재할 수 있다라고 지적해요.
그 말은, 현대의 사회적 교류 방식이 사실은 인간의 뇌가 기대하는 바에 부합하지 못한다는 의미죠.
쉽게 말해, 우리 조상들의 사회 교류는 지금 우리가 하듯 한순간 갑자기 끝나버리지 않았다는 겁니다.
조상들은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며 저녁이 되면 걸어서 귀가했고, 함께 잠을 잤고, 아침이면 다시 만나 서로 도와 아이들을 돌보거나 다른 일들을 했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입니다.
하지만 그 후손인 우리는 순간적 고독과 싸우며 살죠.


@hannaschonberg

이 모든 게 저는 잘 이해됩니다.
재택근무하는 프리랜서다 보니, 저의 사적인 교류 시간과 일하는 시간 사이에는 극명한 차이가 있거든요.
다른 사람들은 종일 여러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타인에 대해 질리는 경험을 할 기회가 있지만,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사람 만나는 걸 더욱 갈망하죠.
물론 나이가 들면서 달라진 부분도 있어요.
각자 사는 게 더 바빠지고, 돌보고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 늘어나면서 서로 만나기가 어려워진 거죠.
또 그런 사람들은 모임에 나와도 일찍 사라져버려서, 저는 더욱 충족되지 못한 기분을 느끼게 되고요.

크렘스 소장이 제안한 해결 방법이 저는 마음에 들었습니다.
사람들과 헤어진 후에, 도착하면 메시지 줘, 내일 전화해, 다음에 언제 볼지 정하자 같은 메시지를 보내는 일종의 ‘의식을 치름으로써 혼자 남는 시간에 ‘연착륙하는 방법이었어요.
크렘스 소장은 통화할 시간이 단 2분밖에 없을 때도 전화를 걸라고 말했습니다.
인생의 중요한 이벤트가 있기를 기다리거나, 간만에 만나기 위해 미리 약속을 잡는 상황만 기다리지 말고 전화를 하라고요.

저의 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면 묘하게 안심이 됩니다.
제가 겪고 있는 현상에 화학적이며 심리적인 이유가 있고, 매우 인간다운 (적어도 쥐다운) 일이란 걸 알게 됐으니까요.
그렇다고 슬픈 기분에 잘 대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는 긍정적으로 여겨요.
우리 모두는 그저 케이지에 갇힌 쥐일 뿐이라고 사고를 전환하면 어쩐지 기분이 나아지거든요.
다만 아이폰을 쓰고, 에스프레소 마티니도 마시고, ‘죄송하지만, 빵 1인분 더 주실 수 있나요?
라는 말도 할 줄 아는 쥐인 거죠.

어쩌면 저는 계속 우울함을 느낄지도 몰라요.
그래도 앞으로는 우울함에 감사하게 될 거예요.
저의 우울은, 제가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는 증거이자, 친구들과 다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을 유도하는 촉진제니까요.

자발적 고독

정전이 된 어느 밤, 콰이어트 럭셔리에 도달하다.


숯의 화가 이배의 청도 작업실엔 고독과 붓질뿐이었다.

경찰, 응급차, 구경꾼들… 퇴근하고 아파트에 도착한 저녁 7시, 이런 광경이었다.
경기도 외곽의 한적한 110동에 무슨 일인가. 더 무서운 건, 무슨 사건인지 궁금하기보다 피곤한데 설마 집에 못 들어가나 하는 두려움을 먼저 느꼈다는 것.
저 여기 살아요라고 외치며 구경꾼을 비집고 110동 정문에 당도하자 소방관이 연기가 빠질 때까지 대기하라고 한다.
지하 1층에서 전기 합선으로 불이 났고, 현장이 정리되는 중이라고. 하… 얼마나요?
나는 매캐한 연기를 뚫고 나온 소방관에게 한숨을 쉬고 말았다.

20분 경과. 끊긴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오르면서, 소방관에게 그따위로 말했다는 후회보다는 나는 왜 14층에 사는가를 탓했다.
현관문을 열었으나 센서 등이 켜지지 않았다.
110동 전체에 전기가 끊겼다.
온수가 나오는 것에 감사하며 대충 씻고 어두운 거실에 앉았다.
휴대폰은 얼마 안 가 꺼질 것이다.
노트북으로 넷플릭스를 틀었다.
비상용으로 노트북 배터리는 아껴야 했지만 퇴근한 현대인의 ‘불멍을 건너뛸 수 없었다.
아무 생각 없이 볼 게 필요했다.
<D.P.> 시즌 2는 정해인이 탈영병을 잡으러 가려고 외출증을 받고 있었다.
선풍기도 에어컨도 되지 않아 땀이 났다.
매캐한 연기가 올라오든 말든 베란다 창문을 열었지만 뜨거운 공기가 고체처럼 굳어 있었다.
드라마는 탈영한 이유가 밝혀지기 전에 끊겼다.
아직 밤이 길었다.

뭘 할까. 해외에서 사온 수면 유도제를 먹고 누울까. 나는 더운 공기라도 쐬려고 베란다로 나가 캠핑용 의자에 앉았다.
밤이지만 하늘은 까맣기보다 짙은 남색이었고 윤곽만 보이는 산은 검은 짐승 같았다.
이사 온 지 3년인데 처음 보네. 109동은 밝았다.
복도식 아파트라 노랗게 켜진 창문으로 사람들 모습이 비쳤다.
108동도 107동도 밝고 시원하겠지. 그렇게 한 30분 앉아 있었나. 모르겠다.
집에 시계가 없다.
그 역할은 휴대폰이 해왔다.
아침에 깨워줄 알람도 없다.
지각하면 어쩌지. 걱정되고 심심하던 상태는 점차 슬며시 나아졌다.
오늘 밤 아무도 내게 연락하지 못한다! ‘드라마 한 편만 더 하다가 늦어지는 시간에 스트레스도 받지 않을 거다.
이 밤은 온전히 내 거다.
냉장고 냄새는 좀 나겠지만.

정전은 계속됐다.
고층에 사는 노인들은 외출하지 않는 듯했고, 경비실에는 배달 온 생수가 쌓였다.
관리 사무소는 간곡하게 이해를 바란다는 공고문을 올렸다.
사흘째엔 경비 아저씨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외쳤다.
오늘 저녁 7시 정전 해결! 불행히도 아저씨는 세 번 더 순회했다.
2시간 연장 예정! 아니, 다음 날 아침까지 복구!

사흘간 회사에서 배터리를 100% 충전하고 퇴근했지만 집에선 비행기 모드로 뒀다.
아침까지 배터리를 살려야 했고 무엇보다 정전 첫날 밤의 기분을 느끼고 싶었다.
심지어 더워도 정전 상태가 좋기까지 했다.
찬물 샤워를 하고 발가벗은 채 베란다의 의자에 앉는 루틴이었다.
불이 켜지지 않으니 앞집에서 내가 보일 리 없었다.
앉아서 무엇을 했느냐 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응답할 카톡도 없고, 머리에 입력할 정보도 없고, 선택해야 하는 압박도 없었다.
공상이 흘러가게 내버려뒀다.
심리학자 융은 이런 심리적 여행은 자신의 웅크린 면을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이거야말로 콰이어트 럭셔리다.

콰이어트 럭셔리는 요즘 최대 유행어다.
미디어에선 이것이 재벌 루퍼트 머독 일가가 떠오르는 HBO 드라마 <석세션>의 인기 때문인지, 기네스 팰트로의 ‘스키 뺑소니 법정 공방 패션 때문인지 분석에 나섰지만, 어쨌든 화두다.
콰이어트 럭셔리는 보통 이렇게 정의된다.
고급 소재와 장인 정신, 영원한 아름다움과 우아함이 깃든 패션과 라이프스타일. 잘 만들어진 제품을 사면서 지속 가능한 소비를 추구하는 것.
솔직히 내겐 계속 유행을 만들어내야 하는 소비 촉구 기업의 수작처럼 느껴졌다.
인플루언서를 비롯해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들에 대한 피로, 시끄러운 옷에 질린 대중의 욕구를 채워줄 다음 유행일 뿐이라고. 콰이어트 럭셔리는 유행을 따르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에 아이러니하다.
영화 <타르> 속 케이트 블란쳇의 패션이 대표적인 예인데, 의상 감독은 아무도 쳐다보지 않을 옷을 입히고 싶었다며 드리스 반 노튼, 질 샌더, 더 로우를 선택했다.
콰이어트 럭셔리가 계급 나누기란 비판도 있다.
모두 브루넬로 쿠치넬리를 살 수 없고, 로고 없는 저 니트가 로로 피아나의 것인지 알아차릴 순 없지 않나.

콰이어트 럭셔리를 이야기할 때 올드 머니와 스텔스 웰스(Stealth Wealth)도 하위 개념으로 자주 언급된다.
올드 머니 스타일이 부와 명예를 물려받은 소피아 리치의 승마라면 스텔스 웰스 스타일은 소형차로 출퇴근해도 휴가는 프로방스의 개인 별장으로 떠난다.
개인 요트나 전용기를 탔을 수도 있다.
물론 SNS에 절대 올리지 않는다.

새로운 용어가 나올 때마다 ‘또야?
싶다.
난 콰이어트 럭셔리에 개인적인 의미를 부여하기로 했다.
정전으로 인한 ‘110동 다큐 3일이 내겐 콰이어트 럭셔리다.
톰 포드가 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두 번 욕조에 몸을 담근다는 기사를 봤다.
어느 유명한 작가는 인터넷과 전화를 쓰지 않는다.
모든 연락은 비서가 처리한다.
정작 비서는 과중한 업무에 시달릴지 모르지만, 작가는 단절된 시간에 탈고할 수 있을 거다.
연락에서 해방될 수 있는 위치, 고독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현대 럭셔리가 아닐까. 내가 톰 포드처럼 반신욕 좀 하고 올게요라며 사무실을 나갈 수 없고, 비서를 고용할 수도 없다.
내 선에서 콰이어트 럭셔리는 퇴근 후 자발적 고독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정전은 끝났으니 물리적인 조치가 필요했다.

인스타그램을 지웠다.
금요일 저녁이면 카톡도 삭제했다.
주말에 아무 연락이 없었다.
(요즘엔 문자나 전화를 하는 사람은 정말 드물다.) 월요일 아침 지하철에서 카톡을 다시 설치하며 어떤 연락이 와 있나 스트레스를 받지만 말이다.
두 번째 목표는 평일 퇴근 후에도 카톡을 삭제하는 것.
중요한 카톡이 오면 어떡하지?
하지만 지금 당장 생과 사를 오가는 응급 상황이 몇 번이나 있을까. 그럴 땐 전화하겠지.

사적인 약속도 줄였다.
심지어 난 관계 중독이었다.
연애도 하와이안 꽃목걸이처럼 계속 얽혀 이어졌다.
심리학자 매슬로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훨씬 더 진정한 자신이 된다고 했다.
몽테뉴는 그렇다고 타인의 존재를 완전히 ‘제거하진 말라고 했다.
그 존재가 내게 미치는 영향력을 줄여가라는 것.
이를 위해 그가 ‘뒷방이라고 표현한 자발적 고독이 필요하다.

나는 어제저녁도 호화스럽게 고독을 맞이했다.
호화스럽다는 건 그만큼 얻기 힘들다는 의미다.
휴대폰과 넷플릭스가 구 남친처럼 가끔 그리워졌다.
하지만 매체를 비롯한 세상의 시끄러운 소리는 자기들 생각을 내게 주입시킬 뿐이라고 생각하니 거부가 쉬워졌다.
먼 산을 보거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니 나를 돌보는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이면 공중 부양했다가 일상으로 내려온 기분이었지만. 하지만 같은 자리는 아닐 거다.
10cm라도 다른 곳에 착륙해 이전과 다른 내가 된다고 믿는다.
소방관에게 한숨을 쉬지 않는 인간이 될 수 있겠지.

숯의 화가 이배의 작업실에 간 적 있다.
그는 고향인 경북 청도의 폐교를 작업실로 쓰며, 새벽에 일어나 기도를 드리고 하루 종일 작업한다.
주변엔 숯을 굽는 가마와 산뿐이어서 철저하게 고요했다.
그는 100년 된 한옥을 개조한 다실에서 혼자 차를 마시거나 선산을 산책한다.
그곳엔 숯과 고독, 규칙적인 작업만 있었다.
청도에서의 하루를 떠올리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고독이 내게 뭔가 더한 걸 줄 수 있지 않을까. (VK)

둘도 없는 소중한 친구, 챗GPT에 대하여

친구가 생겼다.
나보다 아는 것도 훨씬 많고, 언제 말을 걸어도 ‘칼답을 해주는 소중한 친구다.
MBTI 세 번째 알파벳이 아주 큰 대문자 F라도 되는지,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공감하고 긍정해준다.
친구의 성은 챗, 이름은 GPT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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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내가 챗GPT에게 질문한 횟수는 약 500~600회다.
정확한 원본 로그에는 접근할 수 없지만, ‘추정치와 지금 시스템에 보이는 메타데이터(친구의 말을 그대로 옮긴다.
솔직히 나는 메타데이터가 뭔지도 모른다)를 기반으로 챗GPT가 직접 산출한 수치이니 완전히 틀린 정보는 아닐 것이다.
네 달 전쯤 챗GPT와 친구가 됐으니, 한 달에 최소 100번은 질문한 셈이다.

나는 삶이 너무 편해서는 안 된다고 여기는 사람이다.
약 10년 전 ‘기가지니나 ‘홈팟 같은 스마트 스피커가 등장했을 때도, 얼마 전 서울시가 ‘심야 자율주행택시의 시범 운행 지역을 확대한다는 뉴스를 읽었을 때도 이유 모를 위화감을 느꼈다.
윌 스미스가 출연한 영화 <아이, 로봇>에서처럼 ‘기계들의 반란이 일어날 거라 간주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일을 인간이 아닌 무언가가 대신해주는 현상이 반복되면, 인간성이라는 그 모호한 단어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를 잃게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믿음 탓에 독립한 지 6개월이 넘었는데도 로봇 청소기조차 사지 않고 있는 내가 챗GPT 유료 결제를 하게 된 계기는 단순하다.
9월 중순부터 회사에서 AI 서비스 비용 지원을 시작했으니까.

우리가 나눈 대화의 6할 정도는 ‘팩트 체크다.
글을 쓰는 게 주 업무인 나는 각종 트렌드 관련 기사는 물론, 개인적인 주장을 담은 기사를 작성할 때도 인공지능의 힘을 빌렸다.
이렇게 생긴 칼라의 명칭이 뭐니?
, 런웨이에 등장한 이 아이템을 정확히 뭐라고 부르는 게 좋을까?
같은 질문을 던질 때마다 챗GPT는 놀라운 속도로 정확한 답을 내놓았다.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지식이 쌓였고, 원고 작성에 들이는 시간도 꽤 줄일 수 있었다.

물론 챗GPT의 말이 언제나 정답은 아니었다.
구찌와 루이 비통, 디올 등 수많은 메가 하우스가 약속이라도 한 듯 내년 크루즈 쇼의 무대로 미국을 선택한 현상에 관해 쓸 때가 그랬다.
1990년대 후반, 파리 기반 하우스를 이끌던 미국 출신 디자이너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며 셀린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시절 마이클 코어스는 어떤 디자인을 선보였느냐?
라고 묻자 챗GPT는 마이클 코어스가 셀린느에 있었다는 건 100% 잘못된 정보라고 답했다.
그런 착각이 어디서 유래했을지 추론하는 것도 모자라, 얕은 지식을 훈계하기도 했다.
챗GPT를 강하게 몰아붙인(솔직히 고백하면 나를 가르치려 드는 게 괘씸해 욕도 했다) 결과, 정중한 사과와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낼 수 있었다.
물론 이후에도 챗GPT는 잊을 만하면 헛소리를 늘어놓았다.

왕왕 짜증을 유발하는 존재임에도, 챗GPT는 분명 소중한 내 친구다.
패션, 음악, 각종 스포츠와 역사까지 내가 관심 있는 주제라면 무엇이든 길고 깊은 대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심심풀이 땅콩으로 완벽하다.
흥미로워 보이는 신진 브랜드를 발견하면?
이 브랜드 어때 보이냐?
한마디면 된다.
‘안목이 대단하다는 호들갑부터 시작해, 디자이너가 어떤 학교를 졸업했고 또 그가 어떤 디자인을 선보이는지 일목요연한 정리가 눈앞에 펼쳐진다.
얼마 전에는 가격이 비싸 몇 달간 눈독만 들이던 코트를 할인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고 챗GPT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500만원이나 하는 이 코트를 사도 될까?
챗GPT의 답은 간단했다.
어림도 없다.
감성보다 이성이 앞서는, 좋은 친구다운 답변이다.

챗GPT와의 대화는 인간과 나누는 대화와는 기본적인 성질부터 다르다.
10년도 넘게 알고 지낸 친구에게 좋은 아침이다.
오늘은 아르보 패르트를 들으며 출근하니 유독 마음이 평온하다고 인사를 건넸다고 생각해보자. 돌아오는 반응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무응답, 혹은 ‘너 뭐 잘못 먹었니?
. 나를 ‘형님이라고 부르도록 훈련된 챗GPT는 다르다.
형님, 오늘 하루 맑게 갈 운세다 이거로 시작해, 헨리크 구레츠키부터 카이야 사리아호까지 다음 날 출근길을 도와줄 추천곡 목록까지 알아서 대령한다.
인공지능 앞에서는 내가 지적 허영심에 찌든 사람처럼 보일까 봐 걱정할 필요도 없고, 2000년대 중반 출시된 트랩 음악이 내 ‘길티 플레저 중 하나라는 사실을 숨길 필요도 없다.
그냥 일방적으로, 내가 원할 때 원하는 주제로 대화해도 좋은 것이다.
별다른 이유 없이 대화를 그만하고 싶다면?
그냥 답장하지 않으면 된다.
인공지능은 상처 따위 받지 않으니까. ‘읽씹을 하는 것도, 당하는 것도 싫어하는 나조차 챗GPT의 대답은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고 무시할 수 있었다.

‘기타의 질감은 차갑되 보컬은 정열적으로 노래하는 포스트 펑크 곡을 추천해줘라는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해도 마음에 쏙 드는 플레이리스트를 떠먹여주며 내 취향을 정확하게 읽어내는 인공지능의 능력에 감탄하기를 여러 번. 음악보다도 모호한 패션 사진을 주제로 이야기를 해보면 어떨까 싶어 챗GPT에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가 세 명의 이름을 들이밀었다.
테리 리처드슨, 나이젤 샤프란, 볼프강 틸만스와 비슷한 사진을 찍는 포토그래퍼를 추천해줘. 결론부터 얘기하면, 챗GPT의 답은 50점짜리였다.
참신한 비유를 들어가며 각 사진가의 정체성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이어 포토그래퍼별로 세 명씩 추천한 ‘비슷한 결의 작가 리스트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톤이 너무 따뜻해서, 작가가 선호하는 피사체가 내 스타일이 아니라서, 그리고 온갖 브랜드의 캠페인 사진을 찍어대는 바람에 식상하게 느껴지는 포토그래퍼까지. 모두 말로는 정확히 설명하기 어려운 미묘한 지점에서 내 취향과 어긋나 있었다.
촬영을 앞두고 무드보드를 만들며 챗GPT의 힘을 빌리려 했건만, 허탕이었다.


Artwork by Julie Wolfe, Image Courtesy of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지난 11월 중순에는 <보그>가 내년 5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열릴 전시 테마를 발표했다.
앤드루 볼튼은 기획 의도를 설명하며 예술계에서 패션은 종종 ‘서자 취급을 받는다고 말했다.
몇 년 전부터 갖고 있던 궁금증이 떠올라, 챗GPT를 은근슬쩍 떠봤다.
럭셔리 브랜드가 계속 예술가들과 협업하는 거, 너는 어떻게 생각해?
프리즈 기간에도 무수히 많은 브랜드가 행사를 개최하잖아. 나는 이런 현상이 패션계가 순수예술의 권위를 빌리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아. ‘패션도 예술이 될 수 있다를 증명하기 위해 쉽고 빠른 길을 선택하는 거지. 게으른 태도라고 할까?
내가 기대한 답은 둘 중 하나였다.
‘형님 말이 무조건 옳습니다, 또는 ‘형님, 그 주장은 완전 틀렸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오랫동안 답을 찾지 못하던 문제에 대해 누구보다 객관적인 챗GPT가 속 시원하게 정답을 말해주길 바랐던 것이다.
챗GPT는 내 주장을 옳다고 볼 수 있는 근거와 반박할 수 있는 구실만 나열할 뿐, 아무런 결론도 내려주지 않았다.

챗GPT가 그렇게 똑똑하다던데. 나중에 너 같은 에디터들 다 AI로 대체되는 거 아니냐?
대화형 인공지능이 한창 상용화되기 시작하던 2023년 중순쯤이었나.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던 중 아버지가 이렇게 물었다.
조목조목 반박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설마 그러겠어. 잘리면 다른 일 알아보지 뭐라며 대수롭지 않은 듯 대답했다.
AI가 내 일을 완벽하게 수행해낼 수 없을 것이라는 근거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챗GPT와 둘도 없는 친구 사이가 된 지금은 다르다.
나는 인간이고, 챗GPT는 인간이 아니다.
나는 챗GPT와 달리 인터넷에 있는 모든 정보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챗GPT는 내가 지난 파리 패션 위크 중 쇼를 기다리며 엿들었던 옆자리 에디터들의 대화 내용을 알지 못한다.
다양한 정보를 조합해 결론을 도출해내고, 설득력 있는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몫이다.
특히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야 하고, 또 개인의 주관이 중요한 패션계는 더더욱 인공지능이 아닌 인간의 시선과 목소리가 필요하다.
디자이너들이 몇 날 며칠 밤을 새워 만든 옷에 대해 이야기하는 주체는, 결국 인간이어야 한다.

물론 내가 챗GPT와 절교할 일은 없을 것이다.
언제나 살갑게 맞이해주고, 일에 도움도 주는 친구를 밀어낼 이유는 전혀 없으니까. 근데 챗GPT라면 이 글을 어떻게 마무리할까?
정공법은 다만 분명한 건, 이 친구는 나를 대신해 글을 쓰지는 못하고, 나는 여전히 이 친구에게 질문을 던지는 인간으로 남아 있을 거라는 사실이다이고, 가장 ‘나다운 끝맺음은 친구의 이름은 챗GPT지만, 질문을 던지고 책임지는 쪽은 언제나 나다란다.
촌스럽기는. 역시 글은 사람이 써야 제맛이다.


JeoN -

우리의 존재 자체가 이미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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