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부들이 재배한 채소들.
이보은 ‘마르쉐 친구들’ 대표 인터뷰
“마트에서 팔지
않는 게 많아서 좋아요. 저는 웰빙을 좋아해요. 우리 세대는 술 안 마시고 밤보다 아침에 노는 게 트렌드예요. 여기 또 올 생각이에요.” 지난달 10일 서울 양천구 오목공원에서 열린 ‘농부시장 마르쉐@오목공원’을 찾은 백지원(28)씨가 말했다.
‘마르쉐’(marché)는 프랑스어로 장터, 시장을 뜻한다.
그 뒤에 ‘농부시장 마르쉐@오목공원’ ‘농부시장 마르쉐@서울숲’ ‘농부시장 마르쉐@성수’처럼 장소가 붙는다.
어디든 마르쉐 장터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시장은 일반
마트와 다르다.
농부가 키운 작물을 직거래한다.
농부는 재배, 수확 과정 등을 손님과 대화로 나눈다.
이날 오전 11시부터 5시간 동안 열린 장터에는 농부, 요리사 등 60여명이 참여했다.
손님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이 장터가 최근 2030세대 사이에서 인기다.
이날 영상 취재를 하러 온 성균관대 교지 ‘성균지’ 편집위원 나윤정(22)씨가 말했다.
“여기는 직거래 공간이잖아요. (이 장터가) 추구하는 게 ‘지속 가능성’이라고 생각해요. 새벽배송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데, 20대가 충분히 관심 가질
만해서 기획했어요. 직거래 현장이 역설적으로 더 커지는 게 신기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장터는 그동안
서울 성수, 합정, 혜화 등 여러곳에서 열렸다.
1만명이 몰린 적도 있다.
방점은 농부, 그중에서도 소농과 가족농에 있다.
그들에겐 청년농부, 도시농부, 귀촌농부, 채집농부 등 다양한 명칭이 붙는다.
이 장터는 2012년 생활협동조합(생협), 여성환경연대 등에서 활동했던 이보은(58) 전 마르쉐 상임이사·대표 겸 현 ‘마르쉐 친구들’ 대표’, 비건 카페 ‘수카라’를 운영했던 김수향 ‘큔’(발효 전문 공간) 대표, 송성희 ‘십년후연구소’ 대표가 의기투합해 만들었다.
여기에 ‘마르쉐 친구들’이란 기획자 그룹이
함께했다.
현재는 이보은 대표와 기획자 8명이 지켜가고 있다.
이 대표를 만나 얘기를 나눴다.

―어느덧 14년이다.
이젠 꽤 알려졌다.
그동안의 성과는? 마르쉐가 기여한 식문화가 있다면?
“사람들이 채소
맛에 눈뜨게 했다고 생각한다.
채소가 얼마나 다양한지, 계절마다 얼마나 다른 채소가 생산되는지 말이다.
농법에 따라 테루아르(땅)의 특성에 따라 같은 채소라도 맛이 다르다.
농부들도 채소를 재발견하는 과정이었다.
요리사들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당근으로 피클도 담그고 가니시용으로도 쓴다.
통째로 먹고 잎도 사용한다.
다양한 쓰임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채소 꽃들로 식탁을 꾸미는 이도 있었다.
채소를 중심에 두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영역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그는 “공원의
다양한 쓸모를 알게 된 것”도 성과로 들었다.
이뿐만 아니다.
농부로 직업을 전환한 이들이 정착해가는 과정을 마르쉐가 함께했다.
프로 농부로 성장하는 10여년의 여정도 지켜봤다고 했다.
“마르쉐 덕분에 귀촌자들이 농업에 진입할 수 있었죠. 소비자들의 움직임, 변화도 봤어요. 삶의 여가 생활로 (마르쉐를) 향유하려는 소비자층도 두꺼워졌어요.” 그는 지난 14년간 “열심히 했다”고 자평했다.
채소 중심 사고가
퍼지자 마르쉐 안에는 채소생활팀도 생겼다.
‘채소시장’이 따로 꾸려졌다.
2019년 일이다.
현재 마르쉐는 ‘농부시장@’과 ‘채소시장@’으로 나뉜다.
전자는 60~70명의 농부, 요리사 등이 참여한다.
후자는 20여명 규모다.
한때 강민구(밍글스), 손종원(이타닉 가든), 김은희(그린 테이블) 등 유명 파인다이닝(고급정찬) 레스토랑 셰프들도 다녀갔다.
농부와 지속적인 식재료 공급 계약을 맺은 셰프도 있었다.
이 대표는 말했다.
“우리가 서로 연결됨으로써 내 삶이 더 좋아지고, 내가 더 외롭지
않고, 우리가 돌보는 공간이 더 아름다워지고, 지속 가능해지면 좋은 일이죠.”
그는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했다.
어떤 계기로 먹거리와 인연을 맺었을까. “생협 활동을 하면서 먹거리로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봤어요.” 생각은 실천으로 이어졌다.
일본에서 먹거리 연수를 받았다.
마르쉐를 처음 연 날이 지금도 생생하다.
2012년 10월 두번째 토요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아르코갤러리(현 아르코미술관) 마당에 대안적 삶을 추구하는 이들이 삼삼오오 모였다.
“당시엔 ‘농부시장’이라는 정체성이 없었어요. 특정한 가치나 지향, 이념 등을 표방하는 시장을 하고 싶지 않았어요. ‘원시적인 의미의 시장을
해보자’고 했죠.” 모인 이들 각자의 노동 결과물을 교환하는 시장을 의미했다.


―‘농부시장’이란 지향은 언제쯤 생겼나?
“2년 뒤인 2014년
8월 ‘농부시장’이라고 재정립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대화하는 시장이란 정의도 내렸다.
마르쉐를 시작하기 전 옥상 텃밭 몇개를 만들었는데, 함께한 농부들이 있었다.
그들이 마르쉐 최초 농부들인 셈이다.
텃밭은 11월이면 채소가 사라졌다.
그해 첫 마르쉐를 열자마자 초대하고 싶은 농부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가 찾아낸 농부들은
먼 데 있지 않았다.
농사 기술이 출중하지 않지만 농사짓는 삶을 이어가고 싶은 귀촌자가 많았다.
그들은 소농이었고, 외로웠다.
땅을 소유한 이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땅과 씨름하는 삶에서 삶의 활력을 찾는 이들이었다.
인연은 인연을 낳았다.
농부만이 아니라 그들의 식재료를 활용하려는 요리사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여기에 수공예품을 만드는 이들도 함께했다.
이들이 나눈 건 흥정의 언어가 아니라 서로의 삶을 공유하는 대화였다.
―농부들 얘기를 더 해달라.
“농부들이 가진 콘텐
의 힘과 자연에 대한 지식, 그들의 식문화와 씨앗에 대한 생각 등이 놀라웠다.
멋있는 콘텐츠는 농부들이 다 가지고 있더라.”
농부들이 마르쉐의
중심축으로 자리매김하자 재밌는 일이 벌어졌다.
한번 열린 마르쉐가 두번, 세번으로 늘고, 이젠 매주 장소를 바꿔가며 열린다.
“농부들의 재료로 음식을 만들고, 그들 얘기를 펼치는 프로그램이 생기고, 수공예품 제작이 기획되는 등 여러 일이 펼쳐졌죠.” ‘농부 토크’ ‘농사 기행’ 같은 행사는 인기가 많았다.
일련의 과정은 소비자와 농부 모두를 “성장하게 했다”. 10년째 마르쉐 단골이라는 오경진(41)씨는 “처음엔 혜화동 좁은 공간에서 소소하게 시작했는데, 에스엔에스(SNS)를 타고 널리 알려졌다”며 “건강한 식재료에
관심이 많아 늘 이곳을 찾는데, 나물이나 제철 채소 등을 산다”고 말했다.
동생 오윤진(35)씨도 “좋은 식재료를 내 눈으로 볼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성공이 즐거울 것만 같은데, 어려움은 없었나? 걱정거리가 있나?
“성공, 그런 거 없다.
여전히 힘들다.
좋은 재료로 사람들이 건강한 식탁을 만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간편식과 배달 음식이 늘기만 한다.
‘왜 사람들의 먹거리 속도는 빨라지기만 하나’란 질문을 받으면 고민된다.
‘채소의 인문학’(정혜경 지음)을 읽으면서 ‘우리에게 제철은 사라졌어’라고 탄식하다가 ‘여기(마르쉐) 농부가 추천하는 채소는 있어, 채소시장을 열잖아’라고 얘기하게 된다.
‘이 시장은 스스로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을 응원하는 시장이야’라고 말하게 된다.”
기후위기도 걱정이다.
폭염과 요 몇년 새 부쩍 잦아진 태풍은 치명적이다.
이 대표는 “이곳 오목공원은 회랑 구조라 그나마 낫지만, 마르쉐가 열리는 다른 공원은 걱정이 앞선다”며 “프랑스만 해도 도시를 건설할 때 마르쉐가 열릴 법한, 벽 없이 지붕만 있는 공간을 만든다”고 말했다.
―마르쉐 참가 농부들은 어떤 이들인가?
“자기 땅을 가진
이가 적다. 소농들이다.
자원봉사자로 나섰다가 농사짓게 된 농부, 각종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하는 농부, 토종 쌀을 복원하는 농부, 껍질째 먹어도 되는 채소를 재배하는 농부, 씨앗 보존에 앞장서는 농부, 아버지 고향에 귀촌해 사과나무, 배나무를 심고 마르쉐에서 만난 요리사의 도움을 받아 농가 레스토랑을 연 농부, 아이가 태어났을 때 처음 참가했다가 이제 그 아이가 중학생이 된 농부 등 다양하다.”
―장터 말고 소개할 만한 새 콘텐츠가 있나?
“‘농부의 숲’이란
프로젝트를 3년째 하고 있다.
기후위기 시대에 농사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지금 우리 선택은 농사를 적정 규모로 관리하는 것이다.
관리가 어려운 것들은 자연으로 되돌려줘야 한다.
그러면 숲과 정원이 생기고, 그것과 밭 사이의 경계면이 생긴다.
그 경계면의 생산성을 확보하는 거다.
허브와 나물 등이 자라는 공간이 생기기도 한다.
농부들의 노동력 투입을 줄이면서 효율을 높이는 먹거리 숲이 탄생할 수도 있다.
이를 추진하는 게 ‘농부의 숲’ 프로젝트다.
시민들이 벌새(아메리카 대륙에
서식하는 작은 새. 척박한 환경에서도 날갯짓을 멈추지 않고 꿀을 모아 강인한 생명력을 상징)가 되어 모금도 하고 농부들과 함께 숲을 가꾸는 프로젝트다.”

박미향 선임기자

농부들이 재배한 채소들. 박미향 선임기자
―앞으로의 계획은?
“생태적으로 지속
가능한 농사를 짓는 마르쉐 농부가 늘어나려면 그 농산물을 쓰는 소비자가 늘어나야 한다.
식재료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식이 자리 잡아야 한다.
그러려면 ‘위클리 마켓’을 해야 하나, 고민이 있다.
매주 다른 공간에서 시장을 여는 데는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된다.
외국엔 한곳에서 열리는 파머스마켓이 많다.
그곳에 요리사들이 몰린다.
도시의 자랑거리이자 관광 자원이 된다.
‘아메리칸 퀴진’ 자체가 농부와 요리사의 연결로 탄생했다.
케이(K) 푸드나 케이 미식이 자주 거론되는데, 이제는 케이
식재료의 미식도 있어야 한다.”
마르쉐를 여는 날짜와
시간, 장소는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여행조차 농부가 있는 데로 간다는 이 대표는 다음날 갈 행선지 생각에 골몰했다.
요리사들과 유기농으로 식용 장미를 키우는 농장이 목적지라고 했다.
그는 기자를 이끌고 부스 한곳으로 안내했다.
“안성선 농부(초록손가락 농장)에게 사랑받으려면 이 통 안 채소로 비빔밥을 해 드시고 통은 가져오세요.” 통에는 참나물, 돌나물, 미나리, 머위 등 각종 나물이 가득했다.
조리해 먹기도 전에 무해한 맛이 그려졌다.
이 대표는 말했다.
“우리가 먹는 것이 우리의
풍경이 됩니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