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 Op-Ed
세상이 변했다. 누구나 다 안다. 시대 변화가 내 삶을 옥죄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 현실은 녹록지 않다. 눈치 빠른 선제 대응이 미래 선점을 돕지만, 이는 소수 사례에 불과하다. 안타깝게도 위기는 소녀처럼 왔다가 기회는 토끼처럼 달아난다. 아니면 어제의 기준과 오늘의 현실을 맞추는 수밖에 없다. 갈등을 최소화하고 효용을 극대화하는 질서 재편이다. 기준과 현실의 엇박자를 맞추려 할 때 우선 의제는 '늙음'이다. 초고령화가 몰고 온 엄청난 후폭풍 때문이다.
경제가 한정된 자원의 배분 경쟁이면 늙음의 부각은 나눌 몫을 정해둔 기존 산식을 무너뜨린다. 늙음이 부동산과 주식을 움켜쥔 이유다. '청년은 공격, 노년 수비'라는 합리적 기대 가설은 해체된다. 반면 절망과 좌절에 빠진 젊음은 기존 질서에 맞서 싸운다. 초저출생형 가족 붕괴다. 해서 적극적인 늙음과 반(半)포기의 젊음은 사회 문제의 출발이자 전부다.
일본이 그 길 위에 있다. 인구 변화의 선행 주자답게 막힌 공기 흐름을 뚫고자 제도를 현실에 맞추는 수정 작업에 열심이다. 핵심은 연령 기준 상향 조정. 늙음의 기준을 끌어올려 복지 객체에서 생산 주체로 삼자는 취지다. 눈길은 '75세'로 쏠린다. 환갑(60세)은커녕 고령 기준(65세)도 추월한 파격적 수치다. 이 변화의 방아쇠는 베이비부머인 800만 단카이 세대(1947~1949년생)가 당겼다. 그들이 작년 75세 진입을 끝냈다. 요컨대 '2025년 문제'다. 부머 집단의 대량 은퇴가 낳을 사회경제적 충격 파장을 뜻한다.
이와중에 '후기 고령자(75세~)'란 개념도 재조명된다. 2008년 '후기 고령자 의료 제도'에서 비롯됐는데, 한두 수 앞의 현명한 선제 정책으로 호평받는다. 돌봄과 의료 급증에 맞서 전기 고령자(65~74세)는 본인 부담률을 최대 30%로 올리고, 75세 이상만 예전처럼 늙음의 혜택을 받는다. 반발은 대단했지만, 2025년 현재 후기 고령자는 2100만명(17%)에 달한다.
65세 현역 은퇴로는 시대 변화와 지속 가능의 사회 구조를 확보할 수 없어서다.
이로써 75세는 늙음의 신질서로 승격된다. 감축 성장과 재정 악화, 수명 연장을 보건대 한때를 풍미한 65세는 사실상 유통 기한 종료다. 의료비를 아끼려던 '65세→75세'의 혁신 실험은 갈수록 정책·생활 전반에 파급된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이 지난달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65세 정년연장 법 개정 촉구 양대노총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남강호 기자
문제는 우리나라다. 늙음이 일본보다 규모는 작지만 속도는 훨씬 빠르다. 늦었지만 맹렬하게 늙어간다. 분모(초저출생) 급감과 분자(초고령화) 급증이 동시다발이니 고령화율(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은 추계 범위 밖이다. 반면 준비와 대응은 글쎄다. 근미래에 압도적 늙음 사회가 예고됐지만, 선행 대응은커녕 동행 정책조차 마뜩잖다. 골치 아픈 이해조정에 굴복해 눈앞의 손쉬운 이슈에만 매달린다. 늙음 특화의 사회보험, 서비스, 공적부조 등 미래 장부는 지속 불가능을 경고한 지 오래다. 상황이 이럴진대 시대 변화를 비무장으로 맞이할 수는 없다. 미래 생존의 안정성과 신뢰성이 약한 만큼 각자도생은 자연스럽다. 대신 당장의 이익과 대박 기회만 좇는 외부 불경제(External Diseconomy)는 값비싼 청구서로 되돌아온다.
아직은 괜찮지만, 계속은 곤란하다. 늙음 기준 75세가 필요한 건 우리다. 경성통화와 대외채권 등 일본의 기초 체력은 '부자 3대는 간다'로 요약된다. 그래도 힘든 게 시대 변화다. 후기 고령자라는 달라진 기본값을 일찍이 정책화했음에도 기준 통일까진 갈 길이 멀다. 이 과정에서 갈등과 비용은 필연적이다.
압축·고성장의 모범국답게 늙음 기준 75세로의 패러다임 전환은 '빠르고 폭넓게'가 좋다. 강력한 컨트롤타워의 국정 의제로 인식부터 틀까지 바꾸되 실생활에 체감되면 금상첨화다. 즉, 구조 개혁이다. 달라진 환경에 맞춰 새로운 질서를 창출해야 한다.
우리는 달라야 한다. 반대와 저항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생색 내기로 학습 효과만 키워선 안 될 일이다.
65세 정년 연장이 논의 중이다. 오랜 땀과 노력이 빚은 성과다. 다만 시대 변화를 충분히 반영할지는 미지수다. 지금이야말로 65세 이후를 대응할 때다. 즉 75세부터 역산한 정밀한 의제 선택, 연결 정책이 절실하다. 그나마 한국의 1700만 베이비부머(1955~74년생) 상당수는 65세 아래다. 시간 여유만큼 기대 효과는 커진다. 75세 늙음 기준은 일본을 벤치마킹할 확률이 높다. 후발자로서 추격 이익을 키우는 접근이 필수다. 이왕 불붙은 변화에 교육·고용·임금·복지·조세 등 시대 변화와 어긋난 제도들을 재검토하는 기회로 삼자.
65세의 벽이 75세의 창으로 바뀔 때, 우리는 비로소 '모자무싸(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