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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열기의 한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있었습니다. 두 회사 부스 앞은 유독 붐볐고 기조연설 무대도 나란히 올랐습니다. 저마다 차세대 메모리의 청사진을 들고서 말입니다. 처음 공개한 차세대 메모리 목업 앞에서는 스마트폰을 꺼내 드는 사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똑같은 벽 앞에서, 두 회사는 서로 다른 승부수를 꺼냈습니다. 삼성은 zHBM, SK하이닉스는 HBF. 이름은 낯설어도 겨냥하는 지점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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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세줄 요약 1.AI의 병목이 GPU 연산에서 메모리의 속도와 용량으로 옮겨가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메모리 월’을 넘기 위한 차세대 기술을 꺼냈습니다. 2.삼성은 HBM을 GPU 위에 직접 쌓는 ‘zHBM’으로 데이터 이동 거리를 줄여 속도와 전력효율을 높이고, SK하이닉스는 NAND를 적층한 ‘HBF’로 HBM과 SSD 사이의 용량 공백을 메우려 합니다. 3.해법은 달라도 방향은 같습니다. 반도체 경쟁의 축이 ‘옆으로 더 촘촘하게’에서 ‘위로 더 높게’로, AI 경쟁의 중심도 ‘계산’에서 ‘기억’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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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이 공개한 zHBM의 모형입니다. 위로 쭈욱 쌓았습니다. [사진=삼성] |
삼성전자가 선택한 zHBM AI를 돌리는 핵심 부품은 GPU입니다. 한 번에 엄청난 양의 계산을 처리하는 연산 장치입니다. 그런데 GPU는 혼자서 일하지 못합니다. 계산할 데이터를 어딘가에서 계속 받아와야 하거든요. 그 데이터를 담아두고 GPU에 빠르게 넘겨주는 부품이 ‘메모리’입니다. 그중에서도 GPU 바로 옆에 붙는 초고속 메모리를 HBM이라고 불러요. D램 여러 장을 위로 쌓아 데이터가 오가는 길을 넓게 낸 메모리입니다. 한 단락으로 정리하면 AI 학습은 GPU가 엄청난 양의 숫자를 끊임없이 계산하는 과정입니다. 하지만 GPU가 아무리 빨라도 계산에 필요한 데이터가 제때 들어오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고성능 주방에 요리사를 잔뜩 고용해 놓고도 식재료가 늦게 도착하면 요리를 못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때 GPU 바로 옆에서 필요한 데이터를 끊임없이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HBM입니다. 여러 장의 D램을 위로 쌓고 데이터가 오가는 통로를 크게 늘려 일반 메모리보다 훨씬 많은 데이터를 한꺼번에 GPU로 보낼 수 있어요. AI 모델이 커지고 GPU의 계산 능력이 강해질수록 HBM의 용량과 속도가 함께 중요해지는 이유입니다. 특히 이제는 ‘추론’의 시대입니다. AI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또 AI 에이전트가 스스로 일을 하게 되면서 추론에 쓰이는 토큰은 지난 2년새 100배 넘게 늘었어요. 최신 모델을 학습시키는 데이터는 해마다 세 배씩 불어나고 있습니다. 처리해야 할 연산량이 폭증하면서 GPU에 데이터를 공급하는 메모리의 속도도 함께 빨라져야 해요. 문제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GPU는 세대를 거듭하며 빨라지는데 메모리가 데이터를 넘기는 속도는 그만큼 따라가지 못합니다. 손이 빨라진 요리사 옆에서 재료 나르는 사람은 그대로인 셈입니다. 재료가 제때 안 오면 실력 좋은 요리사도 손을 놓고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업계는 이 현상을 ‘메모리 월(Memory Wall)’이라고 부르는데요. 이제 AI의 발목을 잡는 건 계산 능력이 아니라 메모리라는 뜻입니다. 지금까지 HBM은 GPU 바로 옆에 나란히 붙였습니다. 반도체 업계에서 2.5D(2.5차원)라고 부르는 방식입니다. 문제는 아무리 가까이 붙여도 GPU와 HBM 사이에는 거리가 남는다는 점입니다. 데이터는 이 길을 쉴 새 없이 오가야 합니다. 길이 길수록 데이터를 보내는 데 시간이 더 걸리고 전력도 더 많이 듭니다. GPU의 성능이 아무리 좋아져도 데이터를 가져오는 길이 막히면 제 성능을 내기 어려운 겁니다. 삼성이 잡은 목표를 보면 왜 판을 갈아엎어야 했는지 드러납니다. 지금 AI는 사용자 한 명에게 초당 100토큰 안팎으로 답을 내놓는데 삼성은 이를 초당 1000토큰까지 끌어올리려 합니다. 열 배 빠른 응답입니다. 기존 방식을 조금씩 개선해서는 이 도약이 사실상 불가능해요. 그래서 아예 새로운 구조를 만듭니다. ‘옆’이 아니라 ‘위’라는 새 축(z축)이 필요했습니다. z 축으로 쌓아 올리는 zHBM 그 답이 FMS 2026에서 공개한 ‘zHBM’입니다. HBM을 GPU 옆이 아니라 위에 올려 쌓는 방식입니다. 옆집에 있던 창고를 공장 바로 위층으로 옮기는 셈입니다. 데이터가 이동해야 하는 거리가 짧아지니 더 빠르게 주고받을 수 있고 전력도 아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위아래로 쌓은 GPU와 HBM을 어떻게 연결하느냐입니다. 삼성전자는 두 칩을 맞붙인 뒤 아주 작은 연결 통로를 촘촘하게 만드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기존 방식보다 같은 면적에 만들 수 있는 연결 통로를 10배로 늘렸습니다. GPU와 HBM 사이에 더 짧고 훨씬 많은 길을 내 데이터를 빠르게 주고받도록 한 것입니다. 수치로 보면 차이가 큽니다. zHBM은 바로 윗세대인 HBM5 대비 최대 8배 높은 성능을 낼 수 있다고 합니다. 같은 전력으로 3배 많은 일을 하고 열 저항은 절반 이하로 낮춥니다. 메모리를 옆에서 위로 옮겨 쌓았을 뿐인데 성능이 몇 세대를 건너뛴 셈입니다. zHBM에는 또 하나 눈에 띄는 특징이 있습니다. 메모리와 GPU 사이에 자리한 ‘인터레이어’라는 층에 고객이 원하는 기능을 추가로 넣을 수 있다는 점인데요. 용량을 더 키우거나 가속기 성능을 끌어 올리는 식으로 고객사 마다 다른 요구에 맞춰 설계를 바꿀 수 있습니다. 완성품을 그대로 파는 게 아니라 주문에 맞춰 짜는 맞춤형 메모리인 셈입니다. 물론 쉬운 길은 아닙니다. GPU 위에 메모리를 얹으면 GPU에서 나온 열이 메모리를 뚫고 빠져나가야 합니다. 삼성은 적층 높이를 조절하고 금속 층 수를 줄여 이 열 문제를 풀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짚어둘 대목은 zHBM이 하루아침에 나온 발상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삼성은 HBM2부터 HBM4E, HBM5까지 세대를 거듭하며 성능을 끌어올려 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점진적 개선만으로는 결국 한계선에 부딪힌다고 봤습니다. 옆에 붙이는 방식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는 겁니다. zHBM은 그 벽 너머를 겨냥해 구조 자체를 갈아엎은 카드입니다. 다만 zHBM은 아직 목업, 즉 모형 단계입니다. 당장 사서 쓰는 제품이 아니라 몇 년 뒤 AI 시스템이 나아갈 방향을 미리 그린 청사진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삼성은 지금 쓰는 HBM 로드맵도 함께 폈습니다. 샘플 단계인 HBM4E는 GPU 하나에 네 개를 붙이면 초당 16테라바이트를 실어 나르는 현행 최상위 제품입니다. 그 다음 HBM5는 전 세대보다 성능이 2배 높고 열 저항은 20% 낮은데 2나노 공정과 새 열 관리 기술을 적용했습니다. 지금 팔 제품과 미래에 그릴 제품을 한 무대에 나란히 올려놓은 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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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 부스의 HBM 구조와 2.5D 패키징을 형상화한 모형입니다. SK 하이닉스의 HBF 앞 장이 ‘속도’ 문제였다면 이번엔 ‘용량’ 문제입니다. AI 모델이 커지면서 담아둘 데이터도 폭발적으로 늘고 있습니다. 특히 요즘 뜨는 에이전트 AI는 한 번 묻고 답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도구를 쓰며 여러 단계를 오가면서 일을 처리합니다. 이 과정에서 AI는 앞에서 어떤 내용을 처리했는지 계속 기억해야 합니다. 매번 처음부터 다시 계산하면 너무 느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미 처리한 내용을 메모리에 임시로 저장해두는데, 이를 ‘KV 캐시’라고 합니다. 대화와 작업이 길어질수록 이 메모도 계속 쌓이고 그만큼 더 많은 메모리 용량이 필요해집니다. SK하이닉스가 든 예가 생생합니다. 회사 내부에서 엔지니어 한 명이 펌웨어 개발을 AI 에이전트에게 맡겼더니, 여러 에이전트가 4천만 개가 넘는 토큰을 소비하고 20억 개가 넘는 캐시 토큰을 메모리에 올렸다고 합니다. 작업 하나에 필요한 메모리가 수백 기가바이트에서 수 테라바이트까지 불어난 겁니다. GPU 카드 한 장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훌쩍 넘어섭니다. 사실 이건 한 회사만의 고민이 아닙니다. 지난 10년간 GPU의 계산 성능은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메모리 용량은 그만큼 따라오지 못했습니다. 긴 맥락과 여러 단계를 기억해야 하는 추론형 AI가 확산하면서 이제는 계산 능력만큼이나 데이터를 담아둘 공간이 중요해졌습니다. 문제는 메모리가 부족할 때입니다. 현재 AI 서버에서는 HBM이 GPU와 한 묶음으로 붙어 있기 때문에 메모리만 따로 늘리기가 어렵습니다. 결국 더 많은 메모리를 확보하려면 필요하지 않은 GPU까지 함께 추가해야 합니다. 계산 능력은 충분한데 저장 공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값비싼 GPU를 더 사야 하는 셈입니다. 추가한 GPU의 연산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면 비싼 GPU를 사실상 ‘창고지기’로 쓰는 꼴입니다. 여기서 NAND가 등장합니다. NAND는 우리가 흔히 쓰는 SSD에 들어가는 저장용 반도체입니다. HBM보다 느리지만 훨씬 많은 데이터를 담을 수 있고 가격도 쌉니다. 비유하면 HBM이 필요한 자료를 바로 펼쳐놓는 ‘빠른 책상’이라면 NAND는 많은 자료를 보관하는 ‘큰 창고‘에 가깝습니다. SK하이닉스의 아이디어는 이 둘의 장점을 섞는 겁니다. 창고처럼 많은 데이터를 담으면서도 필요할 때 GPU에 훨씬 빠르게 넘겨주는 새로운 메모리를 만들자는 겁니다. 그렇게 나온 것이 HBF(High Bandwidth Flash)입니다. NAND를 사용하지만 HBM처럼 ‘여러 층’으로 쌓고 데이터가 오가는 길을 넓혀 속도를 끌어올렸습니다. HBM과 SSD 사이에 새로운 메모리 계층을 하나 만든 셈입니다. 용량은 HBM의 약 10배에 달하면서 대역폭은 초당 테라바이트급까지 높였습니다. 이번에 공개한 규격을 보면 한 덩어리에 최대 512GB를 담을 수 있고 대역폭은 등급에 따라 초당 0.4~3테라바이트에 이릅니다. 데이터를 꺼내는 데 걸리는 시간도 마이크로초 단위로 SSD보다 훨씬 짧습니다. 그렇다면 그냥 SSD를 많이 달면 되지 않을까요. 문제는 속도입니다. GPU는 연산하는 동안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빠르게 요구하는데 기존 SSD로는 이를 제때 공급하기 어렵습니다. HBF의 핵심은 SSD급의 큰 용량을 가지면서도 GPU가 훨씬 빠르게 꺼내 쓸 수 있도록 만든 데 있습니다. ‘큰 창고’를 GPU 바로 가까이에 하나 더 지어주는 셈입니다. 어떤 데이터를 부를까, 먼저 예상 느린 NAND가 어떻게 빠른 메모리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비결은 AI가 데이터를 읽는 순서가 비교적 예측 가능하다는 데 있습니다. AI 추론에서 자주 읽는 것은 모델 가중치나 이미 계산해둔 KV 캐시입니다. SK하이닉스에 따르면 이런 작업에서는 읽기와 쓰기의 비율이 약 30만 대 1에 달합니다. 게다가 어떤 데이터를 다음에 읽을지도 상당 부분 미리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GPU가 데이터를 달라고 하기 전에 곧 필요한 데이터를 NAND에서 미리 꺼내 가까운 버퍼에 가져다 놓습니다. 창고에서 주문이 들어온 뒤 물건을 찾는 게 아니라, 다음 주문을 예상해 출고장에 미리 가져다 놓는 셈입니다. NAND 자체를 HBM처럼 빠르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AI의 규칙적인 데이터 사용 패턴을 이용해 NAND의 느린 속도가 드러나지 않도록 한 것입니다. 주목할 점은 SK하이닉스가 이 기술을 혼자 끌어안지 않았다는 겁니다. 샌디스크와 손잡고 HBF의 첫 표준 규격을 만들고 이를 세계 최대 데이터센터 기술 협의체인 OCP를 통해 공개했습니다. 연결 방식에는 개방형 표준인 UCIe를 채택해 특정 GPU나 CPU에 묶이지 않고 다양한 프로세서와 연결할 수 있는 기반도 마련했습니다. 속도도 이례적입니다. 지난 2월 표준화 작업을 시작한 지 불과 반년 만에 첫 규격을 내놨습니다. 행사 무대에 오른 샌디스크 측은 이를 ‘번개 같은 속도’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만큼 AI 추론에서 메모리 용량과 대역폭 문제가 급해졌다는 얘기입니다. SK하이닉스가 그리는 큰 그림은 ‘계층형 메모리(Tiered Memory)’입니다. 가장 빠른 메모리부터 가장 큰 저장장치까지 여러 층을 촘촘하게 나누고, 데이터의 성격에 따라 알맞은 층에 배치해 시스템 전체 효율을 높이자는 구상입니다. HBF는 이 사다리 중 HBM과 SSD 사이에 새로 끼워 넣은 한 칸입니다. 이날 SK하이닉스는 HBF 외에도 GPU 위에 D램을 직접 쌓는 ‘3D 스택 D램’, 여러 서버가 메모리를 함께 나눠 쓰는 ‘CXL 메모리 풀링‘ 같은 새로운 층을 함께 제안했습니다. HBF는 이 가운데 HBM으로는 부족한 용량을 크게 늘리면서도 SSD보다 훨씬 빠르게 데이터를 공급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여기에 전 세대보다 전력효율을 2.5배 높인 375단 4D 낸드도 처음 공개했습니다. SK하이닉스는 이 낸드를 적용한 고성능·고용량 기업용 SSD를 내년 초부터 양산할 계획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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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FMS 기조강연이 열리던 무대의 모습입니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정말 자리가 없을 정도로 관심이 쏠렸습니다. 메모리 기업의 수직 전쟁 두 회사는 같은 벽 앞에 서 있습니다. 메모리 월입니다. GPU는 빨라지고 AI 모델은 커지는데 메모리가 속도로도 용량으로도 그 속도를 못 따라가는 문제입니다. 흥미로운 건 같은 벽을 앞에 두고 삼성과 SK하이닉스가 서로 다른 쪽으로 돌파구를 냈다는 점입니다. 삼성의 zHBM은 ‘거리’를 공략합니다. 메모리를 GPU 위에 수직으로 쌓아 데이터가 오가는 길을 최대한 짧게 만듭니다. 속도와 전력효율을 끌어올리는 정면 승부입니다. SK하이닉스의 HBF는 ‘용량’을 공략합니다. 값싼 NAND를 빠르게 연결한 새 계층을 끼워 넣어 모자란 용량을 메웁니다. 한쪽은 더 빠르게, 다른 쪽은 더 크게. 방법을 한 겹 벗겨 보면 두 회사가 쓰는 문법은 사실 같습니다. 둘 다 ‘위로’ 쌓습니다. 지금까지 반도체는 평면에서 회로를 옆으로 넓히며 발전해 왔습니다. 그 방식이 한계에 다다르자 이제 답은 하나로 모입니다. 위로 쌓는 것. HBM부터가 D램을 여러 장 수직으로 포갠 제품이고 zHBM은 그 메모리를 아예 GPU 위에 얹습니다. NAND도 마찬가지입니다. 삼성 V10은 셀을 400단 넘게, SK하이닉스는 375단으로 쌓아 올렸고 HBF는 그 NAND를 다시 층층이 포개 HBM급 속도를 냅니다. 넓힐 자리가 없으니 높이로 승부하는 겁니다. 쌓는 대상이 조금 다를 뿐입니다. zHBM은 메모리를 프로세서 ‘위에’ 올리고, HBF는 NAND 칩끼리 포갭니다. 그런데 이 경계도 흐려지고 있습니다. SK하이닉스 역시 이번에 GPU 위에 D램을 얹는 3D 스택 D램을 함께 제안했거든요. 프로세서 위에 메모리를 쌓는다는 발상은 결국 두 회사가 나란히 향하는 지점입니다. 삼성도 NAND 카드를 함께 꺼냈습니다. zNAND-O는 D램의 약 10배에 이르는 집적도를 갖추면서 NAND의 읽기 대역폭과 전력효율을 7배 끌어올린 제품인데요. 수직 연결 기술로 칩을 쌓아 D램은 비싸고 NAND는 느리다는 두 약점을 동시에 겨냥했습니다. 스마트폰처럼 기기에서 직접 AI를 돌리는 온디바이스 환경을 노리고 있고 2028년 샘플 공급이 목표입니다. 방향은 같아도 전략의 색깔은 갈립니다. 삼성은 ‘맞춤’을 앞세웠습니다. zHBM은 고객사마다 다른 요구에 맞춰 설계를 바꿀 수 있어요. 삼성은 메모리부터 로직, 파운드리, 패키징까지 한 회사가 다 대는 ‘원스톱’을 강조합니다. 주문을 받아 통째로 짜주겠다는 겁니다. SK하이닉스는 ‘표준’을 택했습니다. 경쟁사가 될 수도 있는 샌디스크와 손잡고 기술을 OCP에 공개해 업계 공용 규격으로 풀었습니다. 판을 혼자 쥐기보다 같이 키우겠다는 쪽입니다. 여기엔 체급 차이도 깔려 있습니다. 파운드리까지 가진 삼성은 안에서 다 돌리니 맞춤형이 힘을 받고 파운드리가 없는 SK하이닉스로선 파트너와 손잡는 개방형이 더 자연스러운 길입니다. 5D에서 3D로 향하는 두 기업 두 회사가 가리키는 곳은 같습니다. 메모리가 더 이상 GPU 옆에 얌전히 붙는 ‘부품’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제 메모리를 어떻게 쌓고 어디에 두고 어떤 층으로 나눌지가 AI 시스템 전체 성능을 좌우합니다. HBF만 해도 메모리와 GPU, 소프트웨어, 연결 방식을 처음부터 함께 맞춰야 제대로 굴러갑니다. 지금까지 메모리 회사는 대체로 고객과 업계가 정한 규격을 받아 만드는 쪽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순서가 달라졌습니다. 메모리 회사가 먼저 새 구조를 제안하고 GPU 진영을 끌어들이는 그림입니다. 시장의 돈이 향하는 곳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AI 메모리의 주인공은 HBM이었습니다. 빠른 D램을 여러 층 쌓아 GPU에 데이터를 빠르게 공급하는 역할을 맡았죠. 그런데 AI 모델이 갈수록 커지면서 새로운 문제가 생겼습니다. 빠른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엄청나게 많은 데이터를 담아둘 공간도 필요해진 겁니다. 여기서 NAND가 등장합니다. D램보다 느리지만 훨씬 많은 데이터를 상대적으로 싸게 저장할 수 있습니다. AI용 기업 SSD 수요가 늘면서 NAND가 메모리 시장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26년 1분기 43%에서 연말 60% 이상으로 커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요. HBM이 독차지하던 AI 메모리 무대에 NAND도 주연으로 올라오기 시작한 셈입니다. 삼성의 zNAND-O와 SK하이닉스의 HBF가 등장한 배경도 여기에 있습니다. 물론 아직은 ‘완공된 건물’보다 ‘조감도‘에 가깝습니다. zHBM은 상용화 시점이 정해지지 않았고 zNAND-O는 2028년 샘플 공급이 목표입니다. HBF 역시 이제 막 표준화의 첫발을 뗐습니다. 실제 AI 시스템에 들어가 약속한 성능을 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도 방향만큼은 선명합니다. 반도체는 수십 년 동안 회로를 더 작게 만들고 옆으로 촘촘하게 넣으며 발전했습니다. 이제 그 공간이 부족해지자 쌓기 시작했습니다. 동시에 AI의 병목도 GPU가 얼마나 빨리 계산하느냐에서 그 계산에 필요한 데이터를 얼마나 빨리, 많이 공급하느냐로 이동하고 있습니다.V그 길목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누구보다 먼저 새로운 설계도를 펼쳐 들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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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 월가 돈 5000억달러 끌어 AI 인프라 깐다 엔비디아가 블랙스톤·블랙록·골드만삭스 등 월가 6개 금융사와 손잡고 5000억달러 규모의 AI 인프라 투자·금융 지원에 나섭니다. 금융사들이 전용 자금 풀을 만들어 엔비디아 고객의 데이터센터와 컴퓨팅 인프라 구축에 자금을 빌려주는 방식인데요. 젠슨 황 CEO는 엔비디아 돈이 아닌 전액 제3자 자본으로 조달한다고 밝혔습니다. 엔비디아가 고객에게 자금을 대고 고객은 다시 엔비디아 칩을 사는 구조가 커지면서 ‘순환금융’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가 6500단어짜리 AI 선언문을 내고 강력한 AI를 소수 기업이나 정부가 통제하는 방식에 반대했습니다. 메타는 오픈웨이트 모델 ‘뮤즈 글리머’를 공개하고 더 강력한 ‘뮤즈 스파크’의 가중치도 개방할 계획인데요. 저커버그는 AI가 일자리를 없애기보다 개인 창업과 새로운 직업을 늘릴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동시에 중국과의 AI 경쟁을 위해 규제는 줄이고 첨단 AI칩 수출통제는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개방’을 앞세운 메타가 오픈AI·앤트로픽과 AI 주도권 경쟁에 나선 모습입니다. 인텔이 공개 주식 발행을 통해 150억달러를 조달해 AI 데이터센터와 첨단 패키징 등에 투자합니다. 립부 탄 CEO 취임 이후 실적이 회복되면서 2분기 매출은 25% 늘었고, 데이터센터·AI 사업은 59% 성장했는데요. AI 가속기에서는 엔비디아에 밀렸지만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에 따른 CPU 공급 부족의 수혜를 받고 있습니다. 최근 1년간 주가가 175% 오른 만큼 이를 활용해 ‘피지컬 AI’와 목적형 반도체 등 미래 성장동력에 베팅하는 모습입니다. |
FMS에서 마이크론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30년 전만 해도 전체 시스템 값의 10% 남짓이던 메모리 비중이 지금은 절반에 육박한다고요.
D램도 낸드도 공급이 빠듯한데 메모리는 한번 꽂으면 시스템을 통째로 뜯어야 바꿀 수 있어 수요가 좀처럼 꺾이지 않는다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파는 쪽이 아쉬울 게 없어진 겁니다.
그 힘의 이동은 이미 협상 테이블에서 드러났습니다. 최근 애플이 중국 창신메모리(CXMT)에 메모리값을 깎아달라 했다가 거절당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그런데도 애플은 CXMT의 칩으로 테스트를 시작했고요.
CXMT는 삼성·SK하이닉스와 같거나 더 비싼 값을 불렀고 화웨이·샤오미 물량으로 라인이 이미 꽉 찬 터라 애플이 급할 게 없었습니다. 세계 최강 구매자가 메모리값 앞에서 을이 된 셈입니다.
사는 쪽이 갑이던 시대가 이제는 정말 뒤집힌 것 같습니다.
물론 이 판이 마냥 화기애애하진 않습니다. 마이크론은 SK하이닉스와 샌디스크가 내놓은 HBF를 두고 상업화 전망이 아직 논쟁적이라며 선을 그었습니다.
다음 표준을 누가 쥐느냐를 두고 견제가 시작됐습니다. AI가 키운 건 모델만이 아니었습니다. 그 밑에서 데이터를 떠받치던 메모리의 몸값과 발언권도 함께 키웠습니다. 이번 FMS는 그 달라진 무게를 두 눈으로 확인한 자리였습니다.
올해 FMS에서 보여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새로운 구조는 ‘쌓기’였습니다. 오늘 점심 층층이 쌓인 햄버거 추천해 드립니다. 더 이상 옆으로 놓을 수 없는 메모리, 위로 쌓아올린 햄버거 드시면서 메모리의 새로운 구조에 대해 이야기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저는 여기서 가성비 좋고 맛 좋은 ‘인앤아웃 버거’로 점심을 때우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