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식장애를 겪는 초등학생 얘기도 보도되던데, 진짜야?
코로나19 펜데믹 이후 세계적으로 10살 미만 어린이 사이에서 크게 늘어난 섭식장애 질환이 있어. 알피드(arfid), 회피적·제한적 음식 섭취 장애야. 체중이나 외모강박과 상관없이 음식을 먹지 못하는 증상이야. 안타깝게도 학령기 이전 아이들에게 나타나고 있어.
한창 잘 먹고 잘 커야 할 나이인데, 왜 그럴까?
사춘기 청소년은 자기혐오에 빠지기 쉽잖아. 학업 경쟁으로 스트레스는 심한데,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없으니까. 정작 하고 싶은 건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거나 저지되는 경우가 많고. 그럴 때 자기 몸만큼은 절대적인 소유권을 쥐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살 빼는 건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까.
10대 당사자를 만나봤어?
직접 만난 적은 없고, 내 SNS 메시지나 메일로 연락한 학생들이 있어. 섭식장애로 표현되는 마음의 고통, 실존적 고민에 대해 털어놨던 것 같아. 이런 고민을 이야기할 곳이 마땅치 않거든.
얘기할 곳도 없다고? 도와주는 곳은 더 없겠네?
한국에선 섭식장애와 관련해 전문적인 치료를 받는 게 거의 불가능해. 일단 돈이 많이 들어. 섭식장애를 치료하는 과정은 긴 시간이 필요한데 진단검사나 치료도 건강보험 보장 범위 밖에 있고. 치료 비용을 환자가 온전히 부담해야 하지.
돈이 얼마나 많이 들길래?
2002년 초에 내가 입원했던 개인 섭식장애 전문 입원 병원의 입원치료 비용은 두 달에 400만원이었어. 20년도 전에 이 정도니, 어떤 수준인지 짐작 가지? 지금은 이런 개인 클리닉마저 거의 사라졌다고 보면 돼. 섭식장애 입원치료는 아주 전문적인 분야인데, 섭식장애 전문 입원치료가 가능한 시설이 대한민국에 한 곳도 없는 상황이야.
설마….
섭식장애를 제대로 이해하고 공부한 정신과 의사나 개인 상담사가 한 손에 꼽을 정도거든. 믿기 어렵겠지만 의대에서 배우는 섭식장애 지식은, 우리가 고등학생 때 세계사 시간에 배우는 캄보디아 역사 정도로 빈약해.
왜?
섭식장애로 병원이 돈을 벌기 어려운 구조야. 섬세한 치료가 필요하다 보니 전문가가 많이 필요하거든. 간호사, 심리상담사, 영양사는 기본이고 내가 들어간 병원은 미술치료, 음악치료도 했거든. 인건비가 많이 드는 거지. 근데, 입원 병동 특성상 환자를 많이 받을 수 없으니까 적자를 면치 못하는 한계가 있는 것 같아.
다른 나라는 어떤데?
이번 섭식장애 인식주간에 강연자를 초청했던 호주, 이탈리아는 포괄수가제를 적용하고 있어. 우리처럼 검사비, 상담비, 약값 등 개별 치료 항목마다 (환자에게) 비용을 청구하는 게 아니라 질병별로 일정 금액의 치료비를 정해놨어. 덕분에 환자는 의료비를 예측할 수 있고, 병원은 과잉 진료를 안 해도 돼.
섭식장애 당사자가 많은데, 정부는 잘 파악하고 있어?
한국은 섭식장애 실태조사를 안 해. 2001년, 2006년 복지부가 정신건강 실태조사를 할 때 거식증과 폭식증을 포함했는데, 이후엔 빠졌어. 당시 조사에서 유병률이 낮게 나왔다는 이유로.
그땐 당사자가 적었나?
당시 사용된 섭식장애 조사 도구의 결함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있어. (20년이 지나서) 섭식장애에 대한 인식이나 추세도 달라졌기 때문에 다시 포함해야 한다고 봐.
건강보험공단이 섭식장애 진단자 통계를 내고 있잖아.
잘못된 통계야. 먼저, 섭식장애 환자 중 병원에 가는 사람이 3분의 1도 안 된다는 조사가 있어. 숨은 유병자가 많은 거지. 섭식장애 진단자에 해당하는 F50이란 질병코드를 의사가 등록할 확률도 낮아. 의사들이 섭식장애에 대해 잘 모르는 데다 보험적용이 안 되기 때문에 우울증 등 다른 질병으로 등록하는 경우가 많거든. 제일 심각한 오류가 또 있어.
뭔데?
섭식장애 진단자 통계를 유심히 보면, 70~80대 비중이 꽤 높아.
진짜? 노인이 왜?
노인은 근육이 약해져 음식을 제대로 삼키기 어려운 상태가 되는 연하곤란 증상을 겪거든. 이 증상을 의사들이 F50, 섭식장애로 분류하다 보니 해당 연령에서 환자가 많이 나온 거야. 왜곡된 통계인 거지.
발병 초기인 10대 때부터 제대로 치료하려면?
지금은 부모가 발견해서 병원에 데려가야 치료가 가능하잖아. 학교에서도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고 증상 초기에 바로 치료할 수 있는 단계별 체계가 만들어져야 해. 아이의 연령과 상황에 맞도록 세심한 매뉴얼도 필요하고.
섭식장애에서 어떻게 빠져나왔어?
나는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섭식장애 증상이 나아졌어. 규칙적인 생활을 할 뿐 아니라, 일해야 하잖아. 에너지를 쓰다 보니 밥을 제때 챙겨 먹게 되더라고. 방에 혼자 있다 보면 배고픔도 느끼지 못하고 식욕도 생기기 어렵지.
일을 안 하거나, 규칙적인 생활을 하지 않는다면?
식사치료에 쓰이는 방법을 하나 소개해줄게. 폭식해서 토하지 않으려면, 공복이 3시간을 넘으면 안 되거든. 그래서 아침, 간식, 점심, 간식, 저녁, 간식. 이렇게 6번을 먹는 게 좋아. 간식은 요구르트나 과일처럼 소화에 좋은 걸 고르면 좋고. 이 계획을 세워서 식사 일기를 쓰면 도움이 될 거야.
️내가 섭식장애인지 스스로 알 수 있는 방법은?
먹는 문제로 일상생활을 망치거나 포기하게 될 때야. 가족 외식에 불참하고, 명절에 집에 내려가지 않고, 친구와 만나는 일이 주는 경우지. 학교나 직장에서 일정 시간 버티는 일이 불가능하게 느껴질 때도 마찬가지.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해?
최대한 빨리 주변에 도움을 구해야 해. 이 정도로 악화되기 전에 본인이 고립됐다는 심각성을 느끼고 그 상황에서 빠져나온다면 정말, 정말 다행이고. 그렇게 할 수 있기를 응원할게. 자신을 위해, 용기를 내서 좋은 전략을 택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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