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용관 블루포인트파트너스 대표게임의 법칙이 변했다.
한국을 10대 경제 강국의 위치로 끌어올린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 전략은 한계에 봉착했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은 IT 산업 전환기에 기민하게 대처했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산업 재편이 시작됐고, 여기에 좁은 국토로 인한 초고속 인터넷망 설치의 용이함, 정부의 강력한 정책 드라이브와 국민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가 맞물리며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그런데 AI(인공지능)가 새로운 산업 질서를 이끄는 지금, 국내 투자 생태계 전반에 '열패감(劣敗感)'이 감돈다.
따라가기도 벅차다는 현실인식이 배경이다.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은 이제 선도하지 않으면 도태되어 버리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의 게임을 요구한다.
HBM(고대역폭메모리)과 파운드리 등 핵심 기술 경쟁력 확보에 소홀하며 전사적 위기를 맞이한 삼성전자의 상황만 봐도 그렇다.
반도체 분야의 명실상부한 1위 기업이 한순간에 경쟁사들의 뒤편으로 저만치 밀려난 모양새다.
AI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의 오픈AI에서 챗GPT가 출시된 지 단 1년 반만에 기술 격차는 하늘과 땅 차이로 벌어졌다.
딥시크를 위시한 중국이 후발주자의 위치에서 빠르게 추격하고 있는 반면, 우리는 그 중국과의 기술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안타까운 점은 한국이야 말로 AI의 퍼스트 무버가 될 수 있었다는 점이다.
2016년 3월 '알파고-이세돌 대국'이 눈앞에서 벌어졌는데도, 이를 '일회성 이벤트'로 소비하는 데 그쳤다.
해당 사건 이후 전세계에선 AI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시작했으며, AI의 응용 가능성을 모든 산업에 확산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세돌의 '신의 한수'에만 주목했다.
AI가 보여준 가능성의 미래는 온데간데 사라졌다.
이어진 근 10년의 세월에서 AI 스피커의 엉뚱한 대답을 유희하는 수준에서 좀처럼 나아가지 못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처럼 산업이 요동치는 시점에 '거품'조차 없다는 것이다.
'자본'과 '인재'의 부족은 부차적 문제에 불과하다.
산업이 안정화되고 성장 경로가 명확한 시기에는 계획적이고 보수적인 투자가 타당하다.
하지만 지금처럼 기술의 불확실성이 크고 파괴적 혁신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시기에는 예측보다 신속한 대응이 중요하다.
격동기에는 실패를 두려워하기보다, 과감한 시도와 실험이 장려되어야 한다.
비록 외형상 거품처럼 보일 수 있어도, 이는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한 필연적 비용이자 성장의 동력이다.
앞서 한국이 누려온 IT 강국의 영광은 2000년대 초반 '닷컴 버블'의 유산이었다는 값비싼 경험에도 여전히 정부와 시장은 조심스럽기만 하다.
반면 중국은 과감한 투자와 실패에 대한 관용이 어우러지며 기술적 약진을 거듭하고 있다.
그들이 만든 로봇은 이미 걸음마를 떼고 마라톤에 도전하고, 자동차는 운전자 없이 도시 전체를 누빈다.
드릴로 뚫고 전기톱으로 잘라도 불이 붙지 않는 값싼 소금(나트륨) 배터리마저 내놨다.
새롭게 판을 짜고 독점적 우위를 확보하려는 시도가 산업 전반에서 이뤄지고 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혁신을 위한 씨앗을 심어야 한다.
AI 분야는 다양한 서비스가 태동 중이고, 휴머노이드나 양자컴퓨팅 등 아직 글로벌 리더가 정립되지 않은 분야는 여전히 많다.
한국이 보유한 제조업 경쟁력과 세계 최고 수준의 IT 인프라는 여전히 강력한 무기다.
이를 글로벌 시장과 연결하는 전략과 함께 무모해 보일 정도의 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미국의 전설적인 벤처투자자 피터 틸이 '가장 큰 위험은 아무 위험도 감수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거품은 거품대로 필요하다.
혁신은 안전지대 밖에서 싹튼다.
한국을 10대 경제 강국의 위치로 끌어올린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 전략은 한계에 봉착했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은 IT 산업 전환기에 기민하게 대처했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산업 재편이 시작됐고, 여기에 좁은 국토로 인한 초고속 인터넷망 설치의 용이함, 정부의 강력한 정책 드라이브와 국민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가 맞물리며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그런데 AI(인공지능)가 새로운 산업 질서를 이끄는 지금, 국내 투자 생태계 전반에 '열패감(劣敗感)'이 감돈다.
따라가기도 벅차다는 현실인식이 배경이다.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은 이제 선도하지 않으면 도태되어 버리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의 게임을 요구한다.
HBM(고대역폭메모리)과 파운드리 등 핵심 기술 경쟁력 확보에 소홀하며 전사적 위기를 맞이한 삼성전자의 상황만 봐도 그렇다.
반도체 분야의 명실상부한 1위 기업이 한순간에 경쟁사들의 뒤편으로 저만치 밀려난 모양새다.
AI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의 오픈AI에서 챗GPT가 출시된 지 단 1년 반만에 기술 격차는 하늘과 땅 차이로 벌어졌다.
딥시크를 위시한 중국이 후발주자의 위치에서 빠르게 추격하고 있는 반면, 우리는 그 중국과의 기술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안타까운 점은 한국이야 말로 AI의 퍼스트 무버가 될 수 있었다는 점이다.
2016년 3월 '알파고-이세돌 대국'이 눈앞에서 벌어졌는데도, 이를 '일회성 이벤트'로 소비하는 데 그쳤다.
해당 사건 이후 전세계에선 AI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시작했으며, AI의 응용 가능성을 모든 산업에 확산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세돌의 '신의 한수'에만 주목했다.
AI가 보여준 가능성의 미래는 온데간데 사라졌다.
이어진 근 10년의 세월에서 AI 스피커의 엉뚱한 대답을 유희하는 수준에서 좀처럼 나아가지 못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처럼 산업이 요동치는 시점에 '거품'조차 없다는 것이다.
'자본'과 '인재'의 부족은 부차적 문제에 불과하다.
산업이 안정화되고 성장 경로가 명확한 시기에는 계획적이고 보수적인 투자가 타당하다.
하지만 지금처럼 기술의 불확실성이 크고 파괴적 혁신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시기에는 예측보다 신속한 대응이 중요하다.
격동기에는 실패를 두려워하기보다, 과감한 시도와 실험이 장려되어야 한다.
비록 외형상 거품처럼 보일 수 있어도, 이는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한 필연적 비용이자 성장의 동력이다.
앞서 한국이 누려온 IT 강국의 영광은 2000년대 초반 '닷컴 버블'의 유산이었다는 값비싼 경험에도 여전히 정부와 시장은 조심스럽기만 하다.
반면 중국은 과감한 투자와 실패에 대한 관용이 어우러지며 기술적 약진을 거듭하고 있다.
그들이 만든 로봇은 이미 걸음마를 떼고 마라톤에 도전하고, 자동차는 운전자 없이 도시 전체를 누빈다.
드릴로 뚫고 전기톱으로 잘라도 불이 붙지 않는 값싼 소금(나트륨) 배터리마저 내놨다.
새롭게 판을 짜고 독점적 우위를 확보하려는 시도가 산업 전반에서 이뤄지고 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혁신을 위한 씨앗을 심어야 한다.
AI 분야는 다양한 서비스가 태동 중이고, 휴머노이드나 양자컴퓨팅 등 아직 글로벌 리더가 정립되지 않은 분야는 여전히 많다.
한국이 보유한 제조업 경쟁력과 세계 최고 수준의 IT 인프라는 여전히 강력한 무기다.
이를 글로벌 시장과 연결하는 전략과 함께 무모해 보일 정도의 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미국의 전설적인 벤처투자자 피터 틸이 '가장 큰 위험은 아무 위험도 감수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거품은 거품대로 필요하다.
혁신은 안전지대 밖에서 싹튼다.
이용관 블루포인트파트너스 대표
주당 60건씩 규제법안 쏟아낸 국회, 이러니 잠재성장률 추락
환경과 안전을 위해 필요한 것도 있지만, 상당수는 기업의 투자를 위축시키고 결과적으로 일자리 창출 능력을 약화시키는 '나쁜 규제'다.
대외적 불확실성 확대와 내수 침체에 직면한 기업들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국회가 발목을 잡은 꼴이다.
입법 실적을 쌓겠다며 규제법안을 남발하는 것은 민생침해 범죄와 같다.
규제의 영향과 부작용을 평가해 '나쁜 규제'를 입법 단계에서 걸러내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좋은규제 시민포럼'이 지난 9일 국회에서 개최한 '22대 국회 입법평가와 차기 정부 규제개혁과제 세미나'에 따르면 지난 1년간 2830건, 주당 60여 건꼴로 규제법안이 발의됐다.
의원 평가에 법안 발의건수를 반영해 날림으로 만든 규제법안이 양산된 결과다.
역대 모든 정부가 출범 초 규제개혁을 기치로 내걸곤 했지만 정치권의 규제 포퓰리즘과 관료사회의 타성 등으로 인해 번번이 용두사미(龍頭蛇尾)에 그쳤다.
강영철 포럼 이사장은 "정치적 올바름이 경제적 올바름을 압도하는 규제 환경이 개선되지 않아 민간의 자율과 창의를 저해하는 핵심 규제들은 어떤 정권에서도 개혁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6·3 대선 후 출범하는 새 정부가 기업 성장을 가로막는 규제를 과감히 철폐할 것을 주문했다.
특히 과거 굴뚝산업 시대에나 어울릴 법한 낡은 규제체계를 인공지능(AI)·바이오 등 신산업 특성을 반영할 수 있도록 뜯어고쳐야 한다.
국책연구원의 진단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보고서에서 2040년대 한국 경제 잠재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질 것이라 경고하며 시장 진입 규제와 경쟁 제한 규제, 노동시간 규제 등을 완화해야 성장 둔화를 늦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규제개혁으로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는 시간도 몇 년 남지 않았다.
고령화가 급속으로 진행되고 성장 불씨가 완전히 꺼져버린 뒤엔 규제를 없애도 약발이 듣지 않기 때문이다.
차기 정부는 규제개혁의 마지막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거자필반(去者必返)

사랑일지도 모른다,
생각했지만네 몸이 손에 닿는 순간그것이 두려움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너는 다 마른 샘 바닥에 누운 물고기처럼
힘겹게 파닥거리고 있었다,
나는얼어 죽지 않기 위해 몸을 비비는 것처럼너를
적시기 위해 자꾸만 침을 뱉었다네
비늘이 어둠 속에서 잠시 빛났다 (후략)-
나희덕 '마른 물고기처럼' 부분
소멸 중인 것들에 대한 연민과, 망실돼가는 것들에 대한 애처로움으로 인연은 기억된다.
죽어가는 상대를 온몸으로 적셔 서로를 지켰던 저 마른 물고기처럼 한때의 우리도 타인에게서 위로받았다.
연인이 아닐지라도, 그게 모든 인간의 이치 아니던가. 이 시의 2연은 훗날 재회하는 장면으로 연결된다.
메마른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 인연을 맺으며 삶을 걸어볼 힘을 얻고, 하지만 헤어져 각자의 길을 걷다 어느날 문득 다시 마주치는 것. 시간이 돌아오지 않아도 여전히 빛나는 비늘 한 점은 모두의 추억 속에 있다.
[김유태 문화스포츠부 기자(시인)]
보르도의 전설 '샤또 마고'
샤또 마고 와이너리.프랑스어로 샤또는 성(Castle)이라는 뜻이다.
"당신에게 있어 행복이란 무엇인가요?""샤또 마고(Chateau Margaux) 1848년 빈티지."영국의 변호사, 언론인, 철학자, 남성 권리 옹호자, 사회주의자, 역사가였던 어니스트 벨포트 벡스(E. Belfort Bax)는 동시대 독일의 경제학자이자 철학자, 정치가였던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다고 합니다.
카를 마르크스와 함께 '공산당 선언'을 저술한 엥겔스가 행복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사치품으로 분류되는 와인을 얘기한 것입니다.
엥겔스의 아이러니한 대답은 단순히 와인을 사랑했던 그의 사적인 취향을 드러내는 대답 같습니다만 중의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1848년은 공산당 선언이 발표·출간된 해이자, 유럽 전역에서 혁명이 일어난 해이기 때문입니다.
즉 "샤또 마고 1848 빈티지"란 그의 대답은 육체적 쾌락(와인)과 정신적 이상(혁명)을 동시에 담은 그만의 유머이자 혁명가적 열정, 인간적인 허영, 미식가적 감각, 그리고 시대의 상징이 고작 와인 이름과 양조 연도 한 줄에 모두 담긴, 인생학의 농축된 표현인 셈입니다.
역사적 아이러니일까. 실제로 샤또 마고의 1848년 빈티지 와인은 아주 뛰어난 품질로 기록돼 전해지고 있습니다.
엥겔스는 와인에 대한 안목도 참 뛰어났던 사람이었던 셈입니다.
엥겔스는 물론 역사 속 다양한 인물이 사랑했던 샤또 마고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오를리앙 발랑스 샤또 마고 부사장. 전형민
기자
5대 샤또, 그 찬란한 이름여러 번 소개하지만 와인의 역사는 인류 역사와 견줄 정도로 오래됐습니다.
당연하게도 셀 수 없이 많은 이야기가 얽혀 있습니다.
이 때문에 낭설과 루머, 주장과 공지가 혼재된 채 전파되기도 합니다.
주로 와인이 생산되는 지역의 언어가 영어와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 타국어이기 때문에 오역이나 의역이 종종 생기기도 하고 광고나 이미지 구축 등을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구전 전설이나 야사(野史)로 남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와인 업계에서도 정석으로 통용되는 말들이 존재합니다.
마치 '샴페인'처럼 전 세계 어느 나라 와인 업계에서 말하더라도 그 의미를 알아들을 수 있도록 대명사로 쓰이는 단어들입니다.
세계 와인 시장의 기둥 중 하나인 프랑스 보르도(Bordeaux)에서는 '보르도 블렌드'란 말이 그런 단어입니다.
국제 포도 품종인 까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를 중심으로 섞어서 와인을 양조하는 방식을 일컫는 말인데, 와인의 세계에 발을 걸치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겁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보르도 와인 산업에서 가장 유명한 5개 와이너리를 통칭하는 단어인 '5대 샤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와인 업계와 관련 없는 사람이더라도, 와인을 잘 모르는 초보자라면 보르도 블렌드보다 익숙하게 들릴지도 모릅니다.
5대 샤또는 1855년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가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프랑스 최고 와인을 소개하기 위해 분류한 4개 샤또(라피트 로칠드, 라뚜르, 마고, 오브리옹)에 1973년 승격된 샤또 무똥 로칠드를 합친 것입니다.
단지 와인의 품질을 넘어서 역사적 명성과 문화적 권위의 상징으로 통용됩니다.
그들 중에서도 가장 컸던 자부심현대 프랑스 와인의 명성을 떠받치는 기둥은 누가 뭐라 해도 보르도와 부르고뉴(Bourgogne) 두 지역에서 양조되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와인입니다.
두 지역의 가장 핵심적인 차이는 바로 땅입니다.
부르고뉴 지역은 클리마(Climat·작은 단위의 떼루아) 중심의, 수 세기에 걸쳐 미세하게 구분된 포도밭 하나하나가 독립적 정체성을 가지기 때문에 수백 년간 그 경계가 고정됐고 와이너리를 확장하는 게 불가능합니다.
반대로 보르도는 와이너리의 브랜드가 된 샤또를 중심으로 여러 구획을 통합해 하나의 그랑 뱅(Grand Vin·플래그십 와인)으로 병입합니다.
샤또가 인접 밭을 인수·통합하면서 확장하는 게 가능하고, 확장하더라도 샤또 고유의 철학과 기술력으로 고품질의 와인을 만들어냅니다.
일례로 보르도에서 가장 비싼 와인으로 꼽히는 샤또 패트뤼스(Chateau Patrus)의 경우 초기에 4.5헥타르(㏊) 정도였던 밭이 거듭된 확장으로 현재는 11.5㏊에 이르기도 합니다.
2배 이상 넓어진 밭 덕분에 생산량이 크게 늘면서 가장 유명한 와인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5대 샤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마고를 제외하고는 모두 약간의 혹은 적극적인 포도밭 확장이 있었고, 이를 통해 사업 다각화나 생산 와인의 볼륨을 키웠습니다.
반면 마고는 떼루아와 전통에 대한 자부심 때문에 지난 수백 년간 단 한 차례도 구획 확장을 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보르도 5대 샤또. 왼쪽부터 무똥 로칠드,
라피트
로칠드, 오브리옹, 라뚜르, 마고.실험은 하되, '마고'라는 이름은 보호한다12세기부터 존재한 마고가 천년에 가까운 역사 동안 포도밭을 함부로 확장하지 않는 이유는 단순한 보수주의가 아니라 아주 정교한 와인 양조에 대한 철학에 근거한 결정입니다.
마고는 그 어떤 1등급 샤또보다 땅의 순수성을 중시하는 철학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마고는 오랜 역사에 걸맞게 100㏊ 이상의 넓은 땅을 소유하고 있지만 오래전부터 포도밭을 100개가 넘는 플롯(plot·미세하게 구분된 작은 구획)으로 나눴습니다.
그리고 이들 플롯에서 각자 가장 잘 재배할 수 있는 품종을 재배하고 수확한 후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통해 최상급 플롯을 따로 추립니다.
이렇게 추려진 최상급 플롯의 포도만이 그랑 뱅 양조에 쓰일 수 있죠. 같은 마고에서 재배한 포도라고 해도 어떤 플롯에서 왔느냐에 따라 쓰임새와 운명이 갈리는 겁니다.
생산지를 넓히는 순간 마고라는 이름의 절대성이 무너지고 타협하게 된다는 엄격한 철학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마고가 실험조차 하지 않는 엄격한 전통주의는 아닙니다.
바이오 다이내믹을 시도하거나 토착 효모 연구, 스크루캡이나 디암(Diam) 코르크 등 샤또 마고는 업계에서도 실험적인 재배나 신기술 도입에 아주 적극적인 샤또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에 대해 샤또 마고의 부사장인 오를리앙 발랑스 씨는 "전통과 떼루아의 정체성을 지키는 데에 집중했다"며 "실험은 하되 '마고'란 이름은 보호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흔히 큰 틀에서 보르도 와인을 남성형, 부르고뉴 와인을 여성형이라고 부릅니다.
와인의 스타일이 굳세고 강건한 쪽과 우아하고 섬세한 쪽으로 나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샤또 마고의 와인은 보르도의 생산자치곤 우아하고 섬세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생산 과정을 보면 오히려 보르도 스타일보다는 부르고뉴 스타일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5대 샤또 중에서도 가장 여성스럽고 우아한 스타일로 인식됩니다.
실제로는 부드러움 속에 강건함이 자리 잡고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보르도 와인 특유의 강건함과 남성적인 매력의 배경 속에 여성적인 부드러움과 우아함이 곳곳을 수놓고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보르도의 귀부인 '샤또 마고'이 때문에 샤또 마고는 '보르도의 귀부인'이란 평가부터 '한 모금의 시' '와인 속의 발레' 등과 같은 추상적인 평가까지 마고는 시대를 주유한 수많은 인물의 찬사를 받아왔습니다.
미국의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이 프랑스 대사로 재직하던 시절 마고를 마시곤 "보르도에서는 이보다 더 좋은 와인이 없다"라는 평가를 남겼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그는 미국 대통령이 된 뒤엔 샤또 마고를 백악관의 와인 리스트에 포함하기도 했죠.
소설 '노인과 바다'로 유명한 어니스트 헤밍웨이 역시 마고의 열렬한 팬입니다.
급기야 헤밍웨이는 자신이 가장 아끼는 손녀의 이름을 마고라고 지었습니다.
헤밍웨이는 "내 삶에서 변하지 않았던 것은 손녀와 마고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샤또 마고는 헤밍웨이의 소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 등장하기도 합니다.
주인공 제이크가 파리에서 혼자 저녁을 보내며 샤또 마고 한 병을 천천히 음미하는 장면입니다.
그는 "혼자라도 와인 한 병이면 훌륭한 동무가 된다(I drank a bottle of wine for company…A bottle of wine was good company)"며 한 모금씩 맛보는 마고를 말벗 삼아 고독을 달랩니다.
와인 문화 발달이 상대적으로 더딘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1997년 와타나베 준이치의 소설 '실낙원'에 샤또 마고가 등장하면서 인기를 끌었습니다.
주인공 중년 남녀 둘이 눈 덮인 별장에 숨어들어 마지막 만찬을 즐기며 특별히 준비한 샤또 마고 와인에 독극물을 타 나눠 마시는 장면입니다.
작중에 샤또 마고는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레스토랑에서 주문했던 것이기도 해서 사랑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는 상징적인 소도구(에로스와 타나토스의 결합)로 쓰였습니다.
작품 내 비극의 촉매인 동시에 작품 밖에서는 이 소설과 영화의 성공으로 아시아 대중에도 각인돼 샤또 마고를 와인의 여왕으로 유명하게 만든 계기가 됐습니다.
12세기 이후 800년 넘게 이어져 내려오는 샤또 마고. 단순히 비싼 와인, 보르도 5대 샤또의 와인으로 기억하기보다 기억을 깨우고 관계를 이어주며 마음을 데우는 한 병의 시로 기억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역사 속 수많은 인물이 그랬듯 우리에게도 언젠가 그런 한 모금이 필요할지 모릅니다.
와인은 시간이 빚어내는 술입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와인의 역사도 시작됐습니다.
우리가 몰랐던 흥미로운 와인 이야기를 재밌고 맛있게 풀어드립니다.
[전형민 기자]
오창용 에스알포스트 대표
생성형 AI(Generative AI)의 발전은 사회 전반에 걸쳐 혁신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새로운 차원의 사이버 위협을 야기하고 있다.
특히, 딥페이크(Deepfake) 기술의 고도화는 얼굴과 목소리를 넘어, 개인의 말투와 맥락까지 모방하며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이러한 기술은 사회 공학적 공격(Social Engineering Attacks)과 결합해 공공기관, 금융기관, 대기업 등 신뢰가 중요한 한국의 핵심 기관들을 겨냥한 신종 사기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최근 등장한 생성형 AI 기반 공격은 기존의 피싱 사기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공격자는 공개된 정보와 유출된 데이터를 활용해 특정 인물의 얼굴, 목소리, 행동 패턴을 딥페이크로 재현한다.
이를 통해 '딥페이크 보이스 피싱' '딥페이크 화상 통화 사기' 등이 현실화되고 있다.
금융기관에서는 임원 명의의 딥페이크 음성으로 자금 이체를 지시하거나, 대기업에서는 협력사 대표의 딥페이크 영상으로 계약 정보를 탈취하는 사례가 우려되고 있다.
서비스업에서는 고객센터 직원을 사칭해 고객 정보를 빼내려는 시도도 가능하다.
딥페이크 공격은 생성형 AI가 자동으로 작성하는 맞춤형 이메일, 문자, 가짜 웹사이트 등과 결합될 때 더욱 위험해진다.
이른바 'GenAI Social Engineering Attack'이다.
공격자는 자연스러운 문장과 감정적 유도를 포함한 메시지로 피해자를 속이고, 정보 제공이나 특정 행동을 유도한다.
이러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들은 다음과 같은 다층적 방어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첫째, 탐지 및 모니터링 강화다.
기존의 시각·청각적 단서만으로는 딥페이크 판별이 어렵다.
AI 기반 딥페이크 탐지 솔루션을 통해 영상과 음성의 비정상 패턴, 미세 왜곡, 메타데이터 등을 분석해야 한다.
또한, 지능형 피싱 탐지 시스템을 도입해 이메일, 메시지의 문맥과 발신자 정보, 요청 내용의 비정상성을 감지해야 한다.
시스템 접근 시에는 생체 인증 외에도 다중 인증 절차를 강화해야 한다.
둘째, 예방 및 방어 체계 구축이다.
사람 중심의 방어 전략이 핵심이다.
임직원을 대상으로 딥페이크와 생성형 AI 기반 공격의 사례와 특징을 반복적으로 교육하고, 긴급하거나 민감한 요청에 대해서는 별도의 검증 절차를 거치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어, 거액 송금 요청 시 직접 대면 확인이나 사전 공유된 비밀번호 확인, 다른 채널을 통한 재확인을 필수화해야 한다.
또한, 중요 시스템 접근 권한을 철저히 관리하고, 비정상적인 데이터 접근을 탐지하는 기술적 보안 조치도 병행해야 한다.
셋째, 사고 대응 및 복구 계획 수립이다.
딥페이크 공격 발생 시 신속한 상황 파악과 확산 방지를 위한 대응 절차와 담당자를 명확히 해야 한다.
법 집행 기관과의 협력 체계를 사전에 구축하고, 피해 복구 및 재발 방지 대책을 신속히 실행할 준비가 필요하다.
생성형 AI가 만들어내는 딥페이크 사기와 지능형 소셜 엔지니어링 공격은 한국의 주요 기관에 실질적 위협이 되고 있다.
단편적 보안 솔루션만으로는 더 이상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공공기관, 금융기관, 대기업, 서비스업체들은 지금 즉시 생성형 AI 기반 위협에 특화된 탐지 기술을 도입하고, 강력한 보안 교육 및 훈련, 행동 강령을 포함한 대응 프로세스를 마련해야 한다.
기술적 방어와 인간적 경계심의 조화를 통해 새로운 사이버 위협에 성공적으로 대응해 나가야 할 시점이다.
오창용 에스알포스트 대표 herald@srpost.co.kr
김경진 HSAD AI센터장
디지털 공간이 고객 커뮤니케이션의 핵심 채널로 자리 잡고, 클라우드와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정보기술(IT)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일부 선도 기업에 국한되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X)이 점차 범용화되고 본격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마케팅의 역할도 단순한 채널 운영에서 벗어나, 데이터 기반의 정교한 고객 경험 설계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마케팅 테크놀로지(MarTech)가 있다.
특히 그 핵심 축인 고객 데이터 플랫폼(CDP), 데이터 관리 플랫폼(DMP), 인공지능(AI) 기반의 예측 분석 기술의 중요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디지털 환경이 복잡해질수록, 이 세 가지 기술·인프라를 어떻게 통합하고 전략적으로 활용하느냐가 기업 경쟁력의 핵심이 되고 있다.
먼저 CDP는 기업 내부에 축적된 퍼스트파티 데이터를 통합하고 정제하는 플랫폼이다.
웹사이트 방문 기록, 앱 이용 내역, 구매 이력, 고객센터 상담 내용 등 자사 데이터를 중심으로 고객을 '싱글 뷰'로 통합해 보여준다.
이를 통해 고객에 대한 깊은 이해와 정밀한 개인화 전략 수립이 가능하다.
이는 고객 생애가치 극대화와 브랜드 충성도 향상으로 이어진다.
특히 일반 데이터 보호 규정(GDPR), 캘리포니아 소비자 프라이버시법(CCPA) 등 개인정보 보호 규제가 강화된 지금, 퍼스트파티 데이터의 전략적 활용이 중요해지면서 CDP는 더욱 필수적인 시스템으로 자리 잡고 있다.
내부 고객을 이해하고 관리하는 것만큼, 신규 고객 유입을 위한 타겟팅 전략도 중요하다.
이때 활용되는 것이 DMP다.
DMP는 주로 서드파티 데이터를 수집·분석하는 데 초점을 두며, 쿠키, 소셜 미디어, 포털 댓글 등 외부 데이터를 기반으로 특정 오디언스 세그먼트를 구성한다.
대규모 익명 사용자 타기팅이나 리타기팅 광고 최적화에 효과적이다.
하지만 쿠키 규제 강화와 서드파티 데이터 활용 제한으로 인해, DMP만으로는 고객에 대한 깊은 인사이트 확보가 어려워지고 있다.
이에 따라 CDP와 DMP를 연계해, 퍼스트파티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정밀 타기팅과 서드파티 데이터를 활용한 외연 확장을 동시에 추구하는 하이브리드 전략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와 함께 AI 기술의 발전은 마케팅 전략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과거 머신러닝이 데이터 분석에 초점을 맞췄다면, 오늘날의 생성형 AI는 인간의 신경망 학습 방식을 모방해 고객 행동을 예측하고, 실시간으로 마케팅 액션을 실행하는 의사결정 자동화 수준에 도달했다.
특히 생성형 AI와 강화학습을 결합하면, 마케팅 캠페인 자체가 스스로 학습하고 최적화할 수 있다.
콘텐츠 추천, 이메일 제목 자동 생성, 오디언스 세그먼트 개선 등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반복적으로 개선하며 성과를 향상시킬 수 있다.
나아가 마케팅 소재 제작까지 자동화함으로써 기존 업무의 효율성도 극대화할 수 있다.
마케팅 자동화는 단순한 프로세스 개선을 넘어, 내부 데이터를 정교하게 분석해 인사이트를 도출한다.
또, 외부 데이터를 전략적으로 결합하며 AI를 활용해 실시간 예측과 실행을 자동화하는 고도화된 단계에 진입했다.
앞으로는 데이터 기반의 개인화 전략을 강화하고, AI를 통해 실질적인 비즈니스 성과를 창출하는 기업만이 디지털 마케팅 경쟁에서 생존하고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김경진 HSAD AI센터장
김태형 단국대 대학원
데이터지식서비스공학과 교수·정보융합기술·창업대학원장
'AI 융합(AI Convergence)'이라는 단어는 오늘날 기술과 정책, 산업 담론의 중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마치 그것이 미래 사회를 위한 필수 조건이자, 모든 문제의 해결사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단어를 접할 때마다 우리는 자문해야 한다.
AI 융합이란 과연 무엇이며, 누구를 위한 융합인가?AI 융합은 기술 간 단순한 조합이나 연동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전적으로는 '인공지능 기술이 기존의 산업·서비스·사회 구조와 통합되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과정'을 뜻한다.
기술적으로는 AI의 학습·판단·예측 기능이 다양한 도메인에 내재화되어 '지능화된 시스템'으로 전환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만으로는 AI 융합의 본질에 도달할 수 없다.
AI 융합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닌, '의미 있는 연결'을 설계하는 행위다.
AI는 본질적으로 연결을 추론하는 도구다.
인간이 놓치는 변수 간의 관계, 대규모 데이터 속에 숨겨진 상관성,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뀌는 패턴을 찾아내고 예측한다.
그런 점에서 AI는 '기계적 지능'이 아니라 '연결의 감각'이다.
이 지점에서 '융합'은 단지 기술 간의 통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기술-사회가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시스템 설계로 확장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AI가 교통 시스템에 융합될 때, 단순히 차량의 자율주행 성능을 높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도로 위에서 사람의 안전, 이동의 평등, 환경의 지속성을 모두 고려하는 지능형 교통 생태계로 발전해야 한다.
의료에서의 AI 융합 역시 단순한 진단 자동화가 아니라, 의사의 직관을 보완하고, 환자의 삶의 질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며, 보건 시스템 전체를 예측가능하게 만드는 일이어야 한다.
AI 융합은 사람 중심이 되어야 한다.
기술의 연결이 아니라 가치의 연결, 기능의 확장이 아니라 존재의 확장이어야 한다.
결국 AI 융합이란, 인간의 의사결정과 상호작용, 감정과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는 '총체적 지능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방향에 맞추어 우리 정부는 최근 몇 년간 여러 부처에 걸쳐 AI 융합 사업을 적극적으로 확대해 왔으며, 이는 사일로형 혁신에서 범부처 협력으로의 전략적 전환을 시사한다.
일례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의 'AI+X 사업'은 ETRI, KISTI 등의 연구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의료부터 제조까지 다양한 분야별 AI 모델을 육성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스마트시티 챌린지' 등과 같은 스마트도시 사업을 통해 세종시 등 도시에 AI 기반 교통 흐름 시스템을 적용하는 등 스마트도시 거버넌스를 발전시키고 있다.
금융위원회 또한, 과기정통부와 공동으로 'AI 기반 금융서비스 혁신 로드맵'을 수립하여 초개인화 금융 및 부처 간 데이터 협업을 촉진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공공 인프라에 지능을 내장하고 정책 차원의 융합을 제도화하는 등 한국의 AI 접근 방식이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중요한 숙제를 안고 있다.
첫째, 융합을 위한 정책 체계가 기술 중심으로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현재 대부분의 부처 간 융합 프로젝트는 예산, 법제도, 데이터 인프라에서 단절된 구조로 되어 있어 기술의 시너지를 구조적으로 제한한다.
둘째, 융합의 최종 수혜자가 '사람'이라는 철학적 전제가 부족하다.
AI는 효율이 아니라 공존을 위한 기술이 되어야 하며, 그 기준은 정확도가 아니라 사람의 존엄을 지키는 방식이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AI를 어디에 쓸 수 있는가?'가 아니라, 'AI가 사람과 사회를 어떻게 더 깊이 있게 연결할 수 있는가?'로 말이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기술자 중심의 설계가 아니라 시민과 사용자, 그리고 사회 전체를 설계 초기부터 포함하는 공동 설계(Co-design) 철학이 필요하다.
데이터는 기술의 재료가 아니라 삶의 흔적이다.
알고리즘은 코드가 아니라 판단의 책임이다.
정책은 기획서가 아니라 공공성의 언어여야 한다.
AI 융합은 기술 발전의 끝이 아니라, 사람 중심 기술 설계의 시작점이다.
기술과 산업, 정부와 시민, 인간과 AI가 서로의 경계를 넘나들며 연결될 때,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융합 사회'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김태형 단국대 대학원 데이터지식서비스공학과 교수·정보융합기술·창업대학원장
레오 14세
교황이
로마 외곽 제나치노의 '착한의견의 성모' 성당을 방문해 강론하고 있다.
이 성당은 교황이 총장으로 있던 아우구스트 수도회 소속 성당으로 알바니아에서 가져 온 오래된 성모 프레스코화(교황 오른쪽)로 유명하다.
레오 13세 교황도 이 성당을 좋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마=로이터 연합뉴스첫 미국인 출신 교황 레오 14세가 몇 달 전 자신 이름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공유한 JD 밴스 부통령 비판 기사가 화제가 됐다.
진보성향 미국 가톨릭 매체에 실린 이 기사는 가톨릭 신자인 밴스 부통령이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랑의 순서’(ordo amoris) 논리를 들먹이며, 트럼프 정부의 불법 이민자 추방을 정당화한 것을 비판한다.
가족 사랑에 머물지 말고, 이웃과 사회 등으로 확장하라는 본뜻을 왜곡해, 마치 사랑에 우선순위가 있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 보수 성향 미국 가톨릭 주류를 중요한 지지 세력으로 삼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교황 선출 직후 “미국에 큰 영광이며, 레오 14세와 만남을 고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자신의 이민정책에 반대하는 교황의 입장이 알려진 후 침묵하고 있다.
비판 대상인 밴스 부통령도 “교황을 정치화하려는 의도가 없다”며 말을 아꼈다.
트럼프 지지 세력인 ‘MAGA’의 설계자 스티브 배넌은 “그는 반트럼프 교황으로 MAGA 가톨릭교도에게 최악의 선택”이라고 정면 비판했다.
□ 레오 14세는 반트럼프 교황일까. 단정하기 어렵다.
우선 그의 소셜미디어에는 낙태권을 옹호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비판하는 글도 올라와 있다.
여성의 부제 서품을 반대하며, 학교 젠더 교육, 성소수자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이는 모두 트럼프 진영과 미국 내 주류 보수 가톨릭과 일치한다.
특히 미 공영 매체 NPR에 따르면 2012년 이후 공화당 예비선거에 투표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민자·난민과 기후변화 관련 정책에서는 트럼프와 대립한다.
□ 보수와 진보 이슈가 뒤섞인 레오 14세의 정치적 입장 때문에 언론은 그를 중도라고 분류하는 듯하다.
이런 입장은 교황청이 처한 현실과 무관치 않다.
전 세계 신자가 교황청에 보내는 기부금인 베드로 성금(Peter's pence) 중 미국 비중이 30%에 육박한다.
미국 주류 가톨릭 신자의 영향력이 짐작된다.
반면 신자와 성직자 증가율은 아프리카, 아시아가 유럽 미국보다 훨씬 높다.
레오 14세의 ‘사랑의 순서’ 고민은 가톨릭의 현재와 미래 사이의 괴리에서 나오는지도 모른다.
‘크라잉넛’
기타리스트 이상면이 먼저 읽고 그리다.
한경록 | 밴드 ‘크라잉넛’ 베이시스트돌이켜보면 참 민망스러운 짓을 많이도 했다.
고1 크리스마스이브 때였다.
좋아하던 여학생에게 작은 화분에 심은 네잎클로버를 선물하며 고백 비슷하게 했다가 대차게 차였다.
그때 쪽지에 짧은 문장을 써넣었는데, 그 내용이 가관이다.
“네가 소녀에서 숙녀로 변하는 동안 네 잎의 조그만 풀이 행운을 안겨주길.” 이 한줄의 문구를 쓰기 위해 수많은 시집을 펼쳐봤고 문학소년이었던 친구와 머리를 맞댔다.
오글거린다는 표현이 걸맞은 이 문장을 나는 지금까지도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미안해”라는 단답형 거절에 뜨거운 물을 얼굴에 들이부은 것 같은 체감온도 38.5도의 화끈거림을 느꼈던 것까지 정확하게 기억난다.
거절당할지라도 고백조차 못 한다면 평생 아쉬움으로 남을 것 같았다.
그래, 사랑에 실패할지언정 고백에 실패하지는 말자. 1할도 안 되는 타자라도 메이저리그급 강속구 투수의 공에 얼어붙지 않고 헛스윙이라도 휘둘러 봤으니 후회는 없다.
그때부터 돈키호테처럼 망설이지 않고 일단 부딪치고 저질러 보는 생활이 시작된 것 같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지고 핑크빛 꿈은 산산조각 나버렸지만 그때 읽었던 시들의 떨림은 아직도 연둣빛으로 싱싱하게 남아있다.
그때의 고백이 나비효과처럼 음악을 만들고 가사를 쓰는 데 도움이 되었고, 글을 쓰다 보니 칼럼니스트까지 되어 마감의 고통을 시시포스처럼 느끼고 있다.
저지름의 미학. 어느 정도 고통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시도를 선택한다면 청춘이다.
익숙한 것보다는 새로운 것을 시도했을 때 실패할 확률이 높다.
어쩌면 실패를 많이 한 사람들은 그만큼 새로운 것에 도전을 많이 한 사람이라는 방증일 수도 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는 것이 뭐 대단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서른살이 훌쩍 넘어 갑자기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져 동네 피아노 학원에 등록했고, 복싱 만화를 보고 멋있어 보여서 체육관에 찾아갔다가, 프로 테스트까지 나갔다.
물론 2라운드 동안 처맞고 돌아와 이후로는 얌전히 샌드백만 두드리기로 했지만. 오토바이 면허도 따고, 일어학원도 다니고, 이런저런 시도를 많이 해 봤는데, 사실 제대로 하는 것은 별로 없다.
그러면 뭐 어떤가! 그로 인해 삶이 재미있고 지루할 틈이 없다.
이렇게 뭐든 시도해 보는 것은 인디뮤지션으로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올해가 크라잉넛으로 활동을 시작한 지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동안 크라잉넛 멤버들은 작사, 작곡, 편곡, 연주, 녹음, 믹싱은 물론 기획, 홍보, 굿즈 제작, 앨범 디자인까지 직접 해 오고 있다.
그러면서 점점 우리의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
지금 이 칼럼의 삽화도 크라잉넛의 기타리스트 상면이가 그리고 있다.
얼마 전에는 신곡 ‘허름한 술집’의 뮤직비디오 연출과 편집을 직접 시도해 보기로 했다.
주어진 예산은 거의 무에 가까웠다.
홍대의 단골 문화공간인 ‘제비다방’에 장소 협조를 구했다.
처음엔 예산을 아끼고자 곡의 흐름에 어울리는 스틸 사진에 가사를 입히는 형식으로 진행하려고 했다.
그런데 촬영 일주일 전 샤워를 하다가 문득 사진 사이를 영상으로 이어 붙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사흘 전 소품을 주문하고, 이틀 전에 카메오 출연할 친구 12명을 섭외하고, 하루 전에 자주 가던 엘피바에서 팝콘 그릇을 빌려왔다.
비싼 카메라 대신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기로 했다.
예산이 부족한 자리는 상상력과 창의력이 메꾼다.
조명 없이 자연광만으로 찍다 보니 날씨가 흐려 세시간 안에 촬영을 마무리해야 할 상황이었다.
구형 스마트폰을 이용해 흑백의 레트로한 느낌을 살렸고, 편집 시간을 절약할 겸 처음 48초는 원테이크로 촬영했다.
메이킹 촬영을 도와주려고 온 배우 헤이든 원이 재작년에 스마트폰 영화제에서 대상 탔다는 얘기를 하길래, 그 자리에서 바로 촬영감독이 되었다.
평소 밥과 술을 자주 사주었기 때문에 흔쾌히 나와준 밴드 극동아시아타이거즈, 차세대, 라이엇키즈 멤버들도 즐겁게 촬영에 임해 주었다.
그렇게 해가 지기 바로 직전, 2시간45분 만에 촬영을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다.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 이번에도 후회 없이 시도는 해 봤다.
적어도 돌아갈 수 없는 나날들의 기록을 아쉬움으로 채워 넣지는 않았다.
눈이 펑펑 오던 겨울날 많은 친구들이 네잎클로버 찾는 걸 도와줬는데 그중 크라잉넛 친구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공짜는 아니었고 매점에서 빵을 사줬거나 오락실에서 오락을 몇판 시켜줬던 것으로 기억한다.
훗날 그 여학생과 웃으며 그때 얘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네잎클로버 선물을 받아서 기분은 좋았다고 했다.
그거면 됐다.
시상수 한국소방안전원 부산지부장
러시아의 대표적 문호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의 상징적인 첫 문장.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이다’를 의역하면 행복한 가정은 부, 명예, 건강, 사랑, 배려 등 공통적인 특성을 공유하기 때문에 비슷해 보이고, 불행한 각 가정은 서로 다른 부족한 요소로 인해 각자의 방식으로 고통을 받는다는 뜻일 것이다.
놀랍게도 이는 사회적 구성물인 가족이든 자연의 물리적 체계이든 시스템의 안정성과 취약성에 대한 보편적 진실과 유사하여 안전하려면 안전을 달성하고 유지하기 위한 의도적인 노력의 필요성을 제시한다.
일반인에게 무질서도(無秩序度)로 알려져 있는 엔트로피(Entropy)는 우리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에너지를 투입하지 않는 한 시스템은 무질서로 이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화재 감지기, 스프링클러, 방화문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성능이 저하되어 정기적으로 유지 관리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시스템의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소방시설의 정기적인 점검, 유지 관리 및 교육을 통해 시스템에 에너지를 주입하여 안전성이 저하되는 것을 방지해야 하는 이유이다.
전기공학에서 시상수(Timeconstant)는 시스템이 변화에 얼마나 빨리 반응하는지를 결정한다.
느린 반응은 중요한 순간에 실패를 의미한다.
화재감지기와 스프링클러가 화재를 감지하여 작동하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면 이미 화재는 제어할 수 없는 상태에 다다른다.
빠른 응답 속도와 높은 신뢰성을 가진 화재 감지 및 진압 시스템을 설치하여야 하는 이유이다.
엔트로피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시스템을 더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처럼, 화재 안전은 그것을 유지하는 데 에너지를 투자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감소한다.
건물을 지을 당시 화재 감지기, 스프링클러 설비, 방화문과 같은 화재 안전 성능을 갖추는 것만으로는 장기적인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시스템은 저하되거나 오작동할 수 있다.
정기적인 유지 관리, 점검, 시스템 업데이트는 물론 근무자·입주자 등에 대한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교육훈련으로 화재 안전 성능이 지속적으로 지되도록 하는 것만이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
이 중 하나라도 없으면 화재 상황에서 사람들을 보호하는 능력이 약해져 대형 참사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지속적인 기술의 발전으로 시상수가 감소하여 우리 눈으로는 그 옛날 일상이었던 형광등의 깜박임을 지금은 볼 수 없듯이, 화재 안전 또한 일회성 설정이 아닌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엔트로피에 대항하든, 시상수를 줄이든 화재 발생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고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개인이든 기업이든 지속적인 헌신이 요구된다.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
예방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돈 문제로 넘어가면 우리는 종종 이 말을 망각하고 구실을 잡아 관성에 따른다.
‘다시 태어나도 살고 싶은 안전한 부산’을 만들기 위해 당신은 어떤 노력을 할 것인가.
소멸 중인 것들에 대한 연민과, 망실돼가는 것들에 대한 애처로움으로 인연은 기억된다.
죽어가는 상대를 온몸으로 적셔 서로를 지켰던 저 마른 물고기처럼 한때의 우리도 타인에게서 위로받았다.
연인이 아닐지라도, 그게 모든 인간의 이치 아니던가. 이 시의 2연은 훗날 재회하는 장면으로 연결된다.
메마른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 인연을 맺으며 삶을 걸어볼 힘을 얻고, 하지만 헤어져 각자의 길을 걷다 어느날 문득 다시 마주치는 것. 시간이 돌아오지 않아도 여전히 빛나는 비늘 한 점은 모두의 추억 속에 있다.
[김유태 문화스포츠부 기자(시인)]
혁명가 엥겔스의 행복이자 대문호 헤밍웨이의 말벗… 만인의 뮤즈가 된 '보르도의 귀부인'

"당신에게 있어 행복이란 무엇인가요?""샤또 마고(Chateau Margaux) 1848년 빈티지."영국의 변호사, 언론인, 철학자, 남성 권리 옹호자, 사회주의자, 역사가였던 어니스트 벨포트 벡스(E. Belfort Bax)는 동시대 독일의 경제학자이자 철학자, 정치가였던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다고 합니다.
카를 마르크스와 함께 '공산당 선언'을 저술한 엥겔스가 행복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사치품으로 분류되는 와인을 얘기한 것입니다.
엥겔스의 아이러니한 대답은 단순히 와인을 사랑했던 그의 사적인 취향을 드러내는 대답 같습니다만 중의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1848년은 공산당 선언이 발표·출간된 해이자, 유럽 전역에서 혁명이 일어난 해이기 때문입니다.
즉 "샤또 마고 1848 빈티지"란 그의 대답은 육체적 쾌락(와인)과 정신적 이상(혁명)을 동시에 담은 그만의 유머이자 혁명가적 열정, 인간적인 허영, 미식가적 감각, 그리고 시대의 상징이 고작 와인 이름과 양조 연도 한 줄에 모두 담긴, 인생학의 농축된 표현인 셈입니다.
역사적 아이러니일까. 실제로 샤또 마고의 1848년 빈티지 와인은 아주 뛰어난 품질로 기록돼 전해지고 있습니다.
엥겔스는 와인에 대한 안목도 참 뛰어났던 사람이었던 셈입니다.
엥겔스는 물론 역사 속 다양한 인물이 사랑했던 샤또 마고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5대 샤또, 그 찬란한 이름여러 번 소개하지만 와인의 역사는 인류 역사와 견줄 정도로 오래됐습니다.
당연하게도 셀 수 없이 많은 이야기가 얽혀 있습니다.
이 때문에 낭설과 루머, 주장과 공지가 혼재된 채 전파되기도 합니다.
주로 와인이 생산되는 지역의 언어가 영어와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 타국어이기 때문에 오역이나 의역이 종종 생기기도 하고 광고나 이미지 구축 등을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구전 전설이나 야사(野史)로 남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와인 업계에서도 정석으로 통용되는 말들이 존재합니다.
마치 '샴페인'처럼 전 세계 어느 나라 와인 업계에서 말하더라도 그 의미를 알아들을 수 있도록 대명사로 쓰이는 단어들입니다.
세계 와인 시장의 기둥 중 하나인 프랑스 보르도(Bordeaux)에서는 '보르도 블렌드'란 말이 그런 단어입니다.
국제 포도 품종인 까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를 중심으로 섞어서 와인을 양조하는 방식을 일컫는 말인데, 와인의 세계에 발을 걸치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겁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보르도 와인 산업에서 가장 유명한 5개 와이너리를 통칭하는 단어인 '5대 샤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와인 업계와 관련 없는 사람이더라도, 와인을 잘 모르는 초보자라면 보르도 블렌드보다 익숙하게 들릴지도 모릅니다.
5대 샤또는 1855년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가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프랑스 최고 와인을 소개하기 위해 분류한 4개 샤또(라피트 로칠드, 라뚜르, 마고, 오브리옹)에 1973년 승격된 샤또 무똥 로칠드를 합친 것입니다.
단지 와인의 품질을 넘어서 역사적 명성과 문화적 권위의 상징으로 통용됩니다.

두 지역의 가장 핵심적인 차이는 바로 땅입니다.
부르고뉴 지역은 클리마(Climat·작은 단위의 떼루아) 중심의, 수 세기에 걸쳐 미세하게 구분된 포도밭 하나하나가 독립적 정체성을 가지기 때문에 수백 년간 그 경계가 고정됐고 와이너리를 확장하는 게 불가능합니다.
반대로 보르도는 와이너리의 브랜드가 된 샤또를 중심으로 여러 구획을 통합해 하나의 그랑 뱅(Grand Vin·플래그십 와인)으로 병입합니다.
샤또가 인접 밭을 인수·통합하면서 확장하는 게 가능하고, 확장하더라도 샤또 고유의 철학과 기술력으로 고품질의 와인을 만들어냅니다.
일례로 보르도에서 가장 비싼 와인으로 꼽히는 샤또 패트뤼스(Chateau Patrus)의 경우 초기에 4.5헥타르(㏊) 정도였던 밭이 거듭된 확장으로 현재는 11.5㏊에 이르기도 합니다.
2배 이상 넓어진 밭 덕분에 생산량이 크게 늘면서 가장 유명한 와인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5대 샤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마고를 제외하고는 모두 약간의 혹은 적극적인 포도밭 확장이 있었고, 이를 통해 사업 다각화나 생산 와인의 볼륨을 키웠습니다.
반면 마고는 떼루아와 전통에 대한 자부심 때문에 지난 수백 년간 단 한 차례도 구획 확장을 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마고는 그 어떤 1등급 샤또보다 땅의 순수성을 중시하는 철학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마고는 오랜 역사에 걸맞게 100㏊ 이상의 넓은 땅을 소유하고 있지만 오래전부터 포도밭을 100개가 넘는 플롯(plot·미세하게 구분된 작은 구획)으로 나눴습니다.
그리고 이들 플롯에서 각자 가장 잘 재배할 수 있는 품종을 재배하고 수확한 후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통해 최상급 플롯을 따로 추립니다.
이렇게 추려진 최상급 플롯의 포도만이 그랑 뱅 양조에 쓰일 수 있죠. 같은 마고에서 재배한 포도라고 해도 어떤 플롯에서 왔느냐에 따라 쓰임새와 운명이 갈리는 겁니다.
생산지를 넓히는 순간 마고라는 이름의 절대성이 무너지고 타협하게 된다는 엄격한 철학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마고가 실험조차 하지 않는 엄격한 전통주의는 아닙니다.
바이오 다이내믹을 시도하거나 토착 효모 연구, 스크루캡이나 디암(Diam) 코르크 등 샤또 마고는 업계에서도 실험적인 재배나 신기술 도입에 아주 적극적인 샤또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에 대해 샤또 마고의 부사장인 오를리앙 발랑스 씨는 "전통과 떼루아의 정체성을 지키는 데에 집중했다"며 "실험은 하되 '마고'란 이름은 보호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흔히 큰 틀에서 보르도 와인을 남성형, 부르고뉴 와인을 여성형이라고 부릅니다.
와인의 스타일이 굳세고 강건한 쪽과 우아하고 섬세한 쪽으로 나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샤또 마고의 와인은 보르도의 생산자치곤 우아하고 섬세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생산 과정을 보면 오히려 보르도 스타일보다는 부르고뉴 스타일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5대 샤또 중에서도 가장 여성스럽고 우아한 스타일로 인식됩니다.
실제로는 부드러움 속에 강건함이 자리 잡고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보르도 와인 특유의 강건함과 남성적인 매력의 배경 속에 여성적인 부드러움과 우아함이 곳곳을 수놓고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보르도의 귀부인 '샤또 마고'이 때문에 샤또 마고는 '보르도의 귀부인'이란 평가부터 '한 모금의 시' '와인 속의 발레' 등과 같은 추상적인 평가까지 마고는 시대를 주유한 수많은 인물의 찬사를 받아왔습니다.
미국의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이 프랑스 대사로 재직하던 시절 마고를 마시곤 "보르도에서는 이보다 더 좋은 와인이 없다"라는 평가를 남겼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그는 미국 대통령이 된 뒤엔 샤또 마고를 백악관의 와인 리스트에 포함하기도 했죠.
소설 '노인과 바다'로 유명한 어니스트 헤밍웨이 역시 마고의 열렬한 팬입니다.
급기야 헤밍웨이는 자신이 가장 아끼는 손녀의 이름을 마고라고 지었습니다.
헤밍웨이는 "내 삶에서 변하지 않았던 것은 손녀와 마고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샤또 마고는 헤밍웨이의 소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 등장하기도 합니다.
주인공 제이크가 파리에서 혼자 저녁을 보내며 샤또 마고 한 병을 천천히 음미하는 장면입니다.
그는 "혼자라도 와인 한 병이면 훌륭한 동무가 된다(I drank a bottle of wine for company…A bottle of wine was good company)"며 한 모금씩 맛보는 마고를 말벗 삼아 고독을 달랩니다.
와인 문화 발달이 상대적으로 더딘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1997년 와타나베 준이치의 소설 '실낙원'에 샤또 마고가 등장하면서 인기를 끌었습니다.
주인공 중년 남녀 둘이 눈 덮인 별장에 숨어들어 마지막 만찬을 즐기며 특별히 준비한 샤또 마고 와인에 독극물을 타 나눠 마시는 장면입니다.
작중에 샤또 마고는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레스토랑에서 주문했던 것이기도 해서 사랑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는 상징적인 소도구(에로스와 타나토스의 결합)로 쓰였습니다.
작품 내 비극의 촉매인 동시에 작품 밖에서는 이 소설과 영화의 성공으로 아시아 대중에도 각인돼 샤또 마고를 와인의 여왕으로 유명하게 만든 계기가 됐습니다.
12세기 이후 800년 넘게 이어져 내려오는 샤또 마고. 단순히 비싼 와인, 보르도 5대 샤또의 와인으로 기억하기보다 기억을 깨우고 관계를 이어주며 마음을 데우는 한 병의 시로 기억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역사 속 수많은 인물이 그랬듯 우리에게도 언젠가 그런 한 모금이 필요할지 모릅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와인의 역사도 시작됐습니다.
우리가 몰랐던 흥미로운 와인 이야기를 재밌고 맛있게 풀어드립니다.

생성형 AI 시대, 딥페이크 사기와 소셜 엔지니어링 방어 전략

생성형 AI(Generative AI)의 발전은 사회 전반에 걸쳐 혁신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새로운 차원의 사이버 위협을 야기하고 있다.
특히, 딥페이크(Deepfake) 기술의 고도화는 얼굴과 목소리를 넘어, 개인의 말투와 맥락까지 모방하며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이러한 기술은 사회 공학적 공격(Social Engineering Attacks)과 결합해 공공기관, 금융기관, 대기업 등 신뢰가 중요한 한국의 핵심 기관들을 겨냥한 신종 사기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최근 등장한 생성형 AI 기반 공격은 기존의 피싱 사기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공격자는 공개된 정보와 유출된 데이터를 활용해 특정 인물의 얼굴, 목소리, 행동 패턴을 딥페이크로 재현한다.
이를 통해 '딥페이크 보이스 피싱' '딥페이크 화상 통화 사기' 등이 현실화되고 있다.
금융기관에서는 임원 명의의 딥페이크 음성으로 자금 이체를 지시하거나, 대기업에서는 협력사 대표의 딥페이크 영상으로 계약 정보를 탈취하는 사례가 우려되고 있다.
서비스업에서는 고객센터 직원을 사칭해 고객 정보를 빼내려는 시도도 가능하다.
딥페이크 공격은 생성형 AI가 자동으로 작성하는 맞춤형 이메일, 문자, 가짜 웹사이트 등과 결합될 때 더욱 위험해진다.
이른바 'GenAI Social Engineering Attack'이다.
공격자는 자연스러운 문장과 감정적 유도를 포함한 메시지로 피해자를 속이고, 정보 제공이나 특정 행동을 유도한다.
이러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들은 다음과 같은 다층적 방어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첫째, 탐지 및 모니터링 강화다.
기존의 시각·청각적 단서만으로는 딥페이크 판별이 어렵다.
AI 기반 딥페이크 탐지 솔루션을 통해 영상과 음성의 비정상 패턴, 미세 왜곡, 메타데이터 등을 분석해야 한다.
또한, 지능형 피싱 탐지 시스템을 도입해 이메일, 메시지의 문맥과 발신자 정보, 요청 내용의 비정상성을 감지해야 한다.
시스템 접근 시에는 생체 인증 외에도 다중 인증 절차를 강화해야 한다.
둘째, 예방 및 방어 체계 구축이다.
사람 중심의 방어 전략이 핵심이다.
임직원을 대상으로 딥페이크와 생성형 AI 기반 공격의 사례와 특징을 반복적으로 교육하고, 긴급하거나 민감한 요청에 대해서는 별도의 검증 절차를 거치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어, 거액 송금 요청 시 직접 대면 확인이나 사전 공유된 비밀번호 확인, 다른 채널을 통한 재확인을 필수화해야 한다.
또한, 중요 시스템 접근 권한을 철저히 관리하고, 비정상적인 데이터 접근을 탐지하는 기술적 보안 조치도 병행해야 한다.
셋째, 사고 대응 및 복구 계획 수립이다.
딥페이크 공격 발생 시 신속한 상황 파악과 확산 방지를 위한 대응 절차와 담당자를 명확히 해야 한다.
법 집행 기관과의 협력 체계를 사전에 구축하고, 피해 복구 및 재발 방지 대책을 신속히 실행할 준비가 필요하다.
생성형 AI가 만들어내는 딥페이크 사기와 지능형 소셜 엔지니어링 공격은 한국의 주요 기관에 실질적 위협이 되고 있다.
단편적 보안 솔루션만으로는 더 이상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공공기관, 금융기관, 대기업, 서비스업체들은 지금 즉시 생성형 AI 기반 위협에 특화된 탐지 기술을 도입하고, 강력한 보안 교육 및 훈련, 행동 강령을 포함한 대응 프로세스를 마련해야 한다.
기술적 방어와 인간적 경계심의 조화를 통해 새로운 사이버 위협에 성공적으로 대응해 나가야 할 시점이다.
오창용 에스알포스트 대표 herald@srpost.co.kr
마케팅 테크놀로지의 중요성

디지털 공간이 고객 커뮤니케이션의 핵심 채널로 자리 잡고, 클라우드와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정보기술(IT)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일부 선도 기업에 국한되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X)이 점차 범용화되고 본격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마케팅의 역할도 단순한 채널 운영에서 벗어나, 데이터 기반의 정교한 고객 경험 설계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마케팅 테크놀로지(MarTech)가 있다.
특히 그 핵심 축인 고객 데이터 플랫폼(CDP), 데이터 관리 플랫폼(DMP), 인공지능(AI) 기반의 예측 분석 기술의 중요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디지털 환경이 복잡해질수록, 이 세 가지 기술·인프라를 어떻게 통합하고 전략적으로 활용하느냐가 기업 경쟁력의 핵심이 되고 있다.
먼저 CDP는 기업 내부에 축적된 퍼스트파티 데이터를 통합하고 정제하는 플랫폼이다.
웹사이트 방문 기록, 앱 이용 내역, 구매 이력, 고객센터 상담 내용 등 자사 데이터를 중심으로 고객을 '싱글 뷰'로 통합해 보여준다.
이를 통해 고객에 대한 깊은 이해와 정밀한 개인화 전략 수립이 가능하다.
이는 고객 생애가치 극대화와 브랜드 충성도 향상으로 이어진다.
특히 일반 데이터 보호 규정(GDPR), 캘리포니아 소비자 프라이버시법(CCPA) 등 개인정보 보호 규제가 강화된 지금, 퍼스트파티 데이터의 전략적 활용이 중요해지면서 CDP는 더욱 필수적인 시스템으로 자리 잡고 있다.
내부 고객을 이해하고 관리하는 것만큼, 신규 고객 유입을 위한 타겟팅 전략도 중요하다.
이때 활용되는 것이 DMP다.
DMP는 주로 서드파티 데이터를 수집·분석하는 데 초점을 두며, 쿠키, 소셜 미디어, 포털 댓글 등 외부 데이터를 기반으로 특정 오디언스 세그먼트를 구성한다.
대규모 익명 사용자 타기팅이나 리타기팅 광고 최적화에 효과적이다.
하지만 쿠키 규제 강화와 서드파티 데이터 활용 제한으로 인해, DMP만으로는 고객에 대한 깊은 인사이트 확보가 어려워지고 있다.
이에 따라 CDP와 DMP를 연계해, 퍼스트파티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정밀 타기팅과 서드파티 데이터를 활용한 외연 확장을 동시에 추구하는 하이브리드 전략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와 함께 AI 기술의 발전은 마케팅 전략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과거 머신러닝이 데이터 분석에 초점을 맞췄다면, 오늘날의 생성형 AI는 인간의 신경망 학습 방식을 모방해 고객 행동을 예측하고, 실시간으로 마케팅 액션을 실행하는 의사결정 자동화 수준에 도달했다.
특히 생성형 AI와 강화학습을 결합하면, 마케팅 캠페인 자체가 스스로 학습하고 최적화할 수 있다.
콘텐츠 추천, 이메일 제목 자동 생성, 오디언스 세그먼트 개선 등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반복적으로 개선하며 성과를 향상시킬 수 있다.
나아가 마케팅 소재 제작까지 자동화함으로써 기존 업무의 효율성도 극대화할 수 있다.
마케팅 자동화는 단순한 프로세스 개선을 넘어, 내부 데이터를 정교하게 분석해 인사이트를 도출한다.
또, 외부 데이터를 전략적으로 결합하며 AI를 활용해 실시간 예측과 실행을 자동화하는 고도화된 단계에 진입했다.
앞으로는 데이터 기반의 개인화 전략을 강화하고, AI를 통해 실질적인 비즈니스 성과를 창출하는 기업만이 디지털 마케팅 경쟁에서 생존하고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김경진 HSAD AI센터장
AI융합- 기술과 사람중심의 지능적 연결을 향하여

'AI 융합(AI Convergence)'이라는 단어는 오늘날 기술과 정책, 산업 담론의 중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마치 그것이 미래 사회를 위한 필수 조건이자, 모든 문제의 해결사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단어를 접할 때마다 우리는 자문해야 한다.
AI 융합이란 과연 무엇이며, 누구를 위한 융합인가?AI 융합은 기술 간 단순한 조합이나 연동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전적으로는 '인공지능 기술이 기존의 산업·서비스·사회 구조와 통합되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과정'을 뜻한다.
기술적으로는 AI의 학습·판단·예측 기능이 다양한 도메인에 내재화되어 '지능화된 시스템'으로 전환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만으로는 AI 융합의 본질에 도달할 수 없다.
AI 융합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닌, '의미 있는 연결'을 설계하는 행위다.
AI는 본질적으로 연결을 추론하는 도구다.
인간이 놓치는 변수 간의 관계, 대규모 데이터 속에 숨겨진 상관성,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뀌는 패턴을 찾아내고 예측한다.
그런 점에서 AI는 '기계적 지능'이 아니라 '연결의 감각'이다.
이 지점에서 '융합'은 단지 기술 간의 통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기술-사회가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시스템 설계로 확장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AI가 교통 시스템에 융합될 때, 단순히 차량의 자율주행 성능을 높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도로 위에서 사람의 안전, 이동의 평등, 환경의 지속성을 모두 고려하는 지능형 교통 생태계로 발전해야 한다.
의료에서의 AI 융합 역시 단순한 진단 자동화가 아니라, 의사의 직관을 보완하고, 환자의 삶의 질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며, 보건 시스템 전체를 예측가능하게 만드는 일이어야 한다.
AI 융합은 사람 중심이 되어야 한다.
기술의 연결이 아니라 가치의 연결, 기능의 확장이 아니라 존재의 확장이어야 한다.
결국 AI 융합이란, 인간의 의사결정과 상호작용, 감정과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는 '총체적 지능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방향에 맞추어 우리 정부는 최근 몇 년간 여러 부처에 걸쳐 AI 융합 사업을 적극적으로 확대해 왔으며, 이는 사일로형 혁신에서 범부처 협력으로의 전략적 전환을 시사한다.
일례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의 'AI+X 사업'은 ETRI, KISTI 등의 연구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의료부터 제조까지 다양한 분야별 AI 모델을 육성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스마트시티 챌린지' 등과 같은 스마트도시 사업을 통해 세종시 등 도시에 AI 기반 교통 흐름 시스템을 적용하는 등 스마트도시 거버넌스를 발전시키고 있다.
금융위원회 또한, 과기정통부와 공동으로 'AI 기반 금융서비스 혁신 로드맵'을 수립하여 초개인화 금융 및 부처 간 데이터 협업을 촉진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공공 인프라에 지능을 내장하고 정책 차원의 융합을 제도화하는 등 한국의 AI 접근 방식이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중요한 숙제를 안고 있다.
첫째, 융합을 위한 정책 체계가 기술 중심으로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현재 대부분의 부처 간 융합 프로젝트는 예산, 법제도, 데이터 인프라에서 단절된 구조로 되어 있어 기술의 시너지를 구조적으로 제한한다.
둘째, 융합의 최종 수혜자가 '사람'이라는 철학적 전제가 부족하다.
AI는 효율이 아니라 공존을 위한 기술이 되어야 하며, 그 기준은 정확도가 아니라 사람의 존엄을 지키는 방식이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AI를 어디에 쓸 수 있는가?'가 아니라, 'AI가 사람과 사회를 어떻게 더 깊이 있게 연결할 수 있는가?'로 말이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기술자 중심의 설계가 아니라 시민과 사용자, 그리고 사회 전체를 설계 초기부터 포함하는 공동 설계(Co-design) 철학이 필요하다.
데이터는 기술의 재료가 아니라 삶의 흔적이다.
알고리즘은 코드가 아니라 판단의 책임이다.
정책은 기획서가 아니라 공공성의 언어여야 한다.
AI 융합은 기술 발전의 끝이 아니라, 사람 중심 기술 설계의 시작점이다.
기술과 산업, 정부와 시민, 인간과 AI가 서로의 경계를 넘나들며 연결될 때,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융합 사회'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김태형 단국대 대학원 데이터지식서비스공학과 교수·정보융합기술·창업대학원장
교황 레오 14세와 ‘사랑의 순서’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이 성당은 교황이 총장으로 있던 아우구스트 수도회 소속 성당으로 알바니아에서 가져 온 오래된 성모 프레스코화(교황 오른쪽)로 유명하다.
레오 13세 교황도 이 성당을 좋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마=로이터 연합뉴스첫 미국인 출신 교황 레오 14세가 몇 달 전 자신 이름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공유한 JD 밴스 부통령 비판 기사가 화제가 됐다.
진보성향 미국 가톨릭 매체에 실린 이 기사는 가톨릭 신자인 밴스 부통령이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랑의 순서’(ordo amoris) 논리를 들먹이며, 트럼프 정부의 불법 이민자 추방을 정당화한 것을 비판한다.
가족 사랑에 머물지 말고, 이웃과 사회 등으로 확장하라는 본뜻을 왜곡해, 마치 사랑에 우선순위가 있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 보수 성향 미국 가톨릭 주류를 중요한 지지 세력으로 삼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교황 선출 직후 “미국에 큰 영광이며, 레오 14세와 만남을 고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자신의 이민정책에 반대하는 교황의 입장이 알려진 후 침묵하고 있다.
비판 대상인 밴스 부통령도 “교황을 정치화하려는 의도가 없다”며 말을 아꼈다.
트럼프 지지 세력인 ‘MAGA’의 설계자 스티브 배넌은 “그는 반트럼프 교황으로 MAGA 가톨릭교도에게 최악의 선택”이라고 정면 비판했다.
□ 레오 14세는 반트럼프 교황일까. 단정하기 어렵다.
우선 그의 소셜미디어에는 낙태권을 옹호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비판하는 글도 올라와 있다.
여성의 부제 서품을 반대하며, 학교 젠더 교육, 성소수자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이는 모두 트럼프 진영과 미국 내 주류 보수 가톨릭과 일치한다.
특히 미 공영 매체 NPR에 따르면 2012년 이후 공화당 예비선거에 투표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민자·난민과 기후변화 관련 정책에서는 트럼프와 대립한다.
□ 보수와 진보 이슈가 뒤섞인 레오 14세의 정치적 입장 때문에 언론은 그를 중도라고 분류하는 듯하다.
이런 입장은 교황청이 처한 현실과 무관치 않다.
전 세계 신자가 교황청에 보내는 기부금인 베드로 성금(Peter's pence) 중 미국 비중이 30%에 육박한다.
미국 주류 가톨릭 신자의 영향력이 짐작된다.
반면 신자와 성직자 증가율은 아프리카, 아시아가 유럽 미국보다 훨씬 높다.
레오 14세의 ‘사랑의 순서’ 고민은 가톨릭의 현재와 미래 사이의 괴리에서 나오는지도 모른다.
정영오 논설위원 (young5@hankookilbo.com)
네잎클로버 고백, 저지름의 미학 [한경록의 캡틴락 항해일지]


한경록 | 밴드 ‘크라잉넛’ 베이시스트돌이켜보면 참 민망스러운 짓을 많이도 했다.
고1 크리스마스이브 때였다.
좋아하던 여학생에게 작은 화분에 심은 네잎클로버를 선물하며 고백 비슷하게 했다가 대차게 차였다.
그때 쪽지에 짧은 문장을 써넣었는데, 그 내용이 가관이다.
“네가 소녀에서 숙녀로 변하는 동안 네 잎의 조그만 풀이 행운을 안겨주길.” 이 한줄의 문구를 쓰기 위해 수많은 시집을 펼쳐봤고 문학소년이었던 친구와 머리를 맞댔다.
오글거린다는 표현이 걸맞은 이 문장을 나는 지금까지도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미안해”라는 단답형 거절에 뜨거운 물을 얼굴에 들이부은 것 같은 체감온도 38.5도의 화끈거림을 느꼈던 것까지 정확하게 기억난다.
거절당할지라도 고백조차 못 한다면 평생 아쉬움으로 남을 것 같았다.
그래, 사랑에 실패할지언정 고백에 실패하지는 말자. 1할도 안 되는 타자라도 메이저리그급 강속구 투수의 공에 얼어붙지 않고 헛스윙이라도 휘둘러 봤으니 후회는 없다.
그때부터 돈키호테처럼 망설이지 않고 일단 부딪치고 저질러 보는 생활이 시작된 것 같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지고 핑크빛 꿈은 산산조각 나버렸지만 그때 읽었던 시들의 떨림은 아직도 연둣빛으로 싱싱하게 남아있다.
그때의 고백이 나비효과처럼 음악을 만들고 가사를 쓰는 데 도움이 되었고, 글을 쓰다 보니 칼럼니스트까지 되어 마감의 고통을 시시포스처럼 느끼고 있다.
저지름의 미학. 어느 정도 고통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시도를 선택한다면 청춘이다.
익숙한 것보다는 새로운 것을 시도했을 때 실패할 확률이 높다.
어쩌면 실패를 많이 한 사람들은 그만큼 새로운 것에 도전을 많이 한 사람이라는 방증일 수도 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는 것이 뭐 대단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서른살이 훌쩍 넘어 갑자기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져 동네 피아노 학원에 등록했고, 복싱 만화를 보고 멋있어 보여서 체육관에 찾아갔다가, 프로 테스트까지 나갔다.
물론 2라운드 동안 처맞고 돌아와 이후로는 얌전히 샌드백만 두드리기로 했지만. 오토바이 면허도 따고, 일어학원도 다니고, 이런저런 시도를 많이 해 봤는데, 사실 제대로 하는 것은 별로 없다.
그러면 뭐 어떤가! 그로 인해 삶이 재미있고 지루할 틈이 없다.
이렇게 뭐든 시도해 보는 것은 인디뮤지션으로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올해가 크라잉넛으로 활동을 시작한 지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동안 크라잉넛 멤버들은 작사, 작곡, 편곡, 연주, 녹음, 믹싱은 물론 기획, 홍보, 굿즈 제작, 앨범 디자인까지 직접 해 오고 있다.
그러면서 점점 우리의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
지금 이 칼럼의 삽화도 크라잉넛의 기타리스트 상면이가 그리고 있다.
얼마 전에는 신곡 ‘허름한 술집’의 뮤직비디오 연출과 편집을 직접 시도해 보기로 했다.
주어진 예산은 거의 무에 가까웠다.
홍대의 단골 문화공간인 ‘제비다방’에 장소 협조를 구했다.
처음엔 예산을 아끼고자 곡의 흐름에 어울리는 스틸 사진에 가사를 입히는 형식으로 진행하려고 했다.
그런데 촬영 일주일 전 샤워를 하다가 문득 사진 사이를 영상으로 이어 붙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사흘 전 소품을 주문하고, 이틀 전에 카메오 출연할 친구 12명을 섭외하고, 하루 전에 자주 가던 엘피바에서 팝콘 그릇을 빌려왔다.
비싼 카메라 대신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기로 했다.
예산이 부족한 자리는 상상력과 창의력이 메꾼다.
조명 없이 자연광만으로 찍다 보니 날씨가 흐려 세시간 안에 촬영을 마무리해야 할 상황이었다.
구형 스마트폰을 이용해 흑백의 레트로한 느낌을 살렸고, 편집 시간을 절약할 겸 처음 48초는 원테이크로 촬영했다.
메이킹 촬영을 도와주려고 온 배우 헤이든 원이 재작년에 스마트폰 영화제에서 대상 탔다는 얘기를 하길래, 그 자리에서 바로 촬영감독이 되었다.
평소 밥과 술을 자주 사주었기 때문에 흔쾌히 나와준 밴드 극동아시아타이거즈, 차세대, 라이엇키즈 멤버들도 즐겁게 촬영에 임해 주었다.
그렇게 해가 지기 바로 직전, 2시간45분 만에 촬영을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다.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 이번에도 후회 없이 시도는 해 봤다.
적어도 돌아갈 수 없는 나날들의 기록을 아쉬움으로 채워 넣지는 않았다.
눈이 펑펑 오던 겨울날 많은 친구들이 네잎클로버 찾는 걸 도와줬는데 그중 크라잉넛 친구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공짜는 아니었고 매점에서 빵을 사줬거나 오락실에서 오락을 몇판 시켜줬던 것으로 기억한다.
훗날 그 여학생과 웃으며 그때 얘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네잎클로버 선물을 받아서 기분은 좋았다고 했다.
그거면 됐다.
한겨레 hanidigitalnews@hani.co.kr
안전하려면 노력해야 한다

놀랍게도 이는 사회적 구성물인 가족이든 자연의 물리적 체계이든 시스템의 안정성과 취약성에 대한 보편적 진실과 유사하여 안전하려면 안전을 달성하고 유지하기 위한 의도적인 노력의 필요성을 제시한다.
일반인에게 무질서도(無秩序度)로 알려져 있는 엔트로피(Entropy)는 우리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에너지를 투입하지 않는 한 시스템은 무질서로 이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화재 감지기, 스프링클러, 방화문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성능이 저하되어 정기적으로 유지 관리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시스템의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소방시설의 정기적인 점검, 유지 관리 및 교육을 통해 시스템에 에너지를 주입하여 안전성이 저하되는 것을 방지해야 하는 이유이다.
전기공학에서 시상수(Timeconstant)는 시스템이 변화에 얼마나 빨리 반응하는지를 결정한다.
느린 반응은 중요한 순간에 실패를 의미한다.
화재감지기와 스프링클러가 화재를 감지하여 작동하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면 이미 화재는 제어할 수 없는 상태에 다다른다.
빠른 응답 속도와 높은 신뢰성을 가진 화재 감지 및 진압 시스템을 설치하여야 하는 이유이다.
엔트로피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시스템을 더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처럼, 화재 안전은 그것을 유지하는 데 에너지를 투자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감소한다.
건물을 지을 당시 화재 감지기, 스프링클러 설비, 방화문과 같은 화재 안전 성능을 갖추는 것만으로는 장기적인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시스템은 저하되거나 오작동할 수 있다.
정기적인 유지 관리, 점검, 시스템 업데이트는 물론 근무자·입주자 등에 대한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교육훈련으로 화재 안전 성능이 지속적으로 지되도록 하는 것만이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
이 중 하나라도 없으면 화재 상황에서 사람들을 보호하는 능력이 약해져 대형 참사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지속적인 기술의 발전으로 시상수가 감소하여 우리 눈으로는 그 옛날 일상이었던 형광등의 깜박임을 지금은 볼 수 없듯이, 화재 안전 또한 일회성 설정이 아닌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엔트로피에 대항하든, 시상수를 줄이든 화재 발생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고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개인이든 기업이든 지속적인 헌신이 요구된다.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
예방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돈 문제로 넘어가면 우리는 종종 이 말을 망각하고 구실을 잡아 관성에 따른다.
‘다시 태어나도 살고 싶은 안전한 부산’을 만들기 위해 당신은 어떤 노력을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