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장 떼고 해외 건축가와 붙는다면

일러스트=양진경

일러스트=양진경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

어떤 학생이 있다.
열심히 공부했다.
원하는 명문 대학에 가고 사회에 발을 내디뎠다.
그런데 결국 성공하고 선택받는 사람은 집안 좋은 다른 사람이었다.
이건 다름 아닌 한국 건축가의 이야기다.
열심히 공부했고, 국제 아이디어 공모전에서도 수상하고, 세계적인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해도 결국 선택받는 건축가는 유럽 건축가들인 경우가 많다.
학창 시절 계급장 떼고 붙었다면 충분히 이겼을 텐데, 졸업 후 실무에 들어가면 ‘국가’라는 집안싸움에서 밀린다.
대한민국에는 훌륭한 건축가들이 많다.
그에 비해 주요 프로젝트는 외국 건축가에게 돌아가는 경향이 있다.

지난 20년간 글로벌 건축 사무실을 먹여 살린 것은 중국 건축 시장이었다.
비정상적일 정도의 중국 부동산 거품 속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는 좋은 시절을 보냈다.
아시아 담당 부서를 키우면서 회사 조직을 몇 배로 키웠다.
그러다가 거품이 꺼졌다.
이제 아시아 시장을 담당하던 파트너들과 직원들은 실직자가 되게 생겼다.
그런 그들이 살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그들은 외국 건축가라면 환장하는 한국 시장에 속속 진출하고 있다.
너도나도 한국에서 전시회를 열고 책을 낸다.
한국 건축주는 그들에게 호구다.

다양한 국적의 세계적 건축가들이 한국에서 활동하면 국내 건축 수준을 발전시키는 장점이 있다.
환영할 만하다.
중국은 베이징 올림픽 전후로 세계 유명 건축가들이 모두 진출했다.
하지만 일정 시간이 흐른 후에는 자국 건축가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었다.
지금은 중국 건축가와 시공사들의 역량은 국제적 수준이 되었다.
그런 중국은 ‘건축계의 노벨상’이라는 프리츠커상을 올해 두 번째로 받았다.
반면 우리는 아직도 자기 자식에게 기회를 주는 데 인색하다.
국내 건축가는 홀대하면서 외국 건축가에게는 저자세인 경우가 많다.
오죽하면 작년 프리 커상을 받은 야마모토 리켄이 이런 말을 했을까. “한국에도 좋은 건축가가 많은데, 정작 한국에선 한국 건축가들이 제대로 설계하고 건축할 기회를 갖지 못해요. 오히려 나 같은 외국인에겐 기회를 주고요. 이상해요.” 실제로 리켄이 판교에 지은 혁신적인 디자인의 집합 주거는 그가 프리츠커상을 받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언제까지 에르메스와 루이비통 백을 사고 으스댈 것인가? 이제 우리의 명품 브랜드를 만들 때도 되었다.

나는 해외 유명 건축가들을 존경한다.
학창 시절부터 그들의 좋은 프로젝트를 보면서 건축을 배웠다.
하지만 그 건축가가 아닌 그 밑에 파트너급의 소장이라면, 집안과 계급장 떼고 만나면 경쟁해 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나처럼 생각하는 건축가가 대한민국에 많을 것이다.
작년에 ‘JYP 신사옥 공모전’에 초청을 받아서 토머스 헤더윅, 자하 하디드, UN스튜디오 사무실과 경쟁하는 기회를 얻었고, 우리 사무실이 당선되었다.
내가 이 세계적인 건축가들보다 더 낫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대가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항상’ 가장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때로는 국내 건축가가 더 좋은 작품을 디자인할 수도 있다.

작년에 또 다른 공모전인 ‘서리풀 수장고미술관 공모전’에 초대받아 프리츠커상을 받은 건축가들과 경쟁한 적이 있다.
해외 건축가 4명과 국내 건축가 3명이 경합을 했다.
흥미로운 것은 국내 건축가들은 모두 서초동 정보사 땅의 속성을 이해하고 신축되는 미술관을 이용해서 서리풀 공원으로 연결되는 동선을 만들었다.
나머지 4명의 해외 건축가는 아무도 그런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없이 독립된 건축물 아이디어를 냈다.
해외 건축가들은 그 땅이 가지고 있는 역사와 속성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 땅의 특성을 이해하고 디자인한 건축물이 더 좋아지고 더 많아져야 하지 않을까?

프랑스는 천년 넘게 로마제국에 야만인 취급받던 민족이었다.
그러다가 12세기에 들어 고유의 고딕 스타일로 노트르담성당을 만든 다음부터 로마에 대한 열등감을 극복했다.
우리나라의 건축 역사는 객관적으로 여타 제국들의 건축에 비해 열등하다.
나는 우리나라 건축을 애써서 소박함이니 절제의 미가 있다는 식으로 포장하고 싶지 않다.
그건 객관적이지 않은 ‘국뽕’이다.
우리나라는 그냥 가난해서 건축에 쓸 돈이 없었다.
조선은 농업에 기반을 둔 나라였다.
농업 국가가 경제 총생산량을 늘리는 방법은 주변국과의 전쟁을 통해서 영토를 확장하고 패전국의 국민을 노예로 흡수할 때나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조선 시대 때 국경을 확장하는 전쟁을 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인구가 늘면서 점점 가난해졌고, 그래서 세계사에 보기 드물게 자국민을 노예로 쓰는 노비가 많았다.
18세기에는 전체 국민의 30%가 노비였다.
침략 전쟁은 안 했지만, 자국민을 착취했던 것이 조선의 민낯이다.
그렇게 가난하다 보니 건축에 돈을 쓸 여유가 없었다.
이제는 이러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더 나아질 수 있다.

우리 세대는 단군 이래 가장 잘사는 세대다.
우리만의 건축을 우리의 손으로 만들 때가 되었다.
민족주의에 호소해서 국내 건축가를 우대해 달라는 것이 아니다.
그저 공정하게 기회를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이런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구걸하는 것 같아 창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는 것은 우리 세대에 이런 분위기를 바꾸지 못한다면 후배들에게 면목이 없을 것 같아서다.
수십 년 전부터 해외 유명 대학에서 한국인 학생들은 최우수 학생들이었다.
한국 건축가들에게 기회를 주어도 된다.
유학파들만 훌륭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건축가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우리가 K팝, K드라마만 잘하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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