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여 통과 2년이면 짧다고 기뻐하게 된 우리들… 환자에겐 시간이 없다

"회사에서 급여 신청 후 2년이라는 빠른 시간 내트로델비라고 하는 혁신 치료제를 국내에 도입할 수 있었다고 기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2년이나 걸린 것이다.
글로벌 학회에서 기존 치료제 대비 생존기간 혜택을 입증해 해외에서는 이미 사용되고 있는 약제를, 우리는 사용하기까지 수년이 걸린다고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11일 '트로델비(성분 사시투주맙 고비테칸)'가 전이성 삼중음성유방암 3차 이상 치료제로 급여 적용 받게된 것을기념하는 기자 간담회가 개최됐다.
행사에 소개된 어느 내용보다 발표 연자로 나선 손주혁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교수의 시작 멘트는 강렬했다.

뒤이어 삼중음성유방암 환자 단체 '우리두리구슬하나'박지연 대표가 "효과적인 약제가 존재함에도 급여 등재를 기다리다가 끝내 치료를 받지 못하고 돌아가시는 환자도 존재한다.
회원들은 '치료도 힘들지만 돈 때문에 좋은 약을 쓰지 못하는 게 더 힘들다'고 표현하기도 한다"고 말하면서 손교수의 말에 무게가 더 실렸다.

트로델비는 2020년 유럽종양학회에서 3상 임상 ASCENT 연구의 첫 중간 결과에서 기존 표준요법인 의사가 선택한 항암화학요법(TPC) 대비 사망 위험을 52%, 질병 진행 또는 사망 위험을 57% 낮추는 등 새로운 삼중음성유방암 치료 옵션으로 떠올랐다.

이 경향은 최종 분석까지 이어졌다.
뇌 전이 환자를 포함한 트로델비 치료군의 전체생존기간(OS) 중앙값은 11.8개월로 대조군 6.9개월 대비 약 2배 연장을 보였으며, PFS 중앙값에서 또한 5.6개월 대 1.7개월로 3배에 가까운 개선을 보였다.

이런 성과에 힘입어 트로델비는 급여 신청 3개월 만에 중증(암)질환심의위원회를 통과했다.
이후 한 번의 실패가 있었지만, 2년 만인 지난 2월 약제급여평가위원회를 통과하고, 6월부터 급여 적용됐다.

이는 트로델비가 점증적 비용 효과비(ICER) 임계값을 탄력 적용 받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트로델비는 기존 항암제의 ICER 임계값을 상회하는 ICER 값을 가진 고비용 약제였기 때문에, 탄력 적용이 없었다면 급여 등재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현재 정부는 혁신성을 인정받은 일부 신약에 한해 ICER 임계값을 탄력 적용해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엔허투(HER2 양성 유방암 2차 치료, 위암 3차 치료) △캄지오스(증상성 폐색성 비대성 심근병증) △빈다맥스(트랜스티레틴 아밀로이드 심근병증) △오페브(섬유성 간질성 폐질환)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다행히도 탄력적 ICER 임계값을 적용받아 급여 등재에 성공했지만, 그렇지 못한 약제들이 더욱 많다.
과학 기술은 점점 빠르게 발전하고, 기존 표준요법을 빠르게 대체해 나가고 있음에도, 신약(또는 신규 요법)의 비용-효과성을 입증하기 위한 급여 심사 속도는 여전히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건강을 위해, 보험 재정은 영리하고, 알뜰히 사용해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생존율을 2배 혹은 그 이상 개선해 치료 패러다임을 바꿨다고 평가받는 약제가 있음에도 비용 문제로 기존 치료제를 사용해야 하는 현실이 과연 국민의 건강을 수호해야 할 보험당국이 바란 그림인지는 의구심이 든다.

최근 약가 제도의 개편을 두고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 중에는 탄력적 ICER 임계값 부여 대상 확대, 부분 급여, 약제별 환자 본인 부담률 차등화 등 빠른 급여 등재와 보험 재정 절약을 위한 안건들이 다양하다.

물론 이 중에 정답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업계와 보험당국이 '환자'를 중심에 놓고 제일효율적으로 보험 재정을 절약하면서 빠른 치료를 이끌어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