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23일 새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11개 부처의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선을 단행했다.
이날 강훈식 비서실장은 윤석열 정부에서 임명된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유임한다고 밝히며 "진보와 보수 구분 없이 기회를 부여하고 성과와 실력으로 판단하겠다는 것"이라고 지명 이유를 설명하며 "실용주의에 기반한 인선"이라고 말했다.
과거 이명박 정권에서 박근혜 정권으로 바뀔 당시,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유임된 적은 있지만 당이 바뀌었는데도 장관직이 유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한 후 처음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 대통령과 송 장관이 농정과 물가, 재해 등에 대해 장시간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안다”라며 “당시 국무회의가 4시간 열렸는데 송 장관이 이 대통령의 질문에 대해 세세하게 잘 답변했다는 후문”이라고 말했다.
현 정부는 송 장관의 해박한 지식과 농업에 대한 열정 등을 더 높이 산 것으로 보인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송 장관이 유임된 것은 이 대통령의 실용주의적 철학과 맞닿은
것으로 보인다”라며 “그 자리에서 일을 잘할 사람을 임명한다는 원칙인 것 같다”라고 밝혔다.
이는 이 대통령이 전 정부 인사더라도 업무 능력을 최우선으로 인사에 반영한다는 점을 드러낸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능력 중심 인사,
국민 통합 인사'를 강조해 왔다.
특히 송 장관은 이 대통령의 공약인 '양곡관리법', '한우법' 등 농정 법안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지만 정권 교체 직후 국무회의에서 이 대통령에게 양곡법 대안을
제시하는 등 농정에 대한 이해도를 보여줬다는 전언이다.
정부 관계자는 "국무회의 때 대통령이 장관님과 심도있는 토론을 많이 하셨다는 얘기를 들었고 이번에 국정기획위원회 보고 때도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 사항을 반영해서
양곡관리법도 타작물 재배 확대 등 대안을 제시한 걸로 알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 송미령 농림부 장관 유임시켜…“진영 넘은 실용주의”
내란 국무회의 참석 논란 남아…특검조사 불가피

대통령실이 23일 오후 발표한 장관 후보자 인선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유임이다. 정권 교체 뒤 첫 내각 구성은 능력 못지않게 정치적 논공행상 성격도 갖는데, 19개 장관직 가운데 하나를 전 정부 인사에게 내준 것이다. 같은 정당 출신 대통령이 정권을 넘겨받을 때 전 정권 국무위원을 유임시킨 사례는 간혹 있었지만, 다른 정당으로 정권이 교체된 뒤 유임시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진영을 가리지 않고 능력 있는 인사를 중용하겠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실용주의 인선’이자, 국민통합 의지를 구체화한 인선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보수·진보 구분 없이 기회를 부여하고, 성과와 실력으로 판단하겠다는, 이재명 정부의 국정철학인 실용주의에 기반한 인선“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새 정부 철학과 국정 운영 방향에 동의하신다고 알고 있다. 과거에 어떤 활동과 결정을 했든 간에 새 정부의 국정 운영 방향에 보조를 맞출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윤석열 정부에서 일했다고 하더라도 계엄이나 내란에 적극적으로 동참한 적이 없고, 본인이 소신을 갖고 활동해 왔으며, 이재명 정부의 가치 지향에 동의해서 열심히 활동할 분이라면 진영을 가리지 않고 쓰겠다는 인사로 해석해 달라. 그런 면에서 송 장관의 유임은 (대통령의) 실용주의에 기반한 인사”라고 설명했다.
전 정권 국무위원 유임 사례는 과거 3차례뿐이다. 김영삼 정부에서 김대중 정부로 사상 첫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뤄졌는데, 당시 호남 출신인 이기호 노동부 장관이 유일하게 유임됐다. 김대중 정부에서 노무현 정부로 바뀔 때 정세현 통일부 장관이 유임됐다. 대북 정책 연속성과 전문성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이명박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로 바뀌었을 때는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유임됐다. 다만 이는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도덕성 논란 등으로 낙마하자, 안보 공백을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유임시킨 경우다.
관가에서도 송 장관 유임에 놀란 분위기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장관이 유임됐다는 소식을 듣고 놀랐다. 농촌 정책은 여야 이견이 크지 않아 정책 추진 방향에도 특별히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송 장관 이력을 두고 논란이 불가피하다. 당장 송 장관은 이 대통령이 공약했던 양곡관리법 개정에 대한 본인의 입장부터 바꿔야 한다.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때 “쌀값을 안정적으로 보장하고, 식량자급률과 식량안보지수를 높이겠다”며 윤석열 정부에서 3차례 좌초된 양곡관리법 개정을 공약했다.
송 장관은 민주당의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시장의 자율적 기능을 훼손하고, 쌀 과잉생산과 수급 불안을 유발한다. 막대한 재정 소요가 예상되고, 법이 만들어져도 집행이 불가능하다”며 일관되게 반대해 왔다. 특히 지난해 11월 민주당 주도로 양곡관리법 등 4개 농업 관련 법안이 통과되자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거부권)를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그해 12월19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하자 “이 법은 부작용이 명약관화하다. 주무 부처 장관으로서 재의 요구를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통령실이 송 장관 유임 배경을 설명하며 “이재명 정부의 가치 지향에 동의했다”고 밝힌 만큼, 윤석열 정부 코드에 맞췄던 양곡관리법 개정 반대 의견을 수정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날 유임 발표 뒤 송 장관은 “분골쇄신의 자세로 새 정부 농정 추진에 최선을 다하겠다. 그동안 쟁점이 됐던 정책·법안은 새 정부 국정 철학에 맞춰 적극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농림축산식품부는 국정기획위원회에 양곡관리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한 바 있다. 기존 개정안의 쌀 의무 매입을 ‘조건부 의무 매입’으로 수정해 재정 부담을 완화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이날 오후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다시 상정됐다.
송 장관은 12·3 비상계엄 선포 국무회의에 참석했던 11명의 국무위원 중 한 명이었다. 송 장관은 이후 “계엄 선포를 위한 국무회의인 줄 알지 못했다. 알았으면 참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국회에 나와서도 “비상계엄은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계엄 선포를 위한 국무회의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경찰에서 내란 국무회의 관련 참고인 조사를 받았지만, 내란 특검 수사가 본격화하면 다시 조사를 받는 것이 불가피하다. 다만 대통령실이 “계엄·내란에 적극 동참한 적이 없다”고 밝힌 것에 비춰볼 때, 이에 대한 대통령실 자체 검증 결과 ‘유임시켜도 문제없다’는 결론을 낸 것으로 보인다.

유임된 송 장관은 국회 인사청문회를 받지 않아도 된다. 이와 관련해 과거 이 대통령은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한 송미령 장관 후보자’를 직설적으로 비판한 바 있다. 송 장관은 2023년 12월 국회 인사청문회 때 아들에게 1억원을 불법 증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용돈 차원에서 좀 줬다”고 해명한 바 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던 이 대통령은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그런 생각으로 어떻게 국정을 담당할 수 있나?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말이냐”고 강하게 비판했다.
송 장관 유임 소식이 전해지자 농민 단체 등은 강하게 반발했다. 탄핵 집회 당시 트랙터를 몰고 상경했던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윤석열의 농업파괴·농민말살 정책을 주도하고, 내란 사태를 방조한 내란 농정 수장 송미령 장관을 유임한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다. 이재명 정부는 유임 결정을 즉각 철회하라”고 했다.
이날 오후 열린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송 장관 유임에 반발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전체회의에는 송 장관도 참석했다. 전종덕 진보당 의원은 송 장관의 양곡관리법 개정안 반대 및 내란 국무회의 참석 사실을 거론하며 “양곡관리법 등에 농업을 망치는 ‘농망 4법’이라며 막말과 악담을 퍼부었다. 내란에 적극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후 모습도 석연치 않다. (탄핵 집회 때) 농민들의 트랙터 시위를 정부 정책에 반영해야 할 이재명 정부의 농업 수장으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당장 철회해야 한다”고 했다.
김남일 박수지 기자 namfic@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