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종일 일에 시달리고, 퇴근해선 아이의 숙제를 봐주고, 지칠 대로 지쳐 자기 전 비타민을 입에 털어 넣는 일상에서 행복은 좀처럼 손에 닿지 않는다. 행복하려고 열심히 사는 건데, 왜 행복은 점점 멀어지는 느낌일까.
성공해야 행복할까요, 행복해야 성공할까요? 수많은 연구 결과는 후자가 맞다고 해요. 행복한 사람이 공부도 잘하고, 돈도 많이 벌고, 건강도 좋았어요. 그런데 우리는 반대로 생각합니다. 성공해야 행복하다고요. 그래서 성공에 매달리죠. 그럴수록 행복에서 멀어지고요.
“왜 이렇게 행복하기 힘드냐”는 질문에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행복을 멀리서 찾지 말라”는 얘기다. “일상에서 행복을 찾으라는 뻔한 얘기냐”고 묻자 그는 “알면서 왜 실행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결국 알지만 믿지 않아서, 의심해서 행복하지 못하단 얘기다.
서울대에서 15년째 행복을 주제로 연구 중인 그는 자타공인 ‘행복 전문가’다. 2010년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센터, 2022년 ‘굿라이프랩’을 창업해 행복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 앞장서고 있기도 하다. 4000여개의 초·중·고교에 도입한 행복 교육 프로그램과 기업과 성인을 위한 행복 관리 프로그램도 그의 작품이다. 2017년부터는 카카오와 산학협력을 통해 5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행복을 측정해 매년 『대한민국 행복지도』를 발표하고 있기도 하다.
최 교수는 “행복은 저절로 주어질 만큼 쉽지 않을지 몰라도 포기해야 할 만큼 어렵지도 않다”고 말한다. 어떻게 해야 어렵지 않다는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 지난 19일 만난 그는 “행복에 대한 오해부터 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Intro. 왜 우린 행복하지 못할까
오해① 부자는 행복하지 않다?
오해② 부자의 기부엔 꿍꿍이가 있다?
오해③ 행복도 유전이다?
최 교수에 따르면, 한국인의 연령별 행복도는 ‘U 커브’ 형태를 그린다. 10대엔 행복도가 높지만 점차 하락해 20~40대 행복도가 낮아진다. 그러다가 50대부터 회복세를 그린다. 30~40대에 행복도가 가장 낮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시기는 안팎으로 고달프다. 아직 어린아이 키우랴, 나이 들어가는 부모 챙기랴, 그 와중에 자신의 노후까지 준비해야 한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쌓이는 것도, 손에 쥐어지는 것도 없다. 힘에 부칠 때마다 이렇게 생각하며 위로한다. ‘돈 많다고 행복한 건 아니야.’ 정말 그럴까?
- 돈만으로 행복을 설명할 수 없는 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돈이 많으면 행복도가 높아진다는 것도 사실이에요. 이미 여러 연구에서 증명됐죠. 생각해보세요. 돈은 많은 걸 해결할 수 있습니다. 쾌적한 집도, 건강한 음식도 돈이 있어야 가능해요. 아파도 바로 치료할 수 있고요. 신체적·물리적 안전은 심리적 안정으로 이어집니다. 행복감도 올라갈 수밖에 없어요.
- 하지만 다들 돈과 행복의 상관관계를 부정하는 것 같아요.
- 행복을 마음의 문제로만 보기 때문이에요. 마음만 잘 다스리면 어떤 상황에도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마음만으론 행복할 수 없어요. 돈, 사회적 지위, 관계, 건강 등 다양한 외적 요소를 골고루 갖춰야 행복하죠. 사실 다들 알고 있어요. 그런데 인정을 못 합니다. 이런 외적 요인은 내 의지만으로 안되거든요. 결국 행복도 내 뜻대로 안 된다는 얘깁니다. 가뜩이나 못 가져서 속상한데, 다 가진 부자가 행복하기까지 하다니, 이것만큼은 받아들일 수 없는 거예요.
- 다 가졌는데, 행복하기까지 하다니 너무 불공평한 거 아닌가요? (웃음)
- 그렇게 생각하는 게 자연스러운 겁니다. 우리의 심리 구조가 그렇거든요. 더군다나 미래까지 불확실하잖아요. 아무리 열심히 해도 부를 축적하기 힘들죠. 경쟁은 심해지고 기회는 줄어들었어요. 그러니 박탈감이 커질 수 밖에요. 가질 수 없다면 차라리 부정해버리는 편이 나아요. 그럼 속이라도 편하잖아요.
- 기대 수준을 낮춰야 하는 걸까요? 너무 큰 돈, 너무 대단한 지위를 바라면 그만큼 박탈감도 클 테니까요.
- 행복의 조건을 딱 하나로만 규정하지 않으면 됩니다. 돈만 있으면 혹은 마음만 먹으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 거죠. 돈이나 마음 외에 다른 여러 가지에 눈을 돌리세요. 그리고 그것들 사이에 균형을 맞추는 겁니다.
- 관계도 중요한 요소에요. 실제로 행복한 사람은 관계에 대한 가치를 높게 평가해요.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을 돈과 바꾼다면, 얼마까지 쓸 것이냐”는 질문에 행복감이 낮은 하위 50%의 사람들은 40만원이라고 답했지만, 행복감이 높은 상위 50%의 사람들은 최소 600만원이라 답했어요. 행복한 사람들은 관계를 희생하면서까지 돈을 벌려고 하지 않는단 얘깁니다.
- 경험과 시간도 중요합니다. 부가 늘어나면 행복감도 커졌지만, 부는 경험과 시간을 빼앗아갑니다. 돈을 벌려고 일하는 만큼 가족과의 시간이 줄고, 집·자동차를 사느라 독서나 운동 같은 경험에 대한 지출은 줄이는 거죠. 그런데 물질적 풍요가 보장하는 행복에는 한계가 있어요.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더 행복하기 위해 시간과 경험이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일을 관두라는 의미는 아니에요. 로봇청소기나 식기세척기를 사서 청소하고 설거지하는 시간을 벌어 가족과 경험에 쓰면 됩니다. 실제로 시간 확보에 도움이 되는 물건을 산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행복감을 느낍니다.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행복은 마음이나 돈 등 한 가지 요인으로 채워질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여러 요인들을 복합적으로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2024년 갤럽이 발표한 세계기부지수에 따르면, 폴란드(15%)의 기부율은 케냐(56%)의 1/4 수준이다. 그런데 1인당 GDP(2023)로 따지면 폴란드 국민(1만7391달러)은 케냐 국민(1808달러)보다 10배 부자다. 기부나 봉사 같은 선행이 물질적 풍요에 비례하는 건 아니란 얘기다. 우리 상황을 봐도 알 수 있다. 최근 10여 년간 우리나라 1인당 GDP는 꾸준히 상승했지만, 기부율은 꾸준히 하락했다. 남을 도우면 행복하다는데, 왜 정작 실천하지 않는 걸까?
- 이타적으로 행동하면, 행복감이 높아지는 건 맞나요?
- 물론입니다. 이유가 있어요. 선행은 자발적 행동이거든요. 선행하면 자신을 능력 있고, 가치 있고,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평가해요. 자신을 높게 평가하고 싶은 욕구가 채워지니 행복도 역시 높아지죠. 행복할수록 선행을 많이 하기도 합니다. 행복하면 타인에 대해 더 공감하고, 자기 행복을 나누고 싶어하거든요. 행복의 선순환이 일어나는 겁니다.
- 그렇다면 물질적으로 풍요로우면 선행도 많이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더 행복하니까요.
- 부자의 선행, 특히 기부에 관해서는 몇 가지 착시 효과가 있습니다. 제가 질문하나 할게요. 소득이 1억 원인 사람과 1000만 원인 사람이 100만원씩 기부했어요. 누가 더 이타적일까요?
- 대부분 그렇게 말합니다. 소득의 1%를 낸 사람보다 10%를 낸 사람이 더 이타적이라고 보는 거죠. 그런데 사실 기부액은 똑같잖아요. 둘 다 이타적인 행동을 한 거죠. 그런데 우리는 부자에게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댑니다. 2015년에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가 재산의 99%를 기부하겠다고 했는데요. 사람들은 ‘세금 혜택을 노린 것’이라며 비판했어요. 목적이 순수하지 않다고요. 기부하고도 욕을 먹었죠. 선행을 한 사람을 비난하는 데엔 다양한 심리가 숨어 있습니다. 기부를 안 한 내가 못나 보여서도 있고, 자신이 비판받기 전에 먼저 상대를 공격하는 것일 수도 있죠. 자연스러운 반응일 수 있지만, 사회적으로 용인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시선이 결국 기부를 막고, 사회 전반의 행복도를 끌어내리거든요.
- 좋은 마음으로 한 일을 의심받으면, 결국 좋은 일을 하는 데 주저하게 됩니다. 내가 누군가의 선행을 의심했으니, 내가 선행할 때도 의심받을 거라고 생각하고요. 결국 사회 전체적으로 선행이 줄어요. 악순환이죠.
- 이런 악순환에서 빠져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 의도가 아니라 실효성에 집중해야 해요. 의도가 어떻건 누군가가 혜택을 본다면 그건 선행입니다. 1억 원 버는 사람이 냈든, 1000만 원 버는 사람이 냈든 받는 사람 입장에선 똑같은 100만원이잖아요. 물론 나를 위한 목적으로 한 선행이 바람직하다고 볼 순 없을 겁니다. 하지만 모두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다면, 그대로 인정해야 해요. 그래야 선행의 선순환이 일어날 수 있어요.
최 교수는 "이타심의 목적에 높은 잣대를 들이밀면 결과적으로 기부 등 타인에 대한 관심과 도움을 억제하는 악순환이 생긴다"며 "선행의 실효성에 집중하고, 선행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라"고 했다. 장진영 기자
한국인은 타고나길 행복감을 잘 느끼지 못하는 걸까? 서울대 행복연구센터가 지난 5월에 펴낸 『대한민국 행복지도 2025』를 관통하는 주제다. 연구팀은 한국인의 성향을 크게 개방성·성실성·외향성·우호성·신경증적성향 등 다섯 가지로 나누고, 행복과 가장 밀접하게 관련된 성격 요인을 분석했다.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 행복한 사람과 덜 행복한 사람은 성향 차이가 뚜렷했나요?
- 결론부터 말하자면, 성향에 따라 행복하다고 느끼는 정도가 달랐습니다. 외향성·성실성·우호성이 높을수록 그리고 심리적 압박감을 덜 느끼고 예민하지 않을수록 사람들은 더 행복하다고 느꼈어요. 즉흥적이고, 사흘에 한 번씩 결심하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고, 외부 활동에 소극적일수록 덜 행복했고요.
- 그런 성향은 타고나는 거잖아요. 결국 행복도 유전인 건가요?
- 유전은 인간의 거의 모든 행동과 특성에 관여합니다. 행복에도 유전의 영향력이 없지 않죠. 그런데 관여한다는 거지, 결정한다는 건 아닙니다. 성격이 같아도, 개인의 노력과 환경에 따라 행복의 수준은 달라질 수 있어요. 2018년 유엔 행복보고서도 이를 증명했습니다. 이민자들의 행복 점수를 분석해보니, 출신 국가가 아닌 현재 거주하고 있는 국가의 행복 수준과 유사했어요. 행복 수준이 낮은 아프리카 출신이라도 행복 수준이 높은 캐나다에 살면 캐나다 사람만큼 행복하다고 느낀다는 얘깁니다. 행복도 배울 수 있다는 거죠. 그게 제가 행복 교육을 연구하는 이유기도 하고요.
- 행복은 습관입니다. 행복하려면 두 가지를 바꿔야 하는데요. 첫 번째는 행복을 보는 관점입니다. 관점이 바뀌면 해석이 바뀌고, 그러면 생각이 바뀝니다. 생각이 바뀌면 감정이 바뀌고, 감정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요. 저는 ‘성공하면 행복해’가 아니라 ‘행복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관점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실제 행복에 관한 연구들을 보면, 행복한 사람은 성과도 뛰어납니다. 학력, 재산, 관계, 건강 등 모든 면에서요. 그런데 이걸 믿는 게 쉽지 않습니다.
- ‘성공하면 행복하다’는 관점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에요. 성공해서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차를 타고, 가족이 화목한 거라고 굳어져 버렸죠. 사회적 통념이 되어 버렸어요. 아이들에게도 “좋은 대학 가면 행복할 거야”라고 말하지, “행복하면 좋은 대학 갈 수 있어”라고 하지 않잖아요. 그러니 아이들이 좋은 대학 가서 부자가 되어야 행복하다고 말하죠. 이 관점을 바꿔야 합니다. ‘행복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말만으론 안돼요. 근거를 찾아봐야 합니다. 무엇을, 누구와 어떤 마음으로 행할 때 행복의 수준이 달라지는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직접 실천해봐야 합니다. 행복해서 성공했던 경험을 쌓는 거예요. 그래야 확신이 생겨요.
- 행복 수업에서는 매일 행복하기 위한 과제를 수행합니다. 일종의 습관 챌린지에요. 하루 다섯 번 감사하다고 표현하고, 그때 기분을 적는 식입니다. 소소한 행복을 찾아봐도 좋아요. 평소 별생각 없이 지나쳤던 것을 다르게 보고, 나 자신을 축하할 일을 찾아보는 미션도 있어요. 이렇게 행복을 실천하는 습관을 들이면, 행복이 사실은 평범한 일상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행복할 기회가 많으니, 만족감과 긍정성이 높아지고, 마음의 컨디션이 좋으니 집중도 잘되고요. 자연스럽게 성적도 좋아지죠. 이해심이 넓어지니 관계도 좋아지고요. 행복하면 성공한다는 공식을 직접 경험하는 겁니다.
최 교수가 이끄는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센터와 굿라이프랩은 10대부터 60대까지, 생애주기별 행복을 연구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최인철 교수가 운영하는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센터는 15년째 약 4000개의 학교, 교사 1만3000명과 함께 행복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행복 수업에서 말하는 행복은 드라마틱한 변화를 말하지 않는다. 남보다 행복해지려는 것도 아니다. 평범이란 원칙 속에서 지금 이 순간을 긍정할 줄 아는 습관을 기를 뿐이다.
지금 행복하지 않다고, 우울할 필요가 없어요. 원래 인생 후반기가 가장 행복한 법이거든요. 지금 힘들고 불안해도 긴 인생 살다 보면, 결국 다 행복해집니다. 그러니 지금에 집중하세요. 그래야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