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진실

[데일리안 = 데스크] 베란다에는 동양란 화분 네 개가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보름에 한 번쯤 물을 주는 것이 고작이지만, 그마저도 잊고 지나칠 때가 있다.
그런데도 불평 한마디 없이 꽃을 피워 잔잔한 미소를 건넨다.
환한 얼굴로 위로를 건네다가도 지고 나면 말라버린 꽃대를 남기고 다시 일 년을 기다린다.
평범한 화분일 뿐인데, 세월 속에 스며들어 삶을 지탱하는 벗이 되었다.

집에서 기르고 있는 네 개의 난 화분

집에서 기르고 있는 네 개의 난 화분올여름, 한 화분에서 꽃대가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
봉오리를 기다리며 가슴 설레었지만, 불볕더위를 견디지 못하고 꽃이 피기도 전에 고개를 떨구었다.
활짝 핀 향기가 집안에 가득하기를 기대했는데 검게 그을린 꽃대라니. 아쉬움에 가슴이 아릿하다.
따가운 햇볕을 헤아리지 못하고 베란다에 둔 무심한 탓이리라. 반그늘이 진 안쪽으로 옮기자 한 달 남짓 지나서 다른 두 화분에서 새로운 꽃대가 차례로 솟아올랐다.
절망의 끝자락에서 희망이 움트듯, 시든 자리에서 새싹이 돋아난 것이 아니겠는가. 꺾인 듯 보였던 자리에서 새 꽃대가 오르는 모습을 보면서 삶 또한 다시 일어날 수 있음을 일깨워준다.

꽃대를 올리다 시들어 버린 난

꽃대를 올리다 시들어 버린 난난은 까다로운 식물이다.
물을 지나치게 주면 뿌리가 썩고, 소홀히 하면 잎이 마른다.
볕을 쬐어야 꽃을 맺지만, 햇볕이 너무 강하면 잎이 타 버린다.
그늘에만 두면 꽃을 피우지 않는다.
다습과 건조, 햇볕과 그늘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향기를 드러낸다.
이러한 습생도 모른 채 팽개치듯 두었으니 제대로 꽃을 피울 수 있으랴. 그 앞에서 삶의 이치를 배운다.
넘치면 흘러내리고, 모자라면 메마른 것이 아니겠는가. 인간 또한 난처럼 균형의 자리에 서야 꽃을 피울 수 있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공자가 논어에서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라는 것은 어쩌면 난을 두고 한 말이 아닐는지.

법정 스님의 무소유 책자 표지

법정 스님의 무소유 책자 표지법정 스님이 쓴 ‘무소유’라는 글이 떠올랐다.
스님은 지인에게서 난 한 분을 선물 받아 길렀다.
처음엔 향기와 자태가 고와 관련 서적을 읽어보고 비료를 구해주며 정성을 쏟았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짐으로 느껴졌다.
물을 제때 주어야 하고, 햇볕을 쬐게 하려면 창문을 열어두어야 했다.
봉선사에 다니러 간 어느 날 한낮에 뜰에 내놓은 난 잎이 뜨거운 햇볕에 늘어져 있는 모습이 눈에 아른거려 허둥지둥 돌아왔다.
홀가분하게 유유히 떠나고 싶어도 화분 하나에 마음이 묶이니 발걸음이 자유롭지 못했다.
난은 어느새 스님을 얽매는 족쇄가 된 것이다.

창가에 놓인 난 화분

창가에 놓인 난 화분며칠 뒤 벗이 찾아와 돌아갈 때, 선뜻 화분을 내어주었다.
집착을 내려놓는 순간 날아갈 듯 홀가분했다고 술회한다.
스님은 난을 통해 무소유의 기쁨을 깨닫게 되었다.
아름다움조차 소유의 굴레가 될 수 있음을, 비우고 내려놓을 때 비로소 참된 자유가 찾아온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우리 집 난 화분을 떠올린다.
은은한 꽃을 피울 때는 기쁘지만, 지고 나면 무심해지는 나의 태도 또한 소유의 또 다른 얼굴은 아닐까. 우리는 종종 손에 쥔 것을 내려놓지 못해 자신을 옭아매곤 한다.
법정 스님은 난 앞에서 버림의 지혜를 배웠고, 나는 무심한 듯 난을 곁에 두고, 그저 피고 지는 시간을 지켜볼 뿐이다.

다소곳이 외로이 핀 난

다소곳이 외로이 핀 난난이 주는 가르침은 비움에만 머물지 않는다.
조선의 대학자 다산 정약용 선생은 유배지 강진에서 난을 길렀다.
깊은 외로움과 세속과의 단절 속에서도 난은 벗이자 스승이었다.
시문집인 '여유당전서'에서 "난은 그윽하되 요란하지 않고, 향기는 은은하되 멀리 퍼진다.
"라고 했다.
은둔한 군자라 할지라도 덕은 세상에 스며든다는 뜻이리라. 난의 습성이 곧게 서서 바람과 이슬을 견디는 모습이듯이,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지조와 품격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아니었을까.

정약용 선생이 유배 시 거쳐 했던 다산초당

정약용 선생이 유배 시 거쳐 했던 다산초당선생은 험난한 시대에 18년 동안 유배지에 묶여 있었지만, 학문을 놓지 않았다.
난 앞에서 '비록 몸은 이곳에 갇혀 있어도 배운 도리와 예의는 저버리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목민심서와 경세유포, 흠흠신서 등 오백여 권의 책을 편찬하는 등 학문을 집대성하였다.
가녀린 줄기와 은은한 향은 꺾이지 않는 학자의 기개와 닮아 있었다.
다산에게 난은 희망이자 절개의 표징이며, 끝내 지켜야 할 가치였다.
법정 스님이 난에서 ‘비움’을 배웠다면, 다산은 ‘정절’을 닮은 것이리라. 하나는 버림으로 자유를 얻었고, 다른 하나는 붙듦으로 존재의 뜻을 지켰다.
서로 다른 길 같으나, 삶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두 개의 진실이다.
버릴 때 비로소 얻을 수 있고, 붙잡아야 할 것은 끝내 지켜야 한다.

활짝 핀 난

활짝 핀 난오늘도 난을 바라본다.
꽃대를 올리다가 시들기도 하고, 새로운 봉오리를 밀어 올리기도 한다.
스러짐과 돋아남을 거듭하는 난을 보고 있노라면 인생 또한 꺾임 속에서도 새 힘을 길러낼 수 있다는 용기를 일깨워주는 것이 아닐까. 말 없는 난 앞에 서면 두 스승의 목소리가 겹쳐 들려오는 듯하다.
“소유에 매이지 말라”, “희망을 저버리지 말라”는 가르침은 마치 은은한 향기처럼 번져 내 삶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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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대 작가 ndcho55@naver.com

강의 고향

[데일리안 = 데스크] 삶은 멈춤을 모른 채 흘러간다.
물도 산을 타고 들을 거치며 우리의 삶과 같이 쉼 없이 나아간다.
한 방울의 물은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모이고 흘러 거대한 강이 되어 마침내 바다에 닿는다.
시작이 어디인지 돌아보는 일은 곧 나의 근원을 찾아가는 일이 아닐까.

태백 바람의 언덕 정상 고랭지 배추밭에서 바라본 일출 ⓒ

태백 바람의 언덕 정상 고랭지 배추밭에서 바라본 일출 ⓒ여행 작가들과 함께 강의 발원지를 찾아 태백을 찾았다.
특히 삼수령은 남한강, 낙동강, 오십천이 갈라져 흘러가는 장엄한 분수령이다.
이곳에 떨어진 한 방울의 빗물은 남쪽으로 스며들면 낙동강이 되어 영남 내륙을 휘돌며 남해로 가고, 동쪽으로 굴러가면 오십천을 따라 곧장 동해로 달린다.
서쪽으로 방향을 잡은 물방울은 한강이 되어 수도 서울을 거쳐 서해에 몸을 풀어낸다.
똑같은 빗방울이지만 어느 길을 택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바다에 닿는다.

삼대강의 꼭짓점인 삼수봉 가는 길 안내문 ⓒ

삼대강의 꼭짓점인 삼수봉 가는 길 안내문 ⓒ삼수령 앞에 서자 인생의 갈림길이 떠올랐다.
순간의 작은 선택이 삶의 방향을 바꾸고, 마침내 전혀 다른 종착지에 다다른 것처럼, 젊은 날의 결단이 삼십여 년을 공직의 길로 이끌었다.
지금의 나는 한때의 머뭇거림, 헤매고 후회하던 길조차 달래고 치대며 살아온 결과가 아니겠는가. 물이 바위에 부딪히며 길을 낸다.
나 역시 그런 상처를 달래며 굽이쳐 온 것이다.
이제는 그 수고를 내려놓고, 잔잔하고 넓은 바다로 들어설 때가 되었음을 느낀다.

낙동강의 발원지인 황지연못 ⓒ

낙동강의 발원지인 황지연못 ⓒ황지연못은 낙동강의 발원지다.
시내 한복판 건물에 둘러싸인 세 개의 작은 연못에서 솟아나는 샘물은 보잘것없어 보인다.
이곳이 천리길을 이루는 낙동강의 발원지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 물줄기는 안동과 상주, 대구와 밀양을 거치며 점점 넓어지고 깊어져, 밭을 적시고 사람들의 삶을 지탱하는 젖줄이 된다.
영남의 넓은 농토를 푸르게 만들어온 역사가 이 작은 연못에서 비롯된 것이다.

황진연못 바로 옆 광장에서 축하공연 장면 ⓒ

황진연못 바로 옆 광장에서 축하공연 장면 ⓒ연못 앞에 서자 ‘작은 것의 위대함’이 선명해진다.
눈에 띄지 않는 시작이 결국 큰 흐름을 만든다.
초라한 출발일지라도 부끄럽지 않은 까닭은 그 안에 꾸준함이 있기 때문이다.
멈추지 않고 흐른다면 마침내 넓은 강으로 자라나 목마름을 축일 수 있다.
인생 또한 그러하다.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에서 생명이 자라나듯 사소한 마음 하나, 작은 선행 한 번이 먼 훗날 세상을 따뜻하게 물들이지 않는가. 황지연못은 속삭인다.
시작이 크지 않아도 괜찮다고, 흐르며 스스로 넓어진다고.

남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에서 솟아오르는 연못 ⓒ

남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에서 솟아오르는 연못 ⓒ검룡소는 남한강의 발원지다.
하루 칠천 톤의 차가운 물이 바위 틈새에서 멈추지 않고 박차고 나온다.
그 형상은 마치 검푸른 용이 몸을 틀며 하늘로 치솟으려는 듯하다.
푸른 이끼 낀 계곡은 신령스러운 분위기를 더한다.
지하 깊은 곳에서 용솟음치는 물은 연중 9도의 일정한 온도를 유지해 겨울에도 얼지 않고, 여름에는 시원해 많은 이들이 더위를 피해 찾아든다.
이 물은 충주와 원주, 여주를 지나 양평 두물머리에서 북한강과 만나 한강을 이루고, 서울을 관통하는 도시의 젖줄이 된다.
검룡소 앞에 서면 인생의 다른 얼굴이 겹쳐진다.
삶은 늘 제자리에 머무는 듯하지만, 깊은 내면에서 끊이지 않는 힘이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뜻하지 않은 시련이 찾아와도 수천 년 동안 솟는 샘처럼 격랑을 헤쳐나간다.
검룡소는 말한다.
삶의 가치는 출발의 크기보다 끝까지 용기를 잃지 않는 힘에 있다고. 잠시 주저앉아도 언젠가는 다시 흘러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검룡소에서 아래 계곡으로 흘러내리는 물 ⓒ

검룡소에서 아래 계곡으로 흘러내리는 물 ⓒ오늘의 젊은 세대도 이 교훈을 새겼으면 한다.
편안함에 길들여 작은 좌절에도 쉽게 주저앉는 모습이 안타깝다.
인생은 고요한 연못이 아니라 쉼 없이 솟구치는 샘물이다.
검룡소처럼 젊은이들도 내면의 힘을 믿고 도전해야 하지 않을까. 힘들고 버겁더라도 다시 일어서라. 노력하는 삶에는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

태백 바람의 언덕 고랭지 배추밭에서 바라본 일출 ⓒ

태백 바람의 언덕 고랭지 배추밭에서 바라본 일출 ⓒ태백에서 만난 강의 고향은 인생을 비춰주는 거울이었다.
물은 흔들리고 부딪히며 깨지기도 하지만 끝내 바다라는 품을 향해 쉼 없이 나아간다.
우리 또한 그러하다.
누구는 큰 강처럼 세상의 중심을 적시고, 어떤 이는 작은 시내처럼 이웃의 목마름을 달래며 살아간다.
크고 작음의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
삼수령은 선택의 무게를, 황지연못은 작은 시작의 가치를, 검룡소는 끊임없는 도약의 힘을 일깨워주었다.
이제 흐름의 끝자락에서 잔잔히 바다를 바라본다.
인생은 한 방울의 물처럼 겸허히 꿋꿋하게 흘러, 더 큰 품으로 나아가는 여정이 아닐까.

신천지

[데일리안 = 데스크] 삶은 종종 예고 없이 균형을 잃는다.
잘 걷던 발끝이 멈추고, 익숙하던 일상이 비틀린다.
마치 두 사람이 발을 묶고 달리는 경기처럼 한 사람이 멈추면 다른 한 사람도 멈춰야 한다.
늘 곁에 있어 당연했던 존재가 얼마나 많은 짐을 말없이 감당해 왔는지를 그제야 깨닫는다.

목발을 집고 걸어가는 아내 ⓒ

목발을 집고 걸어가는 아내 ⓒ“건강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축복이다.
”라고 고대 그리스 극작가 ‘메난드로스’ 는 설파했다.
공감이 가는 말이다.
특히 건강을 잃어본 사람은 더욱 가슴 깊이 느끼지 않을까. 얼마 전 아내가 여행 중에 발등 골절로 깁스 하여 목발을 짚게 되었다.
손발이 자유롭지 않자 집안일은 모두 내 차지다.
지금까지 가사는 아내가 도맡아 하였다.
나는 기껏해야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거나 설거지를 가끔 도와주는 것으로 할 일을 다 했다는 듯이 목에 힘을 주었다.
베이비붐 세대에 태어난 남편들은 대부분 그러할 것이라 자위해 본다.
요즈음 젊은이들이 보면 꼰대들의 원시시대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고 하지 않을까.

아내의 발에 깁스를 한 모습 ⓒ

아내의 발에 깁스를 한 모습 ⓒ아내는 골절과 유난히 인연이 깊다.
애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 새해 첫날 강화도 마니산에 간 적이 있었다.
붉게 떠오르는 태양의 정기를 받으며 마음을 다잡기 위해 그 엄한 추위에 온 가족을 이끌고 새벽 산행을 감행했다.
나의 이런 마음을 모르는 아들딸은 수많은 돌계단을 힘겹게 오르며 얼마나 황당했을까. 애석하게도 하늘의 빛마저 구름의 커튼 뒤에 숨어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허무한 마음으로 눈이 얼어붙어 번들거리는 계단을 내려오다 아내가 미끄러져 팔에 골절을 입었다.
몇 년 지난 후 아파트 계단에서 또 넘어져 발목 골절로 한동안 고생을 했다.
그때마다 장모님이 올라와서 식사나 집안일을 챙겨 주시니 나는 아내의 골절로 인한 불편함을 별로 느끼지 못했다.

아내 대신 부엌에서 요리하는 작가 ⓒ

아내 대신 부엌에서 요리하는 작가 ⓒ골절로 목발을 짚게 되자 무관심했던 식사 준비나 집 안 청소도 온전히 내 몫이 되었다.
몸이 불편해지자 젊었을 때와는 사정이 판이했다.
목발을 오래 짚으니 겨드랑이가 아프고 손에 물집이 생겨 휠체어를 빌렸다.
하루 세 끼 식사가 가장 큰 문제였다.
아침을 먹고 나면 곧바로 점심은 무엇으로 때울까 머리가 복잡하다.
아내의 코치를 받아가며 요리하여 식사한 후 설거지하면 또 저녁 시간이다.
세끼가 왜 그리도 자주 오는지. 식사 준비하고 뒷정리하면 하루가 다 간다.
나의 앞길에 고단함을 요구하는 신천지가 훤히 펼쳐진 것이다.
외부약속이 있을 때는 식사를 챙겨 놓고 나가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
문학단체에서 1박 2일 행사가 있어 집을 비울 때는 애들 이모를 모셔놓고 다녀와야 했다.

부엌에서 요리하는 작가 ⓒ

부엌에서 요리하는 작가 ⓒ제일 간단하다는 김치찌개나 된장찌개 하나 끓이는 것도 만만찮다.
된장과 고춧가루가 어디에 있는지 냉장고와 주방 서랍을 오가며 몇 번 열어야 겨우 찾는다.
식탁 앞에서 목발을 짚고 지켜보던 아내는 “그동안 너무 포시랍게 키운 결과다”라며 면박주는 것을 놓치지 않는다.
수많은 손길이 오고 간 뒤에야 비로소 한 접시의 반찬이 꽃처럼 피어난다.
맛도 아내가 할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손맛이 다르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아내가 채소를 뚝딱뚝딱 썰고 양념한 후 냄비에 넣고 끓이면 맛있는 요리가 식탁에 올라왔었다.
“오늘 저녁에는 무엇을 먹을까”라고 물어보면 나는 “아무거나”라고 무관심하게 이야기하기가 일쑤였다.
그래도 밥상 앞에 앉으면 맛있는 저녁상이 준비된다.
여자들은 요리의 마술사임이 분명해 보인다.
매번 차리는 밥상이 적지 않은 고민 끝에 나오는 정성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 만하다.

손녀는 할머니 휠체어를 밀고, 손자는 목발을 들고 가는 모습 ⓒ

손녀는 할머니 휠체어를 밀고, 손자는 목발을 들고 가는 모습 ⓒ매주 병원에 들르다 조금 지나자 2주에 한 번 오란다.
차도가 있는 모양이다.
한 달가량 지나 병원에 들렀더니 많이 좋아졌다며 깁스를 풀고 목발 없이 살살 걸어도 된다고 한다.
그동안 고생스럽고 우울했던 기분은 일순간에 하늘로 튀어 오르며 불꽃처럼 환희가 터진다.
마음이 홀가분해지면서 또 다른 신천지가 눈 앞에 펼쳐지는 것 같다.
이제부터는 집안일에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활개 치며 나다닐 수 있다니 꿈만 같다.
그동안의 주부 노릇이 몸에 익어서 그런 가. 한 달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났지만 그렇게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2주 후에 다시 병원에 둘렀더니 뼈가 잘 붙어 달리기나 심한 운동 아니고는 일상생활은 마음대로 해도 괜찮다고 한다.
어깨에 짊어지고 있던 멍에가 벗겨지듯 홀가분하다.

깁스를 풀고 다시 부엌에서 요리하는 아내 ⓒ

깁스를 풀고 다시 부엌에서 요리하는 아내 ⓒ드디어 앞치마를 벗었다.
걸음걸이가 조금은 어색하지만, 목발을 던져 버린 아내는 내가 서 있던 싱크대 앞에 자리하자 가정이 안정을 찾은 것 같다.
그 위치가 그렇게 중요하고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록 자리를 아내에게 물려주었지만, 옆에서 보조자의 역할을 게을리하지 않으리라. 이제 집안일을 혼자 부담하게 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아내가 활달하지 못하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내가 짊어져야 했다.
‘부부는 이인삼각의 경기와 같다’ 라는 말을 실감했다.
호흡을 맞추고, 넘어져도 함께 일어나서 균형과 배려로 걸어가는 관계가 아닐까. 칠순을 앞둔 나이에 발등 골절이었을 망정이지 더 큰 부상이었으면 어찌 되었을까 생각하면 아찔하다.
이 정도에서 수습된 것도 큰 행운일 것이다.

봉골레파스타를 만들고 있는 작가 ⓒ

봉골레파스타를 만들고 있는 작가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내가 서 있는 자리가 달라지니 모든 것이 새롭게 보였다.
부엌의 좁은 공간은 인내와 사랑이 깃든 성소가 되었고, 밥상 위의 한 끼는 말없는 연대의 시가 되었다.
아내의 회복과 함께 내가 만난 건, 단순한 일상의 복원이 아니라, 이전과는 다른 삶의 시선, 그리고 부부라는 신천지의 재발견이었다.
이제 나는 안다, 그 신천지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 작은 삶의 틈새 속에 숨어 있었다는 것을.

별빛 같은 여름

[데일리안 = 데스크] 평온하다 못해 적막하던 일상에 잔잔한 파문이 일었다.
딸과 손주들이 여름방학을 맞아 라오스에서 잠시 돌아왔다.
집안의 공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오래 잠들어 있던 집이 기지개를 켜듯, 부엌은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올여름은 그렇게 별처럼 반짝이며 다가왔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기뻐하는 손주 ⓒ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기뻐하는 손주 ⓒ귀국한다는 소식은 긴 겨울 뒤에 찾아온 봄의 전령 같았다.
한 달 동안 우리 집은 사랑이 머무는 생기 찬 풀밭이 될 것이다.
아내의 얼굴에는 기대와 설렘이 묻어났고 집안일을 챙기는 발걸음이 분주해졌다.
날짜가 가까워지자 냉장고는 손주들의 먹을거리로 만삭을 앞둔 어미처럼 불룩해졌다.
청소기도 오랜만에 집 안 구석구석을 돌며 먼지를 털어냈다.
어느 날 대문 앞에는 쿠팡에서 날아온 물품 봉지들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라 살펴보니 딸이 사용할 물건을 미리 주문한 것이란다.

딸이 사용하기 위해 주문한 물품 봉지 ⓒ

딸이 사용하기 위해 주문한 물품 봉지 ⓒ공항으로 마중 나가는 발걸음은 가볍고 조급하기만 하다.
시계를 들여다보는 마음은 이미 활주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
한 시간이나 먼저 도착했지만, 늦게 나온 수화물 때문에 기다림은 메마른 땅이 빗방울을 고대하듯 길게만 느껴졌다.
게이트를 통과한 손자와 손녀가 ‘할부지’ 하며 쏜살같이 달려왔다.
뜨거운 포옹 속에서 지난 반년의 그리움이 단숨에 녹아내렸다.
딸과는 한참을 기다려야 얼싸안을 수 있었다.
집에 들어오자 풀어진 여행 가방의 물품들이 거실과 방을 점령했다.
아내와 둘만 지내던 집은 작은 기차역 대합실같이 북적였다.
아이들의 웃음과 재잘거림으로 뒤섞인 집안은 마른 가지에 새순이 돋듯 생기로 가득 찼다.

조개 잡으러 갯벌로 나가는 딸과 손주 ⓒ

조개 잡으러 갯벌로 나가는 딸과 손주 ⓒ불볕더위가 연일 계속되던 어느 날, 딸이 제안했다.
“아빠, 우리 조개 잡으러 가요, 어릴 때 태안에 갔던 것처럼.” 그 한마디에 추억의 서랍이 열렸다.
아침 일찍 영종도를 지나 무의도 하나개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조개잡이 체험장에 도착하니 첫 손님이었다.
장화와 호미, 장갑과 조개 담는 망을 건네받아 갯벌로 나섰다.
물 빠진 갯벌의 끝없이 펼쳐진 모습에 환호성이 터졌다.
한참을 걸어 나가 호미로 뻘을 뒤집어 드러난 물구멍으로 소금을 넣자 보글보글 거품이 일면서 키조개가 슬그머니 고개를 내민다.
순간 재빨리 손으로 잡는다.
아이들은 신기한 듯 종종걸음으로 뛰어다니며 갯벌을 헤집는다.
딸은 어린 시절 나와 함께 조개 잡던 기억이 떠오르는지 함박웃음으로 손주들보다 더 신났다.
하지만 불볕더위와 질퍽한 갯벌은 만만치 않았다.
한 시간을 겨우 지났을까. 여름 볕에 시든 잎사귀처럼 축 늘어져 손을 들고 밀려났다.
체험장 아주머니는 우리가 잡은 조개가 적다며 어제 자신이 잡아둔 것을 보태준다.
친절은 바닷바람처럼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
봉글레파스타를 만들만큼의 양이 될 것 같아 고맙고 흐뭇하다.

갯벌 구멍에 소금을 뿌리고 조개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손주들 ⓒ

갯벌 구멍에 소금을 뿌리고 조개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손주들 ⓒ며칠 뒤 한국민속촌을 찾았다.
세월의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이곳에 섰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시절 대구에서 온 친구 가족들과 함께 왔던 기억이 떠오른다.
시골 외곽이었던 민속촌이 지금은 도시 한가운데에 더 널찍이 자리 잡은 것처럼 새롭다.
손주들은 거리공연이나 사물놀이에 환호하며 손뼉을 친다.
나는 짐꾼인 양 반소매와 반바지 차림으로 간식 보따리를 들고 손주들의 재잘거림을 따라다녔다.
불볕더위의 기세에 눌려 그늘이나 카페에 앉아 쉬기를 반복하며 공연 시간을 기다렸다.
더위가 한풀 꺾기는 해 질 녘에야 천천히 걸었다.
땀은 등줄기를 타고 흘렀지만, 전통가옥 사이를 뛰어다니며 즐거워하는 손주들의 모습은 옛날 내 아이들이 놀던 장면을 그대로 불러왔다.
딸과 같은 나이였을 때 아들딸을 데리고 왔었는데 오늘은 한 세대가 지나서야 찾아온 것이다.
어쩌면 딸도 아이들에게 아름다웠던 추억을 물려주고 싶어 다시 이곳을 찾은 것은 아닐는지.

민속촌에서 농악놀이를 하는 공연단 ⓒ

민속촌에서 농악놀이를 하는 공연단 ⓒ한 달이라는 시간은 물 빠지는 갯벌같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손주들과 함께하는 나날은 마치 해변의 물결 같았다.
아침이면 아이들이 파도처럼 밀려와 하루를 요란하게 흔들고, 밤이면 고요히 물러난다.
하루하루가 분주했지만, 기쁨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이들의 웃음소리는 집안의 오래된 공기를 환기하기에 충분했다.
나는 깨달았다, 나이 듦은 몸이 무거워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더 많은 이야기를 품게 되는 일임을. 그 속에는 손주들의 작은 손길, 이마에 맺힌 땀방울, 바다의 짠 내음, 민속촌의 박수 소리가 차곡차곡 쌓여 갔다.
무더위에 지친 나의 여름은 그렇게 손주들과 찬란하게 지나갔다.

야간에 공연을 관람하는 방문객 ⓒ

야간에 공연을 관람하는 방문객 ⓒ거실과 방을 가득 메웠던 장난감과 여행 가방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이내 물러간 한여름의 뜨거운 기억만이 남았다.
재잘거림이 사라진 자리에 고요가 감돌았지만, 귀를 기울이면 저편에서 아이들의 웃음이 흩어져 오는 것 같다.
전화기 너머 라오스에서 들려오는 “할부지 보고 싶어요” 하는 목소리가 내 마음을 오래 붙든다.
한없이 멀리 날아간 것 같은데 지척이다.
날씨가 추워지면 따뜻한 그곳으로 달려가리라. 나는 안다, 이별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만남을 준비하는 잠시의 쉼표임을.

갯벌에서 누나를 꼭 껴안고 좋아하는 손자 ⓒ

갯벌에서 누나를 꼭 껴안고 좋아하는 손자 ⓒ무더웠던 여름이었지만, 생기발랄한 아이들의 재잘거림으로 더위를 느끼지 못했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니 유난히 밝은 별 하나가 시선을 붙든다.
라오스에서 “할부지” 하며 속삭이는 손주의 목소리가 그 별빛에 실려 오는 듯하다.
계절이 한 번 더 바뀌면 다시 아이들 곁에 서리라. 그때까지 오늘의 추억은 별빛처럼 내 가슴에 반짝이며 머무를 것이다.

날갯짓을 기다리며

[데일리안 = 데스크] 열매가 맺기까지의 과정은 기다림을 키우는 일이다.
블루베리 묘목을 심어 정성을 다해 돌보자 해가 갈수록 수확의 기쁨은 더 커졌다.
하지만 자연은 즐거움을 혼자만 누리게 두지 않았다.
뜻하지 않게 찾아온 날개 달린 손님과 다툼은 미처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길지 않은 승부였는데 올해는 그 싸움마저 멈췄다.
마냥 좋을 수만 없어 하염없이 하늘만 바라본다.

흑진주처럼 까맣게 익은 블루베리 ⓒ

흑진주처럼 까맣게 익은 블루베리 ⓒ매년 칠월 초순쯤이면 농원의 블루베리 밭은 작은 보석들이 박힌 듯 반짝인다.
햇살을 머금은 푸른 열매들이 가지마다 익어가고,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절로 흐뭇해진다.
블루베리를 심은 지 어느덧 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 십여 그루를 정성 들여 거름 주고 가지를 쳤다.
봄마다 꽃을 지켜보며 어느덧 수확의 기쁨도 맛보게 되었다.
흑진주처럼 까만 열매가 입안에서 톡 터졌을 때의 새콤달콤한 맛을 잊지 못해 땀 흘리며 일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블루베리와 복분자, 아로니아가 자라는 조그만 농원 ⓒ

블루베리와 복분자, 아로니아가 자라는 조그만 농원 ⓒ몇 해 동안은 수확량이 괜찮아 지인들에게 나누기도 했다.
어린 손주들이 입안을 남보랏빛으로 물들이며 맛있게 먹는 모습은 큰 기쁨이었기에 나는 크고 잘 익은 열매는 남겨두고 못생기고 덜 익은 결실만 겨우 맛볼 뿐이다.
자식 입에 음식 들어가는 것이 제일 보기 좋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제는 자식을 넘어 손주까지 생각이 나서 제대로 된 과실을 먹지 못하니 부모 된 심정이 다 그런다 보다.
갓 따온 열매를 맛본 지인들은 "이렇게 신선하고 상큼한 블루베리는 처음이다.
"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뿌듯한 자부심을 느낀다.
내년에는 땀을 좀 더 흘리더라도 신이 내린 선물을 여러 사람이 맛볼 수 있게 하리라.

잘 익은 블루베리 ⓒ

잘 익은 블루베리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새들이 제일 먼저 시샘을 냈다.
어느 해부터 인가 하나둘씩 날아들기 시작했다.
처음엔 몇 마리 정도였고, 큰 피해는 아니었다.
수확하는 재미가 한창일 때 상황이 달라졌다.
날마다 새떼가 몰려들더니, 나보다 먼저 맛보기 시작했다.
주말 농사꾼이기에 일주일에 한 번씩 들리곤 하지만, 수시로 들락거리는 새들을 당할 수가 없다.
첫 번째 수확한 후 잔뜩 기대하고 다음 주에 가면 가지마다 까맣게 익었을 블루베리는 온데간데없다.
새들의 부리 자국만 남아 있었다.
야속하여 이마가 절로 찌푸려진다.
애써 농사 지은 주인의 몫은 아무것도 남겨두지 않고 잘 익은 열매만 정확히 골라 먹는 것 보면 놀라웠다.
그들의 눈과 부리, 후각은 나보다 한 수 위였다.

농원에서 보이는 전경 ⓒ

농원에서 보이는 전경 ⓒ몇 해를 허탕 치고 나서야 블루베리를 키우는 이웃집에 자문해 ‘새 그물’을 생각하게 되었다.
블루베리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다.
촘촘한 새 방지용 그물을 설치하자 효과는 확실했다.
열매는 온전히 내 손에 들어왔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장면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새 한 마리가 그물에 걸려 날갯짓도 하지 못한 채 숨져 있었다.
다음 주에도 한 마리, 그 다음엔 두 마리가 그물에 머리를 축 늘어뜨린 채 며칠을 지난 모습으로 걸려있었다.
블루베리를 지켜낸 대신, 새들의 생명을 빼앗은 꼴이었다.
먹먹한 마음으로 수확의 기쁨보다 ‘이렇게까지 해야 했나’ 하는 죄책감이 앞섰다.
어릴 때 집에서 키우던 병아리가 먹이를 찾아 나다니다 덫에 걸린 것 같아 마음 한 켠에 핏빛 멍이 들었다.

새까맣게 잘 익은 블루베리가 열린 가지 ⓒ

새까맣게 잘 익은 블루베리가 열린 가지 ⓒ며칠 전 농원을 찾으니 블루베리 나무가 까맣게 익은 열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축 늘어뜨린 채 나를 맞이한다.
환희와 함께 손놀림이 빨라진다.
아직 새들이 열매가 익은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일주일이 지난 다음 반신반의하며 찾았는데도 눈치채지 못했는지 새까만 열매가 주렁주렁하였다.
수확을 시작한 지 몇 주가 지났는데 새가 다녀간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이상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젠 이들이 내 밭의 열매를 포기했나’, 아니면 ‘자기들 사이에 위험한 곳이니 가지 말라는 알림장이 돌았나’, ‘더 맛난 먹이감이 있는 곳을 찾아갔나’ 하는 생각이 들쑥날쑥하다.
지난해 까지만 해도 수확하는 도중에 저쪽에는 새들이 날아들어 흑진주를 낚아채서 큰소리로 야단을 쳤었다.
열매는 풍성한데, 예전처럼 이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하늘은 잔잔하고 숲도 조용하다.
낯선 적막감으로 쓸쓸하기까지 하니 수확이 신명 나지 않는다.

블루베리를 수확한 농원의 풍경 ⓒ

블루베리를 수확한 농원의 풍경 ⓒ여러 가지 생각이 스친다.
온난화 등 기후 변화 때문일까. 병해충 증가와 개회 시기 변화로 꿀벌의 집단 폐사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하지 않던가. 철새도 도래 시기가 변화하고 북방계 조류는 남하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나의 밭에 들리던 새들도 날씨가 너무 더워 오지 않았거나 시원한 곳으로 옮겨 간 건 아닐까. 평년보다 빠르게 피어난 꽃, 강수량의 변화 등이 새들의 이동 경로에 영향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태어나서 제일 뜨거운 여름을 겪는 듯한 요즈음 지구 온난화에 대한 심각성이 내 곁에 와 있음이 느껴진다.
어떤 연유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새의 피해 없이 얻은 풍성한 수확을 앞에 두고도 께름칙한 마음에 웃을 수만은 없다.

수확한 블루베리 ⓒ

수확한 블루베리 ⓒ올해도 블루베리는 어김없이 익었지만, 가지 사이로 날아들며 제 몫을 챙겨가던 생명의 움직임은 사라졌다.
열매를 지키려 애쓴 손길과 생존을 위해 날아든 이들과의 갈등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적막한 분위기만 감돈다.
내년에는 새들의 날갯짓을 기다려봐도 될까. 그땐 조금 덜 가지더라도 그들을 막지 않으리. 반갑게 다시 마주칠 날을 기다리며 방금 따낸 새까만 열매 한 줌을 입안에 넣는다.
새콤달콤함 너머로 그리움 한 점이 툭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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