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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 첫 번째 : 노동하는 인간, 놀이하는 인간
퇴직 뒤 휴식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
퇴직과 정년, 은퇴의 강을 건너면 보통 짧은 휴식기를 갖는다.
그림 같은 풍광을 눈에 넣으려 여행을 떠나고, 여유 있는 아침을 맞이하고, 사랑하는 이와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하지만 여가와 휴식의 유효 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반복될수록 흥미가 줄고 한계 효용이 체감한다.
자장면을 처음 먹을 땐 맛있지만, 그릇 수가 늘어날수록 맛이 덜한 이치와 같다.
그리고 이 시기가 지나면 불안과 우울, 공허감 같은 감정이 밀려온다.
긴 세월 동안 일에 중독된 사람들이 마주하는, 일종의 금단 현상이다.
어느 날 문득 당신은 급한 일정에 쫓겨 정신없이 바쁘던 사무실과 동료들과 차를 마시며 싱거운 농담을 주고받던 시절이 그리워질지 모른다.
마침내 노동의 긴 터널에서
벗어났는데 다시 일터를
그리워하다니, 어찌 된 일일까.
일중독자 만족시키는 건 오직 ‘일’
이렇게 말하면 손사래를 칠지 모르지만, 지금 중장년층의 대다수는 어린 시절부터 노동의 숭고함과 농업적 근면성을 내면화한 일중독자(workaholic)다.
휴식이 일중독의 치료제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일중독자에게 휴식은 해독제가 아니라 촉진제다.
이들이 정신적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건 오직 일뿐이다.
일
이외에 다른 출구를 알지 못한다.
일(work)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생의 반환점을 지난 이들의 행보는 크게 두 ‘모둠’으로 나뉜다.
일에서 일로 가는 경우와 일에서 놀이로 가는 경우다.
전자가 후자보다 훨씬 많다.
이 중에는 어쩔 수 없이 돈을 벌어야 하는 사람도 있지만, 살림살이가 넉넉한 사람도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여기저기
기웃거려 봤지만, 일하는 게
제일 마음 편하다고 말한다.
회전문을 통과하듯 일에서 일로 회귀하는 사람들의 정체성은 호모 라보란스(Homo Laborans), 즉 노동하는 인간이다.
이들의 무의식 속 자아는 매서운 눈초리로 스스로를 감시하며 주문을 외운다.
열심히 살자. 삶은 놀이가 아니다.
산업화 세대와 베이비붐 세대의 인생 사전에는 놀이가 없다.
도화지의
남은 여백을 놀이로 채우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열심히 살자’에서 ‘즐겁게 살자’로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한국인의 언어와 삶을 들여다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하는 표현 중 하나가 ‘열심히 살자!’라는 말이다.
‘열심히 일하자!’라는 말은 수긍이 가지만, ‘열심히’와 ‘삶’은 서로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열심히 살자는 말을 어색하게 느끼지 않는다.
어째서 우리는 삶을
치열하게 살아내야 할 ‘과제’로 인식하는 것일까.
그런데 드물지만, 일에서 놀이로 전향한 사람들이 있다.
놀이의 가치를 으뜸으로 삼고 살아가는,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즉 놀이하는 인간이다.
돈, 성공, 명예를 우선시하는 통념을 따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종의 돌연변이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아래 그림은 후반부에 접어든 100명을 대상으로 돈+건강의
평균값과 놀이 점수를
산출한 것이다.
파란색 막대가 돈과 건강의 평균값, 빨간색 선이 놀이 점수다.

전체적으로 놀이 점수가 돈+건강의 평균값보다 낮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림 중앙에 봉우리처럼 우뚝 솟은 곳이 보일 것이다.
돈도 많지 않고 건강도 썩 좋진 않지만, 놀이 점수가 상대적으로 높은 사람들. 이들이 호모 루덴스다.
놀이하는 인간은 여유가 많을 걸로 생각하기 쉬운데, 꼭 그렇진 않다.
경제적으로 풍족한 사람도
있지만,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사람도 있다.
재밌으면 놀이, 재미 없으면 일
이들의 좌우명은 ‘재미있게 놀자!’다.
왜 일이 아니고 놀이일까. 일이 지닌 복잡성 때문이다.
일은 즐거움도 주지만 괴로움도 동반한다.
우리는 일하기 위해 태어난 것도 아니고, 죽을 때까지 일에 파묻혀 살아야 할 운명도 아니다.
삶을 놀이로 채울 순 없지만, 일로 채울 이유도 없다.
어린 시절이
아름다운 장면으로 남아
있는 건 놀이가 함께했기 때문이다.
먹고 살기도 힘든 세상에 한가하게 놀이 타령인가, 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은 반대다.
힘들고 어려운 환경일수록 놀이가 중요하다.
고단한 삶에서 놀이만큼 좋은 청량제가 또 있겠는가. 놀이는 쾌락을 좇는 유희가 아니라 활력을 재충전하는 과정이다.
노동만 있고 놀이가 없는 삶은 사막처럼
건조하다.
인간의
정신을 황폐하게 만든다.
놀이란 재미와 즐거움이 수반되는 행위를 뜻한다.
놀이는 인간을 웃게 한다.
하면 즐겁고 그래서 계속하고 싶은 그 무엇이다.
재미의 관점에서 일을 나누면, 재미있는 일과 재미없는 일로 구분할 수 있다.
재미있는 일이 놀이고, 재미없는 일이 노동이다.
나에게 맞는 놀이를 찾으려면 무엇이 나를
즐겁게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놀이를 생활 속에 어떻게 녹이는가에 따라 삶의 모습과 향기는 달라질 것이다.
우리는 노동하는 인간에서 놀이하는 인간으로 변신할 수 있을까. 호모 루덴스는 말한다.
인생 1막이 의자 빼앗기, 사다리 오르기 같은 살벌한 생존 게임이었다면 인생 2막은 즐겁게 살기, 재미있게 놀기 같은 신명 난 마당극으로 채워야 한다고. 좋은 삶을 위한 인생 후반부의 구호는 ‘열심히 살자!’가 아니라 ‘즐겁게
살자!’가 되어야 한다고.
호모 라보란스가 가득한 세상은 비극이라고.
덧) 정년과 은퇴 이후의 삶은 어떤 일로 채워야 할까요. 좋은 삶(good life)의 정의에 부합하는 일에 시간을 쓸수록 삶은 풍성해질 겁니다.
다음 회차는 생애 후반부의 ‘일’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문진수의 당신이 몰랐던 진짜 은퇴 이야기는?
문진수 작가는 학원 강사, 대기업 간부, 보험 판매원, 중소기업 임원, 사회적기업 대표, 비영리 재단 활동가, 공공기관 상임이사 등 다양한 섹터를 넘나들며 살아온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입니다.
‘은퇴의 정석’ ‘은퇴 절벽’을 출간했고, 정년을 앞둔 분들을 대상으로 생애 설계에 대한 강연도 하고 있습니다.
돈이 선하게 쓰이는 세상을 탐구하는 사회적금융연구원 대표이기도 합니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인생 주기(life cycle)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정년과 은퇴, 노후에 대한 궁금증이나 고민이 있는 분은 ‘당신이 몰랐던 진짜 은퇴 이야기’의 문을 두드려 주세요. 한겨레 이메일(ggum@hani.co.kr)로 질문을 보내 채택되시면, 문진수 작가가 격주 월요일마다 생애 후반부 ‘좋은 삶’을 살아가기 위한 소담한 지혜를 나누어 드릴 예정입니다.
문진수 | 작가·사회적금융연구원 대표
“사진작가들이 해외로 안 가는 이유” 2025 단풍 명작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 사진 작가들의 실력
사진
한 장이 계절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을까요? 2025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 공모전에 올라온 작품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더 이상 질문이 아니라 사실이라는 듯 마음에 와닿습니다.
전문
사진가들의
렌즈를 거친 단풍 사진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장소도 전혀 새로운 풍경으로 바뀌고, 잠시 스쳐 지나갔던 길까지 다시 걸어보고 싶게 만듭니다.
2025년
가을, 전국
곳곳의 단풍 명소를 기록한 수백 장의 작품 중에서도 유독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베스트 컷들이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그 사진들이 촬영된 실제 장소를 중심으로, 가을의 깊이를 가장 아름답게 보여준 네 곳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가림성 느티나무
-충남
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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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림성 느티나두 / 사진=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오정균
부여
가림성 정상에
서 있는 이 느티나무는 수백 년 동안 그 자리를 지키며 이곳의 사계절을 바라봐 왔다고 합니다.
특히 가을이면 붉고 황금빛으로 물든 잎사귀가 일몰빛과 겹치며 마치 한 폭의 회화 같은 장면을 만들어냅니다.
‘한국
가을 하늘
아래 가장 아름다운 실루엣’이라고 부를 만큼 인기가 높고, 실제로 이번 공모전에 당첨되었습니다.
산 아래 탁 트인 들판과 강줄기, 낮은 구릉들이 이어지는 부여의 지형 덕분에 빛이 길게 퍼지며 단풍의 색감을 더 깊게 잡아준다는 점도 매력입니다.
늦가을에는
강한
서쪽 빛이 느티나무의 굵은 나무결과 뿌리를 선명하게 비춰 초보자도 멋진 단풍 사진을 담기 좋은 곳입니다.
◆주소: 충청남도 부여군 성흥로97번길 167 (임천면)
선암사
-전남
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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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 / 사진=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김흥열
순천
선암사는
가을이 되면 절 전체가 부드러운 금빛으로 물들며 고즈넉한 분위기를 극대화합니다.
특히 이 사진처럼 무지개다리의 아치 너머로 보이는 승선루는 가을 색감과 절의 고즈넉함이 그대로 겹쳐지며 클래식한 한국 가을 단풍 사진을 완성해요.
바위와
다리, 물길,
고목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구도 덕분에 사진작가들이 가장 사랑하는 단풍 촬영 명소이기도 합니다.
선암사 단풍은 원색적인 붉은 단풍보다 다양한 황·갈색 계열이 차분하게 섞여 있어, 다른 지역과는 다른 깊이와 온기가 느껴집니다.
◆주소: 전남 순천시 승주읍 선암사길 450
주천생태공원
-전북
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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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천생태공원 / 사진=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이정희
전북
진안의 주천생태공원은
독특한 지형 덕분에 드론 촬영 명소로 유명한데요. 사진에서 보듯이 둥근 호수의 일부가 하트 형태로 드러나는 구조라, 가을의 색감이 한눈에 담긴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주변
숲은 초록·노랑·주황이
고르게 섞여 있어 은은하게 번지는 단풍의 농도를 그대로 담아낼 수 있고, 물 안개가 발생하는 새벽 시간대에는 더욱 몽환적인 분위기가 완성됩니다.
포토코리아에서도
매년 새로운 구도로 재해석되는 장소로, 단풍 사진을 좋아하는 작가들이 끊임없이 방문하는 곳입니다.
호수 주변을 따라 걸으며 내려다보는 시점과 드론으로 올려다본 시점이 완전히 달라, 한 공간에서 전혀 다른 두 개의 가을 풍경을 즐길 수 있다는 점도 매력입니다.
◆주소: 전북 진안군 주천면 신양리 634-2
정취암
-경남
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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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취암 / 사진=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김대일
경남
산청의 정취암은
가을이면 절벽 위 암자와 단풍 숲이 함께 어우러져 깊은 사찰 특유의 정적과 가을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습니다.
절벽길을 따라 이어진 오솔길은 햇살이로 떨어지며 나무 사이로 부서져 내리고, 그 빛을 받아 단풍은 더욱 따뜻한 색으로 빛납니다.
특히
이 사진처럼
암자 뒤편으로 넘어가는 여명은 건물의 곡선과 단풍의 결을 부드럽게 감싸며 한국 사찰 풍경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색감의 대비가 뚜렷하게 살아나 사진가들 도차 산청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을 구도라고 부르는 명소입니다.
◆주소: 경남 산청군 신등면 둔철산로 675-87
무기력에서 벗어나, 마음 가는 대로 살아가려면
[당신의 오늘이 안녕하길]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치열하게 일을 끝내고 주말이 되면 한없이 늘어져 있고 싶습니다.
예전에는 하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런 나는 보이지 않습니다.
생각을 멈추고 멍하니 쇼츠를 보다 보면 간절했던 주말은 어느새 지나갑니다.
충동이 이끄는 대로 시간을 보냈지만, 뭔가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합니다.
그 한구석을 자세히 살펴보면 더 ‘활기를 갖고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은 나’가 있습니다.
그런 ‘나’가 이건 아니라고
변화가 필요하다고 저 멀리서
외칩니다.
알지만 막상 행동하려 하면 마음이 따라주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변화를 줄 수 있을까요?
이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작더라도 내 마음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힘입니다.
기분이 완벽히 준비되지 않아도, 불안이 남아 있어도, “나는 이 방향으로 가고 싶다”라고 자신에게 말하며
한
걸음 내딛는 것이죠.
예를 들어 가족이 소중하다고 느끼신다면, “요즘 바빠서 대화할 시간이 없어”라고 미루는 대신 오늘 단 한 줄의 문자라도 보내 안부를 물어보는 겁니다.
건강이 걱정된다면, 헬스장 등록부터 고민하기보다 “오늘은 10초만 걸어보자”라고 마음먹는 것도 좋습니다.
몸이 도저히 움직여지지 않을 때는 작은 생각이나 상상과 같은 마음의 행동을 해볼 수도 있습니다.
만약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내가 원하는 내 모습으로 행동할 때 내 마음은 어떨까요? 내가 원하는 내 모습일 때 내 감정, 기분, 느낌들에 머물러 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아주 작은 행동들을 떠올려 봅니다.
내 시선은 어디로 둬야 할지, 어떤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지, 초점을 어디에 두고 싶은지를 살펴봅니다.
그리고 그 작은 행동들 중에 할 수 있는 것을 하나씩 해봅니다.
그래도 행동이 일어나기 어려울 때는 잠시 그 순간에 머물러 어떤 것들이 가로 막는지 살펴보세요. 도저히 할 기분이 나지 않아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기분이 좋아야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좋은 기분에서 더 행동하기가 수월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기분을 우리가 마음대로 조절할 수는 없습니다.
좋은 기분이 와서 행동할 때까지 기다린다면 우린 수동적인 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사실은 행동이 기분을 이끌어줄 때가 더 많습니다.
혹은 행동을 가로막는 다른 내면의 목소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행동이 일어나지
않는 순간에 머물러 잠시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세요. 그 안에는 여러 가지 시끄러운 목소리들이 있습니다.
어떤 목소리는 “넌 이걸 해낼 능력이 없어.”라고 말하고, 또 어떤 목소리는 “완벽하게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날 비웃을 거야.”라고 말합니다.
“좋은 결과가 아니면 의미가 없어.”라고 말하는 목소리도 들립니다.
이 여러 가지 목소리들은 여러분들이 운전하는 삶이라는 버스에 탄 승객들입니다.
언제 태웠는지도 모를, 언제 내릴지도 모를 승객들이지요. 지난 시간 속에 부모님의 부담스러운 기대나 완벽주의에 대한
강박의 시간들이 이 승객들을 태우게 됩니다.
이 승객들이 하는 말이 신경 쓰일 수 있습니다.
이 시끄러운 승객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조용히 하라고 더 큰소리로 제압하거나 설득을 하면 어떨까요? 그런 방법을 써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목소리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자리를 잡고 있던 오래된 승객일 때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이 순간 한번 해보세요. 다음 문장을 마음 깊이 믿어보세요.
“나는 뭐든지 해낼 수 있어. 내가 부족해도 사람들이 비웃지는 않을 거야.”
그리고 마음속에 어떤 것이 떠오르는지 살펴보세요. 저 문장이 정말 온전히 믿어지고 원하는 행동을 할 수 있다면 그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부정적인 목소리들이 오래된 승객일 때는 그 승객이 반박하는 의심의 말들이 들릴 것입니다.
“정말 그럴까? 이걸 잘 해낼 수 있다고?”라면서요. 그 말들을 설득하기 위해 승객과 논쟁을 벌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논쟁을 벌일 동안, 우리는 운전석을 떠나서 버스의 핸들을 놓치게 됩니다.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없게 되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을 수 없게 됩니다.
승객이 떠들더라도 자기 나름대로 걱정이 돼서 하는 소리이니 그냥 자비롭게 허용해주세요. 그리고 여러분에게 중요한 방향이 어딘지 앞을 바라보고 지그시
핸들을 잡아보세요. 이를 통해 다시 핸들을 틀고 원하는 방향으로 액셀러레이터를 밟을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아무리 흔들리지 않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아도 원하는 목표 지점에 도착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또 다른 승객이 “넌 역시 안돼”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 말에 좌절감이 들고 더는 운전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원하는 목표 지점을 향해 다시 핸들을 틀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핸들을 원하는 방향으로 틀 때 방해하는 것은 없습니다.
끊임없이 원하는 방향을 보고, 핸들을 틀고, 액셀을 밟아 보세요. 이 작은 행동들이 모여서 도착 지점에서 돌아보면 여러분 삶의 여정이 의미 있게 다가올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다

[시정일보]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속담이 있다.
당연하다.
인과응보요 사필귀정이다.
드라마를 시청하다가 등장인물의 대사가 가슴에 박힌 적이 있다.
엄마가 딸의 대학 진학을 위해 부정을 저지를 때 “덕 쌓고 살아라, 덕 쌓고. 부모덕(德)도 고대로
업(業)도 고대로 (자식에게)
간다.”라는 대사였다.
그 대사의 울림이 커서 그 문장을 메모했다.
혹자는 당연한 일이라고 일침을 가한다.
콩 심은 데 콩 나지 팥 나겠는가, 팥 심은 데 팥 나지 콩 나겠는가 하고 말이다.
작금 자고 나면 폭죽 폭발하듯 사람이 사람이기를 거절한 사건 사고가 비일비재하다.
천륜(天倫)이 술 취한 듯 휘청거린다.
여기저기 효(孝)를 부르짖고
있으나 진정한 효를 찾는 것이
솔밭에서 바늘 찾기와 다름없다고 실소한다.
필자의 아버지는 천수답 농부였다.
산비탈 밭을 갈아 콩을 심고 고추를 심었다.
몇 마지기 논을 소를 몰아 농사지었다.
아버지는 동이 튼 새벽부터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는 저녁까지 논밭에서 소처럼 일했다.
가을걷이를 마치고 흰 눈이 산천을 덮는 겨울에도 아버지의 손은 쉬지
않고 일했다.
사랑방에
볏짚을 가득 들여놓고 새끼를 꼬고 삼태기를 삼고 빗자루며 멍석을 만들었다.
아버지는 매년 가을걷이할 때마다 풍년이라고 했다.
올망졸망 매달리는 자식들에게 배불리 먹고 무럭무럭 크라고 했다.
아버지는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다.
모내기 철에 비가 오지 않아서 논이 거북이 등처럼 쩍쩍 갈라져도 하늘을 우러르며 곧 비를 내려줄 것이라고 했다.
곡식이 알알이 여물어 갈 때 태풍이 몰아쳐 논바닥에 쓰러진 벼를 세울 때도 하늘이 하는 일이라며 웃음을 잃지 않았다.
한 해
농사를 마치고 곡식을 거두어들일
때면 어김없이 풍년이라고 하면서 아무 걱정 하지 말고 많이 먹으라고 하면서 자식들 기를 팍팍 세워 주었다.
아버지는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동네일을 외면하지 않았다.
동네에 일이 생기면 팔 걷고 달려갔다.
동네 사람들이 아버지가 만든 삼태기며 빗자루를 원할 때는 망설이지 않고 선뜻 내주었다.
필자는 어렸을 때 아버지가 겨우내 고생하여 만든 것을 동네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줄
때 아깝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하늘을 머리 삼고 사람과 사람 사이 덕을 베풀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에 시골 동네에 정류장이 있으면 마을버스가 들어올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당신 논을 정류장으로 내놓았다.
동네에 버스가 들어올 수 있도록 길을 넓힐 때 줄지어 선 아버지의 문전옥답이 뚝 잘려 길이 되었고 논 하나는 송두리째 버스 정류장이 되었다.
아버지는
동네에서 평생 잘살았으니 베푸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
자식들 앞날 잘되라고 적덕(積德)하는 것이라고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5년이 지났다.
동구 밖 선영에 누워계신 아버지, 마을버스가 들어오는 초입에서 오가는 마을버스를 보시면서 웃고 계실 것이다.
자식들은 선영에 올라 부모님을 뵐 때마다 부모님께서 주신 교훈을 되새긴다.
하늘을 거스르지 않고 형제간에 우애 있게 지내라고
한 유언을 공유한다.
아버지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자식들은 제각기 처소에서 아버지의 향기를 퍼뜨리고 있다.
부모의 언행심사가 자녀의 거울이라고 역설한다.
언어는 인격이라는 말을 버릇처럼 하고 있다.
혼자 있을 때 내뱉는 말조차 어딘가에 닿아 남아있다고 믿는다.
필자는 자녀에게 스스로 부끄럽지 않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라고 말하고 있다.
무엇인가 선택해야 할 갈림길이 있을
때면 옳은 쪽을 선택하라고
조언한다.
부주의한 말과 행동으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면 안 된다.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누웠을 때 다리를 쭉 뻗고 잘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한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을 계명으로 여기고 있다.
자녀를 위해 적덕하는 마음으로 콩을 심고 팥을 심는다.
훗날 필자가 심은 콩과 팥이 주렁주렁 열리면 자녀들이 수확하면서 콧노래를 부르기를 바란다.
우리는 느리게 걷자, 걷자, 걷자
추상회화가 얼마나 큰 감동을 줄 수 있을까요? 서사와 스토리를 모두 걸러내고 군더더기 없이 뼈대만 남기는 추상회화는 보는 이들에게 적극적인 상상과 동참을 요구하죠. 눈에 보이는 형태만으로는 보이지 않는 의도를 다 헤아릴 수 없으니까요. 오랜만에 마음을 울리는 추상회화를
만났습니다.
아모레퍼시픽미
관에서 내년 1월 25일까지 선보이는 미국 작가 마크 브래드포드(Mark Bradford)의 추상회화 앞에서 저는 한참을 머물렀지요. ‘명백한 운명’이라는 작품에는 이런 문장이 써 있더군요. “조니가 집을 삽니다(JOHNNY BUYS HOUSES).” 전단지에서 가져왔다는 이 문장은 취약 계층에게 주택을 사들이는 투기 자본의 현실을 보여줍니다.
미국이 토착민의 땅을 정복하던 행위를 연상시키지만 브래드포드의 작업에서 국경을 뛰어넘는 보편적인 슬픔을 이끌어냅니다.
그의 이야기는
우리의 현실과 다를 게 없습니다.

마크 브래드포드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출신 작가입니다.
미용사였던 홀어머니와 공동 숙소에서 생활했고, 미용실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으며, 예술을 꿈꾸기 힘들던 상황에서 예술가로 성장했습니다.
30대에 뒤늦게 캘리포니아 예술대학교에서 석사를 마친 그는 파마용
반투명 종이 ‘엔드페이퍼’를
자신의 고유한 재료로 활용합니다.
이번에도 그의 삶의 흔적과 빛나는 창의력이 공히 담긴 엔드페이퍼를 활용한 작품 ‘파랑’을 만날 수 있는데요. 엔드페이퍼와 파란색 스텐실, 흑백 신문지 등이 그려내는 지도는 단순한 지도가 아닙니다.
도시계획 시스템으로 구축된 지형은 결국 빈부 격차, 권력, 구조적인 불평등 등의 역사를 품습니다.
브래드포드는 추상화한 지도 위에 소외된 지역 공동체와 인간 존재에 대한 애정을 심어 새로운 풍경화를 만들어냅니다.
그의 작업을 왜 ‘사회적 추상화’라 부르는지 알겠더군요.

브래드포드의 ‘사회적 추상화’는 온 힘을 다해 적극적으로 발언합니다.
거리에서 수집한 전단지, 신문지 등 도시의 부산물이라 할 수 있는 흔한 재료를 겹겹이 쌓고, 긁어내고, 찢어내는 제작 방식은 회화의 표면을 매우 역동적으로 조직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가난한
흑인이자 성 소수자였던
브래드포드는 예술가이기 전에 사회의 불의를 몸소 겪으며 살았을 겁니다.
이번 전시를 위한 신작 ‘폭풍이 몰려온다’ 시리즈는 미국 역대 최악의 허리케인인 카트리나의 피해 복구 과정에서 드러난 소외된 삶과 함께 이 폭풍을 역사적 퀴어 인물의 삶과 병치해둡니다.
‘공기가 다 닳아 있었다’는 차별을 피해 이주한 흑인 600만 명의 대이주를 기차 시간표의 기록을 통해 보여주고요. 꿈틀꿈틀 움직이는 듯한 표면을 가진 그의 회화는 그보다 더 불안정하게 흔들려야 했던 소수자들의 역사를 대변합니다.


지난 9월 초 한국 미술계를 후끈 달구었던 키아프리즈(키아프와 프리즈) 기간에도 브래드포드는 가장 이슈가 됐죠. 세 점의 추상화로 구성된 작품 ‘오케이, 덴 아이 어폴로자이즈(Okay, Then I Apologize)’가 63억원에 팔리면서 한동안 정체된 최고가 기록을 다시 썼기 때문입니다.
그런 작가가 천진한
표정으로 페어장에 나타나 서성거리기도 했는데요. 이를 목격하고 보니 마크 브래드포드가 진정한 스타 작가인 이유는 예술의 형식과 내용 면에서 절묘하게 균형을 맞추었듯, 상업성과 예술성 사이에서도 자유롭기 때문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적어도 작가가 페어장에 모습을 드러내는 걸 겸연쩍어하는 것 같지 않은 모습에, 저는 이상하게도 그의 작업이 가진 진심에 더 신뢰가 생겼습니다.
전시는 브래드포드의 야심작이자 경험형 작품인 ‘떠오르다’로 시작합니다.
작업실 주변 거리에서 수집한 전단지, 광고 포스터, 신문지 등을 긴 띠 형태로 이어 붙여 전시장 바닥에 깔아두었습니다.
관람객은 작품을 볼 뿐 아니라 그 위를 걸을 수 있고, 이들의 발걸음에
따라 이 회화적 조각의 표면은
조금씩 변형됩니다.
어쩌면 당연한 변화, 서로 모르는 이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변화, 한 걸음 한 걸음으로 조금씩 ‘떠오르는’ 변화. 바로 이것이 전시 제목을 ‘Keep Walking’으로 정한 작가가 우리에게 작품 위를 직접 걸을 수 있도록 한 이유가 아닐까요. 여담이지만, 저는 이 작업이 전시장의 맨 처음이 아니라 마지막에 있어도 좋았겠다 싶더군요. 브래드포드의 서사와 진정성을 경험한 후라면, 작품 위를 걸을 때의 느낌이 완전히 달랐을 겁니다.
이해와 공감이 발걸음을 더욱 활기차게 만들었을 테니까요.



늙어서 돈 걱정 없이 사는 사람들의 공통점 4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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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 돈 걱정 없이 사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큰돈을 벌었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같은 환경에서도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안정적이고, 더 단단하게 자리 잡는 사람들이 있죠.그들의 비결은 운도, 재능도 아니라 매일의 습관과 태도에서 갈립니다.
오늘은 늙어서도 돈 걱정 없이 사는 사람들의 공통점을 네 가지로 정리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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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출 구조를 일찍부터 단순하게 만들어 둔다
돈 걱정 없는 사람들은 ‘얼마를 버는가’보다 ‘어떻게 쓰는가’를 먼저 다듬습니다.
불필요한 보험·구독·명목상 지출을 과감히 걷어내고, 고정비를 꾸준히 낮춰둡니다.
이들은 절약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흐트러지지 않는 지출 구조를 만들어놓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도 삶이 크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단순한 구조가 결국 가장 강한 구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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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위험을 분산하는 감각이 뛰어나다
투자든 일상이든 하나에 올인하지 않습니다.
적은 돈이라도 다양한 곳에 나누어 두고, 수입도 가능한 한 여러 줄로 확보하려고 합니다.
금액의 크기보다 ‘흐름이 여러 갈래로 있다’는 사실이 노년의 안정성을 크게 좌우합니다.
변수가 많아지는 나이일수록, 분산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전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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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건강을 ‘돈보다 먼저’ 챙긴다
노년의 가장 큰 지출은 소비가 아니라 치료비입니다.
돈 걱정 없는 사람들은 운동·검진·루틴 같은 기본 관리를 꾸준히 해두기 때문에 큰 병이 찾아올 확률이 낮고, 설령 와도 비교적 빨리 회복합니다.
결국 건강 관리는 자산 관리이고, 몸은 노후 자금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는 ‘보이지 않는 계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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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관계를 비용이 아닌 자산처럼 유지한다
노년에 돈이 있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인간관계가 단순하면서도 따뜻하다는 것입니다.
억지 의무 관계를 견디지 않고, 감정 비용이 높은 사람은 일찍 정리하지만, 도움이 오고 갈 수 있는 관계는 꾸준히 쌓아둡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정보·기회·정서적 안정이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옵니다.
좋은 관계는 노후의 가장 강력한 보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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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서 돈 걱정 없이 사는 삶은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단순한 지출 구조, 위험을 나누는 습관, 꾸준한 건강 루틴, 관계의 질을 지키는 태도, 이런 요소들이 겹겹이 쌓여 노후의 안전망이 됩니다.
화려함은 오래가지 않지만, 질서 있는 삶은 시간이 갈수록 자신을 지켜줍니다.
지금부터 조금씩 만들면, 어느 순간 노후가 두렵지 않은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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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끌리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 4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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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눈길이 가고, 말을 길게 하지 않아도 매력이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특별히 잘생기거나 부자인 것도 아닌데, 묘하게 마음이 끌리는 사람들.이런 사람들에게는 공통된 기운이 있다.
오늘은 사람을 자연스럽게 끌어당기는 특징을 네 가지로 정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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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보다 ‘표정’이 먼저 편안하다
끌리는 사람은 표정에 경계가 없다.
억지 미소가 아니라, 눈 주변이 부드럽고 상대가 긴장하지 않도록 만드는 편안한 분위기가 있다.
사람들은 말보다 표정을 먼저 믿는다.
표정이 편안하면 상대도 자신을 열게 되고, 자연스레 호감이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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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듣는 태도가 성급하지 않다
자기 얘기만 쏟아내는 사람이 아닌, 상대의 말을 ‘멈추고 들어줄 줄 아는 사람’에게는 신뢰가 생긴다.
중간에 끼어들지 않고, 판단을 서두르지 않고, 고개를 살짝 끄덕여주는 사람.이런 태도는 말보다 더 강한 끌림을 만든다.
사람은 자신을 편하게 해주는 사람에게 마음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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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말투에 여유가 묻어난다
끌리는 사람의 말은 빠르지도, 무겁지도 않다.
불필요한 감정이 실리지 않고, 단정하면서도 부드러운 리듬을 가진다.
이런 말투는 상대를 압박하지 않기 때문에 대화가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타인의 에너지를 소모시키지 않는 말투는 큰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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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스스로를 과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어필하려 하지 않고, 과장하거나 불필요하게 자신을 부풀리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자기 과잉이 없는 사람에게서 ‘진짜다움’을 느낀다.
보여주기보다 존재하는 모습 자체가 담백한 사람이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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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림은 외모나 스펙보다 기운과 태도가 만들어낸다.
표정의 온도, 듣는 법, 말의 리듬, 과하지 않은 자기 표현.이런 요소들이 합쳐져 편안한 사람을 만든다.
누군가에게 특별한 존재로 남는 건, 거창한 매력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태도에서 시작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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