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서도 못 밝혀낸 만성통증… 뜻밖의 원인 ‘이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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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경 기자

병원에서도 이상이 없다는데 특정 관절 부위의 만성 통증이 지속된다면 그 원인은 관절 자체가 아닌 뇌 신경계에 있을 가능성이 있다./사진=유튜브 ‘CBS 경제 연구실’ 캡처

병원에서 이상 소견이 없는데도 특정 부위의 만성 통증이 지속된다면, 원인은 관절 자체가 아닌 뇌 신경계에 있을 가능성이 있다.
기성용, 김민재, 윤성빈 등 국가대표 선수들의 재활을 담당했던 홍정기 차의과학대 스포츠의학과 교수는 최근 유튜브 ‘CBS 경제 연구실’에 출연해, 영상학적 소견이 없는데도 통증이 계속되는 것은 뇌가 만들어낸 착각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 번 부상을 당하면 미세한 손상이라 하더라도 당시의 강한 통증이 심리적 충격으로 뇌에 각인된다.
뇌는 해당 부위를 위협 요소로 인식해 과도한 보호 기제를 작동시키고, 환자는 회복 이후에도 통증을 두려워해 특정 동작을 무의식적으로 회피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환부 주변의 근육과 근막은 필요 이상으로 경직된다.

이 같은 근육 경직은 혈류 저하와 신경 압박을 유발하고, 뇌는 이를 다시 위험 신호로 받아들여 긴장도를 더 높여 악순환을 만든다.
홍 교수는 이러한 현상의 발생 기전에 대해 “근막이 신경 혈관과 굉장히 밀접하게 연결돼 있고 뇌와도 연결돼 있다”며 “(근막에) 일어나는 생리학적 변화, 물리학적 변화는 곧바로 뇌에 통증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 말했다.

만성 통증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뇌에 해당 부위가 안전하다는 인식을 다시 심어주는 ‘재학습 과정’이 필요하다.
신체의 인위적인 긴장을 풀고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유도해 뇌의 착각을 바로잡는 것이다.

관련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통증학회 학술지에 게재된 한 연구에서는 만성 요통을 앓고 있는 환자 100여 명을 대상으로 4주간 통증 신경과학 교육과 단계적 운동 프로그램을 병행했다.
연구팀은 환자들에게 통증이 조직의 손상이 아닌 뇌의 과도한 보호 신호임을 학습시킨 뒤, 통증이 없는 안전한 범위 내에서 신체 움직임을 점진적으로 늘려가도록 유도했다.
연구 결과, 참가자들은 대조군에 비해 통증에 대한 공포감이 30% 이상 감소했으며, 실제 신체 구조의 변화 없이도 뇌가 느끼는 통증 수치가 유의미하게 낮아졌다.
홍 교수는 유사한 원리의 실천법으로 ‘리듬 운동’을 소개했다.
신체 전체를 리듬감 있게 움직여 통증 부위에 집중된 부담을 분산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홍 교수는 “리듬을 탄다는 것은 관절에서 두려움과 긴장을 뺀다는 것”이라며 “일단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 범위 내에서 운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범위 내에서 다양하게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용서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필수품

인간의 본성은 과연 선할까요? 가끔 저는 환자들을 보면서 묵상합니다.
저도 남자지만, 암 환자들을 돌보다 보면 남자들의 이기심에 질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암에 걸린 아내를 버리는 비정한 남편들을 만났을 때입니다.

진료실을 찾는 환자 중, 남성 환자는 혼자 오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남편이 암에 걸리면 아내는 지극 정성으로 간병하고, 최후의 순간까지도 떠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반면 아내가 암에 걸리면 그렇지 않을 때가 상대적으로 많습니다.
물론 남편이 일을 나가야 해서인 경우도 있지만 그런 사정을 제외하고라도 여성 환자는 혼자 오거나 부모, 자식, 친구와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부가 같이 오지 않으면 십중팔구 아내가 버림받은 경우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떠나는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한다고 합니다.
갈 때 가고, 올 때 오고, 기다릴 때 기다려야 하지요. 가지 않아야 할 때 가는 뒷모습은 매정하기 그지없습니다.
그 모습을 편하게 보내줄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한 사람이 때를 잘못 택해 떠난 후 남은 빈자리는 분노와 회한으로 채워집니다.

얼마 전에 아는 집사님의 따님이 들렀습니다.
이미 한 차례 수술해 자궁과 난소를 다 들어낸 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두 달 만에 재발해 제게 올 때 이미 폐와 간에 전이된 상태였습니다.
의사들도 손을 놓았고, 지상에서 살아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게 돼 버렸지요.

그 환자의 사정은 딱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남편과 이혼하면서 아이를 남편에게 보내고 혼자 살고 있었습니다.
이혼하기 전부터 이미 남편은 다른 여자에게 가 있었고, 그 시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암까지 발견됐다 했습니다.
저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그녀와 함께 기도를 드리곤 했습니다.

암에 걸리는 것도 힘들고 서러운데, 그 때문에 남편에게 상처를 받는 여자들이 많습니다.
아내가 암에 걸리면 대부분 남편은 부부관계를 꺼립니다.
암이 전염되는 것도, 더러운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특히 자궁암이나 유방암 등 여성 암에 걸리면 더욱 그 정도가 심합니다.

자궁암이나 유방암으로 자궁과 유방을 적출하는 경우, 육체적 충격뿐 아니라 정신적인 충격도 큽니다.
그런 아내를 두고 남편이 밖에서 다른 여자를 만나고 다녔다면, 환자에게 씻을 수 없는 분노를 심게 됩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환자가 분노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는 건강 상태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경우 보호자는 환자를 두 번 죽인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다 용서하세요. 건강을 우선 챙겨야 아이들도 볼 수 있을 테니까요.”

하루하루 병세가 나빠지는 것을 보고, 저는 당신이 살기 위해 용서하라고 권유했습니다.
그녀는 남편을 용서한다며 말없이 뜨거운 눈물만 쏟았습니다.
그러나 용서한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응어리를 풀어내지 못한 모양이었습니다.
암이 진행되는 속도는 예상보다 훨씬 빨랐습니다.
수술 후 두 달 만에 폐, 간, 뼈에까지 전이가 이뤄졌다는 건 환자의 면역력이 떨어져 있고 마음과 육신 또한 쇠약해졌다는 증거였습니다.
뼛속 깊이 자리한 절망과 분노가 그녀의 생을 파먹지 않기를 저는 늘 기도했습니다.

환자가 오래 버텨야만 의사가 해줄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집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녀에게는 의사로서 해줄 수 있는 게 거의 없었습니다.
치료를 받으러 온 지 두 달 만에 딸이 세상을 떠났다는 집사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암 환자만 수천수만 명을 만나다 보니 의사로서 직감이 생깁니다.
진료실로 들어오는 환자의 모습만 봐도 치료가 잘 될 건지 안 될 건지 80%쯤은 예견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부부가 다정하게 손을 잡고 들어서는 경우는 치료도 잘 되고, 암이 완치되지 않더라도 오래 생존합니다.
그러나 혼자서 외롭고 지친 표정으로 들어오는 환자를 보면 제 가슴이 먼저 먹먹해져 버립니다.
그런 환자는 아니나 다를까, 얼마 버티지 못하곤 합니다.

마음의 불행을 더는 열쇠는 말로만 하는 용서가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용서에 있습니다.
겹겹으로 불행을 겪는 환자에게 있어, 위의 사례와 같은 배우자는 분명 가슴에 칼을 꽂는 일 이상의 원수나 다름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원수를 사랑해야 거듭날 수 있습니다.
용서라는 문을 열고 들어서면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보입니다.
투병에 있어서도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용서는 바로 자신을 위해 하는 겁니다.

억울하고 분한 죽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게 누구든, 무슨 짓을 저질렀든 진정으로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을 위해서, 힘들지만 해보는 겁니다.
분명 달라진 몸과 마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용서하세요.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세요. 언제나처럼 여러분을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이병욱 드림(대암클리닉 원장)

진통제보다 강한 ‘믿음’

암 투병을 하는 사람들, 특히 성공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다른 암 환자에게 신앙을 가지길 권하곤 합니다.
믿음은 보통 신념보다 강한데, 종교는 신념 이상의 영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을 창조한 보이지 않는 큰 손이 나를 치료해 준다고 믿으면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또한, 나를 만든 창조주만큼 나를 잘 아는 이도 없겠지요. 그런데 바로 그분이 치료해준다고 생각하면 든든한 배경이 생기는 셈입니다.

환자들에게는 살아 있는 것도 두려움이고, 다가오는 죽음도 두려움입니다.
내일도 오늘과 같은 고통을 겪거나 더 고통스러울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눈 뜨는 것이 두려워집니다.
그러면서도 ‘당장 오늘 밤은 넘길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합니다.
환자들은 한발 한발 다가오는 죽음 앞에 외롭게 혼자 서 있습니다.
죽음은 곧 고통이란 생각에서 벗어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병욱 박사의 작품. “202호실 환자 진통제 좀 놔주세요.”

보호자들은 저녁때만 되면 간호사실을 들락거리느라 바빠집니다.
환자는 보호자를 조르고, 보호자는 간호사를 조르지요. 진통제를 미리 맞아야 아프지 않을 것 같고, 그래야 혼자 맞는 밤이 두렵지 않을 것 같은 겁니다.

“선생님, 밤만 되면 더 아파요. 잠도 못 자고 아파서 죽는 줄 알았어요.”

회진을 돌다 보면 환자들은 낮보다 밤에 더 아프다고 호소하곤 합니다.
원래 밤이 되면 상대적으로 저기압이 형성돼 더욱 아파지는 법입니다.
마음이 아픈 사람도 밤에 더 눈물이 나고 외로운 사람도 밤에 더 외로운 것처럼, 밤에는 모든 관심이 자기 자신에게 쏠립니다.
적막하고 캄캄한 곳에 있으면 자기 자신 말고는 들여다볼 것이 없습니다.

밤이 되면 더 아프다는 환자 중 열에 아홉은 공포를 느낍니다.
‘오늘 밤에는 잠을 잘 잘 수 있을까?’ ‘내일 아침에 내가 살아있을까?’ ‘이렇게 아프면 죽는다던데, 괜찮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환자들에게는 진통제보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일이 더 필요합니다.

진통제는 아플 때 맞으면 절대 의존성이 생기지 않지만, 아플 것 같다며 미리 맞는 버릇을 들이면 점점 더 진통제에 의존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진통제는 신중하게 사용하는 게 좋습니다.

일반적으로 의사들은 환자가 진통제를 요구하면 거의 허락합니다.
의사가 환자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탓도 있지만, 그만큼 환자의 마음을 세심하게 읽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이럴 때는 환자와 상의해서 처방을 내려야 합니다.
진짜로 고통 때문이라면 진통제를 써야겠지만, 만약 아플 것이 두려워 진통제를 달라는 것이라면 진통제 대신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게 용기를 주어야 합니다.

고통을 느낀다는 건 거꾸로 말하면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고통스러울 때마다 ‘나는 살아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환자들에게 저는 견딜만한 고통이라면 받아들이라고 말합니다.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더 이상 두렵지 않습니다.
받아들이면 잘 알게 되고, 잘 알면 막연한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어떤 환자들은 진통제를 맞지 않고 밤을 보냈다는 데 자부심을 느끼기도 합니다.
투병을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한 번 공포를 이겨낸 환자는 용기를 얻어 투병도 잘 해냅니다.

환자에게 밤에 필요한 건 사실 진통제라기보다는 의사가 환자를 한 번 더 챙겨주는 마음과 관심일 겁니다.
손을 잡아주고 격려해주고 삶의 의미를 환자 스스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 말입니다.
사랑받고 있으면 두려움도 덜 느끼고, 두려움을 덜 느끼면 아픔도 덜합니다.
언제든 어디서든 사랑받는 존재라고 느낄 수 있게 하는 게 바로 앞서 말씀드린 신앙이 아닐까 합니다.

인간은 아프면 기댈 곳을 찾게 됩니다.
기댈만한 곳이 가족일 수도 의료진일 수도 있지만 자신이 믿는 신에게 기대어 보세요. 보이지 않는 힘으로 두려움을 이겨낼 용기를 가져다줄 것입니다.
넉넉하고 포근한 큰 품에서 오늘도 고통 없는 하루를 보내시길 바랍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이병욱 드림(대암클리닉 원장)

안아주는 마음과 안기는 마음… 그 둘이 만나 만들어낸 잠깐의 기적

치료받는 과정에서 우리는 익숙하지 않은 불편함을 경험합니다.
익숙하던 향이 불쑥 불편해지기도 하고 평소에 아무렇지 않았던 베갯잇의 질감이 아프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입안에 느껴지는 불편감도 생기는데 외부에서 느껴지는 불편함은 어찌 보면 당연하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일 것입니다.

그런데 항암으로 이렇게 평소와 달리 민감해진 환자를 돌보는 주변 보호자들도 모두 긴장하게 됩니다.
환자는 몸도 아프고 예민해진 모든 감각에 힘겹고 그 옆을 지키는 보호자는 뭐 때문에 환자가 짜증낼지 몰라서 안절부절못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 “아이고 힘들지…”라고 말을 건네며 어깨 위에 손을 올려 토닥여 주고 울렁거림이 있을 때 다가와서 등을 손으로 천천히 쓸어내려 줄 때 무언지 모를 편안함을 느껴보신 적 있으시죠?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긴장하고 있을 때 어깨를 감싸 안아주는 배우자의 손길에서 몸에서 느껴지는 안정감과 위로가 있지요.

이처럼 보호자의 접촉이 주는 가장 기본적인 장점은 바로 우리의 신경계가 안심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말이라는 논리보다 먼저 감각 즉 서로의 ‘접촉’에 반응하게 됩니다.
부드러운 접촉은 교감신경의 긴장을 낮추고, 몸을 얼어붙도록 굳어버리거나 도망가듯이 불안정한 호흡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심박수와 호흡이 서서히 느려지고, 근육의 미세한 긴장이 풀립니다.

그래서 위급한 상황이나 통제할 수 없는 의료 환경에서, 말 한마디보다 손을 잡아주는 행위가 먼저 위로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따뜻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접촉은 옥시토신 분비를 촉진합니다.
옥시토신은 흔히 ‘사랑 호르몬’이라고 불리지만, 실제로는 불안을 낮추고 통증을 완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시술 전 간호사가 잡아주는 손의 온기, 시술 중 의료진이 등에 얹어주는 손은 그 자체로 하나의 비약물적 진통이 됩니다.

저 역시 수술을 앞두고 대기실에서 차가운 침대에 누워있을 때, 한 수녀님이 다니시면서 손을 잡고 기도를 해주셨습니다.
그 시간은 채 1분도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그 수녀님 손의 감촉과 그때 제 귓가에 들려주셨던 부드러운 목소리를 잊지 못합니다.

그 순간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이러한 접촉은 몸의 긴장을 풀고 ‘지금 내가 여기에 있다’라는 존재감을 남게 합니다.

그래서 저는 처음 입원한 환자분께 악수하는 손, 안아주는 엄마의 품, 서로 안아주는 부부의 모습을 그려서 선물하곤 합니다.
그저 그림을 보면서도 따듯한 접촉이 전해질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사람이 사람의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 나눠주는 것, 눈물을 흘릴 때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주는 것 긴장할 때 손잡아 주는 것 이것은 그 사람을 환자가 아닌 한 사람으로 대하는 존엄한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몸이 아플수록 우리는 더 예민해지지만, 동시에 아주 작은 접촉에도 깊이 반응하게 됩니다.

우리의 친절한 손길이 고통을 없애주지는 못하더라도, 그 시간을 혼자가 아닌 채로 지나가게 해줍니다.
오늘 옆에 계신 환자분께, 혹은 옆을 지켜주고 계신 보호자께 친절하고 따뜻한 손을 건네 보세요. 따뜻한 마음이 전해질 겁니다.

김태은 드림(서울여자대학교 교양대학 교수)

마음은 통제의 대상이 아니다 

암 진단을 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몸보다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먼저 경험합니다.
“왜 하필 나인가”, “앞으로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이 끊임없이 떠오르며 극도의 긴장상태에 돌입하곤 합니다.
암은 몸이 버텨내야 하는 병이지만 그 시간을 견디는 건 마음의 몫입니다.

현대의학에서는 스트레스가 질환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원인이라고 말합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우리 몸은 심장이 빨라지고 근육이 긴장하는 등 경계 상태에 들어갑니다.
이 상태가 반복되면 몸이 늘 긴장 태세로 살아가게 되고 회복에 필요한 에너지까지 소모하게 됩니다.

문득 스치는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불안한 생각이 곧 자기 자신이 아니라는 점을 인지해야 합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 때 잠시 눈을 감고 20초간 어떤 생각도 하지 않으려 애써보세요. 오히려 더 많은 생각이 선명하게 떠오를 것입니다.
분명 내 마음인데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마음의 원리입니다.

하지만 마음을 잡는 방법이 있습니다.
마음을 통제의 대상이 아닌 관찰의 대상으로 바라보세요. 다시 한 번 20초간 눈을 감고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지 지켜보세요. 어떤 걱정이나 불안이 떠오르든 그 생각을 바꾸지 말고 바라보세요. 조용히 판단 없이 지켜보는 겁니다.

신기하게도 그 순간 생각의 흐름이 느려지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머릿속의 이 생각 저 생각을 자기 자신이라고 착각하지만, 그저 지나가는 망상과 잡념일 뿐입니다.
그 지나가는 신호를 보고 있는 바로 그 눈이 ‘나의 눈(The Eye of the I)’입니다.

심신통합의학을 교육하며 다양한 만성질환 환자들을 만나왔습니다.
나를 보는 눈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는 위치가 달라질 때 몸의 반응도 달라지는 경우를 반복해서 보았습니다.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는 순간 몸은 서서히 힘을 내려놓습니다.

‘나의 눈’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요구나 아픔을 부정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아픔과 걱정 그 자체가 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것, 그 인식 하나가 마음과 몸 사이에 숨 쉴 공간을 만듭니다.

암과 함께 살아가는 여정 내내 마음을 붙잡아 두려 애쓰기보다 하루에 몇 번이라도 잠시 멈춰 서서 나를 바라보는 눈으로 돌아와 보세요. 몸은 조금 덜 긴장하고 삶이 덜 버거워질 겁니다.

김종성 드림(한국심신의학연구소 박사·목사) ​

JeoN -

우리의 존재 자체가 이미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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