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수행을 하면서 나는 이렇게 편안해졌는데, 나만 행복한 게 아닐까? 우리 가족과 주변 사람들은 어떨까? 어쩌면 나만 좋자고 하는 명상이 아닐까?’
8년 전 5월, 딱 이맘때였다.
내 인생 첫 명상 센터이자 이 책 『나로부터의 자유, 세상을 비추다』의 이야기가 펼쳐진 붓다선원의 선방에 나는 앉아 있었다.
코끝으로 드나드는 숨에 머물다 보니 마음은 덕유산 자락에 내려앉은 새벽안개처럼 금세 잔잔해졌다.
마흔여 명 남짓한 수행자들이 마치 한 호흡에 함께 머무르고 있는 것 같아 안온함도 더해졌다.
당시만 해도 하루 15분 명상을 겨우 이어가던 초보 수행자였지만, 전날부터 이어진 집중 수행은 생각보다 버틸
만했다.
물론 다리는 저리고 어깨도 아팠다.
그러나 몸의 불편함은 마음의 평온함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렇게 고요하던 마음에 크고 무거운 물음 하나가 툭, 떨어졌다.
한 번 피어오른 그 물음은 불길처럼 달아올라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회색 좌복 위에 앉아 숨을 고르며 더없이 평온했던 나와 달리, 병상에 기운 없이 누워있던 깡마른 아빠의 모습이 겹쳐졌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선원에 오기 하루 전날 마주했던 아빠의 모습이었다.
10년 가까운 병원 생활 끝에 젊은 시절의 당당했던 아빠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나 자신밖에 몰랐던 철부지 막내딸은 그 긴 시간 동안 아빠의 외로움을 외면한 채 살았다는 사실에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나만 이렇게 편안해도 되는 걸까.’ 명상 속에서 마음이 고요해질수록
오히려 더 또렷해지는 물음. 그리고 한 달 뒤 아빠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같은 물음은 나를 떠나지 않았다.
‘나는 이렇게 좋은데, 정말 나만 좋은 게 아닐까?’
당시 나는 불교 공부와 수행에 깊이 빠져 있었다.
그래서 내 앞에 놓인 문제들을 어떻게든 부처님 가르침 안에서 이해해 보려 애썼다.
수행을 통해 지혜를 닦을 수 있다면, 자비는 어떻게 삶 속에서 실현되는 걸까. 내가 조용히 좌복 위에 앉아 있는 게 과연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명상을 하는 나의 모습과 병상에 누워있던 아빠의 모습이 대비되어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었다.
그날 집중 수행이 끝난 뒤 진경 스님께 이 마음을 꺼내놓았다.
스님은 “내가 편안해지면 상대방을 편안하게 대할 수 있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명상을 통해 마음을 돌보면 자연스럽게 타인을 대하는 태도에 배려가 스민다는 의미였다.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당시의 나는 그 말의 깊이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사실 스님께 좀 더 특별한 답을 기대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진짜 답은 몇 년에 걸쳐 아주 천천히 찾아왔다.
일 년에 한 번씩 붓다선원을 찾아 마음을 고르고, 삶의 흐름이 조금씩 달라지는 과정 속에서였다.
어느 순간부터는 떠나간 아빠와 남아 있는 가족들을 위해 자연스럽게 기도하게 되었다.
출근길 붐비는 지하철 안에 발을 내딛을 때마다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이 편안하고 행복하기를’ 하고 자애 구절을 되뇌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그 마음이 신기하고도 낯설어 오래 바라보았던 기억이 난다.
내 마음이 조금씩 밝은 곳을 향하면서 아빠를 향한 미안함도 조금씩 옅어져 갔다.
그제야 “내가 편안해지면 상대방을 편안하게 대할 수 있다”던 진경 스님의 말씀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 말은 곧 자리이타(自利利他)였으며, 이는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삶이 변화하는 가운데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책을 준비하는 과정은 내게 더욱 특별하고 애틋하게 다가왔다.
마흔여섯 가지의 질문을 추려내는 동안 행간에 고인 그들의 삶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어린 시절의 상처, 관계 속 괴로움, 반복되는 불안과 중독, 삶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까지. 붓다선원을 찾은 이들의 절절한 인생 질문은 결국 내가 지나온, 혹은 우리가 지금도 마주하고 있는 질문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님께서는 인생의 모든 고통이 결국 지혜로 이끄는 소중한 선물이라고 하셨다. 그러니 고통을 밀어내기보다 내면을 찬찬히 바라보라는 당부도 잊지 않으셨다. 물론 아픔을 정면으로 마주하기 위해서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물음을 피하지 않고 때로는 따뜻하게, 때로는 냉철하게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삶은 스스로 답을 들려주기 시작한다. 나를 괴롭혔던 질문이 나를 살려낸 ‘인생 문답’이 되는 순간이다. 붓다의 깨우침도, 진경 스님의 수행도 결국 하나의기 위해서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물음을 피하지 않고 때로는 따뜻하게, 때로는 냉철하게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삶은 스스로 답을 들려주기 시작한다.
나를 괴롭혔던 질문이 나를 살려낸 ‘인생 문답’이 되는 순간이다.
붓다의 깨우침도, 진경 스님의 수행도 결국 하나의
질문에서 비롯되지 않았던가. 어쩌면 삶은 자기 안의 물음을 외면하지 않는 이에게만 조금씩 다음 길을 보여주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과 인연이 닿은 독자들 또한 저마다의 인생 문답을 통해 자기 삶의 길을 조금 더 환희 밝혀갈 수 있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