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주고 빼야 할 때

열심히 달리고 나면 휴식이 필요하다.
휴식은 거창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의외로 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마감 잘 지키는 필자로 유명한 백영옥(49) 작가 역시 워커홀릭 중 한 명이었다.
카피라이터와 온라인 서점 MD, 패션지 기자를 하면서 긴 밤 졸음을 참아가며 소설을 썼고 결국 꿈을 이뤘다.
제4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며 동명의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소설 ‘스타일’과 캐릭터 에세이 돌풍을 일으킨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등 20권의 책을 내는 동안에도 수많은 신문 칼럼을 쓰고 새벽 라디오 DJ를 3년간 해냈다,

이른바 ‘갓생’을 살아온 백영옥 작가가 최근 생활철학서 ‘힘과 쉼’을 펴냈다.
백영옥 작가는 수많은 실패 속에서 어떻게 해야 나가떨어지지 않고 꾸준하게 도전할 수 있는지를 터득했다.
백영옥 작가는 “내 이야기지만 주변에 ‘너 읽으라고 쓴 거야’라며 이 책을 선물한다.
모두 너무 열심히 산다”며 “멈추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책 반응을 좀 살펴봤나요.

전혀요.
지금까지 한 20년쯤 책과 관련된 일을 해오다 보니 느낀 게 있어요.
책은 각자 운명이 있어요.
다 쓰고 나면 쳐다보질 않아요.
다음에 뭐 하지 이 생각을 먼저 하고, 실제로 지금 소설을 준비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정말 토할 때까지 고치거든요.
저는 초고는 굉장히 빨리 쓰는데 수정 과정이 힘들어서 최소한 1년 이상은 지나야 제 책을 봐줄 만해요.


초고는 어느 정도로 빨리 쓰나요.

원고 청탁이 들어오면 그날 쓰거나 그다음 날 바로 써요.
어떤 분들은 마감이 닥쳐오면 테스토스테론이 쫙 올라가고 도파민이 팡 터지면서 집중이 잘된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불안도가 높은 편이라 마감에 쫓기면 ‘폭망’이에요.
그리고 제가 기자 시절에 마감 안 지키는 필자들한테 너무 시달려서 ‘나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마감을 안 지킨 건 세월호 사고 때문에 심란해서 소설이 안 써졌을 때 딱 한 번 있어요.

도대체 비결이 뭔가요.
글을 언제 쓰세요.

저는 몇 시에 일어나든 일단 일어나면 글부터 써요.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라 정말 수년에 걸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내가 언제 일을 했을 때 가장 생산성이 높아지나’ 테스트해보니 오전 5시부터 11시 50분까지였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커피를 마시고 당시 제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원고를 써요.
그게 지난 10여 년간 지켜온 원칙이에요.


오전에 일을 마치면 오후는 뭐 하면서 보내나요.

책을 읽거나 친구를 만날 때도 있고, 주로 산책해요.
작업실 바로 앞에 호수공원이 있어요.
호수공원에 앉아 강아지 보는 게 취미예요.
제가 강아지랑 고양이를 좋아하는데 남편이 알레르기가 있어요.
키울 수가 없으니까 벤치에 앉아서 보고 있으면 가끔 김훈 선생님도 마주치고 그래요.
선생님도 벤치에 앉아서 사람들 관찰하는 게 취미인가 봐요.
집에 돌아와서 요리해 먹고 뒹굴뒹굴하다 오후 9시부터 잘 준비를 해요.
일찍 자지 않으면 일찍 일어나는 게 의미가 없어요.


생각보다 더 잘 쉬고 있네요.
잘 노는 것도 비결이 있나요.

저는 ‘놀면 뭐 하냐’ ‘죽으면 실컷 잘 텐데 지금 덜 자도 괜찮다’ 이런 말 정말 싫어해요.
한때 저도 그랬고, 놀면 괜히 죄책감이 든다는 사람도 많은데 대충 쉬겠다라는 마음으로는 안 돼요.
저는 SNS를 안 해요.
자꾸 상향식 비교를 하게 돼서요.
SNS를 보고 있으면 ‘무슨 강연을 이렇게 많이 할까, 책도 나왔네, 나는 지금 못 쓰고 있는데 부럽다’ 같은 일 생각부터 ‘요즘은 이런 데가 있네, 저 맛집은 어디지’ 같은 노는 것에도 자극을 받거든요.
그 자극이 굉장히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어요.
우리는 디지털 디톡스를 좀 해야 해요.
디지털 디톡스가 휴식에 중요해요.

그럼 추천하는 휴식 방법은 무엇인가요.

아무것도 안 하면 불안해서 움직이는 방식의 휴식을 해요.
컬러링 북 색칠하거나 산책을 해요.
스마트폰 없이 나가는 게 포인트예요.
좀 쉬고 싶을 때 하는 본인만의 ‘리추얼’이 있으면 좋겠어요.
저는 글 안 써지고 기분 나쁘면 손을 씻어요.
행위에 집중해서 정성스럽게요.
그런 차단이 필요해요.
가장 좋은 휴식 방법은 독서예요.
우리가 인터넷을 하고 나서 뿌듯해져 잠드는 경우는 거의 없잖아요.
최저가를 검색해도 내일이면 또 나올 오픈소스라서 그래요.
그런데 책은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닫힌 느낌을 줘요.
거기서 오는 충만함이 커요.

제대로 쉬는 것도 쉽지 않네요.

우리는 쉬는 걸 아무 준비 없이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아요.
더 중요한 건 자주 쉬는 거예요.
실제 연구 결과도 있는데, 휴가를 한 달 통으로 쓰는 것보다 그 한 달을 일주일로 쪼개서 4번 쓰는 게 심리적 만족도가 훨씬 커요.
행복의 평균값이라는 용어 때문인데요.
행복은 치닫다가도 급격히 떨어져 결국 평균으로 회귀하는 특징이 있어요.
즉, 산책을 2시간씩 하는 건 힘들잖아요.
바쁘기도 하고요.
틈날 때 회사 주변 공원을 잠깐 돌아보세요.

나를 잘 돌보는 사람이 진짜 프로

백영옥 작가의 에세이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과 ‘안녕, 나의 빨강머리 앤’은 소설 ‘빨간 머리 앤’ 주인공의 말을 빌려 독자들에게 위로와 조언을 건넨다.
그 말들은 백영옥 작가를 어루만져주던 것이기도 했다.
백 작가는 요즘도 가끔 ‘빨강머리 앤’ 만화를 본다.
긍정적인 앤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백 작가는 “어떤 두려움이 덮쳐올 때는 굳이 맞서기보다 잠시 피하자는 주의다.
나만의 안전지대에서 힘을 얻은 후 다시 상황을 돌아봐도 괜찮다”고 말한다.
하긴 곧은 나무가 먼저 베어진다.
앞만 보고 달리던 백 작가는 코로나19 때 넘어졌다.
세상 변화가 이렇게 빠를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다.
그때 브레이크 밟는 법을 더 고민하게 됐다.

마감 잘 지키기로 유명한 워커홀릭한테 쉬어야 한단 얘기를 들을 줄 몰랐어요.

주변으로부터 제가 일중독자라는 말을 10년 넘게 들었지만 인정을 안 하고 살았어요.
체력이 뒷받침됐을 때는 일만 하고 살아도 문제가 없었는데 이제 나이가 들고 에너지 레벨이 낮아지니 탈이 나더라고요.
자기 돌봄 없이 자기 착취만 하다 보면 몸이 보내는 사인을 무시하게 되거든요.
그러다가 엎어지면 그때 쉬는 거예요.
잘나가던 사람도 환자복을 입으면 그저 나약한 인간일 뿐이고 다 똑같아져요.


속도를 줄일 줄 아는 사람은 진짜 용감한 것 같아요.

그게 참 쉽지가 않아요.
저는 그래서 ‘프로페셔널’이라는 개념 안에 자기 돌봄도 넣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커리어 쌓는 게 단기 경기가 아니잖아요.
마라톤이에요.
배우 윤여정 선생님은 70세가 넘어서 아카데미상을 받았어요.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는 성공은 계속 쇼를 하는 거라고 말했고요.
쇼가 화려하든 실패하든 일단 계속하려면 반드시 자기를 돌봐야 해요.
특히 수면이 중요해요.
우리나라 국민 수면 시간은 OECD 국가 중 최하위예요.


하지만 성공한 분들은 거의 다 잠을 줄여가며 뭔가를 한 사람들 아닌가요.

그렇긴 해요.
제가 한 10년 전쯤에 우리 사회에서 성공한 다양한 분들을 인터뷰하는 연재 칼럼을 진행했었는데 맙소사, 다 너무 안 자는 거예요.
‘내가 성공을 못 한 이유가 이거였구나’ 싶어서 8시간 자던 걸 6시간으로 줄인 적이 있어요.
하루 종일 멍했어요.
현대인들은 그 멍한 상태에 카페인을 들이붓고 니코틴을 흡입해서 억지로 끌고 가는데 그러면 업무 효율성이 떨어져요.
다행히 이제는 저처럼 수면이 중요한 사람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연구 결과가 많이 나왔어요.
수면 자체가 단기 기억력을 장기 기억력으로 전환해서 보존하는 역할을 한대요.
기자님도 스마트폰 보지 말고 일찍 자보세요.

침대에 웅크려 ‘빨간머리 앤’을 보면 엄마 자궁 안에 웅크려 있는 태아처럼 편안해진다는 백영옥 작가.

침대에 웅크려 ‘빨간머리 앤’을 보면 엄마 자궁 안에 웅크려 있는 태아처럼 편안해진다는 백영옥 작가.


어떻게 알았죠? 일찍 자려고 누워도 스마트폰을 보다가 자꾸 늦게 자요.

18px;" />다 그래요.
빅테크 기업들이 알고리즘 자체를 자동 재생 기능과 무한 스크롤을 통해 사람들이 체류 시간을 늘리도록 정교하게 설계해놨거든요.
구글 전 수석 디자이너 제이크 냅이 저서 ‘메이크 타임’에서 자기 일은 검색에 드는 속도와 시간을 줄여 사람들이 장애물 없는 얼음 위를 미끄러지듯 달리게 만드는 것이었다면서, 각종 생산성 앱을 삭제하거나 ‘ON’으로 설정된 디폴트 알람을 ‘OFF’로 바꾸라고 조언해요.
저도 스마트폰 첫 화면을 비워두는 방법을 따라 해 봤는데 효과가 좋았어요.
결국 자기만의 방지턱을 만드는 게 중요해요.


나만의 방지턱이라, 빅테크 기업에서 싫어할 얘기인데요(웃음).


시간 학자들은 스마트폰을 수시로 확인하는 행위를 ‘오염된 시간’이라고 표현해요.
순간 주의력을 뺏기면서 일의 실행력이 낮아지고, 그 실행력이 복구되는 데 15분 이상 걸린대요.
그래서 저는 멀티태스킹이 일상화된 사회에서는 오히려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능력이 훨씬 더 높게 평가받는 날이 와야 하고, 꼭 올 거라고 생각해요.
집중력이 곧 돈인걸요.
빅테크 기업들이 돈을 버는 건, 내가 인터넷에 남긴 데이터를 다양한 방식으로 팔기 때문이에요.
데이터는 21세기 석유 같은 거죠. 집중해서 내 시간을 안 지키면 끝도 없이 강탈당하는 구조예요.

그럼 유튜브나 넷플릭스도 안 보나요.

물론 봅니다.
저는 쉬는 방법 중 하나로 영국의 로열발레단 연습 동영상을 틀어놓고 따라 하기도 해요.
다만 제 SNS 계정을 운영하진 않고, 가끔 필요한 것만 찾아서 봐요.
저는 걱정이 많고 예민한 성격이라 ‘좋아요’나 댓글 하나에도 심리적으로 휘둘릴 여지가 있어 아예 그 여지를 차단하는 거죠. 스마트폰은 없으면 세상과 단절되고 보기 시작하면 시간을 뺏기는 애증의 대상이에요.
얼마 전에도 넷플릭스에서 ‘마스크걸’ 한 회만 보고 자야지, 하고는 7회를 내리 보고 망했다 했어요.

작가님도 그럴 때가 있다니 친근하네요.

제가 의지력이 강한 사람은 절대 아니에요.
의지가 부족해서 안 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추상적인 의미인 의지를 눈에 보이는 근육 덩어리라고 생각해보세요.
근육 키울 때 반복해서 자극을 주죠. 습관 바꾸는 것도 똑같아요.
그런데 왜 더 힘들다고 느끼냐면 금연, 금주, 다이어트 등은 단기적으로는 성공하지만 장기적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죠. 그러려면 이행 장치를 많이 써야 해요.
이걸 이행했을 때 어떻게 보상을 줄지, 실패 시 대처 계획도 세워야 하고요.


작가님이 세운 올해의 계획과 그 습관을 지키기 위한 이행 장치는 뭔가요.

저는 올해 스쾃을 하루에 100개 이상씩 하는 것을 목표로 세웠어요.
실제로 매일 하고 있고요.
방법 알려드릴까요? 매일 하는 행동에 추구하고 싶은 습관을 끼워 넣는 거예요.
저는 손을 닦고 나서 손이 깨끗한 김에 얼굴에 수분 크림과 선크림을 발라요.
그 습관 사이에 스쾃을 넣었어요.
손 닦을 때마다 화장실에서 스쾃을 15개에서 20개씩 하다 보니 100개는 거뜬하더라고요.
또 올해 초 구매해서 아주 유용하게 쓰고 있는 아이템이 하나 있어요.
바로 ‘스마트폰 감옥’인데요.
그 스마트폰 감옥을 주로 밤새 잠가놨다가 오전 5시에 열리면 그때 감옥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확인해요.
제가 얼마나 실패를 많이 했으면 이런 얘기를 줄줄 하겠어요.
실패 끝에 찾은 방법들이에요.

내가 일부러 긍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는 이유

15분 단위로 계획을 세워 살던 백영옥 작가가 스마트폰 없이 산책하기까지 스마트폰 감옥, 스마트폰 첫 화면 비우기 등 여러 노력이 필요했다.<BR>

15분 단위로 계획을 세워 살던 백영옥 작가가 스마트폰 없이 산책하기까지 스마트폰 감옥, 스마트폰 첫 화면 비우기 등 여러 노력이 필요했다.

실패를 많이 한다는 건 시도를 계속한다는 거잖아요.
이 힘은 어디서 나오나요.

가끔은 우울해도 그냥 웃어야 해요.
정체성이라는 건 만들어지는 거니까요.
저는 이따금 고민하는 후배에게 “네가 되고 싶은 사람이 돼야 한다, 되고 싶은 사람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조언해요.
처음에는 절대 쉽지 않지만 그런 척이라도 하고 있으면 마침내 자기가 그런 사람이 됐다는 걸 느끼는 순간이 있거든요.
저는 사람이 바뀐다고 믿고 있어요.
그렇게 믿고 싶기 때문에 이런 얘기를 의도적으로 많이 해요.
우리 인류의 DNA 자체가 생존을 위해 일단 피하고 두려워하다 보니 부정 편향이 심해요.
저는 인류의 갈등이 첨예해지고 회색 지대가 없어지는 것에 대한 우려가 많아요.
회색분자라고 나쁘게 표현하기도 하는데 달리 보면 회색은 중립일 수 있잖아요.
다만 그런 회색 지대의 사람들은 대부분 스피커가 아니라서 세상에는 극단의 목소리만 크게 들리는 거죠. 회색 지대가 줄면 줄수록 저는 세상이 안 좋아진다고 봐요.
상식은 회색 지대 안에 있으니까요.

이런 생각들을 의도적으로 담아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직업이라니 멋있네요.
쓰는 입장에서는 에세이와 소설 중 어떤 장르에 담아낼 때 더 흥미롭나요.

소설은 이야기를 담는 게 아니고 제가 그렇게 직접 살아내는 거예요.
소설을 쓰면 자상을 입고 누더기가 돼요.
제가 소설을 한 권 쓸 때마다 병명이 하나씩 늘었어요.
좌골신경통이 생겼고 앉아서 오래 일을 못 해요.
허리 디스크 3·4번이 다 나갔거든요.
레퍼런스를 바탕으로 쓰는 칼럼과 다르게 소설은 아예 하나의 우주를 만드는 일이라 많이 힘들죠. 그런데도 소설을 쓰는 이유는 어느 순간 내가 만든 캐릭터가 나에게 ‘이건 아니지 않아?’ 질문할 때가 있어요.
어떤 하나의 존재로서 역할을 할 때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충족감이 있어요.

그럼 다음 소설은 언제쯤 만날 수 있나요.

모르죠. 소설은 알 수가 없어요.
저는 MBTI가 ENFJ(외향적이고 직관적이며 감정을 중요히 여기는 계획형)예요.
저 자신이 과잉 목표 설계자인 데다가 소설 장르 특성상 굉장히 노동집약적이어서 성실함이나 계획성이 수반되지 않으면 종결하기가 어려워요.
취재 계획도 짜야 하고 언제 쓰기 시작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아마 소설가 중에 J 유형이 많을걸요(웃음).


내년에 50대가 되는데 보통 나이 앞 자릿수가 바뀌면 좀 심란해지잖아요.
작가님은 어떤가요.
파워 ‘J’ 유형이니까 또 다른 계획을 세우고 있나요.

조금 더 본질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 나이 듦의 혜택이고 축복 같아요.
어릴 때는 꽃이 단순히 어쩜 이렇게 예쁠까 싶었는데 요즘은 꽃이 애틋하고 예뻐 보이는 이유를 알아요.
꽃이 빨리 지는 걸 아니까 예쁜 거죠. 옛날에는 뭐든 생각을 많이 하고 그래서 늘 불안했고 일을 점점 많이 하게 됐어요.
돌이켜보면 일을 많이 해서 성취한 부분도 있지만 잃은 것도 있어요.
요즘은 본질적인 가치를 찾으려 해요.

작가님에게 본질적인 가치는 무엇인가요.

제가 제일 행복할 때는 소설을 쓰는 순간이거든요.
그런데 요즘 소설이 안 팔려요.
이러이러한 방식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소설을 한번 읽어보라고 여기저기 소개해주고 싶어요.
이게 어떤 느낌이냐면, 영화 ‘타이타닉’에서 배가 침몰 중인데도 악사들이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는 장면 기억나세요? 워낙 세상이 빠르게 변하니까 자기 일을 묵묵히 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이 쓰여요.
제가 영어로 소설 쓰기에도 관심이 있어서 영국인 선생님과 쓰기 수업을 오래 했어요.
그런데 올해 챗GPT가 나왔잖아요.
챗GPT가 제 문장을 수정하는 것을 넘어 다른 버전으로 계속 알려줘요.
그걸 보면서 선생님이 “내 직업은 사라지겠다”고 그러길래 소설가도 사라지고 있다고 했어요.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한테는 무슨 일을 하라고 하면 좋을까요.

우리의 미래는 알 수가 없어요.
우리가 했던 성공의 방정식이 요즘 아이들한테는 안 맞거든요.
우리 때만 해도 교사가 정말 좋은 직업이고 선망의 대상이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많은 교사가 힘들어하죠. 세상이 너무 빨리 또 많이 바뀌기 때문에 이럴 때는 그래도 안 바뀌는 게 뭔지를 생각해야 해요.
나에게 바뀌지 않는 가치가 있다면 거기에 더 집중해야 해요.
백영옥 작가는 집중을 위해 점심을 거르고도 열정적으로 얘기했다.
더 놀라운 건 모든 이야기는 기가 막히게 본론으로 돌아가 끝을 맺었다.
그는 지금까지 해본 여러 직업 중 소설가가 개인적으로는 가장 힘들다고 했지만, 기자에게는 소설가가 가장 힘든 인터뷰이다.
타고난 이야기꾼이 2시간가량 풀어낸 주옥같은 말 중 뺄 부분을 찾는 게 쉽지 않다.

사는 것도 그렇다.
힘을 줄 때와 뺄 때가 있다.
백 작가의 말처럼 “오늘 얻은 깨달음이 늘 유지되는 게 아니라 업 앤드 다운이 계속 있는 와중에 내가 그걸 알아채고 다시 조정하는, 반복의 반복을 거듭하는 게 인생”이다.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거나 자신의 의지를 믿고 자만할 것도 없다.
1+1로 구매한 스마트폰 감옥을 준다고 할 때 사양 말고 받을 걸 그랬다.
#백영옥작가 #힘과쉼 #여성동아 

사진제공백영옥(포토그래퍼 허성민)사진출처애니원 유튜브 캡처

고독과 교류 사이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헨리 소로는 27세에 홀로 월든 호숫가로 떠나 오두막을 짓고 밭을 일구며 2년 2개월을 지낸다.
그는 그때의 사유를 모아 ‘월든’을 썼다.
이 책은 물질문명에서 벗어나 삶의 본질에 집중하며 자연 속에서 사는 소박하고 충만한 삶을 노래한다.
은퇴 후 속세를 떠나 ‘나는 자연인이다’의 주인공을 꿈꿔본 적 있는 남자들의 로망인 삶이다.
하지만 월든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반전이 있다.
사실 그가 살았던 오두막은 깊은 숲속이 아니라, 30분만 걸어도 읍내로 나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는 때때로 읍내로 나가 음식을 사 먹었고, 오두막에 방문하는 가족과 친구들도 만났다.
홀로 아름다운 월든 호수를 바라보며 ‘사유’했지만 ‘사교’도 멈추지 않았단 것이다.

‘월든’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어쩌면 고립이 아닌 연결, 고독이 아닌 교류라는 생각이 든다.
‘오고 가고, 맺고 끊는 중용’의 기술을 배우는 것 말이다.
사찰에서의 ‘동안거’나, 성당에서의 ‘피정’은 번잡함에서 벗어나 마음이 차분해질 수 있는 좋은 방편이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건, 우리의 선입견처럼 고독이 절간 같은 환경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도시인의 출퇴근도 성찰의 순례길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건 외부가 아닌 내면의 소음을 끄는 것이다.
시끄러운 카페나 번잡한 식당에서도 우리는 고독할 수 있다.
외부의 소음을 차단하고, 오직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먹는 것에 집중해 충만해지는 ‘고독한 미식가’처럼 말이다.

바람에도 꼿꼿한 나무는 죽은 나무다.
이어령 선생은 ‘마지막 수업’에서 나무는 끝없이 바람에 흔들리지만 곧 자신만의 중심으로 서 있다고 말한다.
한겨울 파도는 어떤가. 파도의 운동 역시 끝내 수평으로 돌아가기 위한 끝없는 눌림과 풀림의 과정이다.
세상 많은 것은 중심으로 다가서기 전 흔들린다.
월든 호숫가만 정답이 아니다.
흔들리는 내면의 수평을 찾아 지금 이곳에서 고요해지는 방법이 있다.
잠시 휴대폰을 끄고 명상하는 것이다.

불안의 평등

1점 차이로 시험에 떨어진다면 어떨까. 억울할 것이다.
갖은 노력에도 장기 수험생이 되면 억울함은 불안으로 변한다.
그렇다면 1점 차로 합격한 학생은 행복하기만 할까. 한 의과대학 상담 소장이었던 지인에게 나는 의대생들의 불안과 우울에 따른 다양한 고통에 대해 들었다.
스탠퍼드대학의 상담실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오는데 이 보이지 않는 발버둥을 학자들은 ‘오리 신드롬’이라 표현한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지도 모른단 불안이 이 세대에 내면화된 것이다.

앤 피터슨의 책 ‘요즘 애들’에는 끝없는 불안에 시달리는 MZ세대를 보여주며 “번아웃은 이제 우리 시대의 상태”라고 정의한다.
열심히 일해야 하지만 워라밸을 고수하고, 아이의 마음을 잘 읽어주지만 헬리콥터 부모가 돼선 안 되며, 소셜 미디어로 자기 브랜딩을 하지만 진정성 있는 삶을 사는 등 이 세대가 서로 모순된 일을 동시에 하도록 압박받는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불안의 주요 원인으로 초연결된 디지털 환경을 꼽는다.
하지만 능력주의에서 원인을 찾는 이들도 많다.

대니얼 마코비츠의 책 ‘엘리트 세습’에는 거의 모든 동료가 자기 자리에서 우는 상황을 목격했다고 사내 문화를 폭로하는 아마존 직원이 등장한다.
태어나면서부터 특권을 쉽게 유지했던 옛날의 귀족 자녀들과 달리, 요즘 엘리트 자녀들은 매 단계가 승리 아니면 탈락인 경쟁을 한다.
그는 작은 성과에도 보상의 격차가 너무 크기 때문에 경쟁이 신경증을 유발해 그 누구도 자신의 지위를 편히 누릴 수 없게 됐다고 말한다.
한 방에 훅 간다는 말이 더는 농담이 아닌 것이다.
상승할수록 하락의 불안감에 불면이 이어진다.

불공평보다 불공정에 더 분노하는 심리에 깔린 게 능력주의다.
승자도 패자도 모두가 불안한 세상이니 ‘불안의 평등’이 이뤄진 걸까. 그러나 불안은 미래 시제에 어울리는 말이다.
불행한 과거라는 말은 있지만 불안한 과거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이미’ 불행했으니 ‘벌써’ 불안할 필요는 없다.
불안이 제2의 천성이 될 때, 영혼은 부식된다.

기도에 대하여

어릴 적, 기도 중간에 실눈을 뜨고 기도하는 사람 얼굴을 보는 습관이 있었다.
쏟아지는 소망의 내용이 길수록 사람은 저마다 절박함이 깊구나 싶어 가슴이 울렁였다.
그때 내 기도는 주로 원하는 물건 목록이었다.
간절함을 담아 기도하면 이루어진다고 믿은 어린 신앙은 점점 물건뿐 아니라, 위대한 작가가 될 수 있게 해달라는 소망으로 이어졌다.
직장인이 되자 기도 시간만큼 한탄의 목록도 길어졌다.
문학 공모에서 떨어지지 않았다면, IMF만 없었다면, 집을 샀더라면 더 나은 삶을 살았을 거라 원망한 것이다.
하지만 야근 때문에 늦잠을 자고 코앞에서 놓친 버스 앞에서 나는 ‘그 장애물 자체가 내 삶’이란 걸 깨달았다.
그러니 지금까지 내 간절한 기도의 내용은 모두 틀린 것이었다.

이제 내 힘으로 어쩔 수 없을 때 기도한다.
한없이 추락하던 어느 날엔 위로를 줄 단어를 찾기 위해 기도한다.
기도의 말이 하늘에 닿기 전, 우선 내 귀와 가슴에 닿기를 원한다.
시인 ‘타고르’는 “고통을 멎게 해달라는 게 아니라 그것을 극복할 용기를 달라”고 기도했다.
성공의 은혜가 아니라 “실의에 빠졌을 때 당신의 귀하신 손을 잡고 있음”을 알게 해달라고 말이다.
나는 이제 작가로 큰 업적을 남기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는다.
대신 매일 읽고 쓸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위해 기도한다.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별하고, 이 길이 내 길이 아니라면 다른 길로 갈 수 있는 지혜를 바란다.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실망하는 이를 많이 봤다.
그러나 포기가 곧 실패는 아니다.
때론 멈추는 게 더 큰 용기일 수 있다.
그러니 기도의 응답은 바라는 걸 이루는 게 아니라, 흙탕물 같은 자기 마음을 정화해 평정과 냉정을 되찾게 하는 것이다.
이젠 기도가 스스로에게 보내는 위로와 다짐이란 생각이 든다.

만약 기도하는 모든 이의 소망이 이루어진다면 세상은 좋아질까. 우리 삶에 맑은 날만 이어진다면 이 땅은 꽃과 나무 없는 사막이 될 것이다.
어둠 속에서는 별을 볼 수 있고, 빗속을 통과하면 무지개를 볼 수 있다.

초연결 시대의 단절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아파트 단지를 걷다 보면 아이보다 지켜보는 어른이 많은 놀이터를 쉽게 발견한다.
아이가 싸우거나 다칠 때를 대비해 만반의 준비 중인 어른들이다.
미국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의 ‘불안 세대’를 읽으며 나는 이 흔한 동네 풍경을 떠올렸다.
‘불안 세대’는 현실 세계의 ‘과잉 보호’와 온라인 세계의 ‘과소 보호’가 어떻게 아이들을 병들게 하는지 분석한다.

놀이터에서 그네를 먼저 타고 싶었던 아이가 순서를 뺏기자 울면서 아빠를 바라본다.
아빠가 달려간다.
갈등을 봉합하고 놀이 순서를 다시 정하고 화해하는 데 걸린 시간은 5분. 언뜻 문제없어 보이는 이 장면에 집중 육아의 병폐가 숨어 있다.
자율적인 놀이를 통해 호기심과 독립심을 키우고, 또래와 겪는 갈등을 해결하는 법을 배우는 아이의 자연스러운 성장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하이트는 “어린 나무가 제대로 자라려면 반드시 바람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바람은 나무를 휘게 만들지만 그 속에서 나무의 세포들은 압력을 견디느라 더 단단해지고, 뿌리는 더 깊어진다.
약간의 스트레스가 면역력을 높이는 안티프래질 이론을 양육에 적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실 내가 놀이터에서 가장 문제라고 본 장면은, 놀이터의 모든 어른이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기 전까지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것이 온라인 과소 보호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망가진 건 어른의 뇌도 마찬가지다.

미국 13주에서 아동의 소셜미디어 사용을 제한하는 법률이 통과됐다.
프랑스는 13세 미만 스마트폰 사용 금지 법안 입법을 검토 중이고 호주는 16세 미만 소셜미디어 가입 금지법을 추진 중이다.
과거보다 나빠진 아이들의 정신 건강 때문이다.
모든 것이 연결된 과도한 ‘소통의 시대’는 ‘고통의 시대’로 치환되었다.
상대 마음을 읽는 ‘낭독의 시대’는 가고 ‘난독의 시대’가 왔다.
스마트폰은 이제 아이들의 여섯째 손가락이다.
이들에게 시급한 건 과도한 IT 기기를 분리하는 일이다.
초연결 시대의 단절은 이제 건강한 양육의 핵심이 될 듯하다.

삶의 끝에서 떠올리게 될 것들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버킷 리스트’ 하면 나는 죽음을 먼저 떠올렸다.
이 말을 유행시킨 영화의 주인공이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노인 둘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버킷 리스트에는 언젠가 해보고 싶었지만 하지 못한 미래 시제의 소망이 가득하다.
번지점프나 패러글라이딩 같은 것도 있지만 가장 많은 건 타지마할, 피라미드 같은 여행 목록들이다.

그런데 곽세라의 책 ‘나의 소원은, 나였다’를 읽다가 “정말 마지막 순간이 오면, 마음은 가보지 못한 길을 가려 들지 않는다.
대신 추억 속 그 길을 다시 걷고 싶어 하고 내가 알던 이들을 한 번 더 보고파 한다”라는 문장을 읽었다.
지름 21센티미터의 암을 선고받은 저자가 벼랑 끝에서 떠올린 건 버킷 리스트가 아니라 앙코르 리스트였다.
죽음이 비통했던 이유는 ‘잃어버릴 미래’ 때문이 아니라 ‘사라져 갈 과거’를 이제 다시 살 수 없기 때문이었다.

니나 상코비치의 책 ‘혼자 책 읽는 시간’에도 비슷한 얘기가 등장한다.
“종으로서의 인간의 생존은 기억하는 능력”에 달려 있고 “한순간을 다시 살아내는 능력”이 결국 우리를 살린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지금’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사랑하는 이의 죽음, 말기 암 선고 같은 극단의 상황에서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고통이 가득한 현재가 아니라, 의미 있던 과거라는 뜻이다.
아이가 치던 피아노 소리, 선풍기 앞에 앉아 먹던 수박의 냄새, 꼭 안아주던 엄마의 포옹 같은 기억이 우리를 죽음이 아닌 삶 쪽으로 이끈다는 것이다.

어쩌면 삶의 마지막 순간에 우리가 끝내 그리워할 것들은 살아보지 못한 미래가 아니라 이미 살아본 삶, 그래서 다시 살고 싶은 삶이다.
걷지 못한 길이 아니라 걸어서 함께 충만했던 길이며, 맛보지 못한 것이 아닌 맛보아서 행복했던 것들이다.
그러니 버킷 리스트는 미래와 과거 두 방향 모두에서 적혀야 하는 것일지 모른다.
죽기 전이 아니라, 생생히 살아 있을 때 말이다.
생의 마지막에 대한 생각 없이 삶의 깊이는 생기지 않는다.
어둠이 있을 때라야 빛이 의미 있듯.

불안 사회

채식주의자 친구가 있다.
그녀가 비건이 된 건 실직 후, 사람에게 갈 곳 없던 마음이 동물에 대한 사랑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중학생 때 이민을 간 한 친구는 언어와 문화 차이 때문에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했는데, 그때 그녀를 지켜준 건 방과 후 특별활동이었던 수영이었다.
도망가고 싶을 때마다 물살을 가르며 마음을 다잡았다는 것이다.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건 불행이 아니다.
‘아직 확정되지 않은 불행’이다.
예측 불가능성은 인류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다.
일관되지 않은 불안정한 부모의 애정이 아이의 내면을 망친다는 건 심리학계의 정설이다.
저출산의 기저에도 미래에 대한 불안이 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 지금 ‘일한다’는 곧 ‘새로 배운다’는 의미와 동일해졌다.
AI 같은 기술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과거에 익힌 것들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도 흔하다.
그런 탓에 현대인들은 변화의 불안을 견디기 위해 특정 생활 방식, 즉 루틴에 집착하는 경향이 커졌다.
통제를 통해 안정을 얻기 위한 것이다.

‘무례한 시대를 품위 있게 건너는 법’에서 악셀 하케는 “어떤 이들은 영양 섭취 면에서 극단적인 방법만이 세상을 구할 것이라 믿는다.
정치적 올바름에 매달리는 사람들은 언어에 엄격한 법칙을 정해 놓고 이를 지키려 한다”고 말한다.
현실에서 자신을 불안정한 존재로 느끼기 때문에 안전하고 확실한 곳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운동 중독, 채식주의, 외국인 혐오나 정치인 팬덤 같은 사회 현상을 이해해볼 수 있다.

불안한 시대를 건너기 위해 나만의 안전지대를 찾는 건 중요하다.
그것이 매일 한 개의 사과를 먹는 일이든, 만 보씩 걷는 일이든, 환경보호 단체에 참석하는 것이든 상관없다.
문제는 극단에 있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이다.
육식하는 사람을 혐오하거나, 타 종교를 이단이라 배척하고, 운동하지 않는 사람을 게으르다고 비난하는 식 말이다.
사람마다 보호색은 제각각이다.
다름을 틀림으로 오독하는 확신범들이 많을수록 오해는 이해의 강에 이르지 못한다.

내 인생 소풍이었지

어떤 남자와 결혼해야 하느냐에 대한 답을 찾았다.
‘폭싹 속았수다’의 양관식이 같은 사람이다.
‘응답하라 1988’이나 ‘슬기로운 의사 생활’처럼 이 드라마는 판타지물에 가깝다.
하지만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건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이상적 현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철학자 ‘발터 베냐민’은 짝사랑 전문가였다.
그는 ‘어떤 사람을 아는 사람은 희망 없이 그를 사랑하는 사람뿐’이라고 말했다.
첫사랑 애순이가 자신을 보든 말든 시장에서 대신 “양배추 달아요!”를 외치던 연인 관식이 그런 사람이다.
금명이가 알아주든 말든 “수틀리면 빠꾸! 네 뒤에 나 있어!”를 외치는 아빠 관식도 그렇다.
누군가를 기대 없이 사랑한다는 건 빛과 어둠 모두를 품는다는 뜻이다.
사랑은 소중해서 쉽게 집착과 욕심으로 부패하기 때문이다.

사랑에 대한 아름다운 문장을 나는 이승우의 소설 ‘사랑의 생애’에서 찾아냈다.
작가는 “진정으로 살지 않는 사람이 삶이 무엇인지 묻고, 참으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사랑이 무엇인지 알아내고자 한다”고 말한다.
그는 “중요한 건 아는 것이 아니라 삶을 살고 사랑을 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정의 내리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들어가며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좋은 사랑은 내가 나로 살고, 끝내 서 있을 수 있게 한다.
오십 넘어 모진 풍파 겪고도 애순의 문학소녀 기질이 조금도 구겨지지 않고 잘 보관돼 꽃피워 시집까지 낸 건 모두 햇살 같은 관식의 사랑 덕분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헌신과 배려로 이 순간 간신히 서 있다.
그럼에도 드라마에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살았는데!’라는 억울한 희생자인 척하기가 없어서 좋았다.

아들을 먼저 보내고도 살아내고, 또 살아진 애순이 할머니의 유언 같은 말 “내 인생 소풍이었지. 내 자식들 다 만나고 가는 기가 막힌 소풍”이라는 대사가 그래서 더 마음에 남는다.
‘폭싹 속았수다’는 제주 방언으로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뜻이다.
2025년 봄, 여러분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반추와 복기의 차이

성적, 승진은 물론이고 가위바위보에 져도 화가 치밀고, 남들이 못 사는 한정판은 꼭 사야 만족한다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성공하고 쟁취한 순간은 짜릿하지만 곧 허탈해지고, 졌을 때는 상황을 반추하며 뒤척이다 밤을 새기도 한다.
그들의 반추는 언뜻 바둑의 복기를 연상시킨다.
문득 조훈현 9단의 “이기는 기쁨에 비해 지는 고통이 너무 커서 결국 이기기 위해 복기한다”는 인터뷰가 떠올랐다.

반추와 복기의 차이는 무엇인가. 반추는 이미 끝난 나쁜 상황을 곱씹고 곱씹는 것으로 심리학자들이 최악의 감정적 습관이라 부르는 것이다.
반추가 반복되면 나빴던 과거가 몸과 육체에 들러붙어 끝없이 악영향을 끼친다.
바둑의 복기 역시 경기가 끝난 후 이어진다.
바둑기사들은 경기 후, 자신이 둔 한 수 한 수를 분석해 무엇이 좋고 나쁨을 분석하고 더 좋은 다음을 준비하는데, 그것이 복기다.

반추와 달리 복기는 ‘이기든 지든’ 무조건 한다.
복기의 기능은 승리와 패배 모두에서 배운다는 대원칙에 있다.
조훈현은 “승리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습관을, 패배한 복기는 이기는 준비”를 만들어준다고 말했다.
아플수록 더 철저히 복기하는 건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2016년, 이세돌 9단은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를 이기기 위해 평소라면 절대 두지 않을 ‘악수’를 둔다.
패배를 예견하면서도 ‘그 수’를 통해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전략적 후퇴였다.
바둑 기사에게 이미 지난 승부보다 중요한 건 그 승부를 통해 더 나은 수를 두는 것이다.
그것이 바둑 기사의 진화다.
결국 이세돌은 알파고를 이겨 본 인간 유일의 바둑 기사가 된다.

당장 이기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지는 게 두려워 회피하거나 반칙, 꼼수를 쓰게 된다.
지혜로운 교육자가 아이의 성적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자체를 평가하는 이유다.
열심히 하지 않아서 지는 게 아니다.
최선을 다해도 질 수 있다.
중요한 건 승리든 실패든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다.
행복과 쾌락이 다르듯 성장과 성공 역시 다르다.

이명이 찾아왔을 때

이명(耳鳴) 때문에 청력을 검사했다.
청력에 문제가 없다는 진단을 받고 답답함에 한숨을 쉬었더니, 의사가 백색 소음이 수면에 도움이 될 거라며 몇 가지 소리를 추천했다.
그는 사람의 목소리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도 했다.
꼭 침대맡에 오디오북이나 팟캐스트를 틀어 놓고 자는 오랜 버릇을 들킨 것 같았다.

활동하는 낮에는 크게 느끼지 못하다가, 자려고 누우면 선명해지는 이명은 높낮이와 볼륨을 달리하며 나를 괴롭혔다.
추천받은 빗소리·비행기 소음, 극저음 싱잉볼 등 다양한 백색 소음을 들었다.
그러다 점점 그냥 빗소리가 아니라 천둥이 섞인 빗소리나 폭우가 쏟아지는 대륙 횡단열차, 런던행 브리티시 에어라인의 밤 비행기 소리 같은 걸 찾아 들었다.
오른쪽 귓속에서 시작된 웅웅대는 이명의 주파수와 꼭 맞는 소리를 찾아 떠나는 긴 여정 같았다.

실제 눈을 감고 누우면 2만피트 상공의 밤하늘을 날거나, 오리엔탈 특급열차에 올라탄 기분이 들었다.
이코노미 중간석이 아닌, 일등석에 앉아 풍경을 보는 것 같은 안락함은 덤이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와 매미 소리를 틀고 잔 어느 밤에는 잊혔던 어린 기억이 떠올라 배시시 웃었다.
나만 모를까 봐 불안해서 습관적으로 켰던 지식 콘텐츠가 사라지자 밤의 상상들이 찾아왔다.
창밖은 봄, 방 안은 장마철 한여름, 어긋난 계절의 시차도 싫지 않았다.
그리고 꼬리를 무는 상상은 내 수면에 도움이 됐다.

의사는 이명에 가장 안 좋은 게 너무 조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소란스러운 카페에서 쓴 원고가 몇 권의 책이 됐던 일을 떠올리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코로나 이후, 더 위생적으로 키워진 요즘 아이들이 비염이나 아토피에 취약해진 것과 같은 이치였다.
이명과 비문증이 생긴 후, 나는 더 이상 조용하지 않고 또렷하지 않은 세상에 적응 중이다.
다만 시끄럽고 흐릿하니 나에 대한 악담은 덜 들리고, 남에 관한 허물은 덜 보이길 기도한다.
‘적응하면 괜찮아진다’는 말은 결국 사라짐이 아닌, 받아들임과 익숙함에 관한 이야기다.


JeoN -

우리의 존재 자체가 이미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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