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을 밀도 있게 살고 싶다면 공부·운동… '자발적 불편'을 즐겨보라


[정희원의 늙기의 기술]

늙었다고 편해지려는 마음이 '만악의 근원'… 기능 감퇴, 무력해질 뿐
그 결과 교수는 연구, 관료는 민생, 의사는 환자에서 점점 멀어져
편하다고 누워 버릇하면 남는건 早老한 두뇌·신체… 사실상 '고려장'

일러스트=이철원

일러스트=이철원

많은 이들이 1월이 되면 금연, 절주, 운동을 비롯해 새해 목표를 세운다.
하지만 인생의 농밀한 마지막 30년을 만들고 싶은 분들께 제안하는 새해의 목표는 ‘불편을 즐기는 마인드셋’이다.
100년을 사는 동안 계속해서 성장하는 동시에 조로(早老)를 피하기 위해 시도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노력이 있지만, 이 노력의 전제 조건으로 결국 내 몸과 머리, 마음이 불편한 것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그래픽=이철원

그래픽=이철원

증거는 차고 넘친다.
70~80대에도 몸과 뇌가 30~40대에 못지않은 ‘수퍼 에이저’들은 끊임없이 배우고, 몸을 움직이며, 사회에 참여하는 ‘현역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백세인은 독립적이고 활동적이며 사회적 교류를 놓지 않는다.
2022년 조사에서, 우리나라 백세인 중 방 안에 머무는 비율은 20%에 불과했고, 10명 중 7명이 하루에 30분 이상 바깥에서 활동을 유지했다.
편안하게 누워 있는 것을 즐기는 이들은 적은 것이다.

불편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은 어떨까? 서울아산병원과 평창군에서 수행했던 연구에서는 집에서 칩거하던 독거노인들을 바깥으로 이끌어내 주 2회 운동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했더니, 10년 치 이상의 신체 기능 향상 효과가 관찰될 정도였다.
60세 이상 성인이 새로운 것을 적극적으로 배우는 활동에 참여하면 수동적이고 편안한 활동에 참여하는 것에 비해 유의미한 기억력 향상을 경험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렇게 답은 명확한데도 정작 근골격계의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나 당뇨·지방간 등 대사 질환을 가진 환자들을 진료하다 보면 종종 ‘벽’에 부딪히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통증이 사라지기를 바라면서도 정작 근력 운동이나 스트레칭과 같은 최소한의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경우다.
심지어 “허리가/목이/무릎이 아프니까 운동하면 안 된다더라” 하는 핑계를 댄다.
맞춤형 운동 교육이 가능하다고 설명해도 단호하게 거절하고 만다.

더욱 힘이 빠지는 지점은 이들이 묻는 천편일률적인 질문들이다.
“어떤 성분이 무릎에 좋다던데요?”, “어떤 영양제가 당 수치를 잡아준다던데요?”와 같이 본인 스스로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아도 ‘빠르고 간편하게 증상을 완화해줄 것’ 같은 정보에 쏠리는 관심은 가히 하늘을 찌른다.
결국 ‘노력 없이 손쉬운 방법으로 증상을 덜어보려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한국은 어느덧 ‘도수 치료 공화국, 영양제 공화국’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현상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 전반에 깔린 인식과 태도가 드러난다.
새해 들어 무언가를 꾸준히 실행하기보다는 노력 없이 단기간에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방편에 더 혹한다.
하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삶의 지향점, 또는 삶을 운영하는 마인드셋과 얻고자 하는 생활 습관이 합치되지 않는다면 거창하게 계획한 새해 생활 습관은 그저 작심삼일이 되고 만다.
내 삶의 안쪽까지 들어오지 않는다.

이를 조금 더 근본으로 들어가 보면, 더 편해지고자 하는 마음가짐에서 모든 문제가 생겨남을 알 수 있다.
우리 사회는 더 편안한 삶을 추구하는 일을 지고지순으로 여긴다.
오래 앉아 있어도 허리가 편안한 의자나 침대, 안락한 자동차, 그리고 수많은 문명의 이기들을 떠올려 보라. 우리는 불편함을 모두 다 외주해 버렸다.

얄궂게도 편안함을 숭배하는 마인드셋은 우리 사회의 문화적 기반과도 맞물려 있다.
우리는 흔히 “연장자를 공경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실제로는 연장자를 아무 활동도 하지 않는 ‘수동적인 대상’으로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우리의 연공서열 문화는 나이가 많을수록 머리, 몸, 마음고생을 덜 하도록 만들어주는 경향이 있다.
부와 권력을 누리는 내로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요람에 누워 미음을 받아먹으며, 불편이 있으면 보채는 아기와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게 될 때가 있다.
교수는 연구에서 멀어지고, 관료는 민생에서 멀어지고, 의사는 환자에게서 멀어지려 하는 경우다.

어쩌면 이러한 모습은 근원적으로 과정에서 행복을 찾지 못하는 문화와도 맞닿아 있을 것이다.
고속 성장을 경험하던 이 사회에서 내가 하는 일과 활동들을 통해 건강한 즐거움을 얻고, 그 과정이 나를 성장시킨다고 생각할 여유가 없었던 탓일까. 그 결과는 무엇인가. 완벽히 편안한 침대에 누워 있는 것과 비슷한 상태로 100세까지 시간을 보낸다면 만나게 되는 것은 조로한 두뇌와 신체다.
결국은 점점 근육과 인지능력, 사회적 활동 능력을 잃은 채 주저앉게 된다.
스스로에게 가하는 고려장에 불과하다.

아직 기능 상태가 괜찮을 때부터 불편함을 멀리해 버릇하면 점차 내가 가진 기능들은 감퇴해서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무릎 주변 근육을 쓰지 않다 보면, 체중의 스트레스를 관절의 연골이 오롯이 받아내야 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 결과 관절염이 이미 생겨버린 다음에는 운동을 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이 된다.
활동이 줄어 기초체력이 떨어지고, 그 결과 질병이 악화되며 활동이 더욱 줄어드는 악순환은 노쇠한 몸을 부른다.
뇌 역시 마찬가지다.
적극적인 신체, 인지, 사회활동 자극이 주어지지 않으면 영역에 따라 20~40대를 정점으로 감퇴하는 두뇌의 기능이 개선될 여지는 없다.
한번 떨어진 근육량은 쉽게 회복되지 않으며, 꾸준히 써서 유연성을 유지하던 관절을 장기간 방치하면 재활 과정이 더 길어질 뿐이다.

불 보듯 뻔한 편안함의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바꾸려면 삶을 운영하는 마인드셋 자체를 바꾸는 것이 정답이다.
그래서 나는 생각을 바꾸어 ‘불편함’을 내 편으로 만들어보는 연습을 올해의 목표로 여러분께 권하고 싶다.
지금 잠깐의 불편함은 미래의 나에게 훨씬 더 큰 편안함을 선사해 줄 것이다.

무한 노동 끝내고 '스마트 노동'… 그래야 고령층·젊은층 둘 다 일할 수 있다

세계 최장 수준 근로시간, 생산성 낮추고 아이 낳기에 부적합
고령자도 파트타임 일하는 일본, 젊은층 줄어도 취업자수 비슷
이젠 65~74세도 일할 때… 공부·휴식·노동 평생 병행 '새 모델'

그래픽=이철원

그래픽=이철원

독일의 과학 유튜브 채널 ‘쿠르츠게작트’는 최근 공개한 영상 ‘한국은 끝났다(South Korea is over)’에서 한국의 암울한 미래를 경고했다.
초저출산이 근거였다.
요지는 극단적 출산율 저하로 현재 100명의 한국인이 4세대가 지나면 불과 5명으로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노년 부양비 폭증으로 연금과 사회 전반 시스템이 붕괴해 사회가 존속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태의 주원인으로 살인적 경쟁과 장시간 노동 등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들어, 젊은 세대가 아이를 낳고 싶지 않게 만드는 문화를 비판했다.
출산 장려를 위한 극적인 정책 변화만이 장기적 회복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그동안 ‘늙기의 기술’ 시리즈에서 살펴본 것처럼 인구 피라미드만이 사회의 모든 것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건강하게 나이 들며 활기 차게 노년을 보낼수록 실질 노년 부양비는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이제 65세는 더 이상 일할 수 없는 연령이 아니다.
능력과 건강이 허락한다면 언제라도 사회에 기여하고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이런 변화는 부양비 계산식의 분모와 분자를 바꾼다.
65~74세 상당수가 부양하는 쪽(분모)에 남게 되고, 그만큼 실제 부양이 필요한 노인(분자)의 범주는 줄어든다.
2022년 발표한 한 연구에서는 사람들의 건강 상태를 반영해 부양비를 다시 계산했더니, 한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의 실질 부양 부담 지표가 종전 통계보다 낮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그래픽=이철원

그래픽=이철원

그럼에도 젊은 세대가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기 위해서는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크게 바뀌어야 한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에 꼭 필요한 것은 충분한 소득과 돌볼 시간이다.
아이를 키우는 건 기술적으로는 어르신을 위한 상주 간병과 유사한 작업이다.
이건 한국 사회의 노동 환경과 양립 가능하지 않다.
노벨상을 받은 클라우디아 골딘은 ‘탐욕스러운 직장(greedy job)’과 ‘덜 탐욕스러운 직장(less greedy job)’을 비교했다.
전자는 근로자의 시간·에너지를 거의 무제한으로 요구하는 일자리이며, 후자는 근로자의 삶과 일의 균형이 상대적으로 잘 유지되는 조직 문화를 가진 직장인을 말한다.
두 종류 직장을 비교한 골딘은 육아를 담당하는 여성들이 주로 후자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 성별 임금 격차가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한국의 직장은 기본적으로 꽤 탐욕스러운 편이라 할 수 있다.

여전히 우리는 전 세계 최장 수준으로 일하는데도 52시간도 모자라 69시간을 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통근 시간도 아주 긴 편이다.
그래서 한국의 젊은 세대는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가질 여유가 없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하반기 기준 18세 미만 자녀를 둔 부부 중 맞벌이 비율은 56.8%로 역대 최고치였다.
심지어 기성세대는 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려 하는 것 같다.
실제로 서울대 병원의 기성세대 교수 4인은 지난 3월 언론에 발표한 성명서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지금 교수들은 전공의 시절 거의 매일 병원에 머무르며 환자를 돌보고, 배우고, 익히며, 성장했습니다.
140~150시간씩 일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그 과정이 오늘의 한국 의료 수준을 만든 기반이라는 것을요.”

그 분들이 그랬다는 건 물론 아니지만, 수면 박탈과 과로는 심각한 판단 능력 저하를 초래하므로 불필요한 의료 사고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이라는 말이 따라붙지만, 우리보다 상황이 낫다.
영국 런던정경대의 찰스 굿하트 교수는 2020년 연구에서 노동 가능 인구가 연 1% 감소하는 동안에도 1인당 GDP는 연 1% 증가했다며, 노동자 1인당 생산성이 연 2%씩 향상돼 인구 감소분을 상쇄했다고 했다.
젊은 세대가 더 착취적인 장시간 노동을 감당해야 한다는 우리 사회의 담론과는 정반대다.
일본의 생산 가능 인구는 1985년을 100으로 지수화할 때 1990년대에 정점을 맞은 뒤 지속적으로 줄어들었고, 근로시간 역시 감소해 왔다.
하지만 전체 취업자 수는 지금까지 비슷하게 유지돼 왔다.
부족한 젊은 노동력을 보완하기 위해 고령층의 파트타임 취업과 시간제 일자리가 확대됐기 때문이다.

일본에선 유연한 직무 계약이 일상화된 덕분에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매주 8~24시간 정도로 짧게 일하며 세대 간에 일자리를 나눠 가졌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고질적 연공제의 개념이 희미해졌다.
결과적으로 고령자 고용 장려로 숙련된 인력이 오래 일할 수 있게 됐다.
여기에 자동화와 해외 투자를 통해 국내 인력 감소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노력이 더해지기도 했다.
그 결과 일본은 완전 고용에 가깝게 실업률을 낮게 유지하면서도 고령화에 따른 경제 위기 없이 국민들이 안정적 소득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많이 늦었지만 우리도 일에 대한 생각을 바꿀 때가 왔다.
농업적 근면성과 근태, 포괄적 임금 계약을 통한 무한대 노동을 중시하는 데서 벗어나야 한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생산성을 높이고 시간은 줄이는 스마트 워크로 대전환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지금이 지식 경쟁 사회가 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제는 우리 사회가 ‘21세기형 인생 모델’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 모델은 김현곤 전 국회미래연구원장이 주창한 개념으로서 공부, 휴식, 노동이 모두 합쳐져 평생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일자리가 유지되면서 더 오래 일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생산성이 오르고, 아이도 낳아 키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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