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동물을 사랑하는 에디터 Woon이에요. 애니메이션 역사에서 가장 성공한 작품 중 하나는 ‘니모를 찾아서’예요. 수컷 아비 혼자서 어린 물고기 니모를 키우다가 잃어버리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를 다뤄요. 물고기 관점에서 가족의 사랑을 깨닫게 하는 눈물겨운 작품이죠. 픽사에서 ‘토이스토리’에 이어 가장 성공한 애니메이션으로 통해요.
아주 뭉클한 이야기지만, 다 된 밥에 재 뿌리는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니모가 속한 흰동가리에 엄청난 비밀이 숨어 있기 때문이에요. 본격적인 동심파괴, 바로 들어갈게요
"아들아, 저 세상 밖은 위험한 곳이야." 영화 '니모를 찾아서' 한 장면. /사진=소니픽쳐스
‘니모를 찾아서’ 얘기부터 시작할게요. 주인공 말린은 아내와 수백개 알을 낳고 행복에 젖어 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아내와 알들을 바다뱀장어가 먹어 치워 버렸죠. 그에게 남은 건 아들 ‘니모’뿐이었어요. 하나뿐인 아들 금지옥엽 키우면서 과잉보호로 일관한 이유였어요.
답답한 양육방식에 지쳐가던 니모가 결국 모험을 단행하다가 인간에게 납치되어 버려요. 인생의 전부인 아들을 되찾기 위해 말린은 니모를 찾아 나서죠.
이제부터 진실에 접근할 시간이에요. 암컷 흰동가리는 조직에서 우두머리에요. 여러 수컷을 거느린 아주 힘센 존재죠. 그런데 사고로 암컷이 죽어버렸어요. 이제 남은 건 수컷 여러마리 뿐. 어느 순간 이상한 일이 벌어져요. 수컷 한 놈이 어느새 암컷으로 변해있었기 때문이에요. 명백한 성전환이 일어나는 거예요. 새로운 암컷은 또 수컷들과 체외수정으로 알을 낳고 조직을 이끄는 역할을 하죠.
흰동가리 녀석들의 신기함은 이뿐만이 아니에요. 녀석들이 처음에 모두 수컷으로 태어나거든요. 그중에서 가장 덩치도 크고 리더십도 있는 녀석이 암컷으로 성전환이 일어나죠. 마치 왕으로 간택이라도 받은 듯이요.
"인간들이 사는 곳에는 두지라는 신기한 동물도 있대." 모험을 떠나는 니모. /사진=소니픽쳐스
이 암컷 녀석이 불의의 사고로 죽어버리면 다음으로 큰 수컷 녀석이 여왕의 역할을 승계해요. 그 외의 녀석들이 암컷이 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죠. ‘니모를 찾아서’에 대입해보면, 주인공 말린은 여성으로 변한 뒤 다른 수컷의 알을 낳게 되는 거예요.
모든 신기한 현상에는 진화적 이유가 있어요. 이같은 성전환 방식이 종 전체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해 왔기 때문이에요. 성이 고정돼 있는 것보다 수컷 중 가장 튼튼한 녀석이 암컷 역할을 해주는 게 훨씬 이득이어서예요.
흰동가리는 몸집이 더 클수록 알을 많이 낳는데, 수컷 중 가장 덩치가 큰 놈이 암컷으로 전환되는 구조예요. 결국 가장 좋은 유전자를 가장 많이 퍼뜨릴 한 놈만 ‘추대’하는 시스템인 거예요.
나머지 수컷은 태어난 알을 열심히 관리하고 보호하는 역할을 자처하죠. ‘니모’ 아빠의 부성애는 어느 정도 현실에 부합하는 셈. 흰동가리 녀석들이 어쩐지 대단해 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