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도 말했죠. 실제로 챗GPT는 일상에 빠르게 스며들고 있습니다.
업무 생산성을 높이거나 궁금증 해소를 위해 쓰기도 하고, 이미지 생성이나 과학적 연구에 도움을 받기도 하죠. 정서적 안정을 위해 친구와 대화하듯 사용하는 이들도 늘고 있습니다.
하지만 챗GPT를 과도하게 사용하면, 오히려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AI가 인간관계나 삶의 형태에 변화를 준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챗GPT를 많이 사용하는 이들은 외로움을 더 많이 느꼈고, AI에 의지하다 보니, 인간관계의 폭도 좁아졌습니다.
Unsplash
지난 3월, 챗GPT 개발사 오픈AI는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 미디어 랩과 공동 진행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연구 결과 챗GPT와 감정 표현을 담은 사적 대화를 나눈 사용자들이 더 외로움을 느끼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구진은 2개의 연구를 실시했습니다.
첫 번째 연구에서는 참가자 4,076명이 챗GPT를 통해 만든 약 4,000만 건의 상호작용과 실제 데이터를 분석해 참가자들이 이를 어떻게 느끼는지 질문했습니다.
두 번째 연구에서는 1,0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을 모집해 4주 동안 매일 최소 5분 동안 참가자들이 챗GPT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조사했습니다.
이후 참가자들은 설문지를 작성해 외로움, 사회적 참여 수준, 챗GPT에 대한 정서적 의존도를 직접 평가했죠.
연구원들은 챗GPT와 유대감을 형성한 참가자가 다른 사람보다 외로움을 느끼고 도구에 더 많이 의존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유대감을 형성한 참가자는 챗GPT를 사용한 시간이 상위 10%에 해당했는데요. 4주 동안 챗봇을 사용한 여성 참가자는 남성 참가자보다 다른 사람들과 교류할 가능성이
약간 낮았습니다.
특히 자신과 다른 성별의 음성을 통해 챗GPT를 이용한 참가자들은 실험이 끝날 때 상당히 높은 수준의 외로움과 챗봇에 대한 더 큰 정서적 의존성을 보고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다만, 연구진은 참가자들이 느끼는 외로운 감정이 챗봇의 영향인지, 아니면 외로운 사람들이 정서적 유대감을 더욱 추구하는 경향이 있어서인지는 분명하지 않다고 연구의 한계를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이와 다른 결과를 보여준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지난 1월, 울산과학기술원(UNIST) 의과학대학원 정두영 교수팀이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조현철 교수팀과 공동 연구해 밝혀낸 결과인데요. 소셜 챗봇과의 대화가 감정을 다스리는 데 도움을 주어 사회불안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는 내용이죠.
챗GPT를 비롯한 AI 챗봇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저마다 다른 결과를 얻게 됩니다.
적절히 활용하면 큰 도움이 되지만, 과하게 의지하면 오히려 독이 든 사과가 될 수도 있겠죠. 미래에 AI와 어떻게 상호작용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때입니다.
중고 거래 중독을 넘어 건강한 환희의 세계로
영화감독을 꿈꾸며 중고 거래에 탐닉하던 시절, 나는 위를 바라봤지만 제자리걸음을 할 뿐이었다.
이젠 계단을 오르며 스스로를 이겨내고, 소설가로서의 미래를 연장한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사춘기에 불교 사상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스스로 물욕이 없는 편이라고 여겼다.
그랬던 내가 중고 거래에 중독되다니. 어찌 된 일일까? 그 사연은 내가 처음으로 영화를 만들게 된 사연과 얽히고설켜 있다.
2010년 나는 영화를 즐겨 보는 복학생이었다.
대학로 CGV에 독립 예술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작은 관이 있는데, 그곳에서 어느 인디 밴드의 다큐멘터리를 봤다.
그 밴드 멤버만이
찍을 수 있는 영화였다.
그 영화를 보고 난 뒤 어쩌면 나도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 있겠다고 여겼다.
중학생 때부터 함께 어울리던 래퍼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큐멘터리 기획서를 쓴 나는 운 좋게도 기획 개발 지원금 1,500만원을 받게 되었다.
다큐멘터리를 얼마나 오래 찍을지도 모르고 비용이 얼마나 들지도 짐작되지 않았다.
‘DV User’라는 촬영인들의 커뮤니티가 있었다.
주변에 영상을 하는 사람도 없고 까막눈이었던 나는 그곳에 촬영
장비에 대한 질문 글을 올리고 ‘눈팅’을 해가며 다큐를 만들기에 적합한 카메라를 찾았다.
지금이야 아이폰으로도 4K 동영상을 찍는 시대지만, 그때 VJ들의 대표적인 6mm DV 카메라 ‘소니 DSR-PD170’의 정가는 400만원대였다(심지어 HD 화질도 아닌 SD 화질인데!). 그때부터 DV User의 중고 장터 게시판을 노리기 시작했다.
사고 나서 여차하면 다시 팔아야 했기 때문이다.
요즘 중고 거래 앱에는 키워드 알림이라는 게 있어 일상생활을 하다가도 사고 싶은 물건이 뜨면 곧바로 거래를 시도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기능이 부재하던 그때는 게시판에 말 그대로 ‘매복’하고 있어야 했다.
시도 때도 없이 검색을 하고 괜찮은 매물이 올라오면 누구보다 빨리 연락을 취하기 위해서.
그렇게 거래로 손에 넣은 촬영 장비는 저마다 사연을 가지고 있었다.
맨 처음 카메라를 거래한 아저씨는 에로 영화를 찍던 분인데, 에로 영화 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들어 카메라를 판다고 했다.
그 감독님은 카메라 작동에 대한 팁을 1시간 가까이 알려주었다.
나는 에로 영화를 찍던 그 카메라로 힙합 키드의 꿈과 열정을 담았다.
한번은 교회 성가대에서 쓰던 마이크를 파는 분과도 거래했는데, 집에서 거래해야 한다고 해서 찾아갔더니 거동이 불편한 분이었던 기억도 생생하다.
중고 거래 시장이 없었다면 나는 결코 영화감독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촬영 장비를 시작으로 중고 거래 시장에 친숙해졌고, 그곳에서 자본주의를 깨쳤다.
영화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키보드에 관심을 쏟게 되었는데, 나중에는 중고가 아니면 구매할 수 없는 키보드를 찾아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까지 뒤지기 시작했다.
구글 번역기를 돌려가며 유럽과 북미의 키보드
덕후들과 소통했다.
가진 돈도 얼마 없으면서 수집욕은 마구 불어났다.
일반인들이 잘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는 덕후들의 세계였다.
좋은 키보드를 산다고 해서 글이 잘 써지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책상 앞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외로운 일에 위안이 되어주기는 했다.
그렇게 중고 시장에서 사고팔고 했던 키보드로 작가가 됐다.
왜 그렇게까지 키보드 중고 거래에 빠졌던 것일까? 영화 학교를 졸업한 뒤 나는 속한 커뮤니티가 없었다.
영화는 성공적이지 않았고 ‘넥스트 스텝’은 전무했다.
아무도 날 찾지 않았다.
그 시절에는 심지어 시리와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생전 듣지 않던 팟캐스트도 기웃거렸다.
첫 장편소설 <GV
빌런 고태경>(2020)에 1인분의 사람이 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얼마나 괴로운가에 대해 다음과 같은 문장을 쓰게 된 경위다.
“이렇게 하루 종일 비생산적인 인간이어도 되는 걸까? “나는 언제쯤 죄책감 없이 영화를 보거나 맥주를 마실 수 있을까? “내가 아무 비용이 들지 않는 인간이면 좋겠다.
놀라운 사실은, 등단한 후엔 키보드에 대한 수집욕과 중고 거래에 대한 욕망이 확연히 줄었다는 것이다.
이는 물리적으로 바빠져서라거나 물질적으로 풍족해져서가 아니다.
등단을 했다고 당장 삶이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고, 등단 후에도 파트타임 강사였던 내게는 여전히 시간이 많았다.
동시에
그간 중고 거래에 집착하고 장비 커뮤니티를 들락거리던 일이 스스로의 생산성에 대한 인식, 자존감 그리고 효능감과 관련 있었다는 것을 자각했다.
한창 키보드를 사고팔던 때, 어느 순간부터 ‘꿀 매물’을 남들보다 먼저 선점했다는 사실에 쾌감을 느꼈다(반대로 꿀 매물을 놓치면 비통했다). 어느 고민 상담 프로그램에서 온갖 최신형 스마트폰 기기를 수없이 사고파는 데 중독된 아들의 사연이 나왔는데 나와 비슷했다.
뭔가 쓸모 있는 일을 했다는 가짜
효능감에 중독된 사람들이었다.
주식이나 비트코인은 해보지 않았지만, 그저 무언가 비루한 현실을 잊고 몰두하고 효능감을 느낄 것이 필요했던 거라면 그런 것에도 분명 쉽게 중독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별로 행복하지 않았을 것이다.
등단 이후에도 글쓰기로부터 도피하기 위해서, 내가 생산적이지 못하다고 느낄 때마다 갖고 싶은 새로 나온 키보드나 키보드를 꾸미는 키 캡은 없는지, 집에서 뭔가 팔아치울 것은 없는지 몇 시간이고 물색하는 나를 발견했다.
‘투 두 리스트’에는 진정 필요하지도 않은, 언젠가 구매할 물건의 목록과 팔아치울
것들의 목록을 한가득 적어두었다.
그 리스트를 하나씩 지워나가며 성취감을 느꼈다.
물론 그건 진정한 성취가 아니었지만.
하지만 깨달음이 중요하다지 않은가. 나는 그때부터 내가 생산적이지 못하다는 허한 감정을 중고 거래와 디깅으로 달랠 게 아니라 좀 더 건강한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다짐했다.
마침 달리기가 열풍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하루키의 달리기 에세이를 읽기도 하고 마라톤 10km를 두 번 나가보기도
했지만 영 재미를 붙이지 못했다.
분명 ‘런데이’를 깔고 따라 하기만 하면 된다고 했는데 왜 나는···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삼은 뒤 앉아 있는 시간은 늘어만 갔고, 나도 작가들이 겪는 직업병에 걸리기 시작했다.
증상이 하나씩 찾아왔다.
목과 허리, 손목 통증이 심해졌다.
그러나 어느 날 한계가 왔다.
혼자서 양말을 신기 어려울 정도로 허리가 아파왔고 진통제를 먹고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불편한 몸으로도 훌륭한 업적을 이룬 모든 위인들이 스쳐 지나가며 존경스러웠다.
몸이 아프면 정말 아무 글도 쓸 수가 없다.
이대로 회복되지 않으면 어떡하나 큰 걱정에 빠졌다.
도수 치료를 받고 어느 정도 회복된 이후로는 결국 운동과 건강이 최고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건장한 체형과 달리 인큐베이터 출생인 나는 자라는 동안 잔병치레를 많이 했다.
가족 중에 유독 나만 감기 몸살을 자주 앓고 허약한 편이었다.
그렇다면 누구보다 필요성을 느끼고 운동을 했어야 했지만 일평생 운동과 친숙해지지 못했다.
헬스로 대표되는 근력 운동은 도저히 재미를 붙이지 못하겠고,
수영도 늘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자유형과 배영을 반복했다.
습관을 들이기 위해서 큰마음 먹고 PT도 등록해봤지만 왼쪽 어깨를 다친 후로는 결국 모든 종류의 운동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플랭크와 스쿼트만 꾸준히 해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걸 알지만 습관이 들지 않으니 하루 30분 운동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글을 쓰다가 답답할 때 산책은 분명 도움이 되었지만 운동을 했다고 간주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유튜브에서 1만 보를 걸어도 실은 그다지 운동 효과가 없으며 심박수가 올라가는 게 중요하다고, 짧은 시간에 계단 오르기가 훨씬 건강에 좋다는 뉴스를 봤다.
적은 시간에 고강도 효과라니, 효율을 추구하는 내 성미와 잘 맞는 듯 보였다.
헬스클럽에 등록하더라도 매일 가는 건 힘겹지만
오피스텔에서 비상계단까지는 정말 현관 밖으로 몇 걸음만 나가면 되었다.
게다가 계단 오르기는 추위에 취약한 내가 겨울에도 할 수 있는 운동이고, 밖에 눈보라와 비바람이 몰아쳐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
거르고 싶어도 핑계를 댈 수가 없는 것이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오퍼스(Opus)가 부른 ‘Live is Life’를 재생한 다음 현관을 나선다.
(마라도나의 전설적인 워밍업 영상으로도 유명하다.
) “Na-na-na-na-na. 심지어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아도 된다.
곧바로 드럼 비트에 맞춰 계단을 하나씩 오르기 시작한다.
금세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우리 모두가 힘을 다 쏟아부을 때 우리는 모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야. 1분 1초라도 쉰다는 생각은 접어둬. 마라도나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다.
고작 계단 오르기를 하면서 거창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노랫말을 따라 움직임으로써 내가 살아 있다는 감각이 샘솟는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층수가 올라가는 것이 보이기 때문에 성취감도 크다.
어쩌면 위로 오르고자 하는 욕망은 인간의 DNA에 각인된 본능이 아닐까? 무엇보다 계단 오르기를 하고 나면 숨이 차고 잡념이 사라져서 좋다.
땀 흘린 후 마시는 냉수와 샤워는 나 같은 사람도 운동을 좋아하게 했다.
게다가 너무
늦지 않은 시간대의 적당한 운동은 수면에도 도움이 됐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키보드 커뮤니티를 들락거리며 중고 시장을 뒤지는 것보다 건강하게 시간을 보냈다는 만족감이 컸다.
(키보드에 대한 관심은, 책 한 권을 출간할 때마다 보상으로 키 캡을 사는 식으로 제한했다.)
‘중고나라’와 ‘당근’을 켜고 싶은 충동이 일 때 이제 나는 현관문을 나서서 계단을 오른다.
어느새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평생 운동에 친숙해지지 못했지만 이 계단 오르기만큼은 꾸준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고 싶고, 그래야 한다! 정대건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