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사베이
곽노필의 미래창
한국 포함 12개국 대상 설문조사
외향적·개방적·모험 추구 등 꼽혀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의 하나로 우리는 ‘좋은 사람’ 또는 ‘선한(또는 착한) 사람'이란 표현을 곧잘 쓴다.
영어의 ‘굿’(good)이란 단어엔 이 두가지 뜻이 다 담겨 있다.
하지만
어느 사이엔가 이에 못잖게 즐겨 쓰는 새로운 잣대가 생겼다.
‘쿨(cool)하다’는 표현이다.
세계화와 함께 ‘쿨하다’는 이제 세계인이 쓰는 공용어처럼 돼버렸다.
하지만
쿨하다는 말이 갖고 있는 정확한 의미를 한 마디로 콕 집어 말하기는 어렵다.
영어사전에서도 차분하다, 멋지다, 좋다, 매력적이다, 시원시원하다는 등 여러가지 뜻을 갖고 있는 것으로 설명한다.
미국과
칠레 공동연구진이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12개국 6천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통해 ‘쿨하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들의 공통 특성을 뽑아내 국제학술지 ‘일반 실험심리학저널’(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 General)에 발표했다.
설문조사는
서구 문화권 5개국(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독일, 남아공, 스페인)과 비서구 문화권 7개국(인도, 튀르키예, 멕시코, 칠레, 중국 본토와 홍콩, 한국, 나이지리아)에서 진행했다.
연구진은 이들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쿨한 사람, 쿨하지 않은 사람, 좋은 사람, 좋지 않은 사람을 떠올리도록 한 뒤, 이들의 성격 특성이 15가지 중 어떤 것에 해당하는지 평가하도록 했다.
동서양 막론하고 똑같은 결과 나와
답변을
분석한 결과, ‘쿨한’ 사람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6가지 특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쿨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대체로 외향적이고 쾌락을 추구하며, 단호하고(powerful) 모험심 많고 개방적이고 자기주도적(autonomous)이었다.
공동연구자인
애리조나대 케일럽 워런 교수(소비자심리학)는 뉴욕타임스에 “쿨하다는 것에 대한 기준은 사는 지역과 나이, 소득이나 교육 수준, 성별에 관계 없이 비슷했다”며 “어디에서나 거의 똑같은 결과가 나왔다는 점이 놀라웠다”고 말했다.
설문
조사에서 연구진은 ‘쿨’이란 단어를 각 나라의 말로 번역하지 않고 영어 그대로 제시했다.
이는 서유럽의 쿨이란 개념이 이미 세계인들에게 익숙해졌음을 시사한다.
하버드대 조셉 헨리히 교수(인류학)는 “미국은 전 세계적으로 음악을 포함한 엄청난 문화 콘텐츠를 확산시켰는데, 여기엔 쿨이라는 개념도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반면
‘좋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전통을 존중하고 순응적이고 안정을 추구하며, 온화하고 원만하고(agreeable) 보편주의적 가치를 지향하고, 성실하고 차분하다는 점이 특성으로 꼽혔다.
또 쿨한 사람과 좋은 사람은 모두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유능(capable)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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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변화 시대엔 ‘쿨한’ 특성 더 중요
쿨한 사람은 좋은 사람이기도 할까?
워런
교수는 “쿨한 사람과 좋은 사람은 몇가지 겹치는 특성이 있지만 쿨한 사람은 도덕적 차원에서 ‘좋은’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 특성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쾌락을 추구하거나 단호한 성격은 좋은 사람과는 다른 특성이다.
공동저자인
칠레 아돌포이바녜스대의 토드 페추티 교수(마케팅학)에 따르면 ‘쿨’이라는 개념은 1940년대 흑인 재즈음악가들과 1950년대 비트족 등 반항적 문화 기류에서 시작됐다.
그는 “사람들은 쿨해지기를 원하거나 적어도 쿨하지 않다는 낙인을 피하고 싶어한다”며 “쿨한 사람들은 관습에 도전하고, 변화를 촉진하고, 문화를 발전시키기 때문에 사회엔 쿨한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회가 급변하면서 창의성과 변화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쿨한 사람들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를 통해 ‘쿨하다’는 말이 ‘좋다’거나 ‘선하다’는 말을 대신하는 표현이 아니라, 문화적 배경에 관계없이 공통적인 사회적 개념이 됐다는 걸 밝혀냈다는 데 의미를 뒀다.
연구의
한계도 있다.
쿨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은 조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따라서 각 나라에서 이 단어가 얼마나 자주 사용되는지, 쿨함이 사회적 지위를 얼마나 높여주는지는 파악할 수 없었다.
참가자의 평균 연령도 30살 이하로 젊은이에게 편중돼 있었다.
*논문 정보
Cool People, 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 General(2025)
https://doi.org/10.1037/xge0001799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임우진 | 프랑스 국립 건축가
한국의
인테리어 유행 주기는 패션이나 요식업 못지않게 빠르다.
2010년대를 전후해 한창 유행했던 ‘인더스트리얼’ 스타일이 주춤하자, 곧이어 자리를 차지한 것은 이른바 ‘공사장’ 콘셉트였다.
성수동, 문래동, 을지로처럼 요즘 ‘핫플’이라 불리는 지역에선 벽체가 마감되지 않고, 천장의 배관이 고스란히 드러난 공간들이 오히려 더 ‘감각적’으로 여겨진다.
말 그대로 아직 공사가 끝나지 않은 듯한 공간, 혹은 일부러 그렇게 보이게 만든 인위적 미완성의 풍경이 젊은 세대의 취향을 사로잡는다.
한때는 영화 속 폭력배의 소굴처럼
묘사되던 저급하고 기피 대상이던 장소들이 어느 순간 멋지고 ‘힙’한 공간으로 뒤바뀌게 된 이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주목할 또 다른 흐름이 바로 노출콘크리트 건축이다.
콘크리트는 현대 건축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구조재지만, 외장재나 도장 없이 거푸집을 뗀 채 그대로 마감하는 ‘노출’ 방식은 오랜 시간 대중의 거부감과 싸워야 했다.
서양에서 ‘브루탈리즘’(Brutalism)이라는 다소 거친 이름이 붙었던 것도 그 회색의 무표정함, 건조함, 비인간성 때문이었다.
특히 전후 유럽에서 이 방식이 유행한 배경에는 재건과 속도, 저비용이라는 절박한 시대 조건이 있었다.
그러나 한 세대도 안 돼 이런 건축은 도시를 슬럼화시킨 ‘근대화의
실패’로 여겨졌고, 지워버리고 싶은 ‘흉물’ 건축에 단골로 선정되기도 했다.
반면
한국에서 노출콘크리트가 유행하게 된 과정은 이와 다르다.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등장이 결정적이었다.
정규 건축교육을 받지 못한 탓에 학벌도 인맥도 없던 무명 시절, 적은 예산으로 집을 지어야 했던 상황에서 뭐라도 짓기 위한 고육지책이 바로 노출콘크리트였다.
단열에도 취약하고 마감도 까다롭지만, 재료 본연의 질감에 빛, 물 같은 자연 요소를 극적으로 끌어들인 그의 건축은 1980~90년대 한국의 많은 건축가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빠듯한 예산 속에서도 효과적인 표현을 찾아야 하는 현실에서 일종의 돌파구처럼 받아들여진
것이다.
하지만 벽돌이나 페인트로 마감된 건물에 익숙했던 대중은 거친 회색 콘크리트에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그러나 몇몇 건축가들이 송판 거푸집이나 밝은 색조의 콘크리트를 시도하며 기존의 차갑고 건조한 이미지를 극복했고, 그 결과물은 서서히 도시에 스며들며 시민에게 익숙한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회색 콘크리트를 받아들이게 된 걸까. 왜 공사가 덜 끝난 듯한 공간에서 세련됨과 멋을 느끼게 된 걸까. 이는 단순히 감각이 변했다기보다, 익숙함이 쌓인 결과에 가깝다.
한때 흉물로 비난받던 철재 구조물 에펠탑이 프랑스의 상징이 된 것도, 매일 그것을 마주한 도시인들의 시선 속에 점차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숭례문 화재 당시 많은 시민들이 눈물을 흘린 것도, 그 건물이 미학적으로 대단히 아름다워서라기보다 늘 곁에 있어온 너무도 익숙한 풍경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도시의 미학은 시각적 완성도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이 매일 스쳐 지나는 공간 속에서, 흠결과 어색함을 반복적으로 목격하고 그에 익숙해질 때 공간은 결국 무의식적인 ‘아름다움’이 된다.
공사장과 같은 미완의 공간이 ‘힙’해지고, 회색의 콘크리트가 낭만이 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결국, 아름다움은 시간이라는 차원이 더해질 때 비로소 생명력을 가지는, 생각보다 훨씬 더 일상적인 감각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