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슬로우어스 어르신은 뇌경색과 협심증이 1년 전 연달아 발병해, 현재는 거동을 전혀 못하고 누운 채 지내며 의사소통도 어려웠다.
[노 땡큐!]아픈 부모 돌보기, 너무 소진하진 않기를 호흡곤란이 심해 보조장치가 필요할 정도였다.
게다가 함께 사는 아내 역시 인지 저하가 심하고 거동이 힘들어 남편을 돌볼 수 없고 오히려 돌봄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보호자인 딸은 직장 근무를 줄이고 요양보호사와 교대로 부모를 돌봤지만, 24시간 전적인 돌봄이 필요한 상태라 역부족이었다.
80대 중반인 부모
두 분이 모두 돌봄이 필요해, 딸은 다른 일을 할 수 없었다.
결국 딸은 몇 달 전 직장을 그만두고 부모 곁을 지키게 됐다.
자신이 유일한 자녀라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아무리 하나뿐인 자녀라 해도
보호자는 “아버지가 다행히 치료를 잘 받아서 이렇게 지내고 있어 감사하다”고 했다.
지난 한 해 동안 가족이 겪은 험난한 시간이 생생히 와닿았다.
보호자는 담담히 그간의 상황을 전하고 현재 문제가 되는 환자의 증상에 대해 질문했다.
식사량과 식사 시간, 수분 섭취량, 배변·배뇨 시간을 매일 꼼꼼히 기록한 파일을 보여주며 환자 상태를 설명했다.
오래된 연립주택 1층, 넓지 않은 집이었지만 방에서 욕실까지는 제법 거리가 있었다.
딸은 예전에 찍어둔 동영상을 보여주며,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아버지를 뒤에서 들어 욕실로 모셔서 매일 씻긴다고 했다.
아버지는 전혀 힘을 쓸 수 없을 뿐 아니라 체구도 제법 커서 이동이 쉽지 않아 보였다.
다행히 요양보호사가 도와줘서 번갈아 욕실로 이동해 씻기고 있었다.
우리는 상황을 잘 파악하기 위해 보호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고 궁금한 점은 조심스레 물었다.
몇 번 찾아 혈액검사를 하고 약 복용과 수분 섭취, 식사량 등을 조언했다.
중간중간 문자와 전화로 상황을 주고받기도 했다.
환자는 이전처럼 비교적 안정적으로 지내셨다.
어느 날 방문했을 때,
보호자의 지친 기색이 느껴져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어쩌면 이 상황이 오래 유지될 거예요.
초기에 갑작스러운 상태 악화로 병원에서 수술하고 입원할 때는 급격한 변화가 있었겠지만, 지금은 비교적 안정적인 상태가 당분간 유지될 거예요.
하루하루 너무 애쓰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조금은 마음을 내려놓고 차분히 부모님 곁에 계셔주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그러면 오히려 아버님도 더 편안해지실 거예요.
”“씻는 걸 하루 건너뛰어도 괜찮겠죠?”환자 관리를 잘하고 있으니 하루이틀 어떨 때는 며칠 욕실로 모시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씀드렸다.
오히려 그렇게 해야 더 잘 지내실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버지를 매일 들어 욕실로 모셔 씻기는 일은 육체적으로 큰 무리가 된다.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보호자도 이 시기를 정신적·육체적으로 너무 힘들게만 기억하지 않기를 바랐다.
다 함께 좋은 기억 만들어갈 시간
아픈 부모 돌보기를 자기 일로 받아들이고 성실히 해내는 딸의 모습을 보며 감동했다.
동시에, 그 자신이 너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고 이 간병의 시간이 나쁜 기억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
그 댁을 가끔 찾는 의료인으로서 우리 역할은 단지 신체적 건강만을 살피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보호자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 상황을 해석하고, 적절한 조언을 건네는 일까지 포함되는 것 같다.
물론 내가 해내기 어려운 일이라 실수도 자주 한다.
어쨌든 어르신들과 보호자, 그리고 우리 모두 이 시간을
좋은 기억으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즐겁지만은 않은 돌봄의 시간을 너무 소진하지 않으면서도 의미 있게 만드는 모두의 숙제를 함께 잘 풀어나가야겠다.
털도, 점도, 흉터도 없는 ‘아름다운 여성의 몸’?
여태까지 전시를 하면서 모아둔 방명록. 이충열(화사)의 논문 「시각예술에서의 여성 재현에 대한 페미니스트 비판 및 대안 실천 사례」는 이 책자들과 본인의 실천을 모두 모아 자문화기술지로 정리했다.
(사진-홍열매) 충열의 논문은 거창한 선언보다는, 감각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질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름다움이라는 이름
아래 너무 오래 당연하게 받아들여온 이미지들, ‘감상’이라는 말로 미끄러져 버린 감각들. 그는 그 모든 익숙한 것들을 다시 만지고, 말하고, 느끼게 만든다.
그에게 예술은 세계를 다시 감각하는 방식이며, 감각을 바꾸는 질문이다.
그리고 그 질문은 전시장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일상의 시간, 몸의 움직임, 교육의 언어, 그리고 우리의 시선이 머무는 모든 이미지에까지 닿는다.
[연구 소개] 이충열(화사)은 석사학위 논문으로 「시각예술에서의 여성 재현에 대한 페미니스트 비판 및 대안 실천 사례: 예술과 운동의 경계를 넘나드는 본인의
활동 분석을 중심으로」(2025)를 연구했다.
시각예술가로서의 자기 실천을 기반으로, 여성 재현에 대한 비판과 이를 전복하려는 예술적 실천을 여성주의 자문화기술지 방법론으로 분석하였다.
-이 논문을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지금 시점에서 ‘여성 재현’을 다시 문제 삼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여성 재현에 대한 논문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아니었어요.
저는 시각예술 작업을 하는 작가이기도 하지만, 백인 남성 권력자 중심의 시각예술이 재현해온 ‘정상성’과 ‘아름다움’의 기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게 돕는 교육 활동도 꾸준히 해왔어요.
제 교육 활동을 페미니즘 관점에서 미술교육학 석사학위 논문으로 써준 연구자분이 있었는데요.
반면 제 작업에 대한 비평은 아무도 안 해주니까, 스스로 공부해서 하기로 한 거죠. 제가 워낙 다양한 문제 의식을 가지고 다양한 사람들과 작업을 해와서 처음에는 하나의 주제를 선택하기 어려웠어요.
펼쳐놓고 보니 창작, 전시기획, 교육 활동이 다 연결되어 있고, 제일 긴 호흡으로 해 온 활동이 ‘여성 재현’에 대한 것이더라고요.
그리고 비판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대안적 실천을 한 것들을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싶어서,
여성 재현에 대한 문제의식을 중심에 두고 연구하게 되었어요.
‘지금 이 시점에서 여성 재현을 다시 문제 삼는 이유’를 질문하셨는데, 제 생각에는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는 남성 중심의 여성 재현 방식에 대한 비판이 많았지만, 우리나라에서 재현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적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다시’가 아니라, 어쩌면 본격적으로는 ‘처음’ 문제 삼는 거죠.” 충열은 ‘여성 재현’이라는 주제를 여성주의 현대미술가로서의 자신의 실천 전반과 연결지었다.
전시, 작업, 교육을 따로 떼어낼 수 없는 유기적인 연결 안에서, 자신이 오랫동안 천착해온 문제 의식이 바로 ‘여성 재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2019년 5월 23일부터 5월 30일까지 대안공간 무국적에서 열었던 개인전 〈깨어나요,
비너스!〉에서, 촉각 드로잉 중인 전시 참여자(위)와 참여자들의 드로잉(아래). (제공-이충열) 그는 단순히 여성 재현을 비판하는 데에서 멈추지 않고, 이를 전복하거나 감각의 차원에서 새롭게 구성하려는 실천을 이어왔다.
이처럼 비판을 넘어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흐름을 포착하여 논문에 엮어내기 위해, 여성주의 자문화기술지라는 방법론을 채택했다.
이 논문은 스스로 자신의 작업을 해석하고 조직하며 앞으로의 방향성을 가늠해보는, 일종의 실천적 재구성이다.
〈여성을 성적인 존재로 규정하고, 남성이 시선의 주체가 되어 여성을 미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당연히 여기며, ‘아름다움’이 여성의 ‘능력’ 또는 ‘가치’가 되고 … 이것이 우리 사회에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유튜브나 개인 방송 등을 통한 정보의 취득이 증가하고, 다양한 소셜 네크워크
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 이하 SNS)를
통한 비대면 소통의 비중이 더 큰 시대의 대한민국에서 K-팝이나 K-드라마 등 K-대중문화에 재현된 여성은 감상과 욕망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누드화 전통의
연장선에 놓인다.〉 -이충열, 「시각예술에서의 여성 재현에 대한 페미니스트 비판 및 대안 실천 사례」, 2025:3 충열의 문제의식은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한다.
미대 입시를 준비하던 시절, 그는 그 당시에 유행한 세미누드 촬영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후에 유럽 미술관에서 실제 사람과 같은 크기로 그려진 누드화를 수없이 만나면서, 그때 느꼈던 이상한 감각의 원인을 찾게 된다.
“저는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현대미술을 전공하고 싶어서 입시를 준비하며 다양한 실험을 했는데요.
그때 제 몸을 도구로 사진 작업을 한 적이 있어요.
마침 그 시기에 평범한 여성들이 자신의 젊고 예쁜 시기를 사진으로 찍는 것이 유행해서 스튜디오에서 세미누드를 찍어주는 상품도 있었고요.
제가 그 샘플 사진 모델을 한 적이 있는데, 사진작가의 제안대로 포즈를 취하면서 기분이 이상한 거예요.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았는데도, 제가 스스로를 표현하기
위해 포즈를 취하는
것과 다른 느낌이었어요.
이후에 미술 전공을 하면서 유럽의 박물관, 미술관을 쭉 돈 적이 있는데, 누드화가 너무 많은 거예요.
등신대, 그러니까 실제 크기로요.
이게 뭐지? 하면서 제가 세미누드 모델 했던 경험이 떠오르더라고요.
누드화가 사실은 예술의 탈을 쓰고 노골적으로 여성을 상품화한 것이구나! 깨달았어요.
돌아와서 누드화의 역사적 맥락과 시대적 배경을 공부하며 확신을 하게 됐고, 이게 현대까지
무비판적으로 수용되고
있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이 커진 거죠. 서양의 누드화에는 문법이 있어요.
여성을 문명 밖의 존재로서 자연과 동일시하는 방식으로 재현함으로써, 문명적 존재인 남성이 자연처럼 지배하고 정복해도 되는 위치로 만들어요.
그리고 시선의 권력을 빼앗는 방법으로 잠을 재우곤 하는데, 시선의 주체인 권력자 남성들이 마음껏 감상하도록 하는 장치인 거죠. 겨털도, 음모도, 모공도, 점도, 흉터도, 주름도, 뾰루지도 없는 몸으로
그려서
아무런 경험과 역사가 없는 몸, 주인을 기다리는 새 상품처럼 만들어요.
가장 인상깊었던 방명록. (제공-이충열) 그런데 이러한 누드로 그려진 미의 신 비너스의 모습이 아름다움의 기준이 되어서 현재의 여성에게도 영향을 미치잖아요.
여성은 자신의 경험과 세월의 흔적을 지우고 가리라고 강요받죠. 화장을 하고, 제모를 하고, 주름을 펴고, 흉터를 지우고, 모든 ‘잡티’를 가리라고요.
이게 모델이나
아이돌뿐
아니라, 평범한 여성들에게까지 요구되고 있으니 정말 심각하지 않을 수 없어요.” 충열은 서양 누드화 전통의 대표적 작품인 조르지오네의 ‘잠자는 비너스’를 언급하며, 여성이 어떻게 자연화되고 대상화되어 왔는지를 설명한다.
그는 이러한 자연화가 서양 근대의 이분법적 세계관과 맞닿아 있다고 보고, 이런 시각언어가 현재까지도 유효하다는 데에 우려를 표한다.
현대 광고나 대중문화에서도 여성을 자연화하는
방식은
지속된다.
이는 여성이 자기 삶의 경험을 삭제당하고, 수동적이고 침략하기 쉬운 상태로 전시되는 전통적 이미지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충열이 느낀 균열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되었다.
시선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창작의 주체인 예술가로서, 충열은 이중적인 위치에 놓여 있었다.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이미지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그 불편함에 쉽게 말 붙일 수 없던 시간들과 어긋난 감각을 언어로, 이미지로
다시 만들어가는 일이 그의 작업과 실천으로 이어지게 된다.
-관객이 감상자가 아니라 ‘감각하고 표현하는 주체(논문 60쪽)’가 되도록 기획하는 이유와, 기억에 남는 반응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21세기에는 시각성이 더 강해지고 몸을 소외시키게 되는 것 같아요.
스마트폰 같은 작은
화면에
눈을 가두고, 가보지 않은 곳도 가본 것처럼 생각하고, 움직임이 너무 작아지고, 다양한 환경이나 사람들과의 접촉도 적어지고, 경험하지 않은 것도 안다고 착각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제 전시에서라도 관객이 구경꾼이 아니라 참여자였으면 좋겠어요.
전시를 통해 감각하고 몸을 이동시키면서 경험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지고 감각이 달라지면 좋겠어요.
” 이전의 감각의 균열을 바탕으로, 충열은 단순히 시각 재현을
비판하는 데에서만
그치지 않고 관객의 감각 자체를 흔들 수 있는 실천을 이어왔다.
그의 전시는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서 감각하고 표현하는 것으로 우리의 초점을 이동시킨다.
그가 이런 문제 의식을 바탕으로 이어온 대표적인 실천이 〈깨어나요,
비너스!〉(2019)와 〈당신은 누구십니까?〉(2023)였다.
“‘버닝썬 사태’(강남 클럽 내에서 약물을 이용한 강간, 불법촬영물 생산.유포, 성매매 알선 등 K팝 스타들이 연루된 집단 성범죄
게이트. 대형 연예기획사의 개입 및 공권력 유착 비리까지 드러났다)를 통해 〈깨어나요,
비너스!〉를 기획하게 되었어요.
시선의 대상이 되었던 여성/관객을 주체로 만들고 싶었어요.
제가 작품을 전시하는 게 아니라 설치로써 제안을 하고, 전시 참여자들이 원하는 만큼 몸을 움직이고, 감각한 것을 표현하고, 아무것도 안 하고 머무르는 시간을 가지면서 자신의 안으로 깊이 들어갔다 나올 수 있어요.
지나가다 우연히 전시장에 들어온 분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셨는데, 남성으로 식별되는 20살인 분이 자신에 대해 탐색하게 되었다고
또박또박 적어주신
리뷰가 인상적이었어요.”
여성역사공유공간 서울여담재의 초대를 받아 2023년 7월 3일에서 9월 7일까지 열었던 개인전 〈당신은 누구십니까?〉에서 관객들이 글을 따라 이동하는 작업 ‘그녀에게 가는 길, 당신에게 오는 길’의 참여자(좌)와 목적지인 자주동천과 안내판(우) (제공-이충열) “처음에는 관객 참여가 잘 이루어질까 걱정했는데, 이제는 오히려 관객을 더 믿게 됐어요.
관객분들이 제가 기대한 것보다 더 발견해주시더라고요.
〈당신은 누구십니까?〉에서는 전시장 근처에 가려진 문화유적지인 자주동천으로 관객을 안내하는 설치를 했어요.
선호를 묻는 아주 쉬운 질문으로 시작해서 선택할 수 없는 것이 있음을 직면하게 하고, 자신에게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선택하고, 자신에게 상을 주고, 누구와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지 질문하는 글을 읽으며, 유적지 앞으로 와서 과거 여성들의 연대를 알려주는 방향으로 빌드업하는 기획이었어요.
마지막에 ‘아!’ 하고 진짜로 소리 내어 감탄하는 경우도 많고, 눈물 흘리는 분도 계시고… 너무 좋고 감사했어요.
” 충열은 이 작업이 감각에 무뎌진 관객에게 잊고 있던 감각을 일깨우는 시작이 되길 바랐다.
참여자들이 남긴 메모에는 익숙한 감상과는 전혀 다른, 자기 인식의 순간이 담겨 있었다.
이 작업들에서 중요한 것은 결과물이 아니라 감각을 통해 흘러가는 과정 그 자체였다.
충열에게 예술은 시각 중심의 감상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그의 실천은 시각 문화에 집중된 우리의 감각을 확장시킨다.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굳어진 관람의 방식과 구조를 흔드는 시도이다.
(下편에서 계속) [필자 소개] 홍열매(우주). 지역의 여성단체 활동가로 살다가, 조금 더 배워보고 싶다는 마음에 단체를 떠나 KTX를 타고 서울을 오가며 성공회대 시민평화대학원 실천여성학전공에서 공부했다.
석사학위논문으로 「여성단체 청년활동가의
몸 아픔 경험이 조직 활동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다.
현재는 다시 지역에서, 몸 아픔을 가진 존재로 어떻게 살아갈지를 고민하며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