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골공원 장기판 철거, 무엇이 문제인가
1897년 조성된 국내 최초의 근대식 공원이자, 3·1운동의 발상지로 기억되는 공간이다.
그러나 대중문화 속에서 탑골공원은 오래전부터 ‘노인과 노숙인의 집결지’로 묘사돼 왔다.
넷플릭스 <오징어게임>에서조차 이곳은 갈 곳 없는 이들이 모이는 배경으로 등장한다.
최근 종로구가 공원 담장 옆에 놓였던 바둑·장기판을 철거했다.
어르신들 사이의 잦은 시비와 노상방뇨 같은 불편 사례가 이유였다.
행정당국의 고민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민원이 끊이지 않고, 인근 상권이 피해를 호소하는 상황을 두고 손 놓을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 해결 방식이 과연 옳았는지는 따져볼 일이다.
단속과 환경 개선을 대신해 노인들의 놀이 공간을 없애는 선택은, 오히려 노인 혐오와 낙인을 강화한다는
비판을 낳았다.
탑골공원에 노인들이 모여드는 것은 단순한 습관의 문제가 아니다.
광복과 전쟁, 급속한 산업화와 개발을 따라가지 못한 세대가 사회적 약자로 전락했다.
정년 뒤에도 마땅한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노인들은 경비·대리주차 같은 단순노무직을 전전한다.
공적연금의 실질소득대체율은 20% 남짓에 불과해, 특히 75세 이상 후기 노인의 빈곤율은 절반을 넘는다.
탑골공원을 찾는 이들의 다수가 바로 이들이다.
젊은 세대의 불안과 부담도 분명 존재한다.
2025년 생산가능인구 100명이 부양해야 할 65세 이상은 27명 수준이지만, 2050년에는 74명, 2070년에는 81명에 달할 전망이다.
OECD 최고 수준의 노인 빈곤율, 부양 부담의 가파른 증가세는 ‘틀딱충’ 같은 혐오 표현과 맞닿아 있다.
결국 탑골공원 장기판 철거 논란은 단순한 공원 관리 문제가 아니다.
제도적 보장이 취약한 현실 속에서 약자들이 모이고, 그 집결이 다시 사회 갈등과 행정력 낭비로 이어지는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
2070년이면 우리 사회의 절반 가까이가 65세 이상 노인이다.
노인을 사회적 비용이 아닌 경제·사회적 주체로 자리매김시킬 새로운 역할과 공간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오늘의 탑골공원 갈등은 내일 또 다른 장소에서 반복될 것이다.
이 글은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을 계기로 언급된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을 중심으로, 현대 한국 사회의 노인 문제, 사회적 약자의 공간, 그리고 고령화 사회의 구조적 과제를 날카롭게 조명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공원 관리 문제를 넘어, 이 사건이 드러내는 것은 사회적 배제, 연금 제도의 한계, 세대 간 갈등, 도시 공간의 의미 변화 등 복합적인 사회 문제입니다.
1. 탑골공원의 상징성과 이미지 전쟁
탑골공원은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공간입니다.
- 국내 최초의 근대식 공원(1897년 개원)이자, 3·1운동 발상지라는 민족사적 상징성을 지닌 국가문화유산입니다.
-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이곳은 노인과 노숙인들이 모이는 공간으로 전락했고, 미디어와 대중 인식 속에서 ‘노숙인 성지’, ‘어르신 놀이터’로 각인되었습니다.
- 『오징어게임』 같은 글로벌 콘텐츠가 이를 반영하면서, 이 이미지는 국내를 넘어 세계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이러한 이미지가 형성된 배경에는 단순한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과 고령화의 그림자가 깔려 있습니다.
2. 장기판 철거 논란: 공간 정비 vs. 사회적 배제
종로구청의 장기판 철거 결정은 표면적으로는 공원 질서 유지와 위생 문제 해결을 위한 조치였습니다.
- 어르신들 간의 말다툼, 노상방뇨, 소음 등으로 인한 민원 증가
- 상권 침체 우려, 역사문화공간의 위상 저하
그러나 이 조치는 해결 방식의 선택에 대한 비판을 낳았습니다.
- 문제는 불법행위와 환경 문제였는데, 이를 해결할 대안으로 노인들의 유일한 소통 공간을 철거한 것은 과잉 대응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 이는 노인을 문제의 원인으로 낙인찍는 ‘사회적 혐오’를 강화할 수 있다는 비판도 정당합니다.
- “노인들이 모여 있으니 문제가 생긴다”는 프레임은, 그들이 모이게 된 구조적 이유를 무시한 채 결과만 문제 삼는 발상입니다.
3. 왜 탑골공원에 노인들이 모이는가?
이 질문이 핵심입니다.
노인들이 탑골공원에 모이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필연입니다.
▶ 구조적 요인
- 생산가능인구 중심의 노동시장: 고령자에게 주어지는 일자리는 대부분 저임금, 단기, 단순노무직입니다.
경비원, 청소, 포장 아르바이트 등이 전부입니다. - 공적연금의 열악함: 국민연금의 실질 소득대체율은 약 20%. 이는 노후 생활을 유지하기에 턱없이 부족합니다.
- 노후 준비 부족: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자신의 노후보다 자녀 양육과 생계에 집중한 세대입니다.
- 가족 구조 변화: 1인 가구 노인 증가, 자녀와의 분리, 고립된 생활이 일반화되었습니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탑골공원은 유일한 사회적 연결망이자,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바둑·장기판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소외된 삶 속에서 인간다움을 유지하는 수단입니다.
4. 고령화 사회의 미래: 2070년, 인구 절반이 노인
글에서 강조된 통계는 충격적입니다.
- 2025년: 생산가능인구 100명당 노인 27명
- 2050년: 74명
- 2070년: 81명
이는 단순한 인구 통계가 아니라, 경제, 복지, 도시 공간, 문화 전반의 재설계 필요성을 말합니다.
- 노인이 계속해서 ‘비용’이자 ‘문제’로만 인식된다면, 사회는 갈등과 혐오로 얼룩질 수밖에 없습니다.
- 반면, 노인을 사회적 자원, 지혜의 저장소, 지속 가능한 노동력으로 재정의할 수 있다면, 새로운 가능성도 열립니다.
5. 해결의 실마리: 공간 철거가 아니라, 시스템 개혁
탑골공원 갈등은 일회성 조치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 장기판을 칠 수 있는 문화 쉼터,
- 노인 친화적 일자리 창출,
- 지역사회와 연계된 복지 서비스 확충,
- 역사와 복지가 공존하는 공원 리모델링
이러한 종합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탑골공원을 노인 문화 허브로 재구성하는 방안도 가능합니다.
- 역사 해설사, 청소년 멘토링, 지역 문화 프로그램 운영 등에서 노인의 역할을 부여한다면,
- 이들은 ‘문제’가 아니라 ‘해결사’가 될 수 있습니다.
6. 결론: 탑골공원은 거울이다
탑골공원은 단지 종로의 공원이 아닙니다.
- 그것은 우리 사회가 노인을 어떻게 대하는지,
- 약자에게 어떤 공간을 허용하는지,
- 역사를 기억하면서도 포용할 수 있는지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장기판 하나를 철거하는 것이 아니라,
노인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사회 전체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묻는 사건입니다.
앞으로 다가올 초고령사회에서,
탑골공원의 교훈을 되새기지 않는다면,
내일은 다른 공원, 다른 거리, 다른 이름의 갈등이 반복될 뿐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철거’로 문제를 덮을 수 없습니다.
새로운 착점(着點) – 노인이 다시 서고,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적 기반 – 을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