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활한 황야에서 고독을 해독하다

텅 빈 경관은 결핍의 전달자가 아니라, 땅끝까지의 무한한 거리를 일깨워주는 역동의 행위자다.<BR> 미국 와이오밍주의 광활한 풍경. 위키미디어 코먼스

배정한의 공간이 전하는 말

텅 빈 경관은 결핍의 전달자가 아니라, 땅끝까지의 무한한 거리를 일깨워주는 역동의 행위자다.
미국 와이오밍주의 광활한 풍경. 위키미디어 코먼스

가을 선물로 던져진 긴 여백의 시간. 계획 없이 맞이한 열흘의 연휴를 함께할 친구는 읽지 않고 쌓아둔 책들뿐. 늘 그렇듯 한두권 뒤적이다 말 것임을 알면서도 또 욕심을 부렸다.
무작위로 고른 예닐곱권 중 처음 펼친 건 그레텔 에를리히의 에세이 ‘열린 공간의 위로’(빛소굴, 2024). 2년 전 내가 낸 책과 제목이 비슷하다는 단순한 이유로 읽기 시작했지만, 날씨가 땅을 거칠게 가격하고 빛과 바람이 군더더기를 쓸어버리는 장대한 풍경의 힘 속으로 금세 빠져들고 말았다.

대도시에서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일하던 에를리히는 갑작스레 사랑하는 이를 잃은 뒤, 촬영지였던 미국 서부의 오지 와이오밍에 스스로 고립되어 목장에서 일하며 상실의 시간을 통과한다.
살아 있음조차 견딜 수 없는 비탄의 시기, 그는 자신이 일군 모든 것을 버리고 척박한 땅의 혹독한 대자연을 마주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야생의 평원, 피부를 할퀴는 매서운 바람, 인간의 존재를 한없이 미미하게 하는 광활한 경관. 신비롭고 숭고하지만 동시에 고독하고 냉혹한 황야 속에서 그의 몸과 마음은 느리지만 단단하게 회복되어간다.

열린 공간의 위로 l 그레텔 에를리히 지음, 노지양 옮김, 빛소굴(2024)

열린 공간의 위로 l 그레텔 에를리히 지음, 노지양 옮김, 빛소굴(2024)
지도에서 보면 직사각형 경계선 안에 갇힌 듯한 와이오밍주. 서쪽으로는 바위 산맥이 하늘을 찢듯 이어지고 동쪽으로는 대평원이 끝없이 펼쳐진다.
면적은 한반도 전역보다 넓지만, 인구는 평택시보다 적은 58만여명이다.
풍경의 끝이 너무나 멀리 있어 감지할 수 있는 경관의 스케일이 사라지는 곳. 그래서 하늘이 특별히 크고 넓다.
이런 장대한 규모의 경관에서는 모든 게 단순해진다.
일상의 리듬은 계절과 날씨에 맞춰 조정되고, 바람과 구름의 변화가 풍경의 표정과 사람의 감각을 매개한다.
그러나 텅 빈 경관은 결핍의 전달자가 아니라, 땅끝까지의 무한한 거리를 일깨워주는 역동의 행위자다.

와이오밍의 광활한 풍경은 에를리히의 마음을 비워낸다.
텅 빈 마음 내면에 깊게 팬 빈 공간을 직시하면서 그는 자신을 조금씩 재조립한다.
풍경이 말을 대신한다.
“고독으로 고독을 해독해야” 하는 적막한 풍경은 인간의 언어가 닿지 않는 곳에서 작동하는 또 다른 대화를 이끈다.
“공간 자체가 삶이었다.
세상은 그들의 집이었다.
” 그렇게 그는 “생전 처음으로 마땅한 이유 없이, 내 존재의 확인 전략 없이 이 땅의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 끝없이 펼쳐진 풍경 안에서 그는 한없이 작아지지만, 그럴수록 그의 세계는 더 넓어진다.

일찍이 환경미학자 아널드 벌리언트는 “경관 속에 살기”(living in the landscape)를 통해서만 경관과 얽히는 진정한 미적 경험을 할 수 있다고 통찰했다.
에를리히는 경관을 구경꾼의 시선으로 한 폭의 그림처럼 관조하지 않는다.
그는 경관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경관 속에 살았다.
바람에 날려온 씨앗이 낯선 땅에 내려앉아 자라듯, 그는 거친 경관 속에 얽혀 머무르며 뿌리내리게 된 것이다.

경관은 멀리서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라, 그 속에서 부딪히며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다.<BR>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의 한 장면

경관은 멀리서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라, 그 속에서 부딪히며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다.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의 한 장면

무뚝뚝하지만 활력 넘치는 사람들 틈으로 스며든 그는 이웃과 함께 양털을 깎고 암소의 분만을 도왔다.
심지어 직접 양 떼를 몰았다.
풍경이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라 살아내는 현장이 되면 낭만의 껍질이 벗겨진다.
이제 풍경은 정지된 그림 같은 배경이 아니다.
“세심하게 관찰하면 이 세계는 엄청난 변신을 하고 있다.
풍경은 온갖 작은 변화에 의해 팽창되고, 풍경 안에서의 모든 움직임이 소름 끼칠 정도로 뚜렷이 보인다.”
때로는 포악한 파도처럼 거칠게, 또 때로는 예민한 정원처럼 섬세하게 움직이는 풍경이 에를리히를 통과하며 번역된다.
“하얀 먼지 같은 눈으로 뒤덮인 소들은 마치 서서히 움직이는 빙하들 같다.” “얼음 이불이 사라지면 강은 마구 휘저은 갈색 밀크셰이크가 되어 배수로와 작은 다리들을 삼켜버린다.” 그의 ‘경관 속에 살기’는 롱테이크로 촬영한 영화 같다.“어느 날 아침에는 보름달이 서쪽으로 지고 있는데 동쪽에서는 태양이 떠올랐다.
마치 내가 초원을 성큼성큼 달리면서 해와 달 사이에서 위태롭게 균형을 잡는 기분이었다.”

에를리히의 생동감 넘치는 언어에 담긴 황야의 경관을 꾹꾹 눌러 읽으며 연휴의 첫 이틀을 보냈다.
“가을은 결실도 죽음이며 성숙도 부패의 하나임을 가르쳐준다”로 시작해 “아까운 가을날의 빛도 어느 순간 남김없이 사라져 버릴 것이다”로 끝나는 마지막 쪽에 이르자 조바심이 났다.
책 속의 경관 속에 더 오래 머무를 방법이 없을까.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감독 리안, 2005)의 무대가 와이오밍이라는 걸 다행히도 기억해냈다.
조바심이 안도감으로 바뀌었다.
남은 연휴를 계속 와이오밍 풍경에 파묻혀 보낼 수 있겠다는 기대감.

구경꾼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던 경관의 결들이 머무는 자의 몸에 닿는다.<BR>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의 한 장면.

구경꾼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던 경관의 결들이 머무는 자의 몸에 닿는다.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의 한 장면.

내 기억 속의 ‘브로크백 마운틴’은 와이오밍의 양 떼 방목장에서 여름 한 철 함께 일하며 친구 이상으로 발전한 두 청년, 에니스와 잭의 관계가 20년간 짧은 만남과 긴 그리움을 반복하면서 위태롭게 이어지다 비극을 맞는 퀴어 로맨스 영화였다.
그러나 다시 보니 또 다른 주인공인 경관이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눈 덮인 산봉우리 아래로 한없이 펼쳐진 대평원의 경관은 단지 영화의 아름다운 배경이 아니었다.
그것은 에니스와 잭의 관계를 매개하고 그들의 자유와 고립을 허용하며 그들을 사회의 규범과 억압으로부터 보호하는 치열한 삶의 장소였다.

에를리히의 혹독한 와이오밍과 에니스와 잭의 고독한 와이오밍은 다르지만 닮았다 . 그들의 경관은 멀리서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라 , 그 속에서 부딪히며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다 . 구경꾼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던 경관의 결들이 머무는 자의 몸에 닿는다 . ‘ 열린 공간의 위로 ’ 와 ‘ 브로크백 마운틴 ’ 을 오가고 되감으며 광활한 풍경 속을 여행하다 긴 연휴의 마지막 날을 맞았다 . 거리의 나무들이 녹갈색 , 황갈색 , 적갈색 , 암갈색으로 현란하게 변하는가 싶더니 구름 덩이들이 가을을 타고 내려와 비바람을 풀어놓았다 .

배정한 서울대학교 조경학과 교수·‘공원의 위로’ 저자

내 마음 속 '지옥'을 비우려면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비교’와 ‘불안’이 항상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좋은 학교를 가지 못하면 인생이 망할 것처럼 이야기하는 어른들 때문이었는지, 언제부턴가 조금만 미끄러지면 삶이 끝장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늘 두려움 속에서 살았던 것 같다.

친구들이 좋은 결과를 얻으면 함께 기뻐하는 마음과 함께 나는 왜 이렇게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는 거냐는 자기비난과 열등감이 자라났다.
그러면서 친구의 기쁨을 온전히 함께 기뻐하지 못하는 나의 속물스러움에 질리고 자신을 더더욱 혐오하는 파괴적인 굴레에 갇혀 있었던 것 같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내가 최악일 때나 가장 좋은 모습일 때나 한결같이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들과 나의 성취를 자신의 일인 것처럼 함께 기뻐해주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러면서 누군가에게 생긴 기쁜 일을 함께 기뻐하면 그만큼 내 행복도 배가 된다는 사실을 조금씩 경험하게 되었던 것 같다.

덕분에 쓸데없는 자기비난과 열등감, 자기혐오가 많이 줄어들었다.
생각해보면 쓸데없이 마음속에 지옥을 담아두고 살았던 것 같다.
내 마음이 지옥이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사람은 결국 나다.

한편 누군가의 좋은 일을 굳이 나에 관한 일로 해석해버리는 습관 또한 자기 과몰입(hyper-egoic) 상태라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삶의 대부분을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에 빠져 보내는 자아중독 상태에 빠져 있다.

마크 리어리 듀크대 심리학자에 의하면 이런 자기 과몰입 상태에는 고질적으로 많은 양의 주의를 바깥세상보다 자기 자신에게 쓰는 것, 세상 모든 일을 자신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자기중심성,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며 살아가는 타율성 같은 것들이 포함된다.

친구에게 생긴 좋은 일에 대해 들으면 친구에게 포커스를 둬야 하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굳이 자기 자신에게로 주의를 돌려 결국 뭐든지 자기 자신에 대한 일로 만들어버리는 것 역시 고질적인 자기 과몰입에 해당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도 자기 과몰입은 정신 건강과 나아가 인간관계에도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자신에게 이런 면이 있다면 빨리 인정하고 최소한 누군가 잘된다고 해서 내가 잘못되는 것이 아님을 생각해보는 것이 좋겠다.
안타깝지만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존재하는 것을 보면 또 의외로 연인이나 부부 관계에서도 특히 이성애자 남성의 경우 자신의 파트너가 자신보다 더 잘 나가면 위축되는 현상이 많은 걸 보면 흔히 나타나는 현상인 것 같다.
아마도 이런 사고방식이 한 사회가 좀 더 불행해지는 데 한몫할지도 모르겠다.

연구들에 의하면 ‘파이가 정해져 있다는 믿음(fixed-pie perception)’, 함께 나눠 먹는 파이의 양은 정해져 있어서 타인이 조금 더 많이 먹으면 내 몫이 줄어든다는 생각이 자기파괴적인 질투나 근시안적이고 지나치게 경쟁적인 태도와 관련을 보인다.

물론 그런 상황도 존재하겠지만 내 친구에게 생긴 좋은 일이 직접적으로 나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예를 들어 ‘내가 잘된다고 해서 네가 잘 안 되는 게 아니야’라는 말처럼). 그나마 나에게 우호적인 사람들을 경쟁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보다 적어도 이 사람들과는 ‘함께’ 잘되기를 바라는 것이 장기적으로 모두의 행복에 훨씬 바람직할 것이다.

삶은 원래 별거 없고 우리에게 찾아온 좋은 인연들을 쫓아버릴 만큼 중요한 일도 잘 없다.
뭐라도 잡아보려고 주먹을 꼭 쥐고 살아가기보다, 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래본다.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제로 음료 대체당, 원래는 '살충제'였다 [맛있는 이야기]

임주형 기자

임주형 기자

설탕 기업 연구원이 우연히 발견한 대체당
설탕 수백배 단맛 내는 인공 감미료로 발전
제로 음료, 제로 아이스크림 등 저열량 가공식품 열풍은 '대체당' 덕분에 가능했다.
대체당은 설탕처럼 단맛을 내지만 열량은 거의 없는 화학 성분이다.
다만 대체당이 식품 업계에 널리 보급된 계기는 사실 해프닝에 가까웠다.
대체당은 원래 살충제를 개발하던 중 실수로 개발됐기 때문이다.

연구원의 실수로 발견된 대체당, 수크랄로스

지금은 수많은 대체당이 난립하고 있지만, 소비자들에게 대체당을 널리 알린 브랜드는 1999년부터 판매된 '스플렌다'로, 설탕 기반 화학성분인 수크랄로스로 제조된다.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스플렌다는 21세기 초 대체당 시장에서 60% 넘는 점유율을 차지했으며, 다이어트 콜라 등 초기 제로 음료수의 감미료로 쓰였다.

설탕이 아니지만, 당분처럼 단맛을 내는 대체당. 사진은 기사 중 특정 표현과 관련 없음. 게티 이미지

설탕이 아니지만, 당분처럼 단맛을 내는 대체당. 사진은 기사 중 특정 표현과 관련 없음. 게티 이미지

스플렌다의 개발사는 영국 회사인 테이트 앤 라일이다.
1850년대부터 영업한 유서 깊은 설탕 정제 기업으로, 한때는 대영제국의 각설탕 조제법을 독점하던 회사였다.
1970년대 들어 테이트 앤 라일은 런던 대학교 퀸 엘리자베스 칼리지의 한 화학 연구소와 손잡고 설탕을 활용한 다양한 발명품을 개발했는데, 해당 연구소에서 만들어낸 화학 성분 중 하나가 수크랄로스였다.

런던대와 테이트 앤 라일 과학자들은 원래 수크랄로스로 살충제를 만들 계획이었다.
실제 수크랄로스를 비롯한 인공 감미료가 바퀴벌레 등 일부 해충에 살충 작용을 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러나 1976년 우연한 사고로 수크랄로스의 진짜 잠재력이 발견됐다.

당시 연구소에서 대학원생으로 일했던 샤시칸트 파드니스는 지도 교수로부터 수크랄로스를 "테스트(Test)"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하지만 파드니스는 테스트라는 단어를 "맛보라(Taste·테이스트)"로 잘못 알아들었고, 실험용 수크랄로스를 집어 먹었다.
수크랄로스가 매우 강력한 단맛을 내는 감미료였음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이후 테이트 앤 라일은 거듭된 연구 끝에 수크랄로스의 대량 양산법을 찾아냈으며, 가루형 감미료 제품인 스플렌다를 만들어냈다.

스플렌다는 아스파탐의 3배, 사카린의 2배, 일반 설탕의 600배 단맛을 내는 감미료였으며, 소량만으로도 설탕을 대체할 수 있었다.
스플렌다는 금세 미국, 영국 식당과 가정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설탕 기업 구원투수 된 대체당 사업

1878년부터 영업 중인 테이트 앤 라일의 영국 런던 정제 공장. ASR 그룹 홈페이지

1878년부터 영업 중인 테이트 앤 라일의 영국 런던 정제 공장. ASR 그룹 홈페이지

스플렌다는 선진국 시민들의 설탕 수요가 줄어들기 시작한 21세기 들어 테이트 앤 라일의 구원투수가 됐다.
이제 테이트 앤 라일은 세계 최대의 감미료 제조업체로 성장했다.
지난해 공개된 사업 보고서에 따르면, 오늘날 테이트 앤 라일은 미국·네덜란드 등에서 옥수수나 사탕수수를 정제해 설탕 원료를 만든 뒤, 이를 수크랄로스, 스테비아 등 대체당으로 재가공해 전 세계로 수출하고 있다.
2024년 기준 연간 16억파운드(약 3조원)의 매출을 올렸으며 약 2억2600만파운드(약 4320억원)의 영업익을 기록했다.

그러나 대체당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과잉 섭취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앞서 국제보건기구(WHO)는 2023년 5월 "무설탕 인공 감미료를 체중 조절용으로 사용하는 것을 권고하지 않는다"는 가이드라인을 밝힌 바 있다.
해당 가이드라인은 감미료의 직접적인 위험성을 밝히지는 않았으나, 대신 "성인, 소아의 체지방 감소에 장기적인 이점도 제공하지 않는다"며 "인공 감미료는 필수 식단이 아니고 영양가도 없으며, 건강을 증진하려면 어릴 때부터 식단의 단맛을 완전히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체당 제조업체들은 더욱 강력한 단맛을 가진 성분을 개발해 남용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수크랄로스, 아스파탐, 사카린 등 과거에 개발된 대체당은 일반 설탕 대비 100~600배가량의 단맛을 냈지만, 개량을 거친 알리탐, 네오탐 등 최신 대체당들은 설탕 대비 2000~8000배의 단맛을 내는 경우도 흔하다.
이런 대체당은 극소량만으로도 충분한 단맛을 낼 수 있다.
섭취량 자체를 획기적으로 줄여 잠재적 부작용 위험을 억제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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