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톡의 무신경, 무책임

 


이재국 성균관대 교수

이재국 성균관대 교수

변화를 시도한 대가는 컸다.
카카오톡이 지난달 말 개편 이후 지독한 비난과 악평에 시달리고 있다.
‘아무도 원치 않은 개편’ ‘쉰내 난다’ ‘구리다’는 평가를 받더니 앱스토어에서 평점 1점을 기록했다.
0점을 줄 수 없게 돼 있으니 그냥 최하점수다.
이용자가 분노하니 주주들은 통곡했다.
주가는 폭락해 6만원 선이 무너지고 단 며칠 만에 시가총액 3조4000억원이 날아갔다.
견디다 못한 경영진이 일부 기능을 개편 이전 상태로 복원한다고 약속했다.

국민 메신저 카톡 개편 불만 폭주
원치않는 ‘친구’ 일상을 강제 시청
주가까지 폭락해 원상태 복원키로
이용자 체류시간 늘리기 꼼수 실패

15년 만에 이뤄진 대개편의 핵심은 친구 탭의 변화와 짧은 영상인 숏폼의 등장이다.
사람들의 분노는 친구 탭 변화에 집중적으로 타올랐다.
첫 화면에 있던 친구 목록을 격자형 피드가 대신하면서 목록에 올라 있는 카톡 ‘친구’들의 일상사를 강제로 보게 됐다.
굳이 알고 싶지 않은 부장님의 등산길 동영상, 커다란 셀카 사진이 화면에 떠오르며 화들짝 놀란다.
다음 순간, 누군지 모르는 불특정 다수에게 내 취향과 관심사 역시 무차별적으로 공유될 것이 합리적으로 예상되며 극도의 불쾌감에 휩싸인다.

사실 인스타그램이나 엑스(옛 트위터) 등 SNS에서 친구와의 일상 공유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SNS는 온라인에서 이용자를 연결해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유지, 확장할 수 있도록 한다.
이용자는 취향과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을 찾아 친구 관계를 맺고 자신의 인간관계를 넓혀 간다.
하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카톡은 그런 게 아니라 무료 메신저다.
카톡 세계의 근간은 오프라인 관계에 기반을 둔 ‘친구’ 목록으로, 과거 전화번호부에 있던 명단을 그대로 옮겨와 공짜 메시지 전송의 혜택을 제공한 것이 카톡의 정체성이다.
그런 카톡이 갑자기 SNS인 척하고 나타난 것이다.

‘국민 앱’ 카카오톡이 인스타그램 이상의 ‘국민 SNS’가 되지 못하리라는 법도 없다.
문제는 카톡 ‘친구’는 친구가 아니라는 점이다.
카톡 세계는 가까운 친구와 가족부터 직장 동료, 거래처 직원, 지나간 인연, 시댁 식구, 자녀와 같은 반 학생의 부모들까지 다양한 맥락의 인간관계로 구성된다.
친구가 아닌 사람, 친구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 친구가 될 수 없는 사람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것이 카톡 ‘친구’다.
SNS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자발적 친구 맺기와는 완전히 다르다.

또, SNS라면 연결만큼 ‘손절’이 쉬워야 하지만, 카톡에선 매우 어렵다.
직장인 대부분은 카톡을 업무용 메신저로 활용해 업무 확인과 문서 공유 등 주요 소통이 카톡에서 이뤄진다.
SNS만 쓰던 사람도 취업 후에는 카톡에 가입할 수밖에 없다는 말까지 나온다.
학부모들도 카톡을 지우지 못한다.
자녀의 학급이나 어린이집 소식을 알기 위해서는 단체대화방이 필수적이다.
사정이 이러한데 카카오톡이 SNS로 변모한다며 불편한 연결을 강요하니 사람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카카오톡은 이번 개편에 앞서 이용자 체류시간의 20% 증가를 목표로 제시했다.
인스타그램과 비교할 때, 카톡의 이용자 수는 2.5배이지만 체류시간은 60%에 못 미친다.
체류시간은 광고 수입과 직결된다.
이용자를 플랫폼에 붙잡아 두려면 피드 형태의 콘텐츠와 숏폼 제공 등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4600만 이용자 수만 믿고 손 놓고 있을 형편도 아니다.
10대를 포함한 젊은층은 다수가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를 카톡 대신 쓰고 있다.
학교와 부모님 연락용으로만 카톡을 이용하는 까닭에 3년 전 카톡 먹통 사태를 모르고 지나갔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래서 ‘쉰스타그램’이라는 모욕을 당하더라도 인스타그램을 열심히 따라가는 것으로 보인다.

이용자 체류시간을 늘리는 것은 플랫폼의 지상과제다.
2012년 유튜브는 1억 시간이던 하루 시청 시간을 2016년까지 10배까지 올리는 목표를 세웠다.
무리한 목표 앞에 콘텐츠 품질 관리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실제로 4년 만에 유튜브는 하루 10억 시간 시청의 목표를 달성했다.
동시에 유튜브는 온갖 허위정보와 음모론, 혐오표현의 온상이 되며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번 개편에서 카카오톡 또한 제대로 된 어린이 보호장치 없이 논란 많은 숏폼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용자를 붙잡기 위해 불편한 연결과 숏폼 감상을 강제했다.
개인의 감정에 대한 차가운 무신경이고 공동체에 대한 기막힌 무책임이다.

이재국 성균관대 교수

'설탕 한스푼'의 사회적 비용 15조원, 흡연보다 3조나 많다

세계보건기구가 2016년 설탕세 도입을 권고한 이후 이를 채택하는 나라가 늘고 있다.<BR> 한국도 이를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BR> 그래픽=차준홍 기자

세계보건기구가 2016년 설탕세 도입을 권고한 이후 이를 채택하는 나라가 늘고 있다.
한국도 이를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영국 정부는 지난 4월 커피와 밀크셰이크에도 ‘설탕세’를 붙이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이달 21일 의견 수렴 기간이 종료된다.
영국 정부는 지난 2018년 탄산음료에 일명 설탕세로 불리는 청량음료산업세(Soft Drinks Industry Levy)를 도입해 ‘성공의 맛’을 본 후, 이를 더 확대할 계획이다.
그동안 음료 100mL에 설탕이 5g 이상 들어 있으면 세금을 부과했는데, 이젠 4g으로 더 낮추려 한다.

가격 오르면 설탕 든 음료 소비 줄어

 영국의 경우 설탕세 도입으로 단맛이 많이 들어간 음료 매출이 3분의 1 이상 줄었다.
그 덕분에 비만이나 당뇨병 같은 만성질환은 물론이고, 어린이 천식 같은 질병도 줄었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영국 정부는 여기서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모든 가공식품, 즉 인위적으로 만든 음식 전체로 설탕세를 확대하려 하고 있다.
미국도 다섯 개 주에서 설탕세를 도입했다.
탄산음료, 과일음료, 커피 등 음료 가격이 평균 33% 오르자, 소비자의 구매량도 33% 줄었다.
가격이 오르니 소비자들도 덜 산다는 얘기다.
설탕세가 실제로 설탕 소비를 줄이는 데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고 있다.

 그렇다면 설탕은 정말 위험한 걸까. 정답은 “그렇다이다.
설탕이 많이 들어간 음료는 충치, 비만, 당뇨, 심장병, 뇌졸중, 암 등 다양한 질병의 원인이 된다.
특히 음료로 설탕을 섭취하면 몸에 더 빠르게 흡수되어 혈당이 급격히 올라가고, 간에 큰 부담을 주게 된다.

설탕은 비만과 당뇨병 위험 높여
WHO 권고, 태국·필리핀도 도입
영국은 커피 등으로 확대 추진

 최근 전 세계 50만 명의 자료를 모아 분석한 미국 브리검영대 카렌 델라 코르테 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달콤한 음료를 하루에 350mL 더 마실 때마다 제2형 당뇨병에 걸릴 위험이 25% 증가했다.
미시간대 연구에서는 한 캔 마실 때마다 12분의 생명이 단축된다.
한국의 경우도 청소년 비만이 계속 늘어나면서, 최근 10년 사이에 청년 당뇨 환자는 두 배나 증가했다.
그냥 달콤한 음료 한 잔 마시고 기분 전환하는 정도의 가벼운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세계보건기구(WHO)는 2016년부터 각 나라에 설탕세를 도입할 것을 권고했다.
설탕이 많이 들어간 음료에는 가격의 20% 정도 세금을 붙이도록 하는 방식이다.
마치 담배에 세금을 부과해 금연을 유도한 것처럼, 세금 정책으로 설탕을 줄이자는 것이다.
이는 기업과 소비자의 자율 규제만으론 설탕이 건강에 미치는 해악을 중단시킬 수 없음을 깨달은 결과다.
이를 기점으로 2023년까지 117개 나라와 지역에서 설탕세를 도입했다.
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도 시행하고 있다.
세계는 지금 ‘설탕과의 전쟁’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2021년 기준으로 비만 때문에 떠안게 된 사회적 비용은 약 15조6000억원에 달한다.
흡연으로 인한 비용(약 12조여원)보다 3조원이 더 많은 액수다.
그러니 건강보험 부담도 만만찮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우리나라 음식은 너무 달다.
설탕이 국민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은 다른 나라보다 절대 작지 않다.
그럼에도 국내에선 기업의 자율 규제에만 기대거나 국민 스스로 조심하라는 식으로 접근한다.

 하지만 이렇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우리도 본격적으로 설탕세 도입을 검토해야 할 때가 됐다.
설탕세는 국민 건강증진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설탕세로 확보한 세금은 국민 건강을 위한 시설과 제도에도 투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공공병원 확대, 청소년·노인을 위한 건강 프로그램, 예방 중심의 건강 캠페인 등을 통해 건강 불평등을 줄일 수 있다.
설탕세는 단순한 세금이 아니라 국민 건강을 위한 투자 재원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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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세는 국민 건강을 위한 투자 재원

 설탕세에 대한 국민의 인식도 점점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올해 서울대 건강문화사업단이 설문조사를 한 결과, 국민 1000명 중 58.9%가 설탕세 도입에 찬성했다.
그리고 82.3%는 청량음료에 설탕 경고 문구를 넣는 데 찬성했다.
담뱃갑의 경고 문구처럼 설탕도 그 위험성을 알릴 필요가 있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는 말이다.

 설탕세는 국민의 선택을 바꿀 수 있다.
건강보험료를 인상할 바에는, 설탕세 같은 건강세를 먼저 고려해 보자는 목소리도 높다.
설탕세는 단순한 세금이 아니다.
많은 청소년이 급식 대신 편의점 음식과 단 음료로 끼니를 때우고 있는데, 이는 평생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청소년기에 지나친 설탕 섭취는 뇌의 보상 체계를 교란해 중독으로 이어지기 쉽고, 비만과 당뇨의 위험도 커진다.
설탕은 학습 능력과 기억력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물론 반대 의견도 있을 수 있다.
“세금이 늘어나면 부담스럽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런 부담을 줄이기 위해 설탕세로 모은 일부 세금은 기업이 친건강 제품을 개발하는 데 쓰도록 지원할 수 있다.
또 건강한 소비를 하는 시민에게는 ‘건강넛지포인트’라는 보상 포인트를 제공해 친건강 제품을 구매하게 하면 구매력도 올라가 기업에도 이득이다.
이 포인트는 나중에 의료비로 쓸 수 있게 하거나, 보험사가 이 포인트를 저축해 의료비로 쓸 수 있게 하는 상품을 만들도록 하면 더욱 효과적이다.

 설탕세는 세계적인 흐름이다.
기업들도 이참에 설탕 사용을 줄이고 건강한 K-푸드를 개발한다면, 수출 경쟁력도 높아질 것이다.
국민 건강이 좋아지면 기업의 생산성도 오르고, 의료비 부담은 줄어드는 선순환이 가능하다.
이미 국회와 여러 연구기관에서도 설탕세의 필요성을 검토했다.
이제 더는 설탕세 도입을 늦출 이유가 없다.

윤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 서울대 건강문화사업단장

청렴한 명장이었으나 부패한 권력 앞에 한없이 무력

국가 원로의 책무 방기한 최영 장군

이익주 역사학자·서울시립대 교수

이익주 역사학자·서울시립대 교수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 한국 사람 중에 이 말을 모르는 이는 없다.
최영이 살아 있을 때 이미 있던 말이다.
1379년(우왕 5년) 최영이 왜구를 물리치는 장면을 그린 ‘홍산파진도(鴻山破陣圖)’가 완성되자 왕이 이색에게 찬양하는 글을 지으라고 명했다.
그때 이색이 “선고(先考·돌아가신 아버지)의 ‘황금 보기를 흙덩이처럼 하라’는 유훈을 마음속에 새겨 청백한 지조가 늙을수록 더 굳어졌다라고 했다.
오랜 세월 전해지는 과정에서 토괴(土塊·흙덩이)가 돌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색 말고도 동시대 사람들의 최영에 대한 평가는 한결같이 강(剛), 직(直), 충(忠), 청(淸) 네 글자로 압축된다.
굳세고, 곧고, 충성스럽고, 청렴하다는 말이니, 이렇게 훌륭한 사람이 또 있을까 싶다.
게다가 장수로서도 더없이 유능했다.
이색의 같은 글에 따르면 최영은 크고 작은 87차례의 전투를 치르면서 싸울 때마다 승리를 거두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그도 자신이 충성을 다했던 고려 왕조가 망해가는 것을 어찌하지 못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87전 87승, 타고난 장수였으나
이인임의 권력 장악 도와 출셋길

재판 개입, 매관매직 판치는데도
“이 늙은이가 어쩌겠나 한숨만

우왕의 명령에도 이인임 살려줘
요동 출병 오판, 왕조의 멸망 재촉

화살 맞고도 전투 멈추지 않아

최영 장군 초상화. 조선 후기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며, 충북 청주시의 청주고인쇄박물관에 소장돼 있다.<BR> [사진 충북아키비움]

최영 장군 초상화. 조선 후기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며, 충북 청주시의 청주고인쇄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사진 충북아키비움]

최영은 타고난 군인이었다.
다른 사람보다 체격이 크고 힘이 장사였으며 용맹스러웠다.
전투가 벌어지면 언제나 맨 앞에서 돌진했고, 화살을 맞거나 창에 찔려도 싸움을 멈추는 법이 없었다.
61세 나이로 홍산에서 왜구를 격퇴할 때 앞장서서 싸우던 중 갑자기 날아온 화살에 입술을 맞아 피가 낭자했지만 태연하게 뽑아버리고 계속 싸웠다는 일화가 있다.
마침 용맹스러운 군인, 유능한 장수가 필요할 때였다.
왜구의 노략질이 빈번했고, 공민왕의 반원(反元) 정치가 단행되면서 원과 군사적으로 충돌하게 되었으며, 홍건적의 두 차례 침략으로 국가적 위기를 겪었다.
이밖에 공민왕이 시해당할 뻔한 흥왕사의 변란, 공민왕을 폐위하려는 덕흥군의 침입, 제주도에서 일어난 목호(牧胡)의 반란, 그리고 우왕대(1375~1388) 왜구의 대규모 침략에 이르기까지 전란이 끊이지 않았다.
외적을 격퇴하고 내란을 진압하는 현장에는 언제나 최영이 있었다.

전란은 최영에게 기회였다.
36세 늦깎이로 궁궐 문을 지키는 군인에서 출발해서 수많은 승리를 거둔 끝에 60세 되던 해 세 번째 고위직인 판삼사사가 되었고, 66세에는 한 등급 더 올라 수시중이 되었다.
군사 지휘관으로서의 위상도 탄탄했다.
당시 고려는 원의 간섭 아래서 붕괴된 군사력을 급히 복구하기 위해 한 사람의 원수(元帥)가 한 도(道)의 군사 징발과 지휘를 도맡아 책임지도록 했는데, 그러다 보니 각도의 군사들이 원수의 사병처럼 부려지는 일이 벌어졌다.
최영은 인구에 비례해서 군사가 가장 많았던 양광도(지금의 경기도와 충청도)를 차지함으로써 강력한 군사력을 소유하게 되었다.
또 왜구의 규모가 커지면서 여러 도의 군대를 동시에 동원할 필요가 생겼는데, 그때 연합 부대의 지휘관으로 실력이나 명성에서 최영만 한 사람이 없었다.
이렇게 해서 최영은 60대에 인생의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그의 전성기는 시대와 불화하는 점이 있었다.

충남 부여군 홍산면 태봉산성 정상에 있는 홍산대첩비. 1376년 이곳에서 최영이 왜구를 크게 물리친 것을 기념해 1977년에 세웠다.<BR> [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충남 부여군 홍산면 태봉산성 정상에 있는 홍산대첩비. 1376년 이곳에서 최영이 왜구를 크게 물리친 것을 기념해 1977년에 세웠다.
[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1374년 공민왕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고려 역사를 뒤바꾼 대사건이었다.
이 일로 여러 사람의 운명이 달라졌거니와 최영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후계자를 둘러싼 논란 끝에 이인임이 우왕을 세우고 권력을 잡았다.
이인임은 공민왕의 개혁 정치로 숨이 넘어가고 있던 수구 세력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공민왕 개혁의 성과를 신속하게 무효화했고, 경쟁자들을 제거하며 권력을 강화해 갔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거나 관직에서 쫓겨났는데, 개혁의 성과를 뒤집는 데 반발하는 신흥사대부를 축출한 것이 시작이었다.
1375년 정도전을 비롯해서 20명의 신흥사대부가 한꺼번에 유배되었고, 그 가운데 전녹생·박상충 두 사람이 고문 후유증으로 유배 도중에 죽었다.
1377년에는 신흥사대부를 축출할 때 한편에 섰던 지윤과 반목해서 무리 20여 명과 함께 처형했고, 1379년에는 역시 전날의 동지로서 권력을 나누어 가졌던 양백연을 죽이고 17명을 효수하거나 쫓아냈다.
국왕마저 무시하는 이인임의 전횡을 우왕의 유모가 나서서 막으려 하자 왕을 협박해서 궁궐에서 내쫓게 했다.
1381년, 권력을 잡은 지 7년 만에 이인임은 경쟁자들을 제거하고 절대 권력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이인임 권력 장악의 조력자

경남 통영의 최영 장군 사당. 고려말 왜구의 침입으로부터 통영을 지킨 최영 장군을 추모하기 위해 세웠다.<BR> [사진 국가유산포털]

경남 통영의 최영 장군 사당. 고려말 왜구의 침입으로부터 통영을 지킨 최영 장군을 추모하기 위해 세웠다.
[사진 국가유산포털]

최영은 이인임의 충실한 조력자였다.
우왕 초에 지윤과 함께 신흥사대부를 국문했고, 특히 전녹생과 박상충을 참혹하게 고문해서 죽음에 이르게 한 장본인이 바로 최영이었다.
지윤과 양백연을 제거할 때는 최영이 큰 역할을 했다.
이 두 사람은 사병을 거느리고 있는 무장이었으므로 문신인 이인임이 쉽게 상대할 수 없었지만, 그런 약점을 최영이 군사력을 가지고 메꾸어주었다.
유모 장씨를 내쫓을 때는 우왕이 최영에게 도움을 청했으나 왕명을 거역하고 이인임 편에 섰다.
1381년, 최영이 66세에 수시중에 오른 것은 그에 대한 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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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하는 법, 이 점에서는 이인임도 예외가 아니었다.
권력을 잡자 관리 인사를 마음대로 쥐락펴락했다.
친인척이나 자기 사람을 요직에 앉히고, 뇌물의 많고 적음에 따라 관직을 나누어 주었다.
더 많은 관직을 팔기 위해 관리 정원을 늘렸으며, 뇌물이 충분히 쌓일 때까지 인사 발표를 늦추는 일도 있었다.
재판에도 개입해서 소송을 다투는 사람은 반드시 이인임에게 뇌물을 바쳐야 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이인임의 첩도 뇌물을 받고 관직을 팔았다.
심복인 임견미·염흥방이 이인자·삼인자가 되어 권세를 부렸으며, 심지어 권력자의 노비들도 위세등등해서, 수청목(水靑木·물푸레나무) 몽둥이를 들고 다니며 다른 사람의 땅을 마구 빼앗았으므로 토지문서에 우선하는 ‘수청목 공문(公文)’이란 말이 생겼다.
국가의 요직은 모두 이인임의 친인척이 장악하고, 관직은 뇌물 바치고 아첨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으며, 이·임·염 세 사람의 농장이 전국 각지에 퍼져 있었으니 국가는 껍데기만 남게 되었다.
이인임 집권기 14년 동안 민심이 고려 왕조를 버렸다.

최영은 무얼 하고 있었을까? 관직은 이인임 바로 아래였고 군사도 가장 많이 거느리고 있었지만, 최영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인임이 권력을 잡는 데 일조했을 뿐, 그의 권력이 부패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아니, 막지 않았다고 해야 옳다.
단 한 번도 이인임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성취한 홍산대첩의 논공행상에서도 아무런 공 없이 이인임에게 뇌물 주고 상 받는 사람이 있었지만 막지 않았다.
주위에서 왜 가만있느냐고 물으면 “정권을 잡은 사람이 자기 이익만 좇고 악행을 쌓아 스스로 패망을 재촉하고 있으니, 이 늙은이가 어쩌겠는가라며 한숨짓는 게 전부였다.
이때도 여전히 청렴했지만, 자신의 청렴이 주위로 퍼지게 하지는 못했고, 권력의 부패도 막지 못했다.

원로의 실패, 국가의 비극

경기도 고양시의 최영 장군 묘. 최영이 죽으며 “나의 무덤에는 풀이 나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는 전설이 있다.<BR> [중앙포토]

경기도 고양시의 최영 장군 묘. 최영이 죽으며 “나의 무덤에는 풀이 나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는 전설이 있다.
[중앙포토]

이인임의 권세는 우왕에 의해 끝이 났다.
1388년 우왕이 최영과 이성계에게 이·임·염 세 사람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번에는 최영이 왕명을 따라 이인임 세력을 일망타진했고, 며칠 새에 임견미·염흥방을 비롯한 고위 관료 70여 명과 그들의 노비 1000명을 처형했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최영은 이인임을 두둔해서 죽음에 이르지 않게 했다.
이인임과의 개인적 친분 때문이었는데, 당시 사람들은 “정직한 최공이 사사로이 늙은 도적을 살려 주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인임을 제거한 뒤 최영의 시대가 열리는 듯했지만, 몇 달 뒤 이성계에 의해 축출되고 곧 목숨을 잃었다.
그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요동 출병은 최고 권력자로서 최영의 능력 부족이 드러난 사건이었다.
그의 죽음으로 고려 왕조는 더 이상 지탱할 힘을 잃고 말았다.

최영이 청렴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인임 정권의 절대 부패 속에서 그만은 독야청청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최영은 자신에게 기대되는 역할을 하지 못했다.
예순이 넘은 나이와 높은 관직, 87전 87승에 빛나는 전공, 충·청·강·직하다는 평판이 합쳐져 국가의 원로로 인정받고 존경받았지만, 그는 정작 자신의 정치적, 사회적 위상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그 일을 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그 일을 대신할 수 없다.
그래서 결국 아무도 그 일을 하지 않게 되었고, 그 때문에 고려가 망했다.
‘원로’ 최영의 실패는 지금도 타산지석이 될 만하다.

이익주 역사학자·서울시립대 교수

내 인생의 브루투스, 은중과 상연

이주향 수원대 철학과 교수

이주향 수원대 철학과 교수

카이사르를 좋아했던 단테는 카이사르를 살해한 브루투스를 지옥에 보냈다.
『신곡』에 나오는 9개의 지옥 중에 가장 깊은 지옥, 배신의 죄를 범한 사람들이 가는 지옥으로. 나태주 시인은 ‘내상’이란 시에서 이렇게 썼다.
“카이사르를 죽게 한 것은 적군이 아니었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웠던 사람, 가장 아꼈던 사람, 자식처럼 믿었던 사람, 브루투스에 의해서였다.
브루투스가 칼을 들었을 때 카이사르는 그 칼을 거부하지 않았다.
아들 같은 사람의 칼을 맞고 카이사르는 고요히 숨을 거두었다.

실제로 카이사르가 브루투스의 칼이어서 고요히 수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시인의 관점은 마음을 움직인다.
그 후 이렇게 묻는 시인의 물음까지. “나는 대체 누구의 브루투스였으며 나에겐 또 누가 브루투스였을까?

질투가 자신을 찌르는 독 될 수도
생각하는 대로 세상은 만들어져
고통은 집착으로부터 시작되기에
집착 버려야 자신의 가치 알수 있어

그런 사람이 있지 않은지, 왠지 불편한 사람, ‘나’를 자극해서 삶을 흔들어놓고는 오히려 너 때문이라고, 네게 상처받았다며 공격해대는 사람! 그런 사람이 가까운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다, 그를 화두 삼아 ‘나’를 알아가는 수밖에.

요즘 조용히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드라마가 있다.
‘은중과 상연’이다.
말할 것도 없다.
상연은 은중의 브루투스다.
그런데 상연은? 상연 스스로도 자신이 은중의 브루투스였다고 생각했을까. 오히려 그녀는 자신이 칼을 맞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은중과 상연’, 30년 동안 이어진 여자들의 우정 이야기다.
그 우정은 우정의 이데아 관포지교(管鮑之交)를 생각하면 우정에 대한 모욕이지만, 그 모욕 속에서 피어나는 ‘자기 이해’라는 꽃은 모욕을 감당하기에 충분하다.
사랑하며 집착하며 질투하며 미워하며, 만나고 있지 않은 시간에서조차 서로를 떠나지 못하는 관계엔 지옥을 만드는 칼이 있다.
드라마에서 그 칼을 쥔 이는 일차적으로는 상연이다.

상연은 엄마·아빠가 든든했고, 멋진 오빠가 있었다.
똑똑한데 예쁘기까지 하다.
꼬인 데 없이 반듯한 은중은 그런 상연을 동경했다.
더구나 은중에게는 아빠가 없다.
아빠 없는 빈자리, 아프다! 그런데 이상하다.
아빠 없는 사실이 알려지고 나면 왜 아빠에 대한 그리움이 부끄러움이 되어야 하는지. 그 묘한 괴리를 ‘나’를 만나는 시간으로 삼게 해준 따뜻한 선생님이 있다.
바로 상연의 엄마다.
“슬픈 날에는 일기를 써. 선생님에게 보여주는 일기 말고, 진짜 일기!

은중의 내면이 세상의 편견으로 흔들리지 않고 단단해지는 데는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은중에게는 그 진심들을 수용하는 힘이 있다.
상연은 그런 은중이 좋으면서도 불편했다.
상연이 쓴다.
“모두가 은중이를 좋아했다.
사실은 나도 그랬다.
좋아하기만 했으면 좋았을 텐데, 미웠다.

이 익숙한 미움, 이것이 힘을 가지면 어떻게 되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삶이 드라마가 된다.
동생인 자기에게는 아무런 말도 없이 세상을 뜬 오빠가 은중에게는 아끼던 카메라를 주고 떠났다! 너무나도 멋진 오빠가 하룻밤 사이에 세상을 등지자 오빠를 사랑했던 엄마도, 집안도 무너졌다! 살기 위해 상연은 오빠의 행적을 추적했다.
그 과정에서 관심을 갖게 된 남자는 이미 은중의 연인이다! 의미가 만들어지는 순간순간에 은중이 걸림돌로 놓여있는 것이다.
은중은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그저 좋은 친구일 뿐인데.

오빠의 죽음이, 그로 인해 망가진 엄마가 삶을 전쟁터로 만들며 상연을 무너뜨리는 시간에 은중은 차근차근 자신을 성취해간다.
상연은 그 친구를 향해 괜히 소리를 지르고 싶다.
너 때문이라고, 상연의 시선은 늘 은중에게 있다.
은중을 질투하느라 스스로의 가치를 외면한 채 은중의 근처에서 맴돌다 스스로 고립된다.
니체가 말했다.
질투는 마침내 전갈처럼 독이 있는 꼬리로 자신을 되찌른다고. 가진 것을 누리지 못하고 가지지 못한 것, 가질 수 없는 것에 시선이 꽂혀있을 때 우리는 콤플렉스가 작동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 콤플렉스를 인지하고 돌보는 시간을 갖지 못하면 삶은 파괴적일 수밖에 없다.
늘 폭탄을 안고 있는 것처럼 살아왔던 상연이 마침내 자신을 보살필 수 있게 되었을 때는 죽음의 그림자가 그녀를 덮치고 있을 때였다.
그때 그녀는 비로소 그동안 꾹꾹 눌러왔던 말을 꺼내 보인다.
엄마가 은중이 너를 더 좋아하는 줄 알았다고, 오빠가 자기 때문에 죽은 줄 알았다고.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까? 이들의 대화에 답이 있다.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 가 아니라 아이가 그렇게 생각하면 세상은 그렇게 되어버리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 세상은 그렇게 된다.
생각이, 마음이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숙제는 마음에 휘둘리지 않고 마음을 잡는 것이다.
마음이 잡히면 죽어가면서도 편안하지만, 마음에 휘둘리면 삶이 폭탄이다.
붓다의 가르침 사성제(四聖諦)가 알려주는 것이 있다.
고통은 바로 집착에서 온다는 것! 고통의 근원에는 미워하고 애착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 그 집착을 돌이켜 내려놓기 전에는 자신이 얼마나 빛나는 존재인지도 알지 못한다.
상연을 보니 알겠다.
한 생각 돌이켜 스스로를 이해하는데 평생이 걸릴 수도 있다는 걸, 그러나 그래도 괜찮다.
돌이켜 마음을 잡을 수만 있다면!

이주향 수원대 철학과 교수

“그런 법이 산에 있었어요?

김홍준 기획담당선임기자

김홍준 기획담당선임기자

산의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10월의 산은, 말해서 뭐합니까마는, 탐스럽습니다.
지난해 10월만 해도 우리나라 인구의 10분의 1인 513만 명(국립공원기본통계)이 찾았으니까요. 여름이 남긴 물과 풀이 있고, 가을이 가져온 햇살과 바람이 있습니다.
요즘 북한산 백운대에는 기현상이 있습니다.
안산에서 온 이동현(27)씨가 “안산 다문화거리에 온 것 같다고 할 정도로 외국인이 더 많습니다.
외국인의 시선도 있습니다.
“산에서 술 마시면 안 되는데, 올해도 여전하네요. 유학 3년 차 한나(22·폴란드)의 말입니다.
국립공원에서의 음주 단속 건수가 2022년 328건에서 지난해 373건으로 오히려 늘었으니 한나의 말이 맞습니다.

법으로 막은 국립공원 음주 여전
도토리 채취, 반려견 동반도 금지

음주 산행의 뿌리는 깊습니다.
『유소백산록』에서 퇴계 이황은 ‘(소백산) 국망봉 정상에서 술 석 잔에 시 일곱 수를 쓰는데 해가 이미 기울었다’고 합니다.
480여 년 지난 지금으로 옮기면 정상주를 했다는 고백 아닌 고백. 과태료 10만원이 가능할까요. 퇴계 선생이 “마시는 걸 봤냐라면 어쩌죠.

음주 산행의 단속 근거는 자연공원법 27조입니다.
‘대피소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장소·시설에서의 음주 행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 시행령은 ‘탐방로, 산의 정상 지점 등 공원관리청이 지정하는 장소·시설’로 구체화하고 있습니다.
소백산이 국립공원이고, 음주를 금한 정상부이니 장소적 여건은 충족하지만, 행위적 요건이 애매합니다.
국립공원공단 관계자는 “현장에서 음주 장면(행위)을 포착하지 않으면 단속하기가 마땅치 않다고 합니다.
2년 전, 유력 정치인이 강화도 마니산에서 음주 장면을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하지만 마니산은 자연공원법이 적용되는 자연공원이 아니기 때문에 과태료는 비켜나갔습니다.

애초에 이 법이 시행된 때인 2018년 3월에도 논란이 있었습니다.
오랜 등산 문화를 법 하나로 바꾼다, 국민 의견은 물어봤느냐, 한 잔만 하는 건데 과잉 규제다, 음주 산행이 음성화될 것이다….

국립공원에서의 흡연 단속 건수가 2022년 219건에서 지난해 43건으로 급감한 것과 달리 음주는 요지부동입니다.
단속 건수가 행위의 증감과 꼭 비례하지는 않습니다만, 대체 왜 그럴까요. 흡연 적발 시 과태료가 세기는 합니다.
최고 200만원입니다.
“우리나라가 술에 유난히 관대한 것도 한몫한다고 한 중독치료 전문가가 말을 보탰습니다.
하지만 음주하는 ‘현장’, 국립·도립·군립공원 등 ‘자연공원’, 정상부·대피소 등 ‘지정한 곳’. 이 세 가지 중 하나만 피하면 ‘산에서 음주가 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는 ‘틈새’도 있지 않을까요. 실제로 북한산국립공원에서 막걸리 통을 배낭 밖에 꽂은 채(심증은 가지만 현장은 아님) 중성문을 지나(지정된 곳이 아님) 하산하는 남성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자연공원법 27조와 그 시행령을 모르고 있었을까요, 아니면 너무 잘 알고 있었을까요.

백운대의 이동현씨처럼 어쩌다 등산하는 이들은 “산에 그런 법이 있었어요?라고 반문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법’이 있다는 걸 어렴풋이나마 알아도 당국에서 기대하는 계도 효과는 클 겁니다.
음주로 인한 사고는 정상부에서만 일어나는 것도 아닌데, 법의 틈새도 메워야 할 것도 같습니다.

북한산성탐방지원소 앞. 한 부부가 열심히 도토리를 줍고 있었습니다.
등산객 한 명이 “(국립공원에서) 산나물·열매 채취하다가 징역살이해요라며 제지했습니다.
부부는 “그런 법이 있어요?라더니 도토리를 버리고 갔습니다.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 및 200만원의 과태료’라는 말을 듣고요. 반려동물을 동반하면 안 되고, 그늘막을 쳐서는 안 되며, 스피커를 틀면 안 되고, 혐오감을 일으켜서는 안 되고…. “그런 법이 있었어요?라고 반문할만한 ‘법’이 산에 꽤 있습니다.
10월, 산의 시간이 왔습니다.
아울러, 금지행위 단속 강화의 시간도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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