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는 남아돌고 집은 부족한데… 두 토끼 잡으려면


일러스트=이철원

현재 대한민국 대도시의 부동산 문제는 2가지가 있다.
첫째, 집값이 너무 올랐다.
서울의 평균 집값은 10억원이 넘은 지 오래다.
최근 들어 더 급격하게 올라서 정부는 강력한 대출 규제를 시행했다.
현재는 부동산 시장이 정지된 상태다.
그런데 코로나 이후 공사비는 2배 가까이 상승했다.
집값 상승이 멈춘 상태에서 공사비가 비싸지면 사업성이 나오지 않는다.
여기에 기존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의 부실이 더해져 건축 시장이 멈춰 섰다.
신규 건축이 진행되지 않으면 주택이 필요한 지역에 공급이 없게 된다.
장기적으로 집값이 폭등할 위험이 있다.
게다가 모든 재건축은 허가를 받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재건축 허가의 비효율성은 앞으로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둘째, 상업 시설의 공실률이 크다.
상거래의 절반이 온라인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상업 공간의 수요 급락으로 이어져 빈 상가가 많아졌다.
설상가상으로 내수 경제가 안 좋으니 실질 수요도 줄어서 상업 공간은 남아도는 실정이다.
상업 공간은 남아돌고 주거 공간은 부족한 두 가지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는 일석이조 방법이 있다.
상업 공간을 주거 공간으로 바꾸면 된다.

일반적으로 상업 시설은 기둥식 구조로 건축된다.
이 말은 내부의 벽을 부수거나 변형해도 된다는 이야기다.
기존의 상업 시설은 주거 공간으로 평면을 개조하기 쉽다.
남아도는 상업 시설을 주거로 리모델링하면 부족한 주택 공급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
이때 건축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생긴다.
첫째, 하수도 공사를 해야 한다.
보통 주택에는 부엌과 화장실같이 물을 쓰는 공간이 많다.
여기서 버려지는 물을 내려보낼 공간이 필요하다.
일반적인 아파트에서는 화장실의 슬래브를 낮추어서 하수도관이 지나가게 하거나 아래층의 천장 공간에 하수도관을 설치한다.
상가의 경우에는 층별·세대별로 소유주가 나뉜 경우가 많아 빌딩 전체를 리모델링하는 데 동의를 받기 어렵다.
따라서 부분 공사를 해야 할 텐데, 이럴 때는 아래층 천장을 이용해서 하수도 파이프 공사를 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자신의 층에서 바닥을 몇십㎝ 들어올려 하수도 파이프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보통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부엌 쪽의 바닥이 올라간 경우는 이런 하수도 공간 확보 때문이라고 보면 된다.
다행히 상업 시설의 층고는 높다.
아파트의 층고는 2.7m인 데 반해, 상업 시설은 층고가 4m 정도 된다.
따라서 바닥 면을 50㎝ 올렸다고 해도 기존의 아파트보다 천장고가 높은 주거 공간이 만들어질 수 있다.

만약에 상가가 한 층 소유주들의 동의를 받고 이런 시공을 한다면 충분히 쾌적한 주거 공간을 공급할 수 있다.
뉴욕의 ‘로프트(공장 등으로 쓰이던 건물을 아파트로 개조한 것)’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러한 시설들은 대체로 상업 시설에 가까워 생활이 편리하고 천장이 높아 인기가 좋다.
이때 발생하는 문제는 주차 대수다.
통상 법적으로 주거지는 단위 면적당 상업지보다 더 많은 주차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상업지를 주거지로 변형하면 주차장이 더 필요해진다.
하지만 이 부분을 법 개정으로 풀어준다면 기존 주차 대수를 가지고도 상업지를 주거지로 리모델링할 수 있게 된다.

또 다른 문제는 1층을 주거로 바꿨을 때 지나가는 행인들이 집 안을 들여다봐서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또한 디자인으로 해결할 수 있다.
바닥이 조금 높아진 상태에서 창문 턱을 조금만 높이면 행인들의 시야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보통 사람의 눈높이는 1.5m 정도 된다.
그러니 창문턱이 인도에서부터 1.8m보다 높으면 내부가 잘 들여다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1층도 주거에 사용할 수 있다.
이때 남는 자투리 외부 공간을 마당으로 개조해 쓴다면 매력적인 1층 주거지가 될 수 있다.

일반적인 근생 건물의 1층은 필로티 주차장으로 되어있다.
이때 근처에 있는 공영 주차장에 영구 임대를 확보하면 어떨까. 1층 필로티 주차 공간까지 주거 공간으로 개조하는 것을 법적으로 허용한다면 마당이 있는 바람직한 1층 주거 공간이 확보될 뿐 아니라 도시 풍경이 더 좋아진다.
이처럼 공실률이 높은 곳의 상업 시설을 주거로 개조하면 단기간에 많은 주택 공간을 공급할 수 있을뿐더러 도시의 모습을 훨씬 더 바람직한 주상 복합 형태로 개조할 수 있다.

현재 우리의 도시는 상업 지역과 주거 지역이 나뉘어 있다.
반면 유럽 도시들은 1층은 상업 시설이 있고, 2층부터는 주거로 만들어진 주상 복합으로 되어 있다.
이런 경우 걸어갈 만한 거리 안에서 모든 것이 해결되기 때문에 자동차 사용량을 줄일 수 있다.
이번의 위기를 기회 삼아 기존의 도시 구조와 주거 환경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이에 필요한 각종 법규를 지자체별로 조금씩 조율한다면 빠른 주택 공급을 통해 집값을 안정시킬 수 있을뿐더러 건설 경기를 부양하고 공실률도 낮출 수 있다.

뉴욕은 현재 상업 시설들을 적극적으로 주거 공간으로 바꾸는 중이다.
대형 사무용 빌딩은 유리창에서 엘리베이터 코어까지 거리가 20m 이상인 경우가 많다.
이런 건물을 주거로 변형하면 가운데 부분에 창문이 없는 방이 생기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창가에서부터 ‘ㄷ’자 모양으로 파내 안쪽 방까지 창문이 만들어지게 하고 이때 줄어든 용적률은 상층부로 쌓아 올리는 증축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이때 시에서 할 일은 높이 제한을 푸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상업 지역 내 빌딩 공실도 주거지로 변경할 수 있다.
디자인은 문제 해결의 결과물이다.
시대가 바뀌면 공간의 쓰임새와 수요가 바뀐다.
이때 유연하게 진화하는 도시가 살아남는다.
모든 생명이 진화를 통해 생존해 왔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로마 콜로세움과 비트코인의 공통점

‘전체는 부분의 총합보다 크다’라는 말이 있다.
네트워크가 됐을 때 시너지 효과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역사를 보면 건축에도 그런 사례가 있어 왔다.
피라미드를 짓는 일은 무척 힘든 일이다.
거대한 피라미드를 보면 경외심이 든다.
그러나 피라미드의 문제는 피라미드에서 멀어질수록 영향력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하나의 건축물이 가지는 영향력은 마치 중력처럼 건축물에서 멀어질수록 약해진다.

일러스트=이철원

일러스트=이철원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한 문명이 있다.
바로 로마 제국이다.
로마 제국을 대표하는 거대한 건축물은 콜로세움이다.
하지만 로마는 콜로세움을 수도 로마에만 두지 않았다.
같은 유형의 원형 경기장을 개발하는 모든 도시에 하나씩 건축했다.
그리고 이 도시들을 모두 도로로 연결했다.
네트워크를 만든 것이다.
이제 유럽인은 가는 도시마다 로마 제국에 대해 경외심을 가지게 됐다.
원형 경기장이라는 건축물 네트워크를 통해 유럽 전체를 통제권 안에 둔 셈이다.
하나의 건축물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네트워크’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로마 문명은 이전의 그리스나 이집트 문명과 다르다.

유럽은 이러한 네트워크의 장점을 교회 건축으로 계승했다.
유럽의 모든 도시에는 교회가 건축됐다.
대도시는 두오모라는 돔이 있는 대성당을 지었다.
작은 마을도 중심부에 교회가 건축됐다.
이러한 교회는 교황청의 관리 아래 하나의 네트워크가 됐다.
심지어 교회에는 ‘고해성사실’이 만들어졌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가장 숨기고 싶은 죄를 고해성사실에서 신부에게 말했다.
이로써 교회는 전 유럽의 가장 비밀스러운 정보들을 수집할 수 있었다.
이 역시 네트워크의 힘이다.

이러한 교회 건축 네트워크 덕분에 유럽은 하나가 됐다.
교황이 십자군 전쟁을 하러 가자고 했을 때도 전 유럽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네트워크의 힘은 컴퓨터에서도 나타난다.
가정용 컴퓨터 PC는 수퍼컴퓨터와 일대일로 연산 능력을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가정용 컴퓨터 수천 대를 케이블로 병렬 연결하면, 연산 능력이 수퍼컴퓨터에 맞먹는다.
이것이 네트워크의 힘이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대표적인 네트워크는 무엇일까? 인터넷이다.
세계 곳곳에 깔린 인터넷망을 통해서 우리는 서로 소통하고 있다.
이 네트워크를 기초로 기존에는 존재하지 않던 각종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는 기업들이 생겨났다.
대표적인 기업이 구글과 메타(구 페이스북)다.
이들은 광케이블로 연결된 서버 위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내는 기업들이다.
서버가 콜로세움이라면 광케이블은 도로다.
이 기업들의 가치는 수백억 달러에 달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이 기업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이용한다.
하지만 이 대단한 다국적 기업도 자신들 회사의 컴퓨터 서버를 연결하는 광케이블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다.

거대 IT 기업들의 약점은 그들도 어쨌든 국가가 제공하는 인터넷 인프라망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가 자국의 인터넷망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면 이 다국적 기업도 힘을 쓸 수 없다.
구글·유튜브·페이스북·트위터는 중국에서 이용할 수 없다.
중국의 인터넷망에서 쫓겨났기 때문이다.
이러한 약점이 존재하는 이유는 초거대 IT 기업도 국가가 이미 소유하고 있는 인터넷망에 소유권을 주장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는 기업이 생겼다.
바로 테슬라다.
일론 머스크는 스타링크를 통해 쏘아 올린 수만 대의 인공위성으로 국가의 도움 없이 인터넷 네트워크를 자체 구축했다.
국가로부터 독립한 기업이 된 것이다.
테슬라는 이뿐 아니라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를 만들었고, 자율주행 자동차도 개발했다.
이제 사람이 필요 없는 기업이 된 것이다.
심지어 발전소와 충전기 시스템도 개발했다.
국가로부터 에너지 독립을 이루려는 것이다.
테슬라는 핵무기 빼고는 다 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한 개인이 만든 기업이 네트워크를 장악하는 시대까지 왔다.
그렇게 될수록 일반 개개인은 더욱 약해진다.

우리 시대에 또 하나의 특별한 네트워크가 있다.
바로 비트코인이다.
흔히들 비트코인은 ‘디지털 금’이라고 이야기한다.
2100만개밖에 되지 않는 희소성 때문이다.
비트코인은 정부가 계속 찍어내는 화폐와 달리 발행량이 제한돼 있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그 희소성 외에도 독특한 특징이 있다.
통제자가 따로 없는 탈중앙성 네트워크라는 점이다.
인터넷 공간에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서 존재하는 이 네트워크가 비트코인이 가지는 중요한 가치다.

우리는 광케이블이 깔렸을 때 그 케이블망 위에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기업이 만들어질 줄 상상도 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일반인인 나는 향후 비트코인 네트워크를 이용해서 어떠한 가치를 만들어 낼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가까운 미래에 천재들이 비트코인 네트워크상에서 지금은 생각도 못 한 방식으로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을 만들 것이라고 본다.

비트코인 네트워크는 국가의 소 도 아니다.
그렇다고 한 기업이 만든 것이 아니라서 국가가 소유주를 체포하거나 구속할 수도 없다.
통제 불가능한 네트워크지만 동시에 누구나 부분적으로 소유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비트코인을 무엇이든 지을 수 있는 땅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비트코인은 ‘우리 세대의 강남 땅’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지금 비트코인 투자를 권하는 것이 아니다.
투자는 또 다른 영역이다.
다만 나는 비트코인은 미래의 천재가 이용할 네트워크라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이 네트워크 위에서 날아다니며 다음 시대의 구글이나 메타 같은 기업을 만들어 주기를 소망하고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서 국가는 규제보다는 장려하는 쪽으로 행정의 큰 방향을 잡아야 할 것이다.
미국은 이미 시작했다.

공간 수축의 시대에 살아남는 법

일러스트= 이철원

일러스트= 이철원

우리는 재산을 동산과 부동산으로 나눈다.
동산은 움직이는 자산으로 현금이나 주식을 말한다.
부동산은 움직이지 않는 자산으로 땅이나 건물 같은 것을 말한다.
부동산은 다시 말해서 공간 자산이다.
공간이 많이 확보된 사람은 이를 자산으로 삼아서 돈을 벌 수 있다.
건물을 가진 사람이 임대 수익을 얻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과거 농업 시대에는 부가가치를 만들려면 농사지을 땅이 많아야 했다.
제국은 옆 나라를 침공해서 영토를 확장하고 토지와 노예를 확보했다.
그렇게 국가 GDP를 늘려나갔다.
반면 영토를 확장하지 못한 나라는 GDP가 정체되는 것이다.
침략 전쟁 말고 상업으로 돈을 버는 방법도 있다.
그러려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거나 도시의 인구밀도를 높여서 상업을 활성화해야 한다.

그런데 영토 확장도 없고 상업도 발달시키지 못한 나라는 일인당 국민소득이 줄어드는 문제가 생긴다.
조선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반도 역사에 영토가 확장된 나라는 하나뿐이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다.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킨 후 국토가 몇 배 늘어났다.
민족적 관점에서는 고구려의 많은 영토를 잃은 것이지만 신라 입장에서는 영토가 늘어난 것이었다.
영토가 늘어나면 국가 GDP가 늘어난다.
그래서 통일신라는 공간적 관점에서 가장 부유했던 국가였다.
신라 금관, 불국사, 석굴암, 다보탑은 오래되었음에도 가장 화려하다.
경제적으로 부유했기 때문이다.
신라의 공간이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통일신라 이후 공간이 확장된 또 한번의 사례가 있다.
1970년대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은 북쪽의 땅을 잃은 상태에서 새롭게 시작했다.
조선과 비교하면 영토가 절반이 된 상태였다.
하지만 70년대 들어서 ‘경제 영토’는 늘어났다.
우선 아파트를 지었다.
빈 허공으로 쓸모없던 공간에 철근콘크리트와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서 아파트를 짓자 없던 공간이 생겨났다.
공간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도시의 인구밀도가 높아지자 상거래가 가능해졌다.
자영업자가 생겨나고 상업을 통한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해졌다.
중동에 건설 노동자도 진출했다.
국토는 그대로지만 경제 활동 영역은 넓어진 것이다.
이후 자동차를 비롯한 각종 제품이 미국으로 수출되었다.

90년대 들어서는 북방 외교를 통해서 철의 장막 뒤의 공간으로도 진출했다.
우리나라 초코파이와 스타킹이 소련에 수출되었고, 중국으로 라면이 수출되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FTA를 통해서 수출 무역 영토를 넓혀나갔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90년대 중반부터는 인터넷 가상공간을 만들었다.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앞서서 초고속 인터넷망을 구축했고 그 안에서 여러 가지 활동을 했다.
덕분에 페이스북보다 6년 앞서 싸이월드를 사용했고, 아이팟이 나오기 전부터 MP3로 음악을 들었다.
이 모든 것은 모두 공간의 확장이다.
한반도의 절반밖에 안 되는 부동산을 가지고 있었지만, 수출 경제 영토와 가상공간으로의 확장을 통해 인구 한 명당 사용하는 공간의 양은 어느 나라보다도 극대화되었다.
이러한 공간 확장의 풍요로움은 문화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이쯤부터 한류와 K컬처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문화는 경제가 발전할 때 나오고, 경제 발전은 공간이 팽창할 때 나온다.
우리는 내부로는 아파트와 신도시를 만들면서 공간을 창조했고, 해외로는 경제 영토를 넓혔으며, 인터넷을 이용해서 가상공간을 확장시켰다.
덕분에 우리는 지난 50년간 한반도 역사상 가장 빛나는 시대를 만들 수 있었다.
특히 가장 혜택을 본 세대가 X세대다.
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누릴 수 있는 공간이 계속 넓어진 세대다.
서울에서는 강남이 개발되었고, 아파트가 지어졌고, 대학생이 되자 해외여행 자율화가 시행되어 바깥세상을 구경할 수 있었다.
특히나 1991년 소련이 붕괴한 이후에는 평생 가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러시아, 동유럽, 중국도 구경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축복의 시대는 이제 막을 내리고 있다.

관세 전쟁이 시작되었다.
FTA로 누린 무역 공간은 축소될 것이다.
각종 지정학적 긴장 관계로 러시아와 중국으로의 여행이나 경제적 진출이 어려워졌다.
과거 일본을 밀어내고 우리가 차지했던 IT와 자동차 영역은 이제 중국에 밀리고 있다.
새롭게 시작된 인공지능과 로봇 분야에서는 한참 뒤처진 느낌이다.
지난 몇 년간 우리의 공간은 계속 축소되고 있다.
공간이 축소되면 GDP는 줄어들 것이다.
인구가 노령화되고 줄면서 내수 시장도 줄어들 것이다.
이러한 ‘공간 수축’의 시기가 되면 모두가 경제적으로 어려워질 것이고, 개인이 더 가난해지면 민심은 흉흉해지고 증오와 포퓰리즘 정치가 득세할 것이다.
이미 여러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공간을 다시 팽창시키지 못하면 우리는 이대로 내리막을 걸을 수밖에 없다.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공간 팽창의 방법은 세 가지다.
첫째, 반도체·인공지능·로봇 분야를 발전시켜서 가상공간으로의 확장과 가상과 현실의 융합을 이루는 방법이다.
둘째, 지구온난화를 이용해서 북극해 항로로의 진출을 모색해야 한다.
북극해의 주변부가 일 년 내내 녹아있게 되면 지금 대서양과 태평양 중심의 물류는 북극해 연안으로 옮겨 갈 것이다.
이때 일본 관서 지방과 협업해서 동해를 아시아의 지중해로 만들어야 한다.
이때 울릉도는 지중해의 시칠리아섬처럼 요충지 역할을 할 것이다.
셋째, 김씨 일가 독재가 끝나고 북한이 대한민국과 경제적 교류를 할 수 있는 나라가 되는 것이다.
북한의 공간이 사용된다면 우리나라 국토는 마치 통일신라 시대처럼 공간이 2배로 늘어나는 효과가 생겨날 것이다.
게다가 북한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이어서 내수 시장이 1.5배 성장하는 효과도 생겨난다.
가까운 미래에 이 세 가지 모두 이룰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콜럼버스와 달리, 中 정화는 왜 '빈손'이었나

일러스트=이철원

일러스트=이철원

중국 명나라의 정화와 이탈리아 제노바의 콜럼버스를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롭다.
정화는 1405년에 해외 원정을 시작했고, 콜럼버스는 그보다 87년 후인 1492년에 탐험을 시작했다.

정화는 300척의 배를 가지고 원정을 진행했으나, 콜럼버스는 3척의 배를 가지고 탐험을 시작했다.
선단의 규모에서 100배 차이다.
정화는 2만7000명의 선원을, 콜럼버스는 90명의 선원을 가지고 탐험을 했다.
선원 규모에서는 300배 차이가 난다.
정화는 120미터 길이 2000톤 규모의 대형 선박을 가지고, 콜럼버스는 19미터 길이의 산타마리아호를 타고 모험했다.
규모 면에서 정화의 함대가 콜럼버스의 함대를 압도한다.
대기업과 벤처기업의 차이 정도다.

그런데도 콜럼버스는 신대륙을 발견하여 역사의 흐름을 바꾸었지만, 정화는 30년 가까이 7차례의 탐험으로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까지 도달하였음에도 이후 역사에는 큰 영향을 끼친 바가 없다.
왜 그런 차이가 났을까?

가장 큰 이유는 콜럼버스는 망망대해 바다를 향해서 나갔고, 정화는 해안선을 따라서 항해했다는 점이다.
콜럼버스는 인도·중국·일본으로 갈 수 있는 새로운 항로를 발견하려는 목적으로 바다를 건넜지만, 정화는 그저 옆에 있는 나라를 조공국으로 만들기 위해서 안전하게 해안선을 따라서 항해하였다.

그런 이유로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했지만, 정화는 대단한 발견을 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왜 정화는 바다로 나갈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둘은 공간을 이해하는 방식이 달랐다.
두 사람 모두 해안선에서 배를 띄웠다.
하지만 정화는 해안선이 땅의 끝이라고 생각했고, 콜럼버스는 해안선은 새로운 바다라는 공간의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왜 정화는 해안선을 새로운 시작으로 보지 않았을까? 그는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면 콜럼버스는 자신은 변두리에 있다고 생각했다.
과거 인류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했었다.
온 우주가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고 생각했을 때는 과학 발달이 없었다.
하지만 훗날 태양이 중심이고 지구가 태양 주변을 도는 행성이라는 점을 인정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인류는 과학 문명을 이룰 수 있었다.

중국이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듯이 중국은 자신이 가운데, 즉 중심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상태에서는 멀리 있는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
그러니 먼 곳을 탐험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중국은 이미 유럽에서 많은 상인이 찾아와서 물건을 사 가는 경험을 하였다.
하지만 동쪽으로 항해해서 자신이 직접 유럽에 갈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자신이 중심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동쪽으로 항해를 했더라도 태평양의 폭은 대서양 폭의 5배나 되기 때문에 태평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반면에 자신이 변두리라고 생각했던 이탈리아 제노바의 청년은 서쪽으로 항해해서 신대륙을 발견했다.

중국이 자신의 중심이라고 생각한 데는 지리적 이유가 크다.
‘지리의 힘’의 저자 팀 마샬에 의하면 중국은 해안선이 둥그런 모양이어서 중원에서 같은 거리를 가지게 되기 때문에, 중원을 차지하는 자가 해안선까지 장악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유럽은 세로 폭이 좁은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아프리카 대륙과 접하고 있으므로 바다 건너에 거대한 대륙이 있다는 경험을 했다.

그런데, 그 많은 유럽 사람 중에서 왜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을까? 우리는 그의 직업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콜럼버스는 유능한 지도 제작자였다.
유럽의 지도는 바다에서 배가 항해할 때 사용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그는 항상 땅뿐 아니라 바다도 생각했다.
지도를 만드는 사람은 공간을 파악하는 자이자,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 정보를 추구하는 자다.
즉 주제 파악이 되는 메타인지가 잘되는 사람이었다는 말이다.
게다가 콜럼버스는 놀라운 의지의 사나이였다.

그는 이탈리아 제노바 출생이지만, 이탈리아에서 자신의 꿈을 지원해 줄 사람이 없자, 당시에 해양 강국이었던 포르투갈로 1480년에 이주했다.
그곳에서도 후원자를 찾지 못하자, 5년 후인 1485년에 스페인으로 옮겼다.
스페인에서 7년을 고생한 후에 1492년이 되어서야 후원자를 만나 최소한의 비용을 얻어 겨우 출항하게 된 것이다.
고향을 떠난 후 12년을 고생한 다음에야 꿈꾸던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탈리아 제노바의 청년이 스페인의 지원을 받아서 신대륙을 발견했다는 점이다.
이는 마치 베트남 사람이 우리나라에 와서 벤처기업을 세워서 네이버나 삼성전자 같은 기업을 만든 것이나 마찬가지다.
스페인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대단한 제국이었는지 새삼 느낄 수 있다.

콜럼버스의 모국인 이탈리아와 콜럼버스를 지원해 준 스페인의 공통점은 두 나라 모두 반도라는 점이다.
네덜란드와 영국도 대륙의 중심이 아닌 바다에 접한 면이 많은 작은 나라였다.
거대한 땅을 소유하지 못했던 반도나 섬의 국가들은 바다로 진출했다.
우리나라도 반도에 있다.
북한이 막고 있어서 지금은 섬나라에 가깝다.

우리는 더 넓은 공간에 진출할 생각을 해야 한다.
바다도 좋고, 북쪽으로 진출해도 좋다.
21세기에는 더 넓은 공간이 있다.
우주 공간도 있고, 인터넷 공간도 있다.
다행히 우리는 90년대에 초고속 인터넷망을 깔고 반도체 산업도 발전해서 인터넷 공간에서는 지금까지는 잘해 왔다.
싸이월드도 페이스북보다 5년 앞서서 만들었고, 아이팟이 나오기 전부터 MP3플레이어로 음악을 들었던 이유도 인터넷 공간으로 빨리 진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부분에서 미국·중국·대만에 추월당했다.
관세 전쟁으로 무역 영토도 줄어들고 있다.
작은 나라일수록 우리는 더 큰 공간으로 확장해 나갈 궁리를 해야 한다.
지금의 공간에 안주하면 그 나라와 사회는 분열하고 결국 망한다.
우리의 지금 모습을 보라.

'경의선 숲길'에선 왜 지갑을 열까

뉴욕과 바르셀로나

일러스트=이철원

일러스트=이철원

스페인 바르셀로나는 가로 130m 세로 130m 크기 정사각형 블록이 격자형으로 배치된 도로망을 가지고 있다.
‘만사나’라고 불리는 이 도로망은 건축가 ‘일데폰스 세르다’가 1859년에 디자인했다.
정사각형 블록의 안쪽으로는 중정이 있어서 거주자들은 조용한 중정을 공유하면서 공동체를 완성할 수 있게 계획되었다.

그런데 이 도로망이 특별한 진짜 이유는 정사각형의 모서리 부분이 45도 각도로 잘려 있다는 데 있다.
단순한 사각형 블록 모양과 달리 모서리가 따져 있는 모양이기 때문에 사거리 빈 공간의 개방감이 훨씬 크다.
계산을 해보면 단순한 직각 모서리 블록으로 만들어진 사거리보다 만사나 블록이 만드는 사거리는 빈 공간이 5배나 더 넓다.
덕분에 사거리가 광장처럼 시원한 느낌이 든다.
우회전, 좌회전을 할 때도 운전하기 편하고 앞으로 만나게 될 길도 잘 보이는 장점이 있다.

바르셀로나의 만사나 도로망과 비교되는 것은 뉴욕의 도로망이다.
뉴욕의 도로망은 바르셀로나보다 약 50여 년 전인 1811년에 건축가 ‘존 랜들’이 디자인했다.
뉴욕 도로망의 특징은 가로 240m 세로 60m의 가로로 긴 직사각형 블록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뉴욕의 블록 한 개의 면적은 1만4400㎡ 정도이고 바르셀로나 블록 한 개의 면적은 1만6100㎡ 정도로 크기도 비슷하다.

하지만 블록 모양은 뉴욕은 직사각형인 반면 바르셀로나는 정사각형에 가까운 팔각형이다.
그 차이점이 뉴욕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뉴욕은 격자형 도로망을 만들 때 남북 방향 도로는 ‘애비뉴’, 동서 방향 도로는 ‘스트리트’로 이름을 붙였다.
그런데 맨해튼은 남북 방향으로 긴 섬이다.
그러다 보니 교통량은 남북 방향이 많다.
따라서 남북 방향으로 난 애비뉴의 폭은 넓다.

반면 폭이 좁은 동서 방향으로는 교통량이 적어서 도로 폭이 좁다.
남북 방향으로 난 애비뉴의 폭이 넓다 보니 낮 시간 빛이 많이 든다.
주변에 높은 건물이 있어도 점심시간 때 애비뉴는 밝다.
2000년 전에 만들어진 도시인 로마는 보통 50m마다 교차로가 나온다.
반면 뉴욕과 바르셀로나는 각각 240m와 130m마다 교차로가 나온다.
로마는 사람이 걸어 다니던 시절에 만들어진 도시다.
그래서 길도 구불구불하고 교차로 간격이 좁다.
반면 뉴욕과 바르셀로나는 마차가 주요 교통수단이던 시절에 만들어진 도시다.
마차가 다녀야 하는 뉴욕과 바르셀로나는 직선의 도로망을 가지고 있고 교차로 간격도 넓어졌다.

자동차가 발명된 후에 만들어진 강남의 도로망은 직선의 격자형 도로망이고 사거리 사이 간격은 800m다.
뉴욕의 240m의 3배 정도다.
로마, 뉴욕, 강남 각 도시의 교차로 간격은 50m, 240m, 800m로 다르지만, 보행·마차·자동차라는 각 시대의 교통수단을 고려해서 보면 동일하게 40초대 후반이라는 얼추 비슷한 시간 거리를 가진다.
도로망은 도시가 만들어진 당대의 주요 교통수단이 결정한다.

뉴욕에서는 볕이 잘 드는 애비뉴를 따라서 걷다 보면 60m마다 새로운 스트리트 풍경이 펼쳐진다.
시속 4킬로미터로 걷는 보행자는 1분마다 새로운 풍경을 만나게 된다.
덕분에 걷는 데 지루하지 않다.
뉴욕 맨해튼은 촘촘히 건설된 지하철과 1분마다 풍경이 바뀌는 도로망 덕분에 걷기 좋은 보행 친화적 도시가 되었다.
실제로 뉴욕에서는 스트리트 20개 정도를 지나는 20분 정도 거리는 웬만해서는 걸어서 다닌다.
뉴욕 블록의 가로 길이 240m는 마차에 맞추어진 교차로 간격이고, 세로 길이 60m는 로마의 50m 교차로 간격과 비슷한 보행자를 위한 교차로 간격이다.
그렇게 뉴욕은 마차와 보행자 둘 다를 만족시키는 도로망 패턴이다.
뉴욕은 물류의 효율성과 보행 친화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도시다.

향후 우리는 걷기 좋은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걷기 좋은 도시는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이유는 걷는 사람들은 가게에 들어가서 소비를 한다.
자동차를 탄 사람은 주차하기 편한 대형 쇼핑몰에만 간다.
자동차 중심으로 설계된 도시는 거대 쇼핑몰을 만들고 운영할 수 있는 대기업만 돈을 벌 수 있는 도시다.
현대인은 온라인으로 대부분 쇼핑을 한다.
온라인 쇼핑이 소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도시는 천문학적 자본으로 온라인 쇼핑 플랫폼을 구축한 초거대 IT·유통 기업만 돈을 벌 수 있다.

그런데 좋은 사회는 소자본 자영업자가 많은 사회다.
유산을 물려받지 않아도 창의적 아이디어와 적은 돈으로 창업하고 돈을 벌 수 있을 때 부의 이동 사다리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부의 양극화를 깨뜨려야 한다.
그런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걸어서 근처 작은 가게에 들어갈 수 있는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현대사회에서 최고의 소비자 유인책은 ‘자연’이다.
과거에는 들판에서 농사를 지어서 돈을 벌어야 했다.
자연은 지천으로 깔린 노동의 현장일 뿐이었다.
하지만 현대인은 자연과 격리되어 도시 안 실내 공간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낸다.
지금은 자연이 최고의 럭셔리다.

자연을 접하는 공원 근처가 최고로 소비자를 유인하기에 좋은 상업지다.
도시 내에서 공원의 접점을 높일 좋은 방법은 정방형보다는 직사각형, 직사각형보다는 좁고 긴 선형의 공원을 만드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마포에 있는 ‘경의 숲길 공원’이다.
이렇게 60m마다 교차로가 있는 도시를 만들고, 한쪽에는 선형의 공원과 연계된 상업지구가 있을 때 걷기 좋은 도시가 된다.
그럴 때 소규모 자영업자가 돈을 벌 수 있는 도시 공간이 된다.
이렇듯 도로망 패턴은 사회의 경제구조를 결정하고, 경제 구조는 사회의 모습을 결정한다.
그리고 그렇게 구성된 도시 공간은 향후 수백 년 동안 그 사회에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건축 공간이 중요한 것이다.

수술실의 칼, 골목길의 칼

칼 든 사람, 수술실선 의사·골목길선 강도
중요한 건 맥락… 시대적 변화 읽어야 할 때
역사를 잊는 국민에겐 미래가 없다고?
그런데 왜 중국 말고 일제만 이야기하나
강대국 된 중국, 지금 곳곳서 '친중 공작'
좁게 보면 부자 對 빈자가 정치현안 같지만
지금 우리에겐 '지정학적 변화' 더 중요해

일러스트=이철원

일러스트=이철원

그림은 배경이 중요하다.
칼을 든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 사람의 배경이 어두운 골목이면 목숨을 위협하는 강도이고, 배경이 수술실이면 목숨을 살리는 의사가 된다.
사건 하나가 배경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배경은 공간이다.
건축에서 배경은 크기와 범위가 중요하다.
작은 건물을 지을 때는 거리 배경을 살펴본다.
건축에서는 그것을 어려운 말로 ‘컨텍스트’를 고려한다고 말한다.
컨텍스트를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서 이 건물은 여기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아파트 단지가 만들어질 때는 도시 스케일의 배경을 고려해서 보아야 한다.
신도시를 만들 때는 국토 개발 규모의 배경을 보아야 한다.
이렇듯 배경은 스케일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을사년 들어 각종 분야가 격동하고 있다.
이는 배경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배경의 변화는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천천히 진행되어 왔지만, 이제야 우리가 깨닫고 있는 것이다.
우선 자연환경이 만드는 배경이 바뀌었다.
지구온난화다.
이제는 이상 기후라 부른다.

경제적 배경도 바뀌고 있다.
달러패권이 저무는 것이다.
1970년대 달러가 페트로달러로 기축통화가 된 후 미국은 돈을 찍어내면 무슨 물건이든 살 수 있게 되었다.
그 돈을 번 국가는 서독과 일본이다.
둘 다 2차 세계대전 미국에 패전한 나라여서 미국이 안심하고 밀어줘서 선진국이 된 나라다.
1990년대 들어 국가부채가 커진 미국은 달러채권을 사줄 더 큰 국가가 필요했고, 중국이 선택됐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오판이었지만 빌 클린턴은 중국을 WTO(세계무역기구)에 최혜국 대우로 넣어주었다.
덕분에 세계의 공장이 된 중국은 소련패망 이후 30년 만에 G1 미국에 대항하는 국가로 부상했다.
중국은 독일, 일본과 달리 미국의 통제를 거부한다.
중국은 안보상 미군의 보호가 필요한 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배경의 변화는 국내 사건의 의미를 변화시킨다.

우리는 ‘주 52시간 근무’를 하고 있다.
노동자 인권의 의미에서 좋은 시도다.
하지만 우리는 경쟁해서 살아남아야 하는 국가다.
실리콘밸리의 기업들과 산업 스파이까지 사용하는 중국의 기업들은 잠을 안 자고 일하는데 삼성전자는 52시간에 묶여 있다.
그러다 보니 삼성전자 주요 연구 시설은 캘리포니아에 있다.
일자리는 해외로 빠져나가고 국내 기술력은 중국 기업에 추월당했다.
주 52시간제와 워라밸 흐름은 우리를 추격하는 중국 공산당이 가장 좋아할 일이다.
일반 분야에서 노동시간은 지켜져야 한다.
하지만 창의적 기술 분야에서는 없어져야 할 법이다.

우리나라는 2005년부터 외국인이 영주권을 얻은 뒤 3년이 지나면 지방선거에서 투표할 수 있도록 바꿨다.
인권 측면에서 좋은 일이다.
그런데 국내 외국인의 80%가 중국인이다.
이 역시 중국 공산당이 제일 좋아할 법안이다.
우리는 역사를 잊는 나라는 미래가 없다고 하면서 항상 일제강점기 이야기만 한다.
그러면서 반일 감정을 자극하는 드라마나 영화를 주로 만든다.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블록에 남아 있으려면 극동아시아에서 일본과의 협력이 중요하다.
둘을 갈라지게 하는 것 역시 중국 공산당과 북한이 좋아하는 일이다.
중국 자본은 반일 드라마와 영화 제작에 기쁜 마음으로 돈을 투자할 것이다.
우리가 지난 수십 년간 민주주의, 인권, 정치적 올바름, 올바른 역사 의식이라고 믿고 행한 일들은 결국 후발 주자인 중국 공산당에 우리 후손의 일자리와 먹거리를 넘겨주고, 대한민국을 친중 세력으로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가까이 위치한 남미 국가들이 공산주의로 넘어가지 않게 하려고 CIA(중앙정보국)를 동원해 친미 정권을 수립하려 노력했다.
1990년대 이후 세계의 공장으로 부자가 된 중국 공산당이 넘치는 돈과 많은 인구를 이용해 가장 가까운 나라 대한민국에 그런 일을 안 할까?

이런 행동은 타국의 주권에 영향을 끼치는 나쁜 행동이라고 도덕적 정죄와 비난만 해서는 안 된다.
모든 국가는 자국 이익에 따라 움직인다.
우리는 타국의 이기적 결정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결정을 하면 된다.
국내에는 그런 중국과 북한의 지원을 받아서 정책을 만들고 사회운동을 하는 세력이 있다.
이들의 목표는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좀먹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간첩 행위라고 부른다.
물론 겉으로는 민주, 인권, 약자 보호, 워라밸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을 것이다.
이들은 이 가면으로 선량하고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자기편으로 흡수하고 이용해 왔다.
좋은 뜻의 일이 다 나쁜 의도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일부 순수하지 않은 의도로 거짓 대의명분을 걸고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순진한 행동은 자칫 반국가적 멍청한 행동이 될 수 있다.

안타까운 것은 선량한 사람이 그렇게 이용당할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이 자유무역을 하기에 우리와 같은 자유민주주의 시스템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중국은 항상 공산당 전체주의 국가였다.
이제 돈과 인구, 인공지능(AI)을 이용한 통제 기술까지 가진 중국은 더 무서운 전체 국가가 되었다.
이것은 ‘혐중’이 아니다.
‘현실 직시’일 뿐이다.

정치는 적을 만들어야 시작된다.
건국 초기 우리나라 정치 지형에서 적은 북한이었다.
수십 년 지나자 전라도와 경상도로 나뉘어서 싸웠다.
정치가들은 그것으로 먹고살았다.
1990년대 들어서는 부자와 가난한 자로 나뉘어 싸우는 구도로 바뀌었다.
아직도 우리의 정치 구도를 강자와 약자의 대결로 보는 사람이 많다.
많은 지식인과 언론이 그렇다.
배경을 좁게 보고 있어서 현상을 오판하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겪는 사건은 정치가들의 권력 다툼이나 빈부 대결보다 더 큰 지정학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소련이 패망했기에 우리는 지난 30년간 외부의 적이 없다고 생각해 왔다.
잘못된 생각이다.
배경이 수술실에서 어두운 골목길로 바뀌었는데, 아직도 자기가 수술 메스를 든 의사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
이미 강도가 된 줄 모르는 사람이 많다.

발코니 사라진 아파트, 범인은 국회다

침대 없던 시절 만든 85㎡ 국민 주택 기준,
공간 더 필요해지자 '발코니 확장법' 땜질
빨래 널고 바람 쐬는 공간 집에서 사라져
도시는 삭막해지고 집에선 자연 못 즐겨
국회는 수십 년 내다보고 제때 입법해야
'4류 정치'가 기형적 도시 만들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욕을 많이 먹는 직업은 무엇일까? 아마도 국회의원일 것이다.
수많은 특권을 누리면서도 하는 일은 없어 보이고, 허구헌 날 호통치고 싸우는 모습이 미디어를 통해 비치니 그럴 만도 하다.
말로만 국민을 섬긴다고 하는 것 같다.
오죽하면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이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조직은 3류, 기업은 2류”라는 말을 했을까.

국회의원이라는 직업은 입법이 주요 업무다.
수십 년간 여러 가지 어이없는 입법이 있었지만, 건축가로서 말할 수 있는 잘못된 법은 ‘발코니 확장법’이다.
발코니를 확장해 실내 공간으로 잘 쓰게 해줬는데 왜 잘못된 법이냐고 생각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 법이 나쁜 이유는 주거 공간에서 자연을 사라지게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일의 순서만 제대로 했다면 말이다.

일러스트=이철원

일러스트=이철원

얼마 전 도쿄에 다녀왔다.
도쿄와 서울은 건축적으로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점이 있겠지만, 건축가의 눈에 들어오는 가장 큰 차이는 주택에 발코니가 있느냐 없느냐다.
도쿄에서도 오피스 건물은 커튼월로 되어 있다.
하지만 초고층 주거를 제외하고는 웬만한 주거용 건물에는 여지없이 발코니가 있다.
초고층 건물은 지진에도 견딜 수 있는 커튼월을 사용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아파트의 창문은 지진이 났을 때 유리가 깨져 지상으로 떨어지게 되면 심각한 피해를 입힐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발코니를 만들어 깨진 유리를 비롯한 잔해가 발코니에 떨어지게 하려는 의도가 있다.
이 외에도 발코니는 다양하게 활용된다.
빨래를 너는 공간이다.
나와서 바람을 쐬기도 한다.
여름에 햇볕이 들이치는 것을 막아주는 차양의 기능도 수행한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의 아파트 주거에는 발코니가 없어 도시의 풍경이 삭막해 보인다.
거주자 입장에서는 집에서 자연을 즐길 수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발코니를 확장해서다.
발코니 확장은 왜 했을까? 우리 국민이 침대를 사용하기 시작해서다.
과거에는 장롱에서 요와 이불을 꺼내 펴서 잠을 잤다가 아침에 일어나면 다시 집어넣어 사용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잠은 침대에서 자는 것이 일상이 됐다.
그뿐 아니라 TV는 소파에 앉아서 보고, 밥은 식탁에서 먹고, 공부는 책상에서 한다.
하나의 공간이 하나의 기능만 하게 됐다.
그리고 그 공간에는 그 필요에 맞게 가구가 놓였다.
우리의 일상에서 가구가 점점 늘어나게 됐다.
가구는 사용할 때는 편리하다.
문제는 사용하지 않을 때에도 공간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더 넓은 집이 필요해졌다.

국민의 소득이 늘면 더 큰 공간이 필요해지게 마련이다.
우리나라 국민소득은 1970년대 이후 꾸준히 증가해 중산층은 점점 더 큰 집이 필요해졌다.
그러나 정부는 부가가치세가 더 붙는 기준점인 주거 면적 85제곱미터를 그대로 뒀다.
세제가 그렇다 보니 건설사에서는 85제곱미터 이하를 주로 공급해왔다.
사람들은 더 넓은 실내 면적이 필요했는데 집은 계속 좁았다.

그때 마침 ‘알루미늄 섀시’가 보급됐다.
사람들은 발코니를 알루미늄 섀시 창틀로 막아 실내 공간처럼 사용했다.
알루미늄 섀시 덕분에 불법 증축이 판을 치게 된 것이다.
너도 나도 이렇게 하자 2005년에 국회는 ‘발코니 확장법’을 만들어 합법화했다.
이후에는 폭 1.5미터의 서비스 면적 발코니를 확장해 사용하기 위해 아예 건축설계사무소에서는 발코니는 확장된 것으로 생각하고 방을 디자인했다.
지금 대부분의 신축 아파트는 발코니를 확장하지 않으면 침대를 놓을 수 없는 크기로 애초에 디자인된다.
그래야 용적률을 최대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지금 우리 도시의 풍경이고 주거 현실이다.

이 모든 것이 제때 제대로 된 입법을 안 했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 더 큰 집이 필요해지니 이제는 면적 산정 방식을 벽의 중심선이 아닌 벽 두께를 뺀 실내 면적으로만 계산하게 했다.
이것도 실내 면적을 늘려주려는 편법이다.
만약 1980년대에 중산층 주거의 기준을 85제곱미터가 아닌 100제곱미터로 올렸더라면 ‘발코니 확장법’은 만들지 않아도 됐을 것이고, 지금 우리는 발코니가 있는 더 좋은 중산층 주거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장의 세수가 줄어드는 것을 피하기 위해 중산층용 과세 기준을 바꾸지 않았고, ‘발코니 확장법’이라는 이상한 법을 제정해 결국 기형적인 도시를 만들게 된 것이다.
이것이 가까운 미래도 생각하지 못하는 ‘4류 정치’가 만든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은 발코니 확장법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지금도 시대에 뒤떨어진 호화 주택 기준이 많다.
세금 규칙을 제때 바꾸지 않으니 편법을 쓰는 이상한 기형적인 건축만 나온다.
유홍준 작가가 과거 문화재청장을 하던 시절에 호화 주택의 기준을 바꾸지 않으면 100년 후에 우리나라에는 문화재로 보여줄 만한 건축물은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한 적 있다.
공감하는 말이다.
우리가 자랑하는 많은 건축 문화재는 당대의 초호화 건축물이었다.
건축 설계자가 감리를 못하게 하는 법도 최상의 건축 품질을 이끌어내는 데는 걸림돌이 된다.
대한민국은 모든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고 법을 만드는 경향이 있다.
건축에서의 각종 심의를 보면 규제가 선진국을 만든다는 환상에 빠진 것 같다.
우리나라는 평등을 위해 하향 평준화를 추구하면서 말로는 혁신과 창의를 외치는 모순에 빠져 있다.

좁은 컵에 많은 양의 자갈, 모래, 물을 넣는 실험이 있다.
무작위로 넣으면 다 집어넣지 못하지만 굵은 자갈부터 알맹이가 작은 모래와 물의 순서로 넣으면 다 집어 넣을 수 있다.
일의 순서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험이다.
법도 마찬가지다.
이제 국회의원들은 수십 년 후를 내다보고 일의 순서를 제대로 알고 법을 만들어 주길 바란다.
당장의 표를 얻기 위한 입법은 나라를 망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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