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익숙함 탈피하면 사고 유연해져…다니던 길도 조금 돌아가보길| 김진세 정신과 전문의 heart2heart.kr
하루하루가 지루하고 버겁다시는 70대 할아버지. 새로운 취미라도 만들어보자는 조언에 “젊어서 놀아봤어야지. 이 나이 되면 새로운 시도가 겁이 나. 이렇게 불행하게 살다 가야 하나?”라며 한숨을 쉬셨다.
어떻게 하면, 나이가 들어도 행복해질 수 있을까?
평범하고 반복되는 삶이 불행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삶이 불행하다고 느낀다면 적극적인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긍정심리학’에서는 강조하고 있다.
긍정심리학은 인간 심리의 병리를 치료하고자 하는 다른 심리학과 달리 행복 추구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 생활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
생각의 틀이 너무 단단해서이다.
경직된 사고방식을 유연하게 바꾸려면 행동부터 바뀌어야 한다.
의도적인 일상의 변화가 필요하다.
아주 소소한 것부터 시작해보자. 평소 신발을 왼쪽부터 신었다면 오른쪽 먼저 신어보는 것도 신선한 일상의 변화다.
매일 다니던 익숙한 길 대신조금 돌아서 가보는 것도 좋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반나절이라도 독서에 집중해보자. 윤수일의 ‘아파트’ 말고 로제의 ‘아파트’를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사실 변화는 스트레스다.
하지만 적당한 정도라면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긍정적 사고방식은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지만, 용기 내 행동하지 않으면 실현 불가능하다.
늙으면 왜, ‘나잇값’에 연연해할까

“나잇값 못한다는 소리 들을까 봐 걱정이에요.” 가수 임영웅의 ‘찐팬’답게 하늘색 티셔츠까지 차려입은 할머니가 얼굴을 붉히셨다.
덕분에 인생이 즐거워졌다면서도 목소리에는 수줍음이 실렸다.
노인이 되면 왜 나잇값에 민감해질까?
7월11일 세계인구의날을 맞아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39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스스로 더는 젊지 않다고 느끼는 나이’와 ‘스스로 늙었다고 느끼기 시작한 나이’에 관해 조사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 20대 젊은이는 36세가 되면 젊지 않다고, 또 42세가 되면 늙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반면 60~70대 노인은 65세가 되어야 젊지 않다고 느끼며 75세나 되어야 늙었다고 판단한다.
사실 늙음을 부정하는 것은 정신방어기제일 수 있다.
삶의 도움도 되는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
요즘 사람들 말로 정신승리 아닌가.
늙으면 왜, 커피를 멀리해야 할까?

저녁 뉴스가 막 시작되는 걸 보고 있었는데 퍼뜩 정신을 차려보니 일기예보가 나온다.
초저녁인데도 깜빡 잠이 들었나 보다.
점점 잠드는 시간은 빨라지고, 동시에 새벽이 되면 눈이 일찍 떠진다.
나이가 들면 왜 수면 패턴이 바뀔까?
일주기 리듬의 변화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생체시계가 존재한다.
대뇌 시상하부에 2만여개 세포로 만들어진 시교차상핵(SCN)이 생체시계 역할을 수행한다.
SCN이 노화하면 위상전진(일찍
잠들고 일찍 일어남)이 일어나고 조각잠을 자게 된다.
전에 비해 낮에 더 피곤하고 졸리다.
다른 원인도 적지 않다.
우울증과 같은 정신적 문제나 통증과 같은 신체적인 문제도 수면에 영향을 미친다.
질병 치료를 위해 복용하는 여러 약물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김진세 정신과 전문의쉽게 간과하는 원인으로 커피 과다복용이 있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다량의 카페인이 수면을 방해한다.
잠에 들기도 어렵지만 수면 유지가 안 된다.
커피와 상관없이 잘 잔다는 사람도 수면 중 뇌파검사를 해보면, 잠의 질이 좋지 않다.
건강한 수면의 기준은 노인이라고 다르지 않다.
치매 원인이 될 수 있는 뇌의 노폐물을 청소하기 위해 밤 10시부터 12시 사이에는 잠이 들어 7시간(±1시간) 정도 자야 한다.
늙으면, 포기해야 할 아까운 것들이 생기게 마련이다.
늙으면 왜 ‘쿨’해질까요?

갑자기 끼어든 차 때문에 급브레이크를 밟아 몸이 튕겨 나갈 뻔했다.
당연히 놀라셨을 나이 지긋하신 택시 기사님의 반응은 의외로 쿨했다.
별일 아니라는 듯 “그렇게 바쁘면, 어제 나왔어야지” 하며 허허 웃으신다.
나이가 들면 가슴에 무슨 쿨링팬이라도 품게 되는 것인가.
노화와 심리의 변화를 분석한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연구에 의하면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감정적으로 안정이 된다고 한다.
소설이나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그리고 가끔은 우리 주위에서도 볼 수 있는 고집 세고 욱하는 노인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결과다.
쉽게 성내지 않고, 쉽게 희희낙락하지도 않는다.
유혹에도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죽을 일도 아닌 것에 목숨 걸 필요가 없으며, 열을 내봤자 육체나 정신 건강에 해를 입게 되어 나만 손해라는 지혜를 얻게 되어서다.
아무리 기쁜 일이라 해도 시간이 지나면 잊힐 것을 알게 되었으니, 가슴이 무덤덤해진다.
삶의 목표 또한 새로운 성취나 변화가 아닌 현 상태의 안정적인 유지이니, ‘현타’도 잘 오질 않는다.
부정적 정서보다는 긍정적 정서가 많아지는 ‘정신적 웰빙’을 더 많이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너그러워지고, 편안해진다.
그래서 늙고 지치고 병약한 노인도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다.
늙으면 왜, 시도 때도 없이 ‘좋은 말씀’을 보낼까요?

휴일 아침 스마트폰 알림에 잠을 깼다.
단체채팅방에 새 글이 올라와 있다.
역시나. 최연장자가 보내주신 이른바 ‘좋은 말씀’이다.
평일에는 행복 기원이나 선인의 명언, 새해에는 새해 덕담이 담기기도 한다.
젊은층에서는 ‘어르신 짤’이라고 부른다는데, 또래들 사이에서는 ‘나 (아직) 잘 살아 있다’는 것을 알리는 ‘생존 알림’으로도 통한다고 한다.
그냥 심심해서 보낸다고도 하고, 시간이 남아도는 데다 아침잠이 줄어서 그런다는 얘기도 있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 싶은 의지가 커서일 것이다.

나이가 들면 소통 욕구가 강해진다.
노인심리학의 대가인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칼스텐센에 따르면, 노년의 관계는 제한적이고 삶은 안정과 안전을 지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문제는 소통의 방식이 낯선 데에 있다.
마주 보고 하는 대화라면, 말이 너무 많지는 않은지, 고압적인지 아닌지, 눈치껏 대화의 방식을 수정할 수 있다.
적절한 타이밍도 알아차릴 수 있다.
혹시 ‘몰래 나가기’를 고려할 정도로 스트레스가 된다면, 당사자에게 자제 요청부터 해보면 어떨까. 전송 시간이라도 바꾸어달라 해보자. 가능하면 만나서 마주 보고 했으면 좋겠다.
맥락까지 담기 힘든 단체채팅방에서는 부탁과 요청이 시비나 비난으로 둔갑할 수 있다.
늙으면 왜, 음식을 흘리며 먹을까요

“아니, 왜 당신 식사한 자리만 지저분한 거야? 이거 봐 이거 봐, 음식 흘린 거!”안 보는 척 식탁
밑을 보니, 내 자리만 음식 파편이 가득하다.
턱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하다.
회식 때는 더 가관이다.
휴지가 없으면 처리가 안 될 정도로 음식물 파편이 뛰쳐나온다.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이비인후과 채성원 교수에 따르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단다.
젊은이와 노인의 구륜근(입둘레근) 강도와 지구력을 비교해보니, 노인의 경우 거의 두 배 가까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음식을 먹을 때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게 막는 덮개가 부실하니, 입속 내용물이 쉽게 뚫고 나올 수밖에 없다.
회식은 단순히 밥만 먹으려고 모이는 것이 아니다.
대화와 함께해야 진정한 회식 아닌가. 뜨끈하게 끓고 있는 전골냄비나 심지어 앞사람 얼굴에 음식물 파편을 날리지 않으려면, 저작 운동과 언어 구현이라는 아주 섬세하고 복잡한 행동이 가능해야
한다.
나이가 들면 이 두 가지 운동을 조작하는 뇌신경과 운동신경이 느려지고 버벅댄다.
지저분한 늙은이라 놀림당하지 않으려면, 음식을 씹고 삼킬 때 입술의 텐션을 의도적으로 높여줄 필요가 있다.
특히 회식 자리에서는 ‘선 삼킴, 후 토크’의 질서를 무너뜨리면 절대 안 된다.
괜히 부끄러움에 턱 밑의 구멍을 찾는 척하지 말고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