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는 가라, 석대뜰의 아우성을 기억하라

 

우리가 몰랐던 동학의 최후 항전

껍데기는 가라, 석대뜰의 아우성을 기억하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中

신동엽 시인의 노래처럼 우리는 동학농민혁명의 최대 격전지로 공주의 '곰나루(우금치 전투)'를 먼저 떠올립니다. 하지만 우금치 패배 이후, 호남의 끝자락 장흥에서 피어오른 마지막 불꽃을 아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바로 동학농민군 4대 전적지 중 하나인 '장흥 석대뜰 전투'입니다.

역사가 기록한 장흥 석대뜰의 비극

구분역사적 사실 (Fact)
참가 규모약 2만 명의 동학농민군 집결 (전라도 남부 최대 규모)
희생자 수신식 무기로 무장한 관군·일본 연합군에 의해 수천 명 전사
잔혹한 추격패해서 퇴각하는 농민군을 진도까지 쫓아가 참수하는 잔학상 자행
현재의 흔적장흥 일대에 묻힌 2,000여 기의 무명 동학군 묘지

아픔의 씨앗이 키워낸 '문향(文鄕) 장흥'

이 처절한 사투와 억울한 죽음은 오랜 세월 장흥 사람들의 가슴속에 깊은 한(恨)과 부채감으로 남았습니다. 그러나 이 거대한 아픔의 씨앗은 훗날 이청준, 한승원, 송기숙 등 한국 문학사의 거장들을 탄생시키는 정신적 토양이 되었습니다. 장흥이 수많은 문인을 배출한 '문학의 고향'이 된 배경에는, 석대뜰에서 흘린 무명 동학군들의 붉은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곰나루의 아우성을 넘어, 이제는 장흥 석대뜰의 붉은 함성을 기억해야 할 때입니다.


inG

우리의 존재 자체가 이미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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