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위한 최선의 선택
불편하지만 인정해야 하는 부분
나는 '생각 = 감정'이라고 정의했다
우리는 생각을 컨트롤하지 못한다. 그냥 연기처럼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피어오른다.
그래서 사실 막을 수 없다. 우리는 변수 덩어리다. 그래서 대부분 감정을 참는다고 표현하지만 참는다고 내 몸과 마음의 반응을 막지 못하는 것처럼 내가 조절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래서 생각과 감정을 컨트롤하는 게 아닌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한다.
'내가 지금 이런 생각(감정)이 올라오는구나. 왜 이 생각(감정)이 올라왔지?'
정확하게 확인해야 한다. 타협하면 안 된다.
내가 생각하기에 아닌 부분을 타협해서 어떤 상황과 환경을 유지하면 결국 비슷하거나 더 어려운 생각과 감정으로 휩싸이게 된다.
가장 무서운 건 타협
아주 쉬운 예를 들어보면, 여자친구(아내)가 있는데 나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 부분으로 계속 싸우게 된다면 그리고 그 부분이 이해되지 않지만
'그래도 이런 다른 부분은 좋은 사람이니까'는 생각으로 타협한다면 그 상황이 생길 때마다 나만 힘들어진다.
왜냐하면 근본적으로 싸우게 되는 부분이 어떠한 방식으로든 해결되지 않고 '휴전' 상태의 전환일 뿐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게 된다.
그러면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이 문제로 매번 싸울 수도 없고 어떻게 해결하지?'
솔직하게 말하면 필요한 건 다른 게 아니라 '용기'였다.
이 문제를 근본까지 깊숙이 들어가 보는 용기가 필요하다. 왜 이런 상황이 자꾸 생기는지, 왜 나는 이 부분이 불편한지, 상대방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왜 이런 불편한 상황을 만드는 용기가 필요할까?
나와 상대방 즉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일 뿐 다른 이유는 없다.
그리고 우리가 행복하면 이 관계를 지속할 수 있지만 한 사람(나, 상대방)이라도 행복하지 않다면 이 관계는 사실 없는 게 낫다. 이렇게 말하면 정말 냉정하고 책임감 없이 남일처럼 말한다고 느낄 수 있다.
"우리는 그래도 달라요. 같이 지내온 시간을 보면 잘 해결할 수 있어요!" 같은 말을 해도 솔직해져 보자.
정말 서로가 진심으로 행복하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는가?
처음 해보는 불편함을 피하고 있는 건 아닌가?
감정의 하방선
나는 결혼 전에 자주 들어봤던 내용이 있다.
"결혼하기 전에 정말 밑바닥까지 보면서 싸워봐야 한다. 그래야 그 사람의 성향을 알고 거기서 잘 해결되면 결혼해도 된다. 사람은 안 바뀌니까"
이걸 듣는 순간 이런 생각을 했다.
'굳이 꼭 싸워야만 하는 건가? 그 밑바닥을 꼭 봐야만 하는 건가? 잘 지내면 안 싸우고도 지낼 수 있는 게 아닌가?'
아까 말했던 것처럼 사람은 변수덩어리다. 정확히 말하면 '감정 변수 덩어리'다. 그래서 그 감정의 끝은 사실 본인도 모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이 세상 누구든 화나게 할 수 있다. 싸움을 걸 수 있다.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로도 화나게 할 수 있다. 무시하는 느낌, 대화 중에 딴짓하기, 인상을 찌푸린다거나 비웃으면 된다. 아니면 상대방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얼굴을 보고 박장대소해도 기분이 나쁘지 않을까?
또, '말'로도 화나게 할 수 있다. 상대방을 무시하고 비하하고 상대방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것을 욕하면 상대방은 나에게 화를 낼 것이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부모님, 자식, 가족 욕을 하면 화를 안 낼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최소한 10명 중 9명은 화가 나지 않을까?
이렇게 상대방을 끝까지 몰아붙여서 나타나는 감정과 성향과 행동을 보고 상대방을 판단할 수 있다는 생각이 정말 오만하다고 생각이 든다. 만약에 혹여나 그 정도로 끝났는데 알고 보니 더 깊은 감정의 모습이 숨어있다고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만큼 감히 판단할 수 없다. 스스로가 정말 화가 났을 때 어떤 행동을 보일지 안다고 생각해도 더 큰 화를 부르는 상황에 어떻게 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내 생각에는 정말 세상 누구도 모른다.
신이 있다면 신도 모를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사람은 각자 감정의 하방선이 있다. 그 하방선의 기준이 다르지만 적어도 그 기준에 다다르게 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그 하방선이 비슷한 사람이 만나야 한다. 그러면 싸울 일이 없다.
그렇기에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가 된다.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이 된다.
예를 들어 남편이 양말을 매일 뒤집어 벗어 놓는다고 하면 감정 하방선이 높은 사람들은 그걸 볼 때마다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난다. 그래서 양말을 정상적으로 벗으라고 잔소리한다. 그래도 남편은 간간히 뒤집어 벗는다.
양말 때문에 속이 뒤집어진다. 그래서 남편에게 화를 내야만 잘 벗어 놓는다.
위 내용을 자세하게 보자, 감정 하방선이 높은 사람들은 남편이 양말을 매번 뒤집어 벗어 놓으면 화가 난다.
(조금 과하게 표현해 보자.)
"내가 몇 번을 말했지? 양말 제대로 벗어 놓으라고 했잖아! 아니 초등학생도 이 정도 말하면 알아들어!!"
남편이 말한다. "알겠어."
"왜 매번 알겠다고 하고 똑같이 하는 건데? 정말 궁금해서 그래. 우리 대화를 하고 있는 건 맞아? 이쯤 되면 나는 벽에다 대고 말하는 거 같아. 말을 해도 바뀌지를 않아!"
남편도 결국 화가 나서 말한다.
"그게 그렇게 싫으면 내가 빨래할게 둬! 자꾸 사소한 거 가지고 왜 난리인지 모르겠네 정말. 지친다 지쳐."
아내가 말한다.
"사소한 거?? 지금 내가 사소한 거 가지고 너한테 뭐라 하는 이상한 사람이라는 거야?? 말 다했어?"
뒷부분은 상상에 맡기겠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비슷한 결의 대화들이 많으니 예상이 될 거라 생각한다.
물론 위 전개는 남편은 아내보다 감정 하방선이 높은 느낌을 주고 내용을 적었는데 실제로 남편들이 높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은 처음에 상황을 넘기기 위해 "알겠어."같이 싸움을 하고 싶지 않아 하는 의사를 보인다고 생각한다. (제가 남편이라 남편 편드는 건 아닙니다..)
반대로 감정 하방선이 낮은 사람들은 남편이 양말을 매번 뒤집어 벗어 놓으면 그냥 보고 뒤집어 빤다.
그러다가 어느 날 불편함을 느끼면 물어본다.
"왜 이렇게 벗어 놓는 거야? 뭐라 하는 게 아니라 궁금해서 그래."
그래서 남편이 "나는 발 안쪽이 더 더러운 거 같아서 안쪽을 빨아야 깨끗해지는 것 같아."라고 하면
'아 그렇구나 그래서 뒤집어 벗는 거구나' 생각하고 불편한 점을 말한다.
(여기서 남편이 별 이유가 없을 수 있다. 그래서 '그냥 그게 편해서'라고 하면 내가 불편한 점을 바로 말한다.)
"아 그렇구나 근데 내가 빨래를 하고 양말을 다시 뒤집어 놓는 게 좀 불편한데 그냥 빠는 건 어때?"
그리고 남편이 대답한다. "음 그럼 그냥 두면 내가 뒤집어서 신을게." 라던지 "알겠어 그럼 이제 잘 벗어볼게."라고 한다.
그러다 며칠이 지나고 어느 날 양말이 뒤집어져 있다. 그럼 뭐라고 말할 것 같은가?
아마 감정의 하방선이 높은 사람은 말하지 않을 것 같다. 시간이 지나도 계속 뒤집어졌다면 그때 말할 것 같다. "까먹었구나! 양말은 원상태로 벗기!"
그다음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 그래도 바뀌지 않는다면 바꾸지 않으면 된다.
나의 기준에 상대방이 맞춰준다는 건 사실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하방선이 맞지 않는 사람과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기 어렵다면 사실 관계를 정리해야 한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 인정하기 어렵다면 정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랑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놓아주어야 한다.
그래도 결국 나랑 맞는 사람은 나타날 것이라 믿어야 한다. 그리고 찾아야 한다.
그래야 내가 행복할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사람의 변화 그리고 고쳐 쓴다는 말
사람들은 '사람은 고쳐 쓸 수 있다' 또는 '사람은 고쳐 쓰지 못한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간다.
현실적으로 바라보면, 고쳐 쓸 수 있다는 사람들은 그런 '경험'이 있기에 그렇게 말할 수 있고, 고쳐 쓰지 못한다는 사람들은 그런 '경험'이 있기에 그렇게 가치관이 생긴 것이다.
근데 그게 단순히 본인의 어떤 행동, 대화, 글, 환경으로 바뀌거나 바뀌지 못하게 되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단정 지을 수 있을까?
미안하지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상대방의 영향으로만 사람이 변했다고 단정 짓기에는 너무 주제넘은 생각인 것 같다. 사람은 사람을 바꾸거나 바뀌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수준이라 생각한다. 사람은 언제 변화를 겪게 될까?
내가 내린 정답은 '스스로의 생각(가치관)이 바뀌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어떤 매체를 통해 접한 정보로도 가치관이 바뀌게 된다는 것이다. 근데 조건이 있다.
본인 스스로가 '정보 = 생각(가치관)'이 동일하다고 '인정'할 때 변화가 시작된다.
그리고 스스로가 '맞아 이게 맞지' 같은 확신이 들면 더 빠르게 변하는 것 같다.
그럼 나랑 맞지 않는 여자친구와의 관계는 타협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중요한 건 감정이 격해진다면 심호흡을 하던 시간을 두고 감정이 가라앉도록 한 후에 생각을 하고 대화를 해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1. 여자친구가 좋은가? → 좋으니까 만나고 있지.
2. 이 상황을 통해 내가 타협한 부분은 어떤 것 인가?
→ 그래도 평소에 착하고 나를 많이 생각해 주는 사람이니까.
3. 이 상황이 평생 지속 된다면 그래도 함께 할 것 인가? → 맞다. 왜냐하면 만나온 시간도 길고, 다른 사람은 못만 날 것 같고, 그래도 이만한 사람이 내 옆에 있다는 게 어디야. 전에는 이런 사람도 만나봤는데 또 이런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 아니다. 관계를 정리한다.
사실 사람은 내가 선택한 것에 과대평가한다. 그래야 내가 실수하지 않았고 최고의 선택을 했다고 믿을 수 있으니까. 근데 스스로를 위해 신중해야 한다. 내가 선택한 것도 결정한 것도 사실 틀릴 수 있다는 생각.
정말 불편하지만 나를 분리해서 봐야 한다.
그래서 사실 위 리스트는 가장 큰 오류가 있다.
마지막 3번 질문에 대한 '아니다'라고 하는 답변이 사실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나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다.
최고의 선택이 아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이 글을 마치면서 내가 전달하고 싶은 결론은 이거다.
'사람은 변수다. 어떤 태도를 가지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나는 사람은 변한다는 전제로 본다.
그러니 솔직하게 나를 보고 상대방을 봐야 한다.
타협하여 사랑하는 나 자신을 괴롭혀도 안되고, 나의 기준으로만 사랑하는 상대방을 괴롭혀도 안된다.
결국 사랑과 관계는 배려와 존중으로부터 시작된다.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보는 것 그게 우리가 행복하기 위한 궁극적인 목표가 아닐까 생각한다.
사람은 언제 안정감을 느끼고 사랑받는다 느끼고 행복하다고 느낄까?
나는 '내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받을 때 그리고 상대방에게 도움이 될 때'라고 생각한다.
이 글이 닿는 사람들에게
작은 의미가 생기고
작은 변화의 시작이길 바라며.
오늘도 누군가에게 작은 영향을 끼칠 수 있음에 감사하며.
글을 마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