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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핑계고 유튜브 / J이신 분들은 위의 영상을 보지 않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혹여 못보신 분들을 위해 스포는 하지 않겠습니다 경로를 이탈하셨습니다 미라클러님들의 MBTI는 어떻게 되시나요? 혹시 'P'로 끝나는 분들이 계실까요? MBTI의 끝자리는 Judging(판단형)와 Perceiving(인식형)으로 나뉘는데요. J형은 계획적이고, 체계가 있으며, 변수가 생기면 스트레스를 받는 유형을 말합니다. 반대로 P형은 즉흥적이며,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고, 마감 직전에 벼락치기를 해야 집중력이 오르는 유형이죠. 위의 영상은 P들을 위한, P들에 의한, P들만을 위한 여행 콘텐츠라고 생각될 정도로 모든 흐름들이 굉장히 즉흥적입니다. 소위 말해 '파워 J'이신 분들은 아마 보다가 영상을 끄실 수도 있으실 것 같습니다 (참고로 저는 굉장히 즉흥적인 P랍니다. 때문에 콘텐츠를 끝까지 재밌게 볼 수 있었죠.) 핑계고 채널에서 진행한 '내비를 안 보고 오직 국도로만 가는 4인의 여행'. 심지어 출발하는 날에 돌림판으로 목적지를 정하게 됩니다. 이런 여행, 혹시 경험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평소에는 보지 않았던 이정표를 살펴보게 되고, 몰랐던 지역들에 대해 알게 되고, 시민들에게 물어물어 가는 여행이 너무나도 소박하고 정겨워 보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예정대로 되지 않는 일이 삶에 어떤 우연을 들여놓는가' 내비 없이 국도로 돌고 돌아서 마침네 목적지에 도달하는 이야기. 출연진들은 길을 잃을 가능성이 뻔히 보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여행의 일부로 받아들입니다. 오히려 숨겨진 좋은 곳을 알아냈고, 맛집을 찾아냈다면서 기뻐하죠. 애초에 정답인 경로가 없었으니, 이탈도 없습니다. 겉으로는 그저 정처 없이 헤매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으나, 그 속에서 주위도 둘러보고, 새로운 곳을 체험도 해보고, 새로운 사실도 알아가며 드라이브하는 길. 이 전개가 마치 '우리의 삶'과 닮아있지 않나요? 삶에는 내비게이션이 없습니다. 인공위성이 신호를 탁 주면 내가 계산한 대로 탁 인생을 살아가고 있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정답이 없습니다. 삶의 대부분은 국도가 (때로는 논두렁에, 자갈밭에, 진흙탕에 빠질 때도 있겠습니다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 번쯤은 길 가다가 샛길로도 한번 세보고, 다른 것에 한눈을 팔아보기도 하지 않나요? 우리네 삶은 늘 고속도로만으로 가진 않으니까요. 언제부터인가 휴학하면, 퇴사하면, 시험에 실패하면 '잘못된 길'에 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학교를 졸업해야 취업을 하고, 돈을 벌어야 하니 퇴사를 하면 안 되고, 승진 혹은 더 나은 곳으로 이직을 해야 하니 자격증 시험에 합격을 해야 하겠죠. 이게 정답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마다 목표가 다 다르니까요. 초점은 '잘못 든 길'입니다. 실패해서, 잘못해서 들어간 길이 아니라, 그냥 '돌아가는 길'이라는 것이죠. 샛길로 빠졌다면 돌아서 가면 되고, 방향을 잃었다면 (핑계고 출연진들이 시민들에게 길을 물어봤던 것처럼) 타인에게 물어보면 됩니다. 길은 우연하게도 다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탈'이라는 경고가 뜨려면 정답 경로가 존재해야 합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인생은 그저 기세입니다. 우리는 계획을 세우지 않았으니, 계획 완수에 대한 실패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삶이 재밌다는 것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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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lizhicklinofficial (인스타그램) 경로를 재탐색합니다 가디언에서 굉장히 재미있는 기사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리즈 히클린(Liz Hicklin)이라는 코미디언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그녀의 나이는 95세. 아마 호주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코미디언일지도 모릅니다. 2023년 92세의 나이로 클룬스 북타운 페스티벌의 포이트리 슬램에 참가했었죠. 참가자 중 유일한 90대였습니다. 게다가 유일하게 무대 위에서 욕을 한 참가자였죠. 무대에서 자신감을 얻은 그녀는 그 이후로 빅토리아주의 여러 축제와 코미디 클럽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고 있는데요. 그녀는 자신이 하는 것을 '앉아서 하는 스탠드업 코미디'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위 사진처럼요. 영국에서 태어난 그녀는 사실 인생이 순탄치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렸을 적에는 전쟁을 겪었고, 간호사, 복권 판매원, 인형 제작자, 시인, 소설가 등 여러 직업을 거쳐야만 했습니다. 그녀의 인생은 사랑하는 2명의 자식을 떠나보내야 했었고, 돈이 없어 쉼없이 일해야 했으며, 슬픔이 잦았습니다. 90세가 지나서야 비로소 그녀는 자유를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기사를 읽던 중, 와닿는 문구가 있었습니다. "내 인생이 편안했던 건 아니에요. 하지만 그것이 나를 망치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내게 도움이 됐죠. 지금의 나를 만든 거예요.(My life’s not been cushy. But it didn’t do me any harm. It did me good. It’s turned me into the person I am today.)” 우리는 그녀를 늦게 꿈을 이룬 사람으로 평가하기 보다는, 계속해서 새로운 일을 '만들어가며' 살아온 사람으로 봐야하지 않을까요? 인생에서 재탐색이란? 내비에서 말하는 재탐색이란 더 빠른 우회로를 계산하여 안내하는 것이죠. 하지만 여기서 말씀드리는 재탐색의 의미는 살짝 다릅니다. 리즈 히클린처럼 '새로운 일을 만들어가며 탐색하는 것'인데요. 우리는 흔히 이렇게 생각합니다. '플랜 A가 안되면 플랜 B. 그래도 안되면 플랜 C로 가야한다. 어쨌든 공백기 없이 다음 계획을 즉시 만들어 실행해야 한다'. 하지만 인생의 재탐색은 내비게이션처럼 즉시 새로운 경로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때로는 다음 방향이 한동안 보이지 않을 수도 있고, 생각보다 한곳에 오래 머물러야 할 수도 있으며,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흘러가기도 합니다. 우리가 길을 잃는게 무서운 이유는 얼마나 돌아서 가야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시간은 속절없이 계속 흐르기까지 하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이 시간들을 '낭비'라고 섣불리 판단하지 않아야 합니다. 다음 화살표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지금의 시간이 잘못된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잠시 멈출 수도 있고, 방향을 바꿀 수도 있고, 예상하지 못한 길로 들어설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시간을 실패라고 너무 빨리 규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만, 여기엔 한 가지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바로 '두려움을 감수하는 것'인데요. 새로운 길에는 언제나 불확실성이 따라옵니다. 그럼에도 움직여 보는 것. 그것이 재탐색이 아닐까요. 여러분은 언제 마지막으로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여정을 시작해보셨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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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직접 찍은 사진 다음 안내 시까지 직진입니다 삶은 경로를 돌아가기도, 재탐색해야 하기도 하지만 계속 직진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오기도 합니다. 여기, 한 작가가 있습니다. 오랜 관찰을 통해 자신만의 회화 기법으로 자연을 그려나가던, 한 길을 우직하게 걸어나간 사람. 바로 故 이대원 작가입니다. 이대원 작가는 한국의 근현대사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중 한 명입니다. 자연의 모습을 그린 풍경화로 오래도록 사랑을 받은 작가이기도 하죠. 최근에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이대원 작가의 전시, <이대원: 당신을 슬프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를 다녀왔는데요. 이곳에서 저는 작가의 초기부터 말년까지의 그림들을 살펴봄으로써 '자신이 선택한 방향을 오랜 기간 동안 밀고 가는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이대원 작가의 환한 그림들은 '오랜 관찰과, 배움, 절제를 거쳐 이룬 조형적인 성취'라고 설명되어 있었는데요. 전시는 다음과 같이 진행됩니다. 1930년 ~ 1950년: 서양의 미술을 배우되, 자신만의 길을 찾아간 1950년 ~ 1970년: 동양화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어간 1970년 ~ 2000년: 적묵법으로 깊이를 더해간 2000년 ~ 2005년: 오랜 기간으로 도달한 평정과 환한 세상을 그린 특히 <농원> 연작(아래 3,4번째 그림)을 실제로 보니 들판 안에 서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는데요. 이대원 작가만의 색채로 그려진 자연의 풍요로움은 굉장했습니다. 그동안 작가가 쌓아왔던 오랜 배움들이 한데 뭉쳐져 최종 버전의 그림이 된 것 같았달까요. 작가가 걸어온 시간대로 관람을 하니, 긴 시간 동안 그림이라는 하나의 길을 위해 걸어온 시간들이 궁금해졌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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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직접 찍은 사진. 왼쪽 위 1930~50년대, 오른쪽 위 1950 ~ 1970년대, 아래 그림 1970 ~ 2000년대 1921년에 태어난 이대원 작가는 일제강점기, 광복, 전쟁, 그리고 급변하던 근현대사를 모두 거쳤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격변의 시대를 보냈을 텐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그림에는 슬픔이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그림은 생동감 넘치고 화려해져 갑니다. 이건 작가가 슬픔을 외면했다기보다는, 말년으로 갈수록 그가 지니고 있던 많은 슬픔, 책임감, 부담감을 통달했기에 나올 수 있는 그림이었다고 사람들은 평가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원룡 미술사학자는 그림을 두고 "사람을 슬프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라는 평가를 남긴 것이죠. 이는 현재 전시회의 제목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다음 안내가 없는 긴 구간을 버텨야 할 때 이대원 작가가 파주의 농원을 사랑했던 것처럼 하나의 대상을 붙잡고 몰두하고, 연구하고, 사랑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반복하다 보면 시간이 쌓이고, 뒤를 돌아보니 그것이 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죠. 슬픔이 있어도 계속 무엇인가를 그려왔던 이대원 작가. 어쩌면 때때로 삶에서 필요한 것은 방향에 대한 확신보다, 계속 걸어갈 수 있는 마음이지 않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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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GPT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경로 안내를 종료합니다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면 우리는 행복해질까요? 인생은 끊임없는 계단과 같습니다. 대학에 붙으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 취업 걱정을 해야 하고, 우리 삶에는 계속해서 어떠한 문제들이 자리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과연 도착지점은 있는 게 맞는 것일까요? 내비게이션에서 안내하는 도착지점과는 다르게 우리 삶의 도착지점은 애초에 도착점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인생은 계속해서 살아나가야 하니까요. 도착점을 모르는 상태를 견디는 제일 좋은 방법은, 언젠가 모든 것이 명확해질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무엇이 될 것인가’보다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조금 더 치중을 하면 됩니다. 결과보다는 방식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죠. 쉽게 비유하자면, 대부분의 예능 콘텐츠들은 촬영지에 도착하면 촬영을 시작하는데요. 핑계고는 출연진들이 목적지까지 가는 과정을 중심으로 촬영했던 것처럼요. 한 가지 덧붙이자면 불교의 금강경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어떤 대상이나 생각에 집착하지 않되,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필요한 마음을 내고 살아가라는 의미인데요. 목표를 갖지 말라는 것이 아닌, 목표에 자신을 고정하지는 말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삶의 방식으로 이 긴 경로를 지나가고 싶으신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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