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정치 풍자 4천 년 전, 파라오를 조롱한 한 장의 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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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천 년 전의 낙서, 하트셉수트와 센무트의 이야기
이 장면을 하트셉수트와 센무트의 정치 풍자로 보는 해석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인물의 신원과 제작 맥락이 확정된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최초의 정치 풍자”를 확정적 사실이 아니라 대표적인 해석과 후대의 이야기로 구분합니다.
재미있는 역사적 사실 하나를 소개하자면, 최초의 정치 풍자 만화로 종종 언급되는 이 장면은 여성 파라오 하트셉수트가 그녀의 연인이자 수석 건축가였던 센무트(Senenmut)와 성관계를 갖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고 전해집니다. 약 3,500~4,000년 전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그리고 오늘날 우리를 괴롭히는 것과 같은 집착들—권력, 성, 소문, 조롱—이 당시 우리 조상들을 괴롭혔다는 사실이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하트셉수트는 흥미로운 인물이었습니다. 여성이었지만 남편 투트모세 2세가 죽자 어린 의붓아들 투트모세 3세의 섭정이 되었고, 결국 스스로 파라오(왕) 칭호를 계승하여 약 20년 넘게 통치했습니다. 왕의 위엄을 더욱 부각하기 위해 왕의 모든 예복을 착용했을 뿐만 아니라 가짜 수염까지 붙였습니다. 그녀는 웅장한 궁전과 신전 건설을 감독했으며, 모든 면에서 다른 어떤 왕 못지않게 강인하고 막강한 통치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죽은 후, 많은 기념물이 파괴되고 그녀의 동상은 훼손되었습니다.
하트셉수트는 통치 기간 내내 왕다운 위엄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신하들은 여전히 그녀와 그녀의 연인으로 알려진 인물을 음란하게 묘사하는 이미지를 만들어 그녀를 깎아내리려 했습니다. 마치 오늘날 누군가가 한 세계 지도자가 다른 지도자에게 몸을 내미는 모습을 그린 밈이나 정치 풍자를 만들어내는 것과 같습니다. 그 함의는 완전히 똑같습니다. 성과 권력의 역학 관계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 장면은 데이르 엘-바흐리(Deir el-Bahri) 근처의 미완성 무덤(TT 504 등) 벽면에 노동자들이 쉬는 시간에 낙서로 남긴 것입니다. 여성 인물이 왕관(네메스)과 가짜 수염 비슷한 요소를 착용한 것처럼 보여, 초기 이집트학자들은 “하트셉수트가 뒤에서 센무트에게 당하는” 정치적 조롱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러나 현대 연구는 더 신중합니다. 이름표가 없고, 정확한 연대가 하트셉수트 시대와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을 수 있으며, 비슷한 에로틱 그래피티가 하토르 여신과 관련된 다산·풍요 기원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센무트의 다른 초상화가 같은 동굴에 존재한다는 점도 “센무트 본인이 풍자 대상일 리 없다”는 반론의 근거가 됩니다.
즉, “최초의 정치 풍자”라는 이야기는 매력적인 전설이지만, 확실한 증거보다는 후대의 상상력이 더해진 면이 큽니다. 그래도 노동자들이 권위 있는 인물을 음란하게 그려 스트레스를 풀었다는 사실 자체는 변함없는 인간성의 증거입니다.
그녀의 가장 위대한 건축 유산은 센무트가 총괄한 데이르 엘-바흐리의 장례 신전(Djeser-Djeseru, “성스러운 중의 성스러운”)입니다. 계단식 테라스와 열주가 절벽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이 신전은 오늘날에도 이집트 건축의 걸작으로 손꼽힙니다.
센무트는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 하트셉수트의 총애를 받아 “아문의 최고 집사”, “네페루레 공주의 가정교사”, “모든 공사의 총감독” 등 90개가 넘는 직함을 쌓은 인물입니다. 그는 하트셉수트의 신전 곳곳에 자신의 모습을 숨겨 새겼고, 데이르 엘-바흐리 바로 옆 언덕에 자신의 무덤(TT 353)을 팠습니다.
센무트의 무덤 천장에는 이집트에서 가장 오래된 완전한 천문도가 그려져 있습니다. 북극성 주변 별자리, 데칸(별의 시간 단위), 달의 12개월 원, 목성·토성·수성·금성이 등장합니다(화성은 이상하게 빠져 있음).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당시 최고 수준의 천문 지식을 담은 “하늘의 설계도”였습니다.
센무트에게는 아내의 기록이 거의 없습니다. 이집트 엘리트에게 결혼은 거의 필수였기에, 이 공백은 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킵니다. 그와의 관계가 단순히 충성스러운 신하와 군주의 것이었는지, 아니면 그 이상의 것이었는지는 영원히 미스터리로 남을 것입니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투트모세 3세가 계모에게 복수했다”고 믿었습니다. 동상이 부서지고 이름이 지워진 것이 그 증거라고 여겨졌죠.
그러나 2025년의 최신 연구(Jun Yi Wong)는 흥미로운 재해석을 제시합니다. 많은 동상이 목·허리·무릎 등 구조적으로 약한 부위에서 정확히 부러져 있으며, 얼굴은 비교적 온전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고대 이집트에서 흔히 행해지던 “상象의 비활성화(deactivation)” 의식—죽은 왕의 영혼이 동상에 머무르는 힘을 의식적으로 차단하는 행위—와 일치합니다. 또한 많은 조각이 훗날 건축 자재로 재사용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정치적 삭제가 전혀 없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름과 형상의 체계적인 지움은 분명 존재했고, 이는 후계자가 자신의 정통성을 더 깔끔하게 정리하려는 시도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복수가 아니라, 권력의 내러티브를 다듬는 작업이었을 수 있다는 것이죠.
3,500년 전 노동자들이 파라오의 사생활을 낙서로 조롱한 행위와, 오늘날 SNS에서 정치 지도자의 스캔들을 밈으로 만들어 퍼뜨리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같은 본능에서 나옵니다. 권력은 늘 신성함을 자처하지만, 사람들은 그 신성함 뒤에 숨은 인간적 약점을 들추어내고 싶어 합니다. 하트셉수트가 가짜 수염을 달고 “나는 왕이다”라고 외친 순간부터, 누군가는 “진짜로 왕이냐?”라고 비웃고 있었던 셈입니다.
✦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 다만 운율은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