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뭔가 재미있는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분입니다. 기분 좋게 같이 가보시죠. 딥다이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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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과 남성은 어려움을 겪어왔다. 다만 그게 문제라는 걸 뒤늦게 알았을 뿐. 게티이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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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남성의 보수화’가 전 세계적 화두입니다. 지난해 미국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기여한 주요 지지층은 20대 남성이었고요. 얼마 전 치러진 폴란드 대선에서도 20대 남성 유권자들이 1차 투표에서 극우파 후보에 몰표를 주면서 선거 판세를 뒤흔들었습니다. 물론 성별에 따른 젊은 층 정치 성향 차이가 극명한 사례로 가장 자주 인용되는 나라는 한국이지만요.
이와 관련해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 주목받는 주장이 있습니다. 남성의 불안은 20대만이 아니라 예전부터 늘 있었던 문제이고, 그건 심각한 사회 구조적 문제의 결과라는 거죠. 진정한 ‘양성평등’을 위해선 어려움을 겪는 소년과 남성의 문제에 이제라도 주목해야 한단 주장인데요.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냐고요? 반페미니즘과는 결이 전혀 다른 새로운 남성 문제 해결법을 들여다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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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교육에서 남학생은 여학생에 크게 뒤처져 있습니다. 지난 20년 동안의 학업성취도평가 결과가 이를 보여주죠. 2003~2023년 학업성취도평가에서 기초학력 미달 비율은 항상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많았습니다. 수학을 포함한 모든 과목, 모든 학년에서 늘 그랬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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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발표된 2023년 중2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기초학력 미달자(주황색) 비율에서 남학생과 여학생의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이런 추세는 고2 평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동안 학업성취도 평가는 초등학교 6학년과 과학, 사회 과목을 대상으로도 실시됐는데 그때도 남학생의 기초학력 미달자 비율이 더 높게 나타났다. 자료:교육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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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만 그런 게 아닙니다. 전 세계가 마찬가지입니다. 언제부터? 적어도 110여년 전부터요. 미국심리학협회 학술지에 2014년 발표된 연구 결과인데요. 1914년부터 2011년까지 30개국의 학교 성적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난 1세기 동안 여학생은 모든 과목에서 남학생보다 학교 성적이 더 높았습니다.
수학·과학은 남학생이 더 잘하지 않냐고요? 특정 시험에선 어떨지 모르겠지만 학교 성적, 즉 내신 점수를 비교한 이 연구논문에선 그렇지 않았습니다. 남녀 학생 간 성적 차이는 언어 과목이 가장 크고 수학·과학 과목이 가장 작긴 했지만, 그래도 여학생 우위는 한결같았습니다.
이게 의미하는 바는 뭘까요.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학업성취도가 뒤처지는 게 최근에야 나타난 일이 아니란 겁니다. 의무교육이 도입됐을 때부터 줄곧, 그것도 전 세계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인 거죠.
오랫동안 이런 성별 학력 격차는 무시돼왔습니다. 과거 여학생의 대학 진학률이 낮았을 땐 이런 격차가 눈에 띄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여성의 대학 진학률은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상승했고, 이제 대부분 선진국에선 남성보다 높습니다. 한국에서도 2005년 남녀 대학 진학률이 역전된 뒤, 격차가 유지되고 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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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젠 더이상 비밀을 숨길 수 없게 됐습니다. 이렇게까지 일관되게 남학생의 학업성취도가 떨어지다니. 이건 학교 교육 자체에 뭔가 문제가 있단 뜻 아닐까요?
교육만 문제가 아닙니다. 전 세계적으로 남성은 여성보다 자살률이 훨씬 높고, 알코올이나 약물을 과다복용하거나 노숙자가 되거나 산업재해로 사망할 위험이 더 크죠. 심지어 기대 수명도 여성보다 훨씬 짧고요. 기대수명 차이는 단순히 생물학적 것 아니냐고요? 하지만 남녀 기대수명 차이는 저소득층일수록 더 크게 벌어집니다. 이건 평등의 문제이기도 한 거죠.
가족과의 단절 역시 남성이 겪는 문제입니다. 사회적으로 아버지는 아이에게 덜 중요한 ‘2등 부모’로 취급되기 일쑤죠. ‘라테 파파’로 유명한 북유럽에서도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률은 여성보다 낮습니다. 많은 아빠들이 자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너무 적다고 말합니다. 그동안은 이를 여성의 문제(과도한 육아 부담)로 봤지만, 이건 동시에 남성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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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내용은 제 개인 의견이 아니고요. 저명한 사회과학자이자 미국 소년·남성연구소 소장인 리처드 리브스의 저서 ‘소년과 남성(Of Boys and Men, 2022년 출간)’과 노르웨이 정부 남성평등위원회의 방대한 최종 보고서 ‘평등의 다음 단계(2024년 발간)’에 공통적으로 담긴 주장입니다. 미국과 유럽에서 상당히 큰 관심을 끌면서 논쟁을 유발한 주장이기도 하죠.
요약하자면 남성은 다양한 문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최근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요. 이건 사회 구조를 바꿔 해결해야 할 큰 문제입니다. 마치 페미니스트들이 수십 년에 걸쳐 정책과 제도를 개선해 온 것처럼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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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리브스는 불평등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이다. 세 아들의 아빠이기도 한 그는 2022년 '소년과 남성' 책을 쓰며 큰 논쟁을 일으켰다. 남성 문제를 연구하는 사회단체 미국소년·남성연구소(AIBM)를 결성해 소장을 맡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20대 남성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최근 그의 주장은 한층 유명해졌다. AIBM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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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남성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뭘 해야 할지에 대한 공감대는 아직 형성돼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남성들은 인플루언서나 극우 정치인, 커뮤니티의 논리에 쉽게 빠져들곤 하죠. 거기선 사회 구조는 보지 않고 대신 ‘적’을 찾습니다. 페미니즘 또는 엘리트가 공격 대상이 되곤 하죠. 적에게 분노를 터뜨리고, 싸우고, 전통적인 남성성을 되찾자는 구호만 난무합니다.
그런데 분노만 한다고 뭐가 바뀌나요. 좀 더 실질적이고 구조적인 해결 방법을 찾아야죠. 그동안 제시된 여러 정책 대안 중 눈에 띄는 몇 가지를 꼽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남학생 초등학교 1년 입학 유예
모든 나라에서 남학생의 학업 성취도는 떨어져 있습니다. 그건 지능 차이가 아닙니다. 전문가들은 성별에 따른 IQ 차이는 없다고 보고 있죠. 차이 나는 건 전두엽의 발달 속도와 이에 따른 학교 적응 기술의 차이입니다. 유치원을 졸업할 즈음에 남자아이들은 주의력, 지시 따르기, 정리정돈 같은 능력에서 여자아이들보다 1년 가까이 뒤처져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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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생활 적응엔 비인지적 기술이 중요하게 작용하는데, 이 부분이 남자아이들에게 불리한 점으로 지적된다. 사진은 올해 3월 부산 배산초등학교 강당에서 열린 2025학년도 입학식.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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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술은 학교생활에 매우 중요합니다. 남학생은 초등학교 입학 시점부터 이미 뒤처져있고, 그 차이는 대학교까지 이어집니다. 그렇다면 그 격차를 줄이기 위해 남자아이들을 아예 초등학교에 1년 늦게 입학시키면 어떨까요? 많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요?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요? 리처드 리브스 박사의 이 주장은 가장 주목받는 해결책인 동시에 큰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대놓고 특정 성별이 더 열등하다고 낙인찍는 것 같아 기분 나쁘단 반응도 있었죠. 하지만 미국 부유층에선 실제 남학생들에게 이미 많이 쓰고 있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노르웨이 ‘남성평등위원회’ 역시 초등학교 입학 유예가 효과적인 해결책이라고 봅니다. 남자아이들에게 초등학교를 1년 늦게 입학할 수 있는 기회를 지금보다 확 늘리자고 정부에 제안했죠. 지금은 입학 유예를 극소수만 택하지만, 부모들이 더 쉽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단 겁니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수 있습니다. 일단 유치원을 1년 더 다니는 남자아이들이 대거 늘어날 거고요. 그럼 유치원 교사 수와 교육 예산도 모두 늘려야 하니까요.
②더 활동적·실용적인 교육과정
낮은 학업성취도와 낮은 대학 진학률은 더 많은 실업과 건강·중독문제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남학생의 학교 성적을 끌어올리는 게 매우 중요한 이유인데요.
달라져야 하는 건 남학생이 아니라 교육과정이어야 합니다. 100년 전부터 줄곧 여학생 성적이 높게 나왔다는 건 현재 학교 교육이 절대적으로 남학생엔 불리하단 뜻이니까요. 이게 바로 노르웨이 남성평등위원회가 강조하는 점인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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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진학률은 2005년부터 여학생이 더 높게 유지되고 있다. 미국에선 그 차이가 더 벌어져서 대학에 등록한 여학생은 890만명, 남학생은 650만명으로 격차가 벌어졌다. 사진은 2024년 3월 경희대학교에서 열린 입학식의 모습.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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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교육은 오랫동안 한자리에 앉아있지 않아도 되는 수업이 중심이 돼야 합니다. 놀이 기반 학습을 도입하고 체육·미술·공예·음악·요리 같은 수업을 늘리는 거죠. 중·고등학교는 선택과목 비중을 확대하는 게 방법입니다. 남학생은 흥미 없는 과목 수업에 대한 집중력이 유독 더 떨어진다고 알려져 있죠. 그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선택과목을 늘린다면 남학생들이 수업을 집중해서 듣게 될지도 모릅니다.
③남성의 더 많은 돌봄 일자리 진출
성별 때문에 특정 직업에서 배제돼선 안 된다는 데는 누구나 동의할 겁니다. 과거 남성 일색이었던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분야에 더 많은 여성이 진출하는 건 우리 사회가 장려해 온 일이죠. 그럼, 그 반대도 더 많아져야 하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더 많은 남성 간호사, 더 많은 남성 유치원 또는 초등학교 교사 말이죠. 리처드 리브스 박사가 ‘HEAL(의료·교육·행정·문해)’이라고 부르는 직종인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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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더 많은 공학 분야에 진출하는 게 성평등이라면, 남성이 더 많은 교육과 보건 직종에 진출하는 것 역시 성평등이다. 적어도 고정관념이나 채용절차 상의 차별 때문에 그 길을 선택하는 걸 주저하게 만들진 않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게티이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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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학생들이 그런 쪽에 흥미와 적성이 없어서 선택하지 않을 뿐이라고요? 지금은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흥미와 적성은 키우기 마련 아닐까요. 과거엔 엔지니어링엔 별 관심 없다고 여겼던 여학생들의 공대 진학이 늘어나고 있는 것처럼요. 남학생들에게 필요한 건 롤모델과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일 겁니다. 장학금 같은 지원도 도움이 될 거고요.
노르웨이에선 공공부문 일자리(교사, 공무원, 공중보건 간호사 등)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 높은데요. 이는 여성 임금 수준이 낮은 이유이지만, 대신 실업 위험이 낮고 치명적 사고 발생 가능성도 매우 작다는 장점이 있죠. 육아를 위한 지원도 더 잘 돼 있고요. 남성들이 이런 일자리로 더 많이 진출한다면 지금의 많은 문제들(정신·신체적 건강과 가정에서의 소외)도 줄어들 겁니다.
참고로 노르웨이 남성평등위원회 정책 제안 중엔 한국에서라면 여론이 뒤집어질 만한 내용도 담겼습니다. 여학생 비중이 너무 높은 분야의 전공을 지망하는 남학생에겐 대학입시에서 가산점을 주거나 성별 쿼터제(할당제)를 실시하자는 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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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남성의 보수화가 전 세계 정치의 화두가 된 지금. 남성 문제의 원인과 해법을 다루는 이런 주장에 귀기울이는 이는 점점 많아집니다. 물론 비판은 거세고 논쟁은 뜨겁습니다. ‘남성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기본 전제에 대한 반감도 상당하죠. 임금도 남성 근로자가 훨씬 높고, 고위직에도 온통 남성뿐이라는 명백한 통계를 두고 ‘남성 불평등’이 웬 말이냐는 반응인데요.
여기서 생각할 점. 양성평등은 ‘제로섬’ 게임이 아닙니다. 남학생의 학업 성취도를 끌어올리는 것과 여성의 임금 수준을 높이는 건 함께 추구할 일이지, 어느 한쪽을 위해 반대편을 희생할 필요는 없습니다. 노르웨이 남성평등위원회 설명대로 “소년과 남성의 평등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면 평등 정책이 약화하는 게 아니라 강화되는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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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과 남성의 문제 해결은 소녀와 여성의 문제 해결과 공존할 수 있다. 결국 인간의 문제니까. 게티이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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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리브스는 그의 책에서 페미니즘이 너무 멀리 나아가서가 아니라, 오히려 충분히 멀리 나아가지 못했다고 지적합니다. 페미니즘으로 “여성의 삶은 재구성됐지만 남성은 그렇지 못했다”는 거죠. 이젠 남성의 문제를 인정하고 한발 더 나아가자는 주장입니다.
양극화된 시대에 공격은 양쪽에서 쏟아집니다. 보수 우파는 리브스의 해법(예-남성의 돌봄 직종 진출)이 전통적 성역할과 거리가 멀다며 싫어하죠. 반대로 좌파는 ‘반페미니즘’ 분위기와 젠더 분열을 부추길 거라며 경계하고요.
논란 속에서도 진전은 있습니다. 지난해 영국 의회는 학교 내 남학생의 낮은 성취도 문제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죠. 미국 민주당의 유력 여성 정치인인 그레첸 휘트머 미시간주 주지사는 젊은 남성들의 고등교육·기술교육 진학률을 높이기 위한 행정명령을 약속했습니다. 소녀와 여성을 지원해 온 자선가 멜린다 게이츠(빌 게이츠 전 부인)는 미국 소년·남성연구소에 2000만 달러를 기부했고요.
다음번 미국 대선에선 아마 남성 평등 정책이 중요한 이슈로 떠오를 겁니다. 한국에선 20대 남성의 정치성향을 놓고 몇년 째 각자 입맛에 맞게 해석하기 바쁜데요. 이제 좀 더 진지한 고민이 필요해보입니다. By.딥다이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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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은지심과 인류애. 레터를 쓰면서 이 두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다른 이의 어려움을 서로 측은히 여기는 마음만 있다면, 지금과 같은 젠더 갈등도 없을 텐데 말이죠.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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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정체성 중 하나는 '아들 엄마'입니다. 여성의 문제와 남성의 문제 모두에 민감하죠. 아마 그래서 이 주제가 저에게 유독 중요하게 다가온 듯한데요. 실제로 본문에서 소개한 리처드 리브스 박사의 책 '소년과 남성'을 미국에서 가장 많이 사는 독자층은 아들 둔 엄마라고 합니다. 역시 엄마 마음은 세계 공통.😂
레터를 쓰는 내내, 이런 부분은 공감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겠다, 이런 제안엔 반감이 드는 사람도 꽤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도 100% 다 동의한 건 아니고요.
하지만 이전엔 스쳐지나갔던 문제를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것, '엥? 이건 또 무슨 소리지?'라며 돌아보게 만드는 것. 그것만으로도 의미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즐거운 화요일 보내시고요. 저는 금요일에 다시 찾아옵니다. 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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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한애란
재미있거나 유익하거나. 읽을 만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는 23년차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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