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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몸이 하나라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하면 아마 ‘외로움’일 것이다.
기존 건강상태, 교육수준, 소득, 성별, 나이, 우울증 여부 등과 상관 없이 외로운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더 빨리 노화하고 각종 심혈관 질환, 고혈압, 면역 반응 이상, 기억력 및 인지능력 감퇴에도 더 취약하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외로운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응급하지 않은 수술을 받았을 때에도 사망 확률이 더 높았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이렇게 외로움이 직접적으로 건강과 수명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시사하는 연구 결과들이 다수 보고되고 있다.
따라서 의료 현장에서도 또 공공 보건 차원에서도 외로움의 악영향을 줄일 수 있는 방안들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
최근 설신 유 콜롬비아대 어빙 메디컬 센터 소속 연구자 등의 연구에 의하면 외로움의 악영향은 ‘누적’ 되는 듯 보인다.
1996년부터 2004년까지 약 9000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외로움을 측정하고 이후 2019년도에 외로움과 사망률간의 상관관계가 있었는지 살펴본 결과 우선 십여 년 전에 단 한 번도 외롭다고 응답하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한 번 외로웠다고 응답한 사람들이 더 중, 장년, 노년층에 이르렀을 때 사망률이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한 번 외로웠다고 응답한 사람보다 두 번 외로움을 보고했던 사람들이 더, 두 번 외로웠던 사람들보다 세 번, 그러니까 더 긴 시간에 걸쳐 외로웠던 사람들이 더 사망률이 높은 편이었다.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외로움은 ‘주관적’ 지표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겉으로 보이기에 친구가 별로 없고 사회적 활동을 잘 하지 않는다고 해서 외로운 것도 아니고 항상 수 많은 사람들에 둘러 쌓여 있는 소위 '인싸'라고 해서 외롭지 않은 것도 아니다.
달리 말하면 사람들마다 인간관계에서 원하는 것이 다르고 어떤 이유로 이게 충족되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든 우리는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나의 경우 친구들과 자주 보지 않아도 이따금씩 연락하고 또 마음이 잘 통한다고 여겨지는 친구 몇 명만 있으면 외로움을 느끼지 않지만 기본적으로 원하는 인간관계량이 많고 원하는 친밀도 또한 매우 높은 사람의 경우 사람을 아무리 많이 만나도 사회적 허기인 외로움이 충족되지 않을 수 있다.
이 외에도 인간은 어차피 타인과 100% 마음을 통할 수 없다거나 노화와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혼자가 된다는 존재론적인 이유로 고질적인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이 경우 그냥 그게 사는 것이라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삶의 다양한 시점에서 이따금씩 존재하는 좋은 인연들이 실은 전혀 당연하지 않고 고마운 기적이었음을 깨달으면 어느 정도 편해질 수 있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두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외로움은 마음이 결정하는 주관적인 것이어서 이 연구에서도 객관적 사회적 고립 지수(objective social isolation index), 예를 들어 같은 가구 내 구성원 수, 거주지 인근의 친한 친구 수, 거주지 인근의 친척 수, 종교적 또는 기타 자선 단체 자원봉사 빈도, 그리고 이웃과의 만남 빈도 등을 통제했음에도 불구하고 외로움은 여전히 미래 사망률을 예측했다.
외로움은 결국 마음에 달린 것이지만 그렇다고 여기에 사회적 요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극심한 경쟁으로 인해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을 찾는 것 조차 힘겨운 사회와 비교적 그렇지 않은 사회가 있을 것이다.
여러가지 이유로 사람들의 등급을 나누고 다름을 틀림으로 치부하며 차별해서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욕구인 소속 욕구를 충족하는 데 어려움이 많은 사회와 비교적 그렇지 않은 사회가 있을 것이다.
외로움에 보다 취약한 사회가 있다는 얘기다.
한국 사회의 개개인의 행복 지수가 최하위에 속하는 것 또한 혹시 외로움에 취약한 사회인 게 한 몫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그런 주제에 또 함께 살기를 추구하기 보다 조금이라도 더 남들 위에 올라가서 차별을 ‘하는’ 쪽에 붙는 게 목표이고 속은 곪았어도 겉만 멀쩡히 꾸며서 ‘과시’하는 것이 사회 규범인 것 또한 상당히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에서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한 솔루션이 가능할까. 이제부터라도 논의해봐야 하지 않을까.
'내가 싫은 것' 아는 것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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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떤 사람인지 자신의 다양한 특성을 분명하고 일관적이게 정의할 수 있고 시간과 장소가 바뀌어도 자신이 어떤 사람이라는 느낌을 확실히 가지고 있는 상태를 심리학적 용어로 자기 개념 명확성(self-concept clarity)이 높다고 표현한다.
반대로 자기 개념 명확도가 낮은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정의하지 못하고 자신의 다양한 모습에 대해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보다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긍정적인 자기지각인 자존감이 때로는 좋고 때로는 나쁜 결과물들과 관련을 보이는데 어쩌면 자기 개념 명확성이 이를 설명할 수 있다고 보는 학자들이 있다.
예를 들어 자기 자신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자기 개념 명확성이 낮은 사람들의 경우 자존감이 외부의 영향에 의해 크게 좌우되는 반면 자신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정도는 그다지 높지 않지만 스스로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의 경우 외부의 영향에 의해 자존감이 흔들리는 정도가 비교적 덜 했다는 연구들이 있다.
필자의 경우 역시 어렸을 때 자연스러운 실제 나의 모습을 잘 파악하고 받아들이기보다 외부에서 좋다고 하는 모습들을 최대한 따라하고 거기에서 오는 보상이나 긍정적인 반응들을 기반으로 자존감을 높이 쌓았던 적이 있다.
예를 들어 매우 내향적인 편이지만 사람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기 위해 열심히 외향적인 척을 하고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좋은 편이라면 거기에 기대어 기뻐하고, 반응이 좋지 않다면 위기감을 느끼는 위태로운 시간을 상당히 오래 보낸 것 같다.
이렇게 자기 개념 명확성이 낮으면 외부 자극에 쉽게 흔들리고 영향을 받는 모습을 보인다.
자기 개념 명확성이 낮은 사람들이 자극적인 광고에 더 쉽게 영향을 받고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소비를 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어쩌면 자기 자신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일수록 명품 소비나 유행이 쉽게 번져나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최근 연구들에 의하면 자기 개념 명확성이 낮은 것이 ‘자기 통제’에도 부적 영향을 준다고 한다.
통린 장 북경대 심리학자 연구팀에 의하면 자기 개념 명확성이 낮은 사람들의 경우 ‘미래의 자신’을 현재 자신의 연장선으로 보기보다 자신과는 다른 새로운 사람, 마치 타인처럼 바라보는 경향이 높았다.
이런 특성이 자기 개념 명확성이 낮은 사람들이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끈기있게 노력하지 못하는 현상을 일부 설명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은 장기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나 나에게 바람직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능력, '장기적인 비전'을 갖는 것과 관련이 있고 장기적인 비전을 갖지 못하면 끈기있게 노력하는 행동이 저하된다는 것이다.
뭐 하나에 정착하지 못하고 서로 다른 것들을 이것저것 손대기만 하며 오랜 시간 갈아타기만 하는 경우 어쩌면 자기통제력 자체가 낮기보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는 것이 더 중요한 원인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다양한 일을 하다 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알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기 개념을 좀 더 명확하게 알게 되기도 한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삶에 걸쳐 다양한 도전과 실패를 통해 자신에 대해 알아간다.
이런 점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기보다는 뭐라도 하는 것이 훨씬 나을 수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아는 것 못지 않게 '싫어하는 것'을 아는 것 또한 올바른 길을 찾아가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므로 기분 나쁜 경험이나 실패 역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보다는 훨씬 낫다.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싫어하는 것들에 대한 리스트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그 어떤 경험도 무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Jiang, T., Wang, T., Poon, K. T., Gaer, W., & Wang, X. (2023). Low self-concept clarity inhibits self-control: The mediating effect of global self-continuity.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49(11), 1587-1600.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자존감이 과할 때 나타나는 부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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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과 우울증 사이에는 대체로 높은 부적 상관(하나가 높으면 다른 하나는 낮은 관계)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것이 곧 높은 자존감(낮은 우울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이 대체로 낮은 우울증상(높은 자존감)을 보이는 것인지, 안정적인 개인차가 나타나는 것인지, 아니면 한 사람 안에서 자존감을 ‘낮추는’ 사건이 발생하면 우울증상이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인지(아니면 반대로 우울증상을 높이는 사건이 생기면 자존감이 낮아지는 것인지) 확실히 알려진 바는 없다.
최근 피터 헤이너 취리히대의 심리학자 등의 연구에 의하면 의외로 많은 사람들에게서 자존감이 떨어져도 몇 일, 몇 주, 몇 달이 지나도 우울증상이 심해지는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반대로 우울증상이 심해져도 몇 일, 몇 주, 몇 달의 다양한 시간 간격들 모두에서 자존감이 떨어지는 현상 또한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평소에 높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 다시 말해 평소 자신은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매우 많이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서만 자존감이 우울증상과 큰 관련을 보이는 현상이 나타났다.
의외의 발견인 것 같기도 하지만 기존 연구들을 봤을 때 충분히 가능성 있는 발견이다.
자신을 그럭저럭 긍정할 수 있는 것은 중요하지만 자신을 심하게, 매우 긍정하는 것이 정신 건강이나 성공과 연결된다는 증거는 없으며 무리해서 자존감을 올리려는 시도들은 되려 부작용이 크다는 발견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허기가 져서 일상생활을 영위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지 않게 적당히 배를 채우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곧 배가 터질 것 같이 많이 먹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는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처럼 배가 터질 것 같은 상태도 배가 고픈 상태와는 다른 많은 문제들을 불러올 수 있다.
특히 제니퍼 크로커 오하이오 주립대 심리학자 등의 연구에 의하면, 현실과의 괴리가 큰 상태에서 자아존중감만 높이게 되면 스스로를 멋지고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마음과 실제 자신의 상태를 보여주는 근거들(내가 멋지고 사랑스럽지 않은 순간들) 사이의 충돌이 커져서 타인을 깎아내리거나 다양한 핑계를 대서 자신은 멋진 사람이라는 허상을 유지하려 들게 된다는 연구들이 있었다.
따라서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좋은 삶을 불러온다기보다는 실제로 더 나은 사람, 더 행복한 삶을 사는 내가 되는 것이 자연스럽게 건강한 자존감을 가지고 온다는 것이 대략의 결론이다.
되려 크게 부풀려진 자존감을 가지고 있으면 풍선이 펑 터지는 순간 더 큰 소리를 내며 더 낮은 곳으로 끝없이 추락할 수도 있다.
결국 ‘내가 나를 스스로 얼마나 좋게 또는 좋지 않게 평가하는지’와 ‘내 삶이 실제로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는 서로 다른 문제다.
내가 나에게 실망하는 순간에도 여전히 내 삶에는 맛있는 음식과 좋은 친구들, 반려동물 등이 나를 절망으로부터 구해줄 수 있다.
반대로 내가 나를 평소 엄청 멋지고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더라도 잘난 척만 하느라 주변에 아무도 없어서 늘 외롭거나 이렇게 대단한 자신을 아무도 봐주지 않는 현실이 원망스럽다며 세상 사람 모두를 미워하고 있을 수도 있다.
우리의 마음은 내가 나를 스스로 얼마나 대단하거나 대단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것과 별개로 얼마든지 천국이나 지옥을 오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또 평소 인간관계를 잘 쌓아온 사람들의 경우 ‘위기의 순간’이 가장 많은 사랑과 도움을 받는 감사할 일이 가득한 순간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괴로웠던 경험들 속에서 부적 감정만 느꼈다기보다 여러 종류의 찬란한 다양한 감정을 경험했다고 보고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그 중에는 가족, 친구, 연대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도 포함된다.
위기가 꼭 우울이라는 결과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진흙탕 같은 위기도 존재하지만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어떤 것의 소중함을 느끼고 싸워서 이겨내는 경험을 하고 한 단계 성장하는 순간들은 대체로 내가 나 자신이나 주변 사람들, 세상에 대해 가졌던 판단들이 흔들리는 순간이다.
흔들리는 순간에도 허락되는 아름다움이 있어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삶을 애정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사실 자신을 긍정하는 정도가 강한 사람이라기보다 이러한 긍정이 흔들리는 상황에서도 자기 자신에게 따뜻하고 친절한 태도를 유지하는 사람에 가까운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 이런 태도가 높은 자존감보다 정신 건강에 더 큰 도움이 된다는 발견들이 있었다.
이런 점에서 내가 나에 대해 가지고 싶은 믿음에 집착하기보다 내가 초라할 때에도 나를 보듬는 태도가 더 우울증상에 큰 영향을 미칠 것 같기도 하다.
추락했다는 사실 때문에 절망이 찾아왔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이는 착각이고 부정적인 사건 자체보다 추락한 나를 대하는 나의 태도가 차갑고 잔인했던 것이 진짜 문제였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