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짓트 바르도(Brigitte Bardot)!


































































브리짓 바르도 (출처: DTM)

B.B의 탄생과 신화의 시작!

그녀는 언제나 격식이나 틀에 대한 강한 불만을 제기하곤 했다.
그래서일까? 그녀를 보는 시각은 다양하기만 하다.
어떤 이는 '
신이 빚어낸 몸'이라고들 칭하기도 하지만 어떤 이들은 흔히들 말하는 '밥 맛 없는고깃덩어리'라고 깎아내리기가 일쑤다.
그럼에도 그녀는 5~60년대 패션의 본고장인 프랑스에서섹슈얼 트랜드를 이끈 여성 중 가장 최고의 자리에 위치했다.
한때 최고의 모델로 활동하면서 패스트푸드에 길들여진 수많은 뚱보들에게 질타의 대상이 되었던 슈퍼모델 케이트 모스만큼이나 가는 허리와 지칠줄 모르는 연애질, 그리고 주변의 모든 남자들을 길들인 특 의 관능적인 포즈를 앞세워 헐리웃의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 1926~1962)와 더불어 가장 '영향력있는 몸뚱아리' 로 존재했다.
그녀는 자신의 고향인 파리의 고리타분하고 경색된젊은이들은 물론늙은 노인들 조차도 훈계하 듯 휘둘렀다.
게중에는 대단한 영화감독도 있었고 내놓으라 하는 미남들도 즐비했다.
그녀는자신이 출연한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
Et Dieu... Crea La Femme>(1956년)에서처럼 자신의 자유로움을 한껏 과용 할 남자를 찾아 유럽 곳곳을 누비고 다녔으며 그 과장에 숱한 남자들은 자신의 사랑과 정체성 사이에서 발걸음을 쉽게옮기지 못했다.
갖가지 루머와 스캔들로 뒤덮힌 현역 시절의 이상적인 욕구는 훗날 마치 버려진 채로 홀로 되었을 무렵, 동물보호에 모든 사활을 걸듯 매달리는 계기가 되었지만 그녀는 결코 뒤로 물러서는 법이 없었다.

브리짓트 바르도

Brigitte Bardot

(1934년 9월28일, 프랑스, 파리 태생)

영화 <파리지엔느>(1957년)에서

로제 바딤이 창조한 여자!

1952년 장 보와이에의 <트루 노르망, Le Trou Normand>으로 영화계에 데뷔 할 당시에는 그녀도 순수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녀는 <마니나,
Manina, La Fille Sans Voiles>(1952년), <미래 스타, Futures Vedettes>(1955년)를 거치면서 점점 '미래의 스타' 가 되기 위한 몸짓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녀의 도발적 매력을 먼저 알아본 이는 헐리웃 감독, 로버트 와이즈였다.
그는 자신의 영화 <트로이의 헬렌,
Helen Of Troy>(1956년)에서 이탈리아의 글래머 배우, 롯사나 포데스타(Rossana Podesta, 78세)와 그녀를 경쟁시키듯 함께 출연시켰다.
하지만 영화팬들의 반응은 그의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말하자면 그녀의 진정한 가치를 그가 발견해내지 못한 탓이었다.
바로 그때, 먹이를 낚아 채듯 날카로운 발톱을 꺼내 든 이는 다름아닌
로제 바딤(Roger Vadim, 1928~2000)이었다.
그는 그녀의 매력이 무엇인지 잘 아는 듯 했다.
데뷔 동시에 그녀의 가치를 알아본 그는 곧바로 그녀와 결혼을 했다.
그전까지 작가로 활동하던 그는 자신의 첫 연출 데뷔작인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
Et Dieu... Crea La Femme>(1956년)에 자신의 아리따운 아내를 줄리엣 역에 캐스팅했다.
절묘한 타이밍을 잡은 그는 그녀의 옷을 되도록이면 오래, 자주 벗겨놓았다.
그녀를 보기위해, 그녀의 흐트러진 옷과 도발적으로 튀어나온 입술, 그리고 거만하게 셔츠새로 흘러나온 탐스런 가슴은 숱한 남자들을 극장 안으로 불러 들였다.

브리짓트 바르도 (출처: 리스탈)

섹스 심볼, 다양한 장인들과의 작업!

곧이어 그녀는 프랑스의 간판급 남자 배우들인 샤를르 보와이에(Charles Boyer, 1899~1978), 앙리 비달(Henri Vidal, 1919~1959)과의 사이에서 게슴츠레한 눈빛을 흘리며 <파리지엔느, Une Parisienne>(1957년)다운 섹시함을 드러냈다.
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아내를 지켜보던 바딤은 또다시 그녀를 자신의 작품에 끌여 들였다.
스릴러 형식을 빌은 <위험한 사랑,
Les Bijoutiers Du Clair De Lune>(1958년)은 모두를 혼돈의 늪으로 몰아 세웠다.
대감독 줄리앙 뒤비비에도 그녀의 매력에서 멀어질 수가 없었다.
그는 <여인과 인형,
La Femme Et Le Pantin>(1958년)에서 그녀의 진지함을 발견해 내려 했지만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그후 그녀는 <나와 함께 춤을,
Voulez-Vous Danser Avec Moi?>(1959년), 장 오렐의 <제 멋대로 하면서, La Bride Sur Le Cou>(1961년), 역시 남편의 영화인 <사생활, Vie Privee>(1962년)처럼 자신의 육체가 부각된 영화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간혹 앙리 조르주 클루조의 <진실,
La Verite>(1960년)이나 장 뤽 고다르의 <사랑과 경멸, Le Mepris>(1963년)같은 훌륭한 영화들도 있긴 했지만 그녀는 언제나 '바르도 다운' 여인으로 있어야 했다.
1965년 루이 말은 그녀와
잔느 모로(Jeanne Moreau, 85세)를한데 묶어 <비바 마리아!, Viva Maria!>에서 암묵적인 경쟁을 유도했다.
68년 페데리코 펠리니와 루이 말, 그리고 전 남편인 로제 바딤이 공동 연출한 <죽음의 영혼,
Spirits Of The Dead>에서 훌륭한 연기를 보여 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같은해 에드워드 드미트릭의 서부극, <샬라코,
Shalako>에서 숀 코너리, 스테판 보이드, 잭 호킨스 등과 공연하면서 다시한번 헐리웃에 도전장을 냈다.

브리짓트 바르도 (출처: Wirefilm)

숱한 남성 편력, 동물애호가로 변신!

유럽에서의 대단한 반향과는 달리 미국에서의 그녀는 배우라기 보다는 단순한 '핀업 걸'이었다.
결국 그녀는 1년도 채 버티지 못하고 파리로 돌아와 장 오렐의 <여인들,
Les Femmes>(1969년)에서 또다시 옷을 벗어 제쳤다.
70년대 들어서면서 그녀는 배우로서의 자신을 되돌아 보기 시작했다.
열화와 같은 남자들의 든든한 지지기반에도 불구하고 점점 흥미를 잃어가고 있었다.
<못말리는 수녀들,
Les Novices>(1970년), <화려한 유혹, Boulevard Du Rhum>(1971년), 그리고 <프랑스왕의 후예, Les Petroleuses>(1971년)등에서 여전히 자신의 머리가 아닌 몸이 연기해야 한다는 사실에 화가났다.
결국 그녀는 1973년 자신의 첫 남편이 연출한 <돈주앙,
Don Juan Ou Si Don Juan Etait Une Femme...>을 끝으로 현역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현역에서 물러난 그녀는 그후 동물보호운동에 앞장 섰으며 한때 우리나라 사람들의 개고기 식용문제를 문제삼아 한바탕 논란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유방암을 극복하기도 한 그녀는 로제 바딤을 비롯하여 배우인 자크 짜리에, 1992년부터 결혼하여 살고있는 현 남편 베르나르 도말까지 모두 4차례 결혼했지만
장 루이 트린티냥(Jean-Louis Trintignant, 82세), 새미 쁘레이(Sami Frey, 75세), 세르쥬 갱스부르(Serge Gainsbourg, 1928~1991), 사샤 디스텔, 작가인 존 길모어 등, 이루 다 열거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스타들과 염문을 뿌렸다.


필노그래피 by Major Film

<비키니를 입은 여자, 1952년>에서 장 프랑수아 칼베와

<스트립걸 아가씨, 1956년>에서

<아버지의 초상, 1953년>에서 장 리샤르와

<위대한 전략, 1955년>에서 미쉘 모건과

<여자와 육체, 1955년>에서

<바다의 의사, 1955년>에서 더크 보거드와

<네로의 주말, 1956년>에서 비토리오 데 시카, 글로리아 스완슨과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 1956년>에서

<트로이의 헬레나, 1956년>에서

<버릇없는 여자, 1956년>에서 장 브랑토니어와

<위험한 사랑, 1957년>에서 스티븐 보이드와

<귀여운 악마, 1958년>에서 장 가방과

<나와 함께 춤추지 않겠어요?, 1959년>에서 앙리 비달, 노엘 로크베르와

<여자는 악마다, 1959년>에서 안토니오 빌라르와

<진실, La verite, 1960년>에서 새미 프레이와

<진실, 1960년>에서

<제멋대로 하면서, 1961년>에서 장 티지에와

<유명인의 사랑, 1961년>에서 알랭 들롱과

<사생활, 1962년>에서 마르첼로 마스트로야니와

<경멸, 1963년>에서 잭 팔란스와

<비바 마리아!, 1965년>에서 잔느 모로와

<샬라코, 1968년>에서 숀 코너리와

<곰과 인형, 1970년>에서 장 피에르 카셀과

<못말리는 수녀들, 1970년>에서 아니 지라도와

<기쁨, 1967년>에서 로랑 떼르지에프와

<프랑스왕, 1971년>에서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와

감독, 장 뤽 고다르와

<진실, 1960년>에서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 1956년>의 한 장면

대니 케이와

첫 남편 로제 바딤과 셋트에서

로제 바딤과 함께

두번째 남편, 자크 샤리에와

세번째 남편, 군터 자크와

06:46

신이 창조한 여인, 브리짓트 바르도(Brigitte Bardot)

대표작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 1956년>의 트레일러 영상

알랭 들롱, 잔느 모로와


댓글 쓰기

Welcome

다음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