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구리’의 역사



이영창 기자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윤희숙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17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회의를 마치고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BR> 뉴스1

윤희숙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17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회의를 마치고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뉴스1

“다구리란 말로 요약하겠다.
혁신위원장 윤희숙이 국민의힘 현실을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그 덕에, 많은 사람이 알지만 공식석상에서 차마 입에 올리기 어려웠던 전문용어(?)가 신문 제목으로 뽑혔다.
다구리는 ‘뭇매’를 뜻하는 속어. 동사 ‘치다’ 혹은 ‘놓다’와 결합해 여러 명이 비정상적으로 한 사람에게 집중적으로 폭력을 가할 때 쓰인다.
이 단어를 종종 듣거나 썼던 입장에선, ‘드디어’라는 감개무량과 ‘진짜 써도 되나’ 하는 격세지감이 동시에 느껴진다.


□ 어원을 알긴 어렵다.
다만 용례를 찾으려 뉴스 검색을 해 봤다.
1981년 동아일보의 교도소 관련 기사에 다구리가 ‘단속에 걸리다’는 뜻의 은어로 소개됐다.
1982년 박범신의 조선일보 연재소설 ‘태양제’에선 폭력 두목의 폭행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등장한다.
당시엔 ‘적발’과 ‘몰매’의 의미가 혼용됐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청소년 은어를 다루는 사회부 기사, 게임 장면 속 다중 격투를 소개하는 기사 등에서 간간이 쓰였다.
그러다 윤희숙에 이르러 음지를 탈출했다.


□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한 사물을 나타내는 가장 적합한 단어는 세상에 단 하나만 존재한다’(일물일어설)고 했다.
그 개념을 차용하면 윤희숙의 단어 선택은 이보다 더 적확할 수 없다.
다구리의 뉘앙스는 ‘뭇매’와 ‘몰매’ 이상이다.
정당한 대결에서 못 이기니 머릿수로 밀어붙이는 비겁, 정공법으로 승기를 못 잡으니 암수·기습을 감행하는 비열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익명의 다수에게 ‘다구리’ 당해 차례로 축출 혹은 무장해제 당했던 이 당의 개혁파 대표·비대위원장의 수난사를 떠올리게 한다.


□ 요즘은 아예 인용부호를 떼고도 쓰이는 내로남불처럼, 다구리도 표준어에 준하는 반열에 오를 수 있을까? ‘다구리’가 작은 따옴표를 탈출할지 여부는 전적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
지금과 같다면 다구리는 꽤 오래 이 당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단어로 남을 것 같다.
정당 이름에 멸칭이 붙으면, 그걸 떼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국민의힘 사람들이 가장 잘 알 것이다.
‘차떼기’를 탈출하기 위해 기울여야 했던 시간과 노력을 떠올리면 된다.

박혁진 기자


사과한다는 건 누구에게나 어렵다.


살면서 여러 사람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해야 했던 미숙한 사람으로서, 사과하는 일에도 나름의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게 됐다.
사과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건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직접 하는 것과 타이밍 그리고 말을 뒷받침하는 행동이다.

진심은 이 세 가지를 통해 상대방에게 전달된다고 생각한다.
피해자를 제쳐두고 제3자를 통해서 하는 미안함의 표시는 대부분 안 하느니만 못하다.
타이밍을 놓치면 사과받는 사람의 마음은 돌처럼 굳는다.
돌처럼 굳은 후에 계란을 던져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적절한 타이밍에 사과를 해도 거기에 걸맞은 후속조치를 하지 않으면 앞의 사과는 말장난이나 다름없다.

그런 사과는 피해자로 하여금 '가해자가 사태를 조속하게 수습하기 위해서 일단 숙이고 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사과하는 사람이 책임 있는 행동을 하지 않고 말로만 죄송하다 하면 사과받는 사람은 그 말을 개수작이라고 여길 것이다.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으면서도 상대방이 사과를 받지 않으면, 가해자는 '지금보다 낫겠지'라거나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한발 더 나아가는 것을 포기한다.
그리고 불가항력적 상황으로 미룬 채, 자신의 가해로 얻게 된 이익을 누린다.
잘못된 사과는 상대방뿐만 아니라 본인도 다치게 한다.

예를 들어 피해자를 상대로 죄송하다고 하고, 개한테 사과를 던져주는 사진을 내밀면 피해자는 더 큰 상처를 받는다.
그런 마음은 언젠가 모습을 드러내 본인에게 돌아간다.
나는 잘못한 게 없는데 사과하라니 사과한다는 식의 발상의 끝을 우리는 지난해 12월 3일 밤에 봤다.
잘못된 사과의 패턴은 인사청문회 국면에서도 많이 목격된다.
살고 싶은 대로 살던 후보자들이 검증대에 올라서야 국민들에게 고개를 숙이지만, 진정성 있는 사과는 별로 보지 못했다.

한 비례대표 의원이 부친의 농지법 의혹이 불거지자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배지를 던진 것 정도가 지금까지 본 가장 인상적 사과였다.
이번 장관 인사청문회에서도 우린 번지수를 잘못 찾은 사과를 봤다.
지난 23일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그는 글에서 국민께 사죄한다 썼고, 무엇보다 '이재명 대통령님께도 한없이 죄송한 마음뿐'이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정작 그가 상처를 준 보좌진에 대한 사과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갑질 의혹이 불거져도 버티다가 여론에 떠밀려 뒤늦게 물러나거나, 그런 그를 주변에서 '후보자의 갑질이 일반 직장 내 갑질과는 다르다'고 감싸는 건 사과의 정도에서 벗어나도 한참 벗어났다.
이 정권이 다른 정권과는 조금은 다르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 금이 간 독자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이번주 주간조선 커버스토리는 무거운 뉴스 대신 '빵'으로 준비했다.
무더운 여름휴가철, 독자들이 주간조선 한 권을 들고 빵지순례를 하는 소소한 기쁨을 누렸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다.

나의 빵은 소보루빵, 단팥빵, 식빵, 소시지빵과 같은 오래된 빵이다.
그래서 '빵으로 썰을 풀라'는 날것의 아이디어만 주고 기획부터 제작까지 20대 기자들에게 맡겼다.
단언컨대 중년의 간섭을 최소화해 더 좋은 콘텐츠가 나왔다고 생각한다.
빵 하나로 이렇게 다양한 '썰'을 풀 수 있는 젊은 기자들의 재치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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