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딸아이 민애가 KBS2의 ‘옥탑방의 문제아들’이란 예능프로에 출연하는 걸 봤다.
그 예능프로는 나도 오래전에 출연한 바 있는데 부녀가 대를
이어서 출연한 셈이다.
그나저나 민애가 신통하고 신기한 것이 내가 출연한 예능프로를 차례대로 답습했다는 것이다.
맨 처음 tvN의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나오고, 그다음은 CBS의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 나오고, 이번에는 ‘옥탑방의 문제아들’에 나온 것이다.
번번이 프로그램을 보지만 방송에 출연한 민애는 보는 사람에게 감동을 준다.
지적이면서도 감성적인 면모가 특별하다.
빠르고 정확한 어투로 핵심을 짚어가면서 가끔은 울먹울먹 스스로 감정을 드러내 함께
출연하는 사람이나 시청자의 감정선까지 건드려 준다.
그래서 유쾌하면서 울적한 마음을 선사한다.
참으로 묘한 것이, 유머와 흥분과 슬픔이 뒤섞여 한동안 사람의 마음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 딸이긴 하지만 대단하다는 느낌이 든다.
딸이 공부 열심히 한 '숨은 계기'
이번에 ‘옥탑방의 문제아들’을 시청하는 동안 나는 특별히 민애의 어린 시절 공부 이야기를 듣고 속으로 많이 놀랐다.
태어나면서부터 민애는 예쁘고, 똑똑하고 야무진 아이였다.
학교에 들어가면서도 공부 잘하는 아이였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월요일 조회 때마다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상을 받는 아이로 소문이 났었다.
저의 엄마는 민애를 가리켜 “싱킬 것이 없는 아이”라고 말하곤 했다.
말하자면 “신경 쓸 일이 없는 아이”란 뜻일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민애가 공부를 잘하는 것은 당연하고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도 같은 생각이다.
그런데 ‘옥탑방의 문제아들’에 나와 공부 비법을 밝히는 민애의 말은 많이 달랐다.
자기가 어려서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된 데는 까닭이 있었고 계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우울증에
걸려 언제나 어둑한 표정으로 누워만 있는 엄마가 학교에서 공부 잘한 증거로 상장을 받아다가 보여주는 날만 웃는 얼굴로 벌떡 일어났다는 것이다.
결국은 엄마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했다는 이야기인데 이 대목에서 나는 참으로 복잡하고 묘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것이다.
더불어 얼마나 스스로가 부끄럽고 작아지는 마음인지 모른다.
어린 민애가 또 얼마나 고맙고 자랑스러운지 모른다.
그랬구나. 우리 민애가 정말로 그때 그랬었구나. 그걸 내가 미처 모르고 저의 엄마 또한 까마득 몰랐었다니! 어린 민애에게 공부는 엄마에게 사랑을 전하는 나름대로 눈물겨운 방법이요 수단이었다니! 방송을 보는 내내 나는 후회스런 마음이 되어 얼마나 여러 차례 눈물을 훔쳐야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방송을 보던 그 시간,
아내와
나는 서로 다른 장소에 있었다.
아내는 병원 입원실에서 혼자 보았고, 나는 공주의 우리 집 아파트에서 혼자 보았다.
왜 그런가? 지난 10월 20일, 아내가 대전의 한 종합병원에서 무릎 수술을 받고 입원했다.
그래서 내가 난생처음 홀아비가 되어 빈집에 혼자 살면서 밥을 챙겨 먹고 청소하고 빨래하면서 지내게 되었다.
이른바 1인 가정이 된 것이고 독거노인 신세가 된 것이다.
아내가 병원에 입원하고 보니
생각해 보면 이것은 범상한 일 같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매우 심각하고 처량한 상황이다.
아내에게 그렇고 나에게 그렇다.
이미 우리는 오래전 한 차례 헤어지는 연습을 호되게 한 적이 있다.
그것은 2007년도 내가 죽을병에 걸려 대전의 대학병원과 서울아산병원에서 장기 입원환자로 지낼 때였다.
그런데 이번엔 아내가 수술하고 장기 입원하는 바람에 다시금 헤어지는 연습을 하면서 살고 있다.
방송에서 민애는 공부를 열심히
하여
우등생이 된 계기는 좋은 상황이 아니라 나쁜 상황이 만들어 준 것이었다고 했다.
가난한 집안에다가 우울증으로 앓는 엄마. 자주 자리에 누우면서 쉽사리 웃지 않는 엄마. 그것은 아이에게 하나의 위기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걸 극복하는 방법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말은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다.
과연 위기는 기회일까? 저마다 그럴까?
우리 부부에게도 지금이 하나의 조그만 위기 상황이다.
언젠가는 벼락같이 닥쳐올 1인 가정, 독거노인의
세월을 미리 연습해 보는 상황이다.
어쩌는 수 없는 일이다.
작년에 98세로 돌아가신 아버지도 어머니가 먼저 소천하신 뒤로 5년 동안이나 혼자서 견뎠다.
나라고 해서 비껴갈 일이 아니고 아내라고 해서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인생의 마지막 관문 같은 과정이다.
앞으로 재활 치료 잘 마치면…
“외출하는 길/ 모처럼 겨울 햇빛 좋다며/ 밖으로 따라 나온 아내/ 함께 걷다가 다리 아파/ 더는 못 걷겠노라/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먼저 가라고 혼자 가라고/ 손을 흔든다// 이게 무슨 장면의 연출이람?/ 꿈속 같다/ 꿈속에서 만나/ 헤어지는 사람들 같다// 한참을
더 걸어오다가/ 돌아다보니/ 그때까지 그 자리에 서서 아내/ 손을 높이 높이 들어 흔든다/ 어서 가라고 어서 갔다가/ 길 잃지 말고/ 돌아오라고// 더욱 꿈속 같다.
”(나태주 시, ‘꿈속 같다’ 전문)
소원하건대 우리 부부에게도 어린 딸 민애에게서처럼 위기가 기회가 되고, 잘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이제 1주일만 더 혼자서 견디면 된다.
그러면 아내는 대전의 병원에서 퇴원하여 공주의 한 병원으로 옮겨 재활 치료를 받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좀 더 가까운
거리에서 숨을 쉬면서 살게 된다.
재활 치료만 잘 마치면 다시금 아내는 튼튼한 다리를 되찾아 씩씩하게 걷는 사람이 될 것이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가 조금이라도 더 오래 지상에 숨 쉬는 사람이기를 바라고 같은 집에서 함께 사는 사람이기를 소망한다.
아, 이것은 너무나도 평범하고 작은 소망이지만 얼마나 우리에겐 절실하면서도 커다란 소망인가! 하나님이 좀 더 우리를 돌봐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이다.
"국민연금 30년 꼬박 부었는데 이럴 줄은"…은퇴자들 '하소연'
30년간 성실 납부했는데…노후 등골 휘게 만드는 연금제도

“제가 건강보험 피부양자에서 탈락했다네요. 도대체 무슨 수입이 잡힌걸까요.”“국민연금
오래 부었더니 기초연금이 깎였어요.”
은퇴자들의 이런 하소연이 재테크 커뮤니티나 온라인 노후준비 카페를 중심으로 잇따르고 있습니다.
노후 대비를 위해 국민연금을 꾸준히 납입해온 이들이 오히려 건강보험료 부담 증가나 기초연금 감액이라는 역설적 결과를 맞고 있다는 건데요.
건보료 동반 탈락
건강보험 제도 개편으로 인한 부담 증가는 은퇴자들의 주요 고민거리입니다.
국민연금이나 공무원연금 등 공적연금 소득이 연 2000만원을 넘으면 건보 피부양자 자격을 잃고 지역가입자로 전환되기 때문입니다.
2022년 9월 관련 제도가 시작된 이후 올해 2월까지 31만4474명이 새로 지역가입자로 전환됐다고 합니다.
즉 그동안 가족의 건강보험에 피부양자로 등록돼 보험료 부담 없이 혜택을 누렸던 이들이 지역가입자가 되면서
소득과 재산 등에 따라 산정된 건보료를 직접 납부하게 된 거죠. 이들이 새롭게 부담하는 평균 월 보험료액은 대략 9만9190원이라고 합니다.
공적연금 소득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피부양자에서 제외된 지역가입자를 연금 유형별로 살펴보면 국민연금이 4만7620명(15.1%)으로 공무원연금(21만9532명, 69.8%) 다음으로 많았습니다.
연금소득이 많다는 이유로 건보료 폭탄을 맞게된 31만여명 중 37%에 해당하는 11만6306명은 ‘동반 탈락자’라고 합니다.
이는 배우자 한 명이 소득 기준을 초과해 부부가 함께 피부양자 자격을 잃은 경우라는데요. 연금 수입이 있는 남편 때문에 연금을 받지 않는 아내까지 지역가입자가 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국민연금 30년 꼬박 부었는데 이럴 줄은"…은퇴자들 '하소연' [일확연금 노후부자]](https://img.hankyung.com/photo/202511/01.42382722.1.jpg)
이는 정부가 ‘무임승차 논란’을 줄이기 위해 2022년부터 연간 합산소득 기준을 기존 연 34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낮추는 등 피부양자 인정 기준을 보수적으로 강화했기 때문입니다.
재정을 허투루 쓰지 않겠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은퇴자들 사이에선 “연금액은 생활비로 쓰기도 빠듯한데 건보료를 더 내라니 억울하다”는 반응이 압도적이죠.
이에 정부는 제도 개편에 따른 국민들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지역가입자로
전환된 첫해에는 보험료의 80%를, 2년 차에는 60%를 감면하는 등 '4년 한시적 차등 경감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한은 내년 8월까지고, 그 다음부터는 건보료 폭탄 비명이 곳곳에서 쏟아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초연금은 깎여
건보료 논란뿐만 아닙니다.
국민연금과 함께 은퇴자들의 주머니를 채워주는 기초연금도 국민연금과 연계돼 감액되고 있는데요.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민연금 수급으로 인해 기초연금이 감액된 대상자는 약 70만4000명에 달했습니다.
국민연금 수급자 증가로 기초연금과의 ‘연계감액’ 대상도 함께 늘어나면서 지난해 전체 기초연금 수급자 676만 명 중 10% 이상이 감액을 경험했습니다.
1인 평균 감액 금액은 월 9만 원 수준으로, 4년 전보다 30% 넘게 늘었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기초연금 산정 구조에 있습니다.
이는 바로 ‘기초연금-국민연금 연계감액’ 조항 때문인데요. 국민연금을 받는 노인의 기초연금액은 국민연금 수령액과 A값(국민연금 전체 가입자
평균소득의 3년간 평균액)을 반영해 산정하고, 기초연금 기준연금액의 1.5배를 초과하는 국민연금을 받을 경우 기초연금이 줄어듭니다.
2014년부터 도입된 제도죠.

올해 기준연금액은 월 34만2510원이니, 1.5배인 월 51만3760원을 초과할 경우 기초연금 감액 대상이
된다는 거죠. 최대 50%까지 삭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젊은 시절 있는돈 없는돈 아껴가며 국민연금을 성실하게 납입해 온 가입자들이 상대적인 박탈감을 호소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기도 하죠.
지난해 총 연계감액 금액은 631억원으로 1인 평균 감액금액은 9만원 가량이었다네요. 지난 2020년 1인 평균 감액 수준이 6만9000원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4년 전보다 감액 규모가 30% 이상 늘어난 것입니다.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이후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을 동시에 받는 노인이 늘면서, 연계감액 대상자와 감액 규모도 덩달아 증가하고
있습니다.
기초연금 수급자는 2020년 566만명에서 지난해 676만명으로 19.4% 늘었습니다.
같은 기간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동시 수급자도 238만4000명에서 342만8000명으로 43.8% 늘었구요.
연금 전문가들은 “기초연금의 본래 취지는 저소득 노인의 최소한의 소득 보장”이라며 “국민연금과의 연계 감액을 그대로 두면 성실 납부자의 역차별 논란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누적 조회수 3100만 회에 달하는 <일확연금 노후부자>가 책으로 출간됐습니다.
퇴직·국민·주택연금과 대체투자로 은퇴 후에도 끊이지 않는 '제2의 월급통장'을 설계하는 방법을 알기 쉽게 풀어냈습니다.
예스24, 교보문고 등 전국 주요 서점과 온라인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만병통치' 비만약 시대 유감(遺憾)
고열량·운동부족 시대의 신약당뇨·심장병·치매까지 치료비싼 약값 탓에 환자 활용 한계'청소년 비만'은 사회적 질환조기 치료 안하면 성인까지 지속건보 재정 어려워도 관심 가져야이지현 바이오헬스부 차장
![[토요칼럼] '만병통치' 비만약 시대 유감(遺憾)](https://img.hankyung.com/photo/202511/07.30325968.1.jpg)
인류가 등장한 이래 인간의 역사는 굶주림을 해소할 식량을 차지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였다.
젖과 꿀이 흐르는 비옥한 농토를 차지하기 위해 전쟁은 시작됐다.
냉혹한 환경에 적응한 인간만 살아남자 유전자도 그에 맞춰 진화했다.
스물세 쌍의 사람 염색체 중 열여섯 번째에 있는 체지방·비만 유전자(FTO)는 그 흔적 중 하나다.
몸속에 들어온 탄수화물을 지방으로 저장해
추운 겨울에도 생존하도록 도왔다.
서양인은 70%가량이 이
유전자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인은 그 비율이 30%에도 미치지 못한다.
오랜 진화의 결과물이 인종 간 체형을 결정지었다고 분석하는 배경이다.
한때 ‘축복’ 같았던 FTO 유전자가 이제는 건강한 삶을 위협하는 ‘문제아’가 됐다.
비만이 미덕인 시대를 넘어 질병인 시대가 도래하면서다.
18세기 중반 시작한 산업화·도시화 혁명은 진화를 거스르는 ‘신인류’를 낳았다.
소설가 박민규의 통찰처럼 현대인은 뛰어야 할 곳에서 걷고, 서 있어야 할 곳에서 뛴다.
자동차와 엘리베이터는 뛰고 힘을 써야 겨우 도달했을 곳도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닿게 해줬다.
운동량이 줄고 먹을 것이 풍족해지자 나날이 불어나는 살을 빼기 위해 좁은 러닝머신 위에 올라 쳇바퀴 돌리듯 뛰는 게 일상 속 풍경이 됐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비만을 질병이라고 선언한 것은 1997년이다.
당뇨, 심장질환 등에도 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21세기 신종 감염병’이란 수식어도 붙었다.
수십만 년간 서서히 만들어진 인간 진화의 산물은 이젠 천덕꾸러기 신세다.
![[토요칼럼] '만병통치' 비만약 시대 유감(遺憾)](https://img.hankyung.com/photo/202511/AA.42313408.1.jpg)
모든 게 풍족하고 넘쳐 시작된 ‘리버스 진화’ 시대. 적정 체중을 유지하는 게 건강한 여생의 보증수표가 됐지만 인간의 몸은 이런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다.
진화의 속도는 느리지만 기술은 빨랐다.
혈당은 낮추고 포만감을 높이는 ‘인크레틴’ 호르몬을 흉내 낸 신약 기술이 해결사로 등장한 것이다.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와 일라이릴리의 ‘마운자로’다.
이들은 위를 잘라내는 수술로만 도달할 수
있었던 ‘마의 10%’ 체중 감량률을
넘어선 최초의 비만약이다.
당뇨는 물론 심장질환, 수면무호흡증, 치매, 지방간 등 인류의 난제를 하나둘 해결하고 있다.
‘만병통치약’이란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열풍을 넘어 광풍이 된 비만약은 산업도 키웠다.
갑자기 살이 빠진 탓에 얼굴이 쳐지고 주름이 많아지는 ‘위고비 페이스’를 해결하기 위해 피부·성형외과를 찾는 발길이 늘었다.
‘살 빠지는 약’에 대한 관심이 ‘헬시플레저’(즐겁게 하는 건강관리) 유행과 만나면서 ‘러닝 열풍’, ‘혈당스파이크
조절 식단’ 등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다.
‘게임체인저’ 비만약이 진짜 세상을 바꾼 것이다.
혁신 기술의 파급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돈벌이에 치중한 일부 의사의 일탈과 만나 마르고 싶은 이들의 ‘욕망’을 자극했다.
날씬한 여성들이 더 날씬해지기 위해 찾는 선택지가 됐다.
매달 50만원가량을 지출하며 ‘만병통치약’을 손에 쥔 사람들의 상당수는 ‘질병 치료’보다는 ‘아름다움’을 위해 소비한다.
건강보험 지원을 못 받는 비급여 의약품인 탓에 이마저도 경제적
여
가 있는 사람만 누릴 수 있는 혜택이다.
약을 개발한 제약사도 ‘돈 되는’ 미용 목적 시장에 집중하느라 약을 꼭 써야 할 환자는 외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요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공급은 이런 쏠림을 부채질하고 있다.
만병을 고친다는 명약이지만 진짜 환자들에겐 외려 ‘그림의 떡’이 된 것이다.
고가의 비만약은 영양 불균형 등으로 비만에 노출된 청소년들에게도 허락되지 않는 사치다.
한 지역 병원 의사는 “농촌지역 등의 다문화 가정 아이들은 비만 문제가 위험 수위를 넘었다”고 토로했다.
과도하게 살찌는 게 질병인지조차 인식 못 하는 이들에게서 비만이 감염병처럼 번져가고 있다는 의미다.
의료 현장에서 청소년 환자만이라도 약을 쓰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잇따르는 이유다.
아이들은 게으르거나 결단력이 부족해 살이 찐 게 아니다.
식욕을 제어하지 못하는 심리적 결핍과 뛰어놀기 힘든 환경이 낳은 사회적 질환에 걸린 것이다.
‘어린 비만’부터 질병으로 바라보는 시각의 전환이 필요한 이유다.
아이들 비만은 조기에 개입하지 않으면 성인까지 이어진다.
사회·경제적 부담을 키우는 심각한 만성질환이다.
이들의 생명권을 지키고 신약의 접근성을 높여주는 것은 건강보험의 또 다른 역할이다.
누구를 위해 새벽배송을 막는가
![[데스크 칼럼] 누구를 위해 새벽배송을 막는가](https://img.hankyung.com/photo/202511/07.19432074.1.jpg)
2021년 봄. 쿠팡 창업자 김범석 의장이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을 준비하며 제출한 증권신고서(SI)에는 인상적인 사업 계획이 담겨 있었다.
“워킹맘인 수지는 퇴근 후 아이의 준비물과 다음 날 아침에 먹을 시리얼, 우유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곧바로 앱으로 장을 본다.
다음 날 아침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집 앞에 준비물과 아침 식사가 도착해
있다.
” 김 의장은 소비자들이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라며
감탄할 만한 이런 서비스를 내놓겠다고 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비현실적이고 생소해 보였던 이 서비스는 2025년 현재 많은 이들의 당연한 일상이 됐다.
출근길 아침을 준비하는 직장인, 이른 아침 문을 여는 카페 사장, 제철 농산물을 신선하게 배달하고자 하는 농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이들의 삶을 지탱하는 필수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
쿠팡은 10조원 가까이 이르는 막대한 물류 투자와 정교한 시스템 설계를 통해 서비스를 구현했다.
‘새벽배송’ 서비스다.
모두 반대하는 또 다른 규제
이렇게 탄생한 새벽배송 서비스가 최근 중단될 위기에 놓였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새벽배송 서비스를 전면 금지하자는 주장을 내놓으면서다.
민주노총은 지난달 국토교통부가 주관한 ‘택배 사회적대화기구’ 회의에서 택배 노동자의 수면·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해 밤 12시~오전 5시 사이 초심야 배송을 금지하자고 제안했다.
이후 정치권과 노동계, 산업계에서 새벽배송 규제 논쟁에 불이 붙었다.
하지만 정작 민주노총 이외에 이 법안에 찬성하는 이는 주변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 15일 국회 국민동의청원 게시판에 새벽배송 금지를 막아달라고 호소하는 글이 올라왔다.
자신을 중학생과 초등학생 두 자녀를 키우는 워킹맘이라고 밝힌 청원인은 “새벽배송 중단은 맞벌이 가정의 일상에 큰 타격”이라며 “마트의 문이 닫힌 밤, 아이들의 학교 준비물을 챙기고 아침 식사를 준비할 수 있는 소중한 방법”이라고 썼다.
청원을 올린 이를 포함해 쿠팡, 컬리 등 e커머스의
새벽배송을 이용하는 소비자는 2000만 명에 이른다.
새벽배송을 통해 물건을 파는 농부와 소상공인,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직원에게 새벽배송은 삶의 터전이자 기반이다.
새벽배송이 없어지면 일자리가 위태로워진다.
혁신 발목 잡는 민주노총
심지어 민주노총이 보호하겠다고 나선 배달기사조차 반발하고 있다.
배달기사들은 교통 혼잡, 수입 증대 등을 이유로 새벽배송을 오히려 선호한다.
쿠팡의 직고용 배송기사 노조인 ‘쿠팡친구 노동조합’은 민주노총의 입법 추진을 “민주노총 탈퇴 사업장에 대한 보복”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그의 저서 <경영의 실제>에서
‘기업(경영)의 목적은 고객을 창출하는 것’이라고 했다.
경영의 본질은 단순한 이윤 추구가 아니라 고객 중심의 혁신을 통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라는 의미다.
새벽배송은 이런 드러커의 경영 철학을 구현한 대표적 예다.
혁신의 산물이자 수많은 일자리가 연계돼 있는 국민 생활의 필수 인프라다.
새벽배송 금지는 혁신을 되돌리고, 2000만 명 소비자의 편익을 해치며, 수많은 이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일이다.
민주노총은 누구를 위해 새벽배송을 막고자 하는지, 지나치게 집단 이익과 정치적 목적에 매몰돼 있지 않은지
스스로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