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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에서 어린 왕자는 이곳 사람들은 상상력이 없어. 들은 걸 반복하기만 해라고 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상상하기를 멈추게 된다.
/위키피디아
고명환 작가
[아무튼, 주말]
[고명환의 고전 읽기]
박제된 날개 퍼덕이도록
내면의 야성 일깨우는 책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작가 이상(李箱)의 소설 ‘날개 첫 문장이다.
철새 떼가 이동하는 철이 되어 야생 오리들이 날아갈 때면, 오리들이 굽어보는 지역 위로 이상한 물결이 인다.
집오리들이 커다랗게 삼각형을 만들어 비행하는 무리에 이끌린 듯 서투른 날갯짓을 시작하는 것이다.
야성의 부름이 집오리들이 마음속에서 알지 못할 야성의 흔적을 일깨우는 모양이다.
일순간 농가의
오리들은
철새로 변한다.
늪과 벌레와 오리집같이 보잘것없는 영상만이 빙글빙글 돌던 그 작고 딱딱한 머릿속에서 이제는 광활한 대륙과 바닷바람의 맛, 해양의 지리학이 펼쳐지는 것이다.
오리는 제 머리가 그토록 경이로운 것들을 담을 수 있을 만큼 크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날개를 퍼덕이고 낟알과 벌레를 깔보며 야생 오리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어린 왕자의 작가 생텍쥐페리가 어린 왕자를 쓰기 4년 전에 쓴 ‘인간의 대지에 나오는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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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DB
난 ‘천재로 태어났지만 ‘박제가 되어버려 진짜 내 능력을 못 쓰고 있었다.
난 ‘야생 오리로 태어났지만 안락한 삶에 길들여져 ‘집오리가 되어버렸다.
난 50년 동안 외화를 1달러도 벌지 못했다.
아니, 외화를 벌 수 있는 능력이 내 안에 있다는 것 자체를 몰랐고 그런 시장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
난
대학을 졸업했고 책도 몇 권인지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읽었으니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오만이었다.
소크라테스는 나는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안다라고 말했다.
나는 ‘내가 안다는 사실을 안다고 생각했다.
너무나 큰 오만이었다.
오만(傲慢)의 만(慢)에는 ‘게으르다는 뜻이 있다.
내가 세상을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게을러지기 시작했다.
내가 보는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했고 그 세상 안에서 잘 살아보려고 했던 것이다.
마치 집오리들이 주인이 주는 사료를 먹으며 울타리 안에서 안락하게 산다고 착각하는 것처럼.
다행스럽게 게으르지만 꾸준히 책을 읽고 있었고 독서를 하다 깨달았다.
내가 외화를 벌 수 있다는 것을. 나도 야생 오리였다는 것을. 울타리를 넘어 해외 시장으로 훨훨 날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전에 내가 출간했던 책은 ‘책 읽고 매출의 신이 되다 ‘이 책은 돈 버는 법에 관한 이야기 같은 책이었다.
그런데 이런 매출, 돈과 관련된 책은 해외에서 잘 팔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방법을 찾아보자. 내 책이 해외로 수출되려면 어떻게 하면 되겠는가? 질문을 던지고 방법을 찾았다.
그렇게 해서 쓴 책이 ‘나는 어떻게 삶의 해답을 찾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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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코시 백화점 경성점은 지금의 신세계백화점 본점이 있는 자리다.
/위키피디아
결론부터 말하면 이 책은 출간 후 1년 만에 4국(일본·러시아·대만·베트남)에 수출됐다.
50년을 집오리로 살았다는 것을 깨닫고 야생 오리가 되기 위해 책을 읽고 노력한 결과 처음으로 외화를 벌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외화를 벌기 위해 유튜브에 도전해서 4년이 지난 지금, 매달 1000달러
정도의
외화를 벌고 있다.
도전하기 전에 먼저 ‘그런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 자신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똑똑하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내가 세상을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세상의 울타리에 갇히는 것이다.
배움은 동그라미로 표현할 수 있다.
우리가
배우면 ‘앎이 커진다.
동그라미가 커지는 것이다.
그런데 ‘앎은 동그라미의 내부이고 ‘모름은 동그라미의 테두리인 것이다.
결국 ‘앎이 커지면 동시에 ‘모름도 커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하게 내가 모른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다른 ‘앎이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놓아야 한다.
그래야 다른 세상을 볼 수 있다.
난 책과 유튜브로 외화를 벌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 지금은 메밀국수 밀키트를 만들어 해외 시장에 도전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야생 오리는 한곳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날아간다.
나도 50년을 주인이 주는 사료에 적응해 한 곳에만 머무르고 있었다.
다행히 50년 만에 내 안에 박제로
굳어
있었던 천재를 깨워 세상 밖으로 날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내 안의 천재를, 야생 오리를 깨웠는가? 바로 독서다.
니체를 ‘망치를 든 철학자라고 한다.
집오리로 나를 가두는 울타리를 ‘망치로 깨뜨려 훨훨 날아가게 해준다는 뜻이다.
배움은 동그라미라고 했다.
책을 읽을수록 내가 아는 세상의 동그라미가 커진다.
그 동그라미는
결국 나를
가두는 울타리를 뚫고 더 큰 세상을 보게 한다.
독서를 통해 언어를 알수록 내 세상이 커지는 것이다.
독서를 통해 50년 만에 외화를 벌 수 있다는 언어를 알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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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니체는 인간의 발전 과정을 낙타-사자-어린아이 단계로 표현한다.
낙타는 내 등에 싣는 짐이 뭔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그 짐을 위해 무릎까지 꿇는다.
시키는 대로 사는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의 모습이다.
사자는 이런 짐을 내 등에 싣지 말라며 포효한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 스스로 먹을
것을 찾으러
달려나간다.
드디어 박제에서 깨어난 천재의 모습이다.
어린아이는 사자처럼 달려나가 잡은 먹이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눠 먹는다.
천재는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함께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다.
‘이 별은 진짜 이상해! 어린 왕자는 생각했다.
‘바싹 마른 데다 날카롭고 각박해. 이곳 사람들은 상상력이 없어. 들은 걸 반복하기만 해. 우리 별에는 꽃이 있었지. 꽃은 언제나 먼저 말을 걸어주었는데….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의 한 부분이다.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상상하기를 멈춘다.
상상하지 않으면 들은 걸 반복해서 말할 수밖에 없다.
들은 대로 상상할 수밖에 없다.
낙타처럼. 어린아이는 그렇지 않다.
항상 질문한다.
이건 왜 이런 거예요? 저건 왜 저런 거예요?
어린아이는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안다.
모든 것이 신기하다.
호기심 덩어리다.
끊임없이 질문한다.
니체가 어린아이 단계로 가라고 하는 이유다.
그리고 먼저 말을 걸어준다.
너 이거 먹을래? 나랑 같이 놀래?
난 어른이 되면서 낙타처럼 시키는 대로 살았다.
그러다 교통사고를 겪고 죽음 앞에서 내가 낙타처럼 끌려다니며 살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 뒤로 기적적으로 살아나 책을 읽기 시작했고 사자가 돼 세상이 쳐놓은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었다.
이제 함께하는 삶을 살기 위해, 어린아이가 되기 위해 책을 읽는다.
여전히
부족하다.
어린아이가 됐나 싶다가도 내 안에 있는 어른들이 불쑥 튀어나온다.
어른은 세상을 스스로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내가 안다고 생각하면 문제가 되는 게 자꾸 세상을 심판하려 드는 것이다.
내가 아는 그 기준으로 남을 심판하고 세상에 대한 불평을 쏟아놓는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
안중근 의사의 말이다.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것은 세상을 향해, 타인을 향해 가시 돋친 말을 쏟아낸다는 것이다.
생각의 울타리가 작을수록 세상을 보는 눈도 작아진다.
작은 생각으로 보는 세상에는 불평과 불만만 가득하다.
어린아이들은 웃는다.
낙엽만 뒹굴어도 꺄르르 웃는다.
어른들은
낙엽이 발에
차이고 지저분하다고 불평이다.
불평하기 시작하면 세상은 불만 덩어리다.
하지만 어린아이처럼 감탄하면 세상은 온통 감동이다.
울타리에 갇힌 집오리는 왜 빨리 사료를 안 주지? 왜 이렇게 적게 주지?라며 불평을 쏟아낸다.
하지만 야생 오리는 대양을 가로지르며 아름다운 광경에 감탄을 쏟아낸다.
나는 불현듯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오늘은 없는 이 날개, 머릿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이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 번뜩였다.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어디 한번 이렇게 외쳐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이상의 ‘날개 마지막 부분이다.
이 가을, 독서를 통해 나를 가두고 있는 울타리를 깨고 하늘 높이 날아올라 보자.
어린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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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작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가 1943년 출간한 동화. 사막에 불시착한 비행기 조종사와 별에서 온 소년 ‘어린 왕자의 만남을 그린다.
뛰어난 관찰력과 아름다운 서정, 독창적인 삽화로 ‘어른을 위한 동화로도 불린다.
사랑과 삶의 본질을 깊이 성찰하게 하는 작품이다.
인간의 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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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텍쥐페리가 1939년 발표한 자전적 소설. 비행기 조종사이기도 했던 그가 비행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의 본질을 탐구했다.
생텍쥐페리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공군 조종사로 전쟁 막바지인 1944년 7월 프랑스 남부 지중해 상공에서 정찰 비행을 수행하다가 실종됐다.
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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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1936년 9월 잡지 ‘조광 11호에 발표한 작품. 일제강점기 지식인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채 내면의 혼란과 무력감 속에서 자아를 탐색하는 내용으로 의식의 흐름 기법과 독백체 문체를 통해 주인공의 분열된 심리를 섬세하게 그렸다.
1930년대 대표적인 모더니즘 소설로 꼽힌다.
에드워드 리의 뚝심 "APEC 만찬 때 퓨전 한식 노 했죠"
[아무튼, 주말]
[김성윤 기자의 공복]
APEC
정상회의 환영 만찬
총괄 셰프 에드워드 리

/카펠라 레지던스 서울
매일 ‘꿈이 아닐까 생각해요.
오십 넘어서 인생의 새로운 장이 펼쳐질 거라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남자에게 50대란 서서히 은퇴를 고민할 시기인데, 갑자기 새로운 챕터가 주어지다니요.
이 새로운 모험은 아름다운 동시에 초현실적입니다.
꿈이라면 깨어나고 싶지 않네요.
‘흑백요리사 준우승자 에드워드 리(53) 셰프는 자신을 ‘비빔 인간이라고 정의했다.
한국과 미국이 맛있게 버무려진 이 비빔 인간은 흑백요리사로 벼락스타가 됐다.
우승자는 나폴리 맛피아(권성준 셰프)지만, 주인공은 에드워드 리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미국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 ‘아이언 셰프 우승자이자 백악관 국빈 만찬을 맡았던 경력과
명성을 가진 요리사가 또다시 경연 프로그램에 도전한다니 의아하다는 게 초기 반응이었다.
하지만 리 셰프는 회를 거듭할수록 뛰어난 요리 실력과 창의성, 당당하면서도 겸손하고 유머러스한 캐릭터로 인간적 매력까지 발산하며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리 셰프를 지난달 30일 서울 한남동 ‘카펠라
레지던스 서울 클럽에서 만났다.
클럽 최상층 ‘더 루프는 리 셰프가 한국에서 처음 선보이는 식당. 그를 만난 건 경북 경주에서 열린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 회의 환영 만찬 전날이었다.
◇‘다른 한식 선보인 APEC 만찬

/대통령실
리 셰프는 이번 환영 만찬 총괄을 맡았다.
롯데호텔 요리사들과 협업해 전통 한식과 혁신적
한식이 섞인 코스 요리를 선보였다.
그는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한식의 모멘텀이 계속되도록 돕고 싶다며 한식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APEC 만찬을 어떻게 맡게 됐나요.
정부에서 요청이 왔어요.
크고 중요한 국제 행사를 맡게 돼 영광으로 여기고 수락했습니다.
한식을 통해 한국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부담이 컸죠. 그래도 매우 자랑스럽고,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맛있게 드시고 한국의 맛을 기억해 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메뉴를 구성한 전체 콘셉트는 뭔가요.
정부 관계자가 ‘퓨전으로 해도 됩니다라고 했지만 ‘노라고 답했어요.
한식은 완벽합니다.
전통 한식을 바꾸고 싶지 않았어요.
한식 재료는 세계 어떤 요리로도 변신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과 적응력을 가졌죠. 메뉴의 반은 전통 한식으로, 절반은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한식으로 구성했습니다.
APEC 만찬을 통해 한식의 역사를 돌아보고 미래를 내다보는 기회를 만들고 싶었어요.
만찬은 리 셰프가 개발한 단감과 잣 소스를 곁들인 게살 샐러드 애피타이저로 시작했다.
잣은 그가 평소 즐겨 사용하는 한식 재료다.
이어 메인 요리로 완도산 전복과 조랭이떡을 곁들인 경주 한우 갈비찜이 나왔다.
식사로는 경주 곤달비나물 비빔밥과 경주콩 순두부탕에 백김치·콩잎나물·연근들깨볶음 반찬이 딸려 나왔다.
APEC이 열린 경주 토종 식재료가 메인과 식사에 충실하게 반영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식사의 마무리는 리 셰프가 개발한 구운 잣 파이와 된장 캐러멜, 전통 인절미 디저트였다.
리 셰프는 전형적인 미국 디저트인 캐러멜은 보통 소금을 넣어 맛을 돋우는데, 소금 대신 된장을 써보면 어떨까 생각했다며 미국의 감성과 함께 한국의 맛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랐다고 했다.
디저트는 태극기를 새겨 넣은 전통 자개함에 담겨 정상들에게 기념품으로 제공됐다.
지리산 국화차가 곁들여졌다.
만찬주로는 ‘호랑이 유자 생막걸리가 선정됐다.
-만찬 준비하는 데 얼마나 걸렸나요.
롯데호텔 조리팀과 만나 상의하고 만찬에 올릴 후보 음식들을 정하고 정부 컨펌을 받아 최종
메뉴를 확정하기까지 한 달쯤 걸렸습니다.
-각 정상에게 내는 음식을 달리 준비하기도 하나요.
기본 맛은 유지하되 각 정상의 알레르기·종교 등 식단 제한에 맞춰 디테일을 조율했습니다.
하지만 외국인 입맛에 맞춰 맛을 바꾸지 않고 한식을 제대로 선보이려고 했습니다.
-한식의 진면목이 뭔가요.
미국에서 한식이라고 하면 맵고 마늘을 많이 사용한 음식이 전부라고 생각해요.
한식의
다른
면, 담백함과 부드러움을 보여주고 싶어요.
담백하고 순한 한국 음식은 명상하듯 맛을 음미하게 됩니다.
삼계탕도 먹을수록 다양한 맛을 발견할 수 있죠. 김치도 백김치를 가장 좋아합니다.
우리 할머니가 정말 맛있게 담그셨죠.
◇켄터키에 정착한 뉴욕 요리사

/카펠라 레지던스 서울
리 셰프는 전형적인 한인 이민자 가정에서 자랐다.
그가 한 살 때 가족이 서울에서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는 가족이 정착한 뉴욕 브루클린에서 자랐다.
뉴욕대 영문학과 졸업 후 출판사에 취직해 잠시 일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다.
출판사를 그만두고 식당에 요리사로 취직했다.
-요리사가 된 걸 부모님이 달가워하지 않았다고요.
이민자 부모들이 생각하기에 요리사는 잘못된 직업 선택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내가 외교관이
되기를 꿈꾸셨죠. 어머니는 수년간 저를 부끄러워했어요.
엄마 친구 자식들은 명망 있는 직업으로 잘나가는데 저는 그저 요리사였으니까. 물론 지금은 자랑스러워하시지만.
-요리사로 처음 이름을 알린 게 1998년 뉴욕 차이나타운 인근에 ‘클레이(Clay)를 열면서였죠.
한식을 제 방식으로 재해석한 음식을 내는 식당이었죠. 오픈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뉴욕타임스에
작게 소개됐어요.
다음 날 출근하니 식당이 있는 블록을 빙 둘러서 대기 줄이 서 있었어요.
대처할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아서 당황했어요.
-9·11 테러 이후 식당을 닫았죠.
식당은 잘됐고, 식당 열 때 빌린 빚도 거의 갚은 상태였어요.
그런데 2001년 9·11
테러가
터졌죠. 모든 걸 파괴했어요.
친구들과 손님들을 잃었어요.
끔찍했어요.
뉴욕을 떠나고 싶었어요.
머리를 비우고 싶었어요.
2003년 식당을 팔고 미국 종주 여행을 떠났어요.
-아무 연고도 없는 미 남부에 정착한 이유는.
켄터키 루이빌에서 매년 ‘켄터키 더비라는 유명한 경마 대회가 열립니다.
그걸 보러
갔다가 친절한 남부식 환대와 음식 문화에 매료됐어요.
루이빌에서 한두 해 일하다 내 본연의 삶으로 돌아가야지 했어요.
루이빌이 내 삶이 될 줄은 몰랐죠.
-남부로 가지 않았다면 한식을 사랑하지 못했을 거라고요.
오래 푹 끓인 국물 음식 등 한식과 묘하게 통하는 게 많더라고요.
어릴 때 먹던 한식이
떠올랐습니다.
뉴욕은 새롭고 혁신적인 요리만 있어요.
전통 음식은 선호하지 않지요.
남부에 와보니 집안 음식 레시피가 5~6대째 이어지고 있더라고요.
나의 ‘코리안 레거시(Korean legacy)를 고민하는 계기가 됐죠. 그리고 당시 루이빌에 괜찮은 한식당이 없었어요.
직접 한국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밖에 없어서 한식 실력이 늘었죠.
-‘610 매그놀리아라는 식당을 인수한 계기는.
친구 추천으로 식당을 찾았다가 오너 셰프와 친해졌어요.
일주일 정도 주방 일을 도왔어요.
지역에서 사랑받는 식당이었지만 후계자가 없어 닫을 형편이었어요.
뉴욕에 돌아온 뒤로도 그에게 ‘식당을 물려받아 달라는 간곡한 요청을 받았고, 결국 인수하게 됐죠. 이제 루이빌은 제 집입니다.
-아시아인이 드문 미 남부에서 요리사로 어떻게 인정받았나요.
저는 남부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비난이나 고정관념에서 자유롭게 새로운 요리를 창작할 수
있었어요.
단골이 줄어드는 등 우여곡절도 겪었지만, 점차 남부 요리를 재해석한 음식이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는 루이빌에서 현지 여성과 결혼해 20년 넘게 살고 있다.
딸 하나를 두고 있다.
-한국계 남편과 독일계 아내의 가정에서는 다가오는 추수감사절(11월 넷째 목요일) 같은 명절에
어떤 음식을 해 먹나요.
우리 집에서는 미국·한국·독일 세 문화가 섞인 음식을 만들어 먹어요.
추수감사절
전통 음식인 칠면조는 ‘고추장 글레이즈를 발라 구워요.
칠면조 뱃속을 채우는 스터핑(stuffing)은 독일식 소시지를 다져 넣고요.
새해 첫날 아내는 독일식 양배추 스튜를, 나는 떡국을 끓여서 아이와 함께 먹지요.
김치찌개는 아내가 좋아해 명절 식탁에서 빠지지 않습니다.
◇50대 아이돌 되게 해준 흑백요리사

그는 ‘흑백요리사 출연 전에도 미국에서는 ‘아이언 셰프 우승, ‘톱 셰프 5위 등 활발한
방송 활동과 ‘버터밀크 그래피티 ‘버번 랜드 ‘스모크&피클스 등 저술을 통해 꽤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가 글로벌 스타 셰프로 도약한 것은 역시 ‘흑백요리사 덕분이다.
-우승자보다 더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습니다.
심지어 어린아이들이 달려와 사진을 찍자거나 사인해 달라고 하는 게 쇼킹해요.
어린이들이
왜 50대 아저씨에게 아이돌처럼 환호하는지 모르겠어요(웃음). 대중이 왜 저를 사랑해 주는지 정말 모르겠어요.
너무 감사할 뿐입니다.
‘솔직하자, 나 자신이 되자고 노력했을 뿐입니다.
-처음에 넷플릭스는 심사위원을 제안했다고.
‘한국말 할 수 있느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했어요.
줌 미팅을 해 보고는 놀라더라고요.
‘한국말 못 하시네요!(웃음). 몇 주 뒤 ‘참가자로 와 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어요.
안 될 거 없었죠. 평소에도 한국 식재료를 쓸 기회를 찾았고, 죽기 전 한국에서 중요한 일을 하고 싶었으니까요.
-다시 심사위원을 제안받는다면.
거절할 겁니다.
심사위원을 하려면 정확한 언어로 평가할 수 있어야 하는데, 아직 내
한국어가
충분하지 못해요.
-두부를 아직도 못 먹나요.
석 달 정도 먹지 못했어요.
지금은 이전처럼 즐겨 먹습니다.
사실 ‘두부 지옥도
한국말
하는 것과 비교하면 그렇게 힘들지 않았어요(웃음).
흑백요리사 2차 세미파이널은 ‘두부 지옥이라 불린다.
‘두부를 주제로 30분마다
요리를
하나씩 내야 했다.
리 셰프는 1라운드부터 6라운드까지 두부를 다채롭게 활용한 창작 요리를 선보이며 최종 승자가 돼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에서 한국 이름(이균)을 공개한 것이 화제가 됐습니다.
쇼가 절반쯤 진행됐을 때 혼자 다짐했어요.
결선에 가면 한국 이름을 공개하자. 평생
한국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어요.
아무도 모르는 이름을 갖고 자라는 건 이상한 경험입니다.
한국 이름을 공개하고 쓸 기회를 얻고 싶었어요.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영상이 엄청나게 퍼졌죠. 한국·일본·멕시코계 미국인 수천 명이 연락해 왔어요.
‘내 마음을 대변해 줘서 고맙다며.
◇비빔냉면은 나의 최애 한식
에드워드 리는 미국에서 식당 4곳을 운영하는 한편 한국에서 컨설팅과 광고, 행사, 방송 등으로
바쁘게 활동하고 있다.
그는 한 달에 한 번 한국에 와서 닷새 정도 지내고 미국으로 돌아가는 생활을 하고 있다며 12월까지는 정신없을 듯하다고 했다.
-그 바쁜 와중에 형편 어려운 노인들을 위해 갈비찜 1000인분을 직접 준비했더군요.
어르신들의 식사를 지원하는 봉사 단체 ‘코리아 레거시 커미티(KLC)와 함께 했어요.
한국에서
받은 사랑을 사회에 환원할 의무가 있다고 느껴요.
아침 8시부터 3시간 동안 솥에 갈비찜을 끓이고 배식도 해 드렸죠. KLC에서 예산이 부족해 소고기를 어르신들에게 대접한 적이 없다더군요.
갈비찜 재료인 소갈비 구입에 필요한 5000달러도 기부했습니다.
늘 먹는 일상식이 아닌 별식을 해 드리고 싶었어요.
-한식의 모멘텀이 이어지고 확산하도록 돕고 싶다고요.
지금 세계적으로 가장 트렌디한 음식이 한식입니다.
지난여름 프랑스 파리에 갔는데
한식당이
너무 많아 깜짝 놀랐어요.
세계에서 한식이라고 하면 갈비·불고기 등 K바비큐와 비빔밥만 아는데, 이제 다른 나머지를 보여주고 싶어요.
-K위스키도 알리고 싶다고요.
K바비큐는 위스키와 진짜 잘 어울립니다.
기왕이면 한국에서 만든 위스키라면 더 찰떡궁합이겠죠.
일본 위스키는 갈비나 불고기에 곁들이기엔 너무 달고 부드럽고 섬세합니다.
한국에서 위스키가 생산된다는 걸 최근 알았어요.
‘기원 위스키와 함께 특별한 저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K위스키가 일본 위스키처럼 세계에서 인정받는 날을 기대합니다.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은.
비빔냉면을 사랑해요.
맵고 차가운 양념과 쫄깃한 면발이 어우러진 음식이라니! 세계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한국만의 유일무이한 음식입니다.
-당신을 대표하는 요리를 꼽는다면.
인간은 매일 진화합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2년 전 만든 요리가 현재의 나를
대표할
수는 없습니다.
그때그때 개발 중인 요리가 제 시그니처 메뉴입니다.
-죽기 전 마지막 식사 때 먹고 싶은 음식은.
가족과 함께라면 뭘 먹건 상관없어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부탄을 방문한 지 4일째 되는 날입니다.
젬강을 출발하여 트롱사주 콜푸 게옥에서 진행한 프로젝트를 점검하고, 부탄의 수도 팀푸로 이동하는 일정입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JTS 센터를 떠날 채비를 했습니다.
부탄 JTS 활동가들이 스님에게 삼배로 인사를 하자, 스님은 활동가들을 격려하며 용돈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어제 저녁 식사를 위해 활동가들이 뚝딱 만들어낸 식탁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어떻게 하루 만에 식탁을 저렇게 잘 만들었어요? 수고 많았습니다.
식탁은 다음 행사 때 사용하도록 잘 챙겨 두세요.
JTS 활동가들과 작별 인사를 나눈 후 새벽 5시 정각에 차를 타고 젬강을 출발했습니다.
이틀 전 내린 비로 인해 도로 위 곳곳에 돌과 흙이 많이 무너져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아침 7시에 왕디강에 도착하여 젬강 종각에서 준비해 준 따뜻한 차와 감자를 먹었습니다.
젬강 부주지사와 기획 담당관이 함께 자리하여 이번 방문에서 점검된 내용에 대해 의논을 했습니다.

스님은 목수 인건비 문제, 자원봉사 운영 원칙, 중복 지원 검증 문제, 열악한 가정 지원 기준, 보청기 지원 개선 등 젬강 지역의 주거·의료 지원 사업 운영 전반에 대해 구체적인 방향을 제안했습니다.

JTS의 원칙은 지키되, 현장의 실정에 맞게 유연성을 발휘하면 좋겠어요.
현장에서 합의가 어려울 경우 주지사님과 협의하여 행정적 지원 방안을 모색해 나갑시다.

앞으로도 부탄 정부와 JTS 간의 협력을 더욱 강화해 나가기로 하고 회의를 마쳤습니다.
지난 이틀 동안 함께한 젬강 공무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스님은 트롱사 콜푸 게옥으로 이동했습니다.
꼬불꼬불한 산길을 차로 한 시간 동안 이동하여 오전 8시 30분에 트롱사주 납지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트롱사 주지사와 콜푸 게옥의 공무원들이 반갑게 스님을 맞아 주었습니다.

법당에 들어가 불상을 참배하고 나자 촉바가 부탄 전통식으로 스님을 환영하는 의식을 해주었습니다.


환영 의식을 마치고 게옥에서 준비해 준 음식으로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트롱사 주지사와 몇 가지 주제로 의논을 했습니다.
먼저 작은 규모로 한국산 벼 재배 실험을 한 결과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한국산 벼가 매우 잘 자라서 종자 확산을 위해 수매까지
논의됐지만, 수확 직전에 쥐들이 쌀을 많이 먹어 버려 농민들의 상심이 컸다고 합니다.
스님은 한국 벼 종자의 한계를 설명하며 장기적으로는 자체 생산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이 사업을 지속하려면 매년 한국 종자를 가져오는 방식으로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한국의 종자는 교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일회용 씨앗입니다.
한 번 심으면 수확은 늘지만, 두 번째부터는 품질이 급격히 떨어집니다.
처음에는 한국에서 가져와서 시작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부탄 안에서 씨앗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주지사님은 이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대답했습니다.
부탄은 산악 지대가 많아 다양한 토양 실험이 필요합니다.
한국의 농업 기술을 우리 기후에 맞게 적용할 수 있다면 정부 차원에서도 연구를 지원하겠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트롱사 주지사에게 지난 이틀 동안 젬강을 방문하여 준공식을 하고 온 소식을 전했습니다.
현장 점검에서 확인된 문제들을 언급하며, 준공 후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집은 짓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번에 젬강에서는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한 집 짓기 프로젝트가 차질 없이 추진되어 준공식까지 잘 마치고 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현장에 가서 점검해 보니까, 집을 짓고 준공식을 했다고 사업이 끝나는 게 아니었습니다.
몇 달이 지나 다시 가 보면 수도가 연결되어 있지 않거나, 화장실이 완성되지 않은 경우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집이 생겼다고 다 좋아하지만, 그렇게 불완전한 상태로 계속 살게 됩니다.
그래서 반드시 사후에 점검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준공식으로 끝났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점을 JTS 활동가들과 부탄 공무원들에게 강조를 하고 왔습니다.
스님의 발언에 주지사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했습니다.
현장 사정상 행정 절차가 끝나면 사업도 끝났다고 보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 거주 환경을 점검해야 진정한 복지 행정이 됩니다.
향후 지방 정부 차원에서도 사후 점검 체계를 마련하겠습니다.
대화 후반부에는 트롱사 지역의 고대 사찰 보존 문제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논의를 한 후 대화를 마쳤습니다.
이어서 납지 치옥의 절 앞에 마을 주민들이 공사한 도로를 점검하고, 주차 공간의 바닥 포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도로포장을 할 때는 땅의 레벨을 높여서 물이 고이지 않고 옆으로 빠지도록 해야 합니다.
납지 치옥의 절은 부탄에 불교를 전파한 구루 린포체가 다녀간 성지로 부탄에서도 매우 중요한 불교 성지입니다.
이 절을 관광 자원으로 개발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스님은 주지사에게 여러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농사와 관광을 함께 키워야 합니다
이곳을 주차장으로 만들고, 주변을 예쁜 화단으로 꾸미면 장기적으로 마을의 관광 자원이 될 것입니다.
지금은 관광객들이 성지순례만 하고 그냥 돌아가지만, 앞으로는 음식이나 숙박 시설이 함께 마련되어야 합니다.
이곳은 경치가 정말 아름답습니다.
관광 수익과 농업 생산을 함께 높이려면, 쌀을 수확한 뒤 논에 꽃이 피는 작물을 심어 보세요.
그러면 경관도 아름다워지고, 그 식물은 거름이나 소 사료로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빈 땅은 농사보다는 과수를 심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요즘은 농사 지을 사람이 부족하지만, 과수는 젊은이들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농사가 곧 관광이 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첫째, 이곳을 찾아오는 성지 순례객을 맞이할 수 있고, 둘째, 아름다운 경관이 관광 자원이 되며, 셋째, 농촌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관광객이 이곳에 와서 직접 구입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합니다.
특별한 품종의 쌀이나 이 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농산물을 개발해 판매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방향으로 연구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절 앞으로 낸 도로와 주차 공간의 공사 결과를 점검한 후 시범 사업으로 진행했던 농수로를 점검했습니다.

벼가 누렇게 익어 논이 황금빛이 되어 있었습니다.

초기에 농수로를 만들 때는 삐뚤삐뚤하고 두께도 제각각이었던 것에 비해 최근에 공사한 것은 두께와 높이가 균일하고 정갈했습니다.
스님은 수고한 촉바를 격려하면서 주민들의 반응이 어떠했는지
몇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촉바가 웃으며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이제 주민들이 전문가 수준이 다 되었네요.
일을 하면서 안 힘들었나요?
공사 구간까지 자재들을 다 메고 오는 게 힘들었습니다.
주민들이 좋아했어요? 수확량이 좀 많아졌어요?

네. 지금 보신 곳은 아예 농수로가 없었는데, 농수로 공사 이후 물이 잘 들어와서 수확량이 많이 늘었습니다.
저 멀리 있는 논에도 농수로 공사를 할 계획인가요? 거리가 너무 멀면 자재를 옮기기 어렵잖아요.
그래도 주민들이 농수로 놓기를 원합니다.
모두가 수고한 촉바에게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농수로 공사 결과를 자세히 살펴본 후 스님은 주지사와 콜푸 게옥의 공무원들에게 선물을 증정했습니다.

주지사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트롱사를 출발하여 팀푸로 향했습니다.

이동 중에 통역을 해 주는 린첸다와 님의 친척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식당의 사장님이 스님에게 공양 보시를 해주어서 스님은 감사의 마음을 담아 선물을 전달했습니다.

점심을 먹고 나서 다시 팀푸를 향해 오후 내내 이동을 했습니다.


해발 3000미터가 넘는 산을 두 번 넘은 후 해가 저물었습니다.
저녁 6시 30분에 오늘 숙소인 부탄 비구니 재단에 도착한 후 일찍 휴식을 취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부탄 국왕이 주최하는 세계 평화기도 축제에 초청을 받아 개막식 행사에 참석하고 오후에는 부탄 전 국회의장을 역임한 다쇼 파상도지 님과 미팅을 한 후, 부탄 GNH 위원장을 역임한 카르마
치팀 님과 미팅을 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달 16일, 국제 라이온스 협회 초청으로 울산 KBS홀에서 열린 즉문즉설 강연에서 스님과 질문자가 나눈 대화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인간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는 걸까요?
저는 인생을 나름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50대 주부입니다.
살아오면서 느낀 것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리고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는 결국 제 안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운명이
있는 걸까요? 예를 들어, 오래 사귄 연인과 헤어지고 전혀 다른 사람과 결혼하게 된다든지, 오랫동안 전공한 분야와 전혀 다른 직업을 선택하게 된다든지, 혹은 ‘삼재(三災) 같은 시기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는 어려움을 겪는다든지, 또 언제, 어떤 병으로, 몇 살에 죽게 된다든지요.
저는 인생의 큰 흐름이 마치 이미 정해져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운명은 타고나는 것일까요?
운명은 정해져 있는 것도 있고, 정해지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500년 안에는 죽는다.
‘키가 5미터 이상 자라지 않는다.
‘죽을 때까지 지구에 산다.
와 같은 것은 정해져 있어요.
이렇게 정해져 있는 것이 꽤 많습니다.
‘몸무게가 500킬로그램 이상은 안 넘는다.
하는 것도 그렇지요.
하지만 오늘 내가 무엇을 먹을지, 누구와 결혼할지와 같은 것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확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주사위를 던지면 1이 나올 확률은 수학적으로 6분의 1입니다.
그러나 여섯 번 던진다고 해서 반드시 1이 한 번만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여섯 번 던지면, 1이 한 번도 안 나올 수도 있고, 한 번 나올 수도, 두 번 나올 수도, 심지어 여섯 번 모두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주사위를 만 번, 십만 번, 백만 번 던질수록 1이 나올 확률은 6분의 1에 점점 가까워집니다.
즉, 시행 횟수가 많아질수록 실험적 확률은 수학적 확률에 수렴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내가 사귀는 사람과 결혼할 확률이 높을까요? 아니면 전혀 다른 사람과 결혼할 확률이 높을까요?
내가 사귀는 사람이요.
그런데 사귀는 사람과 반드시 결혼할까요? 결혼하지 않는 경우도 있을까요? 확률이 높다고 해서 반드시 결혼하는 건 아닙니다.
그렇다면 사귀지 않은 사람과는 절대 결혼하지 못할까요? 가끔은 결혼할 수도 있나요?
결혼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요.
사귀는 사람과 결혼할 확률이 좀 더 높고, 사귀지 않은 사람과 결혼할 확률은 좀 더 낮습니다.
예를 들어 간호학을 전공했다면 간호사가 될 확률이 가장 높고, 간호사가 되지 않을 확률은 조금 낮은 정도입니다.
이를 가지고 ‘누군가의 운명이 정해져 있다.
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옛날에는 ‘내일 비가 온다, 안 온다.
이렇게 일기예보를 했지만, 요즘은 ‘내일 비 올 확률이 70%입니다.
하고 확률로 표현합니다.
그렇다면 결혼한 부부가 한날한시에 죽을 확률이 높을까요? 낮을까요?
낮습니다.
대부분의 부부는 따로 죽을 확률이 훨씬 높습니다.
한날한시에 죽을 확률이 낮다고 해서 그것이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수학적으로 보면 복권에 당첨되는 사람은 분명히 존재하듯,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지요.
‘우연이다.
라는 말은 원인을 알지 못할 때 쓰는 말이고, 원인을 알면 그것은 ‘필연이라고 부릅니다.
결국 우연과 필연은 우리가 아느냐 모르느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우연히 만났다.
라고 할 때는 그 만남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연이라고 하고, ‘우리의 만남은 필연이다.
라고 말할 때는 이미 만날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지요.
즉 세상에는 우연히 일어나는 일도 있고,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일도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모든 일의 원인을 다 알 수 없기 때문에, 아는 것은 필연이라 하고, 모르는 것은 우연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정해진 운명은 정말 없는 걸까요?
정해진 운명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간이 500년 이상 살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정해진 일이죠. 어느 날 누군가 저기로 가면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을 거야.라고 예언했다고 해봅시다.
그 말을 들은 사람이 죽지 않기 위해 옆길로 비켜 간다면, 그 예언은 빗나가게 됩니다.
그런데 예언대로 정말 죽게 된다면, 그 예언이 맞았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결국 예언이 맞았는지 틀렸는지를 따지는 건 큰 의미가 없습니다.
사실 운명을 따지는 이유는 욕심 때문입니다.
공짜로 무언가를 얻으려고 여기저기 찾아다니는 것과 같아요.
우리 속담에 ‘일은 사람이 하고, 뜻은 하늘이 이룬다.
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신이 결과를 정한다는 뜻이 아니에요.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그저 자신이 할 일을 하면 됩니다.
만약 질문자의 운명이 정해져 있다면 다람쥐도, 노루도, 풀벌레도 모두 운명이 정해져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왜 사람만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할까요?
학교 다닐 때를 한번 떠올려 보세요.
시험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성적이 떨어질 때도 있고, 거의 공부하지 않았는데도 성적이 잘 나올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게 정해진 운명일까요? 평균적으로 보면, 열심히 공부하면 성적이 잘 나올 확률이 높고, 놀면 성적이 잘 나올 확률이 낮습니다.
하지만 예외도 있습니다.
놀았는데도 성적이 잘 나올 때도 있고, 열심히 했는데도 성적이 안 나올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운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착한 사람이 재앙을 받을 수도 있고, 악한 사람이 잘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평균적으로 성실한 사람이 잘 되고, 게으른 사람은 잘 안 됩니다.
다만 한 사람 한 사람을 보면 예외가 있을 뿐입니다.
이제 이해가 되셨나요?
예, 잘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