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새 동안 인천국제공항을 드나든 사람만 122만 5천여 명으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추석과 작년 추석보다도 12% 이상 증가한 수치다.
해외여행 수요가 증가한 데다, 이틀만 더 휴가를 내면 최장 9일까지도 쉴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연휴에나 겨우 쉴 수 있거나, 연휴여도 쉴 수 없는 사람들은 일과 삶에 대한 어떤 바람을 품고 있을까.
코로나 이후 원격 근무나 하이브리드 워크(원격 근무와 사무실 출근을 혼용), 주 4일제나 4.5일제 등 다양한 근무 방식에 대한 시도와 상상력이 확대되었다.
올 초, 시민사회단체와 노동조합, 연구단체 등을 중심으로 출범한 ‘주 4일제 네트워크’(4daynet.co.kr)에서도 ‘과로와 장시간 노동 해소, 노동시간 단축, 일과 삶의 균형, 성평등과 돌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4일제 법제화와 노동시간 체제 전환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금은 전체 근로자의 80% 정도가 주 5일제로 일하고 있지만, 앞으로 최대한 많은 이들이 줄어든 노동시간만큼 삶의 다른 영역들도 잘 돌보며, 연휴가 아닌 때에도 자유롭게 휴가를 즐기는 날도 상상해 본다.
아이슬란드,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 ‘노동시간 단축 실험’ 주 4일제 정착
직장 관리자와 직원들, 노동시간 어떻게 단축할지 소통해가며 결정
그날이 현실이 된 아이슬란드에서는 전체 근로자의 90% 정도가 주 4일 또는 35~36시간 일하고 있다.
2014년부터 2021년까지 실시한,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노동시간 단축 실험’으로 정착된 결과다.
일주일에 노동시간을 4~5시간 단축하자, 생산성과 서비스는 유지되거나 향상됐고,
아이슬란드
사람들의 웰빙과 일상에도 여러 긍정적 효과가 생겨났다.
가족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진 것만으로 가정에서의 스트레스가 감소했고,
싱글 부모는 자녀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으며, 근로자 본인과 직계가족뿐만 아니라 실험 참가자와 접촉하는 조부모와 친구 등에게도 유익한 영향을 미쳤다.

▲ 아이슬란드 노동시간 단축 실험 보고서 표지. 레이캬비크 시(2014~2019년)와 아이슬란드 정부(2017~2021년)에서 실시했던 노동시간 단축 실험은 사무직, 학교, 야외업무, 간호 및 지원, 교대근무 등으로 직장을 구분했고,
주당 노동시간을 4시간 단축 또는 5시간 단축하는
형태로 시범사업을 진행했다.
출처https://autonomy.work/wp-content/uploads/2021/06/ICELAND_4DW.pdf
이 실험의 의의는 규모와 범위에 있다.
레이캬비크 시와 아이슬란드 정부에서 실시한 노동시간 단축 실험에는 100개 이상의 사업장에 근무하는 2,500명 이상의 근로자가 참여했다.
아이슬란드 전체 노동력의 1.3%를 대상으로 하여 임금 감소 없이 노동시간을 줄였을 때 나타나는 효과에 대한 명확한
증거를 남겼고,
학교나 유지보수 업무와 같이 일하는 시간을 더 줄일 수 없으리라 생각하는 직장과 산업에서도 실행 가능함을 보여주었다.
시범사업 시작 전부터 관리자는 ‘가족은 우리가 가진 전부’라는 태도로 근로자에게 좋은 조건을 제공할 의향이 있었고,
‘일과 가정생활의 균형을 잘 맞추지 않으면, 직장에서 불만이 생기고,
직장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노동시간 단축은 관리자에게도, 직원에게도
인기가
높았다.
실험 과정에서 직장 관리자와 직원들은 노동시간을 어떻게 단축할지 소통해 가며 결정했고,
사회공동체가 건강하게 유지되도록 하기 위한 목적의 전환이라는 점에 동의하며 사회적 합의에 도달할 수 있었다.

▲ 아이슬란드 노동시간 단축 실험 효과. (번역: 정이예슬) 출처: ‘아이슬란드 노동시간 단축 실험 보고서’(2021)
일과 생활의 균형을 위한 노동시간 단축, 부의 재분배와 공공 서비스의 바탕이 되는 소득세 제도, 균형 있는 의사결정을 위한 성별 할당제, 성별 임금격차를 줄이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인증제와 같은 제도가 만들어지고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데에는, 정부와 공동체에 대한 시민들의 근본적인 신뢰가 있었다.
유서 깊은 의회 민주주의와 정책 실현을 위해 협력이 필수적인 비례대표제, 다당제의 정치 체제는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는 창구가 되어주었다.
무엇보다, 지금 한국의 상황과 가장 큰 차이라 한다면, 의사결정 과정에 모든 이해당사자가 참여해 이념보다는 실용적인 관점에서 타협을 도모했고,
정부에 대한 높은 신뢰가 이 타협을 촉진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한국 부모가 미취학 자녀와 하루 함께하는 시간 평균 48분,
아버지는 교감시간 단 6분, 부모의 퇴근 기다리며 학원 전전하는 아이들
반면 한국의 경우, 장시간 노동문화와 성 불평등, 치열하고 경쟁적인 생존 환경은 결국 출산과 육아에도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연간 합계출산율 0.72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에 달한 건, 어쩌면 이러한 환경에서 자연스럽고 당연한 결과다.
더욱이 문제의 원인이라 제시된 것들을 바꾸어나가려는
움직임은 미미하고 감감하다.
한국 부모가 미취학 자녀와 하루에 함께 하는 시간이 평균 48분, 아버지가 아이와 교감하는 시간은 단 6분이라고 한다.
이를 증명하듯, 최근 CPBC(가톨릭평화방송)에서 방영한 특집다큐 ‘시간제 엄빠의 나라’에서 여름방학임에도 부모의 출근 시간에 맞춰 일어나 태권도, 피아노, 공부방, 영어학원
등
2~3개 이상의 학원을 전전하며 저녁 7~8시까지 부모의 퇴근을 기다리거나, 주중에는 아예 부모의 돌봄이 불가해 할머니 집에서 지내는 아이들의 모습이 소개되었다.

▲ CPBC(가톨릭평화방송)에서 지난 9월 15일 방영한 [특집다큐] “시간제 엄빠의 나라 중에서 캡쳐.
그렇다면 요즘의 돌봄 제도는 어떠한가. 부모의 아이 돌봄 걱정을 덜기 위해 2024년부터는 평일 오전 7시부터 오후 8시까지 학교에서 학생들을 돌봐주는 ‘늘봄학교’ 제도가 도입되었다.
자녀가 어려서 갈 데가 없거나, 여러 학원으로 돌리는 데에 부담이 되는 부모들에겐 돌봄과 더불어 학습 보충과
방과
후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이 제도가 일견 충족시켜 주는 측면도 있다.
그렇지만 부모와 어린이는 정말 이 제도를 원할까? 늦은 저녁 가족 모두가 지친 상태로 재회하고,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하루에 1시간도 채 되지 않는 상황에 ‘만족’하고 있을까?
아이들이 혼자 어느 정도 생활할 수 있는 정도로 자란다고 해서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 다음엔 미래 자녀에게도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경쟁적인 교육 시스템이 도사리고 있다.
(관련 기사:한국 청년 50% “한국 교육 시스템, 자식이 겪게 하긴 싫어, YTN, 2023년 4월 27일자)
청소년들의 주당 평균 학습 시간은 40~60시간으로 어른들의 노동시간보다 훨씬 긴 데다, 10대가 70대보다도 체육을 덜 할 정도로(문화체육관광부 2023년 국민생활체육조사) 신체를 쓰고 움직이는 시간도 부족하다.
작년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의 사교육비로 지출된 금액만 아이슬란드
GDP와
맞먹을 정도니, 자녀를 더 원하는 이들도 쉽사리 마음먹기 어렵다.

▲ 2023년 5월 3일 EBS에서 방송한 〈다큐멘터리 K – 교육격차〉 5부 ‘스포일러’ 중에서 캡쳐.
CPBC ‘시간제 엄빠의 나라’ 다큐에서이전이 경기도교육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돌봄 정책도 일종의 복지라며, 복지를 국가가 개인에게 주는 일종의 선물로 비유한다면, 받는 사람의 선호를 살피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돌봄 정책도 “부모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아이를 키우고 싶은지, 아이들에게는 어떤 방식으로 돌봄을 받고 싶은지 적극적으로 물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육아휴직’ 제도를 만들었다고 해서 절로 실효성이 생겨나는 게 아니라, 제도를 운용하고 그 영향을 받는 사람들을 관심
있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한국 남성이 쓸 수 있는 육아휴직 기간은 52주로 OECD 국가 중 가장 길지만, 실제 육아휴직 사용률은 가장 낮고,
부부의 고용 형태에 따라서도 큰 격차가 있으니 말이다.
어떻게 하면 남성도 육아휴직을 사용하도록 할 수 있을까?
‘사용하거나 잃거나’ 방식 도입, 90% 이상 아버지들 육아휴직 사용
사람들의 피부로 체감되는 살아있는 정책과 제도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아이슬란드의 육아휴직 제도가 자리 잡기까지의 섬세한 설계와 명확한 지향점을 살펴보자.
일과 삶, 그리고 가족의 공존을 위해 필요한 ‘육아휴직’ 제도는 아이슬란드에서 ‘부모휴가(Parental Leave)’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동성 커플이 차별받지 않도록 성 중립적인 문구를 사용하자는 요구가 반영되어 2006년부터는 법에 ‘아버지(father)’나 ‘어머니(mother)’라는 표현 대신, ‘부모(parent)’라는
단어가 사용된다고 한다.

▲ 아이슬란드 정부 노동 포털 - ‘부모휴가’ 캡처. 2021년 ‘사용하거나 잃거나’(use it or lost it) 방식-양도 불가능한 육아휴직 제도를 도입해 남성의 양육 참여를 유도하였고,
현재는 90% 이상의 아버지들이 육아휴직을 사용하고 있다.
출처:https://work.iceland.is/living/maternity-and-paternity-leave
아이슬란드는 한국보다 6년 빠른 1981년 육아휴직 제도가 생겼다.
당시 최대 5개월의 유급 육아휴직 중 일부라도 쓴 남성 양육자는 0.2~0.3%에 불과했다.
어떻게 하면 남성도 육아휴직을 사용하도록 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몇 차례 법을 개정한 끝에, 2021년 ‘사용하거나 잃거나’(use it or lost it) 방식을 도입해, 현재는 90% 이상의 아버지들이 육아휴직을 사용하고 있다.
부모 각각 6개월(180일)씩 유급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고,
이 중 6주(42일)에
해당하는 기간만 서로에게 양도할 수 있다.
즉, 한 부모가 자신의 육아휴직 기간 중 최대 6주만 상대에게 이전할 수 있다.
두 양육자의 육아휴직 사용 독려를 위해, 이전 가능한 기간 외에는 각자가 사용하지 않으면 소진되도록 설계되었다.
남성 양육자에게도 동등한 조건의 육아휴직이 없다면, 여성이 가족과 커리어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상황이 되거나, 사실상 1차 보호자(primary carer) 역할을 맡게 될 수 있다.
적절한 보상을 받고 함께 쓰는 육아휴직은 일하는 부모가 자녀의 생애 초기부터 보다 평등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중요한
관문이 된다.
한 남성은 “아기가 아침밥을 먹는 데 한 시간이나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초보 부모는 모든 루틴에 익숙해질 시간이 정말 필요한데, 풀타임으로 일한다면 불가능할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How Iceland invested in parental leave, and lessons the UK can learn, i, 2023년 1월 8일자)
양도 불가능한 육아휴직 제도에 대한 일부의 불만도 물론 있다.
남성 양육자가 여성 양육자보다 소득이 월등히 높을 경우, 여성이 남성의 6개월까지 합쳐서 1년 동안 육아휴직을 쓰고 남성은 계속 일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더 합리적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부부간 큰 소득 격차로 인해 자녀
양육
과정에서 퇴직하는 여성이 많은 우리나라라면 더더욱. 그러나 아이슬란드 육아휴직 제도를 뒷받침하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 목적은 자녀가 부모 모두로부터 보살핌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고,
여성과 남성 모두가 가정 안팎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부모가 모두 육아휴직을 사용하면서 어떤 변화가 생겨났을까?
북유럽 국가의 성공적인 공공정책에 관한 연구(de la Porte, Caroline, and others, 2022)에 따르면, 유급 육아휴직이 끝난 이후에도 자녀 출생 첫 3년 동안 부모의 돌봄 분담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육아휴직은 부모의 일과 돌봄 참여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쳤고,
부부의 안정성 또한 높아져 법 시행 전과 비교해 이혼 가능성이 상당히 낮아졌다.
자녀와의 관계에서도 제도 시행 전에 태어난 청소년보다 이후 자라난 청소년이 아버지와 의사소통하기가 훨씬 쉬워졌다고 밝혔다.
아이슬란드의 부모휴가 제도에서는 부모 모두가 자녀를 양육할 수 있는 권리와 성평등이 최우선적인 가치로 고려되었다.
이는 아버지도 자녀와 보다 친밀한 관계를 맺도록 하고,
직장에서 여성이 육아로 인해 차별받을 확률을 크게 낮추는 결과를 가져왔다.
양육자가 함께 부모휴가를 나누어
쓰도록
한 설계는 출산율을 늘리려는 정책이라기보다는, 출산 전후 여성이 감당해야 할 부담을 사회가 함께 짊어지고자 하는 성평등 정책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성공한 제도와 정책의 핵심에는 사람들의 실제적인 바람을 담아낸 가치와 철학이 있었다.
아이슬란드는 좁아 든 격차에 안주하지 않는다.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나아갈 길의 청사진을 다 같이 그려나간다.
그러면서 모두의 행복을 위해 되묻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실용적인 관점에서 타협하지만, ‘많이 왔으니, 이 정도쯤은 괜찮아’라는 타협은 하지 않는다.
그래서
함께 만들어온
변화가 자랑스러우면서도, 여전히 바꾸어 갈 것투성이다.
여성에서 멈추지 않고,
논바이너리와 트랜스젠더의 권리를 위해 법을 제정하고,
아이슬란드에 정착해 살아가는 이민자의 삶과 권리에도 시선을 둔다.
함께 만든 변화는 충분히 만끽하고 기념한다.
올해로 40회째를 맞은 아이슬란드의 가장 큰 유소녀 축구대회 ‘시마모이디드’(Símamótið)에서처럼.
‘평등’과 ‘다양성’이라는 가치가 모두에게 유익으로 돌아온다는 경험은 이토록 강렬하고 귀하다.

▲ 아이슬란드 유소녀 축구대회 유튜브 캡처. 시마모이디드(Símamótið) 유소녀 축구대회가 올해 40번째 개최됐다.
젊은 여자 축구선수들의 삶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왔고,
3천명 넘는 소녀들이 참여하는 아이슬란드에서 큰 축구대회 중 하나다.
1975년 ‘여성파업’ 때 불렸던 노래 “Áfram stelpur (allar sigra)-앞으로 나아가라 소녀들(모두 승리한다)-는 가장 사랑받는 아이슬란드 시위 노래 중 하나로, 올해는 40번째 유소녀 축구대회를 기념하는 노래로 발매됐다.
출처:https://youtu.be/zCpqGuwVkX4?si=kGPyfZth4fVLAvkl
아이슬란드 동네마다 있는 공공 온천 ‘쉰드뢰이그’(sundlaug)
옷으로 상징되는 지위와 상징 벗고 일상에서 공동체 감각 일깨우는 장
다시 한국으로 눈을 돌려본다.
더 빠른 배송, 더 많은 선택지, 더 편리한 서비스가 차고 넘친다.
조금 자란 아이를 데리고 키즈카페에 간다.
몇 시간만 놀아도 10만 원이 훌쩍 넘는데,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키즈카페는 예약도 쉽지 않다.
소방관, 요리사, 파일럿 등 장래 희망을 탐색하는
데에도
티켓 발권이 필요하다.
아이가 좀 더 크면, 학원 말고도 공부한다고 스터디카페에도 갈 터다.
가랑비에 옷 젖듯 익숙해진 풍경이다.
놀이터는 예약하지 않아도, 동전 한 개 없어도 언제라도 놀 수 있었는데, 어느새 익숙한 많은 것들이 상품이 되어 팔리고 있다.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건네거나, 물건을 두고 와
사는 대신
빌리는 것도 누군가에겐 낯선 일이 되고 있다.
놀이와 돌봄과 사랑이 상품화되어 가는 세상에서 소비 외의 방식에 대한 상상력이 가파르게 좁아진다.
사람은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을 인식하고 발견해 간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갈수록 더 알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사람들이 원하는 바를 묻고 그에 맞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도 맞지만, 그 전에 사람들이 충분히 본인의 욕구나 지향점을 탐색하고
알아갈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져 있는지 살피는 것도 중요하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중요시하는지 충분히 경험해 보고,
나다움을 소중히 여기는 동시에 타인의 다름을 존중할 수 있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모두가 사회 구성원으로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어떠한 방식으로 감각할 수 있을까. 타인과 온전히 연결되어 볼 기회, 타인에게 기여하며 공동체
안에서의
나를 인식해 볼 수 있는 기회, 서로의 다른 생각과 관점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기회가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하다.
끝으로 아이슬란드인들의 일상에 공동체의 감각으로 스며 있는 공공 온천과 수색구조대를 소개한다.
아이슬란드 동네마다 위치한 공공 온천 '쉰드뢰이그'(sundlaug)는 대부분 무료거나 입장료가 저렴하다.
이곳에선 누구든 옷으로 상징되는 사회의 모든 지위나 상징을 내려놓고 서로를 마주한다.
쉰드뢰이그에서 이민자들은 지역의 관습을 배우고,
초보 부모들은 유경험자의 조언을 구하며, 지방의회 의원들은 유권자들을 만난다.
세대와 계층의 경계를 넘어 누구와도 연결되고 소통할 수 있는 장이 되어준다.

▲ 아이슬란드 수색구조대 홈페이지 캡처. 출처:https://www.landsbjorg.is/icelandic-association-for-search-and-rescue
전국 100개의 자원봉사자 구조팀으로 구성된 '수색구조대'(ICE-SAR)의 자긍심은 또 어떠할까. 자원봉사자들은 전문적인 훈련을 받고,
급변하는 날씨와 험난한 자연환경에서 발생하는 실종자 수색, 교통사고,
등산 사고 등에 경찰, 소방서와 협력해 구조를 도맡는다.
14살부터 청소년 프로그램에
참여해
응급처치, 길 찾기, 야외 생존 기술을 배울 수 있고,
비용 대부분은 기부와 연말 불꽃놀이 판매 수익금으로 충당한다.
언제 어디에서 발생할지 모를 자연재해나 재난으로부터 서로를 구하는 든든한 이웃 울타리가 아이슬란드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
함께 살아간다는 감각을 부러 의식하려 하지 않으면 금세 잊힐 것 같은 나날을 살아가고 있다.
인간다움을 잃기 쉬운 시대가 되어가는 가운데, 다른 어떤 것보다 먼저, 어떤 세상을 살고 싶은지,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 질문과 생각을 나누어 볼 때다.
[필자 소개] 정이예슬. ‘함께 배우는 사람’. 나에게도, 지구에게도 다정한 삶의 방식을 배우고 지속해갈 수 있도록 돕고자
클라이밋(Climeet)을
창업했다.
청소년과 청년들이 지역사회 문제를 발굴하고 해결하는 사회적경제·기후환경·ESG 교육 콘텐츠를 개발하고 교육 워크숍을 진행한다.
2023년에는 울산 남구 장생포에서 지역문화기획단을 조직하고,
마을축제 ‘2023 다이버-시티(Diver-city) 장생포’를 열었다.
기후위기, 젠더, 불평등 문제에 관심을 갖고 연구와 활동을 해오고 있으며, 최근에는 탈성장과 다양성, 시민정치로 관심사를 넓혀가고 있다.
누구나 돌봄이 가능하다고 우기는 법
[사회적 소수자와 돌봄] ‘다른 몸’으로 돌봄을 고민하다
박은영
|
※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 사회가 돌봄에 얼마나 취약한지 여실히 드러내었고,
서로 돌보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졌습니다.
돌봄 사회를
위하여,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돌봄 현장을 조명하고,
다양한 돌봄의 경험과 아이디어를 나누고자 합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무사히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어릴 때 가끔씩 내가 과연 무사히 어른이 될 수 있을지 걱정을 하곤 했다.
아이들은 어른의 돌봄을 받고 자라면서 서서히 자신을 돌보는 사람을 돌보는 존재로 자라난다.
어깨를 주무르고,
수저를 놓고,
가게 심부름을 한다.
뇌성마비 장애가 있는 나도 가끔
그러긴 했지만,
심부름은
주로 동생들 몫이었다.
아이들과 어른들의 돌봄 관계는 일방적이기보다 쌍방적이며, 시소처럼 역동적으로 움직인다.
하지만 내가 앉은 시소는 영 둔하게 움직인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나는 어떻게든 돌봄에 참여하고 싶어 기회를 노리곤 했다.
잽싸게 수저통을 잡아 식탁에 수저도 놓아보고 싱크대를 선점해 설거지를 독점해 보기도 했다.
나는 스스로 일을 쟁취해 내지 않는 한, 노동력으로 인정되기는 어려웠다.
이런 나의 입지는 불안정해 보였고,
돌본다는
것은 어른이 된다는 것이기에 내가 무사히 어른이 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성인이 된 후에는 새로운 관계의 형태를 찾아 이리저리 기웃거렸다.
가족 안에서 내가 받는 돌봄과는 다른, 좀 더 평등하고 새로운 형식의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 실험해보고 싶었다.
어릴 때부터 크면 독립을 하겠다고 종종 떠들고 다녔다.
현실적으로 일상 활동에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에 실현하기 쉬운 계획은 아니어서 한참동안은 그저 말뿐인 계획이었다.
그러다 실제로 독립을 감행하게 된 건 서른한 살 때였다.
전보다 더 돌봄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 독립 후, 친구들과 같이 살면서 함께 준비하고 차려 먹은 홈파티 ©박은영
나도 돌볼 수 있다는 믿음
이십대 후반, 내 몸의 변화가 찾아왔다.
팔, 다리, 허리 등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균형이 맞지 않고 힘이 한쪽에 쏠리며 강직이 있는 몸이다 보니 올 것이 온 셈이었지만, 어쨌든 겁이 좀 나긴 했다.
이 새로운 상황에 대해 내게 필요한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나 책은 없었다.
다들 아프면 죽거나 낫거나, 그것도 아니면 타인의 돌봄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수동적 존재가 될 거라고만 생각했다.
아픈 것도, 의존하는 것도 공포스럽게 여기는 사람들이 기껏 내놓는 대안은 안락사
정도였다.
이 중에서 내가 적용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었다.
통증은 내 몸의 새로운 특성이 되었다.
일종의 새로운 룸메이트인 셈이었다.
맘에 드는 녀석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날 죽이러 잠입한 연쇄살인마는 아니었다.
날 꽁꽁 묶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묶어놓는 강도도 아니었다.
난 그냥 녀석과 함께 내 삶을 살면 되는
거였다.
사실은 전혀 생소한 과목의 시험지가 내 앞에 놓인 기분이었다.
수많은 문제 중에 난이도가 제일 높아보이는 것 중 하나가 돌봄에 관한 부분이었다.
나는 아프지 않을 때보다 추가적인 돌봄을 받아야 할 텐데, 반대로 내가 누군가를 돌볼 여력은 더 줄어드는 게 아닐지 불안해졌다.
하지만 적어도 후자는 아니라고 믿었다.
몸이 아파도 대개 삶은 지속되며, 삶이 지속되는 한 나는 누군가로부터 돌봄 받을 뿐 아니라 누군가를 돌볼 수 있는 존재임이 분명했다.
그래서 결국 해보기로 했다.
내 몸 그대로 가족이 아닌 누군가에게 돌봄 받고,
또 돌볼 수 있다고 믿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집을 나왔다.
공동체 생활, 민폐 끼치는 연습
몸의 취약성을 직면했을 때 독립을 감행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혼자서도 잘하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이참에 가족이 아닌 다양한 사람과 상호의존하며 사는 것이 가능하다는 걸, 그리고 나 또한 그 누군가를 돌보며 살 수 있다는
걸
스스로 확인하고 싶었다.
질병과 장애를 가진 다양한 몸들이 혈연가족을 초월한 돌봄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일상의 많은 부분을 타인에게 의존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조건은 나를 오랫동안 머뭇거리게 했다.
쓰레기봉투 묶기, 손발톱 깎기, 상처에 반창고 붙이기, 국이나 물 같은 액체류를 흘리지 않고 옮기기…… 모두 나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이다.
결국 나는 누군가와 함께 살거나
최소한
믿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과 가까운 곳에 살아야 한다.
그래도 돌봄이 필요하다는 말이 독립을 할 수 없다는 말과 동의어는 아닐 거라 믿었다.
마침 다니는 교회에서 만든 마을공동체가 있어서 그리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무턱대고 들어간 마을에서 교회 안의 다른 비혼 여성들과 4년여를 함께 살게 되었다.
집이 필요해서, 혹은 공동체와 살고 싶어서 동거하게 된 룸메이트들은 예민한 부분도, 성격도, 상황도 모두 달랐다.
2030이란 유동적인 나이대였으므로 멤버 변동도 꽤 자주 있었다.
새로운 룸메이트가 들어올 때마다 우리는 긴장했다.
새로운 조합으로도 과연 같이 잘 살 수 있을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살면서 우리는 교회에서 배운 한 문장을 계속 기억하려 애썼다.
“서로 민폐를 끼치는 연습을 해야 한다.
내가 가족이 아닌 누군가와 동거할 수 있는 용기를 내는 데 가장 결정적인 힘을 준 문장이다.
혼자 스스로의 모든 필요를 채울 수 있는 사람은 없음을 인정하라는 문장, 기꺼이 서로 돌보고 또 돌봄 받으며 살자고 초대하는 문장이다.
이 문장을 공유하는 관계에서는 나도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필요한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다.

▲ 더운 여름 룸메이트가 몸을 식히기 위해 장만한 쿨링 베개. 그해 가을인가. 내가 허리가 아파 똑바로 누워 잘 수 없게 되면서, 내가 이 베개를 접수했다.
이 베개에 비스듬히 몸을 기대고 다시 편히 잘 수 있었다.
©박은영
그런가 하면 장애가 없는 룸메이트도 주저하지 않고 내게 도움을 요청했다.
돌보는 역할에 굶주려 있던 나는 할 일이 주어지면 신이 나는 어린 아이와 같았다.
쓰레기를 버려야 하는데 다들 퇴근 후에 등을 바닥에서 떼고 싶지 않아 눈치만 보던 밤, 하루종일 집안에서 일한 내가
바람이라도
쐬고 싶어 몸을 일으켰다.
“봉투 묶어줘. 내가 내려갔다 올게.
친구는 씨익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나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내가 일어나면, 차마 나를 시킬 수는 없다는 듯 몸을 일으켜 나를 제지했을 것이다.
나는 괜히 나섰다는 민망함을 삼키며 하릴없이 주저앉았겠지. 그런 관계에선 편견으로 얼기설기 만들어진 딱딱한 ‘에티켓’
이상을 기대할 수 없고,
나의 필요를 말하기도 쉽지 않다.
그 사람에게는 나의 필요보다 장애인을 ‘보호’해야 한다는 관념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룸메이트들은 나라는 고유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알았다.
그 정도 투정을 주고받을 수 있는 시간이 쌓인 우리의 집에는 장애인과 그 옆에선 언제나 보호자가 되어야 하는 비장애인이라는 돌봄의 위계는 존재하지 않았다.
서로의 필요를 채우고,
서로를
나를 돌보는 자로 인정하는 것. 우리 사이에 형성된 돌봄의 모습이었다.
돌봄의 가능성을 묻다
사실 우리가 타인의 돌봄을 받아들이기란 여간해서는 쉽지 않다.
평생에 걸친 ‘민폐를 끼치는 연습’이 필요할 정도로. 룸메이트들과 서로의 삶에 깊숙이 개입하고 가끔씩 투정도 부리는 사이가 되어도, 내가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돌봄의 한계는 엄연히 존재했다.
본가와의
거리가
많이 멀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내 밥상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바쁘거나 아플 땐 주로 본가에 가 있었다.
딱 한 번 밤중에 통증이 심해져서 응급실에 가야 했을 때도 친구들이 아닌 엄마를 깨웠다.
응급실 행이 처음이 아니었다면 혼자 택시를 탔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사실 돌봄을 주고받는 관계에서는 서로의 감정과 노동에 대해 고민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은 돌봄 받는 순간의 힘든 감정과 관계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을 고려해 돌봄 받는 정도와 활동지원인과의 관계를 세밀하게 조정한다.
우리가 복잡한 존재인 딱 그만큼 돌봄을 주고받는 문제도 복잡하다.
하지만 그러한 복잡함과 어려움이 서로 돌보고 돌봄 받는 삶의 불가능성을 증명한다고 절망하기는 조금 이르다.
오히려 우리가 상대에 대해 그리고 서로와의 관계에 대해 얼마나 깊이 생각하는 존재인지 보여주는
증거일 수도 있다.
당시 나는 친구가 낮에는 고생하고 밤에는 잘 잠들지 못하는 걸 잘 알기에 친구를 깨우지 못했다.
의존하는 사람은 그의 몸을 떠받치는 사람의 몸을 걱정한다.
책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의 저자 조한진희는 신문에 연재한 글에서 ‘역방향 돌봄’에 대해 소개했다.
(“나는 돌봄노동자에게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한겨레, 2021년 3월 13일) 그는 친구였던 중증장애인 주영이 어떻게 자신을 돌보는 사람들을 돌보는지 묘사했다.
주영은 돌봄인들 간에 노동량이 공평하게 돌아가도록 일을 신경 써서 배분했다.
누군가 자신의 몸을 들어 옮겨야 하는 경우에는 옮기는 사람이 최대한 덜 힘들도록 호흡을 조절했다.
주영의 이야기는 돌봄을 받는 사람이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순간에 어떻게 상대를 돌보는지 보여준다.

▲ 노래방 마이크. 룸메이트들이 옹기종기 모이는 저녁이면, 서로의 일상을 듣고 함께 호들갑을 떨었고 가끔은 노래를 함께 불렀다.
서로를 돌보는 시간이었다.
©박은영
물론 나는 돌봄 받아야 할 순간마다 회피하고 싶고,
돌봄 받는 이의 마음을 알기에 도움의 손길을 쉽사리 뻗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나는 평생 운동화끈이 풀어질 때마다 누군가를 붙들고 발을 내밀었다.
하지만 아직도 매번 끈 풀린 운동화를 신고 내가 불러세운 그에게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서 서로의 마음을 더 자주 짐작하게 될수록, 결국은 질문하게 된다.
‘과연 우리는 돌보고 돌봄 받는 데 성공할 수 있을까?’
할아버지의 마지막 시간, 돌보고 돌봄 받다
‘역방향 돌봄’은 돌봄 받는 사람이 주체적으로 행하는 돌봄이다.
그래서 아이를 돌보는 동안 아이의 웃음소리와 손짓이 우리를 돌보는 순간과 역방향 돌봄은 분명 그 의도성 면에서 구분되어야 하는 지점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돌봄 관계가 형성되면, 돌봄
받음을
통해 돌보는 주체가 되고 돌봄으로써 돌봄 받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내 제한적인 경험으로나마, ‘돌보는 동안 돌봄받는다’는 말이 단순한 수사만은 아닐 수 있는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싶다.
어느날 할아버지와의 이별이 성큼 다가왔다.
서서히 힘을 잃어가시던 할아버지는 어느 새벽 침대에서 일어나셨다가 그대로 주저앉으셨다.
나는 자취집에서 새벽에 택시를 탔다.
그 후 할아버지가 하늘로 떠나시기까지 40여 일간 가족들이 돌아가며 할아버지의 침대맡을
지켰다.
할아버지는 생존에 필요한 거의 모든 활동을 타인에게 오롯이 맡기실 수밖에 없었다.
식구들은 분주히 움직였다.
저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조금씩 달랐지만, 자녀들과 손주들은 우리가 무사히 자라날 수 있었던 울타리를 기억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만큼 그의 곁에 머물고자 했다.
할아버지는 내게도 특별한 분이었다.
내가 어릴 때 할아버지는 일주일에 한두 번씩 꼬박꼬박 차를 몰아 나를 재활병원에 데리고 다니셨다.
나는 성인이 되어 나이가 들어가고 할아버지의 몸은 계속 약해져 갈 때도, 할아버지는 방송에서 배운 운동을 직접 시범 보이시며 내 건강을
챙기셨다.
그렇게 나는 할아버지 몸의 움직임이 제한되어 갈 때도 그의 돌봄을 받았다.
거의 전적으로 타인에게 몸을 맡겨야 했던 기간 중에 할아버지가 누군가를 챙기려 하시는 순간이 있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친척의 가족들 안부를 묻기도 하고,
계속 침대맡을 지키는 딸을 쉬고 오라며 보내기도 하셨다.
하지만 그 기간 중에 우리 가족을 돌본 것은, 혹독하기까지
한
돌봄의 시간 중에 아주 간혹 있는 그런 순간만은 아니었다.

▲ 가족일기 비디오. 할아버지는 우리가 어릴 때부터 비디오카메라로 가족들의 모습을 많이 기록하시고,
테이프를 계속 돌려보시곤 했다.
©박은영
우리 가족 누구도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허투루 보내기를 원치 않았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손 떨림이 있는 내가 섬세한 손길이 필요한 사람과 접촉하는 건 조심스러운 일이었지만, 어쨌든 나도 할아버지와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었다.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더라도.
뜻밖에 내게도 일이 하나 주어졌는데, 바로 할아버지의 팔을 붙잡고 있는 일이었다.
할아버지가 팔을 움직이시면 탈수를 막는 링거 바늘이 빠져 대형사고가 날 수 있었다.
결국 거의 24시간 내내 누군가 할아버지의 팔을 옆에서 지켜야 했다.
나는 고작 한나절 정도 할아버지의 팔을 지켰지만, 내게는 더할 수 없이 귀중한 시간이자, 돌봄노동의 무게를 경험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전통적으로는 ‘작게라도 보은할 기회를 얻었다’고 표현하겠지만, 이 문장은 그 순간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나와 우리 가족은 고된 노동으로 점철된 시간이었을지라도, 우리에게 그 시간이 허락되었음에 감사했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 시간은 ‘은혜를 갚는’, 밀린 숙제를
해버리는
시간이 아니었다.
그동안 가족 내에서 돌봄 주체로 인정받지 못한 내 한을 풀 기회도 아니었다.
그날들이 할아버지와 함께하는 마지막 시간이었다 해도, 그 시간 속에서 할아버지와 우리, 할아버지와 나, 할아버지와 각자의 관계는 계속 만들어지고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가 계속되는 통증 속에서도 내게 사랑의 말을 속삭여주길 기대하고 그의 옆에 머무르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할아버지의 팔을 붙잡고 있는 것, 할아버지는 아픔을 표현하고 나는 그가 통증을 느끼는 부위를 찾아 쓰다듬는 것으로 그 시간 우리는 서로를 돌볼 수 있었다.
그 경험을 통해, 할아버지가 돌봤던 어린 나도 그 순간 할아버지를 돌봤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생각을 떠올린 순간을 포함해, 생을 마감해가는 할아버지 곁에서 보낸 이 시간이 앞으로 오래도록 나를 지탱해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돌봄 받고 있었다.
감당할 만큼의 기간 동안만 할아버지를 돌보며 이별을 준비할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
물론 외면할 수 없는 돌봄노동의 구체적 무게를 실감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아무리 거부하고 싶어도 점점 더 많은 돌봄에 의존해야 하는 사람의 정신적 고통도 옆에서 지켜봐야 했다.
우리는 할아버지의 존엄을 제대로 지켜드린 걸까? 그 시간을 보낸 후, 혼자 움직일 수 없고 누군가 내 얼굴과 몸을 닦아줘야 하는 때를 상상하기는 더 막막해졌다.
돌보는 것도 돌봄 받는 것도 더 어렵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할아버지와 보낸 시간이 함께 한 모든 이를 지탱해줄
거라는
것도 진실이었다.
그 시간의 무엇이 우리의 속을 보듬고 채웠다는 것, 우리를 돌보았다는 것, 돌보고 돌보아지는 것이 모두 극도로 고통스럽다는 것 모두가 진실이었다.
나와 너의 존엄을 지키기 위하여
돌보는 사람과 돌봄 받는 사람이 함께 있는 공간으로 들어갈 때, 우리는 매번 돌봄의 불가능성을 실감한다.
돌봄 받고 돌보는 수많은 방법을 숙고하고 또 시도하는 과정은 계속해서 다른 장애물을 만난다.
계속 공부를 하고 대화를 시도해 보아도 어떻게 살고 아프고 죽을지 답을
내리기는
어렵고,
끝까지 나와 너의 존엄을 지킬 수 있을지 확신할 수도 없다.
다만 오늘 존중하며 돌보고 돌봄 받을 줄 아는 사람이 옆에 있음에 약간 안도한다.
물론 서로의 살결을 만지며 서로를 돌보는 사이일지라도, 우리는 서로의 고통을 알 수도 다 해결할 수도 없다.
너와 나를 존중하고 보전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돌봄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 정도다.
돌봄노동의 고통을 인정하면서도 돌봄받는 고통 또한 간과하지 않기 위해 서로에게 계속 말을 걸기를, 표현되지 않는 마음을 읽기 위해 눈을 마주보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딱 그 정도지만, 오늘도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손을 다시 한 번 고쳐 쥘 수 있다.
전원주택서 24시간 간병…月80만원에 누리는 '복지 천국' [집코노미-집 100세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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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오상 기자

일본 모리노이에 나리타의 모습.도쿄 도심에서 차를 타고 40분. 일본 치바현 나리타시의 한적한 도로를 따라가자 3층 높이의 큰 건물이 나왔다.
유리 외벽 등 주변과 다르게 현대적인 외관에 흡사 리조트에 온 것 같았다.
그러나 주차장에서 내려 간판을 보자마자 특별 양호 노인홈이라는 문구가 보였다.
일본의 사회복지 법인인 ‘복지악단’이 운영하는 ‘모리노이에 나리타’의
첫 모습이었다.
일본에서도 모리노이에 나리타는 현대화된 시설뿐만 아니라 노인 요양과 육아, 장애시설이 함께 운영되는 시니어 주거시설의 진화형으로 평가받는다.
가격 역시 지방자치단체와 협업으로 부담을 낮췄다.
국내에서도 모리노이에 나리타의 운영 방식에 관심을 갖는 이유다.

일본 모리노이에 나리타의 내부 모습. 일반 집처럼 방마다 주소가 쓰여 있다.
지난달 대한주택건설협회 경기지회와 함께 방문한 모리노이에 나리타에는 120명의 노인이 거주 중이었다.
특별양호 노인홈은 고령자나 질병으로 요양이 필요한 노인을 위한 장기 요양시설이다.
시설은 입주자가 가장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방법에 중점을 뒀다.
시설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3층
높이의 거주시설은 밤에도 문을 잠그지 않는다.
시설에는 중증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이 많지만, 자신이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게 시설 관계자의 설명이다.
대신 관계자는 주거동 앞에 마련된 업무동으로 안내했다.
출입구를 통해 치매 노인이 나오면 카메라가 움직임을 인식하고 직원에게 바로 경보음으로 알린다.
마침 한 노인이 주거동 밖으로 나오자 사무실 중앙에 마련된 모니터에서 경보음이 울렸다.
곧장 대기 중이던 직원이 나가 노인을 마중했다.
시설의 책임자인 아베 아키코
씨는 “노인이
답답해서 나온 것일 텐데 문이 잠겨 있거나 하면 오히려 불안해한다며 “직원이 마중을 나가 같이 동네 산책을 하거나 물건을 사는 등 동행하면 오히려 고마워한다고 설명했다.
시설에 들어가자 10여 명의 노인이 큰 탁자에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올해 85세라는 한 여성 입주자는 “집에서 살던 그대로이기 때문에 시설에 들어와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소감을 밝혔다.
시설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각 방에는 일반주택과 같이 주소가 쓰여 있다.
그 주소로 우편을 보내면 직원이 직접 입주자에게 전달해준다.
시설에는 언제든 가족이 면회 올 수도 있다.
면회객의 숙박을 위한 방도 따로 마련돼 있다.
전용면적 12㎡ 크기의 방에 들어가니 마치 옛날 일본 집에 온 것 같은 풍경이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오래돼 보이는 목재 서랍이었다.
입주자는 “젊었을 때부터 쓰던 가구를 모두 방에 들여왔다며 “TV정도만 시설에서 제공해준 것이라고 했다.
창문에 뚫린 작은 창으로는 찬바람이 들어왔다.
아베 씨는 “노인이 거주하는
방에는
냄새가 날 수 있는데, 방문객들이 올 때 이를 싫어하는 입주자들이 많았다며 “그런 목소리를 반영해 창문을 잠그고도 환기할 수 있는 방법을 도입했다고 했다.

일본 모리노이에 나리타의 내부 모습. 누구나 주방에서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모리노이에 나리타에 상주하는 간호사가 있고,
응급 상황시 바로 이송 가능한 병원이 마련돼 있다.
직원은 간호사를 포함해 20여 명으로, 평균 연령이 30대다.
이날 시설을 관리하는 매니저 역시 26살이었다.
매니저는 “노인을 옮기고 씻기는 데 많은 힘이 들기
때문에 젊은
직원들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식사 역시 다른 요양시설과 다르게 별도 건물에서 모두가 볼 수 있게 조리 과정을 공개했다.
누구나 지나가며 그날 요리 과정을 지켜볼 수 있고,
미리 식단 예시를 만들어 공개해놓는다.
최신 시설이 도입돼 24시간 돌봄이 가능한 요양시설이라 거주비 부담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1인당 월 80만원 정도만 지불한다고 한다.
입주한 사람 대부분은 일본의 사회보장 정책인 ‘개호보험’에 따라 거주비를 지원받기 때문이다.
아베 씨는 “지자체가 개호(돌봄)비용의 60% 정도를
지원해주기
때문에
주거비 부담이 덜하다며 “연금 생활을 하는 노인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연금으로 충분히 시설 입주와 거주가 가능한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날 현장을 둘러본 대한주택건설협회 경기지회 관계자는 “국내에서도 요양시설이 많이 조성되고 있지만, 아직 고가 위주로 운영되는 게 현실이라며 “일본처럼 입주자의 부담을 낮출 수 있는 모델이 만들어진다면 공급도 더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65세 인구가 전 국민의 20%를 웃도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습니다.
은퇴한 시니어 세대에게 건강과 주거가 핵심 이슈입니다.
‘집 100세 시대’는 노후를 안락하고 안전하게 보낼 수 있는 주택 솔루션을 탐구합니다.
매주 목요일 집코노미 플랫폼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