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새로운 계절에서
만나는 지혜
一운칠기삼(運七技三)의 지혜
젊은 시절, 우리는 세상이라는 거대한 무대 위에서 치열하게 달리며 의무감으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살았습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공직자의 삶은 더욱 그러했을 것입니다. 참으로 부지런히, 쉼 없이 달려온 날들이었지요.
그런데 매일 아침 출근을 서두르던 시곗바늘의 재촉에서 벗어나 퇴직이라는 인생의 새로운 계절에 다다라 조용히 지나온 궤적을 찬찬히 뒤돌아보면, 가슴을 울리는 작은 진실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내가 그 험난한 파도를 무사히 넘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나 혼자만의 힘이 아니었구나' 하는 깨달음입니다.
내가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었던 조직이라는 시스템, 중요한 결정의 순간마다 따끔한 질책과 애정 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선배들, 나의 부족한 점을 묵묵히 채워주며 곁을 지켜준 동료와 후배들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내가 바깥일에 온전히 매진할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삶의 무게를 나누고 인내해 준 가족들의 배려가 있었습니다. 혼자 견디며 돌파했다고 믿었던 세월 속에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공존하며 서로를 지탱해 주었던 것입니다.
흔히 세상사를 두고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고들 합니다. 사람의 재주나 노력이 3할이라면 운이 7할이라는 뜻입니다. 동양 철학에서 말하는 이 ‘운(運)’은 결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요행이나 로또 당첨 같은 우연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방금 우리가 떠올렸던, 내 삶을 지탱해 준 수많은 버팀목들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합니다.
운칠기삼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기 위해서는 씨앗과 토양의 관계를 떠올려 보아야 합니다.
아무리 우수한 유전자를 가진 훌륭한 씨앗이라 할지라도 물기 하나 없는 차가운 시멘트 바닥 위에서는 결코 싹을 틔울 수 없습니다. 그 씨앗이 온전한 생명으로 자라나 풍성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적당한 햇빛과 부드러운 흙, 때맞춰 내리는 단비 그리고 벌레를 잡는 농부의 따뜻한 손길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7할의 운이란 곧 ‘나를 둘러싼 시대적 배경과 환경 그리고 타인과의 유기적인 연결망’을 뜻합니다. 전쟁이나 지진이 없는 평화로운 시대에 태어난 것, 나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직장이 존재했던 것, 위기의 순간마다 기적처럼 다가와 손을 내밀어 준 사람들의 존재 자체가 바로 내 삶에 작용한 거대한 ‘운’입니다. 나의 3할이라는 맹렬한 노력이 결실을 맺을 수 있었던 이유는 나머지 7할의 은혜가 비옥한 토양이 되어 나를 무너지지 않게 꽉 붙잡아 주었기 때문입니다.
二감사, 나를 위한 치유
한번은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시무룩해진 저에게 친분이 있는 한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좋았던 일 다섯 가지만 떠올려 봐요."
이리저리 생각해보아도 오늘 있었던 일 중에서 좋은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도움을 주셨습니다.
"작고 사소한 것에서 찾으면 돼요."
그분의 말씀을 듣고 보니 좋은 일이 많았습니다. 날씨가 맑았고, 아침을 먹었고, 커피가 맛있었고, 아무런 특별한 일도 없었고… 좋았던 일이 없는 것이 아니라 좋았던 일을 보는 눈이 없었던 것입니다. 덕분에 우울했던 하루가 환해졌습니다.
심리학자들은 사람의 마음이 결핍에 예민하게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 ‘남보다 부족한 것’, ‘지나간 과거에 대한 후회’에 집중하게 된다는 것이죠. 이때 결핍을 충만으로 채우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감사합니다", "당신 덕분입니다", "좋은 날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감사를 말하고 마음에 품는 순간, 우리의 시선은 내게 없는 것에서 ‘이미 나에게 풍성하게 주어져 있는 것들’로 초점이 옮겨갑니다.
이러한 관점의 전환은 내 삶이 고립된 섬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온기와 촘촘한 관계 속에 안전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줍니다. 세상에 홀로 내던져져 투쟁한다는 부담을 넘어 깊은 안도감과 충만함으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내가 타인을 향해 그리고 이 세상을 향해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할 때, 가장 먼저 깊은 위로를 받고 행복해지는 사람은 그 말을 내뱉는 나 자신입니다. 그런 점에서 감사는 나를 불행의 사슬에서 해방시키는 가장 강력하고도 다정한 무기입니다.
三6월의 의미
6월은 ‘음수사원(飮水思源)’의 지혜가 유독 가슴 깊이 다가오는 달입니다. 달력에 적힌 ‘호국보훈의 달’을 넘어 우리가 숨 쉬듯 당연하게 누리는 일상의 근원을 조용히 돌아보게 합니다.
지금 우리가 딛고 선 이 땅의 평화와 풍요로운 윤택은 결코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름 모를 산야에서 조국을 위해 청춘을 바친 호국 영령들, 가난을 이겨내려 머나먼 이국땅에서 땀 흘린 산업 역군들 그리고 자식들의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묵묵히 일터를 지켜낸 평범한 우리네 부모님들이 계셨습니다. 그분들이 쏟은 땀과 눈물이 깊은 우물이 되었기에 오늘 우리는 이토록 맑고 평온한 일상을 마음껏 길어 올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번 6월에는 일상의 속도를 조금 늦추고 내 삶을 든든하게 받쳐주는 뿌리들을 가만히 쓰다듬어 보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요. 무심히 걷는 안전한 동네 골목길, 식탁 위에 놓인 따뜻한 밥 한 그릇, 가끔 안부를 묻고 웃음을 나누는 오랜 벗들. 이 평범해서 더 소중한 하루하루가 수많은 인연의 수고와 앞선 이들의 헌신이 빚어낸 다정한 기적임을 떠올려 봅니다.
맑은 물을 마시며 그 근원을 생각하는 음수사원의 지혜가 마음 깊이 따뜻하게 스며들기를 바랍니다. "모든 것이 덕분입니다"라는 따뜻한 한마디가 우리의 일상을 더욱 풍요롭고 충만하게 채워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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