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최재석 선임기자 = 배우 윤경호 씨가 최근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아픈 가족사를 털어놨다.
그는 어머니가 과거 우울증을 앓았고 결국 30대의 젊은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윤씨는 어린 시절 외할머니로부터 사람들이 흉볼 수 있으니 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해라는 말을 듣고, 한 번도 어머니 죽음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었다고 했다.
윤씨의 고백에 많은 시청자가 공감하고 감사하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나종호 미국 예일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SNS에 사회의 낙인으로 인해 슬픔을 숨겨야만 했던 수많은 자살 유가족들에게 힘이 되어줄 거로 믿는다며 침묵이 아닌, 서로 아픔을 보듬어주는 사회로 나갈 수 있도록 용기를 내주신 윤경호 배우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했다.
윤씨가 어머니의 죽음을 말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의 고백이 소중한 이들을
떠나보내고도 공개적으로 슬퍼할 수 없었던 이들에게 큰 힘이 됐으면 한다.
나 교수가 SNS에 소개한 연구에 따르면 한 사람의 자살은 최대 135명의 삶에 영향을 미치며 평균적으로 15~30명에게 매우 중대한 영향을 준다고 한다.
한 해에 1만4천여명이 극단적 선택으로 사망하는 한국에서는 1년에 약 40만명이 심각한 영향을 받는 셈이다.
지난 20년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살률 1위를 기록한 우리나라는 산술적으로 최대 800만명 가까이가 이 범주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 교수는 그동안 한국을 '거대한 자살 유가족 사회'라고
주장해왔는데 그가 밝힌 연구도 추정치를 통해 산정한 최대치를 말한 것 같다.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에 따르면 자살 유족은 '자신에게 중요하고 의미 있는 사람을 자살로 잃고 삶의 변화를 겪은 사람들'을 말한다.
유족의 범위를 친인척 관계로 한정하지 않고 '친구나 동료, 이웃, 지인' 등 심리적으로 가깝게 지내며 친밀함을 유지했던 관계 중 자살로 인해 영향을 받은 경우도 포함할 수 있다고 한다.
통상 세계보건기구(WHO)는 한 사람의 자살로 영향받는 사람을 최소 5명에서 10명으로 본다.
작년 우리나라의 자살(고의적 자해로 인한 사망)자
수는 1만4천439명으로 집계됐는데 WH0 기준을 적용하면 매년 7만여명∼14만여명의 자살 유족이 생기는 꼴이다.
한 사람의 자살은 친인척뿐 아니라 직장 동료나 친구 등 많은 사람에게 큰 충격과 함께 매우 심각한 고통을 준다.
자살이 '사회적 재난'으로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고통 속에 있는 많은 자살 유족이 소중한 사람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사회의 따가운 시선과 편견으로 선뜻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오히려 그런 사실을 숨기거나 회피하는 경향이 강하다.
소중한 이와의 갑작스러운 이별을 겪은 유족들은 겉으론 괜찮아 보이지만 '사실 매일 버티고 있을 뿐'이라고 한다.
윤씨의 고백이 우리 사회의 자살 유족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전문가들은 자살이 말할 수 있는 죽음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자살 유족도 고인에 대해 말하고 싶은 욕구가 있고, 그들에겐 누군가의 관심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고 한다.
자살에 대해 말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는 자살 유족에 대한 낙인효과를 오히려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지난 1월 국내 첫 자살 유족단체인 '한국자살유족협회'가 출범했다.
자살 유족이 직접 주체가 돼 사회적 인식 개선 활동과 관련 법 개정 등의 활동에 나선 것이다.
이 협회 강명수 회장은 정부 정책홍보지 'K-공감'과 인터뷰에서 자살 유족이 죽음에 대해 말할 수 있고 온 사회가 자살을 나와 이웃의 문제로 받아들일 때라야 죽음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했다.
그들에겐 '그냥 함께 아파하고 들어주고 보듬어 주는 것'이 간절하다.
bondong@yna.co.kr
인생은 장편소설
(서울=연합뉴스) 최재석 선임기자 = 배우 겸 소설가 차인표 씨가 최근 황순원문학상 신진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차 씨는 SNS에 올린 소감에서 42세에 첫 소설을 출간했는데 58세에 신진작가상을 받는다.
인생은 끝까지 읽어봐야 결말을 아는 장편소설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는 2009년 소설 '잘가요 언덕'을 펴내며 작가로 데뷔한 후 '그들의 하루', '오늘예보' 등을 썼다.
특히 '잘가요 언덕' 개정판으로 출간한 '언
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은 영국 옥스퍼드대 필수 도서에 오르기도 했다.
유명 배우가 국내외에서 인정받는 소설가로 인생의 새 페이지를 써가고 있는 셈이다.
그의 인생 결말이 궁금해진다.

차 씨가 언급한 대로 인생이 장편소설에 비유되는 건 우리의 삶이 그만큼 변화무쌍하기 때문이다.
장편소설에는 여러 인물이 등장하고 이들 간의 복잡한 관계를 통해 수많은 장면이 만들어지고 이야기가 복잡다단하게 전개된다.
처음부터 줄거리나 결말을 짐작하기 어렵다.
인생도 돌발적인 사건이 일어나고 실패와 도전이 거듭되고, 새로운 기회들이 이어지며 그 속에서 사람들이 변하고 성장한다.
그래서 내일은 아무도 모르는 게 인생이라고
한다.
젊은 날 한순간의 실패에 좌절하지 말고 삶을 긴 여정으로 보라는 격려의 의미에서도 이 비유가 쓰인다.
얼마 전 통계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 상반기 취업도 구직도 하지 않은 '쉬었음' 청년층(2030세대) 인구가 월평균 70만명을 넘어섰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런 인구는 작년 상반기보다 4만명 이상이나 늘어난 것이라고 한다.
'쉬었음' 인구는 별다른 이유없이 취업도 구직도 하지 않고 그냥 쉰 사람을 말한다.
이 중 재취업을 못 해 경력 단절이 1년을 넘긴 청년도 30만명에 달했다.
무엇이 그들에게 구직조차 포기하게 했을까. 그들에게
'인생은 장편소설'이라는 말을 자신 있게 할 수 있을까 싶다.
한국 사회는 실패에 관대하지 않고 도전을 무모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
자원은 부족한데 인구밀도가 높아 치열한 생존 경쟁이 불가피한 사회다 보니 '실패=재도전 불능'이라는 공식이 사람들의 뇌리에 쉽게 자리 잡아서인지 모른다.
극심한 경쟁을 치른 기성세대들은 선뜻 자식들에게 과감한 도전에 나서라고 말하기 쉽지 않다.
이런 문화 속에서 자란 젊은이들은 대체로 안전한 선택을 하기 마련이다.
성적 우수 학생들이 안정된 '기대
소득'이 보장되는 의대를 선호하는 것도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다.
지난달 방영된 KBS 다큐멘터리 2부작 '인재전쟁'은 한국과 중국의 이공계 인재 양성의 현실을 극명하게 대비해 뜨거운 반응을 낳았다.
공학 천재가 국가적 영웅으로 대접받는 중국의 현실과 최상위 인재가 의대에 몰리는 한국의 '의대 만능주의'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준 이 다큐는 '인재들이 부(富)만 좇는 나라에서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면서도 공대는 새로운 도전을 하는 곳이고, 의대는 보상이 보장된 곳인데 그 갈림길에서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을 길을 선택하는 학생들을 나무랄 수 없다고 했다.
수십년간 형성돼온 사회 분위기를 한꺼번에 바꾸긴 어렵다.
젊은 날의 실패는 인생의 실패가 아니고 성공이나 성장의 과정으로 여기라는 말이 실감이 나는 사회를 꾸준히 만들어가야 한다.
많은 젊은이가 과감한 도전에 나설 수 있어야 한다.
지금도 최고의 시험 성적을 들고 '기술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신념으로 공대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의 도전과 선택이 현실에서 좌절하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그들의 신념을 지켜줘야
한다.
그들이 제2의 '이해진' '김범수'가 될 수 있는 사회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고령층(55∼79세) 경제활동인구가 1천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이런 시대에 '인생은 장편소설'이라는 말이 청년층에만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
사회에서 1차 은퇴하는 5060세대에게도 이 말이 위로가 될 수 있었으면 한다.
노후에 대한 걱정이 많겠지만 아직 인생의 많은 페이지가 남아 있다.
장편소설의 2막을 이제 써 내려가야 한다.
소설의 결말은 아무도 모른다.
bondong@yna.co.kr
사라지는 소풍, 멀어지는 김밥의 추억
세월호, 초등생 용변 사건으로 일선학교 소풍기피 확산
소풍 사고시 교사 민형사 책임 면제에도 기피 심각해져
베이비붐 때 소풍은 인생 학습장, 구시대 유물 인식 곤란
사고예방 중요하나 학생의 소중한 권리마저 빼앗아선 안돼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2017년 5월, 대구의 한 초등학교 6학년 담임교사가 천안 독립기념관으로 현장체험학습(소풍·견학)을 가던 길에 여학생을 학대했다는 이유로 직위해제됐다.
고속도로 위에서 갑자기 화장실이 급해진 여학생을 버스 안에서 용변을 보게 하고 부모와 연락한 뒤 가까운 고속도로 휴게소에 내려준 게 화근이었다.
학부모는 딸을 홀로 1시간가량 휴게소에 있게 한 건 아동학대라며
경찰에 신고했고, 소송으로 번졌다.
법원은 교사를 벌금형에 처해 교단을 분노로 들끓게 했다.

화창한 날씨 속에 봄 소풍 길에 오른 대구시 달서구 상인동의 한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들뜬 표정으로 꽃길을 지나고 있다.
/이재혁/지방/2004.4.21 (대구=연합뉴스)
초등생 소풍 유기 사건은 3년 전 세월호 사태로 힘을 얻은 소풍 폐지론에 기름을 부었다.
청와대 게시판에는 교사에게 무슨 잘못이 있느냐. 차라리 없애자는 청원이 등장했다.
한편에선 소풍은 학창 시절 소중한 추억이자 사회 구성원으로서 가져야 할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는 필수 교육 중 하나라며 없애면 안 된다는 목소리도 일었지만, 자식을 애지중지 키우는 '신세대' 부모들의 성화에 묻혔다.
이
사건은 학기 중 가족여행 등 학생 개인의 야외 활동이 현장학습으로 대체되는 계기가 됐다.
소풍 중에 일어난 사고에 대해 교사의 민형사상 책임을 면제해주는 학교안전사고예방법 개정안이 시행된 지 두 달 가까이 지났지만, 일선 학교의 기피 현상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고 한다.
올해 서울 지역 학교의 경우 소풍 및 견학 건수가 지난해보다 36%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초등학교는 소풍에 학급당 1명의 인솔 인력을 지원하는 등 각 시도 교육청이 사고 예방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백약이 무효인
듯하다.
1982년까지 한 해 출생아 수는 최대 100만명에서 최소 80만명 수준이었다.
23만명인 지난해에 비하면 최대 4배 차이가 난다.
1980년대 후반만 해도 서울의 한 학급 학생 수가 평균 70명이었는데,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교사들이 어떻게 그 많은 학생을 가르치고 소풍 때 인솔할 수 있었는지 경이롭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수원=연합뉴스) 신영근 기자 = 싸늘한 새벽 기온과 달리 오후 들어 봄 기운을 회복한 15일 오후 경기도 수원 경기도청 잔디밭으로 소풍을 나선 어린이들이 김밥을 먹으며 다가온 봄을 즐기고 있다.
2010.4.15
개도국 시절 소풍은 콩나물시루에 갇혀있던 학생들에게 유일한 쉼터였지만 가난했던 많은 이에겐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도시락을 가져오지 못한 게 부끄러워 나무 숲에 숨어야 했던 많은 제자에게 선생님은 손수 준비한 김밥을 슬쩍 건넸고, 아이들은 덕분에 '엄마의 정성'이 담긴 김밥을 서로 나누며 봄날을 만끽할 수 있었다.
소풍을 일제와 군사독재의 어두운 유산이니 하는 이념 프레임으로 재단할 수 없는 이
다.
더구나 일본에선 소풍을 엔소쿠(遠足:원족)로 부른다.
학교 안전사고 예방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아이들의 권리마저 빼앗는 것 또한 지나치다.
고유의 한자어인 소풍(逍風)은 바람을 맞으며 노닌다는 뜻이다.
사교육에 갇힌 아이들이 선생님과 함께 봄바람을 쐬며 즐겁게 노닐게 하는 게 이리도 어렵다니 세상이 너무 각박해졌다.
jahn@yna.co.kr
몸은 선진국인데 마음은 개도국, '686'의 숙제
한국은 30년전부터 선진국 대우, GDP 세계 9위 찍기도
'한국은 선진국 아니다' 응답 절반, 50·60 유일하게 60%대
정청래 60세, 임종석 내년이면 환갑…586→686으로 불러야
50·60대의 부정적 인식, 자녀와 정치권의 암담한 현실 탓일수도
다시 정권 쥔 686, 80년대에 머문 정치개혁에 앞장서야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1996년 12월, 대한민국은 세계 29번째로 '선진국 클럽'이라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이 됐다.
일본에 이어 아시아 국가 중 두번째. 2021년에는 유엔무역개발회의가 한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바꿨다.
최근 객관적 경제 지표를 보면 더더욱 한국이 선진국이라는 확신을 갖게 한다.
GDP 세계 9위(2020년), 인구 5천만이 넘는 나라 중 1인당 국민총소득 6위를 찍었다.
이쯤이면 선진국을 넘어 강대국 소리 들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정작 우리 국민 중 절반 이상이 한국은 선진국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광복 80년을 맞아 한국일보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은 선진국이다'는 응답은 35%, '선진국이 아니다'는 응답은 53%였다.
특히 50·60 세대에서 부정 응답 비율이 유일하게 60%를 넘겼다.
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한강의 기적을 만든 부모들 덕에 가장 많은 경제적 혜택을 누린 세대의
인식이라는 점에서 아이러니하다.

(서울=연합뉴스) 박창기 기자= 김영삼 대통령이 OECD 주한 대사와 한승수 경제부총리(왼쪽) 등 각계 주요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OECD 가입 축하 행사를 열고 손뼉을 치고 있다.
1996.12.12 <저작권자 ⓒ 2009 연 합 뉴 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정치인들의 인식은 더욱 더디다.
한국 정치의 주류인 86 운동권 그룹이 어느덧 만 60세 환갑을 넘었다.
이번에 거대 여당의 수장이 된 정청래 민주당 대표가 만으로 환갑이고, 86그룹의 상징이자 마지막 리더격인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내년이면 환갑이다.
그들을 신군부 퇴진 시위로 이끈 김부겸 전 총리와 유시민 전 복지부 장관은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다.
이젠 86을 586에서 686으로
부르는 게 맞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고 있는데, 50·60의 정서는 그 변화를 따라가기에도 벅찬 모습이다.
개도국의 반항아로서 겪었던 진통이 뇌리에 박힌 탓이라 하지만, 경제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자식들과 정쟁으로 날을 지새우는 정치권의 모습을 보면서 '선진국'이란 평가에 동의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한국은 지표상으로는 분명 선진국이지만, 정치는 80년대 이념 투쟁과 지역대결 구도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낡디낡은 정치 체제가 소득 양극화와 저출산, 세대갈등을 유발하며 나라의 미래를 갈수록 어둡게 만들고 있다.
50·60 정치인, 특히 다시 국정을 운영하게 된 686의 분발이 필요하다.
그들이 다시 용기를 내준다면 한국이 여전히 개도국에 머물러 있다는 심리도 바뀔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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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바꾸는 측근들…尹, 변절의 역사 몰랐나
정치인의 변심은 일상, 권력 잃으면 보스에 칼끝 돌리기도
고려 무신정권 100년, 배신과 암살 얼룩진 비열한 세계
조선시대 신숙주 유자광 이완용, 변절 후 부귀영화 누려
박정희부터 배신 점철…전두환 복심 장세동 '의리파' 각인
친윤 복심들 진술 번복…尹 '모든 책임은 내게' 했더라면

(포천=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경기 포천 승진훈련장에서 실시된 '2023 연합·합동 화력격멸훈련'에서 쌍안경으로 훈련 현장을 주시하고 있다.
2023.6.15 zjin@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우리 정치권이 동네 건달들만도 못하다는 소리를 듣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조폭 세계에선 '큰 형님'에 대한 작은 의리라도 있지만, 정치판은 다르다.
대통령과 계파 보스에게 권력이 있을 땐 충신인 양 설치며 호가호위하다 주군이 힘을 잃으면 눈빛도 안 마주치고, 심지어 칼끝을 겨누기도 한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우리 정치사에서 배신은 단순한 일탈이 아니라 공식화된 패턴이다.
특히 100년이나 지속된 고려 무신정권(1170~1270년)은 배신 없이는 설명할 수 없는 흑역사다.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이의방은 동지인 정중부에게, 정중부는 휘하의 경대승에게 죽임을 당했다.
이어 권력을 쥔 이의민은 믿었던 최충헌에게, 최씨 정권의 마지막 집권자 최의는
수하인 김준에게 피살됐다.
배신자 김준은 양자인 임연에게 목이 달아났고, 임연 일가는 근위대인 삼별초에 도륙당했다.
대의명분을 말하는 조선도 충신의 배신과 변절이 판을 쳤다.
집현전 동지들을 배신하고 세조 편에 붙어 단종을 사지로 몰아넣은 신숙주, 연산군의 폭정을 지탱하다 연산군 축출에 앞장선 유자광, 독립문 현판을 썼다는 반중, 친미파에서 친일파로 변절한 매국노 이완용까지. 그들의 의리는 짧고 배신의 달콤함은 길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일제가 무너지고 민주공화정이 들어섰지만, 권력의 속성은 바뀌지 않았다.
박정희는 고향 후배 김재규에게 암살당했고, 전두환은 정치적 아버지인 박정희를 독재자로 몰았다.
노태우는 권력을 물려준 죽마고우 전두환을 백담사로 보냈고, 이명박은 자신을 키워준 정주영이 대선에 출마하자 김영삼 편에 섰다.
민주투사 김영삼은 내각제를 매개로 군부세력과 손잡더니 정권을
잡자 그들을 감옥에 보냈다.
박근혜는 아버지가 총애하던 신군부에 버림받는 걸 목도하고도 측근들에게 배신당하고 탄핵당했다.
박근혜의 호위무사를 자처하던 사람들 모두 윤석열 검찰에 불려가 진술을 번복한 탓이 컸는데, 심지어 몇몇은 자신을 감옥에 넣은 윤 전 대통령의 참모로 변신하기까지 했다.
그래서일까. 정치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충신'을 꼽으라 하면 십중팔구 전두환의 심복 장세동을 가리킨다.
5공의 경호실장과 안기부장을 지낸 장세동은 전두환이 몰락한 뒤에도 5공 청문회와 12·12, 5·18 내란 재판에서 보스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지 않았다.
1999년 송파 재·보궐 선거에 출마했다가 5공의 정치재개로 비치자 어른에게 부담을 드릴
수 없다며 물러난 일화는 유명하다.
웃픈(웃기지만 슬픈) 현실이다.

(서울=연합뉴스) 중앙일보 사진기자 출신 최재영의 '대한민국 대통령의 빛과 그림자' 展에 걸린 역대 대통령들. 2012.8.29 photo@yna.co.kr
친윤으로 불리던 측근들이 검찰에 불려가자 하나같이 윤 전 대통령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고 있다.
탄핵에 찬성한 한동훈을 배신자로 몰면서 '탄핵 기각', 윤 어게인'을 외친 그들이라 황당한 느낌마저 든다.
하긴, 주군이 본을 보이지 않으면 충신이 나오기 어려운 법 아닌가. 윤 전 대통령은 국회에 출동한 비상계엄 병력이 '인원을 끌어내라'는 말을 '의원을 끌어내라'로 잘못 들었다며 지휘관의 청력 탓을 했다.
측근들의 표변을 단순하게 배신과 변절로 재단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윤 전 대통령이 지금이라도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으니 부하들은 선처해달라고
한다면 앞으로 사정이 달라질지 모르겠다.
jahn@yna.co.kr
'협력정치=협치'는 신기루입니다
정당들 사이에 흔하게 쓰이는 말이 협치(協治)입니다.
협력정치의 준말로 봅니다.
새천년 들어 쓰임이 늘었다고 합니다.
누가 최초로 썼는지 알 길은 없지만요. 안다면 그이에게 묻고 싶습니다.
왜 이런 말로 환상을 사람들에게 심어주느냐고요? 본래, 협치는 거버넌스(governance)의 번역어입니다.
여러 주체가 협력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정책을
결정하며 집행, 평가하는 운영 방식이나 체계를 뜻합니다.
민간과 정부가 함께 정책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민관협치(民官協治)를 강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부 주도의 일방적 통치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활용됩니다.
[촬영 고형규]
하여, 질문은 몇 가지로 요약됩니다.
거버넌스 번역어와 무관하게 고작 네 음절 쓰는 게 힘들어 맥락도 없이 협치는 협력정치의 준말이야 하고서 이를 쓰기 시작했단 말인가? 백번을 양보하여 편의적인 약어를 인정한대도 그 낱말이 별도로 있어야 할 만큼 의미 있는 개념을 품고 있는가? 결정적으로 그것이 이룰 만한 가치를 가졌으며 이뤄야만 절대 미덕인 성질의
것이긴 한가? 도발하듯 묻는 것은 그이에게 하는 질문이 아니어서입니다.
그이를 찾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자답하기 위한 자문들입니다.
말은 길과 같습니다.
가면 길 되고 쓰면 말 됩니다.
협력정치의 준말이 협치라는 것, 일단 알겠습니다.
단, 거기까지입니다.
거버넌스 번역어 협치는 어찌합니까. 가장 큰 건 따로 써야 할 만큼 개념어로서 의미가 있는지입니다.
적절한지도 의문입니다.
협치와 달리 대화와 타협의 정치라는 근본 있는 개념이 이미 있습니다.
그게 안 되면
다수결로 문제를 푸는 게 현대의 자유주의적, 대의제적 민주주의의 운영원리입니다.
협력은 '힘을 합하여 돕는다'는 뜻입니다.
모든 정파가 이견 없거나 적은 사안에 대해서만 예외로 할 수 있는 게 협치일 겁니다.
왜 협치 않느냐고 되뇌는 것은 민주주의와 안 어울립니다.
길가에 차이는 빈 깡통처럼 막 쓰는 단어 협치는, 신기루(蜃氣樓)입니다.
대기 속에서 빛의 굴절 현상에 의하여 공중이나 땅 위에 무엇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 / 공중에 떠 있는 누각이라는 뜻으로, 아무런 근거나 토대가 없는 사물이나 생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홀연히 나타나 짧은 시간 동안 유지되다가 사라지는 아름답고 환상적인 일이나 현상 따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이 셋이 신기루의 사전적 정의이니까요.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
담판(판가름) 자문(물음) 사사(섬김)
담판(談判. 말씀 담 판가름할 판)은 서로 맞선 관계에 있는 쌍방이 의논하여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는 뜻입니다.
접사 -하다를 붙여 [담판하다] 합니다.
담판을 내다, 짓다, 벌이다 꼴도 씁니다.
담판은 '담'보다 '판'입니다.
'담'하여 '판'한다는 쪽이지 '판'하려고 '담'한다는 쪽이 아닙니다.
회담이나 회의인 양 쓰지 않습니다.
예문을 봅니다.
그는 적장과 휴전 문제를 담판하기 위해 적진으로 갔다 / 소작인들은 지주와 소작료에 대하여 담판하였다 / 나는 직접 찾아가서 주인과 담판하는 외에는 별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 그들은 직접 만나 소유권 문제를 담판하기로 약속했다 / 우리는 그 문제에 대해서는 일괄적으로 담판하기로 했다.
한 언론기사문에서 '두 정상이 담판을 갖는다' 합니다.
두 정상이 담판한다, 담판을 벌인다/낸다/짓는다 하고 바꿔 쓰는 게 낫습니다.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제공 = 연합뉴스] DB자료
자문(諮問. 물을 자 물을 문)은 […에/에게 …을] 꼴로 쓰여 어떤 일을 좀 더 효율적이고 바르게 처리하려고 그 방면의 전문가나,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기구에 의견을 묻는 것을 뜻합니다.
풀이가 깁니다.
짧게 '묻는다'로 기억합니다.
이 문제는 전문가에게 자문합시다 / 그 기관에 집값 안정 대책을 자문하다 / 그 회사는 유명한
경제 전문가에게 매사를 자문한다 합니다.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한다는 식으로 쓰는 경우를 봅니다.
난감합니다.
대답이면 모를까 물음을 구한다니요? 그 전문가는 점잖게 말합니다.
제게 자문을 구하시다니요? 말법에 어긋납니다.
제가 자문에 응하겠습니다.
[자문하다]는 물어서 의견을 구한다는 뜻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에/에게 자문하고, …을 자문하고, …에/에게 …을 자문한다고 쓴다는 것도요.
사사(師事. 스승 사 섬길 사)는 스승으로 섬긴다, 또는 스승으로 삼고 가르침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한자가 의미를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그는 전처만을 외경했을 뿐만 아니라 전처만을 사사했다 (박완서/미망) / A는 B에게 시를 사사했다 / C는 D에게 바둑을 사사했다 하고 씁니다.
전처를 스승으로 삼고 가르침을 받았다는 겁니다.
A는 B한테 시를 배웠고요. C는 D의 가르침으로 바둑을 익혔습니다.
스승으로 섬긴다는 뜻일 때는 문제 없지만 가르침을 받는다는 뜻일 때 쓰임에서 더러 혼선을 빚습니다.
전문가 E를 사사했다 하지 않고 전문가 E에게 사사(를) 받았다 하는 겁니다.
원칙적으로 앞엣것을 쓰는 게 어법에 맞고 경제적이기도 합니다.
한자로 된 말이 과속방지턱처럼 턱 하고 걸릴 때가 있습니다.
쉬운 말로 속도를 낮춥니다.
그게 좋은 판단입니다.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
무기가 된 물…진짜 전쟁 부르는 '물 전쟁'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 우리 몸은 70%가 물이다.
생명체가 있다고 유일하게 확인된 별이 지구인 것도 물 덕분이다.
생명이 살만한 별을 찾을 때 먼저 확인하는 것도 물의 존재다.
물은 그 중요성만큼이나 성질과 기원 등도 신비스럽다.
현대과학에서도 물이 어떻게 지구에 생겨났는지 이유를 정확히 모른다고
한다.
물이 없으면 인간은 살 수 없다.
그래서 예부터 치수(治水)는 국가 생존의 필수 요건이었다.
농경과 공업을 비롯한 모든 산업의 사활도 필요한 물을 댈 수 있느냐에 달렸다.
지구 표면 약 71%를 물이 덮고 있는데, 육지 생명체가 쓸 수 있는 비율은 극히 낮다.
지구상 물 97.5%는 해수이고 나머지 2.5%만 염분 없는 담수다.
이 민물 중 70% 가까이인 빙하와 만년설을 제외하고 대부분 지하수나 토양 속 수분 등도 빼면 인류가 쓸 수 있는 물은 지구 전체 물의 0.007%밖에 안 된다고 한다.
세계 인구가
계속 늘고 그에 따라 식량 생산량도 증가하는 데다 엄청난 물을 소비하는 전자·기계 산업 등까지 발전하면서 인류는 만성 물 부족이라는 숙제를 안았다.

[신화=연합뉴스 자료사진. 재배포 DB 금지]
이제 세계 각국이 물이란 한정된 자원을 놓고 국민 생명을 건 싸움을 벌여야 하는 시대가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실제 곳곳에서 물 전쟁(Water War)이 격화하고 있다.
아시아에선 강을 공유하는 중국, 인도, 파키스탄 등이 댐 건설 등을 두고 충돌 중이다.
아프리카의 이집트와 에티오피아도 나일강 때문에 분쟁 위기를 맞았다.
미국과 멕시코도 리오그란데강과 콜로라도강의 물을 서로 나눠 쓰는 조약을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칠레와 볼리비아, 그리고 중앙아시아 내륙 국가들도 물싸움이 한창이다.
특히 인구 밀집 대륙인 아시아의 물 전쟁은 자칫 세계 대전을 야기할지 모를 뇌관으로 떠올랐다.
세계 인구 1위를 다투는 인도와 중국에다 파키스탄까지 세계 인구 '톱5'에 드는 삼국이 물 전쟁에 휘말렸다.
모두 핵보유국이란 점에서 더 심각해 보인다.
지금 눈에 띄는 건 인도와 파키스탄의 물을 둘러싼 무력 충돌이다.
지난 4월 카슈미르 테러 배후를 파키스탄으로 지목한 인도가 양국 간 인더스강 조약을 파기하겠다고 선언한 뒤 양국이 미사일 공격까지 주고받으며 확전 우려를 키우고 있다.
1960년 체결한 인더스강 조약은 파키스탄으로 흐르는 인더스 서쪽 지류의 사용 권리를 파키스탄이 갖는 게 골자다.
파키스탄은 전체 수자원의 80% 가까이 의존하는 인더스 지류가 끊기면 수력발전이 사실상 중단되고 농작물 재배도 어려워진다.
파키스탄으로선 생존권을 박탈당하는 셈이지만 인도는 '일수불퇴'를 거듭 공언해
전운이 짙어지고 있다.
이 대립에서 미국은 아시아의 새 전략 거점인 인도에, 중국은 일대일로 핵심인 파키스탄에 각각 힘을 실어 미·중 충돌의 대리전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있다.
인도는 중국과도 물 분쟁 중이다.
티베트에서 발원해 인도까지 흐르는 브라마푸트라강이 문제다.
중국이 이 강 하류에 세계 최대 싼샤댐의 3배 넘는 용량을 보유할 수력발전 댐 건설을 시작해서다.
이 정도 규모면 환경 파괴는 물론 가뭄과 대형 홍수 같은 재해 발생 가능성이 커지므로 인도도 대응책을 고민 중이다.
특히 양국이 잠재적 적국이란 점에서 인도는 중국이 댐을 무기화할 가능성을 의심한다.
물은 이제 명실상부한 국제 안보 이슈가 됐다.
이미 중국은 지정학적 이점을 활용해 물 전쟁을 부추기는 나라로 국제사회에서 지목받고 있다.
중국은 '세계의 지붕' 티베트고원을 장악한 덕에 아시아의 물줄기를 다수 지배한다.
이 고원은 아시아 10대 하천의 시작점이자 두 자릿수 나라를 지나가는 강의 수원지로, 중국은 여기에서 발원해 다른 나라로 흐르는 강들을 무기화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는 하이브리드 전쟁의 중국 버전인 '초한전'(超限戰)의 한 형태로도 해석된다.
중국이 메콩강 상류에 댐들을 대거 지은 이후 하류의 베트남, 태국, 라오스 등은 거의 해마다 가뭄을 겪는 등 안보 위기를 실감하고 있다.
물 전쟁은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도 이미 과거 1980년대에 북한이 북한강 상류에 지은 금강산댐이 수공(水攻)에 활용되거나 천재지변으로 붕괴할 가능성에 대비하고자 '평화의 댐'이란 방어용 댐을 건설했다.
정치적 논란이 끊이지 않았지만 21세기 들어 금강산댐이 붕괴하면 실제 수도권이 위험해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자
결국 2단계 증축을 통해 저수 용량을 4배나 늘렸다.
지금은 안보 유용성과 홍수 조절 기능을 인정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강물 수량의 변동성을 뜻하는 하상계수가 매우 높다.
다른 나라 주요 하천들의 하상계수는 통상 20~30 안팎이지만, 우리 강들은 평균 300에 달한다.
비가 안 오면 강이 마르고 호우 때는 단시간에 홍수가 나는 지형이니, 물이 안보상 약점일 수밖에 없다.
한강의 하상계수는 390으로 장마철마다 홍수가 반복됐고
갈수기엔 백사장이 드러날 정도였다.
여러 댐과 수중보를 지은 뒤에는 한강 하상계수를 90까지 하향 조절할 수 있게 돼 지금은 가뭄에도 물이 차 있고 해마다 반복된 서울 홍수도 거의 사라졌다.
5대 하천 중 한강과 함께 하상계수가 가장 높은 섬진강은 아직 유량 조절 역량이 떨어진다고 한다.
leslie@yn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