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일러스트=유현호

일러스트=유현호

고혜련 칼럼니스트

‘외로움과 맞짱뜨지 마라’. 최근 어디 가 떠돌아다니는 문구를 접했을 때 나는 무릎을 쳤다.
감히 내가 맞짱을 뜨고 있다니. 살면서 찾아오는 그런 감정은 물리침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품고 나아가야 하는 숙명 같은 존재인 것을. 욕심내 맞짱 뜨니 더 불행하고 외로운 거다.
“그대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 그리 노래해서 진한 사랑을 받는 시구(詩句)도 있지 않은가.

‘외로움’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이가 있다.
몇 년 전 90이 넘어 돌아가신 내 어머니다.
남편과 사별해 20년을 홀로 살아내신 분. 그분이 쓸쓸함을 토로할 때 그러려니 했다.
누구나 겪는 것이니 별일 아니라는 듯. 그나마 위로차 내가 건넨 책이 있다.
98세에 자신의 장례비로 첫 시집을 펴내 화제가 됐던 ‘시바다 도요’ 일본 할머니가 쓴 ‘약해지지 마’다.
제목도, 그 안의 시들도 위로가 될 듯해서다.
어머니와 사별 후 손때 묻은 그 시집을 살피니 귀퉁이가 접힌 페이지들에 눈길이 간다.

“외로워질 때/문틈으로 들어오는 햇살을/손으로 떠서 몇 번이고 얼굴에 대보는 거야/그 온기는 어머니 온기/어머니 힘낼게요/중얼거리면서 나는 일어서네”(‘외로워지면’). 어머니가 생각날 때 내 책꽂이에 따로 모셔놓은 그 시집을 가끔 들여다본다.

‘백세 장수 시대’가 도래하면서 부쩍 노인들의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가 회자된다.
그 심각성을 토로하면서 세계보건기구가 이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연결위원회’를 최근 출범시켰다.
영국은 이미 2018년 세계 최초로 ‘고독부’(Ministry of Loneliness)를 신설해 국가 차원에서 사회적 고립과 고독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섰다.
고독은 개인의 행복은 물론 의료비 증가, 생산성 저하 등 경제적 손실도 유발하기 때문이란다.
외로움은 조물주가 인간에게 준 ‘숙명’인데 과연 무슨 일을 얼마나 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잘해서 외로움과 다들 작별했으면 좋으련만 난망하다.

우리는 오늘도 수시로 벼락같이 찾아드는 외로움을 견뎌내야 사는 인간 군상이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구별이 없다.
그런 면에서 인생은 참 공평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더구나 공동체 의식이 날로 사라져가고 홀로 휴대폰이나 AI에 코 박고 사는 세상에, 국가나 조직이 나서서 ‘사회적 연결 강화’로 해결한다지만 결국은 각자가 해결해야 할 외로운 난제인 거다.
인생 선배들은 “외로움을 피해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지 말 것”, “외로움과 함께하면서 내면을 성찰하고 성장하는 시간으로 만드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시인 릴케도 ‘사랑을 나누듯 고독을 사랑하라’ 권한다.
외로움을 삶의 한 방식으로 껴안으라는 충고다.
철학자 니체 역시 “위대한 사상은 고독 속에서 태어난다”고 거든다.
뇌는 외로운 상태로 집중해야 능력을 충분히 발휘한다.
외로움이 곧 뇌의 먹거리요 영양제인 것이다.
세상사에 빠져 바쁘게 돌아갈 때 허무 대신 가끔 외로움을 초대하고 싶어진다.
그래야 꾸밈과 맞춤을 덜어낸 맨얼굴의 진정한 나로 사는 느낌을 갖기 때문이다.

혼자 사색하고 돌아보는 몰입의 시간이 길어지는 건 행운이다.
모든 부정적 감정은 더 많이 갖고 싶고 더 대접받고 싶은 데서 비롯된다.
욕심의 가지치기가 필요하다.
나무가 전해주는 가르침이다.
더 큰 열매를 얻기 위해서는 수시로 곁가지를 쳐내는 잔 아픔을 견뎌내는 ‘셀프 가드닝’이 필요하다.
‘네 덕을 보겠다’가 아니라 ‘내 덕을 보게 하겠다’로 작심하면 세상에 너그러워진다.
모르는 이들이라도 눈 마주치고 인사하기, 환히 웃으며 이웃에게 말 걸기 등 별것 아닌 그게 외로움을 탈출하는 출입구다.
큰 것도 작은 것이 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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