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주의의 덫을 넘어서"

김학철 교수의 글 "문자주의의 덫을 넘어서" 는 고전,
특히 종교·이념·의학·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고전적 텍스트를 어떻게 해석하고 계승해야 하는가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아래는 이 글의 핵심 내용을 정리하고,
그 의미와 시사점을 해설한 것입니다.


🌟 핵심 요지 정리

  1. 문자주의(문자 그대로의 해석)는 위험하다
  • 고전을 글자 그대로만 해석하면, 오히려 그 고전이 지닌 본래의 정신과 가치를 왜곡할 수 있다.
  • 예: 동양의학 고전에서 비소를 처방한 기록이 있다고 해서 오늘날 그대로 따르는 것은 생명 존중의 정신에 반한다.
  • 고전의 진정한 가치는 ‘정신’과 ‘철학’에 있다
    • 고전의 중요성은 특정 처방이나 주장에 있지 않고, 그 안에 담긴 생명 존중, 자연과의 조화, 끊임없는 탐구 정신 같은 보편적 가치에 있다.
    • 다윈이나 갈릴레이의 책도 오늘날 과학 교재로 쓰기엔 부적절하지만, 그들이 제시한 과학적 사고 방식과 탐구 정신이 후대에 영향을 미친다.
  • 역사적 맥락을 잊지 말아야 한다
    • 모든 고전은 특정 시대, 문화, 과학 수준 속에서 탄생했기 때문에, 오늘날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 과거의 지식을 오늘날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 오히려 진보를 저해하고 갈등을 조장할 수 있다.
  • 해석의 공동체가 필요하다
    • 고전을 해석하는 것은 개인의 독단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고민하는 공동의 과제여야 한다.
    • 이 공동체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 이 해석이 인류의 사랑을 증진시키는가?
      • 공동체의 조화와 신뢰를 높이는가?
      • 지속가능한 미래에 기여하는가?
  • 문자주의는 극단주의의 뿌리다
    • 불확실한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확고한 답을 원하고, 문자주의는 그 불안을 해소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 그러나 그것은 고정관념과 두려움에 기반한 독선이며, 타인과의 대화를 차단하고 사회 분열을 초래한다.
  • 진정한 존중은 ‘해석’이다
    • 고전을 존중한다는 것은 박제처럼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삶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정신으로 되살리는 것이다.
    • 고전은 끊임없이 해석되고 재발견되어야 진정한 생명력을 가진다.

    🌱 시사점과 함의

    • 지식의 진화를 인정하라: 과거의 지혜를 존중하되, 그것이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과학, 의학, 철학, 종교 모두 시간 속에서 발전한다.
  • 대화와 해석의 문을 열어라: 하나의 해석만을 정답이라 주장하는 태도는 폐쇄적이다. 다양한 관점이 공존하고 토론될 때, 사회는 더 성숙해진다.
  • 공동체의 책임: 개인의 신념뿐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행복과 미래를 고려하는 윤리적 해석이 필요하다. 고전은 개인의 주장 정당화 도구가 아니라, 공공선을 위한 자원이어야 한다.
  • 종교와 이념에 대한 새로운 태도: 현대 사회에서 종교나 이념이 갈등의 원인이 되는 이유는 종종 문자주의적 해석에서 비롯된다. 원전을 ‘생명 있는 텍스트’로 읽는 전환이 필요하다.

  • 한 줄 요약

    고전을 진정으로 존중하는 길은 문자에 매이지 않고, 그 안의 보편적 정신을 오늘의 삶에서 끊임없이 해석하고 실천하는 데 있다.


    📣 결론: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한 제안

    김학철 교수는 단순한 비판을 넘어, ‘해석의 공동체’ 라는 희망적인 대안을 제시합니다. 이 공동체는:

    • 권위에盲目하지 않되, 전통을 경시하지도 않는다.
    • 다양성을 포용하면서도 보편적 가치를 추구한다.
    • 과거의 지혜를 오늘의 문제에 창의적으로 연결한다.

    이러한 태도야말로, 분열과 갈등이 깊은 현대 사회에서 공감과 협력의 기반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고전은 끝나지 않은 대화입니다.
    우리는 그 대화에 참여할 책임이 있으며,
    그 대화를 통해 더 나은 내일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문자주의의 덫을 넘어서

    고전 해석 한가지만 고집땐본뜻 왜곡되고 갈등 불씨돼오늘날 던지는 질문이 뭔지다함께 고민하고 해석할 때더나은 공동체 만들 수 있어


    김학철 연세대 학부대학 교수

    한 건강기능식품 광고가 동양의학의 한
    고전을 인용하는 것을 보고 현대 의학의 검증 없이 그
    고전의 권위에만 기대어 효능을 선전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취지의 글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쓴 적이 있다.
    이 글에 한 팔로어가 '당신이 누구이기에 감히 이 위대한
    고전을 함부로 평하느냐'는 식의 신랄한 댓글을 달았다.
    두말할 나위 없이 그 책은 아시아 의학사에 우뚝 솟은 위대한
    고전이다.
    하지만 그 책을
    글자 그대로 따른다면, 내가 앓고 있는 천식을 고치기 위해 비소(砒素) 화합물이 든 약을 먹어야 할 수도 있다.

    고전이 품고 있는 생명 존중의 정신,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추구하는 철학,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끊임없이 발전을 모색한 연구 정신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계승해야 할 진정한 가치다.
    반대로 특정 처방을
    글자 그대로 적용해 수은이나 비소를 써야 한다고 고집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그
    고전의 위대한 정신을 거스르는 일이다.
    이는 비단 의학서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예를 들어 과학계의
    고전인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두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나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다윈은 DNA를 몰랐고, 지동설을 주장하기 위한 갈릴레이의 논증은 부정확한 점이 여럿 있었다.
    그럼에도 그 책이
    고전으로 필독서인 이유는 그 책의 과학사적 가치와 이후 과학 연구의 방향을 설정한 데에 있다.
    만약 누군가 대학 교재로 그 두 책을 채택해서 진화와 천문학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다윈과 갈릴레이를 존경하는 과학자도 이에 반대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분열과 갈등의 중심에 놓인 종교와 이념을 다루는
    고전을 향한 우리의 태도 역시 새삼스럽게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인류의 정신사에 결정적으로 공헌해 온 종교 경전이나 이념의 원전(元典)들은 우리 시대의 자산이자 권위의 출처다.
    그러나 우리는 그 모든
    고전이 특정한 역사적·문화적 배경 속에서 탄생했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고전이 오늘 이곳에서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숙고해야 하며, 이러한 노력을 통해서만
    고전의 참된 가치가 발현될 수 있다.
    나는 이를 위해
    고전 앞에 책임감 있는 건강한 '해석의 공동체'가 현재와 미래를 조망하며 해석의 방향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공동체는
    고전을 비롯한 과거와 현재의 권위들을 향해 '인류 보편의 사랑을 증진시키는가? 우리 공동체의 조화와 신뢰를 드높이는가? 나아가 지속가능한 미래에 기여하는가?'와 같은 질문을 치열하게 던지고 답해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문자주의와 근본주의의 목소리는 막강하다.
    모호하고 불확실한 세상에서 삶의 닻을 내릴 근거마저 흔들린다면 그 불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바로 그 불안과 두려움의 순간에,
    문자주의적 태도가 원전의 본뜻을 가장 극적으로 왜곡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문자주의는 자신의 두려움과 고정관념에 따른 해석만을 유일한 진리라 고집하는 지적 나태이자 위험한 독선이며, 극단주의의 뿌리이다.
    결국 그들은
    고전을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전락시키고 만다.
    이와 같이 될 때 사회의 갈등은 되돌이킬 수 없게 된다.

    고전에 대한 진정한 존중은 박제된
    문자에 갇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 안에 담긴 깊은 정신과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생생하게 되살려내는 끊임없는 해석의 여정에 있다.
    보편적 가치를 탐구하는 열린 '해석의 공동체'를 통해, 우리는
    문자의 덫에서 벗어나 더 나은 공동체의 미래를 기획할 수 있을 것이다.

    [김학철 연세대 학부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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