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인공지능) 시스템은 이제 국가 정책 논쟁의 중심에 서 있다.
 전 세계 정부들이 이 기술을 어떻게 규제할지, 가속화할지, 혹은 억제할지를 두고 고심하고 있다.
스탠포드 인간중심 인공지능 연구소(HAI)는 지난 4월 발표한 ‘2025 AI 인덱스 보고서’에서 AI를 놓고 각국이 고심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HAI가 2017년 이후 매년 발행해 온 ‘AI 현황 지표’에요. HAI는 이번 보고서에서 하드웨어 개발 동향, 추론 비용, AI 논문과 특허 트렌드, 기업의 책임있는 AI 도입 실태, 과학·의료 분야에서 AI의 역할 등 다양한 분야를 다뤘습니다.
 단순한 기술 보고서가 아닌 AI가 사회,
경제, 거버넌스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살펴본 것이죠.
HAI는 국가별 AI 전략이 뚜렷하게 갈라지고 있다며, 어떤 정부는 혁신의 속도와 탈규제를, 다른 정부는 위험 완화와 윤리적 거버넌스를 택했다고 분석했습니다.
 영화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놈놈놈)'을 패러디하자면 국제사회는 이렇듯 같은 AI를 놓고 착한놈, 빠른놈과 센놈으로 나뉘고 있습니다.
오늘 미라클레터에서는 AI 지배권을 놓고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있는 이들 놈놈놈의 이야기를 다뤄보고자 합니다.



오늘의 3줄 요약
1. '착한놈' EU "사회가 AI를 신뢰할 수 있으려면 법이 필요해"
2. '빠른놈' 미국 "AI는 속도요 속도는 곧 패권이다"
3. '센놈' 중국 "선넘으면 강한 규제, 통제력은 곧 경쟁력"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 AI와 관련한 EU의 전략은 '신뢰할 수 있는 AI 구축'입니다.
 안전하면서도 기본권을 존중하며 신뢰를 형성해야한다는 것이죠. [유럽연합]
신뢰를 법으로 만들자
'착한놈' 유럽연합
비교적 최근 소식이죠. 지난 10일, 이탈리아가 유럽연합(EU) 회원국 중 처음으로 자국 AI 법령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이 법은 유럽연합이 지난해 통과시킨 AI 법(AI Act)을 각국이 실행 단계로 옮긴 첫 사례죠. 이에 맞춰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는 같은 달 ‘AI 도입 전략(Apply AI Strategy)’이라는 로드맵을 발표합니다.
 이 전략은 AI 규제 집행기관을 지정하고 중소기업의 AI 도입을 지원하며 산업 경쟁력과윤리의 균형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당시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유럽은 사람들이 신뢰할 수 있는 AI 구축의 길을 선도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죠. 유럽의 AI 정책은 이렇듯 일관되게 ‘신뢰할 수 있는 AI’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움직입니다.
 EU AI 법 서문엔 이런 문구가 들어가 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유럽에서 사용하는 AI 시스템이 안전하고, 기본권을 존중하며, 신뢰를 형성하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AI 법은 AI를 금지(불법), 고위험, 제한적, 최소위험의 네 단계로 분류합니다.
 특히 채용과 교육, 의료 등 ‘고위험’으로 분류한 영역에서는 데이터의 품질, 투명성, 인간의 감독 의무를 법적으로 명시했죠. 이를 위반하면 최대 2500만유로(약 417억원)의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유럽은 왜 이런 길을 택했을까요. 그 배경에는 ‘기술 패권’보다는 ‘규범 패권’을 추구해 온 유럽의 오랜 전략이 숨어 있습니다.
 IT 플랫폼 산업에서는 미국, 제조와 데이터 기반의 AI에서는
중국이 우위에 있어 유럽이 상대적으로 열세에 놓여 있습니다.
 그 결과 유럽은 스스로의 강점을 ‘규제와 윤리’로 정한 것이죠. 경기에서 뛸 뛰어난 기량의 선수가 없다면 해당 경기의 심판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게임의 룰을 직접 정하겠다는 것이죠. 경제학자 마리아 드미트로바는 지난 5월 파이낸셜파임스(FT)에 “유럽이 이제 규제를 자신의 경쟁력으로 바꾸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또한 유럽 사회 전반은 AI에 대한 불신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입니다.
 노동시장이 불안한 가운데, 정치권에선  개인정보 보호와 윤리적 책임 등의 문제를 오랜 기간 다뤄왔기 때문이죠. 이런 배경으로 인해 속도보다 신뢰, 혁신보다 책임을 우선시하는 유럽의 문화가 자리잡게 됐습니다.
 AI 윤리학자 루치아 포페스쿠는 네이처에 “유럽에게 있어 AI는 진보의 도구가 아닌 가치의 시험대라고 전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월 '리더십 장애 제거'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이를 들어보이고 있습니다.
 연방차원의 AI 안전 규정을 완화하고 대형 모델의 승인 절차를 간소화하는 것이 골자죠. 이렇듯 미국은 속도전을 기반으로 AI 패권 유지에 나섰습니다.
 [AP연합뉴스]
속도·자유로 패권 유지
'빠른놈' 미국
“우리는 AI 산업이 막 비상하려는 이 시점에 과도한 규제가 이 혁신 산업을 죽일 수 있다고 믿습니다.
J.D 밴스 미국 부통령은 지난 2월 프랑스 파리에서 이렇게 발언했습니다.
 밴스 부통령은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의 AI 기술이 전 세계적으로 여전히 황금 기준으로 남도록 할 것이라며, 성장을 촉진하는 AI 정책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죠. AI 산업이 막 부상하기 시작했으니 정부가 간섭하지 말자는 의사를 분명히한 것입니다.
 AI 산업을 자유 시장과 혁신 중심으로 두겠다는 일종의 공식 선언이었죠. 그의 발언은 트럼프 프행정부의 새로운
행정명령인 ‘(AI에서)리더십 장애 제거’로 이어졌습니다.
 이 행정명령은 연방 차원의 AI 안전 규정을 완화하고 대형 모델의 승인 절차를 간소화하는 것이 골자입니다.
 ‘AI 혁신의 속도가 정책을 앞설 수 있도록 하자’는 분명한 방향성도 명확히 드러냈죠.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역시 8월 미시건주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기술 산업 서밋에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우리는 규제를 쌓는 것이 아니라 걷어내, 미국의 혁신을 해방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발맞춰 미 상무부 산하 ‘AI 안전 연구소’는 ‘AI 표준 혁신 센터’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기관명에서 알 수 있듯 안전보단 표준과 산업화에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죠. 앞선 EU와 달리 미국은 AI를 산업 성장의 엔진으로 보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자본주의를 꽃피운 미국은 언제나 ‘시장’을 중심에 둔 접근법을 보여줬습니다.
 기업가 출신으로 국제무대에서도 ‘거래의 기술’을 십분 활용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시작 후 이같은 기조는 더 강화됐죠. 실리콘밸리가 거대한 AI 실험실로 변모하면서 규제는 혁신을 더디게 하는 장애물로 인식될 뿐입니다.
 앞서 살펴본 스탠포드 HAI 보고서에서도 “미국 정책 입안자들은 신중함보다 혁신과 경쟁력을 우선하고 있다라는 내용이 담겼죠. 트럼프 정부의 액션플랜은 연방정부의 AI 규제 일시
동결, 민간 기업 주도의 자율 규제, 방위산업·교육·의료 분야에서 AI 시범
사업의 신속 허가 제도 등을 골자로 합니다.
미국의 이런 움직임은 경쟁 상대인 ‘중국’ 때문입니다.
 중국의 AI 기술이 빠르게 부상하는만큼 미국 역시 기민하게 움직여야만 하기 때문이죠. 제이크 설리번미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1월 악시오스와 인터뷰에서 "앞으로 몇 년이 AI가 재앙을 초래할지, 미·중 AI 군비 경쟁의 승자가 누가 될지를 결정할 것"이라며 "이는 2차 세계대전의 맨해튼 프로젝트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중요한 사안"이라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AI를 단순 산업이 아니라 국가 패권 경쟁의 핵심 자산, 경제 안보 문제로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30일 김해에서 만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둘 다 웃고 있지만 속내는 어떤지 아무도 알 길이 없습니다.
 미국과 AI 패권을 놓고 경쟁 중인 중국은 국가 통제 하에 더 강한 AI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체제에 위협이 되는건 강하게 규제하면서도 그 안에서 국가 주도로 빠르게 산업을 키우겠단 생각입니다.
 [AFP연합뉴스]
통제 속에서 키운다
'센놈' 중국
통제로 강하며, 성장으로 더 센놈을 만든다.
 중국의 AI 전략은 이렇게 정리해볼 수 있습니다.
 다소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EU처럼 막거나, 미국처럼 풀어주는게 아니라 둘 다를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죠.
중국은 지난 9월부터 AI가 만든 모든 콘텐츠는 반드시 이를 표기하라는 전국 단위 의무 라벨링 제도를 시행했습니다.
 텍스트, 이미지, 영상과 더불어 합성된 가상 장면까지 AI가 만든 것이라면 모두 ‘AI가 만든 것’이라는
표시를 워터마크나 파일의 메타 데이터 등 어떤 형태로든 남겨야 합니다.
 이 제도는 앞서 지난 3월 중국사이버공간관리국 등 복수 부처가 발표한 ‘AI 생성 합성 콘텐츠 식별 조치’에 기반하고 있죠. 이를 위반할 경우 플랫폼은 삭제 등 제재를 가할 수 있습니다.
 중국 정부는 이번 조치에 대해 “AI의 건강한 발전을 촉진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습니다.
즉 중국은 AI 사용 자체는 막지 않았습니다.
 대신 AI가 만든 것을 국가가 식별 가능해야한다는 전제조건을 단 것이죠. 익명성을 제외한 나머지는 사실상 모 허용해준 것입니다.
 앞서 2023년 중국 당국이 이미 시행 중인 ‘생성형 AI 서비스 관리 잠정 방안’도 눈여겨볼만 합니다.
 해당 초안은 처음엔 매우 강경했습니다.
 생성형 AI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사전 보안 심사와 더불어 정치적 적합성까지 통과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공개된 최종본에서 당국의 입김은 대거 완화됐죠. 중국은 규제 범위를 “중국 대중에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는 AI만을 대상으로 정하고, 연구·기업 내부 개발 단계의 모델은 유연하게 다룰 수 있도록 했습니다.
 당국은 이를 “혁신과 발전은 장려하면서도 안전하고 통제 가능한 방식으로 관리하겠다고 했습니다.
 중국 특유의 검열은 유지하지만 산업의 싹 까지 자르진 않겠다는 것이죠.
규제와 별개로 중국은 국가차원의 AI 산업 육성에도 나섰습니다.
 중앙·지방 정부는 AI 스타트업에게 GPU 연산 자원을 바우처 형태로 나눠주고 대규모 데이터센터 인프라를 구축해주고 있죠. 중국의 이같은 움직임은 중국이 AI를 국가 전략 산업으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민간 비즈니스가 아닌 국가의 주요 인프라기 때문에 ‘통제 장치’가 기본으로 들어가 있는 것이죠. 앞서 소개한 라벨링 제도에 대해
중국 사이버공관리국은 “이 조치는 인공지능의 ‘건강한 발전’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건강한’이란 중국 내부적으로는 허위정보·정치적으로 민감한 내용을 차단해 사회적 안정을 꾀하면서 동시에 외부적으로는 AI를 국가가 관리 가능한 성장의 한 축으로 육성한단 의미를 담고 있죠. EU처럼 법과 권리로 안전망을 깔자도, 미국처럼 시장에 맡기지도 않는 제 3의 방식인 셈입니다.

인사말
이렇듯 각국은 AI를 서로 다르게 해석하고 육성 방안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놈놈놈'식으로 풀면, AI를 사회가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고 신뢰를 법으로 강제하며 이를 수출하려는 유럽은 ‘착한놈’입니다.
AI는 속도전이며 속도가 곧 패권이라고 믿는 ‘빠른놈’ 미국은 시장에 주도권을 맡기고 있습니다.
 앞선 착한놈과 빠른놈과는 다른 ‘센놈’ 중국은 제 3의 길을 추구합니다.
 AI를 국가가 직접 관리하면서도 동시에 직접 키우고 있습니다.
접근법은 서로 다르지만 질문은 하나입니다.
 AI의 힘을 누가 관리(통제)할 것인가? 유럽은 시민과 법에서 해법을 찾았고, 미국은 시장과 기업에 주목했습니다.
 중국은 국가를 정답이라고 생각하죠. 이 질문은 한국도 고민해볼 부분입니다.
 우리는 어느 쪽의 질서를 따르면 좋을까요. 혹은 한국만의 제 4의 길을 만들 수 있을까요. 독자님들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오늘의 미라클레터에서는 AI의 힘을 누가 관리하면 좋을지 살펴봤습니다.
 다음에도 유익한 이야기로 찾아올게요.
미라클한 하루가 되시길 바라며
이영욱 드림
